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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16:35:36

호시노 겐/창작 활동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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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호시노 겐 로고.svg

[ 솔로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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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の外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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ギャ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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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01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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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5
Family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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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e Thing
2019.10.14
LIGHTHOUSE
2023.09.08
디지털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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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イデ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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折り合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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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命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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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아라가키 유이]] ||

1. 개요2. 전반적인 특징3. 외부적인 내용
3.1. 자신의 세계3.2. 긍정과 끊임없는 자기 세계의 변화3.3. 그의 동기와 희망과 절망3.4. 음악의 전달 방식과 전달의 중요성
4. 내부적인 세계관 및 세계상
4.1. '의미'의 초월과 '현실'의 색채4.2. 집단과 고독과 관계성과 소통4.3. 출구가 없는 '지옥'에서의 창조와 사랑4.4. '사회적 해석'의 의심: 이원론의 부정4.5. 보통의 생활4.6. 자유와 자연스러움
5. 관련 문서 및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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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호시노 겐_뮤비(6).jpg
뮤직비디오들의 한 장면[1]
만약 이 노래들을 모른다면 그만큼 호시노 겐을 아직 다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니 문서를 읽을 때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많을 수 있으며, 개개인의 곡의 해석에 틀을 한정시키고 방해하는 부분이 있어 되도록 이 문서를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웃음거리네, '바보의 노래'
말했어, '사이타마의 차라투스트라'
외톨이의 발밑은 거의 길조차 없었어[2]
사라시모노(2019) 가사 중
즐기고 싶고, 이왕이면 재미있는 것들을 하고 죽고 싶네요. #
호시노 겐의 중심에 있는 것은 변하지 않고, 형태는 항상 변화한다:「인생은 지옥, 인생은 희극(코미디), 그래서 재미있다」 #
일본의 음악가, 배우, 작가인 호시노 겐의 창작 활동에 드러나는 일부 세계관을 서술한 문서.

배우 활동에 있어 그의 세계관이 캐릭터 해석에도 어느정도 영향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그 영향이 다분히 한정적이어서[3] 그의 곡과 콘서트와 글 등을 중심으로 서술된 문서이다. 그의 전반적인 곡들을 듣기 전이나 인생 전반을 알기 전에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그리고 개개인의 곡의 해석에 틀을 한정시키고 방해하는 부분이 있어 스포일러를 붙였다.

호시노 겐은 여러 가지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곡을 들으며 개개인들의 느낀 점을 외부의 압박 없이 그대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아티스트고, 이 문서에서는 그의 세계 전반을 다 다루지는 않았기 때문에[4] 이 문서만으로 해석 또는 세계관이 한정되지는 않고 각 문단의 내용이 일부 겹칠 수 있으며, 전문가적인 칼럼이 아니기 때문에 다 맹신하지는 말고 재미로만 읽자

2. 전반적인 특징

정신적인 문제에 냉혹할 정도로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에서 살아가는 법[5]을 익히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와 민족 이기주의의 천박한 시대적 헛소리를
자기의 발 아래의 것으로 내려다보는 법을 익히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진리가 그에게 이득을 줄지 손해를 줄지 물어서도 안 된다.

오늘날 어느 누구도 물어볼 용기가 없는 문제들을 선호하는 강건함
금지된 것에 대한 용기
미궁으로 향하는 예정된 운명
일곱 가지 고독에 의한 한 가지 경험
새로운 음악을 위한 새로운 귀
가장 멀리 있는 것을 위한 새로운 눈
이제껏 침묵하고 있던 진리들에 대한 새로운 양심
그리고 위대한 양식의 경제성을 추구하려는 의지
그 힘과 열광을 흩어지지 않게 한데 모으려는 의지
자신에 대한 존경
자신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 자유를 가져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안티크리스트
호시노 겐이 쓰는 말 중에는 '나는 왜 태어났을까'와 같은 그 자체에 대한 저주를 전제로 한 다음, "그렇다고 해서 죽고 말거야?"라고 하는 반골심이 있다. 단순한 긍정과는 다른,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사실을 들이댄 뒤 '이 사회는 엿같지만 죽지 말라'고만 말한다. '예쁘고 멋진 거' 말고 그냥 그저 '계속'이라고. #
호시노 겐은 음악가로서, 악곡에 자신의 직접적이거나 암울한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 편이다. 그 대신 그가 보는 세상과 그것에 따른 그의 세계관이 곡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창작물과 관련해서는 세계관이라는 단어가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가상의 세계 및 배경 설정'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문서에서의 의미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것에 따른 '세계상'에 가깝다.

그가 세간에 상당히 외향적이고 유쾌하고 귀엽고 활발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거나 상당히 건강하고 밝은 노래가 많지만 그것과 더불어, 호시노 겐의 창작 활동에 드러나는 사상과 세계관은 그의 염세주의인간 혐오를 바탕으로 한 인류애를 이야기하고 표현하며, 존재론인식론에 기반한 실존주의 사상, 그리고 불교철학에 가깝거나 유사한 것들이 많다. 물론 다른 점도 꽤 많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자신의 '창작 행동' 관련해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것 중에는 여러 책이나 게임, 자신의 생각 및 경험 등 여러가지가 있고 그가 프리드리히 니체와 관련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건 사라시모노(2019)밖에 없긴 하지만 이 문서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서술은 저 철학사상들과 관련된 단어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그가 걸어온 행보 및 과거 중 어두운 것들[6]과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논리), 가치관, 경험 등으로부터 말미암아, 전반적으로 비관적인 시선으로 자기자신을 보면서 현재 사회를 힘들고 뭣같은 곳으로 치부하는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반골적 성향이 자주 드러난다.[7]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자신의 세계와 논리와 비전'을 일반 대중들에게 온전히 전하면서 소통하고 싶고, 반골기질을 앞세워 사람들의 생명력을 북돋거나 힘이 되어주고 싶은 것, 그리고 혼돈 선 성향을 띄기도 한다. 그런 야망과 그에 따른 노력은 덤.

그래서 그의 밝은 노래도 상당히 암울하고 현실적인 사회 및 세계상의 사람들을 비추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호시노 겐의 관점을 바탕으로 새로 생성된 인물 및 화자(話者)들'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경우도 꽤 많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 심상 및 풍경, 그리고 이야기들'을 음악으로 펼쳐내 사람들의 감상을 이끌어내거나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에도 집중하거나, 사람들의 마음 속 아픔이나 사회의 암울하거나 힘들거나 공포를 경험한 사람들을 '인물'로 만들어 그 인물들의 행동(전반적으로 회복탄력성이나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주체적인 모습이나 위버멘쉬를 지향) 또는 추악한 사회에서 그래도 버티거나, 소소한 행복을 가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예찬, 그 외에는 특정한 메세지들을 간접적으로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다수의 뮤직비디오에는 '새로 생성된 인물'이 아니라 여러가지 분위기의 호시노 겐이 나온다. 호시노 겐페르소나는 '호시노 겐'인 셈.

암울한 이야기를 꺼낸다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데에 있어 그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이야기나 부정적인 감정들마저 듣는 사람들에게 있어 큰 피해가 되지 않는 식으로 표현하거나, 나아가게 만드는 연료로서 작용한다.

또한 그의 에세이들과 악곡의 세계관이 연결되어있는 경우가 많아, 그의 에세이를 읽고나서 악곡이 다르게 느껴지거나 받아들여지는 걸 경험하는 것도 일종의 재미이기도 하다. 그의 일부 세계관을 후술하기 전에 혹시나 싶어 오해를 덜어내기 위해 한 가지 말해야할 것은, 호시노 겐은 반신론자 및 무신론자가 아니다.

3. 외부적인 내용

3.1. 자신의 세계

인간은 발견해내기 어려운 존재다. 자기 자신을 발견해내는 것은 가장 어렵다. 정신이 영혼에 대해 거짓말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중력의 정신[8]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을 발견해낸 자는 "이것이 나의 선이요 나의 악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만인의 선과 만인의 악" 운운하는 두더지와 난쟁이의 입을 막아버린다.

정말이지 나는 '모든 것을 다 좋다' 하고 심지어는 이 세계를 최선이라고 하는 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자를 나는 '매사에 만족하는 자'라고 부른다. 모든 것에서 맛을 느낄 줄 아는 매사에 대한 만족. 이런 것은 최선의 취향이 아니다! 나는 극도로 반항적이고 까탈스러운 혀와 위장을 존중한다. "나"와 "그렇다"와 "아니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으니 말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호시노 겐과 KENTA 「세상을 사는 법·돌아보게 하는 법」을 이야기하다 (2021)
KENTA(WANIMA): 이어서 제작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은데요. "SAKEROCK 무렵부터 노래하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음악에 뒤돌아보지 않는 듯한 사람들을 돌아보게 한다, 세상을 비껴간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자신이 만드는 것으로 중심에 가져간다는 목표로 만들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굉장히 감명받았습니다. 뭔가 되게 반골정신을 느끼고.역시 저희들도 쓰리피스로, 쓰리피스에서의 새로운 가능성 등을 추구하고 있고, 밴드 사운드로 표현하는 방법이나 기법이라는 것을 쓰리피스로 할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세상을 길들이는 방법이나 돌아보게 하는 방법에서의 어드바이스 같은 게 있습니까?

