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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사고

런던 아파트 화재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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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
Grenfell Tower fire
파일:0002726005_001_20170614115508603.jpg
<colbgcolor=#bc002d> 발생일 2017년 6월 14일
발생 위치 잉글랜드 런던 켄싱턴-첼시 왕립구 노스켄싱턴 래티머 로드
그렌펠 타워

[[영국|]][[틀:국기|]][[틀:국기|]]
유형 화재
인명피해 사망 72명
실종 1명
부상 74명

1. 개요2. 그렌펠 타워3. 피해
3.1. 확인된 사망자 명단
4. 문제점
4.1. 4층 주인의 미숙한 대처4.2. 안전시설 미비가 부른 재앙4.3. 이게 다 무슬림 때문이라고?
5. 반응
5.1. 테레사 메이 총리5.2. 정치권5.3. 언론5.4. 시민들5.5. 유명인
6. 기타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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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downloadfile-252.jpg
Public cuts bring price to pay somewhere. 언론 인터뷰
공공비 지출 삭감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 당수
"같은 켄싱턴 지역이라도 부자들이 많이 사는 노팅힐 아파트라면 이런 사고가 발생했겠느냐"
— 그린펠타워 입주민 #
2017년 6월 14일 새벽 1시경 영국 런던 서부 켄싱턴-첼시 왕립구 노스켄싱턴의 래티머 로드에 있는 24층짜리 아파트 그렌펠 타워(Grenfell Tower)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이다. 이 화재는 4층[1]부터 시작되어 24층까지 전소(全燒)하였으며 발화 원인은 냉장고[2] 폭발.

소방차 40여대와 소방관 200명을 투입하여 진화를 시도하였으나 아파트 진입로가 1개뿐인 데다 건물 구조가 복잡하여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2. 그렌펠 타워

파일:external/www.thesun.co.uk/rb-composite-grenfell-flats2.jpg

왼쪽이 리모델링 전, 오른쪽은 리모델링 후. 출처는 더 선(The Sun)

그렌펠 타워는 1974년에 완공된 런던시의 구청 소유 고층 임대 아파트[3]로, 공사 6년 전에 있었던 로넌 포인트 붕괴 사고 때문에 콘크리트로 붕괴 위험을 없앤 채 지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건물이 매우 노후해 겉으로 드러난 콘크리트를 알루미늄 패널 등으로 가리는 등의 리모델링을 2016년까지 거쳤으나 리모델링 이후에도 스프링클러조차 없었다. 대다수의 주민들은 저소득층과 이민자들이었다. 밑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는데, 그렌펠 타워 주민뿐 아니라 주변 주민들도 많이 이용하던 시설이었고 그만큼 그렌펠 타워에도 지인이 많았다.

영국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구 중 하나인 켄싱턴-첼시 왕립구 소재이면서도 그렌펠 타워 주변은 영국에서 경제적으로 하위 10%에 드는 가장 낙후한 지역 중 하나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타워팰리스구룡마을이 동시에 위치하는 강남구과 비슷한 지역이었다.[4] 켄싱턴 남부와 북부의 차이는 거의 다른 나라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크며, 홀란드 파크 역과 라드브로크 그로브 역 사이의 구역은 런던 한복판임에도 혐오시설인 택배 회사의 물류창고가 위치하며 범죄율도 평균보다 높은 등 부유한 구역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굉장히 뒤쳐진 동네에 속한다.[5]

24층 아파트에는 120가구, 400~60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시간도 많은 사람들이 수면을 취할 새벽 1시라서 인명 피해가 컸다.

