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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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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채(1991) 신동엽 · 표인봉 · 이재성 · 박채규 · 전창걸 · 구수한 · 성창수† · 장지연 · 유정화 · 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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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입(1993) 이경애
3기(1994) 노숙자 · 김현철[MBC] · 강남영 · 정성화 · 김학준 · 장동국 · 이우민
영입(1994) 최병서
4기(1995) 김병우 · 황봉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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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채 · 제명

[1] 이적 3개월만에 KBS로 복귀[MBC] SBS보다는 MBC에서 주축으로 활동하거나 MBC 공채로 재데뷔[KBS] SBS보다는 KBS에서 주축으로 활동하거나 KBS 공채 및 특채로 재데뷔[KBS] [KBS] [6] 코미디 살리기[7] SBS 공채 7기로 재데뷔[8] SBS 공채 6기로 재데뷔[KBS] [KBS] [KBS] [MBC] [MBC] [MBC] [KBS] [KBS] [MBC]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33] 경찰공무원으로 이직[34] 2013년도에 데뷔하였으나 기수가 없었다.[KBS] [KBS] [KBS] [KBS]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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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현섭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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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부문 남자 코미디 연기상
제35회
(1999년)
제36회
(2000년)
제37회
(2001년)
남희석
(좋은 친구들)
심현섭
(개그콘서트)
김용만
(일요일 일요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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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현섭
沈賢燮 | Sim Hyeon Sub
파일:개그맨 심현섭씨 새프로필.jpg
<colbgcolor=#808080><colcolor=#ffffff> 출생 1970년 5월 6일 ([age(1970-05-06)]세)
전라남도 광산군
(現 광주광역시 광산구)
국적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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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본관 청송 심씨 (靑松 沈氏)[1][2]
신체 173cm, 64kg
부모 아버지 심상우(沈相宇), 어머니 임옥남(林玉男)[3]
형제 누나 심효경(1964년생), 심인섭(1966년생), 심진섭(1968년생), 여동생 심유경(1972년생)[4]]
친인척 배우 심혜진[5]
학력 예일국민학교 (졸업)
구산중학교 (졸업)
중동고등학교 (졸업 / 82회)[6]
서울예술전문대학 (시각디자인과 89 / 전문학사)
종교 천주교 (세례명: 라파엘)
병역 대한민국 해군 병장 만기전역[7]
데뷔 1994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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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활동
2.1. 초창기2.2. 전성기2.3. 개그콘서트 이탈과 몰락2.4. 2010년 전후의 근황
3. 선대 직계도(直系圖)4. 사건 사고
4.1. 개그콘서트 하체 노출 방송사고4.2. 가정사 배경, 그리고 정치 블랙리스트 논란4.3. 성추행 무고 사건
5. 개그 콘서트 출연작 목록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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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코미디언.

2. 활동

2.1. 초창기

대한민국 해군에서 해군홍보단 소속 연예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1994년 데뷔한 그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신인 개그맨들을 모아서 만든 개그박스의 일원으로 출연, 인상깊은 개그를 보여줬고 후에 1996년SBS 공채 5기로 뽑혔다.

1990년대 후반 IMF 사태로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자 KBS로 이적, '서세원쇼'의 내부 코너 '시사 투나잇' 등 심야 쇼프로에서 김대중 대통령, 이다도시, 앙드레 김 등 유명인들의 성대모사를 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심현섭은 의외로 나이가 많다. 무려 강호동, 김구라, 박명수, 박수홍, 염경환, 지상렬 등이랑 동갑이다.[8]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데뷔가 늦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2024년 기준 데뷔 30년차 개그맨이다.

2.2. 전성기

1999년 개그 콘서트사바나의 아침에서 추장 역을 맡아 많은 유행어[9] 낳으며 긴 무명 생활을 마치고 스타덤에 올랐고, 봉숭아 학당심맹구라는 2대 맹구 역할로도 인기를 끌어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심현섭은 자타공인 개그콘서트의 초대 아이콘이자 첫 전성기를 열어젖힌 인물이다. 그 당시만 해도 심현섭은 김영철, 강성범 등과 함께 개콘과 KBS를 대표하는 젊은 개그맨이었다.

다만 그의 개그에 대해선 '웃기다'보다는 '대단하다'가 더 잘어울렸다. 각종 성대모사 및 요상한 효과음 내는 것은 발군이었지만 정작 너무 잘해서 웃는 걸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이때 심현섭은 정체 불명의 대사를 읊는 게 특기였는데 그게 워낙 재미있어서 뭔 뜻인지도 모르고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현섭의 성공을 본 정종철이 본격적으로 개그맨 데뷔를 꿈꿨다고 한다.[10]

또한 심현섭은 군 복무를 마친 후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던 동기 김준호[11]강성범[12]에게 개콘 출연을 권유한 인물로, 심현섭이 없었으면 이 둘도 이름들을 알리지 못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심현섭 덕분에 공개 코미디가 활성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기 절정이었던 2000년에 일간스포츠에 연재한 자서전에서 가족사항을 공개해서 새롭게 주목받았으며, 특별히 정치 성향을 드러내진 않았고 김대중 대통령 성대모사를 하며 청와대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 사회를 맡는 등 예전과 다름없이 활동했다. 덕분에 정치적으로 구설수에 휘말리는 일 없이 화려한 스타 생활을 지속했다.

