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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14:52:09

변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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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rowcolor=#fff> 기수 및 연도 성우
<colbgcolor=#262a59> 제1기 (1961) <colbgcolor=#ffffff,#191919> 남 김현직†, 맹관영, 이묵원, 정승현, 최응찬
김석옥, 김영옥, 나문희, 백수련, 정소희†, 최선자
제2기 (1965) 김성겸, 변희봉†, 이영달†, 전운†, 최병학, 현길, 홍성민†, 황일청
김유선, 김희숙, 유명옥†, 이수나
제3기 (1968) 김용건, 나성균, 이진성, 신충식, 한규희
김은영, 박소현, 안정현, 우문희, 정희선
제4기 (1970) 강성욱, 김기현, 박영지, 박일†, 윤지하, 이규연†, 한상혁
서영애, 송도영, 최방란, 한영숙
제5기 (1972) 김용식, 김태훈, 박태호, 전국근, 한인수, 심양홍
강미, 이명숙, 전임복, 홍승옥, 최은숙
제6기 (1974) 김명수, 이도련†, 이성, 탁재인
김성란, 김진숙, 양윤선
제7기 (1976) 권혁수, 김관식, 이인성, 이종오, 최상기
기경옥, 김순선, 김윤정, 박인숙†, 최성우
제8기 (1982) 곽대홍, 김기성, 박기량, 신성호, 장영린
박부이, 박영희, 오혜숙, 윤소라, 이미자, 이선주, 홍혜정
제9기 (1983) 김관철, 박영화, 이우신, 이윤연, 이종혁, 황윤걸
김정신, 김혜경, 이선호, 조향이
제10기 (1985) 김강산, 김동현, 김영훈, 손원일, 이승환
정미연, 황미영, 성유진
제11기 (1993) 신경택, 안장혁, 안지환, 양희문, 최원형
배주영, 우정신, 이승현, 정소영, 조예신, 주현영
제12기 (1994) 박조호, 변종필, 안종덕, 윤복성, 이진홍, 전수빈
강수진, 유은숙, 이영란, 임유진
제13기 (1996) 김영선, 김호성†, 엄태국, 이철용, 장성호, 최석필
박소라, 엄현정, 윤성혜, 정남
제14기 (1997) 김기철, 김민성, 김용준, 송준석, 이상범
김아영, 박선영, 오주연, 최수진, 한수림
제15기 (1999. 11.) 고성일, 노계현, 이상훈, 최한, 표영재
김서영, 김지영, 배정민, 이자옥, 채의진
제16기 (2002) 방성준, 이원찬, 정재헌
문남숙, 박신희, 조현정
제17기 (2004) 김두희, 류승곤, 양준건
유상우, 이민하, 한경화
CM 1기 (1973) 정명옥
김순자, 정부용, 최정양, 한순자
CM 2기 (1976) 박기량, 한대수
정숙경, 차영주, 문병례
CM 3기 (1979) 권영운, 신현식
김수희, 김춘방
CM 4기 (1983) 박홍식, 민응식, 김주형
박혜경
CM 5기 (1984)
송은주
타 성우극회: 대교방송 · 투니버스 · CBS · EBS · 대원방송 · KBS · PBC
※ 제명 및 소속을 옮기거나 은퇴 또는 사망한 성우는 취소선으로, 최고령 성우는 굵게, 최연소 성우는 밑줄로 표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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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파일:문화은관.jpg
<colbgcolor=#980000><colcolor=#EDE4D3> 연도 <colbgcolor=#EDE4D3><colcolor=#980000> 2020년
이름 변희봉
분야 배우
은관문화훈장(2등급)
}}} ||
변희봉
邊希峰 | Byun Hee Bong
파일:img__18.jpg
<colbgcolor=#4c4c4c><colcolor=#ffffff> 본명 변인철 (邊仁徹)
출생 1942년 6월 8일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신평리 신창마을[1]
사망 2023년 9월 18일 (향년 81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본관 황주 변씨
학력 살레시오고등학교 (졸업)
조선대학교 법정대학 (법학 / 중퇴)
가족 부모님
아내, 딸 3명
종교 무종교
소속사 라이언스브릿지
데뷔 1965년 MBC 성우 공채 2기

1. 개요2. 생애
2.1. 배우 경력2.2. 2000년대 이후2.3. 사망
3. 출연 작품
3.1. 드라마3.2. 예능3.3. 영화3.4. 연극
4. 수상 내역5. 여담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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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성우 출신 배우.

