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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1-02 00:15:28

울원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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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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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서기(序記)」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탁발부 · 대나라 탁발규 탁발사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5권 「고종기(高宗紀)」 6권 「현조기(顯祖紀)」
탁발도 · 탁발황 탁발준(浚) 탁발홍
7권 「고조기(高祖紀)」 8권 「세종기(世宗紀)」 9권 「숙종기(肅宗紀)」
원굉 원각 원후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원자유 원공 · 원랑 · 원수 원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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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열전(列傳) ]
13권 「황후전(皇后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경목공황후 · 문성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풍폐후 · 효문유황후 · 효문소황후 · 선무순황후 · 선무황후 · 선무영황후
효명황후 · 효정황후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탁발흘라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 · 탁발간(簡) · 탁발약 · 탁발맹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위조 · 막함 · 유고인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27권 「목숭전(穆崇傳)」
장손숭 · 장손도생 장손비 · 울고진 목숭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해근 · 숙손건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우율제 고호 · 최영 · 봉의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35권 「최호전(崔浩傳)」 36권 「이순전(李順傳)」
왕낙아 · 차노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최호 이순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39권 「이보전(李寶傳)」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이보
40권 「육사전(陸俟傳)」 41권 「원하전(源賀傳)」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육사 원하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47권 「노현전(盧玄傳)」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두근 · 허언 · 이흔 노현
48권 「고윤전(高允傳)」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고윤 이령 · 최감 울원 · 모용백요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이효백 · 이형 유아 · 고려 유명근 · 유방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58권 「양파전(楊播傳)」
정희 · 최변 고우 · 최정 양파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한기린 · 정준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이표 · 고도열 왕숙 · 송변 곽조 · 장이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67권 「최광전(崔光傳)」
형만 · 이평 이숭 · 최량 최광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견침 · 고총 최휴 · 배정준 · 원번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이주영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노동 · 장열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손소(孫紹) · 장보혜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이염지 · 조영 · 상경
83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84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85권 「문원전(文苑傳)」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86권 「효감전(孝感傳)」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87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88권 「양리전(良吏傳)」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89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90권 「일사전(逸士傳)」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91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92권 「열녀전(列女傳)」
임성국태비
93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94권 「엄관전(閹官傳)」
종애 · 구락제 · 단패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사마예 · 이웅 환현 · 풍발 · 유유 소도성 · 소연
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101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102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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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정 24사 관련 틀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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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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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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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 ||
<colbgcolor=#dc143c><colcolor=#fff> 산양경환공(山陽景桓公)
尉元 | 울원
시호 경환공(景桓公)
작호 부성남(富城男) → 태창후(太昌侯)
→ 박릉공(博陵公)
→ 회양공(淮陽公) → 회양왕(淮陽王)
→ 산양군 개국공(山陽郡開國公)
울지(尉遲) → 울(尉)
원(元)
구인(茍仁)
생몰 413년 ~ 493년 9월 3일
부친 울목근(尉目斤)
출신 항주(恆州) 대군(代郡)
1. 개요2. 생애3. 가계

1. 개요

북위의 인물이자 선비족으로 중산(中山) 태수 울목근(尉目斤)의 아들. 본래의 성은 '울지(尉遲)'이나, 효문제의 한화 정책으로 '울(尉)'로 모두 바뀌었다.

2. 생애

울원은 대대로 선비족 내에서 세력 있는 가문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 울목근은 용맹하고 책략에 능하여 당시에도 명성이 있었는데, 태상 연간(416년 ~ 423년)에 전장군(前將軍)으로 임명되어 호뢰(虎牢) 전투에 종군하였고, 군공을 세워 중산태수(中山太守)에 임명되었다.

울원은 19살에 활쏘기를 잘하여 이름을 떨쳤다. 신가 연간(421년 ~ 431년)에는 호분중랑장(虎賁中郎將)을 지냈고, 이어 우림중랑(羽林中郎)으로 전임되었는데, 조심스럽고 공손하며 엄숙한 태도로 쉬지 않고 근면하게 일하여 인정을 받았다. 태무제 탁발도는 그가 너그럽고 품위 있으며 풍채가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하여, 점차 승진시켜 가부급사중(駕部給事中)에 임명하였다. 이후 태무제가 해변 지방으로 행차할 때 울원으로 하여금 그를 수행하게 하였고, 부성남(富城男)의 작위를 하사하였으며, 녕원장군(寧遠將軍)의 칭호를 더해 주었다.