호시노 겐: 길들이는 방법... 그다지 아는 척은 할 수 없다고 해야 하나. 뭐랄까, 옛날부터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든지,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부정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거, 해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라든가 '전달되지 않는 거 아니야?'라든가. 하지만, 그것을 나는 하고 싶고. '이건 무조건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세상 사람 중에,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같은 말을 하는 사람 뿐이었어. 그런 말들을 들으며 '재미없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뭔가, 역시 그렇게 말했던 그 녀석들을 돌아보게 하고 싶다고나 할까. 일종의 소외고독을 당하는 일이 많아서 상처를 아주 많이 받았거든. 그래도, 뭔가 동료에 들어가고 싶으니까 노력해서 무리를 했는데도... 거기서 '이제 자신의 세계를 만들 수 밖에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누군가의 반열에 오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내 장소를 만들고. 거기 오고 싶은 사람은 오든지 이런 식으로 하자"고.

SAKEROCK에 관해서는 인스트루멘탈 밴드로. 당시 그 SAKEROCK을 시작하고 비교적 바로 콜라보 붐이 대단했거든. 인스트 밴드라고 하면 무조건 보컬리스트를 불러왔는데, '어, 그거 인스트 밴드 아니잖아?' 이런 생각이 들었고, 근데 그런것들 뿐이었어. 그래서 그게 너무 싫어서. 뭔가, 인스트 밴드인 채로, 모두에게 물어보거나, 봐 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하는 것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서 옛날부터 굉장히 유행하고 있는 것 같은, 모두가 주목하고 있고, 모두가 하는 것을 하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애들이 무조건 다 이쪽을 안 보는 데서 해. 그런 것이 버릇이 되어 있다고나 할까. 물론, "그냥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라는 것은 뼈저리게 알고 있으니까. 그러면 이제 여러 군데로 직접 가서 눈길을 휙 가져오는, 직접 여러 사람을 찾아갔지. (중략) 그러면 역시 돌아보는 사람이 좀 나오더라고. (중략) 그래서 뭔가, 애초에 지금도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금방 통용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호시노 겐: 일을 하기 전부터 남들이 제게 원하는 이미지가 있었고, 전 그게 싫어서, 그걸 깨는 일의 반복이 제 인생인 것 같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들은 말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은 날 이렇게 보는구나, 이런 역할을 해야하는구나.' 그건 가족에서도 학교에서도 일어날 수 있죠. 그런 말들을 들음으로써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규칙 안에서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기도 했었죠.

사람들은 변화를 참 싫어하는 것 같아요. 봐 왔던 사람의 분위기가 달라지면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거든요. 이미지라는 건 더 깨도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라이트하우스 1화 중 (2023)
음, 저는 (중략) 저쪽은 아마 아무 생각도 크게 안하고 있을 텐데, 저는 뭔가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 어쩔 수가 없어서, 결국 혼자가 된다는 느낌이었어요.

근데 그게 이제 학교를 졸업해도 계속 이어지는 거죠. 제 경우는 어느 장소를 가도 익숙해지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 예를 들면 밴드맨 동네라든가 연극 동네라든가, 어디를 가도 뭔가 역시 익숙해지지 않고, 익숙해지지 않고... 물론 각자 노력들은 하죠. 근데 역시 뭔가 (나랑은) 다르다고 해야 되나? '어디를 가도 역시 다르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서 포기하고, '그럼 이제 됐구나.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제 세계로) 다가와주게 되었어요. 그걸 하는데에 세월이 너무 오래 걸려서... (중략)

'자신의 페이스로'라는 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굉장히 중요해지잖아요?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든가, 자신의 페이스를 잊지 않는다던가. 사람들이 있을 때 그 사람에게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것을 학창시절에 연습해 둔다는 건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반 편성이라는게, 희망해서 모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우연히 모인 사람들인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런 거죠, 마음이 전혀 안 맞을 가능성이 엄청 있는 거죠. 지금은 마음이 맞지 않아서 '평범하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학창시절 당시에는 좀처럼 생각할 수 없잖아요. 역시 거기가 세상의 전부이기도 하니까. (중략) 뭐, 연예계라던가, 사회성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모여있으니까요. 기본적으로는. #
호시노 겐: (테드 래소 드라마 대사 중에) "성공에 승패는 관계없다. 선수가 플레이할 때도, 하지 않았을 때도 최고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게 성공이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뭔가 쾅! 하고 충격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사람들과 소통할 때, 고등학생 때부터 계속 음악이나 연극 같은 걸로 소통을 해오고 있어서. 기타 카피해서 "이거 어때?" 이런 식으로 묻고, "좋네" 라고 말하면 기쁜,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었어요.

이제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활동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일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대부분입니다. 그 안에서 저의 작품이라든가, 출연한 것들에서의 성취감이라든가, 평판이라든가, 저의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었는지 같은 것들을 항상 동기부여하며 살아왔어서... 뭔가 그것이 하나 막히면, 뭔가 다 끝난 느낌이 들었어요. 다 셔터가 쾅! 하고 떨어진 것 같은. (중략)

하지만, 저의 최근 몇 년의 테마가 "그런 것은 관계없이,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하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게 '행복한 마음으로 있고 싶다' 이런 건데요, (중략) 결과라든지, 일의 대단함이라든지,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떻게 행복한가? 지금 최고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가?'같은 그런 것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는 드라마였습니다.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2023)

3.2. 긍정과 끊임없는 자기 세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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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어떤 수수께끼 같은 갈망을 가지고 염세주의를 그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사유하면서, 염세주의를 마침내 금세기에 쇼펜하우어 철학의 형태로 나타났던, 반쯤은 그리스도교적이고 반쯤은 독일적인 편협함과 순진함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오랜 동안 노력해왔던 사람, 아시아적이거나 초아시아적인 눈으로 온갖 사고방식들 중에서도 가장 세계 부정적인 사고방식의 정체를 ㅡ 부처쇼펜하우어처럼 도덕적인 속박이나 망상에 사로잡혀서가 아니라 선악의 저편에서 ㅡ 꿰뚫어보고 그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내려다본 사람은 아마도 바로 이로 말미암아 전혀 의도치 않게 정반대의 이상에 눈을 뜨게 되었을 것이다.[9]

그러한 이상이란 가장 대담하고 생명력이 넘치며 극한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긍정하는 인간의 이상이다. 그러한 인간은 과거에 존재했고 현재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만족하고 그것과 화해하는 법을 배웠을 뿐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과거에 존재했고 지금도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그대로 다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러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인생의 연극과 구경거리 전체 뿐 아니라 바로 이러한 구경거리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또한 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자기 자신을 향해서 그야말로 영원에 걸쳐서 물릴 줄 모르고 '처음부터 다시'라고 부르짖는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거듭해서 자기 자신을 필요로 하고 필요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10] 뭐라고? 이것이야말로 악순환의 신[11]이 아닌가?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56절.
밝고 신나고 건강한 음악 및 유쾌하고 긍정적인 이미지으로 유명해졌다보니 오해하기 쉽지만, 그는 염세주의자적 기질이 있으며, 인간 혐오인간 불신인류애적인 부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는 원래부터 밝은 상태나 건강한 음악이 아니라, 한없이 어두웠고, 분노, 절망, 증오, 슬픔, 공포, 소외, 부조리, 환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잘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회를 힘들고 거지같은 곳으로 보는 동시에 자기 자신 또한 비관적으로 보며, 세상에 대한 증오분노 및 관심이 존재하고, 산다는 것 자체를 고통고뇌로 얼룩진 짐승의 길을 강제로 걸어야하는 행위로 보며, 자기 세계도 그다지 많이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죽고 말거냐'는 반골기질도 강한 편이다. 또한 그가 가끔씩 내뱉는 독설은 다른 대상을 추켜올리는 것이 아니며 비하하기 위한 것도 아닌, 자기자신의 기준에 완전히 어긋난다던가 대다수가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많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게 많지만.

그러한 그의 모습이 그가 가진 이미지와 괴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염세주의를 기반으로 한 그의 분노슬픔고뇌를 사람들에게 유해하지 않게 전달되도록 하는 따뜻한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었으며, 어둠을 기반으로 생긴 한없이 밝아지는 미소웃음을 품거나, 세간에 있어 행복하게 보이거나 긍정적이고 무해하게 들리는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염세주의자적 기질과 어두움은, 그의 행동력 및 그가 지향하는 것과 맞물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기 세계의 끊임없는 변화와 여러 재시작들을 가져오기도 했다.
흔들흔들 흔들거리는 땅 위의 집
언젠가는 무너져 내리고 자 다시 시작해
지금까지의 여러가지는 잊어도 좋아

아아 정말
우리들의 땅은 언제나 흔들리고 있어
기우뚱기우뚱 마음의 상가를 짓자

뭐든지 언젠가는 질려서 안녕
웃으며 다시 태어난 척하지
앞으로의 여러 가지는 바보로 염색하자

아아 정말
바보 같은 땅은 앞으로도 질척여
시시한 마음에 집을 짓자

반복적으로 재건축
아스팔트는 필요없어 아아
바보같은 노래 부르면서
함께 흔들리자구

- ばかのうた(바보의 노래)(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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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그의 동기와 희망과 절망

"이름이 차라투스트라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도 변했군. 그대는 자신의 타고 남은 재를 산으로 날랐었지. 오늘은 그대의 불덩이를 골짜기 아래로 날으려고 하는가? (중략) 차라투스트라가 어린아이가 되었구나. 차라투스트라는 잠에서 깨어난 자다. 이제 잠든 사람들에게로 가서 뭘 하자는 건가. 바닷속에 있는 듯 고독 속에서 살았고, 그 바다가 그대를 품어주었지. 그런데도 그대는 에 오르려 하는가.[12] 또 다시 그대 자신의 몸을 질질 끌고 다니려는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인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오."