이 시기에 디즈니 에니메이션인 쿠스코? 쿠스코!의 주인공 쿠스코의 더빙을 맡았는데, 상당한 호평을 받았었다. 이 외에도 니켈로디언의 어린이 프로그램인 수수께끼 블루KBS판에서 '와 아저씨'[13]라는 이름으로 진행도 맡았다.

이렇듯 심현섭은 주관이 뚜렷하고, 행동력도 거침이 없고 한때 최고의 인기를 끌었을 정도로 잘 나갔던 개그맨이다. 또한, 성격도 좋아서 후배들에게 군기를 일체 잡지 않았다고 한다. 슬럼프 시절에 김진철의 후배 얼차려, 폭행 사건이 터지자 대놓고 국민들에게 웃음을 줘야할 개그맨들이 웃지 못할 모습을 보여줬다며 씁쓸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기사

SBS <러브 투나잇> MC 자리를 맡으면서 MC로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으며 해당 프로그램으로 SBS 복귀를 했다. 심현섭 뿐 아니라 또다른 보조 진행자 박성호 황승환 이태식 김숙은 메인 MC 이홍렬과 같은 기획사(스타밸리) 소속이었다. '김혜수 플러스유' 이후 이어진 SBS의 수요일 심야 시간대 징크스를 만회하기 위해 예전 이홍렬쇼 1기로 인기를 누린 이홍렬을 메인 진행자로 내세웠으며 당초 30~40대 부부들이 편안하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플쇼를 표방했기 때문에 평범한 부부가 출연하여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퀴즈로 풀어보고, 부부가 할 수 있는 건강체조를 소개하는 등의 코너를 주축으로 삼았다. 그러나 시청률이 오르지 않자 퀴즈 코너는 사라졌으며 건강체조도 야한 옷차림의 슈퍼모델들과 남성 개그맨들이 짝지어 머리로 박을 깨고 퀴즈를 맞히는 것으로 바뀌어 연예인 학대 프로그램이라는 비난을 샀다. 설상가상으로 보조 진행자였던 심현섭, 황승환, 박성호 이태식 김숙이 아이디어 고갈 등의 이유로 하차한 뒤 2003년 1월 15일부터 이홍렬 단독 진행으로 변경되었으나 표절 논란을 빚게 되자 11회(2003년 2월 5일)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다.

여담으로, 성대모사와 입담으로 잘 나가던 시절에 제과업체 광고를 찍은 적이 있다. 크라운제과롱스라는 케이크형 과자 광고였는데 개콘 초창기 시절 정체불명의 외국어를 구사해 인기를 끌던 것이 주목받아서 그 기믹을 이용해 광고를 만들었는데 하필이면 맡은 역할이 아돌프 히틀러. 딱딱한 독일어로 연설하던 히틀러가 과자를 먹고 부드러운 프랑스어를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는데 결국 이 때문에 항의를 받고 광고가 내려간 흑역사가 있다. 이에 대해 크라운제과는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서 찰리 채플린이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을 패러디한 장면을 패러디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광고는 길거리 인터뷰편으로 대체되었다.

2.3. 개그콘서트 이탈과 몰락

그렇게 화려한 전성기 시절을 보내던 심현섭은 2002년 16대 대선이회창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했으나 이회창 후보와 함께 고배를 마셨고 유력한 후보로 점쳐졌던 2002 KBS 연예대상에서 신동엽에게 대상을 넘겨줘야 했다. 심현섭 자신의 주장으로는 12월 17일에 KBS측에서 미리 자신에게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며 축하한다고 통보했으나 이회창이 대선에서 낙선한 뒤 개최된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신동엽으로 대상 수상자가 바뀌었다고 한다.[14]

이후 심현섭은 인터뷰를 통해서 대놓고 KBS측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내었고 얼마 못 가서 자신과 같은 소속사 스타밸리 개그맨들인 김준호, 김대희, 박성호, 황승환[15], 이병진, 이태식, 김미진, 김숙, 강성범 등과 함께 개콘을 나와서 SBS의 신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로 이적하게 된다.[16] 그러나 심현섭 사단으로 불리는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은 웃찾사 정착을 실패하고 결국 웃찾사에서 하차했으며[17][18] 당시 개그콘서트에서는 이미 스타밸리 사단의 빈자리를 개콘에 새로 합류한 개그맨 박준형 사단(일명 갈갈이 패밀리)이 완벽하게 대체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스타벨리 사단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언저리뉴스를 넘겨주고 나와서는 웃찾사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심지어 그게 계기가 되어 다중이 캐릭터를 개콘에 먼저 합류한 박성호에게 빼앗기기까지 한 김준호도 한동안 심현섭을 심하게 원망했다고 한다. 지금도 김준호는 이 시절의 이야기만 하면 속이 터져한다.

