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222> | Home Nations |
{{{#!wiki style="margin: 0 -8px;" {{{#222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555,#aaa | | | | |
| ||||
|
럭비 풋볼 유니언 | |
Rugby Football Union | |
약칭 | RFU |
설립 | 1871년 1월 26일 |
본부 | 런던, 트위크넘 스타디움(82,000석) |
월드 럭비 가입 | 1890년 |
럭비 유럽 가입 | 1999년 |
후원자 | 캐서린 미들턴 (Princess of Wales)[1] |
회장 | 앤디 코슬렛 (Andy Cosslett) |
의장 | 피터 윌러 (Peter Wheeler) |
자회사 | 왕립 해군 럭비 유니언 (Royal Navy Rugby Union), Twickenham Experience Limited |
웹사이트 | |
[clearfix]
1. 개요
※ 럭비(Rugby)의 핵심 가치
- 팀워크 (Teamwork)
- 존중 (Respect)
- 즐거움 (Enjoyment)
- 규율 (Discipline)
- 스포츠맨십 (Sportsmanship)
2. 역사
럭비 풋볼 유니언은 1871년 1월 26일 런던의 Pall Mall 레스토랑에서 21개 클럽 대표들이 모여 열린 회의에서 결성되었다. 두 개의 소위원회가 경기의 규칙을 작성하고 스코틀랜드와 경기를 할 잉글랜드 대표팀을 선정하도록 요청받았으며, 그 해 말에 최초로 알려진 국제 럭비 풋볼 경기가 열렸다. 다른 나라들은 곧 그들만의 조합을 결성하였고, 1873년에는 스코틀랜드, 1879년에는 아일랜드, 1880년에는 웨일스가 결성하면서, 1883년부터 매년 Home Nations(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들의 경기가 개최되기도 하였다.회의에 참석한 21개 클럽은 아래와 같다.
럭비 풋볼 유니언 설립 멤버 | ||||
<rowcolor=#fff> 클럽 | 연고지 | 창단 년도 | 소속 리그 | 비고 |
블랙히스 FC (Blackheath Football Club) | 런던 | 1858년 | 내셔널 리그 1 | |
리치몬드 F.C. (Richmond Football Club) | 런던 | 1861년 | 내셔널 리그 1 | |
라벤스코트 파크 F.C. (Ravenscourt Park Football Club) | 런던 | 1865년 | - | 1880년 이전 해체 |
웨스트 켄트 F.C. (West Kent Football Club) | 치즐허스트 | 1867년 | - | 1902년 해체 |
말보러 노마드 (Marlborough Nomads) | 런던 | 1868년 | - | 1911년 해체 |
윔블던 RFC (Wimbledon RFC) | 런던 | 1865년 | 리저널 1[2] | |
집시 F.C. (Gipsies Football Club) | 런던 | 1868년 | - | 1880년 해체 |
시빌 서비스 (Civil Service) | 런던 | 1863년 | 리저널 1 | |
로우 F.C. (Law Football Club) | 런던 | 1870년 | - | 1874년 해체 |
웰링턴 칼리지 (Wellington College) | 크로우손 | - | RFU 네셔널 스쿨 컵 | |
가이스 호스피탈 F.C. (Guy's Hospital Football Club) | 런던 | 1843년 | BUCS 럭비 리그 | |
플라밍고스 F.C. (Flamingoes Football Club) | 런던 | 1866년 | - | 1877년 해체 |
클래펌 로버스 F.C. (Clapham Rovers Football Club) | 클래펌 | 1869년 | - | 1914년 해체 |
할리퀸 FC (Harlequin Football Club) | 런던 | 1866년 | 프리미어십 럭비 | |
킹스 칼리지 호스피탈 RFC (King's College Hospital RFC) | 런던 | 1869년 | 켄트 1[3] | |
세인트 폴스 스쿨 (St Paul's School) | 런던 | 1850년 | RFU 네셔널 스쿨 컵 | |
퀸스 하우스 F.C. (Queen's House Football Club) | 그리니치 | 1867년 | - | 1884년 해체 |
로잔 F.C. (Lausanne Football Club) | 페컴/덜위치 | 1867년 | - | 1881년 해체 |
애디슨 F.C. (Addison Football Club) | 켄싱턴 | 1869년 | - | 1875년 해체 |
모히칸스 F.C. (Mohicans Football Club) | 에드먼턴 | 1869년 | - | 1874년 해체 |
벨사이즈 파크 F.C. (Belsize Park Football Club) | 런던 | 1870년 | - | 1880년 이전 해체 |
- 미참석한 클럽
