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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제과

<colcolor=#fff><colbgcolor=#9f1758> 크라운제과
CROWN Confectionery

파일:크라운제과 CI.svg

파일:크라운제과 국문 CI.svg

정식 명칭 주식회사 크라운제과
영문 명칭 CROWN Confectionery Co., Ltd.
취급 품목 과자, 비스킷, 스택, 웨이퍼, 사탕, 초콜릿, 빵, 파이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설립일 2017년 6월 1일[1]
모기업 크라운해태홀딩스[2]
대표자 윤석빈
상시
종업원 수
1,164명(2022년)
매출액
4,347억원 (2023년)
영업 이익
284.9억 (2023년)
상장 시장 유가증권시장 (2017년 ~ )
종목 코드 264900
기업 정신 식은 곧 생명의 근본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72길 3 (남영동)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역대 경영진
3.1. 구 크라운제과3.2. 신 크라운제과 대표이사
4. 지배구조5. 제품 목록
5.1. 비스킷5.2. 스낵5.3. 파이5.4. 캔디류5.5. 초콜릿5.6. 기타
6. 사건 사고7. 기타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크라운해태그룹 계열 제과 업체로 크라운제과를 상징하는 과자인 크라운산도, 콘칲, 죠리퐁을 중심으로 쿠크다스, 쵸코하임, 버터와플, 새콤달콤, 미니쉘, 빅파이 등 유명한 과자 제품군이 있다.

공장은 충청북도 진천군, 충청남도 아산시,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다.

2. 역사

창업주 백포(白浦) 윤태현(尹台鉉, 1919. 1. 21 ~ 1999. 9. 24)[3]미군정 시기인 1947년 3월, 서울역 뒷편인 서울특별자유시 서대문구 중림동[4] 181번지에 영일당제과소(永一堂製菓所)를 설립하고 1956년 상호를 크라운제과로 바꾸었다. 1990년대 이전까지 코오롱그룹, 골든벨상사[5], 써니전자(구 싸니전기)[6], YH무역, 럭키, 아시아자동차, 롯데, 라이프그룹, 뉴코아백화점, 로켓트보일러 등과 더불어 외국계나 합작회사를 제외하고 기업명에 영어를 넣은 몇 안 되는 한국 기업이다. 당시엔 크라운맥주도 있어서 같은 계열사인걸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파일:크라운제과 로고(1968~1988).png
1968년 법인 전환 후부터 1988년까지 20년간 사용된 로고

1968년 주식회사로 법인전환 후 1969년 6월 자회사 영오제과를 세웠으며, 그해 10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묵동[7] 385번지에 제1공장을 세웠다. 1972년 영오제과를 합병한 후 '죠리퐁'을 만들었다. 1974년 판매형태를 전국 직영체제로 변경한 뒤 크라운산업도 세웠다. 1975년 해성상사를 세운 후 1976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80년 묵동에 본사를 건립했고, 1982년에 컴퓨터 시설을 도입한 후 1983년 안양공장, 1987년 아산공장을 각각 세웠다.

당시 묵동은 크라운제과의 본사이자 공장으로 주변에 항상 크라운산도 냄새가 진하게 났다. 묵동 본사는 1999년 3월 본사가 서초구 서초동 1337-31번지로 이전하면서 묵동아이파크아파트로 재개발되었고, 2002년 6월 준공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5년 해태제과식품을 인수하고 지금은 용산구 남영동 131-1번지 해태제과식품 사옥을 본사로 쓰고 있다.

파일:크라운제과 로고(1988~1995).png
1988년부터 1995년까지 7년간 사용된 로고

파일:크라운제과 로고(1995~1997).png
1995년부터 1997년까지 2년간 사용된 로고

1988년에는 (주)크라운엔지니어링(건설업체), (주)크라운스낵, (주)크라운베이커리 등을 설립해 사업 다각화의 중심에 섰고, 중앙기술연구소도 발족했다. 1990년 파주공장을 준공한 뒤 우리유업(주)을 별도 설립하였다. 1995년 크라운TLS 및 크라운애드를 설립했고, 12월에 한국담배인삼공사로부터 홍삼 드링크의 판매권을 획득하여 음료 사업에 진출하였다.