화평 연간(460년 ~ 465년)에 울원은 북부상서(北部尚書)로 승진하고, 산기상시(散騎常侍)를 더하였으며, 작위도 태창후(太昌侯)로 진봉되었고, 관군장군(冠軍將軍)을 겸임하였다.

천안 원년(466년) 10월, 송나라의 서주(徐州) 자사였던 설안도가 팽성(彭城)을 들어 귀순하자, 조정은 울원을 사지절(使持節)•도독동도제군사(都督東道諸軍事)•진동대장군(鎮東大將軍)•박릉공(博陵公)으로 삼고, 성양공 공백공(孔伯恭)과 함께 그를 돕게 하였다. 이때 송나라의 무염수주(無鹽戍主) 신찬(申纂)이 거짓 항복을 청하자, 울원은 그것이 진심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듯 보이면서 안으로는 몰래 대비하였다. 과연 신찬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염에 주둔하면서 북위군의 진격을 방해하다가 후속 부대로 온 정남대장군 모용백요에게 패주하였다.

천안 원년(466년) 11월 29일[1], 울원이 하구(瑕丘)에 이르자, 송나라의 연주(兗州) 자사 필중경이 동평(東平) 태수 장구환(章仇𢶏)을 울원의 군영에 보내 귀순을 청하였고, 울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곧장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였고, 송나라의 장수 주개(周凱)는 울원의 명성을 듣고 도망쳤다. 이에 송나라의 황제 명제 유욱은 장수 장영(張永), 심유지(沈攸之) 등을 보내 설안도를 토벌하게 하고, 하개(下磕)에 주둔시켰다. 이때 장영은 우림감 왕목지(王穆之)에게 병사 5,000명을 맡겨 무원(武原)에서 군량을 지키게 하고, 용양장군 사선거(謝善居)에게 병사 2,000명을 맡겨 여량(呂梁)을 점거하게 하였으며, 산기시랑 장인(張引)에게 병사 2,000명을 맡겨 수유(茱萸)를 수비하게 하여, 세 곳에서 조세와 군량을 수송하며 군대를 지탱하게 하였다.

천안 2년(467년) 정월, 울원이 마침내 팽성에 이르니, 설안도는 성을 나와 울원을 영접하였고, 울원은 조정의 명에 따라 그를 서주자사(徐州刺史)로 임명하였다. 이어 중서시랑 고려, 이찬 등에게 명하여 설안도와 함께 팽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였고, 별도로 공백공에게 정예병 2,000명을 주어 성 안팎을 안정시키게 하였다. 그런 뒤에 울원 자신도 팽성에 입성하였다.

울원은 장영이 여전히 요충지를 점거하고 있어 공격과 방어 모두 불리하고 아군의 피해가 클 것을 우려하였다. 이에 설안도에게 이찬 등과 함께 굳게 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정예병을 이끌고 외부에서 군세를 드러내며, 여량을 공격하여 적의 군량 보급로를 끊으려 하였다. 여량을 지키던 사선거는 울원에게 크게 패하여 수유로 도망쳤고, 곧 장인 등과 함께 다시 수유를 버리고 동쪽 무원으로 달아났다. 울원은 기병을 보내 추격하여 800여 명의 목을 베었다. 하지만 무원에 모여 있던 적병 8,000여 명은 끝까지 저항하며 항복하지 않았다. 결국 울원은 직접 갑옷을 입고 사방에서 공격하여 왕목지의 바깥 진형을 무너뜨리고, 병력의 절반 이상을 사살하였으며, 그들의 군량 수송 수레 500여 대를 노획하여 팽성을 지키는 아군에게 공급하였다. 그 뒤 군대를 거두고 공격을 늦추며 퇴로를 열어주자, 왕목지는 남은 병력을 이끌고 장영의 군영으로 도망쳤다.