1) 워습스 RFC (Wasps RFC) : 워습스 RFC의 대표자가 회의에 참석할 수 없던 이유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첫번째 설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했지만, 오해로 인하여 잘못된 날짜와 잘못된 장소로 이동했다고 하고, 두번째 설로는 그가 같은 이름을 가진 장소로 갔지만, 그곳에서 많은 술을 마신 후에 너무 취해서 정확한 장소로 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 일링 풋볼 클럽 (Ealing Rugby Football Club) : Ealing Rugby Football Club (현재 Ealing Trailfinders)도 회의에 초대를 받았지만, 그들의 대표자는 퍼블릭 하우스에서 멈췄고 또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2) 일링 풋볼 클럽 (Ealing Rugby Football Club) : Ealing Rugby Football Club (현재 Ealing Trailfinders)도 회의에 초대를 받았지만, 그들의 대표자는 퍼블릭 하우스에서 멈췄고 또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1871년부터 사용되고 있는 RFU의 빨간 장미 엠블럼 |
- 남북 분단(THE NORTH-SOUTH SPLIT)
이러한 럭비 경기의 인기는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대부분의 잉글랜드 럭비 선수들에게 많이 기여한 랭커셔와 요크셔 지역에 해당하는 잉글랜드 북부 지역에서도 더욱 빠르게 증가했다. 19세기 영국 신사사회에서 스포츠는 순수하게 취미로 즐기는 아마추어를 숭상했고 돈을 받고 뛰는 프로는 하층민이나 하는 매우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여, 럭비 풋볼 유니언(RFU)은 계속 아마추어를 유지했기 때문에 다른 업종에 종사하고 있기도 하는 럭비 선수들은 손실된 소득을 보상받기 위해 "브로큰 타임(Broken time)"[4]에 대한 지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럭비 풋볼 유니언(RFU)의 엄격하고 확고한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1895년 결국 거대한 분열이 생겼다. 허더즈필드의 조지 호텔에서는 22개의 북부 럭비 클럽이 럭비 풋볼 유니언(RFU)으로부터 사임하였고, 이들은 북부 연합(노던 럭비 풋볼 유니언)을 결성하여 지금의 럭비 리그가 탄생하게 되었다.
100년 이상이 지난 1995년, 국제 럭비 위원회(International Rugby Board, IRB)[5]는 럭비 풋볼 유니언(RFU)의 반대 투표에도 불구하고, 경기 개방을 선언하였고 드디어 럭비는 프로페셔널리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하지만, 이러한 럭비 풋볼 유니언(RFU)의 엄격하고 확고한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1895년 결국 거대한 분열이 생겼다. 허더즈필드의 조지 호텔에서는 22개의 북부 럭비 클럽이 럭비 풋볼 유니언(RFU)으로부터 사임하였고, 이들은 북부 연합(노던 럭비 풋볼 유니언)을 결성하여 지금의 럭비 리그가 탄생하게 되었다.
- 포스터 (Poster)
1914년 8월 4일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을 때, 럭비는 다른 스포츠들과는 달리 대응의 신속성에서 두드러졌으며, 잉글랜드 럭비 풋볼 유니언 대표팀은 새로운 전투에 직면하게 되었다. 바로 90% 이상의 럭비 선수들이 조국을 위해 군대에 입대하였고, 몇몇 선수들은 궁극적으로 희생을 치르기도 하였다. 이것은 럭비 선수(Rugby Union Footballer)들에 의해 만들어진 사례였으며, 당시 영국의 육군성은 다른 스포츠맨들에게 군대에 입대함으로써 럭비 유니언 선수들의 '영광스러운 모범'을 따르라고 충고하는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는 잉글랜드 신사의 덕목에 있어 가장 본질적 요소인 용기와 희생에 대한 이야기이며, 1914년과 1918년 사이에 국제 럭비 선수들이 영국의 거의 모든 전쟁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2.1. 150 Years
150 Years Logo |
2021년은 세계 최초의 럭비 풋볼 협회인 럭비 풋볼 유니언(RFU)의 150주년을 기념한다. 게다가 1871년 3월 27일 에든버러 레이번 플레이스에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간의 최초로 국제 경기가 열렸다.
