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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08:16:05

후소급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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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양함 마미야, 이라코, 노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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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모함 진게이급, 타이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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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Fuso_trial.jpg
파일:attachment/BB_Fuso_1935-00001.jpg 파일:attachment/BB_Fuso_1939-00001.jpg
扶桑型戦艦(후소형전함)
Fuso-Class Battleship

1. 개요2. 제원3. 개발4. 야마시로5. 대개장
5.1. 제1차 근대화 개장5.2. 제2차 근대화 개장
6. 실행하지 못한 개장 계획
6.1. 전함 개조안6.2. 항공모함 개조안
7. 문제점
7.1. 주포7.2. 주포탑
7.2.1. 주포탑 6기 배치와 중앙부 주포탑7.2.2. 3연장 주포탑 도입 거부
7.3. 부무장7.4. 장갑7.5. 속도7.6. 마천루 함교
8. 실전9. 평가10. 여담11. 대중매체에서의 후소급12. 관련 문서

1. 개요

일본 제국 해군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 1번함 후소, 2번함 야마시로가 건조되었다.

2. 제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uso1944-nowatermark.png
구분건조 (1915년)2차 대개장 (1935년)최종사양 (1944년)
배수량기준배수량 29,326t
상비배수량 30,600t
기준배수량 34,700t
공시배수량 39,154t
유지
전장205.13m212.75m유지
전폭28.65m33.08m유지
흘수선8.69m9.69m유지
보일러궁원식 혼소보일러 24기로호함본식 4기+하호함본식 2기로호함본식 4기
터빈브라운 커티스식 증기터빈 2기 4축함본식 터빈 4기 4축유지
출력40,000shp70,000shp75,000shp
속도22.5Knot24.5Knot유지
항속거리8,000해리/14Knot11,800해리/16Knot유지
연료석탄 4,000t
중유 1,000t
중유 5,100t유지
승무원1,193명1,396명유지
주포41식 35.6cm 45구경장 2연장 주포탑 6기 (총 12문)유지유지
부포41식 15.2cm 50구경장 단장 부포곽 16기 (총 16문)유지41식 15.2cm 50구경장 단장 부포곽 14기 (총 14문)
대공포없음12.7cm 2연장 대공포탑 4기 (총 8문)유지
대공기관총없음13mm 4연장 4기 (총 16문)
25mm 2연장 8기 (총 16문)
25mm 3연장 8기 (총 24문)
25mm 2연장 16기 (총 32문)
25mm 단장 39기 (총 39문)
13mm 단장 10기 (총 10문)
어뢰53cm 수중발사관 6문제거없음
레이더없음없음21호 대공레이더 1기
22호 수상레이더 2기
13호 레이더 경보기 2기
장갑현측 305mm
갑판 64mm
주포탑 정면 279mm
주포탑 천정 152mm
바벳 203mm ~ 305mm
함교 351mm
갑판 100mm
나머지는 유지
대개장시를 유지
함재기없음3기, 캐터펄트 1기유지

3. 개발

일본 해군은 공고급 순양전함을 건조하면서 영국으로부터 얻어낸 기술을 발판으로 국산 전함을 건조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후소급 전함이다. 일본 해군 사상 최초의 국산 전함, 그것도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는 기념비적인 존재인 셈이다. 후소(扶桑)는 산해경에 나오는 태양이 떠오르는 땅에 자란 거대한 나무의 이름으로, 그야말로 일본[1] 그 자체를 뜻하는 말이다. 대부분 고대 일본의 쿠니에서 이름을 딴 다른 전함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네임쉽 후소의 명칭만 일본 그 자체였다는 점에서 건조 당시의 일본 해군의 기대감을 엿볼 수 있다.[2] 2번함 야마시로도 일본의 옛 수도였던 교토가 속한 핵심 지방에서 따왔으니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거기에 걸맞게 최초 설계안이 35종이나 나오고 그 중에서 내부계획안인 A47에서 A57과 최종안인 A64가 히라가 유즈루가 남긴 서류에 남아서 전해진다. 대략적인 변화는 아래와 같다.
설계안 A47 A48 A49 A50 A51 A52 A53 A64(최종안)
해수면 전장 187m 182m 173m 176m 172m 182m 192m
전폭 28.9m 28.6m 28.3m 28.6m 28m 28.8m 28.6m
흘수선 9.1m 8.9m 8.8m 8.8m 9.1m 8.6m
배수량 30,000t 28,000t 27,100t 27,000t 27,200t 26,000t 29,000t 30,600t
22kt 항해시 마력 38,500 37,000 36,200 35,000 34,300 33,200 38,000 38,000
23kt 항해시 마력 46,000 44,200 43,500 43,350 41,550 40,000 45,320 없음
주포탑 14인치 2연장 6기 12문 12인치 2연장 6기 12문 14인치 2연장 5기 10문 12인치 3연장 4기 12문 12인치 2연장 3기 6문과 12인치 3연장 2기 6문 12인치 3연장 5기 15문 14인치 2연장 6기 12문
현측 주장갑 229mm - 300mm - 229mm 불명 229mm - 300mm - 229mm
중갑판 측면장갑 150mm - 177mm - 150mm 불명 100mm - 200mm - 100mm
상갑판 측면장갑 150mm 불명 150mm
갑판 주장갑 28mm 불명 37mm ~ 50mm
최상부 갑판 25mm 불명 31mm
주포탑 바벳 229mm 불명 300mm

각 설계안을 보면 주포와 주포탑 및 배치에 대해서는 상당한 변화가 보인다. A47에서는 주포는 14인치(356mm) 45구경장 2연장 6기 12문이지만 주포탑 배치는 중심선상의 함수측에 2기, 선미측에 2기를 배치하고 나머지 2기는 함체 중앙부 양 측면에 배치하여 드레드노트(전함)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약간 문제가 있는 주포탑 배치가 되었다. 이런 식의 주포탑 배치는 주포가 다른 A48과 A49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었으나 A50부터는 주포탑을 모두 선체 중심선상에 배치하는 방식이 도입되어 그 이후까지 쭉 이어진다.

A47부터 나타난 주포 12문 탑재안은 A49와 A50에서 10문으로 약간 줄어들었으나 다시 늘어나서 A51부터는 12문 이상을 탑재하도록 변경되었다.

12인치(305mm) 50구경장 함포를 주포로 하는 안도 A48에서 등장해서 A51부터 A53까지 나오게 되는데 A52의 경우에는 선수와 선미에 3연장 주포탑 1기씩 배치하고 2연장 주포탑은 선체 중심선과 함수 기준으로 선수의 3연장 주포탑 바로 뒤와 선미의 3연장 주포탑 앞에 1기씩 배치하고 나머지 1기는 선체 중앙부에 배치하는 안으로 미국의 네바다급 전함의 주포탑 배치에 중앙부 주포탑인 2연장 포탑 1기가 추가된 형태로 보면 된다. A53은 3연장 주포탑을 함수에 2기, 함미에 2기, 중앙부에 1기를 배치하는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급 전함의 주포탑 배치에 중앙부 주포탑인 3연장 주포탑 1기가 추가된 형태라고 보면 된다.

이런 여러가지 안이 도출된 끝에 최종안인 A64에서는 후소급 전함의 주포는 공고급 순양전함이 채용한 14인치 45구경장 2연장 주포탑을 6기 12문 탑재하는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만들게 되었다.

방어력 측면에서도 최종안인 A64보다 실제 건조개시부터 몇 가지 개선점이 있었다. 일단 중갑판 측면장갑이 원래 최종안에는 150mm ~ 177mm 였으나 203mm로 변경되었고, 갑판 방어에 관해서도 HT강만을 사용할 예정이 되고 있던 점이 바뀌어 중갑판에는 Ni강이 사용되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이 처음으로 건조하는 제대로 된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며 사쓰마급 전함카와치급 전함에서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건조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실패한 경험도 있는데다가 주포 구경의 확대로 인해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최초로 건조하는 상황으로 발전한다. 이리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기에 공고급 순양전함의 설계를 기본으로 해서 답습하는 방향으로 나가기로 한다. 공고급 순양전함의 주포탑을 그대로 가져와서 장착하지만 주포의 수량을 늘려서 2연장 주포탑을 6기 장착하고 배의 장갑을 두껍게 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짓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하더라도 계획 당시 세계 최대의 배수량과 무장을 가지며, 속력도 준수할 것으로 예상했다.

원래 후소급은 미 해군의 뉴욕급 전함의 대항마로서 설계된 물건이며, 당시에는 미국의 와이오밍급 전함처럼 타국의 해군들도 2연장 주포탑을 다수 탑재하는 전함들이 많았기에 최초의 일본산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치고는 대만족...이었어야 했다.

4. 야마시로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65d865fe9089f459415426c789b112c0.jpg
후소급 전함 2번함 야마시로

우선 후소급 전함의 건조비가 확립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했다. 원래 후소급 전함은 1911년에 결재가 난 신충실계획에 따라 건조가 결정되었으므로 1912년 3월 11일에 제3호 전함이라는 가칭으로 후소가 건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야마시로에 대해서는 건조비가 확정되지 않아서 건조가 시작하는 것이 결정나지 않았다. 그래서 1912년 12월 21일에 다이쇼 2년도의 군비 보충 기본 연도에 비해 600만엔을 추가해 전함 3척을 건조하는 것을 결정하여 건조가 개시되었으나 자금부족으로 건조가 늦어졌다. 그래서 1914년에는 이미 작년에 건조가 진행되기 시작한 전함 3척의 건조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 다이쇼 3년도 군함 제조비 소요액으로서 650여만엔의 예산을 추가해서 전함 야마시로와 이세급 전함 이세와 휴가 총 3척의 전함의 건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예산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데에는 1913년 말에 터진 비커스-지멘스 군납비리뇌물 사태가 터져서 일본 제국 해군 측이 해군 출신 야마모토 곤노효에를 내세워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따낸 건함예산이 전부 취소된 탓이 컸다.

덕분에 예정되었던 후소급 전함 3번과 4번은 취소되었다. 여기에는 후소의 건조중부터 제기되었던 주포탑 배치에 따른 사격시 후폭풍 문제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제기된 탓도 있었다. 그래서 설계를 전면적으로 손댄 것이 이세급 전함이 되었고 야마시로는 건조중에 후소에게서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해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후소에서는 연결되지 않았던 함교 기부와 함교 갑판을 2번 주포탑과 같이 연결했다. 후소의 장갑함교가 타원형으로 되어 있던 것을 야마시로에서는 원형으로 변경했으며 후소에서는 2번 주포탑 위에 설치했던 3.7m 측거의를 분리하여 장갑함교의 전방에 1기 장착하는 형태로 변경하고 장갑함교 사령탑의 후방에도 2.7m 측거의를 새로 설치하였다. 후소의 다른 주포탑 위에 설치되었던 4.5m 측거의는 6m 측거의로 교체하였으며 전방 함교 상부의 망루를 개조하여 새롭게 방위반 조준장치가 설치되는 등의 변경도 있었다. 그 외에도 후소에서는 준공시에 철거된 스턴워크가 보강용의 암을 새롭게 마련해서 남겨졌을 뿐만 아니라, 준공 직후에 8cm 40구경장 고각포 4기가 전방함교 양 측면과 2번 연돌의 양 측면에 장착되었다. 선체 외판을 부착하는 방식도 후소까지는 종래에 사용되는 방식을 쓰고 야마시로부터는 야마시로 이후의 전함들이 채택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외관상으로도 후방으로 향한 3번 주포탑과 똑바로 선 함교가 주요 특징으로 전방을 향한 3번 주포탑과 그로 인해 하부가 파여져서 꺾인 듯 보이는 함교를 가진 후소와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이렇게 동형함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다른 수준으로 야마시로가 만들어졌기에 일부 분류자들은 야마시로를 야마시로급 전함으로 따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5. 대개장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Fuso_Yokohama.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Fuso_Trial_Heading_Left.jpg
1차 대개장 이후의 후소[3]2차 대개장 이후의 후소

후소급 전함 자체가 일본 제국이 처음 만들어보는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서 여러가지로 미흡한 것이 많은데 영국과 미국같은 다른 해양 강국들이 너무 강하게 치고 나갔다.