울원의 맹공으로 인해 장영의 세력은 이미 꺾여 기세가 약해졌고, 울원은 이를 기회로 삼아 장영을 포위하고 남문을 공격하였다. 장영이 마침내 성을 버리고 밤에 도망치니, 울원은 공백공, 설안도를 보내 그 기세를 타고 이를 추격하게 하였다. 당시 큰 진눈깨비고 몰아쳤고, 사수(泗水)가 얼어붙은 상태여서 장영은 배를 버리고 도주하였으나, 울원은 이미 미리 장영이 반드시 도망칠 것이라 예측하고, 친히 군대를 이끌고 그의 도주로를 차단하였다. 그리고 남북에서 협공하여 여량 동쪽에서 대승을 거두어 수만 명의 목을 벴으며, 60여 리를 추격하는 동안 적의 시신이 무수히 포개졌고, 얼어 죽거나 손발이 동상으로 떨어져 나간 자가 열 중 여덟아홉에 달하였다. 또, 송나라의 익양현후 원공조(垣恭祖), 우림감 심승백(沈承伯) 등 수많은 적장들을 생포하였다. 장영은 동상으로 발을 잘라낸 채로 심유지와 함께 경기병을 이끌고 가까스로 도망쳤고, 울원은 그들의 배, 수레, 군수 물자, 병기 등을 헤아릴 수 없이 노획하였다.

당시 송나라의 동서주(東徐州) 자사 장당은 단성(團城)을 지키고 있었고, 서주자사 왕현재(王玄載)는 하비(下邳)를 방어하고 있었으며, 연주(兗州) 자사인 번창후 왕정(王整)과 난릉(蘭陵) 태수 환흔(桓忻)은 백성들을 몰아낸 뒤에 민가를 약탈하고 요새로 들어가 스스로 지켰다. 울원은 그들을 위무하고 설득하고자 사자를 보냈고, 장당, 청주(青州) 자사 심문수 등이 모두 사자를 보내 항복의 뜻을 전하였다. 이때 왕정과 환흔도 서로 함께 귀순하였다.

이후 울원은 조정에서 표문을 상주하여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팽성(彭城)의 창고가 텅 비고, 백성들의 기색에 굶주림이 드러나니, 기주(冀州), 상주(相州), 제주(濟州), 연주(兗州)의 곡식을 운반해주시길 청합니다. 장영(張永)이 버리고 간 배 900여 척을 이용해 청하(清河)를 따라 운송하면, 새로 귀부한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헌문제 탁발홍이 이를 허하였다. 이에 울원은 또다시 표를 올려 병력을 나누어 수비를 배치하고, 나아가 청주(青州)와 기주(冀州)를 평정할 계획을 진언하였다. 이어 다시 상주하여 말하였다.
"팽성은 적이 반드시 노리는 요충지로, 곡식을 쌓고 굳게 지켜야만 지킬 수 있습니다. 만약 양식을 넉넉히 비축하고 수비를 강화한다면, 설령 유욱(劉彧)이 전 병력을 동원하더라도 감히 회북(淮北) 지역을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지형이 자연히 만들어주는 유리한 형세입니다."
그러자 조서가 내려졌다.
"후속 군대가 도착하거든 상황에 따라 수비를 정하라. 청주와 기주에는 이미 군대를 파견했으니, 반드시 평정된 뒤 군량을 다시 운반하라."
울원이 다시 상주하였다.
"신은 명을 받고 국경 밖으로 출정하여 두 해를 거듭 지냈습니다. 그러나 나아가서는 등애(鄧艾)처럼 단번에 거둔 공도 없고, 물러서서는 양호(羊祜)처럼 국경을 안정시킨 계략도 없으며, 비록 회대(淮岱)의 땅은 반듯하게 세워졌지만, 백성들의 마음은 아직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신은 어리석은 재능으로 외방의 직책을 맡고 있어, 만일 일이 마땅하다면 반드시 이를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은 앞서 표문에서 아래에서 말했듯 하비(下邳)는 수륙 교통이 집중되는 곳이므로 먼저 평정할 계획을 세우고 병사를 보내 여러 차례 토벌하였으나, 아직 생포하거나 평정하지 못했습니다. 팽성의 사람들은 명령에 순종하고 있는 상태이나, 이 성의 사람들은 본래 적의 땅에 속해 있었던 자들이라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하며 마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속이고 현혹되며, 허황된 기대를 품고 있고, 남쪽에서 올라오는 소식이 차단되어 전달되지 않으니,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끝내 항복하려 하지 않습니다. 팽성 백성 임현랑(任玄朗)이 회남(淮南)에서 진영으로 와서 말하길, 유욱(劉彧)의 장수 임농부(任農夫)와 진현달(陳顯達)이 병사 3천을 이끌고 숙예(宿豫)를 따라 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곧바로 그날 정찰병을 은밀히 보내어 진위 여부를 확인하게 하였고, 실제로 임현랑의 말과 같았습니다. 신은 직접 나가 그들을 치려 하였으나, 군량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새로 귀부한 백성들이 동요할까 염려되어 신의 아들과 도장(都將) 우답천(于沓千), 유룡구(劉龍駒) 등에게 보병과 기병 5,000명을 맡겨 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병사들은 징집된 지 오래되어 탈주자가 많고, 서로 선동하여 의지를 굳히는 자가 없으며, 병기 또한 파손되어 쓸 만한 것이 없습니다. 신은 들으니 '나라를 치는 일은 중대하므로 옛사람들도 어렵게 여겼고, 비록 공이 세워질 수 있더라도 반드시 계략을 세워야 한다'라 하였습니다. 만약 적이 팽성을 공격한다면 반드시 청하(清河)와 사수(泗水)를 지나, 숙예를 거쳐 하비를 통과할 것이며, 청주로 향하더라도 역시 하비를 지나 기수(沂水)를 건너 동안(東安)을 경유할 것입니다. 이들 지역은 곧 적이 병력을 운용하는 요충지입니다.