150 Years of English Rugby |
2.2. 문장
Coat of arms of Rugby Football Union |
이 문장은 럭비 풋볼 유니언(Rugby Football Union)의 문장이며, 1970년 6월 10일에 채택되어졌다. 모토(Motto)는 라틴어로 "RUGBEIA FLOREAT UBIQUE"이며, 영어로는 "Rugby flourishes everywhere"라는 뜻으로, 럭비는 어디에서나 번창한다라는 뜻이다. 오른쪽 사진은 1971년 4월 잉글랜드 럭비 국가대표팀과 President's Overseas XV팀[6]과의 경기에서 발행된 공식 프로그램 책자로서, 럭비 풋볼 유니언의 문장이 나타내어져 있다. 이 경기는 럭비 풋볼 유니언의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치러졌다.
3. Royal Patrons
영국 왕실의 후원자
* 엘리자베스 2세[7] : 1952년 ~ 2016년 12월 #
* 서식스 공작 헨리 왕자 : 2016년 12월 ~ 2021년 2월
* 웨일스 공비 캐서린 : 2022년 2월 ~ 현재
* 엘리자베스 2세[7] : 1952년 ~ 2016년 12월 #
* 서식스 공작 헨리 왕자 : 2016년 12월 ~ 2021년 2월
* 웨일스 공비 캐서린 : 2022년 2월 ~ 현재
Royal Patron |
4. Swing Low, Sweet Chariot (응원가)
Swing Low, Sweet Chariot은 잉글랜드 럭비 유니언 대표팀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팬들로부터 불려지는 응원가이다. 특히, 잉글랜드 럭비대표팀의 홈 경기장인 트위크넘 스타디움에서 매우 흔하게 불려진다. 1988년 Five Nations 챔피언십[8]의 마지막 경기인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럭비대표팀의 크리스 오티(Chris Oti)[9]가 3번의 트라이(Try) 득점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하자, 관중석에 있던 베네딕토회 학교인 두에(Douai) 학교의 남학생들은 이 노래를 불렀고, 다른 관중들도 이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기 시작한데서 유래되었다. 그 이후로 "Swing Low, Sweet Chariot"은 잉글랜드 럭비대표팀의 응원가가 되었고, 1991년 럭비 풋볼 유니언(RFU)의 마케팅 디렉터인 마이크 콜리(Mike Coley)는 그 해 럭비 월드컵에 앞서 이 노래를 출시하기도 하였다. 원래 예루살렘(Jerusalem)을 사용하길 원했지만, 예루살렘(Jerusalem)은 그 해에 럭비 리그 컵 결승전에서 사용되었고, 그래서 "Swing Low, Sweet Chariot"으로 갑자기 변경하게 되었다. 예루살렘(Jerusalem)은 잉글랜드 럭비 유니언 대표팀 경기시작 전에 연주되고 있다.Jerusalem Sung at TwickenhamThe Story of Swing Low and England Rugby |
5. 국가대표팀
- 럭비 유니언
- 잉글랜드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 잉글랜드 A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 2군 대표팀으로 가장 최근엔 잉글랜드 색슨스, 그 이전엔 이머징 잉글랜드, 잉글랜드 B 등으로 불렸다.
- RFU 챔피언십 XV - 말 그대로 2부 리그 선수들로 이루어진 대표팀이다.
- 잉글랜드 카운티스 XV - 3부 이하 리그 선수들로 이루어진 대표팀으로, 2009년 대한민국을 방문한 적 있다. 당시 국가대표에 준하는 한국 팀을 108:10으로 압도해버렸다.
- 잉글랜드 U-20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 잉글랜드 U-18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 잉글랜드 여자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 잉글랜드 여자 U-18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 럭비 세븐스[10]
- 잉글랜드 7인제 럭비 국가대표팀
- 잉글랜드 여자 7인제 럭비 국가대표팀
6. 주관 대회
클럽 대회는 2022년 리그 시스템 개편 이후를 기준으로 한다.수준 | 리그 | 리그컵 | ||||||
1부 | 프리미어십 럭비 | 프리미어십 럭비 컵 | ||||||
2부 | RFU 챔피언십 | RFU 챔피언십 컵 | ||||||
3부 | 내셔널 리그 1 | - | ||||||
4부 | 내셔널 리그 2 | 노스 | 이스트 | 웨스트 | ||||
5부 | 리저널 1 | 6개 권역 | ||||||
6부 | 리저널 2 | 12개 권역 | ||||||
7부 | 카운티스 1 | 18개 권역[11] | RFU 인터미디어트 컵 | |||||
8부 | 카운티스 2 | 24개 권역[12] | RFU 시니어 바스 | |||||
9부 | 카운티스 3 | 00개 권역 | RFU 주니어 바스 | |||||
10부 | 카운티스 4 | 00개 권역 | ||||||
11부 | 카운티스 5 | 00개 권역 |
클럽 대회뿐만 아니라 주 대항전도 있다. 카운티 챔피언십[13]은 3개의 디비전으로 나뉘며, 1889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2023년 켄트주가 우승했으며, 랭커셔주가 역대 25회 우승으로 가장 많다.