그러자 성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숲속으로, 그리고 광야로 갔던 것이지? 사람들을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제 나는 을 사랑하네. 인간에 대한 사랑은 나를 파멸시킬테지."[13]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사랑에 대해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소. 다만 인간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오."[14]

성자가 말했다.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말게. 차라리 그들로부터 얼마를 빼앗아 그것을 그들과 나누어 가지도록 하게. 그래야 인간에게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네. 그들로 하여금 애걸하도록 하게."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적선을 베풀고 싶지는 않소, 나는 그렇게 할 만큼 구차하지는 않다오."

성자는 빈정대듯 웃고는 이렇게 말했다. "눈여겨 살펴보게. 저들이 그대의 보물을 받아들일지를! 그들은 은자들을 불신하며 우리가 선물을 주려고 왔다는 것을 믿지 않네. (중략) 그러니 사람들에게 가지 말고 숲속에 머물도록 하라! 차라리 짐승들에게나 갈 노릇이다! 왜 그대는 나처럼 곰들 속의 한 마리 곰, 새들 속의 한 마리 새로 머물고자 하지 않는가?"

"그러면 성자께서 숲속에서 하는 일은 무엇이지?" 차라투스트라가 물었다.

성자가 대답했다. "노래를 짓고 노래를 부르지. 그리고 노래를 지으면서 웃고 울며 중얼거리지. 나 이렇게 신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지" (중략)

홀로 남게 되자 차라투스트라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 늙은 성자는 자신의 숲 속에 파묻혀 신이 죽었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구나."
- 프리드리히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호시노 겐: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로 추구하고, 따지고, 그것을 모두에게 소개하거나 실천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즐거워하거나, 일본이라는 곳을 보는 사람들이 (일본을) 모두가 신나게 놀거나, 즐겁다고 생각하거나, 마음이 좀 바뀌기도 하는 것. 그거는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분노조차도 재미있는 것으로 바꾸고,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다 기분 나쁠 수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재미있었다는 생각으로 극장을 나서게 만들거나,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끄기도 하는,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너무 너무 멋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언젠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은 굉장히 밝은 사람이 아니지만, 재미있는 것들을 전달해도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런 제가 받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어떤 형태로든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죽어도, 그것을 모두가 이야기하거나, 이어나가거나, 자신의 필터를 통해 뭔가 이야기를 하거나 표현함으로써, 유전자는 연결되어 갑니다. 그런 유전자를 저도 받고 있기 때문에, 뭔가 저의 표현이라는 형태로, 제대로 저의 필터를 통한 형태로, 그 유전자를 연결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후략)
이타미 주조상 수상 연설 일부 #
호시노 겐: 나는 어긋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제가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의해서, 가운데로 와 준다고나 할까. 예전에는 항상 저와 타인 사이에 굉장히 깊은 강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표현함으로써 다리가 생겨요. 그런 경험을 해오면서 일부 사람들이 좋아했으면 좋겠다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를 되도록 여러 사람에게 널리 전달함으로서 세상 자체가 흔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GQ 재팬 | 호시노 겐의 절망과 희망
호시노가 어떻게 역풍 속을 걸어올 수 있었을까. 그는 숙고한 후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언제나 저의 '어쩔 수 없는 생각'을 내세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호시노 겐: 남들이 뭐라고 하면 그때마다 흔들리는데 하지 말라고 해도 그냥 해요. 바야흐로 인기 프로그램의 올 나이트 닛폰도, 제가 레귤러가 되었을 당시는 '가혹한 환경이니까 틀림없이 손해다. 1년만 있으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래도 나는 라디오를 좋아하니까'라는 생각만으로 시작했어요. 결국 저는 남보다 제 자신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네요. 지금은 다양한 직함이 따라왔지만, 이것도 제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져본 결과입니다. 제 안에서 채널을 바꾸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내 자신을 잘 조작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창작 충동' 등의 말로 어울리지 않는 곳에 인간미가 엿보이지만, 본인은 "나도 나 스스로 나를 모를 뿐"이라며 애수를 띤 표정으로 웃는다. (중략)

호시노 겐: 제 자신도 모르게 일의 도파민에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직업은 전적으로 도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당첨될지 모르는 가운데 자신의 남은 인생을 걸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이익을 얻지 않으면 안 되는 이상 도박 요소는 뗄 수 없는 것입니다만, 좀 더 자기 자신의 '아트'를 중심에 두지 않으면, 크리에이티브한 기분이 고갈되어 피폐해져 버려요.

분야나 접근방식에 변화가 계속 생겨나고 있는 것 뿐이지, '내가 가고 싶은 장소에 가기 위해서 움직인다'고 하는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호시노. "제가 차분하게 살 수 있는 곳이 계속 없어서 그냥 그걸 만들고 싶은 마음에 지금까지 찾아왔습니다"라고 속마음을 밝힌다. (중략)

호시노 겐: 제가 생각하는 '스탠다드'가 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인가, 라고 하는 것에 대한 반발, 그리고, 그것을 알리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저에게 있어서의 창작입니다. 물론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중심에 있으면서, 원초의 목적은 그 부분. 저의 표현이 세상에 전해지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끝없이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단순한 의문이 떠올랐다. '절망하지 않는 것인가?'고. 피폐해지는 괴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인데, 몇 번이나 '닿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다'고 상처받아도 표현을 통한 타인의 이해를 포기하지 않는가. 왜 계속 버둥거리느냐고 묻자, 약간의 침묵 끝에 "스스로도 안 되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왠지 모르게 희망을 가져 버립니다"라고 입을 열었다.

호시노 겐: 절망만큼은 아닐 수도 있지만 저는 뭔가 표현을 하고 나면 항상 우울하고 또 전달이 안 됐다며 진절머리가 나요.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음에는 이것을 던지면 바뀔지도 모른다」 「아직 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제가 있어요. 빨리 포기하고 「아는 사람에게만 전하면 된다」라고 전환하면 되는데, 어째서인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제가 어른이 되지 않았다고도 느낍니다. (중략)

호시노 겐: 저는 표현에 있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볼 때 매우 기쁩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굉장한 것을 받으면 '좋아한다! 재미있다!'는 마음이 들뜨고, '내 안에 없지만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설렙니다. (중략) 저는 '알 수 없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례가 없거나 곤란했다고 해도 그쪽을 목표로 하고 싶네요.

가장 최근에는, (중략) "사회의 기준에 맞춘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있는 '알 수 없는 것'을 소중히 하는 것이 아트다"라고 하는 생각에서 '나는 틀리지 않았다'라고, '살아서 다행이다'라고 환희를 느꼈다고 한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사랑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려는 자기모순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한 사람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라고 말하지만, 그 혼돈이야말로 호시노 겐의 독창성일 것이다.

비관과 낙관, 절망과 희망. 둘 다 들고, 그는 나아간다.

3.4. 음악의 전달 방식과 전달의 중요성

비제의 음악은 가볍고 부드럽고 정중하게 다가온다. (중략) 비제의 음악은 심술궂고 세련되며 숙명적이다. (중략) 이 음악은 풍부하다. 이 음악은 간결하다. 이 음악은 건축하고 조직함으로서 완성된다. (중략) 마침내 이 음악은 청자를 지성인으로 간주하고, 심지어는 음악가로 간주한다. (중략)

그리고 또 한 번 말하겠다. 이 비제의 음악이 나를 설득하면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된다. 또한 더 나은 악사가 되기도 하고 더 나은 청중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듣는 것보다 더 잘 듣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나는 게다가 내 귀를 이 음악의 아래에 갖다 댄다. 이 음악의 근원을 듣는다. 그러면 나는 이 음악의 탄생 과정을 체험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나는 어떤 모험에 수반되는 위험에 몸을 떤다. 나는 비제 자신의 의도와는 아무 상관없는 우연한 행운들에 기뻐한다. - 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사실 나는 기본적으로 그런 것들에 관해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그런 것들에 관해 얼마만큼 생각하는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내 머릿속에는 그 사이에도 전혀 다른 생각들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음악이 정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생각에 날개를 달아준다는 것을? 음악가가 되면 될수록, 더욱 더 철학자가 된다는 것을?
- 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경우
ばかのうた(바보의 노래)는 최악의 상황 및 정신 상태에서 생긴 곡이다. 처음에는 당시의 분노를 더 터뜨린 생생한 가사였지만,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고쳐 썼더니 '좋은 노래네'라고 말해 주었다. 곡 만들기에 대한 생각을 바꿔준 한 곡.
일하는 남자 (2013)
나는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음악에 그런 힘은 없다. 나라를 바꾸는 것은 언제든지 정치이고, 정치를 바꾸는 것은 언제든지 돈의 힘이다. 거기에 음악은 개입할 수 없고, 된다 해도 X JAPAN의 악곡을 이용해 '파격'이라는 이미지를 얻은 고이즈미 준이치로처럼 그냥 이용될 뿐이다.

