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앨범 ]
- ||<tablebgcolor=#242424><width=25%><nopad> ||<width=25%><nopad> ||<width=25%><nopad> ||<bgcolor=#FFF><width=25%><nopad> ||1집
I Believe
19992집
Never Again
20013집
Made In Winter
20014집
My Stay In Sendai
2002<nopad> 5집
This Time
20036집
The Colors Of My Life
20047집
Grace
20068집
내려놓음
20079집
9th Dazzle
200910집
SORY
2022
- [ 싱글 ]
- [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
- [ 기타 ]
이수영의 주요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10대 가수 가요제 대상 | ||||
장나라 Sweet Dream (2002년) | ▶ | <colbgcolor=#FFFFA1,#5D5E00> 이수영 덩그러니 (2003년) | ▶ | 이수영 휠릴리 (2004년) | |
이수영 덩그러니 (2003년) | ▶ | 이수영 휠릴리 (2004년) | ▶ | 김종국 사랑스러워 (2005년) |
음반 대상 | ||||
조성모 <피아노> (2003년) | → | 이수영 <휠릴리> (2004년) | → | SG워너비 <죄와 벌> (2005년) |
<colbgcolor=#242424><colcolor=#FFFFFF> 이수영 李秀英|Lee Soo Young | |
본명 | 이지연 (李知姸, Lee Ji Yeon)[1] |
출생 | 1979년 4월 12일 ([age(1979-04-12)]세) |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장수 이씨 |
신체 | 165cm[2], 43kg, B형 |
가족[3] | 남동생(1986년생)[4], 여동생 |
남편 조재희(1969년생, 2010년 10월 5일 결혼) 아들 조민제(2011년 7월 27일생)[5] | |
학력 | 서울신봉초등학교 (졸업) 관악중학교 (전학) 문정중학교 (전학) 정자중학교 (졸업) 분당중앙고등학교 (졸업) 가천대학교 (여성교양학 / 중퇴[6]) |
종교 | 개신교(초교파)[7] |
MBTI | INFJ[8] |
소속사 | 뉴에라프로젝트 |
데뷔 | 1999년 1집 앨범 I Believe (데뷔일로부터 [dday(1999-10-08)]일, [age(1999-10-08)]주년) |
SNS | | [9] |
팬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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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2000년대 오리엔탈 발라드 장르를 유행시킨 가수로 음악 시상식 대상을 3회 수상하였을 정도로 여자 가수 발라드 역사에서도 손꼽힐만한 커리어를 가진 가수다.2. 활동
1999년 11월 1집 <I Believe>로 데뷔하였다.2003년에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대상에 해당되는 최고 인기 가수상을 수상하였고, 이듬해에는 MBC 《10대 가수 가요제》 2연속 대상 수상과 더불어 《골든 디스크》 대상까지 거머쥐는 저력을 발휘한 가수다.
대상 수상 커리어 외에도 이수영의 가수로서 인기를 입증해주는 데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여자 솔로 가수 역사상 가장 많은 누적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는 것이다.[10] 2022년 현재까지 10장의 정규 앨범 및 3장의 싱글을 발표했으며, 대표곡으로 <I Believe>, <Never Again>, <그리고 사랑해>, <라라라>, <덩그러니>, <휠릴리>, <Grace>, <단발머리>, <내 이름 부르지마>, <천왕성> 등이 있다.
데뷔 이후 소속사가 3번 바뀌었다. 맨 처음 소속사는 팬텀(舊 이가기획), 그 다음은 리쿠드이다. 두 번 다 소속사와의 마찰로 생긴 일인데 아무래도 과도한 홍보 문제(언론플레이, 이수영 동의없이 미공개곡 수록 및 베스트앨범 발매, 예정에 없던 콘서트 일정 급하게 잡아놓기 등)와 돈 문제가 그 이유인 듯. 한때 이수영의 고모가 직접 회사를 차리기도 했으나(have Ent) 다시 티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 그러다가 2013년 9월 이후 블루프린트 뮤직 소속 가수가 되었고 2019년부터 현재까지는 뉴에라프로젝트의 소속 가수다. 가수로서의 꿈은 '20주년 디너 쇼'라고 하며 팬들 역시 디너쇼를 상당히 고대했으며 데뷔 20주년인 2019년 내로 음반을 발매하겠다고 언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음반 계획이 미루어 지다가 결국 2022년 5월 13년 만에 정규앨범 10집 'sory'로 컴백한다. 심지어 이번 앨범은 이수영 본인이 적금을 부어 만든 '내돈내만' 앨범이다.
3. 음반 목록
자세한 내용은 이수영(가수)/음반 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4. 생애
4.1. 1999년 이전
분당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원전문대 여성교양학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했다. 정확히는 휴학 연장 신청을 제때 하지 않아 제적되었는데, 재입학이나 복학절차를 밟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연극부 부장 및 창단 멤버로 활동했으며 친구들과 상당히 친해서 방송에서 고교 동창 친구들과 '까단리'(까만 단발머리라는 뜻)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로 개그경쟁과 개인기 심사를 펼쳤다고 밝힌 적도 있다.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다. 남동생의 이름은 이재헌이며 1986년생이다. 남동생 이재헌은 초등학생때부터 학교 폭력 가해자로서 전학을 전전하다가 중학교 2학년때 분당중학교에 입학하였고 그 이후에도 학생들에게 학교폭력을 일삼다가 중학교3학년때 중퇴하여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이후 클럽 등을 전전하며 생활했다.[11][12]4.2. 1999~2001년
1집 타이틀곡 I Believe
2집 타이틀 곡 Never Again
3집 타이틀 곡 그리고 사랑해
1집부터 3집까지 동양풍의 멜로디가 들어간 소위 오리엔탈 발라드를 선보이면서 그럭저럭 인지도도 있고 음판 판매량도 괜찮았지만,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줄곧 2위만 하면서 지독한 콩라인을 겪었던 시기다.
1집때는 뮤직 뱅크에 총 3번 1위 후보에 올랐으며 god, 임창정과 겨루었다.
2001년 3집 '그리고 사랑해'부터 본격적으로 1, 2위를 다투기 시작했으나, 2위만 14번했다. MBC 게릴라 콘서트에서 고백하기로는 당시 '내 생에 봄날은' 으로 최대 전성기를 누리던 CAN의 배기성이 "너는 가수 인생이 오래 남지 않았느냐, 우리는 이번이 마지막일 거다."라며 1위를 양보해 달라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2002년 초 MBC 라디오에서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방송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감성시대>의 DJ를 맡았는데, 조용한 프로그램이 주류였던 심야에 개그를 폭격하며 상당히 인기를 끌었고,[13] 4집 홍보에도 도움이 되었다.
2002년 그녀의 가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게 될 4집의 '라라라'가 히트를 하면서 비로소 처음으로 1위도 차지하고 콩라인 탈출과 함께 발라드의 여왕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첫 1위를 하고 눈물바다가 되었음은 당연한 일. 그리고 데뷔 후 처음으로 연말 시상식에도 참가했다. 4집은 이수영의 앨범들 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앨범이 되었다.
2000년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 하얀마음 백구의 오프닝과 엔딩 보컬을 맡은 바 있다. 2002년 당시 아동용 교육비디오 <빠빠라빠>, <WOW Go Go English>를 찍었다. 6.5집 발매와 비슷한 시기에 이 비디오의 음원들이 스트리밍사이트에 올라와 전 소속사의 횡포가 아니냐는 말이 있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14] 이후 스트리밍이 중단되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사건 이후 7집이 발매되었을 당시 팬들 사이에서 팬사인회에 <빠빠라빠> 들고 가서 사인 받기가 유행했다.
4.3. 2002~2004년
4집 타이틀곡 라라라
4.5집 타이틀곡 굿바이
5집 타이틀곡 덩그러니
6집 타이틀곡 휠릴리
이수영의 최고 전성기
타이틀곡에서 후렴구와 오케스트라에 집착하는 경향은 분명하며, 이는 7집 'Grace'까지 이어진다. 4집의 후렴구인 '라라라'가 대중에게 제대로 먹혔던 것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15]
4집(2002.9)과 4.5집(2003.2) 사이의 활동 공백이 거의 없었던 것과 달리 4.5집-5집 사이에는 5개월 가까이 쉬었는데, 소속사에서는 이 사이 '이효리vs이수영' 구도와 발라드의 여왕 떡밥으로 언플을 융단폭격했다.[16] 이게 먹혔는지 2003년 8월에 발표한 5집 <This time>의 타이틀곡 '덩그러니'가 히트에 성공했다.[17]
'덩그러니'로 지독하게 가수를 돌리던 소속사가 다행인지, 의외인지 후속곡 '여전히 입술을 깨물죠'는 별다른 방송 노출을 시키지 않았다.[18] 후속곡은 활동 투자 대비 괜찮은 성적을 내기는 했으나, '대히트'라기보다는 중박친 수준으로 마무리 되었다. 대신 음반 판매량은 그해 모든 가수들 중 독보적이었다.