파일:그렌펠 타워 단면.jpg

그렌펠 타워 내부 구조는 각 층마다 세대 6곳이 있었다. 이 중 침실이 1곳인 세대가 2곳, 침실이 2곳인 세대가 4곳씩 있고 이게 메인 빌딩의 엘레베이터와 계단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다. 각 층의 집 벽과 문은 전부 방화 처리가 되어 있어 불을 막을 수 있었다. 엘레베이터와 계단실 또한 불을 막을 수 있게 설계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설이 건물에 단 1개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 건물로 들어가고 나가는 입출구 또한 단 1곳밖에 없는 데다 그마저도 종종 입구 주변에 차를 세우는 경우가 많아 위기 상황에 대피가 매우 어려웠다.

3. 피해

사람들이 자고 있을 시간인 새벽 시간대에 발생하였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언론에서도 400명 실종설을 진지하게 말할 정도였다. 사고 발생 당시 아파트 주변에 살고 있던 무슬림계 주민들이 아파트 주민 몇몇을 구조했으며 어떤 이가 각 호의 문을 두들겨 대피를 도왔다.[6] 몇몇 가족들은 빠져나갈 수 없단 생각에 가족 중 어린이를 밑의 사람이 받아주길 바라는 심정으로 창 밖으로 내려보내기도 했다.

신고를 받고 소방관 250명이 출동했다. 하지만 건물 전체가 순식간에 타올랐고 창문과 배기구 등을 통해 안으로 유독가스가 계속해서 들어왔다. 새벽 2시 30분, 심각한 상황을 깨달은 소방관은 "건물 내에 남아 있으라는 규칙은 무의미하다. 지금 당장 들어가서 구조해야 한다." 면서 구조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직 건물 내엔 114명이 남아 있었다. 오전 6시가 되고 불이 어느 정도 진정됐을 때 소방관이 들어가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조했다. 그러나 피해는 엄청났다.

약 120여 가구가 피해를 입고 말았으며 집계된 부상자 수는 약 80여명으로 근처 6개 병원으로 분산되어 치료를 받았고 이 중 20명은 위독해졌다. 사망자는 총 72명. 이 사고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 지상에서 일어난 화재 중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화재로 기록됐다.[7]

부상자 중 10명은 직접 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밖에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인근 주민 수십 명이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파일:00654428900676.png

사건 초기에는 타워 내부에 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해졌으나, 이후 조사를 거쳐 화재 당시 타워 내부에 있는 인원은 300여명 정도로 확인되었다.[8] 총 사망자 수는 72명으로 집계되었다.

사진 출처

3.1. 확인된 사망자 명단

성이나 이름을 보면 알다시피 사망자 대부분이 아랍계, 아프리카계 출신이며 몇몇 일가들이 사망한 것을 알 수 있다. 사망자 중 10명은 계단을 통해 대피하다가 사망했다. 4명은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가 사망했다.

4. 문제점

저가의 가연성 자재, 안전 설비 부족, 대피 지침 오류, 첫 발견자의 미숙한 대응 등등의 요인이 걷잡을 수 없이 대형사고로 커졌다. 선진국에서 일어나기에는 참으로 황당무계한 일로, 그간 영국 보수당이 추진했던 규제 완화정책의 문제점들이 총집한 사고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게다가 사고 이후 영국 총리테레사 메이가 지나치게 안일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수당 정권은 미숙한 사후 대처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받았다.

4.1. 4층 주인의 미숙한 대처

더 선의 기사에서는 화재의 원인인 4층 동쪽의 집 주인이 짐을 다 싸고 난 후에서야 경찰과 소방서에 신고하고 떠났다고 밝혀서 논란이 되었다. 실제로 그가 작은 불씨를 초기 진압도 하지 않고 대피한 점이 대형 화재 참사가 된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의 이웃의 증언에 따르면 이미 짐을 싸고 난 후에야 그의 집 문을 두들겨 그를 불러낸 후에 바로 도망쳤다는 듯.