이에 몇 몇 개그맨들은 스타밸리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웃찾사를 하차한 뒤 개콘으로 다시 돌아갔다. 가장 먼저 하차한 개그맨은 황승환으로, 개콘의 원년 멤버였던 박성호, 김대희, 김준호 3명도 이때 덤으로 웃찾사에서 하차하고 개콘으로의 복귀를 준비했다.[19] 당시 박성호, 김준호, 김대희 셋이 개콘으로 복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개콘 제작진들은 괘씸죄 때문에 이들의 복귀를 반대했으나 당시 개콘의 수장이었던 박준형이 앞장서서 이들을 받아야 개콘이 계속 갈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여 이들의 개콘 복귀가 이뤄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심현섭은 동료 개그맨들의 개콘 이탈을 주동한 장본인이라는 이미지가 단단히 박혔기 때문에 개콘측에서 끝내 보이콧했고 정치적인 면과 연예적인 면 양쪽에서 어그로를 끈 결과 심현섭의 연예인 커리어는 완전히 나락으로 빠지게 되었다.

다만, 심현섭 본인도 친정인 KBS로 돌아오려고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04년 KBS 2TV 코미디 프로그램 폭소클럽에서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패러디한 '윤또현의 무비레터'를 통해 2년 만에 친정인 KBS로 복귀할 예정이었지만, '이 코너는 가수 윤도현비하하는 패러디'라는 네티즌들의 거센 항의에 밀리면서 종영되었다. 그는 공연 현장 반응이 좋았는데 종영해서 안타까워했다.

이후 정권이 바뀌고 2008년웃찾사에서 형님뉴스의 해외부 기자 역할로 등장, 2009년개그야에서 가슴팍도사라는 무릎팍도사 패러디 코미디를 선보였지만, 역시 평이 안 좋았고 인기도 없어서 다시 잘렸다. 웃찾사로 복귀했을 때 정주리에게 뺨을 맞은 일화도 있다. 어느 정신나간 인간이[20] 정주리에게 심현섭의 뺨을 때리라고 해서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심현섭은 별다른 말없이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심현섭의 코미디는 빠른 말빨과 애드립, 성대모사를 위주로 한 휘발성 강한 웃음에 포인트를 두는 편인데, 개그계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성대모사라는 장르 자체의 인기가 바닥을 치게 되었고[21], 캐릭터를 동반한 아이디어 위주의 코미디가 인기를 끌게 되자 그만의 경쟁력의 사라진 것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적절한 시기에 MC로 전향하거나 트렌드에 맞춘 재치를 보여주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지만, KBS를 나간 이후로는 감을 갈고 닦을 방송사 무대 자체가 줄어들면서 모두 다 실패한 셈이다.[22]

2000년대 후반부터는 본인도 개그 외 분야에 더 전념하면서 개그맨으로선 거의 잊혀졌다.

2.4. 2010년 전후의 근황

2000년대 후반에는 의외로 개그보다는 정극 드라마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몇몇 드라마에서는 약간 비중있는 조연이나 단역으로 출연했다. 재독 작가 이미륵의 일대기를 다룬 SBS - 독일 BR 합작 특집 드라마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일본 장교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행보는 그가 드라마제작사 스타맥스의 기획이사로 재직하면서 드라마 '아내의 유혹', '가문의 영광', '압록강은 흐른다', '순결한 당신' 등의 홍보와 마케팅 업무에 참여했기 때문이며, 카메오 출연자로 종종 작품에 얼굴을 비춘 적도 있다. 예능 프로그램들인 '현장토크쇼 TAXI(tvN)',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당시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2010년 5월, 위종양 양성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였다. 2015년 2월 21일 SNL 코리아 시즌 6 2화 심형래 편의 '나는 개그맨이다' 편에 나와서 과거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사바나의 아침의 추장 개그를 보여주며 투병드립을 시전하기도 했다.

한편 2011년 겨울, 종편이 출범하자 종편행을 선택, 채널A개그시대에 출연했으나, 해당 프로의 다른 OB 3인방인 최양락이나 남희석에 비해 비중이 매우 적었다. 코미디 프로그램 외에 채널A의 뉴스 및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수차례 패널로 출연하며 주요 정치인의 성대모사를 선보이기도 했다.

'리얼체험 프로젝트 인간의 조건'에서 김준호를 통해 간만에 모습을 보였는데, 당시 뮤지컬 '문나이트' 연습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극중 DJ 역할로 연기했다.

TV에는 자주 나타나지 않았지만 수년간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념하며 활동 자체는 계속하고 있었다. 2010년 박준형과 함께 KBS 라디오에서 '신나는 오후 4시'를 진행하였으며[23],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EBS라디오에서 '대한민국 성공시대'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3년 4월부터 2015년 4월까지 TBN 한국교통방송에서 오후 2시에 신나는 운전석[24]을 진행하였다.