이 시기의 해군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고, 1915년 후소급 전함이 사실상 취역한 시점에(사실상의 정식취역은 1917년) 영국은 15인치(381mm) 주포를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리벤지급 전함, 후드(순양전함),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리나운급 순양전함 등의 전함에 달기 시작했고, 미국은 네바다급 전함, 펜실베이니아급 전함, 뉴멕시코급 전함 등의 전함에 탑재할 14인치 주포 3문을 장착한 3연장 주포탑을 만들고 있었다. 14인치 주포 2문을 달아놓은 2연장 주포탑만으로는 조금 부족해진 셈이다.

5.1. 제1차 근대화 개장

1930년부터 1933년에 걸쳐 제1차 세계 대전의 전훈을 받아들여서 원거리 포격전에 대응시키기 위해 각종 개량이 이루어졌다.

주포탑은 최대 앙각을 +25도에서 +30도로 증가시키는 동시에 주포탑 천정 부위의 장갑을 늘리고 주포탑 측거의도 8m로 대형화 되었다. 전방함교도 크게 증축하여 주포 관측소, 주포 지휘소, 상공 관측소와 같은 설비와 내부를 구성하는 층들이 늘어났고 노천상태라 악천후에 취약했던 항해함교도 지붕과 창문이 있는 밀폐방식으로 바꾸었다. 기관부의 경우도 함본식 터빈과 중유연소 보일러로 개장하여 속력이 24.7노트까지 올라갔으며, 전면부 격실이 거주구와 연료탱크로 되어 항속거리 16노트로 11600해리까지 향상됐다.

그러나 돌풍시에 연돌로부터 배출된 고온의 연기가 전방함교에 뿌려져서 시야를 가리고 그을음을 남겨서 항해나 전투같은 업무에 지장이 가해졌다. 대응책으로 스푼 형상의 역류방지장치를 1번 연돌의 전면 상부에 설치했으나 효과가 미약했다.

5.2. 제2차 근대화 개장

제1차 근대화 개장이 끝난지 1년 후인 1934년 10월 하순부터 1935년 2월 중순까지 실시된 제2차 근대화 개장에서 주포의 최대 앙각은 종래의 +30도에서 +43도로 증가시키고 주포탑의 천정 장갑과 주포탑 바벳의 장갑을 늘려서 방어를 강화했다. 후소의 경우에는 3번 주포탑 위에 수상기캐터펄트를 설치하는 관계로 3번 주포탑의 포구 방향을 후방에서 전방으로 변경하면서 전방함교 후방을 파내는 특이한 모양을 만들었다.

부포의 경우에도 포곽식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포방패를 새로 설계하고 갑판의 일부를 절단하여 부포의 앙각을 +15도에서 +30도로 증가시켜서 사정거리의 증가를 노렸다.

대공포의 경우에도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를 도입하였다. 주포탑이 갑판 전체에 분산된 관계로 주포의 후폭풍을 피하기 위해 전방함교 양 측면에 2연장 포좌를 1기씩, 후방함교 양 측면의 상부에 1기씩 총 4기를 탑재하여 8문을 확보하였다.

방어력에서는 현측 장갑의 범위를 늘려서 장갑 중량은 8,558톤에서 12,199톤으로 늘려서 방어 중량은 배수량의 약 31%로 증가했다.

기관부에 대해서도 대폭적인 개량을 실시했다. 보일러를 로호 함본식 중유전소 수관식 보일러 4기와 하호 함본식 중유전소 수관식 보일러 2기의 총 6기로 교체하여 3번과 4번 보일러실에 집중 배치했다. 전방함교 하부의 1번과 2번 보일러실은 폐쇄하고 1번 연돌도 철거되었다. 1번 연돌을 제거함으로서 연기 역류로 인한 시야 가림과 그을음 누적 현상이 사라졌다. 폐쇄된 1번과 2번 보일러실은 두개로 나누어서 상부의 33%는 장교용 선실로 쓰고 하부의 66%는 중유가 담긴 연료탱크가 되었다. 연료는 중유만 사용하며 탑재량도 5,100톤이 되어 항속거리가 16노트로 11,800해리가 되었다. 터빈도 신형 함본식 터빈 4기가 되어 최대 출력은 75,000마력을 달성하여 속력이 목표인 25노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시험항해시 24.7노트를 발휘했다.

발전기실은 4번 주포탑의 후방부터 주 기계실의 전방까지의 구획 좌우에 설치해서 왕복엔진 방식의 증기기관을 사용해서 발전을 했다.

2차 대개장 이후에는 96식 25mm 고각기총 위주로 대공화기를 장착하기 시작했고 레이더도 2호 1형, 2호 2형, 1호 3형을 달아주게 된다.

6. 실행하지 못한 개장 계획

크게 2가지가 있다. 전자는 1922년에 히라가 유즈루가 제안한 전함 개조안이고 후자는 1942년에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한 후에 후소급 전함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안이다.

6.1. 전함 개조안

파일:external/blogimg.goo.ne.jp/60c6768966a30cdc18e5e14cad28e457.jpg
히라가 유즈루의 최종안중 1개의 도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효력이 있던 시기에 히라가 유즈루가 A안, B안, 최종안의 3가지로 후소급 전함을 개조하는 계획을 제시하나 모두 반려된다.

A안은 갑판장갑 강화로 당시에 새로 개발된 NVNC 장갑판을 기존 중갑판에 25mm ~ 101mm 정도 추가하며 어뢰기뢰 방어의 목적으로 격벽을 신설하고 벌지를 설치하므로 함폭도 여기에 맞추어서 0,9m 증가시킨다. 보일러의 일부를 중유전소보일러로 교체하고 보일러실 1개를 폐지하며 전선통로를 중갑판 하부로 이동시키고 주포탑 천정장갑을 152mm로 늘리는 안이다.

A안의 경우에는 갑판방어와 어뢰방어의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해당 개장을 실시할 경우 중량 증가로 배수량은 3,500t 증가하며 속도는 0.5노트 저하해 22노트가 된다. 중량 증가로 인한 흘수선 상승으로 현측 주장갑이 해수면 아래로 내려가서 주장갑이 방호가능한 높이가 낮아지므로 측면으로 날아오는 포탄들이 얇은 측면 상부장갑을 관통해서 함내로 진입하는 바람에 실질적인 방어력이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벌지를 추가해서 부력을 확보한다. 비용의 경우에는 주포탑 천정 부위의 개조비가 64만엔, 선체 개조와 장갑판 조달 비용은 460만엔으로 계산했다. 주포탑 자체의 방어를 제대로 하려면 주포탑 하부의 장갑판도 동시에 늘려야 하므로 이에 따른 중량이 330t 증가하며 비용도 43만엔 정도 더 늘어난다. 해당 개장안은 이후에 후소급 전함이 실제로 받는 대개장에서 일정 부분을 도입한다.

B안은 14인치(356mm) 주포를 완전히 제거하고 16.1인치(410mm) 주포를 2연장 주포탑 2기와 3연장 주포탑 2기를 탑재해서 총 10문을 확보한다. 중유전소보일러를 기존의 4번 주포탑 위치에 신설하고 10,000마력의 보일러 2기를 추가하는 대신 혼소보일러 2기를 제거한다. 보일러 위치 변동 및 증설과 교체에 맞추어서 전방 연돌을 철거하고 후방 연돌을 이전한다.

B안은 A안과는 달리 주포의 교체와 위치 변경 및 주포탑 숫자의 축소와 기관의 교체 및 증설이 중심이므로 해당 개장으로 증가하는 중량은 의외로 적어서 700t이고 비용은 260만엔으로 설정했다. 16.1인치 주포탑 탑재와 보일러 교체 및 증설로 인한 중량증가가 2기 정도의 14인치 주포탑과 바벳 제거 및 구형 보일러 제거로 인한 중량감소분으로 어느 정도 상쇄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위에서 언급한 A안의 주포탑 개조를 제외하는 대신 A안과 B안의 양쪽의 개조를 모두 실시하는 경우는 중량이 4,500t 증가하고 비용은 700만엔이 된다고 계산한다. 물론 이 경우에도 새롭게 벌지등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흘수선이 상승하는 것은 방지하면서 개조가 가능하다고 한다.

14인치 주포를 가진 전함이 그렇게 쉽게 16.1인치 주포를 장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히라가 유즈루는 미국의 표준형 전함들은 14인치 주포를 16인치 주포로 교체하려면 워낙 전함들이 타이트하게 만들어져서 필수설비로 꽉 찬 관계로 인해 여유공간이 없다시피하고 새로 공간을 만들어내기도 곤란해서 상당히 어려운 것에 반해 후소급 전함들은 개조할 곳이 많지만 비효율적인 곳들을 뜯어내고 효율적인 배치를 하면 약간의 중량 증가만으로 탑재가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16.1인치 주포를 도입하기 위해서 기존의 16.1인치 주포탑을 기준으로 해서 후소급 전함에 탑재하기 위해 주포탑 형상을 조정하고 일부를 개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약간의 곤란함이겠지만 그것도 16.1인치 3연장 주포탑 도입을 포기하고 모두 2연장 주포탑으로 바꿔서 16.1인치 2연장 주포탑 4기 탑재로 주포를 8문 장착하는 것으로 하면 더욱 쉽게 개조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히라가 유즈루가 남긴 문서 중에 극비 표시가 된 항목에 최종안이 있다.

최종안의 경우 하갑판에서 중앙부 기계실, 보일러실, 탄약고 부위에 101mm의 장갑판을 장착하며 그 재료로는 기본적인 갑판 구조물에 추가해서 NVNC 장갑판 45mm과 HT강판 27mm를 쓴다. 그리고 후갑판 상부에 110mm, 경사면에 152mm의 장갑판도 추가한다. 그리고 어뢰방어격벽을 기계실, 보일러실의 상부 측면에 121mm를 달고 하부 측면에 75mm를 달며 탄약고에는 103mm를 부착한다. 주포탑 전면은 305mm로 늘리고 약 1.2m의 벌지를 마련한다. 어뢰 무장의 경우에는 중앙부와 후부에 위치한 수중 발사관을 수상 발사관으로 이설하며 함체 중앙부 측면장갑을 경사장갑으로 변경한다.