이게 사실이라면 4층 집 주인은 대재앙의 불씨를 만든 셈이다. 하지만 더 선의 조사에 따르면 이 사람은 불이 터무니없이 커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사건 이후에는 죄책감과 정신적 충격으로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실제로 4층 집 주인의 대처미비가 불씨가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에서는 이 4층집 주인이 영국판 이준석이었다고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좀 더 살펴보면 선박에서 일어나는 일에 법적 책임이 있고 사고가 난 사실을 알았음에도 도망친 이준석 선장과 아파트의 주민 중 한 명에 불과하며 화재 신고라는 최소한의 의무는 이행하고 현장에서 피한 4층 집 주인은 상황을 달리 볼 필요가 있다. 화재가 10여분 안에 건물 전체에 번질 거라는 전망은 분명 예상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위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4층 집 주인의 미숙한 대응을 불씨로 하여 아파트의 여러 문제들이 합쳐져서 일어난 비극이다. 문제점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서술한다.

4.2. 안전시설 미비가 부른 재앙

이 화재가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된 이유는 20층 이상의 고층 건물이 한 집에서 난 불길만으로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집어 삼켰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아파트빌딩에서 불이 날 경우 소방차만 제때 도착해서 진화한다면 불이 난 층과 그 위아래 층 정도를 제외하면 직접적인 화재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 층간 화재가 번지지 않도록 내열 설비를 하고 화재경보기나 스프링클러 등 자체 방화 시스템으로 불길의 확산을 막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국, 그것도 수도 런던에 위치한 이 아파트는 "불타기 쉬운 싸구려 자재를 사용했으며 화재 대비를 위한 설비가 전혀 없는 건물"이었다. 특히 영국은 런던 대화재런던 킹스 크로스 역 화재사건, 윈저궁 화재사건, 서머랜드 참사, 브래드포드 시티 구장 화재 같은 굵직굵직한 화재 사건을 여러 번 겪어 소방관련 규정이 아주 빡빡한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일차적으로 규제 완화로 인하여 건물 자체에 문제점이 많았다. 코어가 가연성 소재인 폴리에틸렌 또는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하며 리모델링 후 입혀진 외장은 ACM, 한국에서는 흔히 알루미늄 복합패널 혹은 샌드위치 패널이라고 말하는 재질이었고 이를 목재로 고정시켰다. ACM은 그 특성상 한번 불이 붙으면 활활 잘 타면서 빠르게 번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화재의 전파 속도가 빨라져 피해 규모가 커진 것이다.[10] 가디언지의 기사에서는 공사 당시에 내화인증을 받은 패널 대신 m2당 2파운드[11] 더 저렴한 해당 자재를 사용했다고 나왔다. # 미국에서는 고층건물에 사용이 금지되어 있고 저층건물에만 사용되는 자재이다. 심지어 원래는 내화성인 아연 패널을 쓰기로 주민들과 합의한 상태였는데 패널 색깔만 정하면 되는 상태에서 구의회가 그냥 바꿔 버렸다고. #[12] 결국 이러한 구조 변경 때문에 화재 당시 단 15분 만에 불이 꼭대기 까지 타오르더니 얼마 안 가 불이 옆으로 퍼져나가고 다시 아래로 퍼져나가며 건물 전체가 불타올랐다. 이미 런던에선 비슷한 화재를 겪은 적이 있었다. 2009년에 비슷하게 샌드위치 패널로 인해 불이 커지고 스프링클러가 없어 초기 진화를 하지 못해 6명이 사망한 라카날 하우스 화재 사고가 일어났다. 그럼에도 영국에선 위험성을 깨닫지 못한 채 일을 키웠다. 더군다나 이 패널 방식은 미국과 독일에선 18m 이상 높이의 건물에는 쓰지 못하도록 법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심지어 같은 영국 안의 스코틀랜드에서도 이는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아니었다. 과거 호주에서도 비슷한 사고를 겪었는데 호주 소방 당국에서 실험해 본 결과 1kg의 폴리에틸렌을 태우는 건 5.5리터의 석유를 태우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렌펠 타워 건물 전체에 있는 폴리에틸렌 양을 생각하면 그렌펠 타워는 3만리터의 석유로 둘러싸였던 셈이다.

