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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어 맞춤법의 역사를 논하는 문서이다.한국어 한글 표기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 표음주의와 어원을 살리는 형태주의가 대립하며 표기 심도가 커졌다. 근대에 표기법이 만들어진 이래 주된 경향은 형태주의를 강화하(표기 심도가 커지)는 방향이었다.
오늘날 맞춤법은 표음주의와 형태주의를 절충하여 '얽히고설키다'와 같은 표기가 생기게 되었다. 앞의 '얽히고'는 [얼키고]로 발음 되지만 동사 '얽다'와 그 피동형 '얽히다'에서 온 것이 분명하므로 원형을 살려 '얽히고'로 표기하지만, 뒤의 '설키다'는 앞의 '얽히고'와 운을 맞추기 위함일 뿐, '섥다'라는 단어도 없고 피동형인 '섥히다'도 없어 '섥히다'라고 표기할 근거가 없으므로 소리 나는 대로 '설키다'로 적는 것이 원칙이며 띄어 쓰지도 않는다.
2. 받침 표기 발달
처음에는 실제로 해당 소리가 나는 받침만 표기하였다. 즉 후기 중세 국어 시기엔 대체로 8종성인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ㆁ'만을 표기하였으며[1], [ㄷ](=[t̚]) 발음과 [ㅅ](=[s]) 발음이 전자로 합류한 근대 국어 시기엔 대체로 7종성인 'ㄱ, ㄴ, ㄹ, ㅁ, ㅂ, ㅅ[ㄷ][2], ㅇ[3]'만으로 표기하였다. 이후 원형을 밝히는 표기법이 자리잡히며, 7종성 이외의 홑받침(ㅈ, ㅊ, ㅋ, ㅌ, ㅍ, ㅎ 등) 및 겹받침(ㄳ, ㄵ 등)의 표기가 자리잡았다.겹받침을 표기해 주기 이전에는 형태소 기저형의 말음이 자음군인 경우, 대체로 모음으로 시작하는 형식 형태소가 이어지는 경우엔 두 자음을 갈라서 연철했으나(없- + -으니라 → 업스니라), 자음이 이어질 때는 자음군 단순화를 적용해 한 자음만 쓰는 경우가 많았다(없- + -디 → 업디). 사실 표면적 발음과는 다른, 원형을 밝히는 표기법이 자리잡으려면 기저형에 대한 교육이 별도로 이루어져야 하고 원형을 밝힌 표기로 쓰인 문헌 역시 많았어야 하기에, 보편 교육이 이루어지기 전에 널리 퍼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겹받침을 쓰는 것이 완전한 현대의 창작인 것은 아니다. 즉 자음이 이어질 때도 겹받침을 써 주는 경우가 있었다. 훈민정음의 창제자인 세종대왕 자신이 훈민정음 해례본 합자해(合字解)에서 겹받침 표기의 예시를 밝힌 바가 있다.
終聲二字三字合用,如諺語ᄒᆞᆰ為𡈽,낛〮為釣,ᄃᆞᇌᄣᅢ〮為酉時之類。
(종성 두 자나 석 자를 어우름은 우리말에서 흙(土)을 이르는 ᄒᆞᆰ, 낚시(釣)를 이르는 낛〮, 유시(酉時)를 이르는 ᄃᆞᇌᄣᅢ〮 따위와 같다.)
(종성 두 자나 석 자를 어우름은 우리말에서 흙(土)을 이르는 ᄒᆞᆰ, 낚시(釣)를 이르는 낛〮, 유시(酉時)를 이르는 ᄃᆞᇌᄣᅢ〮 따위와 같다.)
해례본의 예시들을 보면 알겠지만 15세기 겹받침은 ㄹ계 겹받침이 많다. 다른 경우에는 겹받침을 잘 쓰지 않았다. 대체로 소리 나는 받침만을 표기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ㄹ계 겹받침의 발음이 당시에는 가능했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ㄹ/는 유음이라 그 공명도(소리가 울리는 정도)가 높아 사실상 자음보다는 모음에 가까운 특성을 보이기에 음절말 자음 개수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4]
또한 사잇소리 현상을 유발하는 관형격 조사 'ㅅ'[5]의 경우 그 특수성 때문인지 앞말이 자음으로 끝났더라도 그 자음 곁에 무조건 써서 겹받침을 만들어 주었다. 즉 '/나모/ + /가지/'만 '나못가지'로 쓴 게 아니라, '/발/ + /드ᇰ/'도 '밠드ᇰ'과 같이 썼다.
ㄹ계 겹자음과 사이시옷을 모두 쓴 표기로, 위에서도 언급된 'ᄃᆞᇌᄣᅢ〮' 같은 예시가 있다. 모음 'ㆍ'와 모음 'ㅐ' 사이에 자음자가 여섯 개(ㅩㅵ = ㄹㄱㅅㅂㅅㄷ)나 있는 표기. 의미는 '닭의 때'로 '유시(酉時)'의 고유어 표현이다.[6]
3. 역사
3.1. 맞춤법 제정 이전
국가적인 차원에서 훈민정음 서적을 발행했으나 구한말까지 국가적인 차원에서 명문화된 한국어 맞춤법이 제정되지 않았고 민간에서 쓰이던 관용 표기를 따랐다. 애초에 갑오개혁(1894)까지 한글이 공문서에 쓰이지 않았다. 다만 조선 초기에 연철 표기법이 주류를 이뤘고, 조선 중기부터 구한말 시기까지 중철 표기법과 '갓흔'과 같은 ㅎ 재음소화 표기가 주류를 이루었다.이 칼럼에 따르면 일단 훈민정음 해례본 자체가 국가 공인인 이상, 해례본에서 언급된 8종성법[7]이 받침 표기에서의 실질적인 규범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편찬에 직접 참여한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에는 8종성법에 구애받지 않은 다양한 받침 표기가 등장하며, 나아가 체언과 조사, 용언 어간과 어미의 경계를 표기하고 원형을 밝힌 표기법, 즉 현대의 끊어적기(!)와 유사한 표기가 꽤 보인다고 한다. 특히 "월인천강지곡"의 경우 섣불리 8종성법과 연철을 적용해 인쇄했다가, 후에 도장을 덧찍듯 획을 추가하거나, 받침을 물로 지우고 새 글자를 찍는 등 꽤나 심혈을 기울여 수정했다고. 종합해 보면 현대 정서법의 원류는 세종대왕이 이미 고려하고 있었던 것이 재조명된 것에 가깝다.
사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부터 이미 현대의 형태음소적 표기(표의주의+표음주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如ᄇᆡᆺ곶為梨花,여ᇫ의갗為狐皮,而ㅅ字可以通用。"[8]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ᄇᆡ +ㅅ+곶/, /여ᅀᆞ+의+갗/이라는 원형을 드러내는 방식인 'ᄇᆡᆺ곶', '여ᇫ의갗'으로 표기할 수도 있으나,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음절의 끝소리 규칙을 적용하여(즉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여) 예시의 'ㅅ, ㅈ, ㅿ, ㅊ'과 같은 치음(齒音)자 표기를 모두 'ㅅ'으로 통일한 'ᄇᆡᆺ곳', '엿의갓'과 같이 쓴다는 이야기이다.[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종성부용초성, 팔종성법, 종성해 참고.
각설하고, 명문화된 규칙은 없었으나 각 시대의 양상을 살피고 싶다면 중세 한국어, 근대 한국어 참조. 고대 한국어의 경우 이두와 구결 참조.
이후로 구한말 들어 한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대한제국 시기에 맞춤법을 만들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의 신정국문(新訂國文)이나 국문연구의정안 등이 그 사례다.