지금 하비를 먼저 평정하고, 숙예를 진압하고, 회양(淮陽)을 방비하며, 동안에 수비를 둔다면, 청주와 기주의 여러 진(鎭)은 싸우지 않고도 굴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 네 지역이 복종하지 않으면, 청주와 기주를 비록 함락시켜도 백성들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눈치를 보며,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품을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마땅히 청주와 기주의 군사를 철수시키고, 먼저 동남 방면을 평정하여, 유욱이 북쪽을 엿보는 뜻을 끊고, 어리석은 백성들이 남쪽에 기대려는 마음을 끊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여름엔 물이 불어나 건널 길이 없고, 겨울엔 길은 열리지만 높은 성이 없어 지키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하면 회북(淮北)은 저절로 평정되어, 잠시의 수고로 영원한 안녕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날이 아직 더우나, 병사를 움직일 수 있고, 전쟁은 기세가 중요하므로 오래 끌면 변란이 생깁니다. 만약 비가 내리고 수로가 열려 군량이 더욱 많이 들어오면, 그 틈을 타 진격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회수 근처의 백성들이 돌연히 마음을 바꾸는 일이 생겨, 청주, 기주 두 주가 끝내 함락되지 못하는 일입니다. 신은 이에 동료 관원들과 함께 의논하였고, 모두가 옳다고 여겼습니다. 만약 이를 숨기고 아뢰지 않으면, 훗날 손실과 패배의 책임이 두렵고,아뢰었으나 사실이 아닐 경우엔 거짓으로 속였다는 죄를 입게 될까 두렵습니다. 오직 폐하께서 공평한 저울로 재시어, 신의 어리석은 충정을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황흥 원년(467년) 8월, 심유지가 오희공(吳憘公)과 함께 다시 병사 수만명을 이끌고 기수(沂水)와 청수(清水)를 따라 진격하여 하비를 구원하려 하였다. 이에 울원은 공백공에게 기병과 보병 10,000명을 거느리게 하여 그들을 막게 하였다. 아울러 울원은 이전 심유지의 패잔병 가운데 손발이 절단되거나, 동상으로 인해 발이 괴사하여 기어 다니는 자들을 모두 돌려보내 적의 사기를 꺾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조정에 구원군을 요청하는 표문을 올리자, 헌문제는 정남대장군 모용백요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모용백요가 하구(瑕丘)에 이르러 병을 얻었는데, 때마침 사수(泗水)가 갑자기 말라버려 적군은 전진하지 못하였다. 이에 모용백요도 더 이상 진군하지 않았다. 그 사이 공백공이 적군을 크게 무찌르니, 심유지와 오희공 등은 경기병을 이끌고 도주하였다.