또한 주민들은 이 아파트의 안전 설비가 거의 방치된 수준이었다고 주장했으며 주민회는 지난 20여년 동안 세입자들이 KCTMO(켄싱턴-첼시 세입자 관리기구)로부터 어떠한 화재 안전 지침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20여년 전의 오래된 지침서에는 화재시 집 안에 가만히 있으라는 내용이 있었다. 물론 세월호 참사와는 달리 "가만히 있으라" 내지는 "Stay put policy"는 영국에서 여태까지 문제없이 적용될 수 있었다. 발화한 구역에서 최소 60분, 길게는 3시간까지 화재가 격리되도록 설계 ·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생명의 위협이 없다면 각자의 구역에서 대기하며 소방관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여태까지의 프로토콜이였다. 더불어 대피 시 사용할 계단실도 단 하나인지라 대규모 대피 시 발생할 수 있는 부상 등의 위험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리모델링 후 가연성 외장재가 추가된 것이 이 지침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과 연기가 15분이라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빠른 시간만에 건물 전체로 번져 버렸다. #

더 선지에서 취재한 거주민들이 주장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연히 주민들은 계속해서 민원을 넣었지만 당국은 무시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스프링클러나 화재 알람이 작동하지 않았고, 집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했다.
"there were no sprinklers or fire alarms working - and they had been told to stay in their flats" #
스프링클러 시스템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

화재 경보기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단순히 대피가 늦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수 있다. 리모델링에 참여했던 회사의 소개에 의하면 환풍시스템이 화재 경보 시스템과 연결되어있어, 평상시 바깥 공기를 유입시키는 "환경 모드"와 계단실과 각 층 로비의 연기를 빼내는 "연기 추출 모드"를 오갈 수 있다. #

만약 화재 경보기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로비나 계단실에서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동시에[13] 바깥 공기는 계속해서 유입되었을 것이다. 이런 원리로 열을 만들며 작동하는 물건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용광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 문제인 거지 공기가 공급된 게 문제가 아니다. 만일 공기가 유입되지 않는다면 무조건 질식으로 죽게 된다. 실제로 방화설비를 보면 화재시에는 배연창이 자동으로 열려 연기를 빠져나가게 하고 스모크타워를 통해 신선한 공기를 계속 유입한다.

4.3. 이게 다 무슬림 때문이라고?

4층 냉장고 폭발이 원인이라고 밝혀졌는데도 유튜브, 인터넷 기사, SNS의 몇몇 사람들은 이슬람 혐오와 제노포비아 성향을 드러내며 무슬림 테러리스트가 냉장고에 폭탄을 넣어서 폭발시킨 범인이라는 등의 음모론을 주장했다. 심지어 "난민이라서 자기 짐도 안 챙기고 도망쳤다.", "무슬림들이 화재를 틈타 약탈과 강간을 벌였다.", 더 나아가서는 "무슬림들이 고의적으로 불을 지른 뒤, 사람들을 구해내며 자신들의 이미지를 좋게 하려고 만든 자작극이다."라는 주장을 펼치며 노골적으로 혐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지옥 같은 화재의 피해자들 상당수는 무슬림이었으며 그나마 사고의 피해를 이 정도까지 줄인 것도 전적으로 무슬림들 덕분이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라마단 기간이었는데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종교적 교리로 인해 해가 떠 있는 낮에는 금식하기 때문에 저녁을 늦게 먹고 아침을 못 먹는 걸 대비해 야식을 많이 먹으며 새벽 2시, 3시까지 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화재가 발생하자 주변 사람들에게 대피 경고를 하려고 이웃의 문을 두드리며 사람들을 열심히 깨웠다.