3.2. 신정국문(1905)
1905년 7월 22일 지석영이 고종에게 건의하여 의정부 관보에 공표된 표기법. 고종의 재가를 받아 국가에서 공식으로 선포되긴 하였으나 지석영 본인의 독자적인 의견이어서 약간 받아들이기 힘든 면도 있었다. 갑자기 논의도 없이 새로운 글자 ᆖ를 창제하자거나, ㅅ계 합용병서가 한자 반복 부호(漢文疊字) 〻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틀린 가설을 내세우는 등. 그래서 이에 대하여 좀 더 논의하고자 대한제국의 학부(學部)에서 국문연구소를 설치하여 논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의정부 관보에 실린 원문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신정국문 항목에서 시청각 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조정에 건의한 문건이므로 고종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05년 7월 29일 2번째 기사: 지석영이 아뢴 대로 국문을 새로 고치다
新訂國文五音象形辨(새로 고친 국문 5음의 상형변):
ㄱ 【牙音, 象牙形。】 ,ㅋ 【牙音, 重聲。】 , ㆁ 【牙喉間音, 象喉扇形。 ○音失其眞, 今姑闕之。】 , ㄴ 【舌音, 象舌形。】 , ㄷ 【舌音, 象掉舌形。】 , ㅌ 【舌音, 重聲。】 , ㄹ 【半舌音, 象捲舌形。】 , ㅁ 【唇音, 象口形。】 , ㅂ 【唇音, 象半開口形。】 , ㅍ 【唇音, 象開口形。】 , ㅅ 【齒音, 象齒形。】 , ㅈ 【齒舌間音, 象齒齦形。】 , ㅊ 【齒音, 重聲。】 , ㅿ 【半齒音, 象半啓齒形。 ○音失其眞, 今姑闕之。】 , ㅇ 【淺喉音, 象喉形。】 , ㆆ 【喉齒間音, 象喉齶形。 ○音失其眞, 今姑闕之。】 , ㅎ 【深喉音。】
新訂國文初中終三聲辨(새로 고친 국문의 초, 중, 종 3성에 대한 풀이):
初聲終聲通用八字, ㄱ 【기윽】 , ㄴ 【니은】 , ㄷ 【디귿】 , ㄹ 【리을】 , ㅁ 【미음】 , ㅂ 【비읍】 , ㅅ 【시옷】 , ㅇ 【이응。 ㄱㄴㄷㄹㅁㅂㅅㅇ八字난 用於初聲 윽은귿을음읍옷응八字난 用於終聲。】
初聲獨用六字(첫소리로만 쓰이는 6자):
ㅈ 【지】 , ㅊ 【치】 , ㅋ 【키】 , ㅌ 【티】 , ㅍ 【피】 , ㅎ 【히】
中聲獨用十一字(가운뎃소리로만 쓰는 11자):
ㅏ 【아】 , ㅑ 【야】 , ㅓ 【어】 , ㅕ 【여】 , ㅗ 【오】 , ㅛ 【요】 , ㅜ 【우】 , ㅠ 【유】 , ㅡ 【으】 , ᅟᆖ 【이으의 合音】[10] ㅣ 【이】 [11]
新訂國文合字辨(새로 고친 국문의 합자 풀이):
初聲 ㄱ字를 中聲 ㅏ字에 倂하면 가 字를 成하고 終聲 ㅇ字를 가 字에 合하면 강 字가 되나니 餘倣此하니라。
新訂國文高低辨(새로 고친 국문의 높낮이 풀이):
上聲去聲은 右加一點 【我東俗音에 上去聲이 別노 差等이 無함이라。】 하고 平入兩聲은 無點이오 凡做語之曳聲에 亦加一點하니라。
字音高低標(자음 높낮이표):
動 【움즉일동】 , 同 【한가지동】 , 禦 【막을어】 , 魚 【고기어】 之類餘倣此하니라。
做語曳聲標(말을 만드는 끝소리표):
簾 【발렴】 , 足 【발족】 , 列 【벌릴[12]렬】 , 捐 【버릴연】 之類餘倣此하니라。
新訂國文疊音刪正辨(새로 고친 국문에서 중첩음의 삭제 정정 풀이):
ᄀᆞᄂᆞᄃᆞᄅᆞᄆᆞᄇᆞᄉᆞᄋᆞᄌᆞᄎᆞᄏᆞᄐᆞᄑᆞᄒᆞ 十四字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字의 疊音으로 用하기에 刪正함이라。
新訂國文重聲釐正辨(새로 고친 국문 겹소리 정정 풀이):
ㄲㄸㅃㅆㅉ난 ㄱㄷㅂㅅㅈ의 重聲이라 古昔에 까따빠싸짜로 行하더니 挽近에 漢文疊字의 〻를 倣하야, ᄭᅡ[13]ᄯᅡᄲᅡ싸짜로 用함이 還屬便易로대, '以'字를 'ᄡᅧ'[14]로 釋함은 無由하기 ㅅ傍에 ㅂ을 倂用함을 廢止함이라。
ㄱ 【牙音, 象牙形。】 ,ㅋ 【牙音, 重聲。】 , ㆁ 【牙喉間音, 象喉扇形。 ○音失其眞, 今姑闕之。】 , ㄴ 【舌音, 象舌形。】 , ㄷ 【舌音, 象掉舌形。】 , ㅌ 【舌音, 重聲。】 , ㄹ 【半舌音, 象捲舌形。】 , ㅁ 【唇音, 象口形。】 , ㅂ 【唇音, 象半開口形。】 , ㅍ 【唇音, 象開口形。】 , ㅅ 【齒音, 象齒形。】 , ㅈ 【齒舌間音, 象齒齦形。】 , ㅊ 【齒音, 重聲。】 , ㅿ 【半齒音, 象半啓齒形。 ○音失其眞, 今姑闕之。】 , ㅇ 【淺喉音, 象喉形。】 , ㆆ 【喉齒間音, 象喉齶形。 ○音失其眞, 今姑闕之。】 , ㅎ 【深喉音。】
新訂國文初中終三聲辨(새로 고친 국문의 초, 중, 종 3성에 대한 풀이):
初聲終聲通用八字, ㄱ 【기윽】 , ㄴ 【니은】 , ㄷ 【디귿】 , ㄹ 【리을】 , ㅁ 【미음】 , ㅂ 【비읍】 , ㅅ 【시옷】 , ㅇ 【이응。 ㄱㄴㄷㄹㅁㅂㅅㅇ八字난 用於初聲 윽은귿을음읍옷응八字난 用於終聲。】
初聲獨用六字(첫소리로만 쓰이는 6자):
ㅈ 【지】 , ㅊ 【치】 , ㅋ 【키】 , ㅌ 【티】 , ㅍ 【피】 , ㅎ 【히】
中聲獨用十一字(가운뎃소리로만 쓰는 11자):
ㅏ 【아】 , ㅑ 【야】 , ㅓ 【어】 , ㅕ 【여】 , ㅗ 【오】 , ㅛ 【요】 , ㅜ 【우】 , ㅠ 【유】 , ㅡ 【으】 , ᅟᆖ 【이으의 合音】[10] ㅣ 【이】 [11]
新訂國文合字辨(새로 고친 국문의 합자 풀이):
初聲 ㄱ字를 中聲 ㅏ字에 倂하면 가 字를 成하고 終聲 ㅇ字를 가 字에 合하면 강 字가 되나니 餘倣此하니라。
新訂國文高低辨(새로 고친 국문의 높낮이 풀이):
上聲去聲은 右加一點 【我東俗音에 上去聲이 別노 差等이 無함이라。】 하고 平入兩聲은 無點이오 凡做語之曳聲에 亦加一點하니라。
字音高低標(자음 높낮이표):
動 【움즉일동】 , 同 【한가지동】 , 禦 【막을어】 , 魚 【고기어】 之類餘倣此하니라。
做語曳聲標(말을 만드는 끝소리표):
簾 【발렴】 , 足 【발족】 , 列 【벌릴[12]렬】 , 捐 【버릴연】 之類餘倣此하니라。
新訂國文疊音刪正辨(새로 고친 국문에서 중첩음의 삭제 정정 풀이):
ᄀᆞᄂᆞᄃᆞᄅᆞᄆᆞᄇᆞᄉᆞᄋᆞᄌᆞᄎᆞᄏᆞᄐᆞᄑᆞᄒᆞ 十四字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字의 疊音으로 用하기에 刪正함이라。
新訂國文重聲釐正辨(새로 고친 국문 겹소리 정정 풀이):
ㄲㄸㅃㅆㅉ난 ㄱㄷㅂㅅㅈ의 重聲이라 古昔에 까따빠싸짜로 行하더니 挽近에 漢文疊字의 〻를 倣하야, ᄭᅡ[13]ᄯᅡᄲᅡ싸짜로 用함이 還屬便易로대, '以'字를 'ᄡᅧ'[14]로 釋함은 無由하기 ㅅ傍에 ㅂ을 倂用함을 廢止함이라。
원문으로는 이와 같이 표기되어 있는데(오른쪽은 실록), 지석영이 ㅅ과 닮았다고 한 반복 부호는 〻가 아닌 〱로 추정된다. 실록 입력본에서는 그냥 ㅅ으로 입력되어있으나, 글 맥락상으로도 다른 글자를 써야 할 것이고 실제 지면에서도 ㅅ과는 분명 다른 글자를 쓰고 있다.]