당시 연예인 야구동호회 조마조마 야구단의 감독으로 활동하였으며 연예뉴스에서 이와 관련된 소식으로 심현섭의 얼굴을 종종 접할 수 있았다.

이후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종영하기 전 김구라 채널에 패널로 등장. 자신의 개인기들을 선보이며 팟수들을 웃기려고 시도했으나 결과는 지못미였다. 자세한 사항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 참조. 이날 김수용, 김경민과 함께 김구라 방 '비운의 천재 특집' 편에 출연했다. 사실 개그 커리어만 봐도 셋 중에서 '비운'과 '천재'라는 단어에 모두 가까웠던 사람은 20세기말 한국 개그의 레전드 심현섭뿐이다. 단 그날은 심현섭이 준비한 개그들도 기본적으로 타율 2할 미만이었던 데다가, 중반부터 마지막까지 김경민의 알수없는 드립에 전체 방송 분위기가 다 말려버리면서, 김구라의 진행도 종잡을 수 없는 형태가 되었고 김경민과 김수용 모두 심현섭보다 선배이다 보니(심지어 김경민은 군대도 선배다) 그가 컨트롤도 할 수 없게 되어, 원래 항상 틀을 점잖게 잡고 시작하는 스타일의 정석 개인기형 개그인 심현섭의 희극 연기도 완전히 힘을 잃어버렸다. 초반에는 심지어 그저 선배일 뿐 공개 코미디 시절 인기 커리어로는 심현섭에게 상대가 안 되는 김경민한테 '얘네(김수용, 심현섭)들은 나한테 (개그로) 상대가 안 된다. 김수용은 말은 하는데 옹알이처럼 하고, 심현섭은 남보원 선생님 시절 개그를 하고, 개인기라고 하면서 공룡 흉내내기나 하는 애다'라는 말까지 듣는 굴욕까지 당했다.

2017년 9월 3일, 복면가왕에서 '리듬을 쳐줘요 상암동 타자기'라는 가명으로 나왔으며 지금 몇시? 몹시 좋은기분 괘종시계과 같이 김현철의 '왜 그래'를 불렀다. 정체를 밝힐 때 신승훈의 'I believe'를 불렀으며 본인의 장기자랑인 성대모사를 선보였다. 참고로 선배인 김구라가 그를 많이 거론했었는데, 정작 그가 나왔을 때는 알아보지 못했다.

2019년 5월 19일, 개그콘서트 1000회 특집에 출연했다. 이때 방송사고였는지 넘어오다가 자빠지고는 무릎 통증을 호소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늘 하던 대로 "가슴이~"를 하다가 "아 무릎도"라는 대사를 내뱉었다. 그런데 해당 회차에 방영된 "개그콘서트를 빛낸 인물들" 코너에서 개국 공신의 활약을 했음에도 심현섭의 이름이 빠져서 과거 보수정당인 이회창을 지지한 것 때문에 심현섭을 일부러 배제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 비슷한 반응들이 많이 보였었다. 골 때리는 건 해당 회차에 직접 출연까지 했는데도 이름이 빠졌다고 괜히 정치 성향까지 들먹였다는 점이다.[25] 또한 왜 개콘 마지막회때 게스트로 섭외하지 않았냐는 의견도 많았다.

"개그콘서트를 빛낸 인물들" 코너에서는 심현섭과 같은 스타밸리 소속사였던 박성호, 김대희, 김준호, 김숙. 황승환은 이름에 있었고[26] 정작 심현섭과 동기이면서 함께 개그콘서트에도 굵직한 활약을 남겼던 강성범 역시 이름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강유미, 안영미, 박휘순, 신봉선, 황현희, 윤형빈, 변기수, 김인석, 이재훈, 김상태, 이병진, 이태식, 권진영, 한민관, 이승윤, 김기열, 허경환, 김대범, 조윤호 등과 같이 또다른 개콘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개그맨들 역시 이름이 죄다 빠져 있었기에 단순히 정치 성향 때문에 이름이 빠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심현섭과 강성범이 이름에서 빠진 실제 이유는 KBS 공채 출신만 가사에 넣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설득력이 크다.[27] 오히려 코미디 40년 특집 때 '코미디는 흐른다'라는 코너에서도 같은 컨셉으로 노래를 했었는데, 그때는 심현섭을 강성범과 나란히 언급했었으며, 1000회에 언급이 안 된 김현숙[28]도 가사에 있다.

2020년 9월 17일 날짜로 근황올림픽에 출연했다. 영상.

2021년 10월 14일에는 심현섭이 야쿠자 행동대원 역을 맡은 색다른 그녀가 개봉되었다. 개콘 초창기 시절 정체 불명의 외국어를 구사하던 그는 이 작품에서 정체 불명의 일본어를 구사한다.

2022년에는 영화 B컷에서 초밥집 쉐프 역으로 특별출연하였다.