최종안에서는 A안과 마찬가지로 갑판방어와 어뢰방어는 물론 측면방어도 고려했다. 해당 개조에 의해 증가하는 중량은 4,000t이며 개조 비용은 640만엔으로 계산했다. 해당 방안에서도 흘수선의 상승은 없는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히라가 유즈루의 후소급 전함 개조안에서는 개조 후의 후소급 전함의 예상 단면도도 같이 나와있으며 단면도에서는 원래 설치된 석탄고를 개조해 빈 공간과 방어격벽을 새롭게 설치하도록 표시되어있다. 아마 카가급 전함과 비슷한 어뢰방어구조로 변경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A안, B안, 최종안은 같이 적용가능한 것은 모두 적용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도면상으로는 함체 중앙에 있는 3연장 주포탑 1기에 캐터펄트를 올려 수상기를 발진시키는 디자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개조의 전제조건으로 언급한 함선의 개조에는 어떠한 제약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 해군 군축조약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군축조약 준수 중에는 적용이 불가능했고 경제 상황도 안 좋아서 취소되었다.

만약 이 개장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중앙부 주포탑이 1기 남아있으며 방어력이 조금 약하다는 것은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물건이 나왔겠지만 이 정도 개장이면 개장을 넘어서 아예 배를 새로 만드는 수준인데,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의 예를 보면 짐작할 수 있듯 이 정도 규모의 개장을 하려면 예상과는 달리 새로운 전함을 건조하는 비용과 맞먹는 거금이 들 것이다. 하지만 효율성면에서 본다면 실제로 이루어진 2차례의 대개장 비용에 추가해서 저렇게 개조하는 것이 오히려 좋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후루타카급 중순양함의 사례에서 보듯이 히라가 유즈루의 설계안들이 약간씩 무리수를 두는 경향이 있어서 주포를 16.1인치 함포로 교체하는 경우에는 3연장 주포탑은 개발도 안된 물건인데다가 후소급 전함의 함체 크기상 탑재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2연장 주포탑 4기를 나가토급 전함같이 선수에 계단식으로 2기를 배치하고 선미에 계단식으로 2기를 배치로 탑재하는 정도가 한계점인 것으로 보인다. 방어력 강화와 대공화기 증설과 동력기관 증설 및 거주구획 개선과 험한 바다에서의 항행성까지 고려한다면 리나운급 순양전함처럼 선수방향에 2연장 주포탑 2기를 계단식으로 탑재하고 선미에 2연장 주포탑 1기를 설치해서 총 6문을 확보하는게 적당할 것으로 보인다.

6.2. 항공모함 개조안

미드웨이 해전에서 손실한 항공모함의 보충을 위해 거의 모든 순양함과 전함에 대해 항공모함으로의 개조를 검토한 결과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중순양함은 업무가 많고 수량이 부족하며 나가토급 전함은 함대결전을 할 주력이라서 제외하고 나니 공고급 순양전함과 후소급 전함과 이세급 전함이 남았는데 공고급 순양전함도 업무가 많고 개장작업시 예상과는 달리 공사기간도 길어지고 작업량도 늘어나서 개조할 이득이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남은 것은 후소급 전함과 이세급 전함인데 이 시점에서 항공모함으로의 개조는 비용과 자재 및 시간면에서 힘들다고 판단했고 개조량이 적은 항공전함으로 개조방향을 전환했다고 한다. 여기서 이세급 전함이 최종선택되었는데 이는 휴가가 사격 훈련 당시 5번 주포탑의 유폭사고로 인해 이미 5번 주포탑이 제거된 상태라서 철거작업에 손이 덜 들어가므로 작업량이 적고 공사기간도 짧으리라고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이세급 전함이 항공전함으로 개조된 후에 후소급 전함도 항공전함으로 개조가 계획되었다. 계획상으로는 후소는 구레시에서 개조하고 야마시로는 요코스카시에서 개조하기로 했다. 하지만 1943년 6월에 개조공사가 취소되었는데 사유는 이세급 전함보다 개조하기가 힘들다고 예상된데다가 전황악화로 개조공사기간이 원래 책정된 것보다 더 단축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개조작업중에 미완성된 채로 도크나 차지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야마토급 전함 3번함 시나노를 시나노(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과정에서 전황악화로 인해 빠른 취역을 하기 위해서 공사기간이 무리수를 둘 정도로 계속 단축된 사례가 존재한다.

7. 문제점

막상 만들어진 후소급 전함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4척을 건조하려 했으나, 2척만 만들고 나머지는 개량형이라 할 수 있는 이세급 전함으로 만들어진다.[4]

물론 이런 문제점은 일본 제국 해군도 인식했고, 여러차례 개장을 받는다. 특히 1935년의 2차 대개장은 환골탈태 수준이었는데, 출력증가, 속도증가, 함체 연장, 사격통제장치 개선, 연돌단일화, 장갑의 일부 증대, 대공화기 도입 등 굵직한 개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개수해도 원판의 한계를 못넘었기에, 후소급 전함은 일본 전함 중에서 공고급 순양전함과 함께 가장 말석을 차지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2차례나 대개장을 하면서 재건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전함을 뜯어고친 결과로는 매우 미흡하다. 차라리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들어갔지만 재건조급 대개장으로 1차대전식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2차대전에도 통할 수준의 소형 고속전함으로 만든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이나 콘테 디 카보우르급 전함이 확실하게 더 나을 지경이었다.

후술하겠지만 2차례나 대개장을 하면서도 외형적인 화력유지를 고집하여 14인치 2연장 주포탑 6기 탑재를 고집한 것이 만악의 근원이었다. 쓸데없는 고집만 안부렸어도 대개장을 통해 30노트에 육박하는 속도를 가진 고속전함이나 순양전함이 될 가능성이 높았고 항공모함으로의 개장도 가능하였으며 실전에서도 고속성능을 살려서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7.1. 주포

주포는 공고급 순양전함의 14인치(35.6cm) 45구경장 Vickers Mark "A" 주포를 일본식으로한 41식 35.6cm 45구경장 주포다.

주포탑의 중량은 688t이며 부앙각은 -5°~+25°, 부앙각 조절 속도는 3°/s, 포탑 회전속도는 5°/s이다. 기본적으론 360° 회전포탑이나 전방과 후방포탑은 선체 중심선 기준으로 ±150°의 회전이 가능하며, 중앙부 포탑은 구조물이 사각을 가려 선체 중심선 기준으로 양 측면 120°만 조준할 수 있다. 장전은 +5도에서 포신을 고정하고 장전하며 최대 분당 2발까지 사격이 가능하다. 그리고 개량시마다 주포의 앙각을 높여 최종적으론 -5°~+43° 사이에서 673.5kg의 철갑탄을 최대사거리 35,450m까지 사격할 수 있었다.

초기형의 경우에는 635kg의 5호 철갑탄을 사용했으나 나중에는 673.5kg의 91식 철갑탄을 써서 위력을 증가시켰다. 사정거리 15,000m에서 5호 철갑탄으로는 충돌속도 463m/s로 측면장갑 302mm를 관통하는데 91식 철갑탄으로는 동일한 사정거리에서 충돌속도 510m/s로 측면장갑 426mm를 관통한다. 다만 해당 성능 측정에 사용한 것은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지는 일본제 VC 장갑판이며 91식 철갑탄의 특징인 수중탄 성능을 위해 철갑탄 성능을 일부 깎아먹어서 작약이 들어간 탄체 측면이 얇고 경도가 높은 대신 인성이 낮아서 경사각도가 높아지면 탄체가 장갑을 관통하기도 전에 깨져서 탄자붕괴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이 안좋은 방향으로 시너지가 나오기 때문에 실제로는 미국제 14인치 철갑탄에 비해 5% 정도 성능이 떨어지고 탄자붕괴현상이 심하다. 해당 현상은 전후 미국의 조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주퇴복좌기에도 문제가 있어서 당시의 일본 제국 전함에 도입된 영국식의 수압 복좌방식의 주퇴복좌기는 성능이 부족하여 일제 사격시 화포가 원위치로 돌아오는 복좌시간이 길어지므로 연사속도가 스펙보다 더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 문제는 신규 개발된 공기식 주퇴복좌기로 교체될 때까지 이어져서 일본 해군이 일제 사격을 교호사격이라고 하는 포탑당 1문 발사 후 다른 1문을 발사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데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설상가상으로 후소급 전함은 주포의 장전방식을 새로 도입했는데, 이것이 말썽을 일으켰다. 원래 과거의 장전방식은 자유장전방식인데, 말이 자유장전이지 실제로는 사격한 후에 포신을 다시 +5도 정도의 각도로 일일이 내린 후에나 재장전이 가능하므로 번거로운 반면에 신규 도입한 고정장전방식은 포신을 +5도로 내려서 재장전하는 것은 동일하나, 사격 후에 포신이 자동으로 +5도까지 앙각을 조절하므로 재장전속도가 빨라지는 장점이 있었다. 덤으로 포탑 내부의 방염 대책에도 유리하고 방어상 이점도 있었다. 그래서 해당 방식을 도입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취급 및 정비가 힘들어지는데다가 심심하면 고장이 일어났는데 이렇게 될 경우에는 현지수리가 곤란하므로 해당 주포는 사격이 불가능한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그래서 이후의 일본 전함들은 다시 자유장전방식으로 돌아갔으며, 야마토급 전함에 가서야 다시 고정장전방식을 채용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볼 때 주포 자체는 딱 그 시대의 평균적인 주포로 주포 자체의 개량사업이 미국이 동급 14인치 주포를 장착한 표준형 전함에 대해 실시한 개량사업에 비해 약간 모자랐다는 점을 빼고는 그나마 양호하다. 하지만 주포 자체의 성능이 미국의 동급 함포에 비해 약간 떨어지기 때문에 후술할 방어력과 속력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표준형 전함에게 제대로 타격을 주려면 접근전을 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7.2. 주포탑

후소급 전함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주포탑을 2연장만 사용해서 6기나 장착한게 여러가지 악영향을 가져온 것이다.

건조시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대개장시에는 2연장 주포탑 4기로 바꾸던지 3연장 주포탑을 도입하던지 해서 어떻게 해서든 중앙부 주포탑을 제거했으면 밑에 나오는 부무장, 장갑, 속도 문제가 애초에 발생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7.2.1. 주포탑 6기 배치와 중앙부 주포탑

2연장 주포탑을 채용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협차사격의 특성상 주포 12문을 장착할 때 효율이 가장 좋기에 주포 12문을 장착하겠다는 것도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두가지 조건을 모두 하려고 과욕을 부린 결과 주포탑을 6기나 장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장착 위치도 함수방향에 적층식으로 주포탑 2기, 함미방향에 적층식으로 주포탑 2기까지는 괜찮았으나, 함체 중앙에 주포탑을 2기 장착한 것이 큰 문제점이었다.

당대의 기준으로는 일본이 특별히 바보짓을 한 것은 아니며, 다른 해군국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에서도 나타난 유행으로 단지 일본은 배워오는 입장이라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만큼 양으로 때운 결과 이런 배를 건조하게 되었다. 공고급 순양전함의 계보인 라이온급 순양전함들을 보면 주포탑 4기만 단 배도 1,2번 주포탑은 함수 함교 앞에 모여 있지만, 3번 주포탑은 중앙부 약간 뒤에 있고, 거기서 한참 띄운 자리에 4번 주포탑이 있다. 후소급 전함과 이세급 전함은 공고급 순양전함 설계를 기본으로 새 기관을 달면서 3번 주포탑을 2개로 늘리고 4번 주포탑을 2개로 늘린 것이나 같다.

