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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왕-무왕 단종/등장인물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죽지 않는 왕-무왕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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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부
2.1. 대조선국2.2. 대두국
3. 2부
3.1. 대조선국
3.1.1. 황실3.1.2. 군부
3.1.2.1. 해군3.1.2.2. 육군
3.1.3. 조정
3.1.3.1. 근해당
3.1.4. 민간
3.2. 해외3.3. 2부 외전

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죽지 않는 왕-무왕 단종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2. 1부

2.1. 대조선국

2.2. 대두국

3. 2부

권람이나 이극균이 유술양란의 주요 인물이라 처형되면서 2부 시대에 활동했어야 할 그들의 후손인 권율과 이덕형은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언급이 있는데 부계가 남아서 이어진다면 1부 인물들의 생몰년이나 모계가 뒤바뀌었어도 대다수는 원역사와 동일한 인물이 후손으로 등장한다. 예를들어 로마노프 가문은 황실이 아닌 재상가문인데다가 고두노프 황가에 숙청당하면서 평민들과 통혼해왔으며 니콜라이 2세가 되었어야 할 선비 니콜라이의 부인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이었음에도 둘 사이에는 아나스타샤를 포함한 5남매가 태어다. 다만 이게 불변의 법칙은 아닌지 신숙주나 조광조의 가문은 오리지널 창작 인물들이 후손으로 등장한다. 원역사의 조광조는 아들 조정이 요절하고 양손자가 대를 이었기에 후손이 바뀌더라도 무방하지만 신숙주의 후손 쪽은 모계가 바뀌었다고 해도 별다른 설명 없이 창작 인물로 대체되었다.

3.1. 대조선국

3.1.1. 황실

3.1.2. 군부

3.1.2.1. 해군
3.1.2.2. 육군

3.1.3. 조정

3.1.3.1. 근해당

3.1.4. 민간

3.2. 해외

3.3. 2부 외전

본명은 "정성공[49]"으로 조선에 병합된 대두국 왕가의 후손. 그가 제임스의 아이들을 만든 이유는 조선의 첩자로써 중화 러시아와의 전쟁을 기획하기 위한 밑작업으로, 반조선 사상을 가진 조직원들을 이끌고 조선군 병사로 자원한 후 기밀을 탈취해 러시아에 전달하는 것이었다. 다만 위장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라 기밀을 훔쳐 전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조직원들도 정성공에게 이용당한 것이며, 조선이 아직 핵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했지만 러시아군을 퉁구스카 대폭발(혜성 충돌설) 지점으로 끌어들여 일소한 후 핵미사일이라고 발표하기 위한 가짜 정보를 넘긴 것이었다.}}}