하지만 음악으로 단 한 사람의 인간은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 한 사람의 마음을 지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음악은 세상의 중심에 서는 주역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곁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노래는 응원밖에 할 수 없다. 힘든 날들을 바꾸거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당신 자신, 단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일하는 남자 (2013)
제가 대표이사로 있는 소속사인 KAKUBARHYTHM에서는 겐군의 음악 전반의 일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에 한정된 이야기를 하자면, (중략) 정말 잇달아 아이디어도 나오고, 작품을 재미있게 하는 것, 작품으로서 얼마나 좋게 할 것인가 하는 데에 타협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작품이 좋아진다면, 토가 나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딪힙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쁘게 받을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전해져 가는 것의 중요성도 이해하고 있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POPEYE 2013년 3월호
나 또한 그에게 분노 에피소드를 두 배 분량으로 되돌려 줄 만큼 업무상 여러 불합리한 문제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두 사람에게는 암묵의 규칙이 있다. '심각한 분노 에피소드일수록 웃기고 재미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노를 토해 내는 행위란 그걸 받아들이는 상대의 마음을 크게 동요시킬 만큼 부정적인 에너지로 넘쳐 난다. 하지만 가만히 담아 두기만 하면 마음이 점점 불안정해지고 몸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되도록 즐겁고 재미있게 토해 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생명의 차창에서 (2014)

4. 내부적인 세계관 및 세계상

4.1. '의미'의 초월과 '현실'의 색채

(문단 관련 참고 및 인용 글: 왜 호시노 겐은 「의미」를 넘어서려고 하는가?)
호시노 겐이 소위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을 법한 부류의 아티스트냐?'는 질문을 받으면 답은 바로 나오지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표현하는 것들은 때때로 난해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를 자랑해 지리멸렬한 표현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만드는 작품에는 언제나 뚜렷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만인에게 인기를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알기 쉬운 건 아니다. 이제부터 그의 악곡 세계관에 기반된 기초적인 바탕 중 하나를 읽어내려고 한다.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나는 신을 찾고 있다! 나는 신을 찾고 있다!'라고 외쳤다는 광인. 그 광인이 시장에 등장했을 때 신을 믿지않는 사람들이 모여있었기에 그 광인은 웃음을 자아냈다. 광인은 비웃는 사람들에게 달려가 말했다.

"신은 어디에 있지?" 그는 부르짖었다; "내가 가르쳐주리라. 우리가 신을 죽여버렸다—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는 신을 죽인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하였단 말인가? (중략) 우리가 이 지구를 해로부터 풀어주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15] 그것은 이제 어디로 움직이는가? 우리는 어디로 움직이는가? 모든 항성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가?[16] 우리는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아직도 위쪽이 있고 아래쪽이 있는가?

우리는 끝없는 허무 속에서 헤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17] 빈 공간의 흐름을 느끼지도 못하진 않는가? 계속해서 추워지지는 않는가? 밤이 우리를 점점 궁지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가?[18] 우리는 아침에도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19] 아직도 사토장이[20]들이 신을 땅에 묻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아직도 신이 부패해 가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 또한 부패한다.[21] 신은 죽었다[22]. 신은 죽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가장 신성한, 가장 힘 있는 존재가 우리들의 칼에 죽었다. 누가 이 피를 닦아내지? 무슨 물로 이 피를 씻어내지?"

광인은 말을 멈추고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조용히 광인을 쳐다보았다. 광인은 등불을 바닥에 던졌다. 산산조각이 나고 불은 꺼졌다.

'너무도 이른 시간에 왔구나.' 광인은 속으로 말했다.

'아직 내 시간은 오지 않았어. 이 사실이 아직 사람들의 귀에 닿지 않았어. 천둥과 번개는 시간이 필요해. 별빛이 사람들에게 닿기까지 시간이 필요해. 이 사실이 그들에게는 아직 가장 먼 보다도 멀리 떨어져 있어... 그들 자신이 저지른 일인데도 말이야!'
-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우리는 신을 죽인 후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진리, 즉 삶의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신은 이미 죽었다. 신이 된 우리는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우리는 풀 수 없다. 우리는 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들 외친다. 하지만 우리가 죽인 신이 만들었던 영원불멸의 시스템은 행복과 슬픔, 분노, 공포, 모든 감정 느낌을 허무하게 만든다.

생명체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힘에의 의지도 함께 발견했다. 심지어 누군가를 모시고 있는 자의 의지에서조차 나는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호시노 겐의 악곡이나 글에는 자주 반복되는 모티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의미의 부정'이다.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하는 거야 / '의미 없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래도 노래하는 거야 / 이유 같은 건 필요 없어 / 조금이라도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 일상은 움직이고 지금이 태어나

- 日常(일상)(2011) -
꿈 밖으로 데려가줘 / 그저 웃는 얼굴을 보여줘 / 이 세상은 빛을 비추고 있을 뿐

(중략)

나에게만 보이는 것과 / 다수가 보는 세계 중 / 어느 쪽이 거짓인지 선택하면 돼 //
너는 어느 쪽을 갈래? / 나는 한가운데를 갈래 //

의미 밖으로 데려가줘 / 그 알 수 없음을 인정해줘 / 이 세상은 빛을 비추는 거울이야

- 夢の外へ(꿈 밖으로)(2012) -
무엇도 알아듣지 못하는 너에게 나는 / 어떤 것을 노래할 수 있을까 / 의미를 넘어서

- 知らない(모르겠어)(2012) -
'사랑하는 자를 잃은 삶에 의미가 있는가'가 이 영화(싱글맨)의 카피지만,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내 안에서 '삶에는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커졌다.

- 『일하는 남자
움직여라 바늘을 돌려라 / 다음의 너에게 이어지게 / 시간은 우릴 태우고 / 의미도 없이 계속되네

- 時よ(시간이여)(2015) -
창작물들 속에서,「의미」는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서 말해지고 있다. 다만, '너의 인생에 의미는 없다'라고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미만을 요구하지 않는 것, 의미에 구애받지 않는 것, 만일 의미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성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꿈이나 허구 속에 있는, 그 소중한 것을 현실로 데려오자'는 주제를 담은 곡인 꿈 밖으로(2012)에서 그려지듯이, '의미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건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인정하기도 한다. 또한 시간이여(2015)에서 그려지듯이, 담담하게 시간이 흘러가고 진행되어 가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우리는 어지럽게 변해가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현실은 부조리하고 이해가 불가능하다.

호시노 겐은 2013년에 지주막하출혈이 발병해, 그 후 치료를 위해 활동을 쉬었다. 한 때 생명의 위기와 죽음의 직전까지 갔지만, 이후 어느정도 회복돼 병원 투병 생활을 하게 됐다. 이 사이, 호시노는 격통과 마주하면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같은 시기 제작이 진행되던 지옥이 뭐가 나빠(2013)에는 당시 호시노의 심정을 전하는 듯한 구절이 담겨 있다. '병실에서의 / 밤이 마음을 / 슬슬 갉아먹어 / 울부짖는 옆 방이 / 시작 신호야' 등은 그 전형이다. 이 곡에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구절도 있다.
- 수많은 / 수많은 / 별 같은 / 구름 같은 // 「어디까지든」이 / 어느샌가 / 시끄럽게 / 무너지듯이 // 거짓으로 된 세계가 / 눈 앞을 물들이며 펼쳐져
여기에도 그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절절한 절망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도 올 수 있는 「의미」의 붕괴의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양하게 의미한다. 자신이 하는 일, 연애, 학업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그것들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종종 그것을 잃어버리는데에는 아무런 정당한 이유도 없다. 그러한 자신의 인생의 「의미」가 붕괴할 때,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좋은가. 좌절로 인한 의미 상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회생해야 할까. 지옥이 뭐가 나빠(2013)와 도라에몽(2018)은 그 물음에 상당히 쉬운 말로 답하고 있다.
거짓인 게 뭐가 나빠 / 눈 앞을 물들이며 펼쳐져 / 그저 지옥을 나아가는 자만이 / 슬픈 기억을 이겨내

- 지옥이 뭐가 나빠(2013) -
지옥이란, 아무 의미도 없이, 단지 거기에 있는 것뿐인 피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세상이다. 따라서, 「지옥을 나아가는 자」란,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 현실로부터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여기로 와 / 같이 모험하자 / 아무것도 아니지만 세상을 구하자 /
언젠가 시간이 흐르고 나면 / 반드시 도착할테니까 /

- 도라에몽(2018) -
우리에게는 삶의 과정에서 모색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의미를 찾으면서 살고 있는 측면이 있다. 자신의 삶에 확고한 의미를 추구하는 한, 그 의미가 상실될 때 삶 자체마저 붕괴되고 슬픈 기억에 얽매이게 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경험이 쌓이게 되면, "아, 나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고, 누가 될 수도 없구나."라는 어른의 자세를 취해 간다.

