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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colbgcolor=#DC143C><colcolor=#ece5b6> 제남문정왕(濟南文貞王) 원광 | 元匡 | |
시호 | 문정(文貞) |
작위 | 광평왕(廣平王) → → 제남왕(濟南王) |
성 | 탁발(拓跋) → 원(元) |
휘 | 광(匡) |
자 | 건부(建扶) |
생몰 | ? ~ 525년 |
출신 | 하남군(河南郡) 낙양현(洛陽縣) |
친부 | 탁발신성(拓跋新成) |
양부 | 탁발낙후(拓跋洛侯) |
형제자매 | 7남 중 5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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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위의 황족. 경목황제 탁발황의 손자. 양평유왕 탁발신성의 5남이었으나, 숙부인 광평상왕 탁발낙후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그의 양자로 입적하여 광평왕 작위를 이었다.2. 생애
원광은 성품이 강직하고 올곧아 기개와 절개가 있었다. 효문제 원굉은 그를 높이 평가하며 말하기를,"숙부는 반드시 사직의 본보기가 되어 짐을 보좌할 것이다. 이제 그의 이름을 '광(匡)'으로 바꾸어 끝까지 아름다움을 완성하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효문제가 붕어하고 선무제 원각이 즉위하자, 원광은 여러 차례 승진하여 급사황문시랑을 지냈다. 당시 여호(茹皓)라는 간신이 처음으로 총애를 받기 시작하자, 백관들이 그를 은근히 두려워하였다. 선무제가 산릉(山陵)에서 돌아오던 길에 원광에게 마차를 함께 타라고 명하고, 또한 여호에게도 마차에 오르라고 명하였다. 여호가 옷자락을 들어 마차에 오르려 하자, 원광이 나서서 간언하며 이를 막았다. 이때 선무제는 원광의 간언을 받아들여 명령을 취소하였고, 여호는 원광에게 크게 분노하며 낯빛이 변하여 물러갔다. 이 일로 당대 사람들은 원광의 충성스럽고 강직한 성품을 높이 평가하였다.
선무제가 친정을 시작하면서 원광을 사주자사(肆州刺史)로 임명하였다. 원광은 이미 총신 여호와 대립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로 인해 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청렴하고 신중하게 자신을 수양하며 매우 높은 명성을 쌓았다. 이후 원광은 승진하여 항주자사(恆州刺史)로 임명되었고, 다시 조정에 소환되어 대종정경(大宗正卿)•하남읍중정(河南邑中正)을 지냈다.
한번은 원광이 상소하여, 친왕(親王)들 중 초번(始籓)[1]과 이번(二籓)[2]의 아내들은 모두 '비(妃)'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데, 삼번(三籓)[3] 이하의 아내들은 '비(妃)'가 아닌 '처(妻)'로 불리며, 윗사람들은 비호(妃號)를 받을 수 없음은 물론, 아래로는 오품(五品) 이상의 명부(命婦) 칭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점에 의문을 표하였다. 이에 선무제가 조서를 내려 말했다.
"남편이 조정에서 귀하면 아내도 그 집안에서 영예를 누리는 법이다. 부녀(婦女)의 신분은 일정하지 않으며, 남편의 지위에 따라 올라간다. 삼번(三藩)도 이미 왕으로 봉해졌으니, 그 아내의 칭호 또한 마땅히 동등해야 한다. '처(妻)'라는 것은 남편과 동등하지 않음을 의미하니, 지위가 이미 동등하다면 '비(妃)'의 칭호를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
이로써 삼번왕(三藩王)의 아내들도 '비(妃)'라는 칭호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원광은 탁지상서(度支尚書)에 제수받았다.어느 날, 원광이 상소하여 낙릉(樂陵)과 장무(章武)의 예를 들어, 후사 없이 사망한 탁발낙후의 작위를 자신이 계승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선무제는 이를 상서성(尚書省)에 넘겨 논의하게 하였고, 상서성에서는 '가문이 단절되지 않도록 작위를 계승하는 것이 합당하니, 그가 탁발낙후의 작위를 잇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이로써 원광은 탁발낙후의 양아들로 입적되어 광평왕(廣平王) 작위를 계승하였다.