그러나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계단식 배치로 주포탑을 배치하면 2층 배치도 배수량이 작으면 무게중심이 크게 올라가서 전함이 항해중에 혼자서 뒤집어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3층 배치 같은 것은 시도도 못할 수준이었으며 후대의 모가미급 중순양함이나 우스터급 경순양함에서 나타나는 2연장 주포탑 6기 배치도 전함의 경우에는 배수량을 많이 늘려야 하므로 적용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중앙부 주포탑을 2기나 장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중앙부 주포탑은 1기만 있어도 넓은 갑판면적을 잡아먹고, 내부에도 바벳과 탄약고가 쐐기처럼 자리잡아서 함내 시설물 배치를 망치며, 사격각도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사실상 측면으로만 사격가능한 주포탑이 되고 열을 발산하는 보일러등의 기관이 온도가 올라가면 유폭하기 쉬운 주포 탄약고 옆에 있으므로 탄약고에 방염처리를 크게 강화하고 에어컨도 강력한 것으로 추가로 많이 장착해야 하는 등의 수많은 문제가 있어서 이미 타국에서는 중앙부 주포탑을 제거하기 시작하던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서 후소급 전함의 중앙부 주포탑은 다른 주포탑과는 달리 함체 중앙부에서 서로 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었으므로 함체의 공간을 더 많이 잡아먹는 문제가 터졌다.

물론 후소급 전함이 설계되던 시기엔 아직 중앙부 주포탑을 제거하는 방식이 완전하게 자리잡기 이전이었다. 당장 영국 해군만 하더라도 앙 에슐론(En echelon)방식 배치의 주포탑을 달은 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이 많았고 오히려 일본 제국 해군은 함체 중심선에 주포탑을 몰아넣는 설계를 빠르게 도입한 편이다. 거기서 얻은 이점을 중앙부 주포탑으로 날려먹었지만...

여기에 더해서 일본 제국 해군이 중앙부 주포탑의 문제점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나가토급 전함에 와서야 중앙부 주포탑이 간신히 없어졌지만 그 이후 건조를 시작했거나 계획한 카가급 전함, 키이급 전함, 아마기급 순양전함13호급 순양전함의 주포탑 배치는 모두 공고급 순양전함의 연장선상에 있어서 중앙부 포탑이 있거나 그에 준하는 함 중앙에 가까운 위치에 3번 주포탑을 배치해 놨다. 이렇게 하면 건현 위 공간낭비가 있고 주장갑대가 길어져 같은 배수량으로 쓸 수 있는 장갑이 얇아진다. 일본 제국 해군이 이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야마토급 전함을 설계 및 건조하면서부터다.

덕분에 상부구조물 배치시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일제 사격을 할 때마다 배 전체를 연기로 자욱하게 덮는 것도 모자라서 함체에 후폭풍이 직격으로 날아왔으며, 함체에 주는 진동이 매우 커서 사격통제가 어려워지는 문제점을 낳았다. 얼마나 해당 현상이 심각한지 후폭풍의 영향에 대해서는 전방함교 사격 지휘소에서는 3번 주포탑을 우함수 55도 앙각 5도로 사격을 실시했을 때의 후폭풍이 가장 강하다고 기록될 지경이었고, 1번 주포탑을 좌선미측에 45도 선회 시켜 앙각 20도로 사격을 실시했을 때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게 커서 손에 든 노트와 모자가 날아갈 정도였기 때문에 후폭풍이 없어질 때까지 관측을 할 수 없었다. 특히 2번 주포탑을 좌선미 45도 앙각 20도나 좌선미 55도 앙각 5도로 사격을 한 경우는 1번 주포탑을 사격하지 않더라도 후폭풍의 영향으로 후폭풍이 사라질 때까지 관측은 할 수 없었다. 진동도 매우 심해서 14인치 주포 12문, 6인치 부포 8문을 일제 사격할 경우 격렬한 진동 때문에 2,3초간 관측경에 접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제 사격을 실시하려면 후폭풍 방지 스크린을 설치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서 일본은 교호(交互)사격을 애용하기 시작했다. 교호사격은 함포 사격시 2연장 주포탑의 포신중 하나만을 발사한 뒤, 그 사격의 결과를 반영해서 곧바로 나머지 포신이 발사. 그리고 재장전을 마친 다른 한쪽의 포신이 재발사하는 방식으로 사격간의 간격을 줄이고 명중률을 높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사격통제 및 관측은 용이하지만 1회 사격시 포탄이 6발 밖에 날아가지 않기 때문에 협차사격시 상대방 전함에 주포탄이 명중할 확률과 명중수량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게다가 전함의 주포는 빨리 재장전이 가능한 화포가 아니므로 속사포처럼 빠르게 쏴서 1회당 발사하는 포탄의 수량축소를 빠른 연사속도로 만회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후소급 전함은 운이 좋아서 먼저 상대방을 협차해놓고 정작 주포탄을 못 맞추거나 1-2발만 맞추는 바람에 상대방에게 역관광당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12발을 동시에 쏘건 6발을 동시에 쏘건 함체에 미치는 충격은 비슷하므로 조준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된다면 굳이 12문의 주포를 장착할 이유가 없다.

실제 사격시에는 교호사격을 애용하고 승조원의 훈련을 살인적인 강도로 높여서 주포 사격 자체는 어떻게든 문제 없이 수행가능했으나 원거리 사격시에 주포탄의 탄착군이 넓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또한 중앙부 주포탑의 높이가 일정하게 높은 동일선상도 아니었고, 2기씩이나 있는데다가 서로 떨어져서 배치되었다는 점은 후일에 있던 대개장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후소급 전함은 엄청난 대개장 비용을 사용해서 속력을 최대한 높였지만 25노트까지 달성하는데 실패하였다. 이는 실제로 개장 당시 중앙부 주포탑으로 인해 보일러 높이에 제한이 걸려 기관 출력을 크게 높일 수 없었고, 중앙부 주포탑이 2기나 있는데다가 서로 떨어져 있는 관계로 함체 중앙부 내부 공간이 협소해지고 서로 나누어지는 등 기관부 교체 및 증설에 악영향만 주는 요소가 가득했다. 1번과 2번 보일러실을 폐쇄하고 다른 용도로 전용한 것이 다 이유가 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당시 일본의 기술력으로는 작은 공간에 큰 출력의 기관을 탑재하기가 어렵다는게 현실이다. 이런 결과로 인해 공고급 순양전함이 후소급 전함보다 선체의 폭과 길이가 짧은데 비해, 속도가 월등히 빠른 것으로 나타난다.

다음 함급인 이세급 전함의 경우 중앙부 주포탑을 인접하게 붙이고 계단식으로 쌓아 올려서 비록 중앙부 주포탑으로 인해 잠식되는 내부 공간은 많았지만 쓸모없이 분단되어 낭비되는 공간을 줄여서 좀 더 많은 기관용적을 확보해 후일의 대개장 이후 속도를 25노트대로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세급 전함은 그 대가로 승무원 거주 구역이 모든 일본 전함 중 가장 적은 전함이 되어 부포곽에서 승조원이 취침을 하는 전열함시대에나 있던 위험한 사태를 일으키게 된다.

이런 것을 감안할 경우 대개장시 중앙부 주포탑을 완전히 제거하고 기관을 제대로 증설하고 효율적으로 배치하여 후소급 전함의 속력을 획기적으로 높히는 것이 더 나았다. 이탈리아 왕국이 바로 이런 선택을 했고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은 결과적으로 속도를 21.7노트에서 26노트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7.2.2. 3연장 주포탑 도입 거부

한편 영국이 3연장 주포탑 기술을 제공한다는데 거절했다. 물론 당시에는 충분한 이유가 존재했으나 그 이후의 결과가 참혹했다.

초기 설계안에서 나오듯이 12인치(305mm) 50구경장 3연장 주포탑을 장착하는 설계안도 많았고 12인치의 화력 자체는 당대에 통할 만 했으며 12인치 3연장 주포탑을 5기나 탑재해서 주포 문수를 15문으로 늘려서 화력을 증대시키려는 계획도 존재했다. 만일 이렇게 만들어졌으면 후대의 대개장에서 중앙부 주포탑 1기만 제거하더라도 괜찮은 군함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12인치 3연장 주포탑이 고려되었던 이유는 당시에는 아직 영일동맹의 전성기가 끝나지 않았고 초기의 후소급 전함 설계는 공고급 순양전함의 설계와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비커스 사에 의뢰한 상태였기 때문다. 이 때 영국에서는 후소급 전함에 12인치 3연장 주포탑 탑재를 제안한다. 그러나 일본은 3연장 주포탑을 채택하면 함폭을 더 늘려야 하며, 동시사격이 불가능하다는 등의 이유를 대면서 이 제안을 거절한다.

이는 일본 제국 해군이 공고급 순양전함에 채택 예정이었던 비커스제 12인치 50구경장 함포에 극히 회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카와치급 전함에서 비커스 12인치 함포의 엉망진창인 산포계에 데일 데로 데여본 상황에서 그런 문제를 일으킨 함포를 개량했답시고 들고 오니 당연히 의심할 수 밖에 없긴 했다.

당시 거함거포주의에 따른 전함 설계의 패러다임은 일단 대구경 주포를 올리고 본다는 것이었는데 이미 공고급에서 14인치 주포의 맛을 본 일본에게 12인치 주포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긴 했다. 그 제안을 한 영국부터가 그 당시 한정으로는 주포의 구경을 올리면 올렸지 3연장 주포탑을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은 12인치 주포보다는 공고급 순양전함에 채택한 14인치 45구경장 함포의 성능을 마음에 들어했다는 것이 더 큰 이유를 차지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변명거리는 충분했다.

비슷한 시기에 주포탑의 숫자를 최소한의 수량만 사용해서 주포 12문을 탑재'할' 전함이 있었는데 바로 프랑스노르망디급 전함. 프랑스는 예상을 뛰어넘는 4연장 포탑 3개를 달았다. 하지만 일본과 프랑스와의 관계가 일본과 영국과의 관계에 비해서는 긴밀하지 못한 편이었고 노르망디급 전함은 결국 1차대전으로 건조가 중단되었다가 전쟁후 재개되었지만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폐기되므로 기술력 검증도 안된 상태였고 일본이 기술력을 받아올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선택으로 인해 일본의 전함들은 모조리 2연장 주포탑으로 통일되었으며 3연장 및 그 이상의 다연장 주포탑에 대한 연구는 말 그대로 설계도에서의 구상 수준으로 끝나버렸다. 3연장 주포탑을 가진 전함이 1척이라도 있다면 유지보수 및 실험, 연구를 통해서 3연장 주포탑의 개량 및 보급을 할 수 있었겠지만 2연장 주포탑만 있으면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나중에 나오는 각종 개량안에서 3연장 주포탑 탑재가 자주 나오지만 애초에 실물도 없는 구상안 수준이라서 다 뒤엎어진다.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야마토급 전함을 설계하고 건조할 때지만 이미 그 때는 후소급 전함같은 구식 함선을 개장하기보다는 야마토급 전함을 양산하는데 집중하고 기존 전함들은 연습전함같이 2선급 군함으로 재배치한다는 구상이 있어서 이미 때가 늦은 상황이었다. 야마토급 전함이 계획대로 양산되기도 전에 전쟁으로 돌입한게 답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전간기때 3연장 주포탑 관련 기술을 외국에서 수입할 수도 없었다. 영일동맹은 이미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해제되었으며 서양 열강들은 폭주하기 시작한 일본에 그런 중요한 기술을 넘겨줄 의사가 별로 없었다. 결국 일본 제국은 영국과의 친분을 완전히 끊고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으며 추축국에 가담했으니 당연히 연합국, 즉 적국인 영국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쥐여준다고 해도 귀중한 주포탑 다연장화 제조기술을 줄 턱이 없고 일본제국이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이 터지고 만다.