무슬림들의 수가 많았는데 거의 다 깨어 있었던 이들이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며 대피를 도운 덕분에 그나마 조금의 탈출자들이 생긴 것이다. 만약 라마단 기간이 아니어서 무슬림들도 잠들어 있었다면 더 많은 희생자들이 나왔을 것이 뻔했다. 거기에 그나마 사고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운 자원봉사자들도 백인들보다 아랍계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5. 반응

5.1. 테레사 메이 총리

화재 현장에서 총리 관저까지의 거리는 고작 8km다.[14] 이 정도 대형 화재 사건이면 보고를 받는 순간 성명을 내고, 관계부처[15]에 지시를 하달하거나 바로 현장에 와야 정상이다. 이렇게 조치를 취하고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봐야 대략 30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테레사 메이 총리는 화재 발생 후 10시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화재 현장에 하루나 지나서야 간 데다 자세도 삐딱하게 서서 에 손을 괸 채로 검게 불에 탄 건물을 올려다보는 것은 물론, 말끔한 특A급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 간부들의 설명만 듣고 주민들도 만나 주지도 않고 곧바로 가 버려 욕설을 시원하게 먹었다.# 네티즌들은 16시간에 걸친 화재진압 후 온 몸이 시커멓게 되어 기진맥진한 채 쉬고 있는 소방관들의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총리가 정말 만났어야 하는 사람들은 이들이었다."라고 비판했다. 또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대조되는 모습이어서 더 비판을 받았다.

이제 와서 테레사 메이 총리는 화재 관련 질문에 "필요한 도움을 주기 위해 영국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진상규명을 할 것이다." 라는 답변만 내놓았다.

테레사 메이 총리는 화재 발생 48시간이 한참 지난 뒤 St Clement's 교회에서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피해자들과 유가족, 자원봉사자 등을 최초로 만났다. 그나마도 원래는 경호 문제를 이유로 현장 방문을 회피했지만 이 문제를 언급한 바로 다음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는 바람에 허겁지겁 온 것이었다. 비록 입헌군주제 국가라 국왕에게는 상징성만 있을 뿐 아무런 실권이 없지만[16] 명목상 국가원수이자 영국의 상징인 여왕이 몸소 행차했는데 원칙상 국왕의 아랫사람인 영국 총리가 보안 문제를 운운하는 건 불충한 행동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여왕이 방문할 때엔 레인지로버 1대[17]만 대동하고 와서 여왕이 하차하기 전까진 그냥 동네 사람이겠거니 했다고 여겼다.

메이 총리는 교회에서 나오는 길에 "겁쟁이!(Coward!)", "부끄러운 줄 알아라!(Shame on YOU!)" 등의 비난을 시민들로부터 들어야 했다. 영국 소셜 미디어 등은 메이 총리의 사고 대응이 매우 미흡했다고 비판했으며 메이 총리가 "이 사고에 정부의 책임이 부분적으로 있다"고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Something terrible has happened (뭔가 비극적인 일이 생겼습니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하며 즉답을 피했다. #

상황이 이런데 메이 총리는 성공회(영국국교회) 켄터베리 대주교 저스틴 웰비를 찾아 개인 예배(Private Prayer Session)를 했다고 알려졌다. # 이를 보도한 더 선은 "신이시여 메이를 도와주소서(God help May)"란 기사 제목으로 비꼬았다.

5.2. 정치권

5.3. 언론

영국 주요 언론들도 격한 기사 문구를 통해 정부의 정책과 대처를 비판했다.

5.4. 시민들

5.5. 유명인

6. 기타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들이 심한 트라우마를 겪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훈련을 받아 왔지만 현장의 참사는 이런 훈련을 뛰어넘었다고 호소했다.

영국 정부가 화재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에게 6월 18일부터 5,500파운드(한화 795만원)를 긴급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것도 처음엔 이재민들에게 하루에 고작 10파운드(한화 14,500원)씩만 지급한 것이 알려져 거하게 욕을 먹고 부랴부랴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이라 사람들의 공분의 대상이 되었다.# 또 향후 장례비 등 추가 비용에 대해서도 지급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한편 일부 몰지각한 관광객들이 사고 현장에서 인증샷을 찍어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영국 정부에서 켄싱턴 지역의 아파트들을 구입해서 집을 잃은 주민들의 거주지를 마련하기로 했다.