이후 울원이 송나라의 서주자사 왕현재에게 글을 보내 화복을 들어 설득하자, 왕현재는 놀라 허둥대며 밤중에 도망쳤으며, 숙예와 회양을 지키던 송나라의 장수들 역시 모두 성을 버리고 퇴각하였다. 이에 울원은 남중랑장 고려에게 기병 1,000기를 거느리게 하여 귀순한 장당과 함께 동서주자사로 삼았고, 중서시랑 이찬은 귀순한 필중경과 함께 동연주자사로 삼았으며, 신소선을 하비태수로 삼았다. 조정은 울원을 도독서·남북연주제군사(都督徐南北兗州諸軍事)•진동대장군•개부(開府)•서주자사(徐州刺史)•회양공(淮陽公)으로 삼았으며, 사지절, 북부상서, 산기상시 직책은 전과 같이 유지하였다. 그리고 조서가 내려졌다.
"적장 심유지, 오희공 등이 무리들을 몰아 하비를 침입하였으나, 경은 용맹이 빛나고 의기가 뛰어나며, 지혜와 용맹이 함께 분발하여 수륙에서 길을 끊고 시기를 맞춰 격파하였다. 회수 이북이 말끔히 평정된 것은 모두 원수의 전략과 장병들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이니, 짐이 깊이 기쁘게 여기노라. 획득한 모든 성과 요충지에는 병력을 나누어 주둔시켜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라. 지금 장차 오회(吳會)를 정벌하고 깃발을 말릉(秣陵)에 세우고자 하니, 군사 운용에 필요한 사항과 진퇴의 판단에 있어 잘 헤아려 처리하고, 모든 동정은 상세히 아뢰도록 하라."
당시 서주(徐州)에 요사스러운 자가 있어 거짓으로 "사마(司馬)"라는 성씨를 쓰고 이름은 "휴부(休符)"라 하며, 스스로 진왕(晉王)이라 칭하고 백성들을 선동하였다. 울원은 장수를 보내어 그를 추격하여 참수하였다.

황흥 4년(470년), 울원에게 수도로 돌아와 서교(西郊)의 제사에 참여하라는 조서가 내려졌으며, 제사가 끝난 후 울원은 본래 주둔하던 곳으로 돌아갔다.

연흥 원년(471년) 5월, 울원에게 회양왕(淮陽王)의 작위가 가례(假例)로 주어졌다.

연흥 3년(473년), 송나라의 장수 소순지(蕭順之), 왕칙근(王敕勤) 등이 병력 30,000명을 이끌고 회수 이북의 여러 성을 침략하자, 울원은 여러 장수를 나누어 보내어 맞서 공격하고 그들을 격퇴하였다. 이때 울원이 상주하여 아뢰었다.
"회양군(淮陽郡) 상당현(上黨縣)의 현령 한념조(韓念祖)가 부임할 당시, 본래의 주민들은 남쪽으로 도망쳐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현령이 백성을 어루만지고 불러모으면서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였으므로, 남아민(南亞民) 비계선(費系先) 등이 앞다투어 귀부하여 가구 수가 200이 넘었습니다. 또 남제음군(南濟陰郡) 수릉현(睢陵縣)의 조련(趙憐) 등이 ‘한념조는 백성을 안정시키는 데 능하고, 몸가짐이 청렴하다’고 칭하며, 수릉현의 현령으로 임명해 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그 자리에 임명된다면 반드시 떠났던 이들을 다시 불러모아 한 고을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헌문제가 조서를 내려 말했다.
"백성을 다스릴 사람을 임명함에 있어 백성의 뜻이 이와 같다면, 그 청을 허락함이 마땅하다."
울원은 이처럼 아랫사람의 선행을 잘 드러내 주기를 좋아하였으며, 이와 같은 사례가 많았다.