그리고 다가온 2003년 연말 시상식.[19] 당시 신드롬으로 초 고공비행 중이던 이효리가 SBS와 KBS에서 '10 minutes' 으로 대상을 휩쓸면서 여성 솔로로 유일하게 지상파 3사 그랜드 슬램을 목전에 두고 있었을 때, MBC에서 이수영이 대상을 수상하면서 이효리의 그랜드 슬램을 저지했다.[20] 이 때 그녀는 감격해서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 통곡했고 이후 2년 정도가 그녀의 가수 인생에 있어 정점이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21]
5집 활동 당시 시력 상실설과 청력 상실설이 있었으나, 소속사와 이수영 본인은 기사 내용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해명을 한 바 있다. 다만 '시력상실' 수준까지는 아니나 눈이 나쁘긴 한 듯. 안경 끼고 운전하다 접촉사고가 나서 눈 밑에 상처가 난 적도 있다. 라디오에서는 가끔 안경을 쓴 모습이 포착된다. # # 이 때문에 동정 팔아먹는 가수라는 악플도 있었다
대상 수상 직후 리메이크 앨범인 5.5집 <Classic>을 내놓았는데, 이후 리메이크 음반 붐의 시초 격이었다. 그후당시 박효신,성시경 등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 음반을 출시했다. 이 음반은 익숙한 주멜로디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세련됨을 더하는 편곡으로 평단의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방송 활동은 하지 않았고 짧은 휴식기를 가졌다. 이때 타이틀곡은 이문세의 원곡인 '광화문 연가' . 2004년 음반판매량 2위를 기록할 정도로 히트했고[22] CD와 테이프 판매량이 거의 비슷한 기현상을 낳기도 했다. '광화문 연가' 는 방송 출연 한 번 없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후속곡인 '꿈에'도 꽤 히트했는데, 뮤직비디오가 '성인의 영혼이 빙의된 어린이'를 콘셉트로 촬영되어 방송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논란이 된 이유는 빙의 그 자체로 인한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른 데 있었다. 지금은 잊힌 일이지만, 사실상 최초의 페도필리아 콘셉트 논란이었다. 어린 아이가[23] 짙은 화장을 하고 어른 역할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는 인식이 지금보다 강했기 때문에 뭔가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게다가 조덕배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이 곡의 본래 내용이 빙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성적인 역할을 맡기려는 핑계라고 보는 시각이 강했다.
2004년 상반기에는 일본 진출에 도전한다. 그러나 당당히 밝혔던 포부와는 다르게 일본 진출은 대실패하였고 이후 2004년 6집으로 한국에서 컴백한다.[24] 황성제가 작곡한 타이틀 곡인 '휠릴리'도 히트에 성공하며 2년 연속으로 MBC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타고 골든디스크 대상까지 수상하였다. 그리고 6집이 끝난 후 팬텀 엔터테인먼트를 떠난다.[25]
팬텀 엔터테인먼트는 이수영과의 계약이 종료된 후에도 본인도 모르는 콘서트를 잡아 공연 사흘 전에 통보하질 않나, 베스트 앨범 등을 내서 팔아먹으며 끝까지 빨아먹었다. 이가기획과의 계약 기간은 2004년이 끝이었으나, 앨범 10장을 발표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기에, 6집 활동을 끝마친 직후인 2005년 1월에 6.5집 <As Time Goes By>를 발표했다. 데뷔 직전 아이비가 출연한 뮤직비디오에 삽입된 곡 '꽃들은 지고'가 이때 나온 곡이다. 계약기간은 끝났으니 이 앨범으로 활동하는 일은 없었고, 이 앨범까지가 이가기획과 이수영이 적법한 절차로 합의하에 내놓은 마지막 앨범이었다.
이가기획과 헤어진 이수영은 다른 회사와 손을 잡고 2005년 10월을 목표로 7집 앨범을 준비했으나, 7집 발표 직전에 팬텀이 앨범 발매를 방해할 목적으로 <An Autumn Day>라는 베스트 앨범을 발표했다. 이 때문에 7집 앨범 발매가 3개월 가량 연기되었다.[26]
4.4. 2006년
7집 타이틀곡 'GRACE'
팬텀 엔터테인먼트를 떠나 2005년 봄 신생 회사인 리쿠드 엔터테인먼트에 정착했다. 생일파티 겸 팬미팅도 열었고 여름에 팬캠프 행사를 여는 등 팬서비스가 강화되는 측면이 보여 팬들 대다수가 이번에는 지원을 빵빵하게 해주는 안정적인 소속사를 마련했다고 생각했다. 2006년에 7집 'Grace'를 발표했다. 7집은 음악적 완성도와 대중적 인기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음반으로 호평받았다. 이기찬의 피쳐링과 이준기 주연의 뮤직비디오가 화제가 되었던 타이틀곡 'GRACE'는 2달 활동기간 중 라디오에서 2000번이나 선곡되는 기염을 토했다. 음악방송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은 물론이고 벅스뮤직에서는 8주간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타이틀곡 외에도 여러 곡이 차트 진입에 성공했으며, 음반산업의 사양세 및 2달간의 짧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21만 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리며 2006년 음반판매량 4위를 기록했다. 비록 연말시상식 대상 경쟁에서는 약간 거리가 있었지만 여전히 그해 최고의 인기를 얻은 가수 중 하나였으며, 사실상 이때가 이수영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같은 해 6월부터는 신동엽과 함께 <신동엽 이수영의 음악공간>이라는 음악프로그램 MC를 맡기도 했다. 또한 이수영이 지상파 방송에서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입었던 것이 이때였다.[27] 이 프로그램 주제가로 '행복을 주는 사람'[28]이라는 노래를 불러 음원을 발매하기도 했다. 신동엽과 진행을 맡는 동안 개그 성향이 신동엽과 묘하게 비슷해서 두 MC 간 호흡은 나쁘지 않았다. 이문세가 출연했을 때는 '이별 이야기'[29], 이기찬이 출연했을 때는 '또 한 번 사랑은 가고'를 듀엣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듬해 4월 MC에서 하차했고 이후 해당프로는 <이적의 음악공간>으로 개편되었다.
또한 이 때부터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박경림이 레귤러 멤버로 출연하던 SBS <X맨>에서 대활약. 쥬얼리 이지현에 이어 '퀸 오브 당연하지'로 등극했다. [30]
그러던중 소속사와의 계약금 지급 등의 문제로 서로 맞고소를 하면서 2년만에 리쿠드 엔터테인먼트와 결별한다. 소속사 리쿠드 엔터테인먼트는 미숙한 업무처리로 인해 이수영에게 계약금을 지급하지 않았으며, 계약금 지급을 요구한 이수영의 요구에 이수영의 매니저팀을 전원 해고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또한 2006년 하반기의 전국투어 콘서트 일정을 이수영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체결하는 등 여러 면에서 불성실한 계약이행을 해왔다는 것이 그 이유다.
4.5. 2007~2009년
8집 타이틀곡 단발머리
9집 타이틀곡 내 이름 부르지마
2번 모두 소속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었기 때문인지 2007년 직접 해브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다. 경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고, 대표이사는 이수영의 고모였다.
2007년 9월 8집 <내려놓음>을 발매하고 타이틀곡 '단발머리'로 활동했다. 이때 3집 이후부터 고수하던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컴백 당시 쇼케이스도 했고, 지상파에서 3위를 기록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의상 컨셉이 미니스커트였다. 다리가 예쁜데 지나치게 보수적인 패션 탓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가, 미니스커트 착용 이후 '다리 예쁘다'는 칭찬이 늘었다. 직접 작곡한 '라벤다'라는 곡이 수록됐는데, 친구 서민정의 결혼식 축가였다고 한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스스로 사투리와 개그성 꺾기창법으로 노래를 쑥대밭으로 만든 패러디곡 <쑥대머리>를 공개하기도 했다. 11월 22일 8집 리패키지를 내고 뮤직비디오도 홍보도 없이 타이틀곡 '남자를 모르고'로 활동했다.
2008년 11월 미니앨범 <Once>를 발매하고 타이틀곡 '이런 여자'로 활동했다. 특유의 동양적 색채를 버린 오리지널 발라드 넘버였으나 롱런에는 실패했다.[31] 사실 <Once> 자체가 완성도가 높지 않았고, 애초에 심한 우울증을 겪은 이수영이 일단 무대에 오르고 활동을 이어가도록 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는 음반이기도 했다. 다만 김남조 시인의 <너를 위하여>를 가사로 쓴 '너를 위하여' 한 곡 만큼은 명곡이었다.
2009년에는 김아중, 황정민 주연의 드라마 <그저 바라 보다가>에서 황정민 여동생의 친구이자 황정민을 짝사랑하는 '김승은'이라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 배우로 데뷔했으며 자연스러운 연기였다는 평이었다.[32] 이어 10월에는 조규만과 작업한 9집 <the DAZZLE>을 발매했으나 방송활동이 거의 없었고, 차트에서도 히트하지 못했다. 대중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던 탓인듯. 타이틀곡은 '내 이름 부르지 마'. 대신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돋보이는 음반이며, 제대로 들어본 이들은 대부분 호평이었으며 들으면 들을수록 좋다.
4.6. 2010~2021년
2010년에는 전년도의 시즌 1에 이어 슈퍼스타K2 지역심사위원을 맡았으며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라디오 개편을 통해 '이수영의 뮤직쇼' 를 맡아 활동했다. 하지만 몇몇 지역에서는 일부만 방송되거나 지역 방송이 나오는 등(아예 안 나오는 곳도 있다고 한다) 방송을 듣는 사람들의 애환인 지역 차이를 비껴가진 못한 듯. 이듬해 4월 8일자로 뮤직쇼에서 하차.[33]2011년 가을 나는 가수다의 새로운 가수라는 떡밥이 흘러나왔으나, 육아에 전념하고 싶다며 섭외를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출산은 7월 하순이었고 아이가 100일도 넘기지 않은 상황에서 방송에 복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34] 그러나 이듬해 상반기에 시작된 나는 가수다 2에 출연해 첫 경연 1위를 기록했다.