[1] 홍길동에게 폭사당한 후 신체를 재구성할 때 그슨대 오류로 계속 재생하는 상태가 되어 불로불사를 획득했으나 그슨대에는 오류가 계속 누적되었고, 그게 리스본에서 총을 맞으면서 결정타가 되어 그슨대가 오류 수정을 위해 시스템을 종료했고, 독을 먹고 죽었을 때 마침 그슨대가 복구되어 살아난 것.[2] 시경 정풍편의 子惠思我 搴裳涉溱(자혜사아 건상섭진)에서 따왔다.[3] 이는 추후 조선 황가 및 친왕가의 남아에게 길쌈과 관련된 이름을 붙이는 관례가 되었다.[4] 국내 대소신료의 가문에 정민공주가 시집을 가면 당연히 공주는 왕실의 권위를 이용해 집안에서 폭발물 실험을 하려고 할 텐데, 자칫 사고라도 나면 가문이 통째로 폭발해서 증발할 수 있기 때문에 대소신료들이 공주를 꺼린 것이다.[5] 사실 이는 유하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는데, 실수로 주먹을 날려 양의전을 때려부순 유하가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길 때 숙빈 홍씨와 혜빈 양씨의 공식적인 내명부 서열 그대로 궁을 배분했으며 혜빈은 이를 일방적인 축출로 받아드린 것이다. 당연히 혜빈에 대한 일말의 애정도 없는 유하로선 황당한 노릇.[6] 작중에서 여진족 시체다리의 전설은 두고두고 남아 조선의 악행 중 하나로 전래된다.[7] 여진과의 전쟁 중, 창을 들고 이유시합에게 '남자답게 겨뤄보자'라고 소리친 후, 남이에게 쌓인 원한이 컸던 이유시합이 창을 들고 달려오자 총으로 쏴죽여 버린다.[8] 일본 제국루거우차오 사건이나 다를바 없는 짓이라 주인공의 부하임에도 욕을 먹는다.[9] 단 이것은 유하의 잘못도 있는데, 유하가 사관이 기록하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겨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왜곡된 역사가 바로잡히지 않은 채 그대로 정설로 굳은 것.[10] 이건 주인공의 의도적인 전략이었는데, 조선의 산업화에는 현대에서 가져온 지식과 과학적 사고방식을 주입당한 관학파가 필수적이라고 여겨서 과거제도를 은근슬쩍 입맛대로 개혁했다. 그 결과 관학파는 의도적으로 키워지고(마침 정계를 장악하고 있던 관학파도 이를 좋아하거나 묵인했고), 사림파는 의도적으로 정계 진출이 완전히 틀어막히면서 김종직 같은 사림파 선비까지 출세가 불가능해진 것.[11] 작중에서 주인공이 현대에서 배웠던 서양식 수학적 지식과 과학적 사고방식을 통틀어 신사학이라고 부르며 왕이 가르친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어사학이라고도 불린다.[12] 그 와중에 주인공은 김종직 상소에서 자기가 원하는 부분만 체리피킹하여 신권을 제한하고 미신을 타파할 명분으로 삼는다.[13] 신사학 입장에서 주요 업적으로는 사림파를 설득해서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사림파에게 신사학의 유용성을 설파한 것, 화학에서 이론적 토대를 확립한 것 등이 있다. 다만 화학적 이론의 토대를 세우게 된 연유는, 돈이 없는 사림파가 과학적 연구를 참여하려니 이론적 연구밖에 할 게 없어서 반강제적으로 이론적 토대나 확립하게 된 것이고, 그나마도 처음에는 음양오행설에 경험적 화학 지식을 강제로 끼워맞춘 것에서 화학 이론이 시작하기는 했다. 다만 이런 엉터리 이론에 점차 피드백이 가해지고 현대적 화학 지식이 있는 왕이 이런 피드백 과정에 개입하면서, 수백 년 후에는 사림파의 화학이 결과적으로 현대 화학이론에 가깝게 변하기는 했다.[14] 사림파의 시선에서 주요 업적으로는 무당과 미신을 탄압하는 데 앞장선 것, 명나라와의 전쟁 중에 조선의 칭제건원을 제안하는 등 사림파를 전쟁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 등이 있다. 보면 알겠지만, 사림파 입맛에도 맞고 주인공의 입맛에도 맞는 경우에만 주인공이 김종직을 밀어줬다.[15] 아이누족을 충동해서 북주에 전쟁을 유발했지만 밀항중 유하가 퍼뜨린 공중보건 개념과 군용 구급법을 활용해 버팔로에 치인 수학 인재 광덕을 살려내어 의도치 않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16] 초반에는 대두국 사절로 활동하기 위해 홍아라는 가상의 국왕을 만들어 왕자 홍수민이라는 신분을 쓰다가 나중에는 홍아와 홍수민을 사망처리하고 여왕으로 직접 등극한다.