2023년 8월 8일 근황올림픽에 재출연해 남양주에서 돈까스 집을 운영하고 있는 근황을 알렸으며, 1991년 어머니가 사기를 당해 생긴 15억 8천만 원의 빚을 7년만에 갚았다는 사연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영상

심현섭은 연예계의 대표 노총각 연예인 중 한 명인데 여기에는 2001년 3월 25일, 서강대학교 이냐시오홀에서 모 대학 성악과 출신 여자결혼식을 치르기로 했었으나 성격 차이로 인해 식을 며칠 앞두고 파혼하게 되었다는 슬픈 뒷사정이 있다.# [29] 이후에도 가족사 등으로 인해서[30] 나이 50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가 친인척인 고모 심혜진과 청송 심씨 사위 지인인 이천수, 그리고 조선의 사랑꾼 프로그램을 통해 2024년부터는 울산에서 살면서 여친(정영림)[31]과 사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3. 선대 직계도(直系圖)

조부 심만택(沈滿澤) [32] 융희(1908.02.07~1953.04.11) 향년(45세) / 배위 탐진 최씨(耽津 崔氏) [33] (1905.00.00~1952.06.23) 향년(47세)

증조부 심의현(沈宜玹) [34] 철종(1862.08.04~1933.11.15) 향년(71세) / 배위 광산 김씨(光山 金氏) [35] (1868.11.04~미상)

고조부 심능승(沈能承) [36] 순조(1812.03.24~1877.05.19) 향년(65세) / 배위 탐진 최씨(耽津 崔氏) [37] (1816.10.07~1902.05.29) 향년(86세)

5대조 심영지(沈泳之) [38] 정조(1779.00.00~1838.12.05) 향년(59세) / 배위 나주 임씨(나주 林氏) [39] (1780.00.00~1827.12.16) 향년(47세)

6대조 심환묵(沈桓默) [40] 영조(1759.00.00~1824.12.14) 향년(65세) / 배위 탐진 최씨(耽津 崔氏) [41] (1760.00.00~1827.05.04) 향년(67세)

7대조 심정진(沈廷鎭) [42] 영조(1727.00.00~1793.02.17) 향년(66세) / 배위 밀양 박씨(密陽 朴氏) [43] (1728.00.00~1801.07.15) 향년(73세)

8대조 심익구(沈翼龜) [44] 숙종(1690.00.00~忌 07.09) / 배위 김해 김씨(金海 金氏) [45] (생졸미상)

9대조 심영룡(沈暎容) [46] 효종(1655.00.00~1714.03.08) 향년(59세) / 배위 서산 정씨(瑞山 鄭氏) [47] (1655.00.00~1716.06.09) 향년(61세)

4. 사건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4.1. 개그콘서트 하체 노출 방송사고



2002년 1월 13일 자 개콘의 '봉숭아 학당' 촬영 중, 방송사고가 있었다. 심맹구 역으로 "정부느은! 왜 공짜를 좋아하면 머리가 벗겨지는지 알아?" "바지가 벗겨지면 이상하잖아~"라는 내용의 대사를 했다.[48] 그런데 그 과정에서 김준호가 애드립으로 진짜로 바지를 내려서 벗겼는데 실수로 팬티까지 벗겨지는 바람에 이하생략.

다행인 점은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과 달리 개콘이 녹화 방송이어서 전국에 방송사고가 송출되는 상황은 면했고, 의도적으로 벌인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비록 방청객들이 보긴 했지만 큰 논란이 되지 않았다. 실제 방송에서는 '돌발상황'이라는 자막으로 가려서 큰 사고는 막았다. 이것 때문에 그 다음주 개콘에서 '섹시현섭', '에로현섭'이라고 써있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방청객이 보였다. 훗날 이 사건에 대해 본인 曰: "거기가 튼실했으면 그나마 덜 부끄러웠을 텐데…."라고 밝힌 적이 있다.

4.2. 가정사 배경, 그리고 정치 블랙리스트 논란

전라남도 광주 출신으로 어린 시절에는 상당한 부잣집의 아들이었다. 할아버지는 호남전기공업[49] 창업주 심만택이었고 아버지는 호남전기 사장, 전남매일신문 사장, 광주일보 명예회장[50]이자 11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을 지냈던 심상우1983년 10월 9일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51][52] 그래서 한때 잘 나가던 부잣집 도련님이었다가 아버지 타계 이후로 상경하여 많은 고초를 겪게 되었다고 한다.[53]

지금도 광주 여행하다 보면, "원래 저 땅은 심상우 의원 땅이었는데…." 하는 말을 의외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심 씨의 가세가 한 때 얼마나 흥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54] 예를 들어 박치기왕 김일을 실제로 가족 식사 자리에서 만나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테러 소식을 들었던 심현섭 본인은 1분이 1년 같았다며 회고했다고 한다.[55]