3.3. 국문연구의정안(1909)
1907년 7월에 대한제국 학부 소속으로 설치된 국문연구소에서는 이능화, 어윤적, 주시경을 비롯한 의원들이 모여 열 가지 문제를 논의하였다. 각 의원의 논의는 약 200쪽가량으로 이기문(1970),《개화기의 국문연구》의 부록에서 영인본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확정된 의결안은 약 5쪽가량. # 그 안건들과 논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一. 國文의 淵源과 字體及 發音의 沿革 (可)
二. 初聲中 ㆁㆆ ㅿ ◇ ㅱㅸㆄㅹ 八字의 復用當否 (否)
三. 初聲의 ㄲ ㄸ ㅃ ㅆ ㅉ ㆅ 六字 並書의 書法一定 (可, ㆅ은 폐기)
四. 中聲字 ‘ㆍ’자 폐지 및 ᆖ자 창제의 당부 (否)
五. 終聲의 ㄷㅅ 二字用法及 ㅈㅊㅋㅌㅍㅎ 六字도 終聲에 通用當否 (可)
六. 字母의 七音과 淸濁의 區別如何 (五音과 淸音, 激音, 濁音으로 구분)
七. 四聲票의 用否及 國語音의 高低法 (四聲票는 不用, 長音 左肩一點)
八. 字母의 音讀一定 (ᅌ 이응 ㄱ 기윽 ㄴ 니은 ㄷ 디읃 ㄹ 리을 ㅁ 미음 ㅂ 비읍 ㅅ 시읏 ㅈ 지읒 ㅎ 히읗 ㅋ 키읔 ㅌ 티읕 ㅊ 치읓 ㅏ 아 ㅑ 야 ㅓ 어 ㅕ 여 ㅗ 오 ㅛ 요 ㅜ 우 ㅠ 유 ㅡ 으 ㅣ이ㆍᄋᆞ)
九. 字順行順의 一定 (初聲 牙舌脣齒喉와 淸激, 中聲 「訓蒙字會」순)
十. 綴字法 (訓民正音例義대로 仍舊綴字-모아쓰기)
1. 국문의 연원과 국문 자체 및 발음의 연혁
2. 초성 가운데 ‘ㆁ, ㆆ, ㅿ, ㅱ, ㅸ, ㆄ, ㅹ’ 8자를 다시 사용할지 여부 - 쓰지 말자.
3. 초성의 된소리 표기를 ‘ㄲ, ㄸ, ㅃ, ㅆ, ㅉ, ㆅ’ 6자로 정할지 여부 - (ᄭ 와 같은 ㅅ계 합용병서 말고) 각자병서(ㄲㄸㅃㅆㅉ)를 쓰자, 단 ㆅ은 폐기.
4. 중성 가운데 ‘ㆍ’자를 폐지할 것인지, 그리고 ‘ᆖ’자를 창제할 것인지 여부 - ㆍ를 폐지하지도 말고, ᆖ를 창제하지도 말자.(현상유지)
5. 종성 ‘ㄷ, ㅅ’ 2자의 용법 및 ‘ㅈ, ㅊ, ㅋ, ㅌ, ㅍ, ㅎ’ 6자도 종성에 통용할지 여부 - '가결 다만 ㄷ 말음은 용언의 어간에서만 사용하기로 하였다. '씻다-씻어[씨서\]'와 '믿다-믿어[미더\]'의 경우에만 ㅅ과 ㄷ을 구분한 것. 체언에서는 모두 ㅅ으로 적는 것으로 통일하였다.]
6. 자모의 7음-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아설순치후)과 반설음, 반치음-과 청탁 구별 문제 - -반치음 ㅿ은 사라졌고 반설음 ㄹ은 설음에 포함시켜-5음(아설순치후)과 淸音(청음, 예삿소리)/激音(격음, 거센소리)/濁音(탁음, 된소리)로 하자.[15]
7. 사성표를 사용할지 여부 및 국어음의 고저를 표기할지 여부 - 성조는 표기하지 않기로 하자. 장음은 왼쪽 점 1개로 표기.
8. 한글 자모의 명칭을 정하는 문제 - (ᅌ 이응 ㄱ 기윽 ㄴ 니은 ㄷ 디읃 ㄹ 리을 ㅁ 미음 ㅂ 비읍 ㅅ 시읏 ㅈ 지읒 ㅎ 히읗 ㅋ 키읔 ㅌ 티읕 ㅍ 피읖[16] ㅊ 치읓 ㅏ 아 ㅑ 야 ㅓ 어 ㅕ 여 ㅗ 오 ㅛ 요 ㅜ 우 ㅠ 유 ㅡ 으 ㅣ이ㆍᄋᆞ)로 읽자.
9. 자순(字順), 행순(行順)을 정하는 문제 - 자음은 아설순치후 + 예사/거센소리 순으로, 모음은 훈몽자회 순으로 하자. (8항에서 적힌 대로)
10. 철자법(綴字法)-자모를 '배열(철)'하는 방법-, 풀어쓸지 모아쓸지 문제 - 훈민정음에 나온 예전 방식대로 모아쓰기로 하자.
二. 初聲中 ㆁㆆ ㅿ ◇ ㅱㅸㆄㅹ 八字의 復用當否 (否)
三. 初聲의 ㄲ ㄸ ㅃ ㅆ ㅉ ㆅ 六字 並書의 書法一定 (可, ㆅ은 폐기)
四. 中聲字 ‘ㆍ’자 폐지 및 ᆖ자 창제의 당부 (否)
五. 終聲의 ㄷㅅ 二字用法及 ㅈㅊㅋㅌㅍㅎ 六字도 終聲에 通用當否 (可)
六. 字母의 七音과 淸濁의 區別如何 (五音과 淸音, 激音, 濁音으로 구분)
七. 四聲票의 用否及 國語音의 高低法 (四聲票는 不用, 長音 左肩一點)
八. 字母의 音讀一定 (ᅌ 이응 ㄱ 기윽 ㄴ 니은 ㄷ 디읃 ㄹ 리을 ㅁ 미음 ㅂ 비읍 ㅅ 시읏 ㅈ 지읒 ㅎ 히읗 ㅋ 키읔 ㅌ 티읕 ㅊ 치읓 ㅏ 아 ㅑ 야 ㅓ 어 ㅕ 여 ㅗ 오 ㅛ 요 ㅜ 우 ㅠ 유 ㅡ 으 ㅣ이ㆍᄋᆞ)
九. 字順行順의 一定 (初聲 牙舌脣齒喉와 淸激, 中聲 「訓蒙字會」순)
十. 綴字法 (訓民正音例義대로 仍舊綴字-모아쓰기)
1. 국문의 연원과 국문 자체 및 발음의 연혁
2. 초성 가운데 ‘ㆁ, ㆆ, ㅿ, ㅱ, ㅸ, ㆄ, ㅹ’ 8자를 다시 사용할지 여부 - 쓰지 말자.