그러한 어른의 자세를 납득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아니, 진심이 아닐 뿐" , "애초에 진심으로 임할 만한 것이 없어",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가치따윈 없어"라고 어른의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는 사람도 있다. "진짜 나는 이런 게 아니야. 내가 '진짜'였다면 이렇게 되었을텐데" 같은 원한에 인생을 지배당하고 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지옥이 뭐가 나빠(2013)가 호소하는 건, '그런 의미 등은 처음부터 거짓(가짜)일 뿐이다, 그리고 거짓(가짜)이어도 별로 상관없다'이다. 그것은, '지금의 자신이 믿는 의미가 유일 절대는 아니다, 그것은 별개일 수도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을 받아들이는 자는 그 지옥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의미에 얽매이지 않는 삶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삶의 방식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도라에몽(2018)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의 존재와 가치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같이 모험하자고 북돋고 있다. 물론 미래는 아무도 모르기에,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언젠가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세상에 있는 편리한 것, 아름다운 것, 당연한 것들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모험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탄생시킨 생명이 있다.

메가히트를 치며 사회현상을 일으킨 恋(사랑)(2016)에서도 의미의 부정과 초월은 여지 없이 드러난다.
의미 같은 건 / 없어 매일의 생활이 있을 뿐 / 그저 배가 고파지면 / 네 곁으로 돌아가는 거야

(중략)

사랑을 했어 너의 / 마주 건 손가락 / 두 뺨의 향기 / 「부부」를 넘어서 가자
호시노 겐에게 있어 사랑은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도 아니고, 하늘이 맺어준 운명의 붉은 실도 아니다. '소중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일상의 생활'을 분리하는 걸 거부하고 있다. (상술한) 이 가사는 '생활이라고 하는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나날이 반복되어 간다'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활'이야말로 '사랑'이 발견되는 장소라는 것, 그러한 형태로 '생활'의 정서적 풍요로움을 되찾는 것이 호시노의 메시지인 것이다.

비슷한 호시노의 사상은 2017년에 발표된 「Family Song」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만남에 의미는 없지만 / 피의 색과 모습도 다르지만 / 언제까지나 곁에 있는 것을 / 할 수 있다면 좋을려나
여기서는 두 사람의 만남의 「의미」가 부정된다. 그것은 두 사람의 만남이 우연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남의 우연성은 언제까지나 곁에 있고 싶다는 행복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또 반복되는 '오직 행복이 / 하루라도 더 / 곁에 있기를'이라는 가사에도 호시노에게 사랑이 함께 사는 것임을 보여준다. '하루라도 더' 더불어 사는 날들이 존재하는 것, 비록 그 날들이 숱한 우연과 재난에 직면하고, 무의미하고 불합리한 사건들로 넘쳐나더라도 그 현실을 '당신'과 공유하는 것이 그가 표현하는 사랑의 형태인 것이다. (중략)

호시노의 악곡을 전반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은, '현실로부터 완전히 연결되지 않고 떨어져 존재하면서, 동시에 현실을 정당화하는 의미에 완전히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이 놓여져 있는 현실을 소중히 한다' 라고 하는 태도다. 그것은 동시에 '현실'이, 현실을 넘어선 의미에 의해 비로소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현실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색채를 지닌 것으로 다시 바라보자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다만, 그것은 '현실이 우연적인 것이며, 불합리하고 부조리하고 담담하게 진행되어 간다'라고 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현실은 자신이 그때까지 믿었던 삶의 의미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붕괴에 직면해도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키고, '의미의 붕괴'로부터 재생하는 것. 그러한 생활방식을 이루어가는 게, 호시노의 세계관 주변에서 요동치고 있다.
지금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이 노래를 바칠래 / 고개를 떨구었던 당신과 발꿈치를 차며 과거에서부터 날아오를래 / 꿈에서 깨어나면 너를 데리고 미래를 지금 춤출 거야 / 주말의 길목에서 아침까지 얘기를 나누자

지금을 춤추는 모두에게 이 노래를 바칠래 / 너만의 춤을 세상이란 플로어에 나가 외쳐봐 / 꿈에서 깨어나면 너를 데리고 미래를 지금 춤출 거야 / 주말의 길목에서 아침까지 밤을 품고서

- Week End(2015) -
죽지마, 감각을 깨워 / 나아가, 달려가 // 바람에 살갗이 섞여 녹아들어 / 경계는 사라지지 / 바람에 깃발이 춤추며 흔들려 / 「1」을 넘어선 곳 / 당신은 틀림없이 여기에 있어 / 그리고 이어지지 //

- 生命体(생명체)(2023) -
호시노 겐이 언급하기를, 이 1은 1등을 뜻하기도 하고, '나 자신'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즉, '1등'이라는 의미의 초월과, '나 자신'이라는 의미의 초월인 무아를 동시에 말하고 있다. 이전가사의 '바람에 살갗이 섞여 녹아들어 / 경계는 사라지지'는 이 해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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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집단과 고독과 관계성과 소통

한 사람의 집합체로 집단이나 조직은 형성된다. 아무리 결속력이 강한 수단이라도 얼굴도 목소리도 사고방식도 모두 다르다. 설사 북한 퍼레이드처럼 아무리 짜여져 보여도 하나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많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녀도 하나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둘이다.

집단 속에 오래 있으면 자연스레 '일치단결해야 한다'라고 느낀다. 그 집단이 진취적이면 진취적일 수록 연대감을 중시하며 '전원이 한방향을 향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기운다. 전원을 통솔하는 리더가 생기고 인원수가 늘어나면 대인원을 관리하는 규칙이 생기고 그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틀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삐져 나오면 따돌림을 당하고, 거기서 쫓겨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서둘러 전체의 틀속에 몸을 던져 집단과 함께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것이 일본 사회에서 생겨난 집단의 기본적인 '화목(和)'의 기본 구조이다.

그러나 역시 그건 답답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모두가 제각각이라고 해도 뭐가 어떤가. (중략)

정말 우수한 집단이라는 것은 아마 '하나로 있는 것을 지속시킬 수 있는' 사람들보다 '모두가 다른 것을 생각하면서 지속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2009)
하뉴 유즈루: '化物(도깨비)'라는 악곡도 호시노 씨의 안에서 나오는 '도깨비'를 굉장히 느껴서... 호시노 씨가 가지고 계신 '어둠'은 얼마나 있나요?

호시노 겐: 태어나서 의식한 순간에 이미 거기에 있고. 학교 같은 데서 소외되고,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내가 이것이 '보통'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해도, 모두가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라서. 거기서 고독감을 계속 안고 자라난... 계속 끊이질 않는 느낌. 값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어둠은 계속 끝까지 내 곁에 같이 있지. (중략) 그것을 가지면서, 웃는 얼굴로 있다든가, 해방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든가. 그게 있으니까 인생은 재미있다고 생각해.
오겐상의 서브스크당
만남과 인연은 신기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내가 지금까지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 중에 단 한 명을 만나지 않는 것만으로, '지금의 나'는 금세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 그만큼 내 인생은 만남으로 구성돼 있었고, 그렇게 인연이 맺힘으로써 삶이 풍요로워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만남은 미래다. 너무 그런 것 같다. (2019)
생명의 차창에서 2
호시노 겐의 일인관
호시노 겐이 보고 있는 인간의 본연은 어쩔 수 없이 고독한 것이다. 그리고 호시노 겐의 곡은, '나'와 '당신'이 완전히 동일하게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나의 현실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고, 한 사람에게 하나의 세계가 있다.' 같은 것을 보고 있어도, 같은 말을 쓰고 있어도, 다른 사람과 자신이 완전히 같은 기분일 수는 없는 그런 한 사람의 세계다. '혼자 있는 편이 편하다'라든가 '사람은 혼자 살아야 한다'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중략)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지 / 비슷한 키와 목소리를 가졌지 / 알고 싶다고 생각하기에는 / 전부 다르다는 걸 아는 거야

- くせのうた(습관 노래)(2010) -
남들이 싫어하는 걸 좋아해도 괜찮아 / 남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해도 괜찮아 / 공감은 필요 없어 /

하나라도 정말 좋아하는 게 있다면 그것만으로 / 일상은 움직이고 네가 태어나 / 어두운 길이라도 나아가고 나아가 / 누군가 그곳에서 반드시 듣고 있을 거야 / 너의 웃음소리를 /

- 日常(일상)(2011) -
아무리 꽉 껴안아도 / 두 사람일 수밖에 없으니까 / 조금만이라도

- 肌(피부)(2017) -
집에서 춤을 추자 혼자서 춤을 추자 / 변하지 않을 고동을 터뜨리자 //
살아서 춤을 추자 우리들 계속 혼자라고 / 단념하고 나아가자 //
혼자서 노래하자 슬픔의 너머에서 / 모든 노래로 손을 잡자 //

- うちで踊ろう(집에서 춤추자)(2020) -
어릴 때의 기억, 오늘 밤 먹고 싶은 것 / 모든 게 달라 / 그런데 어째서 옆에 있고 싶은 걸까 / 타인에게만 있는 것

- 不思議(불가사의)(2021) -
그의 노래에서는 이러한 「혼자」인 것을, 가사 중의 '나'가 알고 있었다고 해도, 「혼자」인 타인과 공유하며 손을 잡고 소통하려고 하는 것[23]이 많다. 즉, 의사나 욕망을 넘어선 곳에 고독이 있는 것이다. (중략) 노골적인 진리가 아니라 진리와 작은 자신과의 갈등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혼자가 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원래 누구든 인간이라면 혼자이기에, 우리는 더욱 열렬히 손을 잡고 소통해야 한다.

