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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23:07:20

하이트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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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제품 목록
3.1. 생산중인 제품3.2. 단종된 제품
4. 사건사고5. 여담

1. 개요

하이트진로에서 1993년에 출시한 맥주이다.

2. 역사

1933년 8월 9일 대일본맥주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1]에 조선맥주(주)를 설립했다. 당사는 같은 해 12월 설립한 쇼와기린맥주와 함께 영등포를 본거지로 해 아사히 맥주삿포로 맥주를 생산하는 기지 역할을 했다.[2] 1945년 8.15 해방 이후 적산 기업으로서 미군정에 귀속된 후 민대식 전 주주의 손자 민덕기(1915~1980)[3]가 관리를 맡아 '크라운맥주' 상표를 쓰기 시작했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영등포 공장이 파괴되는 수난을 겪었으나, 1952년부터 민덕기 관리인이 불하받아 민간기업으로 탈바꿈한 후 전쟁으로 파괴된 영등포 공장 재건에 주력한 후 1954년에 주한 UN군 군납업체로 선정되어 성장할 길을 마련했으나, 경쟁사인 동양맥주와의 치열한 경쟁에 지치다 못해 부실기업으로 지정되어 1958년부터 서울사세청의 관리를, 1960년부터 한일은행의 관리를 받았다.

법정 관리 기간 중에도 빚을 갚으며 7천만원의 흑자를 기록하다가, 1965년부터 회사 정리 절차 종료로 다시 민덕기에게 넘어갔으며, 그 해에 국내 최초로 캔맥주를 생산·수출했다. 1966년에 민덕기 사장과 이준영 주주[4]와의 불화로 대선발효(現 대선주조일산실업) 가문의 막내 박경규가 인수했으나, 이듬해 박경규 사장이 46세로 급서하자 유산 분쟁으로 홍역을 겪다가, 1969년부터 형 월창 박경복(1922~2007)이 가업을 이어받아 1971년에 영등포 공장을 2배로 확장했고, 1973년 9월 기업공개 단행 후 같은 해 10월에 맥아 공장을 개설했다.

1976년에 한독맥주[5]가 파산하자 이듬해 마산[6] 공장[7]을 법원 경매로 인수했으며, 1981년에 진주 맥아 공장을 세운 후 1987년에 박경복이 장남 박문효에게 사장직을 물려주고 회장직에 오르면서 2세 경영 체제가 확립되었다.

1988년에 진주 제3공장을 착공한 후 이듬해 전주 공장을 준공했고, OB맥주에 이은 콩라인 신세를 벗어나고자 1993년에 크라운맥주의 후신인 하이트맥주를 출시해 히트를 쳤으며, 같은 해에 월창물산 및 월창건설을, 1996년에 생수 회사 (주)녹수원을 설립하고 1997년에 보배양조와 동주발효를 인수했다.

1998년에 하이트맥주(주)로 사명을 변경하고 2005년 마침내 진로를 인수했다. 2008년부터 기존 법인이 하이트홀딩스(現 하이트진로그룹)로 출범하면서 사업부는 신규 법인 하이트맥주로 분할했고, 2011년 9월 1일 부로 진로와 합병하여 하이트진로로 상호를 변경했다.

3. 제품 목록

3.1. 생산중인 제품

파일:하이트 엑스트라 콜드.jpg*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 : 하이트진로의 메인 맥주이며, 100% 암반수비열처리를 특징으로 내세운다. 원래는 "하이트"였으나, 2012년 3월에 "하이트 아이스 포인트"로 리브랜딩했고, 이후 2014년 4월 3일에 "하이트 페일 라거"로 리브랜딩했다가, 2016년 4월에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로 리브랜딩했으며, 알코올 도수는 초기부터 4.5%였으나, 2014년 4월 3일에 4.3%로 내려갔다가, 2017년 6월에 다시 4.5%로 올라갔다. 카스에 비해 맛의 세기가 조금 약하다는 평이 있지만, 목넘김의 짜릿함은 국산 맥주 중 최고를 자랑한다. 그리고 500ml, 640ml짜리 병맥주는 OB 프리미어 라거와 동일한 병을 사용한다.

3.2. 단종된 제품

파일:하이트 피쳐.jpg
* 하이트 피쳐 : 2003년 11월 17일에 출시한 대용량 페트병 맥주이며, 이 제품의 출시 사례를 계기로 하이트나 카스를 비롯한 다양한 국산 맥주의 대용량 페트병 제품들이 출시되었다.

4. 사건사고

초창기 광고에서 지하 150m의 암반수로 만들었다는 내용[12]이 나왔었는데, 암반수를 강조했던 이유가 바로 OB맥주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OB맥주의 모기업인 두산에서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을 터뜨렸다는 점을 공략했다. 심지어 이후 2014년 9월 2일에는 하이트진로 직원이 OB맥주에 소독약 냄새가 난다는 등의 루머를 적극적으로 퍼뜨렸다가 적발되어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5. 여담

파일:하이트 플라스틱 캔컵 세트.jpg
▲ 하이트 플라스틱 캔컵 세트* 포장 용기가 모형 맥주캔으로 제작된 하이트 플라스틱 캔컵 세트를 사은품으로 증정했으며, 테라, 필라이트, 하이트 제로, 그리고 지금은 단종된 맥스드라이 d도 플라스틱 캔컵 세트를 각각 사은품으로 증정했다.[13]


[1]서울특별시 영등포구[2] 당시 조선인 주주는 민영휘의 아들 민대식 동일은행 설립자 겸 두취(은행장)였다.[3] 학교법인 풍문학원 설립자[4] (주)대유 창업주[5] 1973년에 섬유 회사 삼기물산이 독일 이젠벡맥주와 합작으로 설립했던 맥주 회사로, 원래 전량 수출 조건으로 1974년부터 가동을 시작했으나, 실패로 6개월만에 가동이 중단되었고, 이듬해에 국내 시장 시판을 허용받아 국내에 이젠벡맥주를 출시했으나, 1976년에 대대적인 부정대출 사건이 적발되어 한독맥주는 물론 당시 모기업인 삼기물산까지 파산하고 경상남도 마산시에 있던 공장은 1977년 경매로 조선맥주에 넘어갔다. 자세한 건 한독맥주 사건 문서를 참조할 것.[6]창원시[7] 현재는 맥주 생산을 중단하고 소주를 생산한다.[8] 그래서 한창 TV 광고를 할 당시의 슬로건도 "남자의 흑맥주"였다.[9] 하면발효 맥주에 스타우트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기린 이치방 시보리 스타우트의 선례와 출시 당시의 무지가 원인이다. 그러다 보니 이름에 낚인 소비자(주로 주한 외국인)에게 까이고 난 후 라벨 정면에 LAGER TYPE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10] 기네스에 비하면 스타우트는 특유의 신맛이 덜하고 그만큼 더 단 편이다. 국내에 수입된 외국 맥주 중에서는 대충 코젤 다크가 스타우트와 비슷한 느낌이다.[11]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이일화, 라미란, 김선영이 평소 크라운맥주를 즐겨 마시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를 계기로 복고 마케팅이 붐을 이루면서 크라운맥주가 다시 시장에 등장했다.[12] 사실 이건 크라운맥주 초창기 광고에서도 나온 내용이다.[13] 단, 맥스는 1대 로고 한정으로 증정했다.[14] 다만, 주류 브랜드인 탓에 미성년자 선수에게는 하이트 로고가 빠진 유니폼을 입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