2012년 9월에는 새로 방송을 시작한 KBS 2TV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심사위원으로서 우아하고 수사적이고 효율적인 독설을 구사해 박근태와 더불어 편집상 악역 기믹을 도맡았다. 박근태가 직선적 돌직구라면 이수영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한편 내마오 출연자들과는 아직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트위터에서 친목질하는 모습이 간혹 목격되기도 했다. 2013년 1월에는 SBS MTV의 더 스테이지 빅 플레져의 MC를 맡게 되었고, 3월 28일 정말 오랜만에 앨범을 냈다. 9.5집으로 앨범 제목은 클래식 : 더 리메이크 두번째, 제목 그대로 리메이크 앨범이다.[35] 나가수에서 부른 6곡과 새로운 노래 두 곡을 리메이크하여 수록하였다.
4월 20일 방송된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에도 호스트로 출연했다. 유세윤, 김슬기와의 꽁트 연기에서는 '리액션 인간문화재' 캐릭터로 등장했는데, 김슬기에게 오렌지주스를 퍼부어야 하는 장면에서 얼굴을 살짝 피해주었다.[36]
2014년 9월 21일 채널A 광화문 콘서트 녹화에 참여해 출연하기도 했다.
2015년 12월 13일 자 복면가왕의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특유의 비음과 손동작, 노래 부를 때 고개를 돌리는 각도와 마이크를 쥐는 자세까지 완벽하게 이수영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그 뒤 준결승 상대인 아빠가 사온 붕어빵에 의해 정체가 드러나면서 네티즌들의 예상이 적중했다. 2017년 10월 30일부터 현재까지는 김필원 아나운서의 후임으로 CBS 음악FM "12시에 만납시다"의 DJ를 맡고 있다.
4.7. 2022년 이후
10집 타이틀곡 천왕성
2020년 2월 28일 슈가맨 3 13화에서 재석팀 슈가맨으로 등장하였다. 슈가송인 라라라[37]를 비롯하여 덩그러니, grace, 휠릴리, I Believe를 불렀다. 제보자의 경우 자신의 절친이자 시즌 2에서 슈가맨으로 출연했던 장나라가 나와서 소개를 했다. 2020년 3월 3일 11년만에 '날 찾아' 라는 싱글로 신곡을 발표했다.
2020년 5월 7일 데뷔 20주년을 맞이하여 <덩그러니>, <스치듯 안녕>, <라라라> 3곡을 리메이크한 디지털 싱글 'Masque'를 발매했다. 5월 22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세 곡 모두를 라이브로 선보였다. 동년 10월 29일에는 <I believe>, <휠릴리>, <그리고 사랑해> 3곡을 리메이크 한 디지털싱글 'No.21'을 발매했다.
2022년 5월, 13년 만에 새 정규앨범으로 돌아온다. 이수영 본인이 적금을 부어 만든 '내돈내만' 앨범이다. 29일 선공개곡 ‘덧’을 공개했다. 2022년 5월 17일, 열 번째 정규앨범 'SORY'를 발표했고 안예은이 만든 타이틀 곡 '천왕성'으로 활동하고 있다.
5.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와 그 스토리에도 상당히 공을 들이는 것도 이수영 노래의 전통이다. 이수영이 여가수계의 조성모라는 별칭은 단순히 그 명성이나 발라드라는 동일한 장르에 비교되는 것만 아니라 이런 뮤직비디오 효과를 가수의 인기에 잘 활용하는 점도 한몫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뮤직비디오 제작 및 기획은 기획사에서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라 정작 이수영 본인이 직접 뮤직비디오 기획 및 제작에 관여한 적은 없다.이수영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배우들이 유명 배우라 뮤직비디오가 화제가 된 경우도 있었고 신예 배우가 이수영의 뮤직비디오를 지속적으로 출연하면서 유명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후자의 경우 탤런트 조윤희와 한지혜가 있는데 이수영 뮤직비디오에 단골 수준으로 집중 출연해 전문 배우로 각인되기도 했다. 이 둘은 당시 이수영과 소속사(이가엔터테인먼트)가 같았으며 출연 시기상 조윤희가 1기, 한지혜는 2기라고 볼 수 있다. 둘이 같이 나온 작품도 3개 있다.[38]
앨범 | 곡명 | 출연 | 비고 |
1집 | I Believe | 조윤희, 전기룡, 김민희 | 타이틀곡 |
1집 | Goodbye My Love[39] | 김민선, 이정진, 심형탁, 김학남 | 후속곡 |
2집 | Never Again[40] | 신현준, 종려시[41], 한고은 | 타이틀곡 |
2집 | 스치듯 안녕 | 장백지, 최민식 | 영화 '파이란' 의 장면 수록 |
2.5집 | 그녀에게 감사해요 | 조윤희, 김재원 | 타이틀곡 |
참여앨범 | 사랑이 지나가면[42] | 이영애, 정다혜[43] | 수록곡 |
3집 | 그리고 사랑해[44] | 김석훈, 이가흔[45], 송지효 | 타이틀곡 |
3집 | 차라리 | 조윤희 | 후속곡 |
4집 | 라라라/빚[46][47] | 정재영[48], 손태영, 조윤희, 이종수, 한지혜[49] | 타이틀곡/후속곡 |
4집 | 얼마나 좋을까[50] | '파이널 판타지 10' 장면 수록[51] | |
4.5집 | Goodbye[52] | 조윤희 | 타이틀곡 |
4.5집 | 그렇게라도 | 이수영[53] | 후속곡 |
5집 | 덩그러니/여전히 입술을 깨물죠[54] | 고수, 공효진, 조윤희[55], 김지완, | 타이틀곡/후속곡 |
5집 | 우미공주[57] | 정웅인, 최정윤 | 영화 '써클' 장면 수록 |
5집 | 모르지[58] | 조윤희, 이종원, 김보성 | 영화 '최후의 만찬' 장면 수 |
5.5집 | 광화문 연가 | 한지혜, 조윤희, 김강우 | 타이틀곡 |
5.5집 | 꿈에 | 정채은[59] | 수록곡 |
싱글 | 사이고노 와가마마(最後のわがまま) | 이수영 | 타이틀곡 |
6집 | 휠릴리/Andante[60] | 신하균, 한지혜, 김상경, 차서린 | 타이틀곡/후속곡 |
6.5집 | 꽃들은 지고[61][62] | 아이비, 이종수, 박지빈, 정채은 | 타이틀곡 |
6.5집 | 꽃[63] | 하지원 | 수록곡 |
7집 | Grace/비밀[64] | 이준기[65][66], 민서현[67], 정희정[68], 박효준[69], 백봉기[70], 정다빈 | 타이틀곡/수록곡 |
7집 | 시린 | 고준희, 정다빈, 김동원 | 후속곡 |
7집 | 끝[71] | 이수영 | 수록곡 |
참여앨범 | 눈물이 나요[72] | 에릭, 김윤경 | 수록곡 |
8집 | 단발머리[73] | 박건형, 김유미, 오수안 | 타이틀곡 |
미니1집 | 이런 여자 | 이수영 | 타이틀곡 |
싱글 | 지울꺼야 | 이채영 | 타이틀곡 |
9집 | 내 이름 부르지마 | 배수빈, 진보라 | 타이틀곡 |
싱글 | 날 찾아 | 유용민 | 타이틀곡 |
10집 | 천왕성 | 이수영 | 타이틀곡 |
10집 | 덧 | 이수영 | 수록곡 |
6. 생애
독실한 개신교 신자며, 자수성가한 케이스 가운데 하나다. 별밤지기 출신으로 고등학생 때부터 동네에서 노래 잘하기로 유명했다. 이수영의 아버지는 그녀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며, 어머니는 스무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후 2명의 동생과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했다. 남동생은 데뷔 초기 남해의 외가에 내려가 있기도 했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으나,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이수영의 아버지는 경상도 남해 출신이며, 어머니는 제주도 출신이라고 한다. 가족 공개를 극히 꺼리는 편으로, 여동생 한 명과 남동생 한 명이 있는데 남동생은 이수영 관련 방송에서 아주 잠깐 모습이 나왔으나 여동생, 남동생의 이름과 신상은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수영 콘서트에서 잠깐 남동생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거의 다 커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압도적으로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자주 언급했다.[74] 한창 어머니 일이 언급될 당시 일각에서는 '엄마 팔아먹는다'는 식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애초에 이수영 본인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없는데 PC통신을 중심으로 지인들이 이 사실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후 소속사가 언플로 이 사실을 활용해 '소녀가장 가수'라고 알려졌던 것. 상술한 남동생 방송공개도 이때의 사건이다. 그러나 이수영은 데뷔 때 이미 21세 성인이었으며, 나중에는 "부모님을 두 번 죽이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라디오 방송을 꾸준히 하던 중 2010년 8월 결혼 발표를 하여 화제가 되었다. 배우자는 9집 활동을 시작할 즈음에 교회 지인에게 소개를 받은 10살 연상의 평범한 회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팬들은 10년 연상의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별다른 잡음 없이 잘 살고 있다. 2011년 7월 27일 아들을 순산했다. 태명은 탕탕이. 엄마 배를 발로 탕탕 차대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트위터에서 아이를 '조탕탕'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어 남편이 '조 씨'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토크쇼에 나와서 밝힌 바에 따르면 남편은 단순히 사랑을 하거나 받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준 점이 결혼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특히 빨간 딱지가 붙을 정도로[75] 자산관리가 허술한 본인에게 직접 은행을 데리고 다니기도 하는 등 관련 부분을 차근차근 가르쳐주며 도움을 많이 주었다고 한다.