[17] 자기는 주인공의 신하가 아니니까 명령질 하면서 선 넘지 말라는 말인데 괜히 자기도 책임질 사람들 있다는 말을 덧붙여서 자기도 한국인 정체성 버리고 해적왕 역할에 심취해 있으면서 자기 편할 때만 공화국 국민이었다는 핑계 대면서 욕을 박는 앞뒤가 안 맞는 발언으로 보이기 딱 좋았기 때문. 이건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장면을 쓸데없이 기분나쁘게 묘사해서 괜히 독자 기분만 잡치게 만들고 주인공의 최중요 협력자에게 비호감 스택을 쌓아준 작가가 문제다. 미개인 발언 이후로는 문제가 되는 묘사도 딱히 없다.[18] 반대로 신하도 부하도 아닌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들까지 휘말릴 수 있는 위험을 강요하는 갑질이라 주인공에 복종할 이유가 없다며 유하쪽을 비판하는 의견도 강하며, 미개인 발언에 기분나빠한 사람들도 이건 인정한다. '독자들이 이입하는 대상인 주인공에게 비판을 하는 것 자체가 독자들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데, 그럴 거라면 좀 점잖은 워딩을 쓰던가, 하다 못해 논리적으로 앞뒤는 맞는 반박을 해야 할 것 아니냐?'와 '계속 등장하는 레귤러 조역 캐릭터에게 왜 비호감 스택을 쌓아서 읽기 싫게 만드느냐?' 가 문제시되는 것. 주인공에게 각종 비판과 팩트폭행을 가하면서도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캐릭터를 만드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니며, 실제로 동 작가의 차차기작 탐태창에서는 이런 캐릭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런 캐릭터는 대체로 확고한 신념이 있을 것이 전제가 되는데 미개인 발언은 내로남불이었으니... 초기작이라서 나온 필력 이슈다.[19] 첫 부하들은 전염병으로 전멸했다.[20] 이현의 아버지 이연(2부 시작 시점에서 심양왕)은 2대 심양왕 이원의 종증손뻘(동생의 증손)로 심양왕가의 직계가 아닌 방계인데 이현의 할아버지 대에서 직계가 끊겨 방계이지만 심양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현의 아버지도 본인 자체가 대단히 사업적 능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묘사가 나온다. 촌수를 따지면 이현은 2부 시작시점 황제인 이헌의 9촌 조카, 태자 이환과는 10촌이 되므로 이환의 장례식때 친척의 복장(8촌까지)은 입지 못하고 신하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촌수가 상당히 먼데도 유력 황위계승자 중 하나로 꼽혔던 것은, 황족들이 일부일처의 풍습과 자식들을 군대에 복무시키는 관습 때문에 황족의 숫자 자체가 적었고, 원 역사에서도 조선 왕가는 직계가 끊어졌을 때 유럽처럼 촌수를 따져 가까운 순서대로 왕위계승서열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여러 정치적 상황과 계승자 본인의 품성을 고려하여 적당한 이를 골라 뽑아 양자를 들이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고조의 숙부들이 일으켰던 반란 때문에, 촌수로 따져서 동렬은 제위를 이어받지 못한다는 규정도 있어서 현 황제와 동렬인 심양왕이나 평양왕은 황위계승 후보자가 되지 못하고 그 아들들이 거론되는 것이다. 이현보다 가까운 핏줄은 몇명 있었지만(이휘수도 이현보다는 직계에 가까웠다) 문신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이 이현이었고, 군부의 지지도 이휘수를 통해 받게 되었다.[21] 즉위식 때 이현의 말을 듣던 사람들의 생각이 묘사되는데 '지탁(지구)의 모든 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한다'던가,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르는 오랑캐들이 재물 귀한 줄은 알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다니며 설치는데 불로 쓸어버려야지 무슨 소리냐?' 같은 생각을 하는 등 단 100년만에 조선이 꽤나 심각한 수준의 제국주의에 찌든 모습이 보인다.[22] 심지어 지기 싫다고 밑장빼기까지 했다.