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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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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황제는 추존황제를 포함해서 자황색()으로 굵게 쓰고 팔왕은 빨갛게 쓴다. 그리고 8왕의 난에 관련된 종실은 갈색으로 쓴다.
※ 출계(出系)는 취소선을 치고 계자(系子)는 밑줄을 친다.
각주 [ 펼치기 · 접기 ]

[추존] [2] 황제로서의 뚜렷한 존호를 헌상받지 못했으나 다른 추존 황제와 동격배향(同格配享).[3] 친부는 의양성왕[4] 친부는 안평헌왕[5] 숙부(실제로는 종숙) 창무정후에게 출계(出系)[추존] [추존] [8] 친부는 진문제[9] 종숙(실제로는 숙부) 요동도혜왕에게 출계[10] 종숙(실제로는 숙부) 광한상왕에게 출계[추존] [12] 적장자나 두 살에 요절하여 혜제가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항목이 존재하고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13] 친부는 회남충장왕[14] 여기까지 서진[15] 친부는 오효왕[16]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17] 숙부 성양애왕에게 출계[18] 친부는 사마유(동래왕)[19]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20] 적장자였던 비릉도왕처럼 한 살에 요절했으나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한다.[21] 직접 난을 일으킨 적은 없는 여남문성왕 대신 팔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22] 백부 진세종에게 출계.[23] 친부는 진무제[24] 친부는 제헌왕[25] 백부 성도왕에게 출계[26] 친부는 제헌왕[27] 숙부 연왕 경에게 출계[28] 난을 일으킨 적은 없기에 팔왕에서 빼고 대신 효회황제를 넣는 시각도 있다.[29] 여기부터 동진[30] 친부는 진문제[31] 윤통(閏統)[32] 숙부 사마익에게 출계[33] 숙부 사마형에게 출계[34] 백부 사마랑에게 출계[35] 숙부 하비헌왕에게 출계[36] 숙부 안평왕에게 출계[37] 친부는 남궁현왕[38] 진안이 장사만 황제의 예로 올리고 시호는 왕으로 하였다.[39] 종조부 사마민에게 출계했다지만 이러면 소목에 어긋나 항렬이 꼬임[40] 종실에서 팔왕의 난에 아니 가담하고 난이 끝나가는 직전까지 살았다.[41] 친부는 단수현후. 다만 종조부에게 출계하면 항렬이 꼬여서 친부가 법적으로 종형이 되는데 이 문제는 어찌 된 건지 몰?루[추존] [43] 아니 추존되었으나 칠묘에 동격배향(同格配享).
}}}}}}}}} ||

司馬承
(260 ~ ?)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불명, 사마부의 넷째 아들인 사마익의 아들. 사례 하내군 온현 사람.

2. 생애

본래는 사마옹의 서자였지만 사마옹의 동생인 사마익이 서진이 세워지기 전에 죽자 사마익의 아들로 입적되는 것으로 사마익의 후사를 계승했으며, 사마승은 수안정후(壽安亭侯)에 봉해졌다.

태시 6년(270년) 사마승은 남궁현왕(南宮縣王)에 봉해졌다.

태강 10년(289년) 진무제는 "안평헌왕 사마부의 손자 사마승은 과거 부친이 일찍 사망하여 봉건국을 나누지 않았는데, 오늘날에 무수현, 무읍현, 관진현의 세 현으로 무읍국을 세우고 사마승을 무읍왕으로 분봉한다"라고 조서를 내렸다.

사마승이 진혜제 때 사망했을 당시에 그의 유일한 아들 사마우가 안평왕 사마돈에 출사한 상태였다. 그래서 사마승은 후사가 없어졌고 그의 봉지인 무읍국은 성(省)에 의해 장락국(長樂國)으로 병합되어 사마우에게 봉해졌다.

그가 처음에 봉국으로 임명된 남궁국은 기주 거록군에 속해있으며, 사마승이 처음으로 봉국에 임명된 것으로 19년간 별다른 행적 없이 유지했지만, 봉건국을 나눈 것으로 인해 사마승이 봉지가 옮겨진데다가 이후에 나타나는 왕조에서도 봉국에서 제후왕에 임명된 사람이 없어서 유일한 남궁왕이다.

그 다음으로 옮겨진 무읍국은 기주 안평군이었다가 진무제의 분봉 조치로 인해 무읍군 소속이 되었고, 이후 나타나는 왕조에서 봉국에서 제후왕이 된 사람이 없어서 유일한 무읍왕으로 무읍군은 후조의 월공 소속의 봉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