과거엔 디비전 간 대항전인 "디비저널 챔피언십"도 있었으나, 1995년 폐지되었다. 디비전 내 주 대항전도 20세기에 모두 사라졌다. 현재 RFU가 아닌 지역 협회가 운영하는 대회는 디비전 예하 주 협회[14] 주관 컵 대회만 남아 있다.
6.1. 리그 구조 변천사
4부 이하에선 수시로 명칭이나 구조따위가 바뀌었기 때문에, 큰 틀에서 주요 개편 사항만 작성한다. 이 중 2009년과 2022년은 대대적인 개편으로 여겨진다.|| 구분 || 1987년 || 1997년 || 2000년 || 2009년 || 2017년 || 2022년 ||
- 2009년 대개편
- 2부 : 완전한 프로화. 16팀에서 12팀으로 감축.
- 3,4부 : 14팀에서 16팀으로 증편.
- 5부 : 런던 디비전이 런던&사우스이스트 디비전으로 명칭 변경.
- 2022년 대개편
- 3부 : 16팀에서 14팀으로 감축. 이하 시즌 기간 단축.
- 4부 : 16팀에서 14팀으로 감축. 이하 권역 세분화로 팀 간 이동 거리 경감. 2권역에서 3권역으로 세분화.
- 5부 : 4권역에서 6권역으로 세분화. 이하 14팀에서 12팀으로 감축.
- 6부 : 8권역에서 12권역으로 세분화.
7. 하부 조직
당연하지만 서술된 조직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2><tablebordercolor=#162545><#b31f1d><color=#fff> 노던 디비전 - RFU 노스 ||
8. 기타
RFU 규정에 따르면, 잉글랜드에서 순백의 유니폼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단 세 팀뿐이다. 하나는 잉글랜드 대표팀, 또 하나는 럭비의 발상지인 럭비마을의 럭비팀 럭비 라이언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럭비마을에 있는 럭비스쿨의 럭비팀이다.9. 둘러보기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십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잉글랜드 | 스코틀랜드 | 웨일스 | |
아일랜드 | 프랑스 | 이탈리아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fff> 유러피언 프로페셔널 클럽 럭비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796027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EPCR 이사회 | ||||||||||
EPCR 집행위원회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EPCR 주관 대회 | |||||||||||
[1] 이전에는 서식스 공작 헨리 왕자(Duke of Sussex)가 후원자였다.[2] 5부 리그[3] 카운티스 3(9부 리그)[4] 평소 다른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아마추어 경기자가 국제 대회나 기타 경기 대회에 참가한 기간 중 보수, 또는 수당이 중단된 시간을 말한다.[5] 현재는 월드 럭비(World Rugby)[6] 월드 XV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초청된 선수들로 구성된 럭비 유니언 팀이며, 보통 국가 대표팀을 상대로 축하 경기에 참가하기 구성되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테스트 경기로 간주되지 않는다.[7]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잉글랜드 럭비 풋볼 유니언과 함께 웨일스 럭비 유니언의 후원자이기도 하였다.[8] 現 Six Nations 챔피언십[9] 1906년 흑인 럭비선수로써 최초로 잉글랜드 럭비대표팀에 데뷔한 지미 피터스(Jimmy Peters) 이후로 1988년 80년만에 잉글랜드 럭비대표팀으로 출전한 잉글랜드의 첫 흑인출신 럭비선수이다.[10] SVNS와 올림픽엔 그레이트 브리튼으로 참가.[11] 카운티스급 대회이지만, 여러 주(County) 가 묶여있는 대회다.[12] 실질적인 주 단위 리그로, 과거 몇몇 지역에선 "주 이름+프리미어"로 불렸다.[13] 빌 보몬트 회장의 이름을 따 대회명도 빌 보몬트 카운티 챔피언십이고 컵 이름도 빌 보몬트 컵이다.[14] 이스트 미들랜드, 노스 미들랜드 RFU같은 권역 이름을 달고 있는 협회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