태화 원년(477년), 울원은 내도대관(內都大官)으로 소환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지절•진서대장군(鎮西大將軍)•통만진도장(統萬鎮都將)•개부로 나가 부임하였다. 그는 오랑캐 백성들의 마음을 매우 잘 얻었다.

태화 3년(480년), 울원의 작위가 회양왕으로 진봉되었으며, 연로한 공신으로서 예우를 받아 보행할 때는 부축받고, 조정에 들어올 때는 지팡이를 짚고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었다.

태화 3년(480년) 10월, 서주의 백성 환표지(桓標之)와 연주의 백성 서맹자(徐猛子) 등이 거병하여 노략질하고, 사마랑지(司馬朗之)를 주군으로 추대하였다. 조정은 이미 울원이 예전부터 위세와 명망이 높았으므로, 그를 사지절•시중(侍中)•도독남정제군사(都督南征諸軍事)•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대도장(大都將)으로 임명하고, 나머지 관직은 전과 같이 유지하게 하여, 모든 군대를 통솔해 평정하게 하였다. 울원은 오고(五固)에서 적장 환표지 등을 토벌하여 모두 평정하였다. 그리하여 동남지방이 맑고 평온해지고, 먼 고을과 가까운 마을 모두가 안정을 되찾았다. 이후 시중(侍中), 도조상서(都曹尚書)를 지내다, 상서령(尚書令)으로 승진하였다.

태화 13년(489년) 12월, 울원은 사도(司徒)로 승진하였다.

태화 16년(492년) 정월, 효문제 탁발굉이 도무제의 자손이 아닌 자들의 작위를 한 등급씩 강등시켰다. 이에 울원도 왕작이 강등되어 산양군 개국공(山陽郡開國公)에 봉해졌으며, 식읍은 600호였다. 울원은 다음과 같이 상주하였다.
"신은 천안(天安) 초년에 조칙을 받들어 군대를 통솔하고, 회수(淮水) 오른편을 안정시켜 천하가 이미 평정된 뒤에도 여전히 서악(徐嶽)을 맡고 있었습니다. 무익한 자로서 녹봉만 헛되이 받아온 지 여러 해가 되었고, 그 지역의 안위에 대해서는 소인이 잘 알고 있습니다. 신은 늘 생각하건대, 팽성(彭城)은 수륙 교통의 요지이자, 강남에서 군사를 일으킬 때는 반드시 이곳을 이용하여 여러 나라를 위협하게 되니, 국가는 미리 대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신이 처음 서방을 평정하였을 때, 청주와 제주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고, 하남(河南)의 백성들도 아직 양쪽을 저울질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유욱은 장영, 심유지, 진현달, 소순지 등을 차례로 보내어 여러 차례 팽성을 점령하려 하였고, 그 기세는 청주와 제주의 병력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팽성이 이미 굳건했기에 장영 등의 군사도 모두 꺾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건대, 저들의 수비 병력은 대부분 호인(胡人)입니다. 신이 예전에 서주를 다스릴 때, 호인 자도장(子都將) 호연롱달(呼延籠達)이 죄를 저지르고 반란을 일으켰으며, 호인 무리를 끌어들여 한때 크게 선동하였습니다. 다행히 황제의 위엄이 멀리까지 미쳐 죄인은 마침내 주살되었습니다. 또한 성을 포위하였던 자도장 호인 왕칙근(王敕勤)은 죄를 짓고 남쪽으로 배반하였으며, 항상 반란을 꾀하고 같은 무리를 유혹하려 하였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팽성의 호인 군대를 남예주에서 이주해온 백성들로 바꾸어 수비하게 하고, 중원의 선비족 병력을 더하여 실제 병력의 수를 늘리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고 여깁니다."
이에 조서에서 말하였다.
"공이 아뢴 바는 시국에 매우 부합한다."
태화 16년(492년) 8월, 울원이 여러 차례 상소하여 노쇠함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자, 효문제는 조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울원은 덕망이 높고 식견이 깊어, 여러 차례 물러날 뜻을 표명하였다. 짐은 공이 덕을 지니되 맑고 겸허하며, 성품은 평온하고 은둔을 지향하고, 인자하고 우아하며, 도모와 계획을 맡길 만하므로, 백성의 정사를 위임하여 온 백성을 편안케 하고자 여러 차례 문서를 보내 간청하여 그 뜻을 억누른 것이다. 그러나 공의 겸양과 청정함은 더욱 굳어져, 세 번에 걸쳐 간절히 사직을 청하였으니, 만일 이와 같은 훌륭한 계책에 따르지 않는다면 어찌 그의 미덕을 온전히 이룰 수 있겠는가. 이제 그 사직을 허락한다. 주관자는 공의 표문을 밖으로 내보내고, 예에 따라 공의 뜻을 따르도록 하라."
울원이 이에 조정에 나아가 노쇠함을 사죄하니, 효문제는 그를 정원에 불러 접견하고, 전각으로 오르게 하여 잔치를 베풀어 위로하며, 검은 관과 흰 옷을 하사하였다. 또 조서를 내려 말했다.
"무릇 대도(大道)는 허(虛)에 머물고, 지극한 덕은 겸허하게 그윽하니, 옛날 제왕들은 현묘한 도리를 본받아 세상을 다스렸고, 성인은 겸손과 덕망을 숭상하여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그러므로 천자는 삼로(三老)를 아버지처럼 섬기고, 오경(五更)을 형처럼 섬긴 것이니, 이는 만국에 효도와 우애를 밝히고 천하에 교화의 근본을 드러낸 까닭이다. 도가 높고 식견이 넓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오제(五帝)는 덕으로 모범을 삼았고, 삼왕(三王)은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였다. 만일 한 사람에게 그 역할을 맡기고자 한다면, 마땅히 옛 현인에 견줄 수 있어야 하는데, 숙련된 노인이 아니라면 누가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성인(聖人)을 스승으로 삼으면 그 기준을 이루기 어려워도, 중용(中庸)을 본받으면 선발하기 쉬우리라. 짐은 본래 덕이 부족하고 예전 성인들보다 못하나, 경(更)과 노(老)의 인물 정도는 겨우 뽑을 수 있다.