화재 이후 런던 내 아파트 중 안전 기준에 미달하는 건물에서 주민들을 긴급 퇴거시켰다. 그런데 임시 거주지가 마땅치 않자 일부 주민들이 퇴거를 거부하기도 했다.

영어 위키백과의 편집자들이 인용을 거부한 찌라시로 알려진 데일리 메일에서 화재의 원인이 된 냉장고가 삼성 RS21NCNS라고 오보를 낸 적 있는데 일본 넷우익들은 좋다고 이 잘못된 사실을 퍼트리기도 했다. # 그러나 이후 미국 핫포인트사 제품이란 게 알려지자 전부 데꿀멍….

이 사고 이후 한국인에게는 박지성이 뛰었던 클럽으로 유명한 잉글랜드 EFL 챔피언십(2부 리그) 소속의 퀸즈 파크 레인저스가 9월 2일, 자선경기를 열어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레스 퍼디난드앨런 시어러가 각각 팀 퍼디난드와 팀 시어러의 주장으로 팀을 꾸려서 데미안 더프, 피터 크라우치, 트레버 싱클레어 등의 전현직 축구선수들 뿐만 아니라 유가족도 참가했다. 특히 주제 무리뉴가 팀 시어러 팀의 골키퍼로 출장해 화제를 모았고 경기는 2 대 2 동점 이후 승부차기 끝에 팀 퍼디난드가 승리를 거두었다. QPR은 수익금 전액을 그렌펠 타워 참사 수습을 위해 기부해 찬사를 받았다.

대피한 주민들은 잠시 인근 고속도로 밑에 지어진 대피소에서 지냈는데, 당시 그곳에 주민들이 남긴 글귀나 사진이 남아있다.

생존자들 상당수가 사건 6개월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생존자들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속에 자살 기도를 하기도 했다. 사고 이후 심리 상담 프로그램에 응한 사람이 330명이며 이 중 66%는 상담 치료를 받았다. #

2018년 래퍼 Stormzy가 Brit Award 공연 중 그렌펠 사고 관련해서 테레사 메이를 비난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2018년 11월에는 영국에서 10대 청소년과 장년층(!) 등 6명이 건물의 모형을 태우면서 조롱하는 영상이 SNS에 공개되는 영국판 폭식 농성 사건이 일어나 주동자들이 체포되는 등 수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이후 이 사건에 대해 그렌펠 타워 화재사고 피해보상 운동가인 모이라 새뮤얼스의 인터뷰 중 YTN 버전의 '매우 충격적이고 수치스럽습니다. 현재 사회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요.'는 사회에서 물의를 빚은 사람을 비판하는 용도로 쓰이는 소재가 되었다. #

뉴욕타임즈 기사

2022년에도 타워는 가벽에 둘러쳐진 상태로 남아 있으며 이 건물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영국 정부

10월에 지역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그렌펠 타워 관련 회의가 있었다.

BBC에서 그렌펠 타워 사건에 대한 드라마를 제작할 예정임을 밝혔다.# 그러나 해당 사건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고 관련자들은 처벌도 받지 않았는데 무슨 드라마를 만드냐며 아무리 봐줘도 다큐멘터리를 만들라고 항의를 받았으며 제작 반대 서명운동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2024년 9월 4일. 2번째 패널 결과를 발표했는데, 보고서는 제조업체의 "체계적인 부정직함"과 화재로 이어진 당시 정부의 실패를 지적했다.#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역대 영국의 대형 사고 및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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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colcolor=#000>사망사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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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2019년 10월 23일
39 영국 냉동 컨테이너 집단 사망사건
2017년 6월 14일
72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사고
2017년 5월 22일
23 2017년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
[ 200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2005년 7월 7일
56 2005년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
2004년 2월 7일
23 모어캠 만 참사
2002년 10월 12일
204 23 2002년 발리 폭탄 테러
2001년 9월 11일
2,996 67 9.11 테러
2000년 6월 18일
58 2000년 도버항 밀입국 참사