3. 초성의 된소리 표기를 ‘ㄲ, ㄸ, ㅃ, ㅆ, ㅉ, ㆅ’ 6자로 정할지 여부 - (ᄭ 와 같은 ㅅ계 합용병서 말고) 각자병서(ㄲㄸㅃㅆㅉ)를 쓰자, 단 ㆅ은 폐기.
4. 중성 가운데 ‘ㆍ’자를 폐지할 것인지, 그리고 ‘ᆖ’자를 창제할 것인지 여부 - ㆍ를 폐지하지도 말고, ᆖ를 창제하지도 말자.(현상유지)
5. 종성 ‘ㄷ, ㅅ’ 2자의 용법 및 ‘ㅈ, ㅊ, ㅋ, ㅌ, ㅍ, ㅎ’ 6자도 종성에 통용할지 여부 - '가결 다만 ㄷ 말음은 용언의 어간에서만 사용하기로 하였다. '씻다-씻어[씨서\]'와 '믿다-믿어[미더\]'의 경우에만 ㅅ과 ㄷ을 구분한 것. 체언에서는 모두 ㅅ으로 적는 것으로 통일하였다.]
6. 자모의 7음-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아설순치후)과 반설음, 반치음-과 청탁 구별 문제 - -반치음 ㅿ은 사라졌고 반설음 ㄹ은 설음에 포함시켜-5음(아설순치후)과 淸音(청음, 예삿소리)/激音(격음, 거센소리)/濁音(탁음, 된소리)로 하자.[15]
7. 사성표를 사용할지 여부 및 국어음의 고저를 표기할지 여부 - 성조는 표기하지 않기로 하자. 장음은 왼쪽 점 1개로 표기.
8. 한글 자모의 명칭을 정하는 문제 - (ᅌ 이응 ㄱ 기윽 ㄴ 니은 ㄷ 디읃 ㄹ 리을 ㅁ 미음 ㅂ 비읍 ㅅ 시읏 ㅈ 지읒 ㅎ 히읗 ㅋ 키읔 ㅌ 티읕 ㅍ 피읖[16] ㅊ 치읓 ㅏ 아 ㅑ 야 ㅓ 어 ㅕ 여 ㅗ 오 ㅛ 요 ㅜ 우 ㅠ 유 ㅡ 으 ㅣ이ㆍᄋᆞ)로 읽자.
9. 자순(字順), 행순(行順)을 정하는 문제 - 자음은 아설순치후 + 예사/거센소리 순으로, 모음은 훈몽자회 순으로 하자. (8항에서 적힌 대로)
10. 철자법(綴字法)-자모를 '배열(철)'하는 방법-, 풀어쓸지 모아쓸지 문제 - 훈민정음에 나온 예전 방식대로 모아쓰기로 하자.
'仍舊'(잉구, 고치지 않고 예전대로 씀)이라는 표현에서부터 '풀어쓰기로 바꿔보고는 싶지만 갑작스러울 것 같으니 그대로 두자'라는 어조가 느껴진다. 실제로 국문연구소 의원 가운데 풀어쓰기를 지지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 주시경이 대표적이다.]
ᆖ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당대에 (발음은 이미 ㅏ나 ㅡ로 합쳐진) ㆍ(아래아)가 창제 당시의 발음이 ᆖ였으리라 여겨졌기 때문에 ㆍ를 폐지하고 ᆖ를 창제하자고 논의했다.
의결안이 발표되고서 1년 후 대한제국이 멸망하여 공포되지는 못하였다. 그래도 이후 조선총독부의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에도 국문연구소의 의원이었던 어윤적 의원이 참여하는 등으로 내용이 계승된다.
오늘날 각자병서의 사용, 7종성 이외의 종성 표기(+'티읕', '치읓' 등의 호칭[17]) 등은 모두 국문연구의정안에서 처음 명문화된 것이다.
한편 차이점도 있는데, 의정안에서는 자모의 순서를 ᅌㄱ(아)ㄴㄷㄹ(설)ㅁㅂ(순)ㅅㅈ(치)ㅎ(후)ㅋㅌㅍㅊ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ㆍ라고 하여 자음의 순서가 조금 다르다. 또한 여기에서의 순서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음인 ᅌ은 옛이응으로 폐지하기로 논의한 것이었는데 자음 순서에서는 옛이응을 아음으로 실어두고 있는 등(초성에서 등장하는 ㅇ은 위의 분류로는 후음에 속한다) ㅇ과 ᅌ을 혼동하고 있는 경우가 의정안 곳곳에서 확인된다. 'ㄱ, ㄷ, ㅅ'에 대하여 훈몽자회에서 적당한 한자가 없어서 비슷한 글자를 끌어와 조금 달라진 '기역, 디귿, 시옷'이라는 발음은 쓰지 않고 '기윽, 디읃, 시읏'이라고 하였는데 이 역시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다시 훈몽자회 식으로 돌아갔다. 이북(북한)에서 이걸 이어온 건지 아니면 또 다른 계기가 있었는지 '기윽, 디읃, 시읏'을 사용중. '장음을 점 하나로 찍어서 표시하자'는 내용도 이후 표기법에서 약간 더 길게 이어졌지만 오늘날엔 반영되지 않았다.
3.4.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1912)
한국어판 위키문헌#- 정수로 여긴 현대 서울 방언을 기준으로 삼고 되도록 발음대로 적게 했다.
- 아래아의 폐지. 한자음에서의 아래아는 그대로 두었다.
- 구개음화로 표기를 혼동하는 댜/쟈/자, 텨/처/쳐, 소/쇼 등을 각각 자, 처, 소 등으로 적게 했다. 단 한자음에 적용하지 안했다. 참고로 이렇게 표기가 강제 교정된 뒤에 다시 '사'와 '샤'의 발음이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이전 시대에 '샤', '셔' 등으로 발음되던 어휘는 전부 '사', '서' 등으로 발음이 변화되었다. '쇼()牛)'가 '소'로 바뀐 까닭이다.
- 끊어적기를 지향, (예: 먹엇소 등) 다만 종전 거듭적기도 일부 허용
- 부사 '높히', '가벼히' 등 '히'로만 적는다. 이후 '게'도 쓸 수 있게 되고, 대부분 '이'로 대체되어 현재 '나란히' 등 일부 부사에만 잔존해 있다.
- 된소리는 ㅅ을 붙이는 방법인 ㅅ계 합용병서(ㅺ, ㅼ, ㅽ, ㅾ)만 인정되었다. 현행 쌍자음(각자병서)은 인정되지 않았다.
- 용례표로 받침 ㄺ, ㄻ, ㄼ이 추가로 인정되었다. '붉다', '삶다' 등이 현재의 형태로 쓰이게 된 게 이때부터. '있다', '빛' 등은 여전히 '잇다', '빗'으로 썼다.
- 가나
- 가나 す/つ를 수/두로 적었다. 탁음은 한글에 탁음점을 붙였다.
- 장음은 가장자리 점으로 표시했다.
3.5.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 대요(1921)
한국어판 위키문헌#1921년에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수정, 보충함이다.