물론 건조되었던 시기에 같이 건조된 미국의 콜로라도급 전함도 16인치 2연장 주포탑 4기를 장착했지만 미국은 이미 표준형 전함들을 통해 3연장 주포탑 기술을 계속 유지보수 및 발전중이었고 콜로라도급 전함은 조약에 맞추기 위해 긴급하게 16인치 주포탑을 도입해서 2연장 주포탑일 뿐이었다. 그리고 신전함의 시작인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부터 16인치 3연장 주포탑을 별 문제없이 도입성공했다. 영국은 애초부터 기술개발을 통해 더 신기술로 무장된 영국의 넬슨급 전함을 만들어서 군축조약상의 16인치 주포를 가진 전함들 중 유일하게 3연장 포탑을 보유한다.

미국의 경우는 주포의 구경을 줄이지는 않았으나 주포의 다연장화에 신경을 많이 썼다. 당장 뉴욕급 전함네바다급 전함의 주포는 14인치 10문으로 동일하지만 3연장 주포탑을 도입하고 중앙부 주포탑을 제거하는 등 전함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나중의 일이기는 하지만 구경을 늘리기 위해서 포문의 수를 줄인 경우도 존재한다.

그러나 미국이 주포 구경을 줄이지 않은 것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중앙부 주포탑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와이오밍급 전함에서 일본의 이세급 전함과 같은 주포탑 배치를 해본 후에 심각성을 깨닫고 12인치 주포를 14인치로 바꾸는 대신 주포 문수를 12문에서 10문으로 줄이는 희생을 한 것이다. 사실상 뉴욕급 전함과 네바다급 전함이라는 전함의 2개 급 총 4척을 화력이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면서까지 중앙부 주포탑 문제를 해결하려고 몸비틀기를 한 것을 보면 미국의 노력이 대단하다.

미국이 표준형 전함에서 3연장 주포탑 때문에 엄청난 문제를 겪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개선에 성공한 것을 감안했을 때 국력이 약한 일본 입장에서는 미국처럼 여유가 있지 않으므로 모가미급 중순양함처럼 발상의 전환을 통해 주포의 수량이라도 줄여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충분했는데 대개장시에도 그걸 깨닫지 못한게 답답할 뿐이다.

7.3. 부무장

부포의 경우에는 6인치(15.2 cm) 50구경장 Vickers Mark M을 일본식으로한 41식 15.2cm 50구경장 부포를 사용한다. 장착 방식은 단장 포곽방식을 써서 선체 양 측면에 장착하며, 한쪽 측면에 8문씩 배치하므로 총 16문을 장착한다.

포곽방식을 사용하므로 -5도에서 +30도의 앙각을 가지며 좌우로는 140도의 포신 선회가 가능하다. 장전은 +7도에서 포신을 고정하고 장전하며 연사속도는 분당 5 - 6발이다. 그리고 45.36kg의 철갑탄을 19,500m까지 날릴 수 있다. 물론 포곽방식 특유의 문제점은 있지만 그 당시의 사정을 감안하면 평균적인 부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포곽 방식 특유의 문제점인 상하좌우의 사격각도 제한이 그렇게 크게 해결되지 않은데다가 앙각 확대를 위해 천장방향의 방어력을 담당하던 갑판을 절단했으므로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공격에 일반적인 포곽보다 더 취약했다. 포방패도 HT강 38mm로 매우 얇았으며 덤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내부 격벽을 전혀 설치하지 않아서 포탄이나 폭탄이 관통하는 순간 말 그대로 유폭 및 대규모 손상의 위험성이 매우 높았다. 실제로 수리가오 해전 직전의 항해에서 미국 함재기가 250kg 폭탄을 투하하자 전방함교 우현 근방에 있는 1번 부포곽을 관통하고 내부에 있는 주포 기계실 및 수압실에서 작렬했는데 부포곽 자체는 관통만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1번 부포곽의 부포 조작수와 탄약수가 거의 전멸하고 해당 부포곽도 사용불능 수준으로 개박살나는 피해를 입는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부포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포신의 상하좌우조절을 인력으로 하는데다가 무거운 포탄을 수동장전한다는 것이다. 일단 무거운 포신을 인력으로 움직인다는 것 자체는 둘째치고라도, 포탄의 중량이 45.36kg이고, 나중에 개발된 ASW탄은 한술 더 떠서 51.3kg이다. 이런 수준의 포탄 무게는 서양인중 건장한 체격을 가진 사람에게도 무리인데, 당시의 일본인들에게는 완전히 무리였다. 따라서 스펙상의 분당 연사속도는 전혀 의미가 없으므로 부포 화력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 더해서 주포 사격시마다 포연으로 인해 시야가 가리기 때문에 부포를 조준하기도 힘들었다. 이런 문제로 인해 이세급 전함부터는 포탄이 좀 더 가벼운 3년식 14cm 50구경장 단장 부포곽으로 변경하게 된다.

건조 당시에는 함선의 대공능력은 크게 고려되지 않던 시절이었으므로 대공화기는 설치하지 않았다. 아직 비행기가 군함을 공격할 수단이 매우 부족했고 성능도 안좋은 시기었기에 이때의 전함은 대공무장을 많이 갖추지는 않았다. 잘해봐야 기구(탈것)이나 비행선 격추용으로 몇 문의 기관총이나 기관포를 갖추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주포탑 6기를 배치하는 구조 탓에 나중에 다른 것을 갑판 위에 놓기 어려웠다. 그리고 억지로 뭔가를 달아놓으면 주포탑 선회가 힘들어지고, 포격에 방해가 된다. 나중의 대개장시부터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 2연장 포좌 4기 8문을 비롯한 대공화기를 더 달기는 했는데, 주포 사격에 방해가 될까봐 많이 달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대공방어를 위해서 대공화기를 증설하긴 했는데, 제대로 된 대구경 대공포보다는 간단하게 설치가능한 대공기관총 위주로 달아서 수량에 비해 대공화력이 약하고 사정거리가 짧았다.

물론 대구경 대공포의 탑재 수량 부족 문제는 일본 전함들의 공통된 문제점이기도 하다. 후속함인 이세급 전함과 나가토급 전함도 대구경 대공포는 후소급과 마찬가지로 89식 대공포 8문이 전부이고 오직 야마토급 전함만이 건조 당시 89식 대공포 12문, 증설을 통해 24문을 보유하여 비교적 넉넉한 수량을 갖추었다. 그러나 다른 일본 전함들은 수상전에 대비한다고 고집부려서 유지하는 포곽 방식의 부포만 제거하면 해당 위치에 얼마든지 대구경 대공포를 장착할 수 있는데 반해 후소급 전함은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애초에 달아놓은 대구경 대공포 위치도 주포탑 사격각도 확보 및 후폭풍 회피를 위해 간신히 마련해 놓은 곳이라 더 늘리기도 힘들었다.

이러니 적의 공군이 나타나면 속수무책이다. 일본의 주력 대공화기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후소급 전함은 대공화기의 대량배치조차 어렵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실제로 수리가오 해협 해전을 하려고 항해중인 니시무라 함대가 정찰폭격 임무로 250kg급 폭탄 1발 정도만 탑재한 20기 정도의 함재기로 구성한 미국 정찰부대와 만나서 고작 5분간의 공습을 당했는데도 격추된 미국 항공기는 없고 전함 후소가 명중탄 1발과 지근탄 1발을 당해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7.4. 장갑

방어력에 신경을 썼다는 것은 사실이다. 배수량의 약 26%를 방어력 강화에 사용했고, 그 결과 스펙상으로는 현측장갑에서 가장 두꺼운 부분이 305mm, 주포탑 전면이 280mm, 장갑함교가 351mm이므로 나름대로 준수해보인다. 처음에는 어뢰방어가 없었지만 대개장으로 약 69mm ~ 76mm의 장갑판이 추가되었다.

대개장후의 장갑은 아래와 같다. 단위는 밀리미터(mm)이다.
측면 주장갑 VC 102 - 229 - 305 - 229 - 102
중갑판 측면장갑 VC 203
상갑판 측면장갑 VC 152
횡방어격벽 전방중간갑판 VC 152
하갑판 VC 152
후방중간갑판 VC 102
하갑판 VC 51
중갑판 NS 32 + NVNC 19 - 67
최상갑판 HT 35
어뢰방어격벽 HT 25 - 64
탄약고 천정의 평탄부분 NS 35 + NVNC 19 - 67
천정의 경사부분 HT 25 + NVNC 32 - 67
측면 NS 35 + HT 38 + NVNC 51
바닥 NS 32 - 41
장갑함교 측면 VC 351
통로 VC 51 - 178
주포탑 전면 KC 280
측면 KC 229
후면 KC 229
천정 VC 152
주포탑 바벳 VC 51 - 305 + NVNC 51 - 114
부포곽 포방패 HT 38
격벽 없음
조타기실 없음(전쟁중 주변에 콘크리트 충전)
연통 연로방어구 VC 178

대략적인 방어구조는 아래와 같다.
구분 측면장갑 갑판장갑 어뢰방어격벽
측면 주장갑 VC 228mm - 300mm - 228mm 없음 없음
중갑판 VC 200mm NS 31mm + NVNC 66mm 없음
상갑판 VC 152mm HT 12mm 없음
최상갑판 없음 HT 35mm 없음
경사부 HT 25mm + NVNC 66mm 없음 없음
선수부와 선미부 흘수선 VC 101mm 없음 없음
선수부와 선미부 중상갑판 VC 200mm 없음 없음
장갑함교 VC 351mm 없음 없음
주포탑 바벳 VC 300mm 없음 없음
주포탑 KC 280mm VC 152mm 없음
보일러실 측면 종횡벽 없음 없음 HT 25mm + HT 38mm
탄약고 측면 종횡벽 없음 없음 HT 25mm ~ 38mm (외부)
NS 12mm ~ 15mm (내부)
장약고 측면 종횡벽 없음 없음 NVNC 장갑판 50mm (외부)
NS 28mm ~ 35mm (내부)

중갑판의 갑판방어는 보일러실의 일부 부위가 NVNC 66mm 대신 HT 19mm가 붙었으며 상갑판의 갑판방어는 탄약고 상부 부위만 HT 12mm가 적용되는 등 대개장후에도 약점이 존재하지만 보일러실 측면 종횡벽의 일부처럼 HT 38mm + HT 38mm이 적용되는 등 강화된 부위도 있다.
파일:external/orig10.deviantart.net/fuso_class_bb_protection_by_lioness_nala.jpg
후소급 전함의 장갑배치도

그러나 대개장후에도 실제로는 방어력이 낮았다. 일단 장갑증설 후에도 14인치 주포탄에 대한 대응방어가 전혀 안되는 것은 기본이었다. 현측장갑에서 305mm의 장갑을 유지하는 곳은 수선부 근처에 한하며, 높이도 낮은데다가 길이도 전방부 함교 중앙부에서 후방부 함교 직전인지라 이 장갑으로 보호받는 곳은 동력부와 3, 4번 주포탑의 탄약고 정도다. 나머지는 229mm 수준이라서 1, 2, 5, 6번 주포탑의 탄약고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그렇다고 주포탑 바벳이 강력한 것도 아니라서 일부 돌출되는 부위만 305mm지 다른 곳은 203mm다. 그리고 부포곽이 있는 측면은 152mm 수준으로 적의 주포탄이 명중하면 절대로 방어가 불가능하다. 갑판장갑도 총 합계는 64mm지만 다층식이라 각 장갑의 두께는 사실상 파편방어수준이고, 공고급 순양전함처럼 약간의 경사장갑을 주지 못하고 수평으로 달아놓았기 때문에 방어력이 약간 까진다. 덤으로 갑판장갑의 경우에는 파편 방어나 선체 구조재용으로 사용하는 HT, NS 강철이 사용되므로 두께만큼의 방어력도 부족하다.