개그맨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대선까지도 보수파 계열에서 정치적 지지 의사를 꾸준히 표명했는데, 이러한 행보는 사실 정치권에 대한 개인적인 야망이나 출세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심현섭의) 아버지가 북한이 벌인 테러로 순직하게 된 특수한 개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참여정부 시절의 탄압 주장도 사실 그의 정치적 지지 행보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아웅산 테러를 일으킨 공작원이 2008년 미얀마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심현섭은 "그 공작원도 아버지와 함께 남북 분단 시대의 희생자"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아버지의 사망 이후 가세가 기울어진 상태에 놓이고 후에 정치적 논란도 겪게 되는 심현섭 본인 또한 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보수 네티즌들은 심현섭의 몰락이 참여정부 시절의 정치압력이라고 주장하며, 이명박 정부 시대의 김미화, 김제동, 윤도현, 김C 등의 방송 하차가 정치 압력의 결과라는 주장을 역공하는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이 참여정부의 외압이 말도 안되는 소리인게 당장 심현섭이 인기 절정일 시절은 김대중 정권의 국민의 정부 시절이었고, 심현섭이 직접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자신의 성대모사를 선보이며 담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들어선 시절은 이미 개콘을 떠나면서 생긴 잡음과 이적한 웃찾사의 시청률 저조로 심현섭 사단이 절정에서 내려오던 시기였다. 정확히는 2003년 개콘을 나가면서 옮겼던 SBS는 개그 스타일과 분위기가 KBS랑은 많이 달랐고 당시 그가 주도하던 웃찾사는 너무 간만에 돌아온 SBS의 개그 프로그램인만큼 초기엔 매우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웃찾사가 성공하기 시작한 것은 개콘 출신 개그맨들이 대거 이탈하고 신인 개그맨들로 대체되던 무렵이다.

게다가, 개콘을 떠날 당시의 인터뷰에서 심현섭은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다.", "절더러 '오만하다', '인기 얻었다고 떠나냐?'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지금 상태라면 '개콘'에 남아있는 게 결례다. 삐걱삐걱 소리내면서 가느니 쉬는 게 오히려 시청자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섭섭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개콘' 생기고 나서 처음 주는 코미디대상인데 (상을 받지 못해서) 좀 쉬고 싶다는 생각과 그런 섭섭함이 맞아 떨어진 거라고 봐 달라." 라고 이러한 의혹에 대해 해명하기도 했다. 후에 밝혔지만 1주일 만에 웃찾사로 옮긴 것은 사실 심현섭 개인의 분노보다는 소속사 스타밸리의 결정이 더 컸다고 한다..#

10년이 지난 2013년, '개그콘서트-코미디 40년' 특집 기자간담회에서 심현섭 본인이 "개그콘서트를 떠난 건 자신이 앞뒤 안 가리고 거만했었기 때문이다" 라면서 개콘을 떠난 이유에 대한 정치외압설을 부정했다. 이때는 심현섭이 지지하던 보수정권이 장기집권하던 시기로, 정말 정치적 외압 때문에 물러났다면 딱히 그걸 부정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시간이 흘러서 이명박근혜 정권의 방송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랐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정권이 확실히 바뀌어버린 후에도 심현섭은 여전히 방송에 얼굴을 잘 비치지 않으며 가끔 방송에 나와도 추억속 개그맨 이상의 모습은 보이지 못하는걸 보면 그냥 심현섭 본인이 개그쪽을 더이상 중시하지 않는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여하간 이렇게 가족사가 한국 현대정치사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와 엮여있는 이유 탓에 억울하게 정치 쪽 구설수로 많이 엮인 개그맨이기도 하다. 하지만, 심현섭 본인은 "정치가 목표였다면 선거에 출마를 했을 것이다." 라면서 자신은 코미디언일 뿐이라고 밝혔다. 2009년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광화문에 방한했을 때 환영행사의 사회를 본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심현섭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지난 40년 동안 이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라고 말했다.#

4.3. 성추행 무고 사건

2018년 3월, 그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이 디시인사이드 예능 프로그램 갤러리에 올라왔다. 글을 올린 L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가을, 심현섭과 소개팅을 했고, 첫 만남에 간 영화관에서 계속 허벅지를 주무르는 심현섭에게 불쾌감을 표현했으나 그는 L씨를 차에 태운 후 CCTV가 없는 장소를 찾아갔고, L씨가 차에서 내리려 하자 문을 잠그고, 자신을 애무할 것을 요구했고 "만지기 싫으면 이것만 봐달라"며 바지를 벗고 자위 행위를 했다고 설명했다. L씨는 그냥 도망쳐서는 안 될거 같아 상황을 살핀 후, 증거물까지 챙겨 그 다음 날 바로 신고했다고 한다. JTBC

이후 경찰과 검찰 조사까지 진행됐고, L씨는 돈을 받고 끝낼 문제가 아니라며 합의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정확히 내비쳤다.