- 현대 서울 방언을 표준으로 함고 되도록 발음대로 적게 했다.
- 두음법칙 명문화
- 고유어 단어만 적용되었고 한자어에 적용되지 않았다. 예로 룡산(龍山; 용산), ᄅᆡ일(來日; 내일) 등이 있다. 이 부분은 현재 북측 맞춤법과 비슷하다.
- ㄴ 두음법칙 예외(?)인 닙 등이 있다.
- 1912년에 추가된 받침 ㄺ, ㄻ, ㄼ과 받침 ㅈ, ㅊ, ㅍ, ㅎ, ㄲ, ㄳ, ㅄ을 추가할지 말지를 보류해 구한말 이전으로 회귀했다.
- 끊어적기을 지향
- 순우리말에 부사 어미만 '이'도 쓸 수 있게 하여 이때부터 현재와 같이 적게 되었다. 반면 한자어가 섞인 부사 어미는 '히'로 적게 했다.
- 사이시옷 현상(본문에는 촉음 현상)를 된소리 또는 겹받침(본문에는 이북과 거진 같이 둘받침)으로 표기하게 했다.
- 1912년에 제정한 장음부호를 잠정 폐기
- 가나 표기를 용례표로 규정
요음 しゃ・しゅ・しょ・ちゃ・ちゅ・ちょ를 샤·슈·쇼·쟈·쥬·죠로 표기
3.6. 언문 철자법(1930)
한국어판 위키문헌#- 현대 서울 방언을 표준으로 한다.
- 발음대로 표기를 원칙으로 한다.
- 한자어 표기에 남아있던 아래아도 이때 폐지
- '(자음(ㅇ, ㅎ 제외) + ㅢ'인 한자음을 '(자음(ㅇ, ㅎ 제외) + ㅣ'로, '(자음) + ㅖ인 한자음을 '(자음) + ㅔ'로 적게 했다.
- 한자어를 적을 때도 댜, 텨, 져, 츄, 셩 등으로 적던 것을 (구개음화 현상으로) 자, 처, 저, 추, 조, 성 등으로 적게 되었다. 해당 시기에도 발음은 후자였는데 표기가 뒤처졌다고 한다. 현재와 달리 'ㅅ'도 들어가 있다. 참고로 이렇게 표기가 강제 교정된 뒤에 다시 '사'와 '샤'의 발음이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이전 시대에 '샤', '셔' 등으로 발음되던 어휘는 전부 '사', '서' 등으로 발음이 변화되었다. '星'의 표기가 '셩'에서 '성'으로 바뀐 까닭이다.
- '의', '희'를 뺀 '(자음) + ㅢ'를 '(자음) + ㅣ'로 적게 했다.
- 사이시옷을 쓰기 시작했다. 사이시옷을 한자로 쓴 한자어를 빼고 죄다 적어 받침으로 적을 수 없는 경우에도 ㅅ을 홀로 썼다. 예: 문ㅅ자(文字, '글자'의 이음동의어), 장ㅅ군(場君)
- 용례표로 ㄴ이 첨가될 경우 ㄴ을 표기
- 명사 가운데 의성어에 '이'가 붙어 생긴 명사는 발음대로 적는다. 예: 매아미(매미)
- 된소리를 현행처럼 각자병서로 쓰게 했다.
- 1921년에 추가가 보류된 받침이 추가되어 받침을 더 많이 쓸 수 있게 됐다. ㅋ, ㅎ / ㄶ, ㅀ, ㅆ 만 빼고 다 쓸 수 있게 됐다. '좋다', '했다' 등은 여전히 '조타', '햇다'로 적었다.
- ㅊ받침으로 끝나는 단어들은 뒤에 ㅌ을, ㅌ받침으로 끝나는 단어는 뒤에 ㅊ을 적었다.
크로스ex) 윷티(윷이) / 샅치(샅이) - ㄷ불규칙 용언에는 ㅅ받침을 썼다. (ㄷ규칙 용언은 ㄷ받침으로 쓰게 함)
- 용언 ‘-아/-어’형에서 어간 끝소리가 ‘ㅣ, ㅐ, ㅔ, ㅚ, ㅟ, ㅢ’일 경우에 '되여'와 같이 ‘-여’를 붙인다. 이 부분은 현행 북측 맞춤법과 같다.
- 가나
- 된소리와 복모음이 빠짐만 빼고 현재와 같다.
- 고전의 아래아를 아로 읽게 했다.
3.7.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
위키문헌 한국어판一、 한글 마춤법(綴字法)은 표준말을 그 소리대로 적되、 語法에 맞도록 함으로써 原則을 삼는다。
二、 표준말은 大體로 現在 中流 社會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
三、 文章의 各 單語는 띄어 쓰되、 토는 그 웃 말에 붙여 쓴다。
1. 한글 마춤법(綴字法)은 표준말을 그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으로써 원칙을 삼는다.
2.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
3.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쓰되, 조사는 그 위의 말에 붙여 쓴다.
二、 표준말은 大體로 現在 中流 社會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
三、 文章의 各 單語는 띄어 쓰되、 토는 그 웃 말에 붙여 쓴다。
1. 한글 마춤법(綴字法)은 표준말을 그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으로써 원칙을 삼는다.
2.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
3.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쓰되, 조사는 그 위의 말에 붙여 쓴다.
조선어학회에서 발표한 통일안이다. 당시에 '마춤법'이라고 하였으나 1940년부터 '맞춤법'으로 바뀌었다.
- 된소리를 적는 데에 각자병서(쌍자음)을 적게 되었다.
- 어중의 된소리는 나눠서 적지 않고 쌍자음으로 적는다. ex) 오빠(그 전엔 '옵바')
- 두음법칙 적용
- 어원이 뚜렷하지 않은 'ㄷ' 받침은 그냥 'ㅅ'으로 적는다. ex) 짓밟다(그 전엔 '짇밟다')
- 받침 ㅋ, ㅎ/ㄶ/ㅀ, ㅆ을 드디어 쓸 수 있게 되어 현행 한글 자모 40자가 확정됐다. 여기서 규정되지 않은 자모는 옛한글 자모로 간주되어 인코딩도 뒤늦게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있다', '않다', '닳다' 같은 표기가 생겼다(그 전까지 '잇다', '안타', '달타'였다).
- '하다'를 ㅎ받침으로 줄일 수 있다. ex) 부지럲다(부지런하다), 아니하다/아니 하다(않다)
- 이때부터 '-읍니다'도 쓰였는데, 그전까지 '옵바', '햇습니다'처럼 쓴 것에 착안해 /ㅆ/를 /ㅅ/+/ㅅ/의 합으로 여기면서 'ㅄ' 뒤와 'ㅆ'인 어휘 뒤에 '했읍니다'처럼 '-읍니다'를 쓰게 했다. (현행 맞춤법은 '-습니다')
- 방언이나 고어를 위해 'ᇚ'과 같은 받침도 쓸 수 있게 됐다. 다만 'ᇚ' 받침은 약 반세기 뒤에 규정에서 제외되었다.
- ㅅ ㅈ ㅊ을 첫소리로 삼는 ㅑ ㅕ ㅛ ㅠ를 ㅏ ㅓ ㅗ ㅜ로 적는다. 현재와 달리 'ㅅ'도 들어가 있다. 참고로 이렇게 표기가 강제 교정된 뒤에 다시 '사'와 '샤'의 발음이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이전 시대에 '샤', '셔' 등으로 발음되던 어휘는 전부 '사', '서' 등으로 발음이 변화되었다. '星'의 표기가 '셩'에서 '성'으로 바뀐 까닭이다.
- 띄어쓰기
- 보조 용언은 붙여 쓴다.
- 의존 명사는 붙여 쓴다. 현행 맞춤법에서는 띄어 쓴다.