2. 생애

1942년 6월 8일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신평리 신창마을에서 태어났다. 살레시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하였다.

조선대학교 중퇴 후 서울에 올라와 처음에는 제약회사를 다녔다. 극단 산하에서 연극 배우로 활동하다 여러번 배우 모집에 응시했으나 탈락해 1965년 MBC 성우 공채 2기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에 데뷔한 성우 출신 중 배우로 전업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경우로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전운, 나문희, 정혜선, 김용림, 남일우, 한인수 등이 있다.

처음 활동할 당시에는 본명 변인철(邊仁徹)을 사용하다 현재의 예명으로 바꿨다.

2.1. 배우 경력

드라마는 1970년 MBC 반공 드라마 《홍콩 101번지》로 데뷔한 이후, 《수사반장》 등에서 주로 범인 등 악역을 맡았다. 그러다 1980년대에 방영한 조선왕조 500년의 설중매(세조~성종) 편에서 유자광 역을 맡으면서 배우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 손금으로 점을 보면서 "~는 내 손안에 있소이다"라는 대사[2]를 했는데, 이는 당시 큰 유행어가 되었다. 그 덕분에 변희봉은 인생 최초로 광고까지 찍는다.[3]

또한 찬란한 여명에서 흥선대원군 역을 맡았는데, 여기에 출연할 무렵에는 목욕탕에 갈 때마다 "대원위대감~"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시달렸다는 뒷얘기도 있다.[4] 풍운이순재와 함께 대원군 역에 가장 잘 어울린 배우로 사극 팬들에게 손꼽히는 편이다. 이후 계속 MBC 드라마에 개성있는 연기파 조연으로 출연하였다. 주로 맡은 배역은 코믹스러우면서도 가볍지만은 않고 또 악역이지만 밉지만은 않은 개성있는 악역이 많아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줬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 트렌디 드라마가 대세가 되자 그와 같은 고참 연기파 배우들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졌고, 캐스팅 제의가 들어오지 않게 되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자 배우를 은퇴하고 낙향하려 했다. 그 와중에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한 공전의 히트 드라마 허준에서 잠시 낙향해있던 시절에 부인이 치료를 받은 뒤 훗날 조정에서 허준의 큰 후원자가 되는 창녕 성대감 배역으로 출연하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2. 2000년대 이후

그러던 2000년에 봉준호가 삼고초려하여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 출연했다. 처음엔 봉준호의 출연 제의를 거절하려고 했으나, 봉준호가 그동안의 변희봉의 출연작을 줄줄 꿰면서 출연을 해달라고 설득을 하여 결국 승락했다고 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면에서 실패했으나, 변희봉이 맡은 (보일라 김씨를 설명하는) 경비원 역은 매우 호평을 받았다. 그래서 변희봉은 봉준호 덕분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아 인터뷰마다 봉준호에 대해 자주 고맙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후에도 봉준호의 작품에 자주 출연하였다.

그리고 2001년에는 장혁, 신민아가 주연으로 출연한 화산고에서는 사비망록을 탈취하여 학교를 손에 넣으려는 음모를 꾸미고 학생들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장학사 교감 선생으로[5] 출연하였고, 신들린 악역 연기와 코믹 연기를 같이 보여주면서 인상깊은 모습을 보여줬다. 화산고의 엔딩 크레딧에서는 변희봉이 조연으로 출연한다고 써있지만, 메인 악역으로서의 출연 분량도 많고 비중도 매우 높은 편이라 실질적으로는 거의 주연급으로 출연한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엉뚱한 용의자 백광호를 잡고 좋아하다 끝내 잘리고 마는 구 반장 역을 맡았는데, 송강호와 함께 논두렁 롱테이크 씬에서 연기 앙상블을 빛내면서 굉장한 인상을 남겼다. 여기서 논두렁 씬이 애드리브라고 잘못 알려졌는데, 애드리브가 아니라 100% 대본으로 구성한 장면이다.