- 『생명의 차창에서
호시노 겐의 일인관을 언급한 후에, 이 곡의 가사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야 / 그대로 뿔뿔이 있을뿐 //
세상은 하나가 될 수 없어 / 그대로 어딘가로 가자 //
마음이 맞는다고 눈속임 하고 / 겹쳐져 있었을뿐 //
진짜는 당신 / 나는 가짜 //

(중략)

내 안의 세계 당신의 세계 / 저 세계랑 이 세계 / 겹쳐진 순간부터 / 단 하나인 것이 / 있어 //

- ばらばら(뿔뿔이)(2005) -
「진짜」 「가짜」 「단 하나의 것」이라고 큰 표현이 이용되지만, 말이 생물로서 꿈틀거리고 있어, 하나의 의미로는 해석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그래도 본다면, 우선 이 '진짜 당신'은 1절과 2절 가사의 연결고리에서 겹쳤을 때의 '당신'으로 들린다. 즉 '나의 세계와 겹쳐진 당신의 세계'이다. 또, 「단 하나의 것」도 같은 현상을 가리키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렇다면, 「가짜의 나」란 도대체 무엇인가. 서로 겹쳤을 때의 「당신」이 진짜라면, 이 「가짜의 나」는 겹친다고 하는 현상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직전의 문맥의 「마음이 맞는다」라고 눈속임으로 믿고 있는 '나'는,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당신이 생각하는 나」. 즉, 자신이 마음대로 상상한 '남이 보는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자신이 품는 그 허상을 가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중략)

「나는 '나의 세계'를 살고 있다」가 호시노 겐의 세계관이지만, 동시에 「내가 생각하는 나」라고 하는 궁극적인 자아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사람의 수만큼 세계가 있다면, '나'도 상대하는 사람의 수만큼 존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야. 나는 당신 그 자체가 될 수 없고, 당신은 나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당신과 당신이 생각하는 나, 그 둘 다 존재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만이 나는 아니고,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만이 당신은 아니다.

이처럼 호시노 겐의 ばらばら(뿔뿔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존재의 근거를 공유하며 생존해 있는 관계성 자체를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고 있다. 호시노 겐의 음악은 恋(사랑)(2016)에서의 부부나, 不思議(불가사의)(2021)에서의 사랑 등, 둘 사이의 사건을 노래할 때 관계성을 나타내는 기존의 말과 거리를 두면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이러한 호시노 겐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견해'에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략)
그는 '원래 누구든 인간이라면 혼자이기에, 우리는 더욱 열렬히 손을 잡고 소통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데,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할 수도 있는 점은, 호시노 겐은 '고독을 느끼거나 혼자여선 안 된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엄청나게 고독했고, 혼자다. 이 세계에서 '타인'이 존재하고, 나 혼자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기에, 고독과 혼자는 자연적이고, 그다지 특별하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호시노 겐: '고독'은 사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거죠. #
소통으로 인한 관계형성이 목표는 아니고 삶의 의미도 전혀 아니다. 이 세계에서 '나의 세계'가 건강하게 존재하려면, 그리고 후술할 사랑이 존재하려면, 고독에 기반한 소통이 따라오는 것이다.
철이 들고 난 후에 문득 /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생각은 / 이 세상 누구든 / 두 사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

- (사랑)(2016) -
아, 우리는 / 언제까지나 잘못된 채로 / 세상을 바꾸며 전속력으로 나아가지 /

우스운 사랑을 맛보면서도 /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 언제나 쓸쓸하기 때문이야

- サピエンス(사피엔스)(2018) -

4.3. 출구가 없는 '지옥'에서의 창조와 사랑

위버멘쉬가 대지의 뜻이다. 그대들의 의지가 말하도록 하라. 위버멘쉬가 대지의 뜻이 되어야 한다고!

내 형제들이여, 그대들에게 간곡히 바라노니 대지에 충실하라.[24] 그대들에게 초지상적인 희망을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독을 섞는 자들이다.

저들은 삶을 경멸하는 자들이고 말라 죽어가는 자들이며 스스로 중독된 자들로, 대지는 저들에게 지쳐 있다. 이런 자들이니 저 하늘나라로 떠나가는 것을 좋아할지도!

(중략)

진정 인간은 더러운 강물이다. 더렵혀지지 않으면서 더러운 강물을 받아들이려면 인간은 먼저 바다이어야 한다.

보라, 나는 그대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위버멘쉬가 바로 그 바다다. 그대들의 커다란 경멸이 그 속에 가라앉을 수 있는 바다다.

(중략)

인간말종[25]은 '사랑이라는 게 뭔데? 창조라는 게 뭔데? 동경이라는 게 뭔데? [26]은 또 뭔데?'라고 묻고는 눈을 껌뻑거린다. 그러면 대지는 작아져 버린다. 그 대지 위에서는 모든 것을 작게 만드는 인간말종이 깡충거리게 되고. 이 종족은 벼룩 같아서 근절되지 않는다. 인간말종이 가장 오래 산다. '우리는 행복을 고안해냈다.' 인간말종들은 이렇게 말하고는 눈을 껌뻑거린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자는 경멸하기 때문에 창조하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한 것을 경멸할 줄 모르는 자가 사랑을 알겠는가!

나의 형제여, 그대의 사랑, 그대의 창조와 함께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나중에 가서 정의가 다리를 절며 그대를 뒤따라올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눈물과 함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나는 자기 자신을 넘어 창조하려고 파멸하는 자를 사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호시노 겐의 사상에 있어서 데뷔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관성이 있지만, 2013-14년 투병 생활을 통해 변화된 부분은 어디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죽음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는 새로운 절망의 발견일 것이다. 투병 생활 이전의 호시노는 세계에 절망하기는 해도 '사후 세계에 대해 절망'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27] 하지만 병원 침대에서 생사의 틈새를 떠돌던 경험을 통해 죽음에도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다. 병이라고 하는 비일상, 괴로움이나 죽음의 공포에 접하고, 일상이나 지금까지의 생활과는 거리가 다른 체험을 통해서 호시노는, 이 세계는 원래부터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되는 지옥이라고 말한다. 정말로 의미를 가지지 않고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출구가 없는' 이 세계.
소용없어 여긴 애초에 즐거운 지옥이야 / 태어났을 때부터 출구 따윈 없었어

(중략)

거짓으로 된 세계가 눈 앞을 물들이며 펼쳐져 / 그저 지옥을 나아가는 자만이 슬픈 기억을 이겨내 /
거짓으로 꾸며진 세계는 눈 앞을 물들이며 펼쳐져 / 움직일 수 없는 곳에서 너를 같은 지옥에서 기다릴게

- 지옥이 뭐가 나빠(2013) -
반짝반짝 시시덕거리는 이 지옥 속에서 / 어쩔 줄 모르는 몸을 서로 끌어안았어 / 갓난아기로 돌아가서

- 不思議(불가사의)(2021) -

호시노 겐은 이 세계는 원래부터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되는 지옥이고, 산다는 것을 '고통고뇌로 얼룩진 짐승의 길을 강제로 걷는 행위'로 보며, 절대적인 의미(진리)와 의지 없이 태어남과 모든 건 결국 사라짐을 반복하기 때문에, '출구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현실에 대한 허무주의만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호시노 겐: ('끝은 미래다'라는 가사는) '미래에는 끝밖에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 있기에 미래가 있다' 등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전혀 거짓말이 없어요. #
윗 문단에서 이야기했던, 의미(진리)로 일반화되지 않은 '현실 자체'의 가치를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며, 현실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색채를 지닌 것으로 다시 바라보자고 하고 자신이 바라보는 풍경(경치)를 늘려가는 동시에 현실과 완전히 연결되지는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는 원래부터 지옥인데, 현실을 어떻게 풍부한 색채로 바라보고 경치를 늘려가는 게 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해 그는 창조사랑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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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일상 속에는 무심한 일상밖에 없다. 멋진 건 없다. 재미를 찾으려면 노력과 근성이 필요하다. 잠자코 있어도 일상은 재미있어지지 않는다. 다시 바라보고, 마주하고, 사물을 확대하고 자신의 새로운 해석을 더해 일상을 다시 제작해 나가야 한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2009)
세상을 재미있게 하려면 세상을 재미있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묵묵히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되살아나는 변태』 (2014)
언제나 우리 세계를 다채롭게 수놓는 것은 개인의 취미와 애정이다.
생명의 차창에서』 (2017)
호시노는 그래도 지옥인 이 세계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면서 "0부터 하나를 창조하자"며, (사소한 것이라도) 색이 바래지 않는 놀이를 반복하자고 말한다. 니체가 제창하는 위버멘쉬를 지향하는 호소와 비슷하다.[28]
Let’s take something out of nothing / Out of the ordinary
Breaking rules to create our own way / Playing everyday
Let’s chase all the yellow magic / 'Til we count to a hundred / Running directly to you today / Playing over again/