청담동 모처에서 결혼식이 진행되었고 규모가 꽤 커서[76] 시가(媤家)가 재력이 꽤 되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실제로 시가에서는 둘의 결혼생활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 같다. 출산 준비나 산후조리 등에서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외롭고 우울했는데, 김희선이 낸 출산 관련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종교인 개신교(기독교)를 믿게 된 계기의 경우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그 종교의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이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R&B, 소울 음악이 가스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듣고 동네에 가스펠 축제를 보러간 것이 계기가 돼서 신앙을 갖게 되고 고등학교 때 이미 학교에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통성기도를 했었다. 앨범에 개신교 관련 내용을 담은 노래가 가끔씩 나오기도. 6집 silent eyes, 7집 우리, 8집 다 이루었노라가 개신교 관련 곡. 6집엔 시편 24편의 암송이 들어있는 인터루드(Interlude)도 있으며, 7집 outro 끝부분에는 그녀의 육성 기도가 들어 있다.
사실 개신교를 믿게 된 것은 어쩌면 전술한 바와 같이 이수영이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지냈던 점으로 인한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아서 그렇게 됐다고 봐야 하는 것이 맞다. 비록 어머니의 경우 새아버지와 재혼 후 불교로 개종했지만 그 이전에 어머니가 개신교에 대한 신앙심을 가지면서 주일학교 교사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줬던 것이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사실상 개신교 집안에서 자라난 것이 맞는데 몇몇 언론사에서는 훗날 재혼 후 불교로 개종한 어머니의 종교 때문에 이수영이 불교 집안에서 자란 줄 알고 오해해서 사실과 다른 뉴스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어쨌든 2017년부터 CBS 음악FM의 인기 프로그램인 이수영의 12시에 만납시다를 진행하고 있고[77] 2024년 현재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우리들교회 집사 직분을 맡고 있는 등 개신교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7. 평가
7.1. 가창력
2000년대 한국 발라드 여보컬의 대표주자다. 애초에 한국에서 솔로 여가수가 정규 9집까지 발매하며 활동한 사례가 많지 않다. 특히 당시 경쟁했던 양파나 이소은에 비해서는 확실히 더 많은 인기와 성공을 했다. 가창력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만, 대중이나 전문가들이 가창력 뛰어난 가수를 꼽을 때 바로 이름이 나오는 건 아니다. 이는 이수영만의 독특한 비음 때문인데 2009년 KBS <해피투게더> 출연 당시 밝힌 바에 따르면 다른 사람보다 코 안쪽에 살이 좀 더 있다고 한다.앨범에 따라 창법이 꽤나 많이 변화했다. 데뷔 전에는 흑인음악을 즐겨들은 영향으로 인해 음역대가 높고 성량이 큰 진성 창법을 사용했으나, 이 창법은 1집 이후로 쓰이지 않는다.[78] 1집 <swan song>, <소심> 등(<I Believe> 제외)을 들어보면 그 이유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미숙한 일반인이 지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2집부터 가성 창법을 연마하기 시작했는데 음역 폭은 다소 좁아지더라도 안정적이고 듣기 편한 목소리로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가성 위주 창법의 특성상 '라이브'가 안정적이지는 않다. 한때 과도한 스케줄을 사고 한 번 없이 소화하기도 했으나 건강 체질도 아니고 라이브도 컨디션에 따른 기복이 심하다. 타이틀 곡 기준으로, 1집 'I Believe' 부터 상당한 인지도를 갖기 시작했지만 가수로서 특유의 색깔을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3집 정규앨범 made in winter의 타이틀 곡 '그리고 사랑해'로 평가받는다. 즉 그녀의 커리어 중 음악의 색깔이 '그리고 사랑해'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1,2집 시절의 청아함과 커리어 후기의 성숙미가 조합된 중간 단계인 3집의 '그리고 사랑해'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는 팬들도 상당히 많다.
1집 'I believe'와 2집 'Never again'이 전통적인 발라드의 곡이라면 3집 '그리고 사랑해'는 상당히 빠른 템포를 구사하는데, 이는 이후 5집 '덩그러니', 6집 '휠릴리', 7집 'Grace', 8집 '단발머리'까지 이어진다. 템포는 빠른데 키가 낮지도 않고 가성을 구사해야 하는 방식 때문에 활동 당시 주력으로 불러야 하는 곡임에도 라이브 무대에서 애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9집 발매 후 방송으로 돌아왔을 때는 6집, 7집 보다도 훨씬 뽕삘이 짙어지고 음정도 불안해졌다. 2014년에 I believe를 다시 부르는 것을 봐도 상당히 음색이 바뀐 걸 알 수 있다. 각종 OST 곡에 참여했을 때 느린 템포의 곡들을 자주 불렀는데, 오히려 성숙미가 느껴지는 현재의 음색이 과거의 음색보다 더 애절함이 추가된 느낌을 갖는다. 이렇듯 본래 느린 템포의 전통 발라드곡으로 데뷔했던 만큼, 발라드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템포를 가리지 않는 올라운드라는 것을 증명하며 발라드 여왕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JTBC <히든싱어> 이수영편에 등장했던 도전자들이 비슷하게 모창을했다. SBS <스타킹> 출연 당시 화제가 되었던 남고생 팬인 김재선 씨는 어느덧 예비역이 된 상태로 참가자로서 등장해 3위에 올랐으며, 10년지기 친구 이기찬은 물론이고 이수영 본인조차 놀랄 만큼 비슷한 보이스컬러를 보인 참가자도 있었다.[79]
7.2. 외모와 코디
4.5집을 발매한 이후 5집 발매 전에 치아 교정을 했다. 덧니가 사라지고 광대가 좀 들어갔다. 외모로서 전성기로 <덩그러니> 활동기나 후속곡인 <여전히 입술을 깨물죠> 활동기 때를 꼽는 팬들이 꽤 있다. 아니면 단발+미니스커트 입고 방송에 출연했던 8집이다.사실 긴 머리나 짧은 머리나 다 잘 어울리는 편. 정규음반을 발매할 때마다 헤어컬러를 바꿨는데,[80] 뭘 하든 다 잘 어울린다. 2012-2013년 사이랑 그 이후 계속 헤어 컬러를 바꾸고 있다. 아이돌이나 하는 투톤염색, 퍼플, 다시 까만색이다.
8집 이전까지 지나치게 보수적인 코디로 인해 몸매의 장점이 크게 묻혀 있었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코디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다리가 특히 예쁘다는 것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눈이 커다랗고 입술이 얇은데다 얼굴선도 가늘어 그야말로 선하고 청순하고 참한 느낌. 소속사의 언플과 이런 생김새가 맞물려 전성기에는 중장년층의 호응도가 상당했었다. 연예인 아니랄까봐 실물이 훨씬 예쁘다. 실물 후기에는 '연예인은 연예인이다', '얼굴 조막만 하다'는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5집 당시에는 '실물은 너무 예쁜데 화면만 보면 늘 달덩이가 떠 있어서 코디들이 한숨쉰다'는 기사가 난 적도 있다. 단, 스모키 메이크업은 안 어울리는데, 몇년전만 해도 무대에서 스모키를 자주 선보이고는 했다.[81]
8. 인간 관계
1979년 4월 12일생으로 79클럽[82]의 멤버이자 방송인 박경림과는 매우 절친한 친구다.[83] 박경림 외에 가수로는 장나라[84], 별, 바다[85], 이효리[86]와 친하다고 한다. 배우로는 김유미, 서민정과 친분이 있는데 이 중 김유미는 이수영이 문정중학교를 재학할 시절에 같이 다녔던 동창이라고 한다.9. 방송 및 예능 출연
전성기에는 짝짓기 예능이나 스타골든벨 같은 단체 게스트를 쓰는 예능이 대세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소속사의 요구인지는 몰라도 발라드의 여왕이라는 별명에 맞춰서 다소 오글거리는 여왕 말투를 콘셉트으로 잡거나, 토크쇼 등에서는 4차원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등 다른 여성게스트와 차별화되는 상당히 독특한 여왕 캐릭터로 자주 나왔다. 결혼 전후로는 예능에 출연해도 기존의 캐릭터보다는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부각된다. 물론 이수영만의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입담은 여전하며 주 특기가 연변성대모사다.[87]2015년에는 MBC FM4U의 '박경림의 2시의 데이트' 에 이기찬과 함께 고정출연을 했다. 코너명은 리즈 콘테스트로 과거의 인상적인 사건에 대해 주제를 하나 던져주고 청취자의 사연들을 특유의 리얼한 오버 연기와 경험, 개그로 승화시키는 재주를 뽐내는 코너인데 동갑내기 절친인 박경림, 이기찬, 이수영 트리오의 입담 덕분에 인기 코너로 자리잡았으며, 시시때때로 틈만 나면 서로를 디스하는 즐거움에 귀가 자주 간다.
2015년 12월에는 복면가왕 19차 경연때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으로 출연했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TV조선 알콩달콩에 진행자로서 출연한 바 있으며 2020년 1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올리브에서 슬기로운 생활을 진행하기도 했다. 2020년 슈가맨 3에서 슈가맨 자격으로 출연했을 때도 변함없는 예능감을 보여줬다.