[23] 비의를 전수받은 이현의 입장에서야 이순신에게 경의를 담아 원역사의 그 유명한 검명을 새겨 보낸 것이지만 죽왕 세계관에서는 원정 준비 도중에 휘하에 배속되어 온 무의공 이순신과 한담하던 중에 이 문구를 풍월처럼 읊었던 지라, 황제의 시선이 온 나라의 모두에게 닿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여기며 더 진중하게 반응한다.[24] 물론 이전에도 국학자라 불리는 죽왕 조선판 환빠가 있긴 했다.[25] 곽거병이 러시아까지 가서 중화 문물을 전해주었다는 엉터리 학설[26] 이방(고조의 손자)의 현손으로 혈통으로만 따지면 계승서열 5위 안에 들고, 현 황제 이헌의 재종질(7촌 조카)로 이현보다는 직계에 약간 더 가깝다.[27] 이 둘은 황제 이천의 속마음까지 알지는 못했으나, 해금령을 계기로 자기들이 숙청당할 것이라는 계획은 짐작하고 있었으며 해금령을 내린 진짜 이유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28] 이휘수의 역모 소식이 조선에 전해지자, 황제 이천은 자신의 재능으로는 이휘수를 못막는다는 것을 알고 대안을 찾기 시작한다. 마침 흑심을 감추고 있던 이현이 황체 이천에게 접근해서 대신 이휘수를 막는다고 청하고 황제는 멍청하게 이를 승인하는 식으로 이현이 조선의 군권 및 실권을 장악하게 된 것. 물론 이게 쉽지는 않아서 이현은 황제에게 흑심을 철저하게 감추고 적당히 멍청한 척을 하는 한편, 군사로 이휘수를 막는 척만 하면서 자신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해 과로에 시달려야 했다. 마침 군부에서는 조충명을 필두로 해금령에 대놓고 반대하며 이현의 역모에 동참하는 세력이 등장했으며, 이순신을 필두로 해금령에 암묵적으로 반대하는 세력들은 이를 묵인하면서 이현의 구상이 그나마 성공하게 된 것이다.[29] 당연히 이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이현이 실권을 쥐는 것만으로는 조선 조정의 완전 장악은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휘수의 (가짜) 역모를 틈타 정여립이 이를 명분으로 이휘수와 독립적으로 역모를 일으켰는데, 이 때문에 생긴 혼란상을 이현이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이현이 조정을 완전 장악해야만 했다. 일단 사태가 진정되고는 이휘수의 역모는 사실 정여립이 일으킨 것이었으며 이휘수는 이름만 도용당한 것이기 때문에 이휘수는 누명을 썼으니 무죄라고 주장했다. 당연히 조선 신민들은 어딘가 수상한 면이 있는 사태 처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일단 해금령 철폐 반대 여론이 거세서 이현이 황제가 되는 걸 찬성 또는 묵인한다.[30] 물론 이휘수는 역모 누명이 나중에 벗겨졌다고는 하지만 일단 역모로 몰린 적이 있어 이휘수에 대한 조선내 여론이 나빠진데다 조선에서 황제가 이휘수와 이현 둘 다 될 수는 없었으므로, 이현이 조선 황제가 되는 대신 이휘수에게 여러 특권을 주기로 밀약을 맺었다. 우선 미래지식인 비의를 이휘수가 원할 때 열람할 수 있게 하는 권리를 주기로 했고, 이휘수에게 조선대원수 작위도 주었다. 그리고 다시금 조선이 팽창기를 맞자 그렇게 얻어낸 땅 중 영지를 3개나 주고 이에 따라 공작위도 3개나 주었다.[31] 정확히는 공부가 싫어서 공부를 빠지고 쉬려고 하다 마침 정여립이 삐라를 뿌릴 목적으로 띄운 비낭이 떨어지는 걸 보게 된 것이 원인이었다. 태자 이환은 거기로 달려가 아직 불씨가 남아있는 기름통을 보고 안전하겠다 싶어 거기 모여있던 백성들을 안심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비낭을 발로 찼는데, 예비용으로 달려있던 격발기가 터지는 바람에 소설에 묘사되길 산 채로 튀겨지는 변을 당한 것이다.[32] 이현의 원래 계획은 내각수상으로 실질적 권력을 잡아 해금령을 되돌리고 고조의 비의(미래지식)을 알아내는 것이었지, 태자를 죽이고 자신이 황제가 되는 진짜 반란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사고에 이현도 몹시 당황한다.[33] 즉, 입승대통.[34] 애초에 쓰고 있던 연금술과 야금술 관련 서적 때문에 이단심문관에게 마녀로 몰려 심한 고문을 당하고 목이 매달리기까지 했었기에 동향 사람들에게 절대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긴 하다. 