정시 5년(508년) 7월, 원광은 외척인 상서령 고조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언제나 그에게 굴복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당시 선무제는 정사를 고조에게 맡기고 있었기에, 조정에서는 모두 고조를 두려워하고 경외하였으나, 오직 원광만은 고조와 대립하며 맞섰다. 그는 미리 자신의 관(棺)을 준비하여 청사에 두고, 그 관을 메고 궁궐로 나아가 고조의 죄악을 논하고, 자결로써 절실한 간언을 하려는 뜻을 품었다. 고조는 이 소식을 듣고 원광을 더욱 꺼리게 되었다.
한번은 원광이 조정에서 태상 유방(劉芳)과 권량(權量)에 대해 논쟁을 벌이던 중, 고조와 감정적으로 말다툼하는 사건이 터졌다. 이에 어사중위 왕현(王顯)이 원광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고, 이로 인해 원광에게는 고조를 모함했다는 죄명으로 사형에 처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선무제는 그를 용서하고 사형을 면제해 주며, 광록대부(光祿大夫)로 강등시켰다. 얼마 뒤, 원광은 다시 종정경(宗正卿)을 겸직하고, 연주자사(兗州刺史)로 임명되어 지방으로 떠나게 되었다. 원광이 떠나기 전, 선무제는 동당(東堂)에서 그를 만나 격려하고 위로하였다. 이때 원광은 여전히 척도(尺度)와 금석(金石)에 관한 일이 국가의 중요한 기본 원칙임을 강조하며, 비록 이전에 남대(南臺)에서 이 문제로 탄핵을 받았지만, 다시 논의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잠시라도 돌아와 논의에 참여할 수 있기를 청원하였다. 그러자 선무제가 말했다.
"유방(劉芳)은 당대에서 학문이 뛰어나고 옛 전통에 정통하다. 그가 근거한 바에 따르면, 이전 왕조의 척도(尺)가 기장(黍) 한 알만큼 길이가 더 길었다고 한다. 한데 어찌하여 다시금 이전 왕조의 뜻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연주(兗州)에서도 그대의 주장은 근거가 없을 것이니, 이후 다시 논의할 때 굳이 수도에 와서 참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선무제가 붕어하고 효명제 원후가 즉위하자, 원광은 어사중위로 임명되었다. 원광은 탄핵을 엄격히 시행하여, 처음에는 시중 어충(於忠)을 탄핵하고, 그 다음에는 고총(高聰) 등을 탄핵하여 모두 면직시킬 것을 조정에 건의하였으나, 영태후 호씨가 이를 불허하였다. 원광이 탄핵이 거부된 것을 이유로 불쾌한 마음을 품으니, 영태후는 그가 사임할 것을 염려되어 그를 안정시키기 위해 안남장군(安南將軍)으로 승진시키고, 이후에는 진동장군(鎮東將軍) 직위를 더해주었다.
원광은 이전에 자신의 탄핵 사유가 되었던 측량 기준에 무척 집착하여, 효명제 시기에도 여러 차례 저울과 측정 기준을 개정할 것을 요청하였다. 결국 효명제가 조서를 내려 말했다.
"저울과 측정을 신중하게 다루는 것은 예로부터 중요한 법제였고, 규범을 정하고 제도를 개혁하는 것은 과거 시대의 훌륭한 전례에 따른 것이다. 원광은 종실(宗室)의 현명하고 신뢰받는 인물로, 오랫동안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으니, 이제 다시 유학자와 고귀한 인사들을 모아 그 시기에 맞게 검토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라. 그리하여 반드시 저울과 측정 기준을 올바르게 조정하도록 힘쓰고, 길이와 측정이 어긋나지 않도록 하라."
또,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고(故) 광평상왕 탁발낙후는 공종(恭宗)의 혈통을 이어받았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국가의 제사가 끊기고 제사를 지내지 못하였다. 이 제사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원광은 친족으로서 아들처럼 가까우며 오랫동안 이 일을 이어왔으니, 마땅히 성벽처럼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 이 가문의 반석 같은 지속을 영원히 보장해야 한다. 그러므로 특별히 왕작을 계승하게 하여 그를 동평군왕(東平郡王)으로 봉하라."