9.1. 1 대 100
1 대 100 25회 전반전에서 1인으로 출연해 6단계까지 생존했으며(적립금 776만원, 14단계에서 최후의 2인 전원 탈락) 412회 전반전에서 1인으로 재도전을 했다. 여기서 아들이 '누가누가 잘하나'에 나가고 싶어하자 이걸 본 이수영이 아들을 우승하기 위해 꾸준히 연습을 시킨다고 말했다.이날 2단계에서 가위의 원리를 묻는 문제 보기로 '빗면, 도르래, 지렛대'가 나왔는데 2009년에 1,2,3번의 순서가 바뀐지도 모르고 정답인 3번을 고르려다 실수로 1번을 고르는 대형사고를 쳤다. 다행히도 무일푼 사태를 막기 위해 번복이 인정되어 통과할 수 있었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6단계까지 생존했다.(9단계에서 우승자 결정[88])
그 뒤 1 대 100 498회에서 절친인 박경림[89]과 같이 3차 도전을 했다. 이 날 이들은 7단계를 통과하면 100인들에게 커피를 쏜다는 약속을 했으며 8단계 1:23까지 생존하면서 약속을 지켰다. 특히 패자부활전에서는 48명 중 단 4명만 부활시킬 정도로 선방했으며 6단계에서 장나라가 전화 찬스로 도움을 줬다.(10단계에서 남은 100인 전멸, 적립금 527만원)
9.2. 나는 가수다 2
공백기 3년이 자의보다 타의가 강했음을 암시하며 '불러주는 무대가 없었다'고 밝혀 화제가 되었었다. 오프닝 쇼에서는 6집 타이틀곡인 '휠릴리'를 열창했으나 전성기 때와는 달리 목소리가 많이 탁해졌으며 너무 쉬어서 그런지 음정이나 박자도 빗나가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안타깝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90] 하지만 아이돌이나 한다는 투톤컬러 염색에 화려한 드레스로 스타일링 면에서는 화제.
그 이후 A조 경연에서 이선희의 '인연'을 선곡했는데 지나치게 떠는 바람에 음정이 심하게 불안했다. 다만, 현장의 청중들에게는 그게 오히려 감동요인이 되었던지 A조 경연 1위를 기록하여 5월의 가수전에 진출했다. 음정불안으로 인해 잠시 논란이 일었으나 음원이 워낙 잘 나와서 순위상으로도 어느 정도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의 이름값을 했다. 팬카페에서만 공개된 앵콜직캠에서는 훨씬 덜 떨고, 그래서 훨씬 안정적으로 노래 부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91] 5월의 가수전에서는 이승철의 '인연'을 선곡해서 불렀지만 반응은 약간 밋밋했다. 첫 경연과 같은 제목의 곡을 선곡한 탓이 큰 듯. 하지만 저번 무대에 비해서 많이 나아졌다는 평이 많았다. 무엇보다 첫 무대보다 훨씬 덜 떨었고 훨씬 안정적이었다. 헤어, 드레스, 힐까지 전부 퍼플로 통일한 스타일링을 선보였는데 휠릴리 때처럼 화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으나 본인에게도 노래와도 매우 잘 어울리는 코디였다.
6월의 A조 경연에서는 혜은이의 '제3 한강교'를 스윙재즈 풍의 댄스곡으로 바꾸었고 래퍼 MQ[92]가 피쳐링으로 함께 무대에 올랐으며 이수영이 직접 춤을 추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남자 댄서와 도발적인 기습 키스로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이수영의 나가수 무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쇼같은 무대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 잔의 추억' 을 부른 국카스텐에 밀렸다.
그리고 6월의 가수전에서는 김규민의 '옛이야기'를 선곡해서 불렀으며 애절한 음색으로 소화했다. 그러나 반응은 아쉬웠으며 나가수 갤러리나 나가수 2의 시청자 게시판은 아쉽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93] 그리고 일부 네티즌들은 이렇게 퀄리티 저하된 노래를 부름에도 불구하고 상위권으로 진출한 이유가 아마 문자 투표빨로 올라간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94] 그러나 '팬빨'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뭣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아직 살아있는 이수영 팬덤은 공식 팬카페 크리스탈 하나, 그것도 운영진 중심으로 몇몇이 겨우 활동할 뿐이다. 나머지 팬커뮤니티는 다 정전상태. 이수영 팬덤은 이미 2006년 이후부터 문자투표를 좌지우지할만한 규모가 아닌지 오래다.
7월 A조 경연에서 Tish Hinojosa의 'Donde Voy'를 열창했다. 자신의 음색에 잘 맞는 선곡과 이수영의 초기 스타일이던 오리엔탈 발라드의 스타일이 느껴지는 편곡으로 원곡의 애절함을 극대화한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훌륭한 스페인어 딕션을 보여주었는데 스페인어를 전공한 매니저에게 과외를 받은 결과라고 한다. 나가수에서 지금까지 선보인 무대 중에서 가장 훌륭한 무대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폭발적 무대를 보인 국카스텐과 서문탁이라는고래들 사이에 새우 등처럼 끼인 데다가 유일하게 스페인어 노래를 불러 외국인 관객들에게도 낯선 느낌을 주었다. 결국 투표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고별가수전으로 떨어졌다.
고별가수전에서는 그 나카시마 미카가 원곡이자 박효신의 리메이크 곡인 '눈의 꽃'을 선곡해서 불렀는데 한여름에 겨울 노래, 이수영식 발라드 스타일이 원곡보다 아쉽다는 평을 받았다. 정인 다음의 무대라서 그런지 결국 6위를 차지하면서 아쉽게도 떨어졌다.
나는 가수다 2에서 부른 노래 | ||
경연 | 노래 | 순위 |
오프닝쇼(선호도 조사) | 휠릴리 | |
5월 A조 | 인연 - 이선희 | 1위 |
5월의 가수전 | 인연 - 이승철 | |
6월 A조 | 제3 한강교 - 혜은이 | 상위권 |
6월의 가수전 | 옛이야기 - 김규민 | |
7월 A조 | Donde Voy - Tish Hinohosa | 하위권 |
7월 고별가수전 | 눈의 꽃 - 박효신 | 고별가수 |
10. 팬덤
정식 팬클럽 이름은 '크리스탈' 이고 풍선 색깔은 분홍색이다. 팬클럽으로는 이사사(이수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와 크리스탈이 있었으나 공식 팬카페 크리스탈로의 통합 작업이 진행 중이다. 여자 솔로가수에 데뷔 15년차인데도 여전히 팬클럽이 꾸준하게 공방 다니고 조공 다닌다. 데뷔 13주년 기념 서포트팬 커뮤니티들은 2003-2004년까지는 상당한 화력을 자랑했으나 이후 가수 본인이 부침을 겪게 되는 것과 함께 운영진들의 지역과 연령이 묘하게 걸리는 바람에 침체를 막지 못했다.[95]
11. 수상 경력
11.1. 시상식
연도 | 수상 내역 |
1994년 |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장기자랑 장원 |
2002년 | 제17회 골든 디스크상 본상 KBS 가요대상 본상 SBS 가요대전 본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본상 코리안뮤직어워드 본상 M.net・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발라드음악상 |
2003년 | 제18회 골든 디스크상 본상 KBS 가요대상 본상 SBS 가요대전 본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10대 가수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인기가수상(대상) 코리안뮤직어워드 올해의앨범상 M.net・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여자가수상 서울가요대상 본상 |
2004년 | 대한민국 영상대전 가수 부문 포토제닉상 제19회 골든디스크 대상[96] SBS 가요대전 본상, 프로듀서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인기가수상(대상)[97] M.net・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여자가수상 서울가요대상 본상 |
2007년 | 모바일연예대상 여자가수상 |
11.2. 가요 프로그램 1위
총 17회 1위 수상.연도 | 곡명 | 수상 | 비고 |
2002년 | 라라라 | 10월 20일 SBS 인기가요 | 첫 1위 |
10월 28일 MBC 음악캠프 | 1위 | ||
2003년 | 빚 | 1월 25일 MBC 음악캠프 | 1위 |
굿바이 | 3월 1일 MBC 음악캠프 | 1위 | |
3월 8일 MBC 음악캠프 | 1위 | ||
3월 9일 SBS 인기가요 | 뮤티즌송 | ||
3월 15일 MBC 음악캠프 | 1위 | ||
3월 21일 m.net SHOWKING m | 1위 | ||
덩그러니 | 10월 11일 MBC 음악캠프 | 1위 | |
10월 18일 MBC 음악캠프 | 1위 | ||
10월 25일 MBC 음악캠프 | 1위 | ||
2004년 | 휠릴리 | 10월 9일 MBC 음악캠프 | 1위 |
10월 21일 엠카운트다운 | 1위 | ||
10월 23일 MBC 음악캠프 | 1위 | ||
10월 30일 MBC 음악캠프 | 1위 | ||
11월 6일 MBC 음악캠프 | 1위 | ||
2006년 | Grace | 2월 26일 SBS 인기가요 | 뮤티즌송 |
3월 5일 SBS 인기가요 | 뮤티즌송 |
12. 여담
-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데 다만 육류, 특히 햄 종류를 좀 더 좋아하는 듯하다. 깨작거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한입 가득 우물거리지도 않아서 '복스럽게 잘 먹는다'. 2000년대 중반까지 유지했던 참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요리 실력은 평범한 수준이고, 특출나게 뛰어난 편은 아닌거 같다. [98]
- 기계치다. 2집 당시 공식 홈페이지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가 리젠과 함께 목록이 넘어가자 '내가 올린 글이 없어졌다'며 당황하는 글을 올렸다. 24살 때 운전면허를 딴 뒤에는 접촉사고로 눈 밑을 다치기도 했다. 2011년 8월에는 아들 발바닥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려고 했으나 실패. 이거 왜 안 되느냐고 전화기가 자길 무시한다고 난리를 치다 다음날 겨우 성공했다. 2015년부터는 트위터가 너무 복잡하다고 말하며 인스타그램으로 갈아탔다. 그런데 2016년에 업데이트 된 게시물이 마지막이다. 결국은 활동도 많이 안하고 별로 자기와는 맞지 않은 모양인지 탈퇴. 때문에 소식은 주로 소속사의 공식 SNS로 전달한다.