- 숫자는 10진법에 따라 띄어 쓴다. 예: 일억 삼천 사백 육십만 이천 오십 사
- 문장 부호
- 세로쓰기용 구두점만 인정했으나 1940년에 가로쓰기용 구두점도 인정. 현행 맞춤법에선 가로쓰기가 대세가 되면서 도리어 세로쓰기용 구두점이 폐지되었다.
- 따옴표 역시 세로쓰기용 꺾쇠만 인정했지만 가로쓰기용 " 따옴표도 인정.
- 고유 명사에는 줄을 그었다. (이전에도 조금씩 쓰임)
현행 맞춤법에서는 44항에 따라 만 자릿수마다 띄어 쓴다. 단, 두음 법칙은 단어마다 적용되기 때문에, 6을 륙으로 적진 않는다. 예: 일억 삼천사백육십만 이천오십사
1936년에 《사정한 표준어 모음》을 내며 표준어휘를 지정하고 1937년에 반영하였으며, 1940년에 수정안을 냈다. 이전에 잠시 'ㄹ꼬', 'ㄹ까'를 현재 북측 맞춤법과 같이 'ㄹ고', 'ㄹ가'로 적은 적이 있다. 글자 사이에 ㄴ삽입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 담ㅅ요처럼 죄다 사이시옷을 넣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나온 시를 보면 산새를 산ㅅ새라고 쓴 것도 있다. 이런 조항은 1940년에 개정하면서 폐지되었다. 1940년 제2차 수정 때에 제19항의 ‘갖후다·낮후다·늦후다·맞후다’의 사동사 파생 접미사 ‘-후-’를 ‘-추-’로 고치면서 ‘마춤법(=맞훔법)’도 ‘맞춤법’이라 쓰기로 했다.
이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남북 각각에서 맞춤법 파동이 생겼다. 북에서 형태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남에서 표음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파동이 생겼지만, 둘 다 파동으로 끝나고 완화되어 아직도 남북 맞춤법은 1940년에 수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기본으로 거의 유사하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위 인용문의 구절은 현대 한국어 관련 규정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는 점이다. 통일안 1항은 현대 한글 맞춤법 1장 1항,(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과 2항은 표준어 규정 1부 및 한글 맞춤법 1장 1항(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과, 3항은 맞춤법 1장 2항(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과 5장 41항(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3.8. 대한민국
3.8.1. 한글 간소화안(1953)
한국어 위키백과 문헌이승만은 1949년에 당시의 철자법을 폐지하고 구한말 시대의 철자법으로 돌아가자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동안에 형태주의적 요소를 많이 받아들인 한글 맞춤법이 구한말 시대의 한글 맞춤법보다 배우기 어렵다는 것. 1953년에 국무총리령이 발표되어 이 건을 밀어붙이게 됐다. 하지만 국어학자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고, 문교부 장관이 연달아 사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승만은 1954년에 “3개월 이내에 현행 맞춤법을 버리고, 구한국 말엽의 성경 맞춤법에 돌아가라.”라는 담화를 발표했으며, 새로 임명된 문교부 장관이 일단 간소화 안을 발표하고 무작정 국무 회의를 통과시켰다. 그러자 더욱더 각지의 반발과 비난이 빗발쳤으며, 이승만은 결국 1955년에 이 방안을 취소했다.
- 받침은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ㄺ, ㄻ, ㄼ만 허용한다. 언문 철자법 시기와 동일. ex) 잊다 → 잇다
- 용언의 어간은 받침으로 쓰지 않고 연철해서 쓴다. ex) 잊으니 → 이즈니
- 어원은 표시하지 않는다. ex) 길이 → 기리 , 낱낱이 → 낫나치
3.8.2. 한글 맞춤법(1988)
상위 문서: 한글 맞춤법- 모음조화나 형태에 어긋나게 굳어진 채로 널리 쓰이면 굳어진 것을 표준어로 삼는다. ex) 깡충깡충, 설거지
- 기술자는 '-장이'로, 그 밖엔 '-쟁이'로 나누어 쓴다. ex) 미장이 / 개구쟁이
- '-읍니다', '-읍니까', '-오'는 더는 안 쓰고 '-습니다', '-습니까', '-소', '-(으)오'만 쓴다.
- 외래어에서 장음은 따로 적지 않는다. ex) 유우에프오우 → 유에프오/뉴우요오크 → 뉴욕(원칙대로는 '뉴요크'이나 관용상...)
1985년에 개정 작업을 시작해 1988년 1월 19일에 한글 맞춤법을 고시하여 1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1989년 3월에 시행했다(#). 현재 우리가 쓰는 맞춤법은 1988년에 확립된 것이다. 사이시옷과 띄어쓰기 규정도 이때 크게 바뀌었는데, 어려움과 비일관성으로 비판점이 상당한 편이다.
3.8.3. 문장부호 맞춤법(2014)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 10월 27일에 현행 한글 맞춤법 중 문장 부호의 용법만을 일부 수정하는 개정안을 고시했다. 글쓰기 환경이 원고지에서 컴퓨터,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로 변하는 것에 맞춰 키보드에서 쓰기 쉬운 부호·기호·특수 문자를 기존 부호와 함께 쓸 수 있도록 '문장부호' 맞춤법이 개정되었다.개정안의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으면 조금 더 쉽게 풀어쓴 글을 읽어 보자.
현재의 한글 맞춤법(국립국어원)
3.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3.9.1. 조선어 신철자법(1948)
위키문헌꽤 특이한 맞춤법으로 이 맞춤법에서는 각종 불규칙 용언의 어간 말음을 나타내거나, 반모음을 나타내는 새로운 자모 6개를 추가되어 있다. 그러나 상당히 이질적이기도 했거니와, 조선어 신철자법을 주도한 인물이었던 김두봉이 실각하면서 다음에 만들어진 조선어 철자법에서는 폐지되었다.
- 6개의 자모가 추가되었다. 해당 자모들은 대부분 불규칙 용언들을 규칙 용언으로 만들기 위한 자모들이다.
- 어간 끝에서 탈락하는 ㄹ: 𠀀 비슷한 모양인 글자, ㄹ에서 첫 번째 가로획을 오른쪽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글자(T를 가로로 길쭉하게 쓴 후 C를 ㄷ자로 각지게 쓴 획을 이어 놓은 문자.)가 쓰였으며 이를 빼지 않고 적어 규칙 용언화하였다. ex) 놀(노+𠀀)ㅂ니다 (현행은 '놉니다')[18]
- ㅅ 불규칙 용언 어간 끝 ㅅ: 훈민정음에 있던 ㆆ(여린히읗)을 다시 활용하였다. ㅎ과는 반대로 뒤에 예사소리를 된소리를 바꾸다는 점과 ㅎ으로 끝나는 용언이 ㅅ 불규칙 용언으로 바뀌기도 하는 점이 영향을 준 듯 하다.
- ㄷ 불규칙 용언 어간 끝 ㄷ: 훈민정음에 있던 ㅿ(반치음)을 다시 활용하였다.
- ㅂ 불규칙 용언 어간 끝 ㅂ: Y 비슷한 글자가 쓰였다. 어원적으로는 ㅸ(순경음 비읍)을 쓰는 게 옳을 텐데 왜 이랬는지는 불명. 사실상 [w]를 위한 전용 글자를 만든 셈.
- 르 불규칙 용언 어간 끝 르: 巳 비슷한 모양의 글자가 쓰였다. 사실상 ㄹㄹ을 위한 전용 글자를 만든 셈. '벌레'도 버巳ㅔ'로 쓰도록 되어 있다.