이후 원광이 자신이 제정한 척도(尺度)를 마친 후, 조정의 관리들을 모아 옳고 그름을 논의하여 확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효명제는 이를 문하성(門下省), 상서성(尚書省), 삼부(三府), 그리고 구열(九列)에 넘겨 논의하게 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지시하였다. 태사•고양왕 원옹 등은 이 문제를 논의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엎드려 생각하건대, 고조(高祖)께서 이미 저울과 측정 기준을 새로 개정하셨고, 그것은 이미 확정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원광이 새로 만든 기준은 기존 것과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원광은 자신이 제정한 척도가 《한서(漢志)》에 기록된 왕망의 저울과 곡식 단위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거 진(晉)의 중서감 순욱이 말하기를, '후한(後漢)에서 위나라(魏)에 이르기까지, 척(尺)은 옛날보다 4분의 1 이상 길어졌다.'고 하였습니다.이에 《주례(周禮)》에 의거하여, 기장(黍)을 쌓아 척도와 양을 정하였고, 오직 옛날의 옥률(玉律)과 종(鐘)을 기준으로 삼아 이를 수정하였습니다.
조사해보니, 순욱이 만든 척도와 고조께서 정한 척도는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또한, 시중 최광(崔光)이 고대의 상아로 된 척도(象尺)를 발굴하여, 당시 이를 기준으로 사용하도록 논의하여 결정하였습니다. 생각건대, 효문황제께서는 덕(德)이 전대의 왕들을 뛰어넘으셨고, 지혜와 명철함으로 아래를 밝게 비추셨으므로, 효문황제께서 만든 법제는 변함없이 확고한 것이며, 이를 변경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신 등은 논의한 끝에, 원광의 개정안을 중단하고, 영구히 선황제의 제도를 따를 것을 청합니다."
이에 효명제가 원옹 등의 말을 따랐다.조사해보니, 순욱이 만든 척도와 고조께서 정한 척도는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또한, 시중 최광(崔光)이 고대의 상아로 된 척도(象尺)를 발굴하여, 당시 이를 기준으로 사용하도록 논의하여 결정하였습니다. 생각건대, 효문황제께서는 덕(德)이 전대의 왕들을 뛰어넘으셨고, 지혜와 명철함으로 아래를 밝게 비추셨으므로, 효문황제께서 만든 법제는 변함없이 확고한 것이며, 이를 변경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신 등은 논의한 끝에, 원광의 개정안을 중단하고, 영구히 선황제의 제도를 따를 것을 청합니다."
원광이 매번 상주할 때마다 상서령•임성왕 원징이 이를 거듭 반대하는 동시에 원광의 권한을 박탈하였다. 원광은 성격이 강직하고 고집이 있어, 이 일로 인해 내심 불만이 쌓였다. 그가 이전에 고조와 대립할 때 준비했던 관(棺)은 아직 사찰에 있었는데, 그는 그 관을 꺼내어 그때의 계획을 다시 준비하며, 원징과 대립해 싸울 생각을 품었다. 하지만 임성왕 원징은 또한 원광의 의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후 원징이 조정에 가는 도중에 원광과 마주쳤고, 두 사람의 마부들이 서로 싸움을 벌여 조정과 민간에 큰 피해를 주었다. 원징은 이 사건을 계기로 원광의 죄상 30여 조항을 상소하였고, 이에 따라 정위(廷尉)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효명제는 이 사건을 팔좌(八座)에게 넘겨 의논하게 하였고, 그 결과 특별히 사면하여 그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동평왕 작위를 박탈하고 면직시켰다. 삼공낭중(三公郎中) 신웅(辛雄)이 그의 사건을 처리하였다. 얼마 뒤, 원광은 특별히 복직되어 평주자사(平州刺史)로 임명되었고, 다시 청주자사(青州刺史)로 옮겨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우도독(關右都督)•상서행대(尚書行臺)를 지내다가 병을 얻어 수도로 돌아왔다.
효창 원년(525년), 원광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본래 작위가 복구되었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라 하였다. 이후 제남왕(濟南王)으로 고쳐 봉해졌다. 그의 작위는 넷째 아들 원헌(元獻)이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