따라서 이런 방어력으로는 미국 표준형 전함의 초기 주포인 14인치(356mm) 45구경장 Mark 1은 물론이거니와 알래스카급 대형순양함의 주포인 12인치(305mm) 50구경장 Mark 8도 못 막는다.
설상가상으로 스펙상으로는 VC(Vickers cemented) 장갑판이지만 실제로는 방어력이 더 낮았다. 당시의 일본은 제강기술이 아직 강대국보다 떨어지므로 305mm 이상의 두께를 가지는 장갑판을 만들어내지도 못할 뿐더러 VC 장갑판을 라이선스해서 만들어도 원판에 비해 성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펙과는 달리 그 이하의 방어력을 낸다. 그래서 과거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처럼 8,000m 이하의 포격전만 감안한데다가 대응방어의 기준도 철갑탄이 아니라 고폭탄을 기준으로 한다는 자기합리화를 시전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주포탑 6개를 달았기에 그만큼 방어해야 할 면적이 늘어났다. 함체의 1/2 정도가 바이탈 파트였다. 즉, 충분한 관통력을 지닌 포탄에 피격당하면 50% 확률로 치명상을 입는다는 뜻이다. 특히 함체 중앙은 3번과 4번 주포탑과 탄약고, 보일러와 터빈, 함교가 나란히 배치되어있어서 피격시 타격이 더욱 크다. 때문에 장갑을 그만큼 넓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정된 중량에서 장갑이 넓게 퍼지면, 당연히 장갑판이 얇아진다. 한마디로 말해서 집중방어의 개념도 없고, 적용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널리 퍼진 주포탑 덕분에 주포탑 탄약고도 분산되었으므로 피탄시 위험도가 높은 지역이 늘어났다. 그래서 나중의 대개장에서도 장갑의 재질을 교체하고 갑판장갑은 철갑판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총계 100mm 정도로 강화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정리하자면 전함급의 함선이 보유한 대구경 함포의 포탄을 제대로 막아낼 수 없는 후소급 전함의 장갑으로는 전함 상대로 측면을 드러내며 포격전을 벌이면 필패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전함은 보유한 최대한의 화력을 투사하기 위해서는 좌현이든 우현이든 측면을 드러내야만 한다. 전함으로서 최악의 조건을 안고 싸우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실전에서는 호위하는 구축함이 연막을 살포한 후 최대속도로 적함에 근접하면서 날아오는 적군 포탄은 최대한 비스듬하게 함체를 돌려서 맞는 티타임 전술을 써서 관통되지 않도록 하면서 적함에 초근접해서 14인치 주포 12문과 부포까지 동원가능한 전체 화력을 적함에게 퍼붓는 방식의 전투를 하려고 했지만 육상의 전차도 하기 힘든 전술을 크고 둔중한 전함이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다가 실제 하려고 해도 후소급 전함이 기본적인 속도도 느리고 급선회시 속도가 추가적으로 더 줄어드니 탁상공론에 불과하였다.

공습에도 취약해서 함재기형 급강하폭격기가 일반적으로 가볍게 사용하는 250kg급 항공 폭탄에 대한 방어력도 장담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250kg급 폭탄은 99식 함상폭격기인 D3A 정도나 쓰는 폭탄으로 구축함이나 순양함 같은 보조함에나 화력이 먹힐 수준이었으며 전함같은 강력한 주력함에게는 SBD 돈틀리스처럼 450kg급 폭탄을 써야 간신히 이빨이 들어가며 1발만 명중해도 제대로 타격을 입히고 싶다면 한스 울리히 루델Ju 87마라(전함)을 격침시킨 것처럼 1톤급 폭탄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해본다면 후소급 전함의 갑판장갑 방어력이 얼마나 취약한 지 한눈에 파악 가능하다.

물론 후소급 전함이 격침당한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는 방어력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전투 준비를 마친 단종진에 정면으로 돌격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전함을 투입하더라도 생존을 보장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 단종진에는 미군의 전함이 6척이나 있었고 순양함과 구축함 등 보조함들도 수두룩했다.

그러나 후소급 전함들을 완전히 끝장낸 미국 구축함들의 어뢰명중을 살펴보면 빈약한 방어력이 상당한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구조상 장갑방어력이 가장 약한 후소의 경우에는 미국 전함의 단종진이 상대하기도 전에 미국 구축함의 어뢰를 맞고 허무하게 두쪽이 나서 침몰했다. 그렇다고 어뢰를 많이 맞은 것도 아니라서 잘 해봐야 1발, 많아야 3발인데 중앙부 주포탑인 3번 주포탑 근처에 맞아서 화재가 발생했고 이걸 소화하지 못하는 사태가 터져서 탄약고 유폭으로 순식간에 배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격침당한 것이다. 후소보다는 구조상 튼튼한 야마시로는 미국 전함의 단종진에 돌입하기 전에 어뢰를 2 ~ 3발 맞았으나 좌현으로 기울어지고 속도가 느려지는 결과에 그쳤으나 미국 전함과의 야간 포격전 중에 맞은 어뢰가 주포 탄약고를 유폭시키면서 전방함교가 붕괴되는 등 치명상을 입고 배가 전복된다. 둘 다 애초에 일반 전함들처럼 탄약고 숫자가 적고 동력부와 섞여서 배치된 상태가 아니라면 그렇게 무의미하게 쓰러지지는 않고 버티기라도 좀 더 했을 것이다.

그나마 측면 방어력과 어뢰 방어력은 구색이라도 갖추어놓아서 실전에서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라도 했지 갑판 방어력을 비롯한 다른 방어력들은 실전에서는 진짜로 답이 없었다. 수리가오 해협 해전을 하려고 항해하던 후소에게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과 항공모함 프랭클린에서 발진한 20기의 함재기가 공습을 한 적이 있는데 해당 함재기들은 정찰폭격이라고 하는 정찰을 위주로 하고 적을 만나면 가벼운 폭격으로 견제하라는 식의 임무를 수행하는지라 연료를 많이 넣은 대신 숫자도 적고 폭탄도 250kg급의 소형 폭탄만 1발 정도 달아놓은 부대 소속이었으며 고작 5분간의 공격 후에 적 함대 발견의 소식을 가지고 귀환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적의 정찰부대와 만나서 가벼운 교전을 한 정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후소가 입은 피해가 심각하였다. 250kg급 폭탄 투하로 지근탄 1발과 명중탄 1발이 발생했는데 일반적인 전함이라면 갑판 상부에 약간의 파손 정도만 입고 넘어갈 사소한 공격이었지만 후소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우선 수상기캐터펄트 근방에 떨어진 지근탄으로 인해 후방 갑판에 적재한 폭뢰가 폭발하고 수상기 2대에 불이 옮겨붙어서 수상기 연료인 휘발유도 불타고 수상기에 탑재한 소형 폭탄까지 연쇄폭발하면서 1시간 넘게 후방 갑판에서 대규모 화재가 진행되었으며 주변 시설에도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 지근탄 1발에 전함의 함미가 불바다가 된 것이다. 워낙 화재가 대규모였는지라 추가적인 공습을 우려한 니시무라 중장은 항공순양함 모가미에 탑재된 수상정찰기 2대를 산호세 기지로 피난시킬 목적으로 급하게 발진시켜서 내보냈다. 수상기가 없으면 장거리 정찰이 아예 불가능해지는데도 그걸 감수하고 명령을 내릴 지경이었던 것이다.

명중탄의 경우에도 만만치 않았는데 전방함교 우측에 위치한 1번 부포곽을 250kg급 폭탄이 관통해서 중환자실과 피복창고를 연쇄관통한 후 주포탑용 수압기계실에서 작렬했다. 덕분에 1번 부포곽 조작원과 탄약수가 거의 전멸하고 의무실의 군의관과 응급복구요원 십수명이 사망하였으며 피복 사무실과 주방 사무실이 파괴되는 인명피해를 입었으며 시설면에서도 수압기계실 자체가 파괴되고 주변의 방수 격벽이 찌그러지고 중갑판과 상갑판이 부풀어오르거나 눌렸으며 1번 주포탑과 2번 주포탑의 동작에 이상이 발생하고 침수가 일어나서 우현으로 2도나 경사가 발생하였다. 응급조치 후에도 함체 경사는 우현으로 2도 상태로 기울어진채 유지되었고 그대로 그냥 전투에 계속 투입되게 된다.

종합하자면 20기의 함재기로 이루어진 정찰부대와 5분간 이어진 짧은 교전에서 전함답지 않게 상당한 내상을 입은 셈으로 제1유격부대 제1부대와 제2부대인 구리다 함대의 무사시(전함)처럼 본격적인 공습을 당했다면 수리가오 해협에서 야전을 하기도 전에 이미 격침되었을 확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7.5. 속도

속도는 40,000마력으로 22.5노트를 달성했으므로 그 당시의 기준에서는 나름대로 준수해보인다. 그리고 영국제 엔진과 동력기관을 달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문제점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22노트 이상의 속도를 내면 동력기관이 고장날 확률이 매우 높았으며, 시험항해에서 야마시로가 잠시동안 23노트를 달성했더니 증기 터빈베어링이 몽땅 망가지는 등의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그래서 실제로는 21노트가 한계점이라 다른 일본의 전함들과 공동작전을 하면 함대 속력을 깎아먹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방향타를 크게 꺾는 등 방향전환을 급격하게 할 경우에는 속도가 크게 저하한다. 그래서 후소급 전함은 따로 전대를 구성하거나 다른 함대에 편성하더라도 함대 최후방에 놓아서 다른 함선의 항진에 지장을 주는 일을 막으려고 했다.

이 문제는 대개장시에 동력부를 모조리 교체해서 75,000마력으로 출력을 높여서 해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24.5노트가 한계라서 일본이 생각하던 개장전함의 속도인 25노트를 맞추지 못했으며, 사실 이 속도도 약간 무리한 것이라서 실제로는 23 - 24노트가 한계점이었다.

이 문제도 중앙부 주포탑 탓이 컸다. 다른 전함에 비해서 작은 공간, 그것도 중앙부 주포탑으로 인해 비효율적으로 나뉘어진데다가 중앙부 주포탑이 1기씩 뚝 떨어져 있는 구조라 내부 구조공간 중에서 제대로 동력기관에 사용할만한 공간이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1번과 2번 보일러실을 장교용 숙소와 연료탱크로 전환한게 해당 공간을 사실상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더 컸다. 덤으로 중앙부 주포탑 때문에 보일러실의 높이까지 제한이 들어갔다. 얼마나 비효율성이 큰지 중앙부 주포탑을 좀 더 제대로 정리한 이세급 전함은 25노트를 달성했고 내부공간 활용이 더 유리한 공고급 순양전함은 30노트를 달성한다.