- ㅎ 불규칙 용언 어간 끝 ㅎ: ㅎ을 빼지 않고 적어 규칙 용언화하였다. ex) 하얗ㄴ (현행은 '하얀')[19]
- 앞의 모음 ㅣ가 뒤의 모음 ㅓ를 만나 [j]로 변할 땐 두 글자를 합쳐 ㅕ로 쓰는 게 아니라 ㅣ를 1 비슷한 다른 글자로 썼다. 사실상 [j]를 위한 전용 글자를 만든 셈. 이대로라면 '버리- + -어'는 '버려'가 아니라 '버ㄹ1어'가 된다.[20][21]
- 방언을 위해 ㄹ+ㆆ, ᇚ 등의 받침을 쓸 수 있게 됐다.
- 사이시옷은 어깨표(')로 바꾸었다. 남측에서 1946년에 적용했다가 1948년에 철회한 방안이다.
- 몌/폐는 '메', '페'로 적는다.\[유지\]
- 두음법칙 폐지.\[유지\]
3.9.2. 조선어 철자법(1954)
1948년에 제시된 조선어 신철자법이 지금도 유지되는 조항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문제가 많았고, 때마침 김두봉이 실각하자 북측에서 1954년에 개정한 철자법이다.- 사이시옷 어깨표(1966년 조선말 규범집에서 폐지), 몌/폐를 '메', '페'로 표기, 두음법칙 폐지를 제외한 조선어 신철자법의 모든 조항을 폐지했다.
3.9.3. 조선말 규범집(1966)
#1987년과 2010년에 각각 개정되었다.
- ‘-ㄹ까, -ㄹ꼬, -ㄹ쏘냐’는 'ㄹ가', 'ㄹ고', 'ㄹ소냐'로 적는다.
- 앞의 ㅣ때문에 뒷소리가 '여'로 나면 '여'로 적는다. ex) 되여
- (사이시옷 현상을 적던) 어깨표 폐지. 사이시옷으로 복귀하지 않아 사이시옷을 표기하지 않게 되었다. '샛별', '빗바람'등은 예외. 남한도 사이시옷을 적용하지 않는데 발음에서 사이시옷이 드러나는 경우가 존재한다. 한자어는 소리가 덧나더라도 '곳간(庫間), 셋방(貰房), 횟수(回數),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이 여섯 개의 예외를 제외하고 사이시옷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대가, 개수, 기점, 초점, 시가, 호수(號數나 戶數), 도수가 대표적인 예다.
- 명사가 조사 없이 이어서 쓰이는 경우 붙여 쓰는 걸 원칙으로 한다.
- 의존명사는 붙여쓴다.
- 보조용언은 붙여쓴다.
- 따옴표는 《 》를 쓴다.
4. 여담: 한글 전산화 역사
- 타자기 수입: 구한말에 타자기가 수입되면서, 타자기로 작성이 가능한 풀어쓰기 주장이 힘을 얻었다. 다만, 가독성 문제 때문에 논란이 유지되었다.
- 공병우 타자기 발명(1950): 타자기에서 모아쓰기가 가능하게 되었다. 풀어쓰기 논란은 사라지게 되었다.
- 6.25 전쟁 발발(1950): 신속한 문서 작성이 생명이었으므로, 지휘부 내에 타자기의 보급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공문서에서 한자가 사라졌고, 가로쓰기가 표준화 되었다.
미군: 세계 최빈국인 나라에서 최첨단 타자기, 그것도 자국 언어 전용이라니(...) - 타자기 글쇠 개량 및 한영 타자기 개발: 세벌식 타자기로 찍힌 한글이 네모꼴이 아니여서 다섯벌타자기(자음 받침 없음, 자음 받침있음, 모음 받침 없음, 모음 받침 있음, 받침) 네모꼴로 한글을 찍을 수 있게 했다. 한영 겸용 타자기까지 출시되었다. 2단 타자기의 경우 한글과 영문 대문자를, 하프 시프트를 이용한 3단 타자기의 경우 한글과 영문 대, 소문자를 모두 지원하였다.
- 개인용 컴퓨터 개발(1981): 삼보컴퓨터에서 1981년 1월 국산 개인용 컴퓨터(PC) 1호 ‘SE-8001’을 개발하였다. 이후 애플2 호환기종(1982), IBM 호환기종(1985) 제품을 선보이면서 컴퓨터를 보급하는데 앞장섰다.
- 두벌식 자판 표준화(1982): 기계식 타자기에서 두벌식을 안정적으로 구현하였고[22], 해당 자판 배열은 컴퓨터 키보드로 이어진다.
- EUC-KR(1987): 완성형 한글 인코딩이 KS C 5601(1974)에서 KS C 5601-1987로 업데이트 되었다. 자주 쓰는 한글 2350자만 지원한다. 문장부호도 ASCII 특수 기호 내지는 유럽의 문장부호를 그대로 쓸 수 밖에 없었고, 낫표 같은 동아시아 기호는 전산환경에서 사라졌다. 시기상 1988년 맞춤법 개정안을 반영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DOS와 Windows 95에 적용되면서 널리 사용된다. 현재 KS X 1001 표준으로 이름이 바뀌어 존재한다.
- 교육용 PC 사업(1989): 학교에 PC를 보급하는 사업. 8비트
게임기컴퓨터에서 16비트 컴퓨터로 못을 박은 사업이며, 아울러 한글 인코딩에 다양한 종류가 있었고 각종 논쟁이 있었지만 이 기점으로 완성형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 유니코드 제정(1991): 문자 인코딩을 2바이트로 하면 전 세계 언어를 넣을 정도로 공간이 충분해지기 때문에 새로운 인코딩 체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 아래아 한글 2.0 출시(1992년): 독자적인 한컴 2바이트 코드를 도입하였다. 조합형 한글을 쓸 수 있어 똠방각하, 비행기가 쓩~, 맨도롱 또똣, 살짝 설렜어 등 완성형에 없는 현대 한글과 옛한글을 쓸 수 있었고, 유니코드의 다양한 특수 문자가 도입되어 맞춤법에 맞는 각종 문장 부호를 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맞춤법 검사 기능이 있어 맞춤법을 지켜가며 글을 쓸 수 있는 이점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맞춤법이 왜곡되는 일을 억제할 수 있었다.
- Windows 95 출시(1995): DOS에 비해 컴퓨터 사용이 훨씬 편해졌고 접근성이 좋아졌다. 한글 인코딩의 사실상 표준이 되어 난립하던 각종 인코딩을 정리하였지만, 조합형이 사장되었고, 역시나 여전히 다소 부족한 완성형 한정 한글 문자만 작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을 지킬 수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글 문서를 제대로 작성하려면 아래아 한글을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IMF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초고속 인터넷(정보기술 육성)[23]과 그 기반이 될 국민PC 보급사업(1999)을 시행하여 "집에 컴퓨터 하나 쯤"은 있게 만들었다. 즉 예전에는 전문가가 컴퓨터를 썼다면 이 기점으로
개나소나일반인들이 키보드로 글을 쓰고 인터넷으로 그 글을 공유하는 일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스타크래프트 GG(...) - Windows 98 출시: MS가 독자적으로 한글 문자를 추가 배정한 CP949 한글 인코딩을 도입하여 1만여자의 대부분의 한글 문자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아래아 한글에 비비지 못했다.) 이 확장 완성형 한글 인코딩의 단점이 있다면, 별도의 코드 범위에 문자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가나다 정렬을 올바르게 구현하려면 단순히 코드 순서대로는 불가능하다.
- Windows 2000 출시: 드디어 유니코드를 기본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여기에 설치되는 응용프로그램들도 유니코드를 지원하도록 개선되었다. 조합형 완성형 논쟁이 종결되었으며,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한글 문자(11172자)와 각종 문장부호를 문자 깨짐 없이 쓸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이런 환경이 되니 맞춤법을 지키기는커녕 이에 힘입어 외계어나 카오모지 같은 다양한 문자를 시도하기 시작한다. 다행히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난다.
