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6-07-25 08:15:02

최연백

위서(魏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f5cfd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제기(帝紀)]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권 「서기(序記)」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탁발부 · 대나라 탁발규 탁발사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5권 「고종기(高宗紀)」 6권 「현조기(顯祖紀)」
탁발도 · 탁발황 탁발준(浚) 탁발홍
7권 「고조기(高祖紀)」 8권 「세종기(世宗紀)」 9권 「숙종기(肅宗紀)」
원굉 원각 원후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원자유 원공 · 원랑 · 원수 원선견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열전(列傳)]
13권 「황후전(皇后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경목공황후 · 문성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풍폐후 · 효문유황후 · 효문소황후 · 선무순황후 · 선무황후 · 선무영황후
효명황후 · 효정황후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탁발흘라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 · 탁발간(簡) · 탁발약 · 탁발맹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위조 · 막함 · 유고인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27권 「목숭전(穆崇傳)」
장손숭 · 장손도생 장손비 · 울고진 목숭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해근 · 숙손건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우율제 고호 · 최영 · 봉의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35권 「최호전(崔浩傳)」 36권 「이순전(李順傳)」
왕낙아 · 차노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최호 이순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39권 「이보전(李寶傳)」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이보
40권 「육사전(陸俟傳)」 41권 「원하전(源賀傳)」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육사 원하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47권 「노현전(盧玄傳)」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두근 · 허언 · 이흔 노현
48권 「고윤전(高允傳)」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고윤 이령 · 최감 울원 · 모용백요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이효백 · 이형 유아 · 고려 유명근 · 유방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58권 「양파전(楊播傳)」
정희 · 최변 고우 · 최정 양파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한기린 · 정준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이표 · 고도열 왕숙 · 송변 곽조 · 장이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67권 「최광전(崔光傳)」
형만 · 이평 이숭 · 최량 최광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견침 · 고총 최휴 · 배정준 · 원번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이주영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노동 · 장열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손소(孫紹) · 장보혜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이염지 · 조영 · 상경
83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84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85권 「문원전(文苑傳)」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86권 「효감전(孝感傳)」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87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88권 「양리전(良吏傳)」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89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90권 「일사전(逸士傳)」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91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92권 「열녀전(列女傳)」
임성국태비
93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94권 「엄관전(閹官傳)」
종애 · 구락제 · 단패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사마예 · 이웅 환현 · 풍발 · 유유 소도성 · 소연
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101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102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dc143c><tablebgcolor=#dc143c>
※ 흠정 24사 관련 틀 둘러보기
||
}}}}}}}}}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본기(本紀)]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
[열전(列傳)]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 ||
<colcolor=#fff>
신풍무열자(新豐武烈子)
崔延伯 | 최연백
<colbgcolor=#dc143c> 시호 무열자(武烈子)
작호 정릉현남(定陵縣男)
→ 당리현 개국남(當利縣開國男)
→ 신풍현자(新豐縣子)
최(崔)
이름 연백(延伯)
불명
생몰 ? ~ 525년 5월 25일
조부 최수(崔壽)
출신 박릉군(博陵郡) 안평현(安平縣)
아들 최구산(崔丘山)
국적 남제북위
1. 개요2. 생애

1. 개요

북위의 맹장. 조부 최수(崔壽)는 팽성(彭城)이 함락될 때 남조로 도망쳤다.

2. 생애

최연백은 기개가 있고, 젊어서부터 용맹하여 씩씩하기로 이름이 났는데, 제나라무제 소색을 섬겨 연회유군(緣淮游軍)이 되었고 호구수주(濠口戍主)를 겸하였다. 태화 연간(477년 ~ 499년) 연간에 위나라로 귀순하니, 효문제가 그를 매우 가상히 여겨 항상 통수(統帥)로 삼았다. 담력과 기개가 남들보다 뛰어났고 지략도 겸비하여, 나가는 정벌마다 모두 전공을 세워, 공로가 쌓여 점차 승진하였고 정로장군(征虜將軍)·형주자사(荊州刺史)에 임명되었으며 정릉현남(定陵縣男)의 작위를 받았다. 형주는 지세가 험하고 만족(蠻族)이 도적질을 일삼았는데, 무리가 나타할 때마다 최연백이 매번 직접 토벌하여 꺾고 멸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양(穰) 땅이 평온해졌으며 감히 화근이 되는 자가 없었다.그리고 영평 연간(508년 ~ 512년)에 후장군(後將軍) 및 유주자사(幽州刺史)로 전임되었다.