- 위의 것과 연결되는 이야기이긴하나 OGN의 프로인 ‘우리 아이 게임 사용 설명서’에 출연 중인데 1회 때 전형적인 부모의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현질에 관하여는 거의 노이로제급 반응을 불러일으켰을 정도. 이후 게임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아들이 게임하는데 있어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6화에서 이수영이 자신의 인생게임으로 찜한 작품이 등장하니 무려 GTA 5(…).
- 동갑내기 발라드 여가수인 양파와 은근히 라이벌 기믹이 붙여져 있다. 둘이 한창 전성기를 달릴 때 '발라드 여왕' 하면 이 두 사람이 꼭 언급되었다. 재미있는 건 이수영은 양파가 3.5집 활동을 할 때 데뷔했으니 당시 양파가 이수영의 목표였던 셈이고 양파가 소속사와의 갈등 때문에 활동하지 못할 때 이수영이 바로 치고 올라와 '발라드의 여왕' 자리를 거머쥐었으며, 양파가 2007년에 계약을 맺었던 회사가 이수영을 키웠던 팬텀 엔터테인먼트라 그 인연이 꽤 묘하다. 대신 본인들은 그런 경쟁심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하며 오히려 2007년에 백지영, 양파, 이수영 셋이서 SBS 가요대전에서 같이 무대에 서기도 했다.
- 평소 찜질방에 가는 것을 좋아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땐 지인들과 동네 찜질방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 특기는 연변사투리이다.
- 동명이인 남자가수 이수영이 소속된 팀 이름이 어니언스(=양파들)이다.
- 무대공포증과 공황장애가 있다고 한다. #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매 무대마다 안정제를 복용했는데, 안정제의 근육이완 효과가 성대 컨트롤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것이 가수로서 노래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했다고 한다. 성대 경련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99][100] 이후 오은영 박사에게 상담을 받을 정도였으니 상당히 고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좀 나아지기만 했을 뿐 아직도 있는 상태라고 한다.
[1] 동명이인의 선배 가수 이지연과 구별되기 위해 예명을 따로 지었다.[2] 네이버 프로필 기준[3] 아버지는 이수영이 초등학생 때, 어머니는 데뷔 직전에 사망했다.[4] 분당중학교 3학년 중퇴.[5] 태명은 '탕탕이'. 슈가맨 3에도 자료 화면으로 출연하기도 했다.[6] 제적을 당해서 중퇴 처리되었다.[7] 2021년 기준으로 우리들교회 집사 직분을 맡고 있다. 우리들교회는 초교파 교단인 카이캄(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에 속해 있다.[8] 2023년 5월 11일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서 밝힌 바 있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MBTI가 ENFP였는데, 최근에 또 다시 바꼈다.[9] 2015년 이후로 업데이트가 없다. 본인 트위터 계정에 '인스타그램으로 갈아탄다'며 트위터를 아예 하지 않겠다고도 했지만, 인스타그램 계정마저도 활동량이 많지 않은 관계로 드문드문 게시물을 올리다가 완전히 탈퇴를 해버려서 소용이 없게 되었다.[10] 단일 음반은 이소라가 80만 장, 왁스가 71만 장으로 더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11] 많은 돈을 번 이수영의 덕으로 클럽 등에서 여성들을 꼬시다가 소동을 일으키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중학교를 중퇴할때도 이수영이 연예인인 것을 빌미로 친구 한 명을 꼬셔 같이 중퇴시켰고 그 친구의 부모님과 친척들과 큰 소동이 일어났었다.[12] 당시 이수영은 부모가 둘 다 사망하면서 이재헌은 빌라 반지하에 살정도로 가난에 떨었었고 모종의 이유로 가수가되어 소녀가장 가수로 동정심을 받는 사회적 약자중에 약자이면서도 학교폭력을 일삼은지라 학생들 사이에서 더 지탄되었었고 문제는 이수영도 숨기기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13] 이수영이 감성시대를 맡기 바로 직전엔 이주노의 뮤직토크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2시~2시 슬롯의 라디오 프로그램은 전반적으로 노래와 사연소개 위주로 진행한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어찌 보면 12시~2시 슬롯에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프로그램을 자리잡게 한 장본인이 이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수영의 후임 DJ인 UN 최정원이 다시 잔잔한 컨셉을 시도했으나 그의 후임으로 박경림이 오면서부터 분위기가 다시 뒤바뀌게 되는데..[14] 비디오 제작사 측의 독단적 행위라고 한다.[15] 4집-라라라, 5집-덩그러니, 6집-휠릴리였다. 또한 이 후렴구들은 그대로 곡의 제목으로 사용되었다. 7집-그레이스에서는 특이하게 '라랄라를랄라라' 하는 유음구가 요들송으로 후렴구에 사용되었다.[16] 이효리의 가십성 기사를 쏟아내는 연예기자들에게 '이효리 라이벌'에 대한 수요가 있었던 것과 맞물리기도 했다.[17] 그리고 5집은 이제까지 계속해서 이수영의 프로듀서로 강한 시너지 효과를 냈던 MGR과의 마지막 작업이었다. MGR의 동양풍 스타일이 유일하게 히트할 수 있었던 데에는 주로 그가 작곡한 노래들 가운데 절반 이상의 곡을 이수영이 보컬을 맡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정작 이수영은 오리엔탈 발라드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18] 이수영은 평소 안경쓰기를 싫어해서 늘 콘텍트 렌즈를 꼈는데 이 당시 엄청난 스케줄 때문에 평소 안 좋았던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주치의가 이수영에게 계속 이렇게 활동하면 평생 안경밖에 못 쓰거나 잘못하면 실명의 위험까지 있다고 경고했다고 한다.[19] 이 때가 이가엔터가 이수영을 가장 독하게 굴리고, 돌리던 시절이었다. 12월 28일 SBS가요대전 리허설 당시 실신한 이수영을 안마 30분만으로 그대로 무대에 올렸다. 5집 라이브 중 제일 못 했을 때가 이 때였다. 영상을 보면 목에 핏대가 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20] 당시 MBC가 10대가수 가요제의 수상 기준을 명확한 수치에 따랐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음반판매량 비중이 가장 컸던 이 채점표에서 이수영은 음반 판매량에서 이효리를 따돌렸다.[21] 이 때 하도 울어서 이오열이란 별명이 붙었으며, 시상식 이후 일주일 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효리가 통곡하느라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는 이수영을 붙들고 대신 수상 소감을 해 주기도 했다.[22] 1위는 서태지 7집 <Issue>. 그런데 3위가 이수영 6집 <the color's of my life>다.[23] 해당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배우는 당시 아역배우였던 정채은으로 CF모델로 많이 활동했다.[24] 성공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식의 기사가 나갔고 아듀 콘서트까지 했다. 물론 이가의 무리수. 본인은 여기에 별 미련이 없는 듯 보인다.[25] 사실상 수익을 내는 소속 연예인이 이수영 한 사람밖에 없던 이가엔터가 이수영 등골 빨아 회사 키워 팬텀 엔터테인먼트로 변신한 게 이때다.[26] 조성모가 2001년 말 GM기획과 계약이 끝나고 2002년에 정규 5집을 내려던 찰나 GM에서 무단으로 베스트 앨범을 발표하여, 결국 정규 5집이 2003년 초로 미뤄진 것과 똑같다.[27] 케이블에서는 MMF 때 한 번 입었다고 한다.[28] 해바라기가 발표한 동명의 곡과는 다른 곡이다.[29] 이수영은 이지훈의 음반에서 이지훈 신혜성과 함께 이 곡을 녹음한 적이 있다.[30] 이수영 본인은 원래 개그프로를 즐겨 보며, 스스로를 '웃긴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31] 그래도 멜론 월간 차트에 10위권 안에 드는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다.[32] 이수영은 고교시절 분당중앙고 연극부 창단멤버였다.[33] 결혼 후의 임신이 이유였다. 나중에 SBS GO Show에서 설명하기로는 입덧이 너무 심해 음악 나가는 사이에 토하고 돌아와 진행했다고 한다.[34] SBS <GO Show>에서 털어놓은 내용을 감안하면 무대에 설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35] 첫번째 앨범은 5.5집 클래식[36] 대신 유세윤이 짤없이 퍼부어주었다.[37] 슈가송을 라라라로 선정한 이유는 이 곡 첫 1위곡이라서 한다.[38] 조윤희는 이수영의 데뷔곡인 I Believe(1999) 뮤직비디오에 주연으로 나오면서 연예계에 데뷔했고, 한지혜는 슈퍼모델 출신이지만 라라라(2002) 뮤직비디오에 조연급으로 나오면서 연예계에 데뷔했다. 둘 모두 이 무렵에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 출연을 병행했는데 한지혜가 조윤희보다는 드라마 쪽에서 조금 더 빨리 반응이 오면서 훨씬 빨리 스타덤에 오르게 됐다.[39] 고등학교 밴드부 멤버들의 이야기로서 멤버들 중 한 명인 김민선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밴드부 동창들이 모여 추억을 되돌아보는 평범한 스토리의 뮤직비디오. 