물론 미국의 표준형 전함들과 영국의 리벤지급 전함, 넬슨급 전함의 속력도 안좋았다. 그러나 이들 전함들은 한정된 예산 속에서 빠듯하게 성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터라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개장해서 동력기관을 증설하려고 해도 공간을 더 이상 만들어내지 못할 수준이었던 게 원인인 것이고 넬슨급 전함은 해군 군축조약의 제한까지 더해져서 3만5천롱톤의 배수량 안에서 공격과 방어를 챙기느라고 주행을 챙기지 못한 게 크다. 일본 제국처럼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추축국들이 조약을 우회하거나 마개조를 통해서 전함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속력을 얻게 되자 그 때까지 해군 군축조약의 굴레에 사로잡혔던 연합국들이 세계 대전이 임박한 시점까지 와서야 황급하게 고속전함들을 건조하지만 전쟁에 투입할 때까지 완성하지 못하거나 전쟁에 간신히 맞추지만 그나마 전쟁 중반 이후에나 투입이 가능하거나 초기에 나왔으나 트러블이 발생하거나 해군 군축조약의 영향 때문에 밀 준비한 주포 구경이 작아서 전투시 힘들어지거나 하는 부작용이 작렬하였다.

따라서 일본 제국의 국력이 낮아서 연합국처럼 고속전함을 따로 뽑아내기 힘들다는 점은 충분히 감안할만 하지만 연합국도 번개불에 콩을 구워먹듯이 제한된 시간내에 빠르게 고속전함을 뽑아내야 했다는 점에서 양자의 처지는 의외로 비슷하다. 이런 점에서 막대한 돈과 시간을 소모하면서 대개장을 한 후소급 전함이 저 지경이라는 것은 문제가 매우 크다.

그리고 후소급 전함이 24노트, 이세급 전함이 25노트의 속도를 가진 결과 나가토급 전함의 대개장시 속도를 29노트로 하는 안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후소급 전함과 이세급 전함과 발을 맞춘답시고 속도를 25노트로 하향조정해서 보일러와 터빈은 교체했는데 주기관을 교체 안하는 대사건을 만들고 만다. 원래 나가토급 전함은 26.5노트를 자랑하던 고속전함이었는데 한순간에 저속전함으로 전락하였고 그 결과는 동부 솔로몬 해전에 투입된 무츠(전함)이 속도가 느려서 주력함대를 따라잡지 못해서 구축함 3척의 호위 하에 트럭 제도로 되돌아가는 사태가 나는 등 느려서 써먹을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만다.

이런 문제는 후소급 전함과 이세급 전함이 중앙부 주포탑을 포기하고 동력기관을 제대로 증설하고 효율적으로 배치만 해도 해결된다는 점에서 일본군의 대실책이 맞다. 그렇게 되면 나가토급 전함을 29노트로 만들어도 충분히 후소급 전함과 이세급 전함이 비슷한 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에 야마토급 전함을 포함한 일본의 모든 전함들이 27노트에서 30노트의 속도를 가짐에 따라 다방면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2연장 주포탑 6기 배치와 중앙부 주포탑 2기라는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기에 장갑도 빈약하고 속도도 느린 전함이 화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근접전을 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속도가 더 느린 표준형 전함과도 맞상대가 힘들었고 특히 변침이라도 하면 속도가 크게 느려지므로 쉽게 따라잡혀서 몰매를 맞기 쉽다.

그나마 대개장을 통해 올라간 속도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관리를 점점 소홀하게 받게 되자 기관부등이 빠르게 노후화하면서 레이테 만 해전 직전에서는 대개장 이전의 속도인 18노트에서 21.5노트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리하여 일본이 보유한 전함중에서 가장 속도가 느려지게 된 것이 레이테 만 해전에서 후소급 전함만 따로 추려내서 제1유격부대 제3부대로 수리가오 해협에 투입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7.6. 마천루 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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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후소의 전방함교

여기까지만 보면 후소는 동시대의 다른 전함에 비해 결함이 많은 전함으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후소가 이토록 유명해진 원인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비정상적으로 쌓아 높아 보이는 함교이다.

후소급 전함이 건조될 때만 하더라도 영국이 사격방위반 같은 장거리 사격용 사격관제 및 관측기술을 전해주지 않았기에 마스트의 구조는 간단했다. 그러나 그 당시 기준으로도 포격관측이 어려웠고, 연통에서 나오는 매연이 관측을 방해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후 사격방위반등의 기술을 확보한 후에는 장거리 포격전을 대비해서 여러 관측장비를 장착하게 되었는데, 달아놓을 것은 많고 주포탑 때문에 놓을 곳은 별로 없다보니 거의 함교에 덕지덕지 몰아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후소급 전함의 함교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아지고 말았으며, 특히 1번함 후소의 함교는 수면 위 40미터까지 솟아올라갈 정도였으며 15층이란 괴물같은 층수를 기록했다. 경계 도중 후소를 마주친 미 해군의 잠수함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같은 전함을 발견했다."고 보고를 올린 일화도 있다는 모양이다. 이는 단순 사령탑 구조물 높이만 봤을 때, 즉 갑판을 기준으로 측정했을 시 야마토급 전함보다도 높은 기형적인 수준의 비율이다.[5]

물론, 당대 일본의 주력전함인 나가토급 전함도 수면으로부터 측정 시 41미터로 후소급 전함의 함교는 일본군 기준에서는 아주 높은 편은 아니었다. 문제는 후소가 나가토급에 비해서 크기가 작은데도 40미터라는 것. 게다가 함교에 중요시설이 밀집해 있다 보니 각 시설에 할당된 공간도 좁아서 원활한 업무가 어려우며, 높은 곳에 중량물이 올라가게 되므로 무게중심이 크게 상승하여 복원성이 악화된다.[6] 그리고 함교에 피탄을 당하면 중요한 시설이 파손될 확률이 높아지므로 명중당한 포탄의 위력에 비해 심각한 손상을 입는데다가, 재수없으면 함교 하단부에 주포탄 1발만 맞아도 함교의 모든 기능이 정지해버려 전함 한척이 그대로 깡통으로 전락할 수 있었다. 외관상으로도 전체적인 밸런스가 맞지 않고 이상할 정도로 앙상한 함교의 형태가 불안감을 줬다. 거기다 야마시로와는 다르게 후소의 함교는 하층부 후방과 3번 주포탑 위에 올린 정찰기 사출기의 간섭을 피하려고 뒷쪽이 움푹 파였기 때문에 어딘가 불안정하고 부실해보이는 탓도 있다.

정찰을 위해 정찰기를 배에 실어야 하는데, 대공화기도 놓을 데가 없는 후소급 전함에 비행기를 실을 자리가 있을 턱이 없으니, 1번함 후소는 3번 주포탑 위에 캐터펄트를 달고, 거기서 비행기를 발진시키는 편법을 쓰게 되었다. 이 방법 자체는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군함 중, 함재기 발달을 고려하지 않고 건조된 전함, 순양함들이 주로 이런 방식으로 운용했으므로 아주 뻘짓은 아니었다.

그런데 3번 포탑에 캐터펄트를 달자니, 주포탑 앞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마천루 수준의 함교가 방해가 되었고, 그래서 함교의 뒷부분을 파내고 억지로 빈 공간을 만들었다. 당연히 이러한 짓을 해 버렸으니 아무리 나사가 하나씩 빠졌다는 일본군 무기라고 하더라도 정말로 함교가 무너질까 봐 걱정되는 결과물이 나와 버렸고, 결국 2번함 야마시로는 3번 주포탑을 전방이 아닌 후방을 향하도록 배치하고, 함미 부분을 늘린 후 거기에 비행기를 탑재할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후소의 함교보다 야마시로의 함교가 좀 더 안정적이고 정돈된 형태를 보인다. 후소 역시 나중에 야마시로와 마찬가지로 개조됨으로서 주포탑 위에 비행기를 놓는 엽기적인 짓은 안 하게 되었으나, 괴이한 함교구조물은 그대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거주성도 나빠졌다. 주포탑을 6기나 탑재하는 것 자체가 함체 내부의 공간을 많이 잡아먹는데다가 주포탑이 산지사방에 흩어져 있으므로 중량물이 너무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함교를 제외한 상부구조물의 평균 높이가 낮아졌으며, 부포곽까지 가득 들어찼기 때문이다.

이 복잡하게 생긴 함교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

8. 실전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전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후소는 훈련함으로 뛰어다녔다. 성능도 문제지만 함대결전을 준비하는 일본 제국 해군의 방침 때문에 함부로 전장에 나서지 않은 탓도 있다. 그래서 일본 전함 중 전장에 나선 것은 너무 약해서 함대결전 구성원에서 빠진 공고급 순양전함 뿐이었지만, 그 활약상에 대해서는 항목을 참고.

이후에도 미드웨이 해전으로 인해 항공모함이 부족해지자, 개장해서 항공모함으로 만들 대상에 올랐지만, 이때도 사고로 인해 주포탑 1기가 파괴된 이세급 전함이 철거공사와 비용이 덜들어간다고 선택되었고, 후소급 전함은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야 후소급 전함은 결전급 해전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너무 느린 속도나 낡았다는 이유로 인해 야마토급 전함이 소속된 주력 부대인 구리다 함대가 아니라 양동 작전을 담당해서 남쪽 방향에서 수리가오 해협으로 진격하는 니시무라 함대에 소속된 후소와 야마시로는 용감하게 레이테 만으로 진격하지만, 그들의 앞에는 미군의 어뢰정, 구축함, 순양함, 전함 등이 잔뜩 모여 매복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어뢰정의 공격을 시작으로 해서 구축함, 순양함, 전함들이 차례차례 공격에 들어갔고, 진주만에서 침몰했다가 건져져서 수리된 전함[7]들은 복수를 위해 포문을 열었다.

전투의 양상은 쓰시마 해전의 재림이 되었고, 이번에는 일본 해군이 상대의 아가리로 들어갔다. 결국 후소는 진격 도중에 플레처급 구축함 멜빈(DD-680)의 어뢰공격을 받고 엔진실이 침수되고, 3.4번 포탑의 폭발로 보이는 폭발을 일으킨 후 표류하다 4시 19분 혹은 5시 20분에 완전히 침몰했다.[8] 야마시로는 미군 전함들의 단종진 앞까지 갔지만 미군 전함 및 순양함의 포격과 구축함 베니언이 발사한 어뢰 2발에 피격되어 전복되었고, 4시 19분에 완전히 침몰했다.

후소는 함장인 반 마사미 소장이하 승무원 중 10명만이 생존했고, 야마시로 역시 니시무라 쇼지 중장과 함장인 시노다 가즈키요 소장이하 승무원 대다수가 전사했으며 생존자는 단 10명에 불과했다.

보통 군함의 함장영관급 장교가 담당하며 일본 제국의 전함의 함장도 대령계급에 해당하는 대좌의 계급을 가진 사관이 임명되었지만, 후소의 반 마사미(일본해군병학교 42기)와 야마시로의 시노다 가즈키요(일본해군병학교 44기)는 함장으로 착임한 후 레이테 만 해전에 참가하기 위해 출발하기 전 각각 소장으로 승진하였다. 전투 후, 두 함장은 중장으로 추서되었으나 제2전대 사령관인 니시무라 쇼지 중장은 추서되지 않고 중장 그대로에 머물렀다.