그러나 검찰에서 실시한 거짓말탐지기로 대질신문 조사에 심현섭은 전부 응했고 그의 증언 또한 모두 진실로 나왔지만 L씨는 두 차례 다 응하지 않았으며기사 이외에도 L씨의 증언은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판정을 내리며 사건을 종결했다.기사

이후 심현섭 측은 "미투 운동이 이렇게 악용이 되는 것 같다. 두렵지 않다. L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것"이라고 L씨에 대해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

5. 개그 콘서트 출연작 목록 (가나다순)


[1] 안효공후(安孝公后)-훈도공(訓導公) 우현(友賢)파 24세손 ○섭(燮) 항렬. 같은 항렬의 유명인으로는 소설가 심훈이 있다. ()[2] 본관이 청송 심씨라는 이유로 KBS 2TV 생생정보에서 청송군을 소개하는 코너에 출연한 적이 있다.[3] 조양 임씨(兆陽 林氏) 임도규(林道圭)의 딸, 1938년 2월 16일 ~ 2019년 5월 9일 향년 81세, 지병으로 별세[4] 정확한 날짜는 안나왔지만 2023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심현섭이 유치맨 채널을 통해 직접 소식을 전하였다.[[https://youtube.com/shorts/Uz9juP-uGX4]|#][5] 친고모-친조카 관계는 아니고, 심혜진이 청송심씨 상(相)○ 항렬 23세손이고, 심현섭이 24세손이어서, 같은 일가이므로 항렬상 숙질관계 뻘 되는 친척이어서 서로 고모-조카의 연을 맺고 깊게 교류하고 있다고 전해진 뉴스가 2023년 12월 17일 보도되었다.##[6] 이원석 검찰총장이 80회, 영화배우 이병헌은 81회,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이 82회 졸업생이다.[7] 홍보단, 해군 329기.[8] 개콘 10주년에서는 2NE1의 'Fire'를 부르면서 "나 내일이면 뽀리원"이라고 자신의 나이를 드러냈다. 1000회 특집에서는 추장 개그를 보이면서 나이 50에 하려니까 힘들다고 밝혔다.[9] 예를 들어 "빰바야~ 까스토미또르쌈바~"[10] 이후 개그맨으로서 성공한 정종철 역시 최기섭 같은 제자를 키웠다.[11] 심현섭과 SBS 공채 동기였으나 IMF 때문에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12] 심현섭, 김준호와 SBS 공채 동기였지만 IMF 때문에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13] 원판에서는 '스티브'(Steve)로 나온다.[14] 이 당시 심현섭은 자신의 정치 성향 때문에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했었는데, 실제로는 매니저와 담당자간의 오해로 밝혀져 심현섭이 사과했다.[15] 황승환의 경우는 10월 말경에 사고로 팔을 다쳐 출연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2002년 11월 초경의 그의 출연 장면을 보면 깁스를 한 채로 출연하고 있다. 황승환은 약 1년 후에 개콘에 복귀하지만 특유의 '여장연기'를 계속 하는 바람에 '식상하다'는 반응을 얻고는 곧 하차했으며, 이후에는 엔터기술의 최대 주주 겸 황마담웨딩컨설팅 CEO연예인 주식부자 겸 CEO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회사자금 횡령으로 검찰에 불구속 입건되었으며, 이때 황승환의 본명(오승훈)과 그가 사실은 바지사장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16]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 중에서 김상태만 유일하게 개콘을 이탈하지 않았다. 김상태가 개콘에 잔류할 뜻을 내비치자 훗날 김상태 스스로 평생 들을 욕은 이때 다 들은 것 같다고 씁쓸하게 회고할 정도로 같은 소속사 동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소속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17] 웃찾사는 개콘을 이탈한 KBS 개그맨들이 주축이 되어서 만든 프로지만, 정작 개콘 출신 개그맨들은 형님뉴스로 성공한 강성범, 난다김으로 성공한 김숙을 제외하면 정착에 실패했고, 대부분이 소리소문 없이 웃찾사에서 하차한 다음 개콘으로 복귀했다. 이병진과 이태식은 웃찾사에 제법 오래 출연했지만 이 둘은 어디까지나 동료 개그맨들을 띄워주는 역할이었다. 문세윤, 김늘메, 최승태도 개콘 출신이지만 이 셋은 개콘의 레귤러 멤버가 아니었다.[18] KBS의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기욱의 얘기에 의하면, 웃찾사 활동 시절에 시사개그는 꿈도 못 꾼다고 할 정도로 SBS 예능국의 규제가 지나치게 많았다고 한다. 이러니 웃찾사에서는 개콘 출신 개그맨들이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웃찾사를 통해서 스타가 된 김기욱조차도 이런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면 말 다 한 거다.[19] 강성범 역시 스타밸리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개콘에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김준호와의 불화 탓에 결국 웃찾사에 잔류했으며 직후 비둘기 합창단의 럭셔리강 캐릭터가 히트함으로서 웃찾사에 성공적으로 자리잡게 된다.[20] 당시 웃찾사 출연진을 보면 심현섭보다 선배는 없었고 동기 강성범을 제외하면 전부 2000년대에 데뷔한 까마득한 후배들이다. 