당시 무척이나 유행하던 킥보드를 타는 이정진의 모습이나 인터넷 영상 통화를 통해 해외에 있어 오지 못하는 친구들이 원격으로 밴드 음악을 연주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인 뮤직비디오다. 참고로 뮤직비디오에 삽입된 노래의 버전은 원곡이 아닌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재편곡된 버전이다.[40] 이수영 본인이 카메오로 직접 짤막하게 출연한다. 하얀 앞치마를 입고 머리 탈색한 빵집 아가씨가 이수영. 이수영 본인은 뮤비 주연을 원했으나 이 한 번의 등장 이후 출연조차 못 해서 이후 두고두고 언급했다.[41] <이연걸의 보디가드>, <인어전설>, <정전자>, <백발마녀전2> 등에 출연한 홍콩 여배우. 같이 연기한 신현준과 2년간 사귀어왔고 신현준의 강력 추천으로 뮤직비디오에도 캐스팅 되었다는 스캔들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신현준의 공식 인터뷰를 통해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 이 스캔들의 진원지는 바로 국내 스포츠신문 기자들의 소설이었다. 신문 한부라도 더 팔기 위해 고의로 스캔들을 낸 것. 그러나 1년도 안되어 신현준은 배우 인생 최고의 스캔들로 나락에 떨어지고야 만다.[42] 2000년 말 발라드 컴필레이션 앨범 이미연의 '연가'가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2001년 당시 이수영의 소속사 이가기획에서 내놓은 또 다른 컴필레이션 앨범에 들어간 리메이크곡이다. 소속 가수 이수영을 필두로 타이틀곡을 선정하여 뮤직비디오까지 이영애를 기용하는 등 나름 '연가'에 대적하여 애를 쓴 것 같다만 '연가'의 곡 선정이나 컴필레이션 앨범으로서의 임팩트가 약했다는 평이 중론.[43] 이영애의 학창시절 모습을 연기했다.[44] 후속곡 '차라리'의 뮤직비디오는 따로 제작했으나 '그리고 사랑해' 뮤직비디오에 함께 통합되어 곡이 수록되었기도 하기에 이렇게 병기한다.[45] 홍콩 영화 <타락천사>, <동방불패>, <천녀유혼2> 등에 출연한 유명 여배우. 이수영의 뮤직비디오, 음악 CD를 감상한 후 기꺼이 캐스팅에 응했다는 후문.[46] '빚' 뮤직비디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곡이 이 노래다.[47] 영화 '여고괴담'의 뮤직비디오 버전이라 해도 될 정도로 스토리가 무척 유사하다. 다만 그 스토리의 중심이 영화처럼 성적 경쟁으로 비롯된 것이 아닌 한 남자를 바라보는 두 여인의 삼각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좀 다를 뿐이다.[48] 배경이 되는 학교는 정재영의 모교이다.[49] 이 뮤직비디오가 실질적으로 그녀의 연기 데뷔작이다. 극중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학생으로 나오는데 목 매달아 자살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50] '파이널 판타지 10'의 주제가 '素敵だね(스테키다네)'를 한국어 가사로 개사해 부른 곡이다. 당시 '파이널 판타지 10'의 음악 감독을 담당한 노부오 우에마츠는 우연히 국내 가수 중 이수영의 음성을 듣고 게임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진다고 판단해 함께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51] '파이널 판타지 10'의 남녀 주인공 유우나와 티더가 마지막 작별하는 중요 장면들이 뮤직비디오에 삽입돼 많은 게임 이용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52] 이수영과 같은 소속사이고 이미 다수의 이수영 노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배우 조윤희가 주연을 맡았다. 베스트 앨범의 뮤직비디오인 만큼 뮤직비디오 제작비는 그리 많이 들어가지 않았으며 반응도 평이했는데 이 뮤직비디오로 인해 대중에게 조윤희는 이수영 뮤직비디오 전문 배우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원래는 이수영이 직접 주연을 맡기로 하고 영상 촬영을 마쳤으나 계획이 변경되어 '그렇게라도' 뮤직비디오에서 이수영의 모습을 볼 수 있다.[53] 이수영 본인의 영상이 들어간 최초의 뮤직비디오. 사실 위의 곡 Goodbye의 뮤직비디오에 조윤희 배역을 이수영이 직접 하기로 하였으나 계획이 변경되어 이수영의 앨범 재킷 촬영 및 음반 녹음 작업을 기록한 영상들을 편집하여 이 곡의 뮤직비디오로 제작하게 되었다.[54] 곡이 나오기 6개월 전에 이미 시나리오가 나와버렸음에도 촬영을 진행하여 부분부분마다 곡을 넣은 것이 꽤 잘 맞아 들어간 우연치고는 정말 작품성이 뛰어난 뮤직비디오가 되었다. 기획한 이준형 감독도 이런 좋은 결과물에 자신도 놀란듯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55] 이 뮤직비디오에 고수와 함께 출연한 것을 계기로 서로 이성의 감정을 느끼며 결국 공식 연예인 커플이 되었다. 고수가 군입대한 2006년에 결별했다.[56] 실제 뮤직비디오 촬영시 정식으로 배역도 받고 촬영에 임했지만 몽땅 통편집되어 한 컷도 나오지 못했다. 이후 뉴질랜드 올로케한 6집 타이틀곡 '휠릴리' 뮤직비디오에서 주연을 차지했다.[57] 후속곡으로 점쳐지던 곡이었지만 영화 장면 삽입 뮤직비디오로만 선보이게 되었다.[58] 이수영 뮤직비디오 단골 전문 배우 조윤희의 영화 데뷔작이라 특별히 기획사에서 만들어준 것 같다.[59] 아역 연기자를 캐스팅한 최초의 이수영 뮤직비디오.[60] 뉴질랜드 올로케로 돈을 들인 뮤비.[61] 이 음반의 뮤직비디오는 순전히 2005년 데뷔한 가수 아이비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그녀는 <꽃들은 지고>에서 여자 주연배역을 맡았고 그 해 그녀가 데뷔하였을 때 그녀는 '제2의 이수영' 등으로 소개되었으며 데뷔 경력에는 '이수영 뮤직비디오 출연'이 기입되었다.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삿포로의 사호로에서 설원을 배경으로 촬영했다.[62] 이 앨범의 두번째 곡 <Forever You>의 뮤직비디오는 애초에 이동건, 한지혜 주연으로 제작될 예정이었고 대대적으로 언론을 통해 사실을 홍보했다. 이는 이가기획이 이수영과의 계약 연장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나 이수영이 재계약을 거부함에 따라 조용히 뮤직비디오 제작은 중단되었다.[63] 이수영이 소속사를 옮기면서 전 소속사가 이수영과 협의도 없이 무단으로 발매한 스페셜 앨범. 이 앨범 때문에 2005년에 예정된 이수영의 정규 7집 발매가 2006년으로 늦춰지게 되었다. 뮤직비디오의 경우 하지원이 출연하였다.[64] 영화 '왕의 남자'가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기 훨씬 전부터 이준기를 주연으로 전격 캐스팅하여 제작한 것으로 화제가 됐다. 사실 타이틀곡 Grace의 대중성도 뛰어났고 뮤직비디오 스토리도 신선하고 탄탄한 구성이었지만 의도치 않게 스타 배우의 효과를 톡톡히 잘 받아 더욱 대박을 친 뮤직비디오다.[65] 모 대학교 열기구 동아리 대표. 열기구 비행을 위해 본인의 취미였던 검도 시범을 보이며 모금 활동을 하는데 연인 정희정이 보여서 손 인사를 해주었다. 그런데 하필 그녀 바로 앞에 서있던 전혀 모르는 사람인 민서현이 자기에게 윙크하는 줄 오해하고 이준기를 좋아하게 된다. 민서현의 고백과 애틋한 마음에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정희정을 절대로 떠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고 결국 그녀의 애틋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연인 정희정과 상의 후에 자신이 애써 기획한 열기구 비행에 연인 정희정이 아닌 민서현과 함께하는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해주는 선에서 민서현과의 관계를 마무리 짓는다.[66] 숨겨진 사연으로는 학교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다 폭발사고로 인해 두 눈의 시력을 영구 상실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상당한 상실감에 빠지나 이를 무척이나 안타까워한 그의 연인 정희정이 이준기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자신의 한쪽 안구를 이준기에게 이식해주는 과감한 희생을 감행했다는 것. 그로 인해 이준기는 정희정을 평생의 인연으로 생각하고 헌신적으로 사랑한다. 안구 이식 이후로 검도 연습에 더욱 매달리는 이유는 한쪽 눈만 시력을 유지해 균형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 첫 장면에서 검도 시범시 별로 어려운 시범이 아님에도 그가 상당히 긴장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67] 뮤직비디오의 히로인으로서 우연한 이준기의 제스쳐로 인한 오해로 검도 시범에서 매력을 느끼던 이준기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여인. 이준기를 좋아하는 이유만으로 전혀 관심도 없었음에도 이준기가 몸 담던 '열기구 동아리'에 무턱대고 가입을 하고 이준기의 취미인 검도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준기에게는 연인 정희정이 있었고 자신이 이준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정희정에게 직접적으로 헤어지라고 너무나 당당하게 요구하는 뻔뻔한 구석도 있지만 어찌 보면 그렇게 때묻지 않은 성격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희정으로부터 이준기와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서는 마음을 정리하게 된다.[68] 이준기의 연인. 