연창 4년(515년) 9월, 양나라의 좌유격장군 조조열(趙祖悅)이 서협석(西硤石)을 몰래 점거하였고, 그 무리가 수만 명에 이르러 수춘(壽春)을 압박하였다. 이에 선무제가 조서를 내려 최연백을 별장(別將)으로 삼아, 도독 최량과 함께 그들을 토벌하게 하였다. 이때 최량은 최연백에게 하채(下蔡)를 지키게 하였고, 최연백은 별장 이옹생(伊甕生)과 함께 회수(淮水)를 끼고 진영을 세웠다.

희평 원년(516년) 2월, 양나라에서는 구원군을 파견하였으나, 최연백이 마침내 수레바퀴를 가져다가 바퀴 테를 제거하고 바퀴살을 깎아 날카롭게 하여 둘씩 서로 맞대게 하였다. 또, 대나무를 비틀어 굵은 밧줄을 만들고, 그것을 꿰어 잇고 연결하여 열 남짓한 길을 나란히 하여 물을 가로질러 다리를 만드니, 양쪽 끝에 큰 도르래를 설치하여 마음대로 나타났다 사라지게 할 수 있어 적들이 불태우거나 부술 수가 없었다. 당시 이미 최연백이 조조열 등의 도주로를 끊고 또한 배들이 통하지 못하게 하니, 이로 말미암아 양나라의 구원군이 서협석 근처로 오지 못하였고, 최량과 이평 등이 성을 함락시키면서 조조열의 전 군대가 모두 포로가 되었다. 이 공으로 군중에서 평남장군(平南將軍) 및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임명되었다.

최연백과 양대안 등이 회양(淮陽)에서 복귀하자, 영태후가 서림원(西林園)에 행차하여 최연백 등을 불러 만났다. 이때 영태후가 말하였다.
"경들의 뜻이 뛰어나게 용맹하니, 모두 나라의 명장들이다. 근래에 협석(峽石)을 평정한 것을 두고 공사(公私)가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하니, 이는 바로 경들의 공로이다. 다만 적이 세운 회수의 둑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마땅히 미리 도모해야 한다. 그러므로 경들을 불러 직접 함께 헤아려 보고자 하니, 각자 한 가지씩 방책을 내어 후일의 계획으로 삼으라."
양대안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신은 수로와 육로 두 갈래로 일시에 내려가면 가는 곳마다 이기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최연백이 말하였다.
"신이 지금 감히 양대안의 의견을 반박하고자 합니다. 이미 성안(聖顏)을 대하고 있으니 대답하는 취지는 마땅히 실제 행할 수 있는 계획이어야만 합니다. 강가의 남쪽과 북쪽에는 각각 도랑과 개울이 가로막고 있는데, 어찌 육로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신의 짧은 소견으로는, 바라건대 성심(聖心)으로 수병(水兵)의 노고를 가련히 여기시어 1년 동안 부역을 면제해 주시고, 오로지 수전(水戰)을 익히게 하소서. 만약 뜻밖의 일이 생기면 불러서 바로 쓸 수 있으니, 가는 곳마다 얻지 못함이 없을 것입니다."
영태후가 말하였다.
"경이 말한 바가 매우 절실하고 요긴하니, 청한 대로 명하겠다."

희평 2년(517년), 최연백은 안북장군(安北將軍) 및 병주자사(幷州刺史)에 임명되었는데, 주(州)를 다스릴 때 탐욕과 부패로 악명을 널리 떨쳤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조정으로 돌아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가 되었다가, 다시 외직으로 나가서 진남장군(鎮南將軍) 및 행기주자사(行岐州刺史)가 되었으며, 가정서장군(假征西將軍)이 더해졌고 화류마(驊騮馬) 한 필을 하사받았다.

