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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7-06 21:23:06

청구


1. 한반도의 별칭 및 자칭2. 중국문학에 나오는 이세계3. 서울특별시의 지명4.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건설 회사5. 請求

1. 한반도의 별칭 및 자칭

청구(靑丘)
: 예전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이르던 말
표준국어대사전

청구(靑丘)라는 지명은 수나라[1]당나라[2]의 국외 사례와 신라[3]고려[4] 등의 국내 사례를 통해 고대 동북아시아 한자 문화권 내의 고대 국가들이 한반도를 대상으로 불렀던 별칭이라 할 수 있다.

이 이후로도『삼국사기』『삼국유사[5]『신라본기』등 여러 중세의 사료에도 청구라는 말이 한반도의 별칭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영조가 "청구에 너와 나뿐이다."[6]라고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역시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7] 위 관점은 근대에도 여전하여 일제강점기 식민사학단체인 '청구학회(靑丘學會)'에서도 다시 한 번 사용되었다.

민간에서는 족보의 이름에도 붙여지기도 했는데, 강릉 김씨의 족보 이름이 청구세보(靑丘世譜)다.[8]

전통적으로 청구의 어원은 다음과 같은데 오방색 때문인지 '청(靑)'은 동쪽을 가리키는 의미가 있고, '구(丘)'는 마을이란 뜻이 있으니, '청구'는 동쪽 동네 즉 동쪽 나라를 말한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 입장에서 동쪽에 있던 나라를 뭉뚱 그려 '청구'라고 불렀던 것인데, 통일신라의 등장 이후 그냥 그 나라를 '청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에, 통일신라 이후로도 고려, 조선 등에서도 '청구'를 자국(自國)의 별칭 중 하나로 인식했고, 시간이 지나자 나라의 명칭 중 하나로 굳어버렸다고 보는 것이다.[9]

한편 다른 해석도 존재하는데, 2019년에 박광민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이 온지논총 제60집에 발표한 ‘고조선 국명 및 지명에 대한 어원적 고찰’이란 논문에서 '청구'를 일본어 속에 남아 있는 고대 한국어의 흔적을 통해 ‘아ㅅ달’로 읽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10]

2. 중국문학에 나오는 이세계


중국 문헌에서 청구는 『산해경』 이래 구미호가 서식하는 신화적 공간으로 반복적으로 언급되었으며, 후대 문학에서는 여우·구미호와 관련된 이계적 공간 또는 여우의 본향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태평광기』의 『호일』에서는 구미호 관련 전고를 정리하면서 청구국의 아홉꼬리 여우를 언급한다. 이 경우 청구는 현실 지명이라기보다 『산해경』 계열의 신화지리 속에서 구미호가 출현하는 공간으로 제시된다.

『태평광기』의 권454에 실린 여우 관련 이야기에서는 여우 여인이 인간 세계에 머물다 자신의 본래 세계인 청구를 그리워하며 청구와 관련된 시적 표현을 남기는데, 여기서 청구는 여우의 고향 또는 인간 세계와 구분되는 이계적 장소처럼 사용된다. 이는 청구가 여우요괴의 출신지나 본향을 암시하는 문학적 코드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명대 유기의 『욱리자』에는 "청구산에 구미호가 산다"는 식의 서술이 보인다. 이 작품에서 청구산은 구미호가 거처하는 공간으로 제시되며, 여우들이 모이는 장소처럼 묘사된다. 따라서 『욱리자』의 청구는 여우요괴의 본거지에 가까운 신화적·우화적 공간으로 볼 수 있다.

명대 『전등여화』의『무평영괴』에서도 청구는 여우요괴와 관련된 출신지 또는 계통을 나타내는 전고로 사용된다. 작품 내 도교적 격문에서는 요괴적 존재를 단죄하는 맥락에서 청구와 구미호가 함께 언급되며, 청구가 여우요괴의 상징적 본향처럼 기능한다.