물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제국주의자들에게 물든 영향도 없잖아 있겠지만.[35] 어린 이삭이 아버지의 앞에서 도덕과 검약의 가치를 논하자 이현은 태자의 스승들이 너무 고루한 사상을 심어 준 게 아닌가라며 의심하고, 대신들도 한때 조선에 그런 가르침이 있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36] 현사 함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아메리카로 원정을 떠나던 10척으로 이루어진 스페인의 대함대를 현사 3척으로 박살 냈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순신의 악명이 곡주에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이순신한테 직접 당한 스페인에서는 아직도 치를 떤다.[37] 귀국하는 영국 사신 일행을 일본까지 태워다 주고 곡주는 자신의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며 기뻐서 손수 만찬까지 대접할 정도였다...[38] 이때 유럽인들의 배신이 그의 섬세한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었다는 설명이 일품이다. 전에는 계속 온 세상에 패악질을 부리며 부를 빨아들이고 거침없이 확장하는 조선의 행보에 미약한 의심과 회의감을 품지만 유럽인들이 조선을 도모하려는 음모를 꾸몄음이 드러나자 역시 열성조들이 옳고 자기가 틀렸다며 분노에 차 곡주정벌을 준비한다.[39] 원 역사의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따와 이현이 임명했으며, 통제사라는 직함은 추후에도 남아 원 역사의 도원수를 대체한다.[40] 그와중에 맨손으로 조선 수군을 재건했던 원역사의 치트공답게 출발할 때 12척이었던 것이 곡주에 도착하니 61척으로 늘어나 오히려 전력을 크게 불렸다.[41] 제임스 1세가 잡혀간 후, 조선이 실종이라 발표한 제임스 왕을 못 찾은 신하들이 왕을 2번 바꾸었는데, 이 행위를 본 중화 러시아와 조선의 연합군이 재차 쳐들어온 전쟁. 그 결과로 반파됐던 런던이 아예 잿더미가 되고,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조선령, 스코틀랜드는 러시아령, 아일랜드는 러시아 손에 들어간 뒤 독립국이 되었다.[42] 그것도 자기 동생인 원연이다.[43] 시마즈의 비꼬는 말을 칭찬으로 알아듣고 감사를 표하자 능숙하게 받아친 것으로 오해해 고평가를 받거나 수급을 노리고 항복 사절을 공격했는데 사실 배에 화약을 싣고 자폭하러 오는 위장 항복이라 꿰뚫어 본 것으로 착각하고, 치열한 전투에 겁을 먹어 피아가 뒤섞여 전투를 벌이는 곳에 화포를 발사했는데 아군을 신경쓰지 않는 냉혹함에 겁먹은 적이 먼저 사기가 떨어져 패퇴하는 등 착각이 쌓여 시마즈를 주변에 적수가 없을 강국으로 만들었으며 해당 전투를 분석한 조선의 첩보에서도 작중 신숙주에 비견될 지략을 가진 자라고 오해했다.[44] 동양주(東洋州), 아메리카에 대한 외교를 담당.[45] 이휘수가 물려받아 지니고 다니던 고조의 신물 참적검이 이때 신립의 동양참마도에 부러지고 만다.[46] 나라를 세울 정도로 세력을 모으지 못해 황성인 아이신기오로는 창씨하지 않았다.[47] 가장 중요시하는 항목이 총탄과 포탄을 퍼부어서 얼마나 견디나 하는 내구성이었다. 신하들 모두 증기기관차의 개념을 듣자마자 두터운 장갑과 거대한 포를 싣고 용맹하게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부터 떠올렸고, 이현은 머리를 싸쥐었다.[48] 위의 그 제임스 1세가 맞다. 조선에서는 공식적으로 제임스 1세를 '실종' 처리 해버리고 영국 측에서는 제임스가 나라를 위해 희생했다고 날조하는 바람에 그가 언젠가 돌아온다는 믿음이 생겨났고, 2차 런던정벌로 인해 합병당한 후, 300년에 걸친 무자비한 탄압 밑에서도 그가 돌아온다는 명분으로 독립을 열망히는 지하조직들이 꾸준히 생겨난 것이다.[49] 대두국이 민영에 의해 날조된 나라인만큼 실제 역사의 정성공이 아닌 이름만 패러디한 동명이인.[50] 왜냐하면 조선인들은 소음과 빛을 폭탄의 전조로 여기기 때문. 덕분에 초기 기자들은 테러범으로 몰려 두들겨 맞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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