한마디로 이 인간은 선배를 우습게 알고 동시에 후배에게도 악행을 강요했다는 것이다.[21] 개콘의 안윤상이 타고난 성대모사 재능을 가졌음에도 크게 못 뜬 것만해도 시대가 변했다는것을 짐작할 수 있다.[22] 세 방송국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예전에 썼던 개그를 재탕해서 디스당하는 패턴이 나오곤 했다. 개콘에서는 김재욱한테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코빅에서는 장동민한테 발로 차이고, 웃찾사에서는 변한 게 없다고 강성범한테 디스당했다.[23] 이를 통해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박준형과 심현섭의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24] 2014년 4월 개편까지는 평일, 주말 모두 진행하였으며 이후 평일에만 진행을 했다. 2014년 11월까지 선우경, 이후 장윤희와 함께 진행하였다.[25] 당시에는 심현섭이 언급되지 않은 건 그렇게 크게 문제되진 않았으나, 종영될 즈음 개콘 관련 기사 및 영상에 1000회 특집 녹화에 참여했던 사실은 배제하고, 노래 가사에만 트집을 잡아 정치드립으로 물타기한 댓글들이 즐비해 있었다.[26] 스타밸리 소속 중에서도 강성범, 김상태, 김미진, 이병진, 이태식은 언급이 안 되었다.[27] 심현섭과 강성범은 SBS 공채 5기였다.[28] 보기와는 다르게 김현숙은 연극계 출신에다 공채 개그우먼도 아니다. 갈갈이홀 개그 지망생 시절 특채로 캐스팅된 것.[29] 당시 롯데삼강(現 롯데푸드) 거북알 CF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고 당연히 개그맨답게 코믹한 내용의 촬영이었는데 하필이면 파혼하자마자 촬영 날짜가 잡혀서 그걸 보는 주위 사람들이 전부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30] 한번은 소개팅을 잡은 적이 있었는데, 하필 개그콘서트에서 자신의 하반신이 노출되는 방송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무산되었다고 한다.(...)[31] 연일 정씨 지주사공파(일명: 포은공파) 32대손, 3남매 중 막내딸[32] 字는 경서(景瑞), 호남전기공업 주식회사 창업주[33] 父는 덕원(德元)[34] 字는 관익(官益), 官職은 음서(蔭敍)로 시작하여 감찰 벼슬을 지내고, 품계(品階)는 가선대부(종2품)이며,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다[35] 父는 영순(永順)[36] 舊名은 능광(能光), 字는 중길(仲吉), 증직(贈職) 호초참판(户曹㕘判)[37] 父는 복철(福哲)[38] 字는 대습(大習)[39] 父는 득신(得辛)[40] 字는 양초(養初), 號는 모우(慕窩), 有효행(孝行)[41] 父는 봉주(鳳周)[42] 字는 대숙(大叔)[43] 父는 광성(光成)[44] 字는 필서(必叙)[45] 父는 하기(夏器)[46] 字는 천경(天卿)[47] 父는 서명(瑞命)[48] 당시 데모하는 학생 기믹으로 출연하던 박성호의 유행어를 따라한 것이다.[49] 1945년 창립 이래 심씨 가문이 소유했으나, 1970년 큰아버지 심상하 회장 사후 부인 진봉자의 전횡으로 회사가 어려워져 1976년에 남봉 김남중(1917~1987) 전남일보 회장 등 호남 연고 기업가 6명에게 팔렸으나, 경영권 분쟁 발생 후 1978년에 김남중이 단독으로 인수해 1982년부터 '로케트전기'로 바꿨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와 에너자이저 등 해외 건전지들에 밀려 1998년부터 '로케트' 브랜드를 질레트에 팔고 하청업체로 전락하여 2015년에 회사가 정리되었다. 반면 같은 '로케트' 브랜드를 쓰는 자회사 진해전지는 1978년에 세방기업 매각 후 '세방전지'로 변경되어 현재 잔존중이다.[50]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1980년 당시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이 합쳐졌고, 당시 전남매일신문 사장이던 심상우가 광주일보 출범 후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51] 심상우가 떠나기 전 아들에게 당시 돈으로는 상당한 2천 원을 용돈으로 줬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유품이 되어버렸고, 심현섭은 지금도 그걸 간직하고 있다. 2014년 현재 돈가치로 따지면 9만 원~10만 원 정도이다.[52] 훗날 테러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는데,평소 밝고 활달했었던 아버지가 테러 당일에는 표정이 어두웠고 말수도 적었다고 한다. 그것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항목에 실린 참석자들의 마지막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53] 이미 1976년에 숙모 진봉자 여사의 전횡과 사촌 심홍근 사장의 운영미숙 등으로 호남전기를 팔았으며, 1980년 11월에 언론통폐합으로 전남매일을 잃은 상태였다.[54] "공무원 = 도둑놈" 하는 등식을 지역 사회의 어른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켜준 사례이기도 하다. 2002 한일월드컵 때 히딩크 호텔로 개명한 모 호텔 및 근처 아파트 단지 부지도 원래는 심상우 의원 명의로 되어 있던 것을 심 의원 사후에 공무원들이 가로챈 것. 허나 현재 호텔은 온데간데 없고, 교회가 들어서 있다.[55] 어머니는 지병을 앓다가 2019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