무언가 만들어내 보자 비상식적인 제안 /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직접 / 딱 한 가지 만들어 내 보자 그래 Yellow magic / 색이 바래지 않는 즐거움을 계속해서

나는 다시 태어났어 / 몇 번이고의 재시작은 / 다시 한 번 따분한 이 세상에서 놀기 위해서야

- 創造(창조)(2021) -
여기서 '0부터 하나를 창조하자'의 말을 잘못 받아들이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데, 호시노 겐은 창작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활동'이라고 전혀 보지 않았다.
생명은 계속 돼 / 나날의 게임은 계속 돼 / 네가 불태우는 마음은 / 다음의 무언가를 비출거야 / 생명은 계속 돼 / 나날의 게임은 계속 돼 / 발밑의 지평선 너머로 /

사라진 순간부터 사라지지 않아 / 이 힘은 아무도 방해할 수 없었지 / 태어나기 전의 추억이 / 이 마음을 항상 차올리고 있어 /

- Continues(2016) -
오히려, 창작은 본인이 영향을 받은 것들이 본인만의 개성 및 필터를 통과시켜 새롭게 나오는 활동이고, 그것이 시대와 세대를 이으며 지속되고 계속되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이 '0부터 하나를 창조하자'는 의미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남이 정한 사회의 가치에 완전히 지배당하지말고, 고독고통허무주의적인 관념에서부터 시작해, 끝없이 자기를 극복하고 넘으면서 '직접' 행하는 창조의 개념이다. 그렇지 않으면, 힘들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부조리한 지옥 속에서 결국 피폐해지고 붕괴되고 지배당하며 '나'가 '없어지고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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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개념 또한 지옥인 이 세계에서 현실의 풍부한 색채를 바라보게 하고,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사랑과 관련된 호시노 겐의 세계상(가치관)은,
고독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자연적으로 그곳에 끊임없이 있는 것이며, 서로의 만남은 필연이 아닌 우연이고[29], '나'와 '당신'이 완전히 동일하게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운명의 붉은 실을 통한 아름답고 운명적인 것이 아니고, 항상 곁에 있지만 언젠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라 기억해내야 하며, 에로스(사랑)의 옆에는 타나토스(죽음)가 존재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당신'의 곁에 있고 싶은 걸까, 어떻게 사랑은 현실의 풍부함을 알려줄 수 있을까. (그의 세계 속에서는) 사랑과 두 사람에 관계에 있어 본질로도 볼 수 있으며 존재하지만 인식을 통해 개념으로 만들 수 없는, '타인에게만 있는 그 알 수 없는 것'(타인만의 불가사의)이 있다. 이것은 본인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호시노 겐: 사귀고 있는 사람에게 "어디가 좋아?" 같은 질문을 받게 되면 '이게 좋아서 좋다'라고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그래서 생각해보면 엄청 신경이 쓰이고 눈치채고 보니 이미 좋아하게 되어 있어서 '뭔가 굉장히 신기한 감정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느낌으로 노래를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不思議(불가사의) 라는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타인에게만 있는 그 알 수 없는 것'은, 생활소통과 삶에서 드러난다. 그는, '소중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일상의 생활'을 분리하는 걸 거부하며, '생활'이야말로 '사랑'이 발견되는 장소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생활을 무미건조한 것이 아닌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것으로 되찾자고 한다. 그리고, 어떠한 사랑으로 인해 그 사람들의 자기 이 충실하다면, 그 사랑은 관습적이고 일반적인 '사랑'과 전혀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실의 숱한 우연과 재난에 직면하고, 무의미하고 불합리한 사건들이 넘쳐나더라도 그 현실을 '당신'과 공유하고 소통함으로서 '제대로 연결되어 있는 감각을 느끼는 것'[30] 또한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어 풍부함을 되찾고, 세계부조리라고 하는 큰 이야기에 사랑이라고 하는 작은 이야기로 대항하기도 하는 것이다.
머리카락 냄새를 서로 맡으며 냄새나~하면서 서로 장난치고 / 별거 아닌 것들 속에 사랑이, 사람은 웃는 듯이 살아가 /

(중략)

유행에 휩쓸려 사람은 나아가 주변에 휩쓸려 거리는 가 / 나는 시대의 것이 아니라 너의 것이 되고 싶은 거야 /

- くだらないの中に(시시함 속에)(2011) -
희망이 넘치던 / 이 감옥 안에서 / 이유도 없이 / 사랑이 거기에 있는 채로 / 그저 당신이었어

(중략)

"좋아해"를 가졌던 걸로 억지웃음 지으며 / 나날에 힘껏 발걸음을 내디뎌 걸을 수 있도록 말이야 / 고독의 곁에 있는 / 그래도 용기인 것

- 不思議(불가사의)(2021) -
사랑이 부족해 / 이런 바보 같은 세계가 되었지만 / 아직 움직여 아직 살아있어 / 당신의 가슴 속에서

- うちで踊ろう (大晦日)(집에서 춤추자)(2021) -
그가 출구가 없는 지옥에서의 창조사랑을 주장했다고 해서, 허황된 이야기만 머릿속에 가득찬 게 아니고, 과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세속적인 것들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업계의 나쁜 사람들을 만나고 의심과 경계가 많아지고, 'NO WORK NO MONEY'가 머릿속에 가득찼던 것들을 경험했었던 사람이었다.

(참고 글: 호시노 겐의 '불가사의 / 창조')

4.4. '사회적 해석'의 의심: 이원론의 부정

그의 무서운 점은, 누구보다 세상의 훌륭함을 믿는 동시에, 누구보다 세상을 'X같다'고 저주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줄 것 같은 부드러움과 한순간에 베어버릴 것 같은 잔혹함, 애정과 살의, 절망과 희망, 상냥함과 두려움. 그 양면성을 모두 숨김없이 받아들이고 흡수해 혈육으로 만드는 음악가, 그게 호시노 겐이다. #
보편적이라 여겨지는 감정도 그는 다르게 바라본다. 매번 느끼는 기분도 넓게 본다면 희로애락과 같은 여러 감정 중 하나가 부각된 것일 뿐이기에, 단수의 감정만을 다루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의 음악에서 패러렐 월드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 ‘인생은 자신이 기획하는 영화이니 포기하지 말고 나만의 작품을 완성하자’는 곡 ‘エピソード(2011)’와 ‘フィルム(2012)’에서는, 빛과 그림자 혹은 진실과 거짓과 같은 삶의 양분화를 경계한다. #
솔로 초기 음악적 변화의 첫 번째 과도기를 거쳐서부터는 긍정적인 태도와 밝고 희망찬 사운드에 맞는, 전체적으로 보면 즐거움을 나타내거나,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밝고 긍정적인 메세지를 주는 노래가 많아졌다. 그러나 그 건강한 사운드 속에는 상당히 어두운 부분이 계속 숨어있다.

마냥 '낙관적인 밝음'이 아니라, 밝음 이면의 어두움을 인정하고, 암울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가사를 통해,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밝은 사운드 속 어두움을 암시하거나, 밝음을 진지하게 다루거나 부각시키기 위해 어두움을 표현하거나, 어두움과 밝음은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라 궤를 같이 한다 등을 이야기한다. '희극비극' 또한 마찬가지로, 희극 안에는 이미 비극이 포함되어있다라고 하는 그의 가치관에 맞게 가사가 씌여진다. '거짓'과 관련해서도 거짓(말)과 현실은 서로 부정하는 관계가 아닌, 거짓(말)은 현실에 뿌리를 두고 현실은 거짓(말)에 의해 비춰지는 표리일체의 관계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호시노 겐이 말하기를, 곡을 만들거나 하면 아무래도 본인을 마주할 수 밖에 없는데, 춤을 추고 싶어지는 곡이나 밝아지고 해피해지는 곡을 만들 때 본인 속의 계속 옆에 있는 어둠 같은 게 무럭무럭 나온다고 한다. 다만 이 어둠을 차단한다거나, 거기에 집어삼켜지기보다는 그 어둠과 빛이 같이 을 추게 해주고 싶어져서 어둠을 제대로 그리고 싶다고 항상 생각하면서 가사를 쓰거나 곡을 만든다고 한다. #

이러한 이분법 및 확립의 거부는 젠더사랑, 그리고 가족이라는 관념에서도 일어나고, 각 단어들에 있어 관습적인 의미를 두지 않고 벗어난 것이 많다. 당장 일본에서 메가히트쳐 사회현상을 일으킨 코이(2016)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랑'을 그렸으며, Family Song(2017)은 '혈연관계, 나이, 성별, 인종, 차원 같은 것들에 상관하지 않는 사랑노래를 쓰고, 듣고 싶었다'는 의도로 제작했고, 희극(2022) 당시 "가족상은 가족 수만큼 전부 제각각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사회적인 해석으로 이야기되는 다수'나 관습적인 의미만을 생각하지 말자는 그의 생각이 큰 셈. 물론 이것들에 있어 '사회적 해석상의 소수'을 생각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사회적 해석'이 그 '사랑과 가족'의 존재와 본질을 덮어버리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가깝다.