청대 『고금도서집성』에서도 『산해경』, 『일주서』 등 여러 문헌의 청구·구미호 관련 기록을 모아 정리하고 있다. 이는 청구와 구미호의 결합이 후대 지식 체계 안에서도 독립된 전고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호미총담』의 『설호』 역시 구미호가 청구국에서 나온다는 식의 전승을 정리한다. 이 문헌에서는 청구의 구미호 전고와 여우의 둔갑·요괴화에 관한 관념이 함께 다루어지며, 청구가 여우 신앙 및 여우요괴 전승과 결합된 문학적 공간으로 재해석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중국 문학에서 청구는 단순한 지명이라기보다, 구미호 및 여우요괴와 결합된 신화적 공간으로 반복적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후대 문헌에서는 청구가 여우의 본향, 여우요괴의 출신지, 또는 인간 세계와 구분되는 이계적 장소처럼 기능하는 사례가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청구 인식은 조선 문인사회에도 일부 수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문신 김육은 『잠곡유고』의 『노호』에서 구미호를 언급하며, 요사한 구미호는 본래 청구와 관련된 존재인데 어째서 자신의 주변에까지 나타났느냐는 식의 한탄에 가까운 표현을 남겼다. 이는 조선 문인이 청구를 중국 문학 전통 속에서 구미호·여우요괴가 출몰하는 신화적 공간이라는 전고로도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중국의 여우 및 구미호담의 수용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일본에서는, 청구가 중국 문학에서 유래한 구미호의 본거지 또는 구미호 전고의 출처로 인식되는 사례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기초』에는 나스의 살생석(구미호의 시체석)이 있는 곳을 두고 "이곳이 청구라고 불리는 것인가"라는 취지의 용례가 보인다. 이는 일본 중세 문헌에서 청구가 나스의 살생석 및 구미호 전승과 연결되어 이해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 이후 일본의 옥조전·살생석 관련 설명에서도 『산해경』의 청구산 구미호 전고가 직접적으로 인용된다. 옥조전의 본체를 금모구미호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산해경』의 "청구산에 여우 같은 짐승이 있고 아홉 꼬리를 지녔다"는 기록이 배경 전고로 제시된다.

이처럼 일본에서도 청구라는 공간은 『산해경』 이래의 구미호 전고와 옥조전·살생석 전승을 연결하는 문학적 배경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나스의 살생석을 청구와 연결한 『사기초』의 용례는, 청구가 구미호의 출신지 또는 본거지를 가리키는 전고로 이해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설정은 일본의 구미호가 본래 일본 내부의 존재가 아니라, 중국 문헌에 나타나는 이질적 신화공간에서 건너온 요호라는 인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서울특별시의 지명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행정동 명칭. 일제강점기에는 사쿠라가오카(櫻ケ丘/앵구)라 불렸는데, 해방 이후 일본식 지명을 갈아치우는 과정에서 사쿠라가오카의 독음인 앵구와 발음이 비슷한 청구(靑丘)를 가져온 것이다. 이후 1955년부터 1970년까지 행정동 명칭으로 쓰다가 법정동에 맞추어 신당4동으로 변경한 뒤 2013년 다시 청구동으로 돌아갔다.

청구역, 청구동계의 직접적인 유래도 이것이다.

4.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건설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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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5. 請求

국어사전 : 남에게 돈이나 물건 따위를 달라고 요구하다.
국어사전 용례 : 그녀는 김 대리에게 지난달 술값을 청구하러 사무실까지 찾아왔다.

법률용어로 쓰일 경우, 재산분할 청구, 손해배상 청구, 헌법소원 청구 등 다양한 뜻으로 쓰인다.
[1] 612년, 2대 황제 양제(수)의 조서[2] 647년, 2대 황제 태종(당)고구려를 침공할 당시 우진달(牛進達)이란 인물을 청구도행군대총관(靑丘道行軍大摠管, 고구려 침공군 총사령관)로 임명[3] 30대 임금 문무왕은 고구려의 왕족 안승보덕국왕으로 책봉하는 조서에 "공(公)의 사조의 덕과 공은 크고 높아서 위풍이 청구(靑丘)에 떨쳤다."고 평한 바가 있음.[4] 왕건견훤에게 "청구에서 난을 수습한다."라 조서를 씀[5] 경덕왕 시기에 활동한 법상종 승려 대현(大賢)이 스스로 청구사문(靑丘沙門)으로 일컬었다고 기록되어 있다.[6] 임오화변 며칠 후 세손인 정조가 내시를 보내 문안인사를 하자 영조가 한 말이다. 즉 "네 아비는 해쳤어도 내가 죽으면 너 뿐이니 안심해라"[7] 시조집의 제목에서도 조선의 노래란 뜻의 청구영언으로 흔하게 붙었다.[8] 그 외에도 국내의 족보 전반에 걸처 망라한 계보서 중 청구씨보(靑丘氏譜)가 있다.[9] 국민이 스스로 자국을 부르는 명칭과 외국인이 쓰는 명칭이 다르다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며 어색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당장 현대 대한민국만 보아도, 한국인은 자국을 대한민국이라고 부르지만, 외국인은 Korea라는 명칭을 쓰며 그것을 어색해하지도 않는다. 타국의 사례를 들자면 핀란드의 경우 대부분의 나라에서 나라 이름을 핀란드라고 부르지만 정작 핀란드인은 자기 나라 이름을 '수오미'라고 부르며, 아무도 둘이 다른 것을 어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도 역시 정식 명식은 '뱌랴트'지만 한국인 대부분은 그런거 모른다.[10] 기사출처 ‘청(靑)’의 일본어 독음이 ‘あお(아오)’이며 ‘구(丘)’는 ‘달’로 읽을 수 있으므로 ‘아사달’ ‘조선’ ‘청구’라는 말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동일한 말이란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