9. 평가

"후소는 전함과 포격전을 할만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 츠루오카 노부미치(鶴岡信道), 前 후소 함장.

일본 최초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서, 그 이후에 만들어진 일본 전함의 초석이 되었기에 나름대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후소급 전함이 실전에 투입될 것이 예측될 시기에는 이미 가장 오래된 전함으로 미숙한 설계와 수많은 단점으로 인해 1선에서 사용하기에는 뭔가 문제가 많으리라는 것이 충분히 예측되었고 일본 제국도 그걸 인정해서 어떻게든 써먹으려고 대개장을 2번이나 실시하게 된다.

하지만 야마토급 전함이 양산되면 연습용 전함같이 2선급 이하로 물러난다는 계획이 잡혔는데도 불구하고 열악한 재정상태로 인해 실제로는 이세급 전함과 같이 1선급 전력에서 물러날 수 없다는 모순이 서로 충돌한 결과기 심각했다.

그래서 순리대로라면 주포탑과 주포 숫자를 줄이고 중앙부 주포탑을 완전제거하여 선수와 선미에 14인치 2연장 주포탑 2기씩을 계단식으로 탑재하고 동력기관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고 증설한 후 공고급 순양전함을 도와주는 장갑이 더 두꺼운 순양전함이 되거나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16.1인치 주포를 2연장 주포탑 3기 6문 정도의 소량을 탑재하는 대신 방어력과 속력을 올린 소형 고속전함이 되거나 항공모함으로 개조되거나 해서 전쟁에서 더 유용하게 다목적으로 사용이 가능했던 후소급 전함은 2차대전 시점에서는 이미 1선급 화력에 간신히 턱걸이를 하고 있던 14인치 주포 12문이라는 무장을 그대로 보유한 상태에서 주포 배치방식도 2연장 주포탑 6기에 중양부 주포탑 2기라는 답도 없는 기존 방식을 고집한 나머지 대개장을 2회나 했음에도 성능 향상이 미약하여 실전에 쓰기에는 답이 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게다가 통상적인 해전이건 함대결전이건 통상파괴전이든 간에 일본군이 실시한 실제 대개장보다는 위에 언급한 장갑강화 순양전함이나 소형 고속전함이나 항공모함이 더 유용하다는 것이다. 외형적인 주포 화력 유지에만 몰두한 결과가 매우 안좋았다.

결국 성능과 전과와 인기는 망했어요. 전과도 없고 성능도 뛰어나지 않기에 일본 전함 중에서 가장 인기가 없다. 게다가 특징면에서도 참 위치가 안좋은데, 공고급 순양전함은 빠른 속도, 이세급 전함은 항공전함, 나가토급 전함은 전간기를 주름잡은 경험, 야마토급 전함은 말 안해도 다 알듯이 가장 거대한 전함으로 나름대로 특징을 가지지만, 후소급 전함의 특징은 그로테스크한 40미터급 파고다형 전방함교 뿐이다. 덕분에 각종 작품에서 야라레메카가 돼버리기도 한다. 사실 후소급 전함도 격침만 안 됐으면 적어도 항공전함 개수는 받았을 가능성이 있었으나 그 전에 격침된 바람에 운이 없기도 했다.

그리고 후소급 전함이 차라리 대개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전장에 투입되었으면 건조 당시에는 준수했으나 시대의 흐름을 못 이긴 구식 전함 취급을 받아서 그럭저럭 평가가 지금보다는 상당히 나아질 수 있었지만, 1935년까지 배를 밑바닥부터 뜯어고치는 수준의 대개장을 2번이나 하면서 돈과 자재를 많이 썼는데도 불구하고 기존의 단점을 별로 개선하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가 돼서 더 까인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도 기술력의 부족보다는 일본군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더 컸다. 한마디로 말해서 잘못된 생각으로 돈과 자재와 시간을 낭비했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레이테 만 해전에서 니시무라 함대가 전멸할 때, 후소와 야마시로는 최후까지 물러나지 않고 싸우다가 격침되었다. 이것이 전함과 전함간 최후의 포격전이기도 해서 역사적으로도 의의가 있으며, 구축함한테 쫓겨서 줄행랑치는 바람에 작전을 말아먹은 야마토와 나가토보다는 훨씬 잘 싸운 셈이다.

10. 여담

위에 서술된 것과 같은 문제점 때문에 밀덕들 사이에서는 이름을 비틀어 농담삼아 쿠소급 전함(...)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의외로 서양에서는 밀덕 사이에서 주류라고 하긴 그렇지만 매니악한 인기를 지녔다. 성능이고 뭐고를 떠나서 생긴게 멋있다는 건데, 특히 크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는 매니아들 사이에서 후소급의 높고도 뭔가 메카메카한 함교는 가히 언터쳐블급.[9] 후소급에 가장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인물로도 일본인이 아니라 폴란드 모형전문가인 Janusz Skulski로 평가되고 있다. 월드 오브 워쉽의 제작진은 "이거 만들고 싶어서 게임을 개발했다"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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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게이밍 코리아의 인벤축전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일부 밀리터리 게임에서는 묘하게 성능이 좋게 나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서는 일본군 미션중에 전함을 모는 미션중에서 후소를 몰게 되는 미션이 상당히 많은데, 20노트라는 괴멸적인 속도는 어쩔 수 없어도 화력은 상당히 버프를 받아서 무쌍을 찍을 수 있다. 물론 후소를 편애해서 그런거라기보단 후소의 원래 스펙대로 미션을 진행하면 도저히 견적이 안나와서다.

월드 오브 워쉽에서도 비슷한 성능을 가진 함선끼리 매칭이 되고, 현실과 달리 함교에 포탄을 맞아도 큰 피해가 없도록 구현된 게임의 특성 상 실제 역사상의 낮은 성능은 온데간데없고 356mm 12문의 강력한 화력과 뛰어난 집탄률, 동티어에서 독보적으로 긴 사거리를 가져 대다수의 유저들이 입을 모으는 상당한 명품 전함이 되었다. 대신 18.6km에 달하는 너무 큰 피탐지가 있지만 말이다.[10]

일본군 해군의 군함 명명법 규칙에서 완전히 벗어난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전함은 일본의 옛 번국 이름, 항공모함은 상서로운 날짐승의 이름, 순양전함과 중순양함은 산 이름, 경순양함은 강 이름, 구축함은 기상현상[11]에서 함명을 따 왔는데 상술했다시피 1번함 후소의 이름은 번국 이름이 아닌 일본 그 자체를 칭하던 말인 부상국(扶桑国)에서 함명을 따 왔다.

군함을 설계하고 건조할 때 동형함끼리는 같은 설계를 공유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외형이 비슷하게 생겼고 세부적인 부분만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라 함선에 대해서 깊은 식견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동형함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데 비해서, 후소급 전함의 경우 1번함 후소의 높고도 뭔가 메카메카한 디자인의 함교 덕분에 구분이 쉽다. 후소의 함교는 뒷부분이 파였고, 야마시로는 그렇지 않으므로 외모가 확실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함교의 생김새 때문에 3번 주포탑의 배열도 차이가 나므로 구분이 더더욱 쉬워졌다. 건조 당시에는 후소와 야마시로 모두 3번 주포탑이 뒤를 향하게 되어있었지만 대개장을 받으며 후소는 3번 주포탑이 앞을 보도록 방향을 바꾼 반면에 야마시로는 3번 주포탑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이다.

11. 대중매체에서의 후소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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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쉽 플릿 커맨드에서 4성 전함으로 등장한다.

12. 관련 문서

머리가 너무 커서 배의 안정성에 문제가 생긴 군함들만 기술했다.

[1] 日本도 이 구절에서 나온 이름이다. 태양(日)이 본래(本) 있는 곳.[2] 한국으로 치환하면 다른 전함들은 '목지국', '사로국' 등이라면 후소만 '청구' 정도 되는 셈. 청구도 산해경에 나오는 이름이다.[3] 이 때까지만 해도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설계가 눈에 띈다. 전방 삼각마스트와 연돌의 형태가 영국의 전함들을 연상시킨다.[4] 하지만 이세급 전함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그다지 의미 있는 수준의 개량은 아니다.[5] 기존에 알려진 야마토의 50미터 높이는 어디까지나 배 밑바닥 선저 기준의 높이이며 사령탑 망루가 아닌 마스트 최고 높이 기준이다. 야마토의 사령탑 높이는 갑판에서 견시대 기준 27미터다.여기에 수면상 선체 높이 8.5미터를 합치면 35미터 정도로 측정된다.[6] 다만 일본 해군의 파고다마스트는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트라이포드 마스트를 기반으로 시설들을 추가한 구조이다. 때문에 마스트에 설치된 시설이 모두 장갑화 된 것은 아니기에 복원성에 문제가 생길 만큼 무겁지 않았을 것이다.[7] 콜로라도급 메릴랜드(BB-46, 16"×8), 웨스트버지니아(BB-48, 16"×8), 테네시급 테네시(BB-43, 14×12), 캘리포니아(BB-44, 14"×12)의 4척이 후소급 격침에 크게 활약했다. 물론 메릴랜드 등 일부 전함들은 격침까지는 이르지 않았었다.[8] 후소가 폭발로 두 동강이 난 이후 함수가 4시 20분, 함미는 순양함 루이스빌의 포격을 받고 5시 20분에 침몰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해저에서 발견된 후소의 잔해는 두 동강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파고다 마스트가 부러져 발견되지 않았기에 마스트를 선체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9] 그도 그럴 것이, 괴상하게 생겨먹은 류조나 둔탁해서 못생긴 롱비치와는 다르게, 이쪽은 그냥 다른 것들에 비해서 좀 많이 높을 뿐이지, 전형적인 일본 전함 함교이기 때문.[10] 그 큰 H-42도 피탐지 거리가 19km이다.[11] 단, 대전 말기에 마츠급 구축함이 취역할 때부터 식물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규칙이 변경되었다. 항공모함의 경우도 운류급 2번함 아마기부터는 중순양함처럼 산 이름을 쓰게 되었다.[12] 단적인 예로 비대한 함교는 맞으면 끝장나는 바이탈 파트가 아니라 그냥 스치면 별 거 아닌 대미지가 들어오는 부분일 뿐이다. 물론 구축함이나 순양함은 때릴 곳의 면적이 픽셀 단위로 넓어지는 셈이지만, 실상 전함에게 위협이 되는 건 전함이라 보통 의미가 없다.[13] 14인치가 약하다는 문제는 상대의 뉴멕시코바이에른과 동급 화력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으며, 포탑이 많다는 것은 오히려 포탑 하나가 나가면 화력이 25% 감소하는 뉴멕시코에 비해 고작 화력이 1/6 감소한다는 장점이 된다. 부포는 우수하다는 게 의미가 있으려면 비스마르크 정도는 돼야 하고, 대공무장은 어차피 평등하게 빈약하다.[14] 사실상 중국서버 한정[15] 류조의 경우 후소나 다른 배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항공모함이면서도 아일랜드는 온데간데 없고 비행갑판 바로 아래에 조그맣게 설치된 창문들이 있는데, 이게 함교다. 류조 문서로 가서 보면 딱 일본 옛 시대의 아타케부네세키부네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배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더라도 딱 가분수가 바로 떠오를 정도의 언밸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