- 메신저, 휴대전화 채팅 증가: 2000년대 전후 메신저가 널리 이용되고, 피처폰(SMS, 천지인 자판) 보급으로 글쓰기 환경이 크게 변화하였다. 글이 짧아지고 문어체보다 구어체, 통신체 글을 작성하는 일이 늘었다. 맞춤법 검사기가 없어 자주 틀리는 한국어를 자주 틀리게 되었다. 2010년대 스마트폰(화상 키보드) 보급이 시작되어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 인터넷 검색 생활화: 인터넷 글이 잘 검색되기 위해서는 글을 작성할 때 맞춤법을 잘 지키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해졌(었)다. 그러나 컴퓨팅 성능과 알고리즘 개선으로 맞춤법이 틀려 엄연히 검색어와 다른 글도 알아서 갖다바치는 검색 환경이 제공되기 시작한다. 검색어 맞춤법이 틀렸을 경우, 검색엔진이 맞춤법이 옳은 검색어를 추천해주거나 알아서 그 검색어로 검색하는 것도 당연시 되었다.
- 2014년 전산화 영향을 받아 문장 부호 관련 맞춤법이 개정되었다. 두벌식 키보드로 칠 수 없는 가운뎃점 같은 것은 타이핑이 어려운 관계로 결국 맞춤법을 바꾸게 하였다. 또한 세로쓰기에서 사용했던 고리점(。)과 모점(、)이 폐지되었다.
[1] 사실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ㆁ'은 훗날의 "훈몽자회"식 배열이고,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ㄱ, ㆁ, ㄷ, ㄴ, ㅂ, ㅁ, ㅅ, ㄹ"의 순서로 제시되어 있다. '아음(ㄱ, ㆁ), 설음(ㄷ, ㄴ), 순음(ㅂ, ㅁ), 치음(ㅅ), 반설음(ㄹ)'의 순이며, 같은 범주 내에서는 '전청자(무성무기음), 불청불탁자(공명음)'의 순으로 제시하였다.[2] 표기는 'ㅅ', 발음은 [ㄷ\](=[t̚\]).[3] 발음은 [ŋ\]으로 같되 표기가 'ㆁ'에서 'ㅇ'으로 바뀌었다.[4] 자음으로 끝나는 어간에는 매개 모음을 수반하는 어미가 결합하지만, 'ㄹ'로 끝나는 어간에는 받침이 본래부터 없다는 양 매개 모음 없는 형태가 붙는다. e.g. -(으)면: 먹으면, 안으면, 얻으면... vs. 가면, 살면[5] 오늘날에는 합성어 내부의 사이시옷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6] 받침과는 무관한 이야기지만, 두 번째 음절의 초성 'ㅵ'가 자음군인 것은 확실하되, 그 발음이 /pt’/인지 /pst/인지는 견해가 심하게 갈린다.[7] 종성 표기는 'ㄱ, ㆁ, ㄷ, ㄴ, ㅂ, ㅁ, ㅅ, ㄹ'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내용.[8] "'배의 꽃[梨花\]'을 이르는 'ᄇᆡᆺ곶', '여우의 가죽[狐皮\]'을 이르는 '여ᇫ의갗'과 같이, 'ㅅ'자로 통용이 가능하다."[9] 한편 /여ᅀᆞ+의/가 표의주의를 따랐을 때는 '여ᇫ의'로, 표음주의를 따랐을 때는 '엿의'로 표기되는 과정은 다소 독특하다. 즉 '여ᅀᆞ'에 '의'가 결합할 때, 체언의 제2음절 끝 'ㆍ'만 탈락한 후(오늘날의 체언과 조사 결합에서는 체언 끝 모음 탈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남은 자음 'ㅿ'은 종성에 씀으로써 'ㆍ'의 탈락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까지만 드러내면 '여ᇫ의'가 된다. 그리고 이때 이어지는 '의'의 초성자 'ㅇ'은 무음가가 아니라 유성 반찰음 [ɦ\]이므로, 자음 앞에서의 'ㅿ'은 'ㅅ'으로의 음절의 끝소리 규칙을 적용받게 되는데, 이 과정까지 반영한 표기가 '엿의'이다. 우리말샘 '여우' 및 중세 한국어 참고.[10] 실록 한문 입력판에 '으이의 합음'으로 잘못되어 있다. 국문 번역 자료에 맞게 되어있다.[11] 신정국문 본문에서 '아래아를 폐지한다'라는 구절은 없으나 중성 단락에서 아래아를 포함하지 않음으로써 지석영이 아래아를 폐지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래에 '중첩음의 삭제' 부분에서 아래아를 'ㅏ'로 바꾸는 부분에서도 나타난다.[12] 실록에서는 '벌랄렬'로 되어있으나, 의정부 관보의 원문은 '벌릴렬'이 맞다. 실록에서의 오기.[13] 실록 입력본에는 'ᄭᅡ'가 누락되어 있다. 실록 원본과 관보 원본엔 모두 'ᄭᅡ'가 존재한다.[14] 실록 입력본에는 '써'로 입력되어 있으나, ㅂ계 합용병서에 대한 언급이므로 원 표기를 살려서 표기하여야 한다.[15] 훈민정음에서는 현재의 ㄱ/ㅋ/ㄲ의 예삿소리/거센소리/된소리를 全淸(전청), 次淸(차청), 全濁(전탁)으로 구분하였는데 '激'이라는 표현을 새로 도입한 것이다.[16] 링크된 디지털한글박물관 입력본에는 ㅍ이 빠져있다.[17] 대체로 훈몽자회를 따랐으나, 훈몽자회에서는 ㅋㅌㅍㅎ 등을 종성으로는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티읕'이라고 부르지 않고 '티'라고만 하였다. 당장 바로 위의 신정국문까지만 해도 'ㅌ, ㅊ' 등은 '티, 치'로 부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18] 사실 완전히 규칙 용언화하려면 '먹습니다'와 마찬가지로 '놀(노+𠀀)습니다'로 하는 게 옳긴 하다. 실제 발음인 [놈ː니다\]를 완전히 도외시하기도 애매했던 모양.[19] 사실 완전히 규칙 용언화하려면 '좋은'과 마찬가지로 '하얗은'으로 하는 게 옳긴 하다. 실제 발음인 [하ː얀\]을 완전히 도외시하기도 애매했던 모양.[20] 그런데 여기에 [j\] 첨가까지 일어난 형태를 인정했는지 위 링크의 문헌에는 '버ㄹ1어'가 아니라 '버ㄹ1여'라고 되어 있다. [pʌ̹.ɾjʌ̹\]가 아니라 [pʌ̹.ɾjjʌ̹\]를 쓴 셈.[21] 어간이 'ㅣ'로 끝나는 용언 중, 그 'ㅣ'가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반모음 [j\]로 바뀌는 것(지-[負\], 치-[打\], 버리-[棄\]...)은 'ㅣ'를 '1'로 쓰게 하고, 그 'ㅣ'가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반모음 [j\]로 바뀌지 않는 것(기-[匐\], 아니-[否\], 미-[破裂窓紙, 팽팽한 가죽이나 종이 따위를 잘못 건드려 구멍을 내-\])은 그냥 'ㅣ'를 쓰게 했는데, 이 구분이 어째 자의적이다.[22] 초창기 풀어쓰기 타자기나 전신용 타자기에서는 (비표준) 두벌식을 사용하였으나, 기계식에서는 핀이 엉키는 문제가 있어 그 이후 세벌식, 네벌식을 주로 쓰고 있었다.[23] 김대중대통령이 그 당시 잘 나가던 사업가 손정의(와 그와 함께 온 친구 빌 게이츠)의 조언을 얻어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