정광 원년(520년) 가을, 이전에 최연백이 양주(揚州)에서 양나라 군대와 싸울 때, 회수(淮水)가에 다리를 이용해 구원군을 차단한 공로를 돌이켜 당리현 개국남(當利縣開國男)에 봉해지고 식읍 200호를 받았으며, 얼마 뒤에는 식읍 100호가 더해지고 신풍(新豐)으로 고쳐 봉해졌으며, 작위가 자작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국호를 '진(秦)'이라 하며 천자를 참칭한 막절념생(莫折念生)이 동생 막절천생(莫折天生)을 농동(隴東)으로 보내 노략질하게 하니, 정서장군 원지가 막절천생에게 사로잡혔으며, 적의 무리가 매우 성하여 흑수(黑水)에 진을 쳤다. 이에 효명제는 조서를 내려 최연백을 사지절(使持節)·정서장군(征西將軍)·서도도독(西道都督)으로 삼아 행대 소보인과 함께 그들을 토벌하게 하였다. 소보인과 최연백이 마외(馬嵬)에 보루를 쌓았는데 남북으로 100여 리의 거리까지 볼 수 있었다. 소보인이 날마다 독장(督將)들을 모아 적을 토벌할 방략을 논의하였으나, 최연백은 매번 말하기를,
"적들이 최근에 승리를 거두어 그 기세와 맞서기 어렵습니다."
라고 하였다. 소보인이 안색을 바로잡고 그를 꾸짖어 말하기를,
"그대는 나라의 은총을 입어 군대를 총괄하여 토벌하러 나왔으니, 이는 곧 나라의 안위가 걸린 일이다. 매번 적을 토벌할 수 없다고 하여 겁 많고 나약함을 보이니, 위엄을 손상시키고 사기를 꺾는 것이 바로 그대의 죄다."
라고 하였다. 최연백이 이튿날 아침 소보인을 찾아가 스스로 사죄하고 이어서 말하였다.
"이제 명공(明公)을 위해 우러러 적의 용맹함과 비겁함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는 최연백이 정예 병사 수천 명을 선발하여 흑수를 건너 내려가 진을 치고 서쪽으로 나아가 적의 진영을 향하였고, 소보인은 무리를 거느리고 흑수 동쪽 언덕을 따라 서북쪽으로 가서 후속 부대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때 적의 무리가 매우 성하여 물 서쪽 1리에 걸쳐 진영들이 잇따라 있었다. 최연백이 곧장 적의 보루에 이르러 위용을 떨치며 그들을 위협하고 천천히 물러났다. 적은 최연백의 무리가 적은 것을 보고 진영을 열어 다투어 추격하였는데, 그 무리가 10배가 넘었으며 강가에 이르러 관군을 바짝 압박하니, 소보인이 직접 이를 지켜보고 군사에 손실이 있을까 두려워하였다. 최연백은 그들과 싸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뒤를 맡아, 병사들 중에 인원을 선발하여 동쪽으로 건너가게 하였는데, 군대를 돌리고 움직이는 것이 신묘하여 잠깐 사이에 모두 건넜으며 천천히 자신도 건너왔다. 그러자 적들은 기세가 꺾여 서로 앞다투어 진영으로 돌아갔다. 소보인이 크게 기뻐하며 휘하 관리들에게 말하기를,
"최공(崔公)은 옛날의 관우, 장비와 같도다. 올해 어찌 적을 제압하지 못할까 걱정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이후 최연백이 달려와 소보인을 보고 말하였다.
"저 적들은 이 늙은이의 상대가 되지 않으니 공께서는 그저 앉아서 보시기만 하십시오."

정광 6년(525년) 1월 18일[1], 최연백이 마침내 병력을 거느려 출전하였고, 소보인은 후방을 방비하며 만일에 대비하였다. 최연백이 싸움을 걸어오는 것을 본 막절천생이 모든 무리를 이끌고 와서 싸우니, 최연백이 장졸들을 호령하며 몸소 앞장서서 돌격해 그들의 선봉을 깨뜨렸다. 이에 용맹하고 날랜 군사들이 다투어 진격하여 그들의 본군마저 크게 격파하고, 10여 만 명을 사로잡거나 베었으며, 달아나는 적을 소농(小隴)까지 추격하였다. 진(秦) 땅의 적이 굳세고 강하여 여러 장수들이 꺼렸는데, 조정에서 처음에 장수를 보낼 것을 논의할 때 모두 최연백이 아니면 평정할 수 없다고 말하더니 과연 적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 공으로 최연백은 우위장군(右衛將軍)에 임명되었다.