1990년 파주공장을 세운 뒤 1995년에는 자동차 부품업체 (주)우전 및 (주)남덕[8]운영하던 창업주 윤태현의 장남 윤영달(尹泳達, 1945. 3. 12 ~ )이 CEO로 복귀하고 1997년 경산공장 및 진천공장을 각각 세웠으며, CI도 변경했다.
전술한 것처럼 크라운엔지니어링, 크라운베이커리, 크라운TLS 등 문어발식으로 사업확장을 했고, 1997년 외환 위기 때 결국 화의신청을 했다. 이런 식으로 문어발 확장하다가 박살난 해태그룹처럼 크라운제과도 끝장이 나는가 했으나, 초심으로 돌아간 크라운제과는 최대만 몸집을 쳐내고 다시 제과쪽에 주력하면서 분골쇄신 뛰어다녀 기어 올라오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2001년엔 법원으로부터 해산 판결을 받았다가 2002년 5월에 취소 판결을 받았고, 2003년에는 완전히 살아났으며, 이 과정에서 계열사들을 점차 정리했다. 그리고 외환위기 때 화의 신청이 무색하게 2005년 1월 해태제과식품을 인수한 후, 그해 중국 상하이에 첫 해외공장을 세우고 이듬해 대전공장을 세웠다. 2008년 크라운스낵을 합병한 뒤 2009년 해태제과식품과 영업망을 통합했다. 2012년 크라운베이커리를 합병한 후 2017년 기존 법인이 지주회사 크라운해태홀딩스로 전환하자 인적분할되었다.

3. 역대 경영진

3.1. 구 크라운제과

3.2. 신 크라운제과 대표이사

4. 지배구조

주주명 지분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크라운해태홀딩스 44.4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윤영달 20.8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두라푸드 3.6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육명희 1.5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윤석빈 0.32%
기타 29.19%

5. 제품 목록

파일:크라운제과 CI.svg 크라운제과의 제품/과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갑과자/파이
빅파이 롱스 크림블 크라운 쵸코파이 국희 땅콩샌드
국희 쵸코샌드 뽀또 버터와플 크라운산도 쵸코하임
화이트하임 ᄎᆞᆷ크래커 쿠크다스 치즈샌드 그레이스
오곡쿠키 오곡샌드 참ing 소복소복 소보로
스낵
죠리퐁 카라멜콘 땅콩 콘치ㆍ콘초 콘칲 못말리는 신짱!
츄러스 참쌀선과 참쌀설병
}}}}}}}}} ||

5.1. 비스킷

5.2. 스낵

5.3.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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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캔디류

5.5. 초콜릿

5.6. 기타

6. 사건 사고

7. 기타

8. 관련 문서



[1] 크라운해태홀딩스(구 크라운제과)에서 물적 분할된 날짜이다. 원 설립일은 1968년 9월 18일.[2] 중간지주회사. 진짜 지주회사는 두라푸드라는 양갱, 사탕 제조회사로 윤석빈 부회장이 두라푸드의 최대주주, 다시 두라푸드가 크라운해태홀딩스를 지배한다.[3]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371-2번지 출생. 해남 윤씨 어초은공파(漁樵隱公派) 28세 현(鉉) 항렬로 어부사시사의 저자로 유명한 고산(孤山) 윤선도의 12대손, 윤두서 자화상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윤두서(尹斗緖, 1668. 5. 20 ~ 1715. 11. 26)의 9대손이다.[4] 1975년 10월 1일부로 중구에 편입되었다.[5]한화그룹 계열 종합무역상사로, 1995년 (주)한화에 합병되어 무역부문이 된다.[6] 서울 구로공단(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 있던 수정진동자 제조업체. 2004년 충청북도 충주시로 이전하였다.[7] 1988년 중랑구에 편입되었다.[8] 이하 두 회사는 2007년에 (구)두라푸드와 합쳐져 현 두라푸드 법인(존속법인은 구 우전)이 됐다.[9] 尹泳州. 1952년 5월 14일생. 창업주 윤태현의 넷째 아들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했다.[10] 尹碩彬. 1971년 12월 9일생. 윤영달의 장남이다.[단종] [단종] [13] 땅콩버터 브랜드 스키피와 협업해 만든 제품[단종] [단종] [단종] [17] 1972년에 윤태현의 장남인 윤영달이 개발했다.[단종] [단종] [단종] [단종] [단종] [단종] [24] YBM 어학원과 협업[25] 원래는 '짱구는 못말려'였으나, 삼양식품의 항의 때문에 현재의 '못말리는 신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26] 이를 틈타 롯데제과에서 크레용 신짱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크레용 신짱'이라는 과자를 내놓았으나, 재계약에 실패해서 단단히 열받은 크라운제과가 롯데에 소송을 걸어서 신짱이라는 이름을 못 쓰게 해버렸고, 그렇게 롯데의 짱구 과자는 잊혀졌다. 이후 짱구 과자의 원조인 삼양식품이 라이선스를 얻어 지금에 이른다.[27] 어른들은 무심코 내뱉지만 아이에게는 깊은 상처를 주는 험한 말들을 어떻게 바꾸어 말하면 될지에 대한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