전(前) 사도 • 산양군 개국공 울원과 전 대홍로경(大鴻臚卿) • 신태백(新泰伯) 유명근은 모두 하늘의 뜻을 받아 나라에 크게 이로웠고, 밝고 성실하여 어릴 적부터 준걸다운 기상을 드러내었고, 노년에 이르러서는 고상하고도 우아한 행적을 폈으니, 높은 지위에 올라 조정에 오래 머물다가 마침내는 은거의 뜻을 좇았도다. 그들은 시작과 끝을 모두 아는, 세상에 드문 어진 인물이라 할 만하다. 공은 여든의 나이로 삼로(三老)의 중임에 마땅하고, 경은 일흔의 나이로 오경(五更)의 자리에 들어갈 만하다."
이에 따라 효문제는 명당(明堂)에서 울원과 유명근을 각각 삼로와 오경으로 삼고, 단 아래로 내려와 국로(國老)와 서로(庶老)를 선발하였다.
이후 효문제는 삼로에게는 두 번 절하며 예를 올리고, 친히 소매를 걷고 제물을 잡은 뒤, 술잔을 건네며 음식을 권하였다. 그리고 오경에게는 공손히 절하는 예를 행하고, 요로(要老)와 서로(庶老)에게는 차등을 두어 의복을 하사하였다. 그 뒤, 울원이 아뢰었다.
"하늘과 땅이 나뉘고, 오행(五行)이 작용한 이래로 사람들이 숭상하는 바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효순(孝順)입니다. 오효(五孝)와 육순(六順)은 천하가 먼저 삼는 도리이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이를 중시하여 사방을 교화하시기 바랍니다. 신은 이미 늙고 쇠하여 멀리 깊은 이치를 다하지는 못하오나, 마음과 귀가 미치는 바는 감히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효문제가 말하였다.
"효순의 도는 천지의 근본이니라. 지금 삼로의 밝은 말씀을 받들어 가슴 깊이 새기겠노라."
유명근도 아뢰었다.
"지극한 효는 신령과 통하고, 지극한 순은 그윽한 곳도 감동시킵니다. 그러므로 『시경(詩)』에 이르기를 ‘효제(孝悌)의 지극함은 신명(神明)과 통하고, 사해(四海)에 빛난다’ 하였습니다. 이처럼 효순의 도는 미치지 못하는 데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이를 마음에 두시어 백성을 구제하시기 바랍니다. 신은 이미 나이도 뜻도 쇠약하고 식견도 어두우니, 오직 마음을 다해 염려할 뿐, 감히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효문제가 말하였다.
"오경은 삼로를 도와 지극한 모범을 말하고 덕스러운 말을 펼쳤으니, 마땅히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되돌아가며 맡은 바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예가 끝나자 수레 한 대를 하사한 후, 다시 조서를 내려 말했다.
"노인을 존경하고 경(更)을 높임은 여러 성왕들도 모두 실행한 바이며, 나이와 덕을 공경하고 존중함은 옛 현인들이 함께 따른 도리이다. 짐은 비록 도리가 현묘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식견도 지혜로운 이들보다 못하나, 오직 먼저의 가르침을 우러르고 도리를 따르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덕이 있는 자를 밀어올려 노(老) 삼고, 원숙한 이를 세워 경(更)으로 세웠으니, 아버지를 섬기는 도리가 드러났고, 형을 섬기는 예가 나타났도다. 전 사도공(司徒公) 울원과 전 홍로경(鴻臚卿) 유명근은 모두 덕이 깊어 관직에서 멀어졌으며, 인격이 아름다워 노후에 은거를 택하였으므로, 공은 삼로로 높이고 경은 오경으로 삼았노라. 비록 오경과 삼로가 관직은 아니나, 노쇠하였다고 녹봉을 없앨 수는 없고, 하물며 그 직분이 높으니, 마땅히 특별히 봉양해야 하느니라. 삼로에게는 상공(上公)의 녹을 지급하고, 오경에게는 원경(元卿)의 봉을 주며, 음식 맛도 그 예에 따라 공급하게 하라."