4.5. 보통의 생활

4.6. 자유와 자연스러움

5. 관련 문서 및 키워드



[1] 상단 왼쪽부터 Crazy Crazy(2014), Snow Men(2015), Family Song(2017), 중간 왼쪽부터 ドラえもん(도라에몽)(2018), 喜劇(희극)(2022), 創造(창조)(2021), 하단 왼쪽에서부터 Pop Virus(2018), 私(나)(2019), CUBE(2021)[2] 사이타마는 호시노 겐의 출생지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차라투스트라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전후 가사를 보면, 이 곡에서 호시노 겐은 자신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차라투스트라'라고 말하고 있다. 계속 고독과 가까이 있으며 생성된 자신의 이야기와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산을 내려오며 사람들을 만나는 일종의 '즐거운' 고통을 겪는다. 이 이후 가사에서는 타인이 정해놓은 길을 쫓아가기만 급급한 사람들인 '군중들'을 만나는데, 그래도 그 이후 '자신의 길'을 갈 줄 아는 길동무를 점점 만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3] 접근 방식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으나, 그가 이때까지 연기한 캐릭터 대부분은 '호시노 겐'과는 거리가 멀다. 독신을 관철하다가 점점 마음을 여는 모태솔로 같은 역할을 많이 맡았었지만, 실제로 먼저 고백하여 적극적인 연애 경험이 많다. 그 외에도 대부분 소시민적인 성향이나, 질서 선, 질서 중립 등의 성향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는 일이 많았지만, 정작 '호시노 겐'을 굳이 클리셰적인 성향으로 구분지어보면 혼돈 중립에서 점차 성장하고 소통을 늘리며 혼돈 선이 된 인물에 가깝다.[4]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본인의 진짜 마음은 본인만 안다. 마찬가지로 호시노 겐의 세계도 그 이유를 모르겠는 것이나 복잡한 부분이 있고 타인이 그 깊이를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꽤나 쉽게 전달되도록 하는 노력을 계속 해왔었다.[5] 니체의 사상을 총망라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산이 '자기 자신'으로 서 있음을 상징한다. 따라서 산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주체적이게) 살아가는 법을 의미한다.[6] 공황장애, 불안장애, 부족한 외모와 몸매를 통한 자신감 상실, (흔히 그가 말하는 '보통'이라는 개념을 포함한) 자신의 생각이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했던 것, 처음부터 스카우트도 되지 않아 여러 곳을 직접 뛰어다녔어야하는 초기 시절, 생활의 열악함, 자신의 옆에 있는 어둠을 어릴 때부터 인지하고 인정하고 직시하는 그의 모습,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고독/ 소외/ "하나만 해"/ 스트레스, 어릴 때부터 의존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 업계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항상 긴장 및 경계하고 결국 'NO WORK NO MONEY'가 머릿속에 가득찼던 날들, 고통고뇌가 많았던 이른 나이에 자신이 원하지 않게 두 번이나 걸린 치사율이 높은 뇌출혈 병, 책임감과 부담감, 스타가 되고 난 후 끊임없이 프레임화되고 평가당하는 자신의 모습, 머릿속에 끊임없이 계속되는 소리와 음악과 말 #, 그의 말을 통한 대중들의 오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안티, 허무주의 등.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미세하게 그림자만 풍길 뿐이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7] 호시노 겐: Same Thing에서부터 'fuck'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게 아니라, 제가 부르는 건 계속 그런 거에요.[8] 사회가 개인에게 강제하고 규정하는 것. 의인화했을 경우 '난쟁이'라고도 불린다.[9] 헤겔은 "순수한 존재와 순수한 무(無)는 같다"고 말했는데, 니체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쉬운 예를 들자면, 그릇은 그 본질이 비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허무하다거나 외롭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비어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담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즉, 따라야할 가치가 사라졌다는 것은, 모든 가치에 대해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을 말한다.[10] 자기 자신의 삶이라는 구경거리는 허무에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자기 자신은 필요할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필요한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삶이 필요하다. 즉, '삶에 필요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말은 순환논증이라는 것이 니체의 지적이다. 그런데 필요에 의한 이 순환논증은, 사실 철학의 제1원리인 '실체(신)'를 증명하는 방식과 동일하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악순환의 신)[11] 여기서 악순환이란, 스콜라철학의 자기원인(Causa Sui)을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것의 첫번째 원인이 될 수 있으려면 자기가 자기의 원인이 되어야 함'을 말한다. (스피노자 참조) 그리고 스콜라철학에서는 모든 것의 첫번째 원인인 이 '실체'를 '신(deus)'이라 부른다. 니체는 영원회귀 하는 '인생 그 자체'가 철학의 제1원리인 '실체', 곧 '신'의 설명방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니체의 철학에서 '신'은, '매순간 반복되는 인생'으로 대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체는 일찍이 『즐거운 학문』에서 신이 죽었으므로 우리 자신이 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우리 자신이 신이 될 수 있는 조건이란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영원에 걸쳐서 물릴 줄 모르고 '처음부터 다시(da capo)'라고 외치는 것. 이것이 우리 자신이 신(가치의 창조자)이 될 수 있는 필요 조건이고, 신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12] 바다는 자기 자신만의 정신 세계고,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은 사유의 모험을 떠난다. 반대로 '뭍(육지)'은 일반 대중들이 사는 세상을 뜻한다.[13] '신'은 완전한 존재이자, 절대적인 진리를 뜻하며,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14] 차라투스트라의 '선물'은 '인간은 어떻게 '나 자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르침이다.[15] 해(태양)는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에서 '진리(이데아)'를 말하는 것이다. 해가 지구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16] 항성(별)은 개개인을 가리킨다. 모든 항성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는 말은, 즉 '개인주의'를 의미한다.[17] 절대적 진리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보편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이기에 허무주의로 귀결된다.[18] 밤은 진리(태양)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즉 상대주의(절대적인 진리란 없으므로)는 허무주의로 귀결됨으로써, 우리의 삶마저 궁지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19] 여기서 아침은 새로운 기준이 등장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근데 그것도 역시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으므로, 개인은 자신만의 등불(가치)를 밝혀야만 된다.[20] 무덤을 만드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사토장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는 교회의 사제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니체는 같은 책에서 "신의 무덤은 바로 교회"라고 말한다.[21] 절대적 진리가 있다고 믿는 교회의 사제(사토장이)들 역시도, 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제각기 다르다. 그들의 믿음과 해석은 '주관적'이다. 그러한 믿음과 해석은 결코 신의 존재를 확신시켜주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을 땅에 묻고 있는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신이 부패한다는 것은 '신이라는 개념' 자체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점차 변화해왔다는 것을 말한다.[22] 쉽게 말하자면, 일반적인 의미의 사망이 아니라, 예전만큼 '신'이 인간의 삶 속에서 의미를 갖지 못하고, 사회 속 사람들에게 신의 의미가 점점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여담이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차라투스트라가 '더없이 추악한 자'라고 명명한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신'이, 다시 그들에 의해 새로운 신앙으로서 살려지게 된다. 여기서는 '더없이 추악한 자'에 의한 신의 죽음이 결코 진실된 죽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23] 그에게 있어 소통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24] 대지는 '지금 여기 있는 이 현실의 모든 것'을 나타내는 말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 생명, 성장, 변화, 생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즉, 대지에 충실하라는 말은 불변하는 가상을 믿지 말고, 변화하고 있는 지금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살아라는 말이다.[25] 사전적 의미의 '인간 말종'이 아니라 위버멘쉬의 반대 개념이다. 창조하는 길을 저버리고 당장의 작은 쾌락에 안주하며, 자신이 평등하게 존중 받기를 요청하면서 어떠한 발전이나 수용도 거부하고 보존하려 애쓰는 사람을 뜻한다.[26] 자기 자신의 의지가 요구하는 꿈과 목표.[27] 그러나 이 의미가 그의 곡에서 죽음이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SAKEROCK 당시에는 '사후 세계에서도 즐겁게 춤추면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걸 표방하긴 했고, 솔로 초기인 투병 생활 전에도 그의 곡에서 죽음은 상당히 큰 축을 차지했으며, 살아있음을 그리기 위해 죽음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죽음에 대한 로망을 그리는 경우도 있었고.[28] 니체의 위버멘쉬라는 개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두자면,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니히 니체는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의사로 행동하는 위버멘쉬를 지향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니체의 위버멘쉬를 지향하는 사상에는 절대적인 삶의 의미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영겁회귀의 삶에 있어서는 스스로가 의미를 창조할 수밖에 없다는 허무주의에서 삶의 긍정으로의 180도 전환이 존재한다. 이것이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직접 창조'하는 창조의 본질이며, 이 '색이 바래지 않는 놀이'를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위버멘쉬를 향한 첫걸음이다.[29] 다만 이것은 연결되는 듯한 감각과 인연을 부정하지는 않는다.[30] 위에서 언급했으나, 그에게 있어 소통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도 '두 사람'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소통으로서 두 사람이 연결되어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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