특히 괴물에서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희봉' 역으로 출연하여 일생일대의 열연을 펼쳤다.[6] 마지막에 괴물을 향하여 샷건을 겨누다 계산을 잘못하여 탄환이 다 떨어졌음을 알고, 모든 걸 포기한 채 자식들을 먼저 걱정하며 "어여 가..." 라고 빨리 달아나라는 손짓을 하다 괴물의 꼬리에 맞아 날아가는 명장면을 남겼다. 훗날 칸 영화제에서 만난 더스틴 호프만도 그 장면이 인상 깊었던지 변희봉을 알아보고 자식들 보고 가라며 손짓하던 장면을 따라하면서 무척 반가워했다고 한다. 이렇게 봉준호의 여러 작품에 출연한 이후 여기저기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괴물에서 한 열연으로 2006년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도 봉준호의 옥자에 출연하여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는데, 고목나무에 꽃이 핀 기분이라고 소감을 표현했다. #

2.3. 사망

<colbgcolor=#4c4c4c><colcolor=#ffffff>
변희봉 췌장암 투병 끝 별세

2023년 9월 18일[7], 췌장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1 #2 #3 #4 최측근에 의하면 췌장암 완치 이후에는 항암치료를 중단했다가, 재발 후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

빈소에는 영화감독 봉준호, 배우 송강호 등 여러 영화인들이 찾아와 방문 및 조문했고, 그 후 발인은 같은 달 20일에 엄수되었다.

3. 출연 작품

3.1. 드라마

3.2. 예능

3.3. 영화

3.4. 연극

4. 수상 내역

<rowcolor=#ffffff>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85년 제2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
2006년 제27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괴물
제51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남우조연상
제9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올해의 남자배우상
2007년 제4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남자조연 배우상
2014년 MBC 연기대상 단막극연기상 내 인생의 혹
2020년 제11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2023년 2023 APAN 스타 어워즈 공로상

5. 여담

6. 관련 문서


[1] #[2] 당시 한명회 역을 맡은 정진이 먼저 해 히트쳤던 대사다. 이후 KBS의 1994년 드라마 한명회에서 이덕화 역시 같은 대사를 하는데 사극 모두 작가가 같은 사람이라서 예전에 히트한 대사를 한명회에서 다시 써먹은 것이다. 당시 정진이 먼저 이 대사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유자광 역의 변희봉만 했다고 기억하는 이유는 뒤에 나오는 진광탕 광고 때문이다. 똑같은 대사를 그것도 유행어가 될 정도로 시청자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던 대사를 유자광이 바로 이어서 똑같이 하는 이유는 신봉승이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알려주는 장치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3] 광동제약 진광탕 광고에서 과거시험 출제 문관으로 나오는데 "오늘의 주제는 감기몸살~!"이라고 특유의 발성으로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다른 선비들이 우왕좌왕할 동안 득의만만한 주인공이 "진광탕이오~!" 하니 "옳거니!" 하고 받아치고 장원급제를 시키는 스토리다. 그리고 그 유명한 "감기몸살쯤은 바로 이 손 안에 있소이다." 란 대사가 등장한다. 이 광고는 나중에 서영웅굿모닝 티처에서 '형민우태왕북벌기를 패러디한 장면에도 등장한다.[4] 방영 당시에는 심지어 흥선대원군의 초상화와 견주어 가장 비슷하게 외모조차 닮았다는 얘기가 나왔다.[5] 여기서 장학사는 직위를 말하는게 아니라, 성이 장씨이고 학사가 이름이다.[6] 변희봉은 봉준호의 영화로 대박을 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은 봉준호의 대표작이자 한국 영화 명작을 이야기할때 항상 언급되는 작품들이다. 특히 괴물은 네 번째 천만 영화라는 점에서, 그리고 1300만 명이나 관람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영화 판도를 바꾸었다. 변희봉은 봉준호의 핵심 작품마다 출연하며 영광을 함께 한 것이다.[7] 공교롭게도 제국의 아침에서 혜종 역을 연기한 배우 노영국같은 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유작] [유작] [유작] [11] 사실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노인 노숙자가 나오긴 한다. 주인공인 김혜자에게 추근대기도 하고.[12] 미스터 션샤인 캐스팅 제의를 받고 건강검진하러 가서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 캐스팅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을 거라고도 말했다.[13] 췌장암 문서에도 나오지만, 췌장 자체가 보통 자주받는 검사인 내시경 등으로 조기 발견도 힘들고 위치도 주요 장기 뒷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에 수술 난이도도 상당히 높다. 그래서 대부분 위궤양이나 급성 췌장염 등으로 오진하여 수술대에 올랐다 말기 췌장암 판정을 받고 극한의 고통속에 시한부 인생을 사는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1기 환자의 생존률도 30%가 안넘는데다 진단률이 1%도 안된다. 2기부터는 생존률이 10%도 안 나온다.[14] 영화 '더 게임'에서는 신하균과 함께 공동 주연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