태화 17년(493년) 7월, 울원이 병세가 위중하자, 효문제는 친히 병문안을 갔다.

태화 17년(493년) 8월 7일[2], 울원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효문제가 조서를 내려 말했다.
"울원은 지극한 행실과 너그러움, 순박함을 갖추었고, 인자한 기풍과 복덕이 아름다웠으며, 안으로는 무예가 뛰어났고, 외모는 따뜻하고 훌륭하였다.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공로와 근신함이 갖추어졌고, 다섯 황제를 섬기며, 네 대를 아름답게 받들었다. 남쪽으로는 하회(河淮)를 밝히는 공로가 있었고, 북쪽으로는 연연(燕然)에 빛나는 공적이 있었으며, 노송(魯宋)의 인자함을 품고, 조정의 중심에서 덕을 지탱하였다. 이를 두고 말하자면, 몸가짐은 처음과 끝을 모두 갖추었고, 도리를 행함은 시종일관 드러났으며, 공로는 옥첩에 기록되었고, 은혜는 백성의 마음을 얻었다. 이에 다섯 복이 모여들어 수레를 거두고 노후에 물러났으며, 겸손하고 절제된 덕이 드러나자, 멀고 가까운 곳에서 모두 노래하듯 칭송하였다. 이후 삼로(三老)에 올라 백성의 모범으로 삼았으니, 그 수명이 끝까지 미치어 더욱 왕업을 도울 줄 알았건만, 하늘이 이 노인을 버리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하였도다. 공로를 생각하면 아름다움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어 슬픔이 가슴을 사무친다. 다만 융사(戎事)로 인해 장례에 예를 다하지 못함이 한스러울 뿐이다. 이에 포백과 채색 비단 2,000필, 온명비기(溫明秘器), 조의(朝衣) 한 벌을 하사하고, 봉분을 조성하도록 하라."
또, 울원의 시호는 '경환공(景桓公)'이라 하고, 특별한 예로 장례를 치렀으며, 우보(羽葆)와 고취(鼓吹), 황월(黃鉞), 반검(班劍) 40명을 주었고, 비단 1,000필을 추가로 하사하였다.

3. 가계



[1] 병오년 경자월 임자일. 음력으로는 11월 29일이고, 양력으로 12월 21일이다.[2] 계유년 신유월 을유일. 음력으로는 8월 7일이고, 양력으로 9월 3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