폭발 사고로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된 이준기의 괴로워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결국 본인의 안구를 기증하기까지 하는 진정한 순애보 캐릭터. 자신의 안구를 이준기에게 이식한 것 때문인지 그녀가 눈물을 흘리면 이준기가 이식받은 쪽의 눈에서도 자동적으로 눈물을 흘리는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이준기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면 연인인 정희정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 알아채고 바로 그녀에게 달려간다.[69]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햄버거' 역으로 출연한 배우. 뮤직비디오에서 주인공인 이준기의 동아리 친구 역할로 등장하고 재밌는 역할로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이준기와 정희정의 가슴 아픈 사연과 운명적인 비밀을 잘 알고 있어 이준기가 한쪽 눈에서 눈물을 흘릴 때 아무도 모르게 이준기에게 몰래 제스쳐를 취하기도 한다.[70] 박효준과 함께 출연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치타' 역으로 출연한 배우. 박효준과 마찬가지로 뮤직비디오에서 주인공 이준기의 동아리 친구로 등장하고 이준기의 비밀스런 사연 역시 안다.[71] 이수영의 앨범 자켓 촬영 장면을 편집한 두번째 뮤직비디오.[72] 신혜성/린의 듀엣곡 '사랑... 후에' 와 함께 이 앨범의 20분짜리 뮤직드라마로 제작될 뮤직비디오에 낙점되었다.[73] 드라마타이즈 형식이긴 한데 이미지 중심으로 스토리가 불분명한 난해한 느낌의 뮤직비디오다. 김유미의 경우 이수영과 중학교 동창 친분으로 캐스팅 되었다.[74]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어머니의 화목하지 않은 결혼 생활 때문에 어머니를 더 이해하고 많이 의지하게 된 듯 하다. 생전 이수영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전의 남편(아버지)과는 사이가 매우 나빴다고 한다. 어머니는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동시에 개신교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냈는데, 반대로 남편은 그 종교를 믿지 않았고 매번 남편이 불륜을 저지른 이유 때문에 싸우는 경우가 잦았다고 하며, 심지어 남편에게 폭행까지 당해서 고된 시집살이를 했다. 이로 인해 이수영의 어머니는 전 남편이 죽고 난 후 재혼을 성급하게 결심하여 새로운 남편과 재혼하였으며, 이후 개신교에서 불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75] 압류딱지. 2006년 즈음 리쿠드 엔터테인먼트와 서로 10억짜리 손배소를 제기하면서 일어났던 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2008년에는 이수영의 고모가 경영하던 회사인 해브엔터테인먼트의 파산으로 인해 이수영의 자택에 압류딱지가 붙은 적도 있었다. 이 경우 이수영의 고모가 이수영의 명의로 대출을 받다가 전액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회사 자체에 부도가 나면서 결국에는 그런 일이 생기고 만 것이다.[76] 연예인이지만 타 연예인에 비해 그다지 인맥이 넓은 편은 아니다.[77] 기독교방송에서 제작·송출하는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같은 채널의 다른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방송 중 종교적인 색채는 거의 없다. 다만 일요일 방송의 경우 '주일'이라고 표현하거나 교회 오전예배를 다녀온 청취자들의 사연에 맞받아치는 이야기를 종종 하기는 한다.[78] 단, 2집에서부터 이 창법을 완전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2집 수록곡들 가운데 <쟁탈>은 가성보다 진성에 가까운 창법이 주를 이루는 노래이며 수록된 노래들 중에서 <Kiss>는 파트의 대부분에서 진성창법을 소화하는 곡이다. 또한 수록곡들 중 하나인 <come to me>는 후렴구로 가는 부분 및 후렴구에서 진성 창법이 사용되는 곡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해당 앨범의 수록곡 <참아보려해>는 브릿지 부분에서 살짝 진성 창법이 쓰이는 곡이다.[79] 실제로 팬들이 '남고생 팬' 김재선 씨에 감탄하는 점은 목소리보다는 제스쳐다.[80] 1집은 까만 긴 생머리, 2집은 브릿지 넣고 탈색한 긴 생머리, 3집은 까만 단발, 4집은 어중간한 길이의 펌헤어, 5집은 갈색+긴생머리, 6집은 까만 긴 생머리(+앞머리) 7집은 앞머리 없이 5:5 가르마의 펌헤어 8집은 갈색 숏커트, 9집은 와인색에 긴 웨이브펌, 10집은 보라색으로 염색했다.[81] 원래 스모키 메이크업 자체가 눈이 크고 동그란 사람에게는 안 어울린다. 스모키 자제가 작은 눈을 보완해주는 효과가 있는 화장법이기 때문이다.[82] 1979년생 연예인들의 친목 모임으로 강타, 이수영, 성시경, 이기찬, 안재모, 이효리 등이 속해 있다.[83] 이수영이 데뷔 전 TV에서 박경림을 보고 반드시 만나서 친해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심지어 만남을 몰래 주선했다고 한다. 박경림은 남자 연예인이 대시하는 줄 알고 기대하며 나갔다가 굉장히 실망했다고 한다. 박경림은 이런 만남이 매우 특이한 방법이라면서 방송국에서 만나면 될걸 왜 굳이 호프집에서 만나자 했냐고 황당해했단다.[84] 슈가맨 3 출연 당시 직접 제보하였다. 참고로 장나라 역시 시즌 2때 슈가맨으로 나온 바 있었다.[85] 바다는 이수영과 함께 박경림의 마지막 처녀파티를 함께 했다는 잡지 화보를 찍은 적이 있다. 장나라의 컴백 당시 박경림과 이수영이 자신들의 그 당시 나이가 서른한살이란 이유로 '써리원'(31)이랍시고 2NE1을 패러디해 유희열의 스케치북 무대에 올라간 적이 있다. 별은 이수영이 라디오 DJ였던 2003년 당시 MBC 구내식당에서 같은 식판에 밥 먹는 영상이 예능프로에 방송된 적이 있다.[86] 방송상으로 데뷔초부터 2008년까지 같은 79클럽 멤버로써 절친으로 지내다가 그 이후로 같이 방송에 나오거나 서로를 언급하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성시경을 두고 삼각관계가 되어 멀어졌다는 루머도 있었지만 사실 무근이다. 어떤 이유로 관계가 2000년대 초보다 소홀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2020년 방송에서 2003년 대상 때 이야기를 하며 '이효리'와 절친이었다며, 참 다정하고 고마운 친구라고 얘기했다.[87] 실은 말이 연변 성대모사지, 전체적인 어투는 북한말에 가깝다. 아마 이수영이 이 개인기를 딱 선보일 시점이 예전 개그콘서트에서 김지선과 강성범이 했던 연변 성대모사의 유행이 한참 겹치던 시기라서 그렇게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한편 이 특기에 대해서 조선족을 희화화하는 의도로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88] 참고로 최후의 1인은 14대 우승자인 장진영 편에서 1인의 답 도우미로 뽑힌 사람이다.[89] 참고로 박경림은 197회에 1인으로 나와 8단계 1:1 대결을 벌인 전적이 있으며, 375회 전반전에서는 6단계에서 우승자가 결정되는 어려운 난도로 인해 4단계를 넘지 못했다.[90] SBS <GO Show>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임신 6개월까지 지독한 입덧(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정도면 진짜 지독한 거다)에 시달렸으며, 이로 인해 우울증도 심했다고 한다. 나가수 복귀 전 보컬 트레이닝을 처음부터 다 다시 받았으며, 이때 스스로 '부끄러워서 노래를 못 하겠다'고 생각했을 지경이라고 한다. 단순히 '오래 쉬어서'보다는 몸이 심하게 축난 영향이 더 클 듯. 그러나 공백기 이전과 비교하면 고음부에서 훨씬 힘 붙은 음색을 확인할 수 있다.[91] 궁금하면 공식 팬카페 가입해서 찾아봐도 좋다.[92] 8집의 <twenty nine>에서 가사가 들어간 랩을 피쳐링해줬던 래퍼다.[93] 김규민의 원곡은 남성적인 강인함이 있어 '갈테야 그 하늘가 나를 추억하는 그대'라는 가사가 '지구 끝까지라도 연인을 찾아갈 것 같은' 분위기였던데 비해 이수영의 해석은 지고지순한 여성성이 강해서 연인을 따라 죽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런 곡 해석상의 차이도 평가에 영향을 미친 듯 하다. 근데 사실 같은 가사라도 여성화자로 오면 따라 죽겠다는 해석이 전통적인 해석 아닌가....?[94] 특히 적우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일부분은 적우보다 못한 무대였다고 혹평까지 나온 걸 보면 알 수 있다.[95] 최대 팬 카페인 이사사의 전성기 운영진들은 부산 지역 남고생들이었다. 그런 탓으로 서울 지역에 집중된 팬들을 오프라인에서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었으며, 이수영이 소속사 문제로 부침을 겪던 시기부터 하나 둘 입시와 군대 문제로 증발했다.[96] 여자 가수가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한 것은 주현미 이후 사상 두 번째이며, 여자 발라드 가수로서는 사상 최초이다.[97] 2년 연속 수상. 이때 당시에도 마스카라가 번지도록 울었다. 한편 이 상을 시상한 사람은 당시 연예계 복귀선언을 했던 고현정이었다.[98] MBC <러브하우스> 출연 당시 자신있는 요리로 '김치찌개'를 언급했는데, 김치찌개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요리가 아니다.[99] 나가수2 출연 당시에도 공황 발작이 발생했었다고 한다.[100] 덩그러니는 콘서트에서 팬들의 떼창 덕분에 극복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