이때에 묵기추노(萬俟醜奴)와 숙근명달(宿勤明達) 등이 경주(涇州)에서 약탈을 자행하였다. 이보다 앞서 노조천(盧祖遷), 이옹생 등 여러 장수들은 모두 전(前) 정서장군 원지가 처음 출행할 때를 기해, 동시에 옹(雍) 땅에서 출발하여 육맥도(六陌道)를 따라 고평(高平)을 취하려 하였다. 그러나 원지가 막절천생에게 대패하자, 그대로 경부(涇部)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에 진(秦) 땅의 적을 격파한 최연백은 소보인과 함께 무리를 이끌고 안정(安定)에서 이들과 합류하였는데, 이로 인해 갑병이 12만여 명으로 불어났고, 철갑옷을 두른 말은 8,000필이나 되어 토벌군의 위용이 매우 성대하였다. 당시 묵기추노가 경주 서북쪽 70리 지점인 당원성(當原城)에 진영을 설치하였는데, 때때로 경무장한 기병대를 보내 잠시 와서 싸움을 돋우다가 대군이 맞붙기도 전에 곧 패하여 달아나는 척하였다. 이에 최연백이 공을 뽐내고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서, 마침내 스스로 선봉에 설 것을 소보인에게 제안하였다. 또, 그는 나무를 베어 따로 큰 방패를 만들고, 그 안쪽에는 이것을 들 수 있게 철봉을 박았는데, 힘이 센 장병들에게 운용법을 교육하고 익히게 하여, 그것을 짊어지고 달리게 하니 사람들이 이를 '배성(排城)'이라 불렀다. 전투를 담당하는 병력은 바깥에 세우고, 치중(輜重)은 방패 부대 가운데에 두어, 그 배치로 경주로부터 평야를 따라 북상하였다.

정광 6년(525년) 4월, 여러 군대가 장차 나아가 묵기추노 등을 토벌하려 할 때,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적군 수백 기가 거짓으로 문서를 들고 와서 이것이 항복 문서라고 하며 우선 군대를 멈춰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소보인과 최연백이 그것이 사실이라 여겨 진군을 머뭇거리며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갑자기 숙근명달이 무리를 거느리고 동북쪽에서 도착하였고, 항복을 청하던 적들도 서쪽에서 다투어 내려오니 여러 군대가 앞뒤로 적을 맞게 되었다. 이때 최연백이 말에 올라 적진으로 돌진하니 적의 기세가 꺾여 도망쳤고, 최연백은 그대로 북쪽으로 추격하여 곧장 그들의 진영에 이르렀다. 적은 본래 경무장한 기병이었으나, 최연백이 이끌던 군대에는 보병도 있었기에 병력이 피로하고 지쳤는데, 적이 그 틈을 타서 '배성(排城)' 안쪽으로 뚫고 들어올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최연백의 군대가 마침내 대패하였고, 사상자가 거의 20,000여 명에 달하였으며, 소보인은 군대를 거두어 물러나 경주를 지켰다.

정광 6년(525년) 4월 18일[2], 최연백이 병기들을 수선하고 용맹한 자들을 모집한 뒤, 다시 경주에서 서쪽으로 진격하여 적이 팽갱곡(彭阬谷)에 세운 목책에서 7리 떨어진 곳에 진영을 쳤다. 최연백은 앞서 겪은 굴욕을 수치스럽게 여겨 소보인에게 보고하지 않고 홀로 나가 적을 습격하여 크게 격파하였으며, 잠깐 사이에 적의 목책 여러 개를 무너뜨렸다. 적들이 모두 도망치자 최연백의 병사들이 노획물을 챙기느라 흩어졌는데, 대오가 정돈되지 않은 것을 본 적들이 다시 돌아와 돌격하니, 최연백은 마침내 크게 패하여 달아나게 되었다. 그러나 최연백은 퇴각하던 중에 눈먼 화살에 맞아 살해되었고, 이때 전사한 위나라 군사가 10,000여 명이었다.

최연백은 장수로서 군사를 잘 위무하여 능히 사람의 마음을 얻었으니, 해강생, 양대안과 더불어 여러 장수 중 으뜸이었으며 말년에 세운 공명은 더욱 무거웠다. 그러나 당시 큰 반란 세력들이 아직 평정되지 않았는데 최연백이 죽으니 조정과 민간에서 탄식하고 두려워하였다. 사후 사지절·거기대장군(車騎大將軍)·의동삼사(儀同三司)·정주자사(定州刺史)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무열자(武烈子)'라 하였다.


[1] 을사년 무인월 계해일. 음력으로는 1월 18일이고, 양력으로 2월 25일이다.[2] 을사년 신사월 임진일. 음력으로는 4월 18일이고, 양력으로 5월 25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