[ 199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99년 10월 31일
217 21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 사고
1999년 10월 5일
31 라드브로크 그로브 열차 충돌사고
1999년 9월 28일
26 남아프리카 공화국 영국 관광객 버스 사고
1999년 9월 28일
29 오마 폭탄 테러
1994년 6월 2일
29 1994년 RAF 치누크 추락 사고
1992년 9월 28일
167 36 파키스탄 국제항공 268편 추락 사고
[ 198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89년 8월 20일
51 마치오네스호 참사
1989년 4월 15일
97 힐스버러 참사
1989년 1월 8일
47 브리티시 미들랜드 국제항공 92편 추락 사고
1988년 12월 21일
270 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폭파 사건
1988년 12월 12일
35 클래펌 정션 열차 충돌사고
1988년 7월 6일
167 파이퍼 알파 화재 사고
1987년 11월 18일
31 런던 킹스 크로스 역 화재사건
1987년 3월 6일
193 해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참사
1986년 11월 6일
45 1986년 브리티시 인터내셔널 헬리콥터 치누크 추락 사고
1985년 6월 23일
329 27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
1985년 5월 11일
56 브래드포드 시티 구장 화재
1985년 8월 22일
55 영국항공 투어 328편 화재 사고
1985년 2월 11일
21 랑겐브루크 버스 사고
1983년 7월 16일
20 영국 항공 헬리콥터 S-61 추락 사고
1980년 9월 9일
44 더비셔호 침몰 사고
1980년 8월 16일
37 덴마크 플레이스 방화 사건
1980년 4월 25일
146 단 에어 1008편 추락 사고
[ 197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78년 2월 11일
42 퍼시픽 웨스턴 항공 314편 추락 사고
1976년 9월 10일
176 자그레브 상공 공중충돌 사고
1975년 5월 27일
32 디블스 다리 버스 추락 사고
1975년 2월 28일
43 무어게이트역 지하철 충돌사고
1974년 11월 21일
21 브링엄 펍 폭탄 테러
1974년 6월 1일
28 플릭스버러 폭발사고
1974년 3월 3일
346 177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1973년 8월 2일
50 서머랜드 참사
1973년 4월 10일
108 인빅타 국제항공 435편 추락 사고
1972년 7월 5일
30 콜드 하버 병원 화재
1972년 6월 18일
118 브리티쉬 유러피언 항공 548편 추락 사고
1971년 11월 9일
52 영국 공군 허큘리스 추락사고
1971년 10월 21일
21 ~ 22 클락스턴 폭발 사고
1971년 1월 2일
66 1971 아이브록스 참사
1970년 7월 3일
112 단 에어 1903편 추락 사고
}}}
[ 196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69년 1월 5일
50 아리아나 아프간 항공 701편 추락 사고
1968년 11월 18일
22 제임스 와트 스트리트 화재
1968년 11월 5일
49 히서 그린 열차 탈선 사고
1967년 2월 26일
21 셀턴 병원 화재
1967년 11월 4일
37 이베리아 항공 062편 추락 사고
1967년 6월 4일
72 스톡포트 비행기 추락 참사
1966년 10월 21일
144 애버밴 참사
1966년 7월 31일
31 다윈호 침몰 사고
1965년 10월 17일
36 브리티시 유러피언 에어워이즈 비커스 951 추락 사고
1965년 7월 4일
41 영국 공군 C.1A 추락 사고
1965년 5월 17일
31 1965년 캠브리안 광산 참사
1965년 4월 14일
26 BUA DC-3 추락 사고
1960년 6월 28일
45 식스 벨즈 광산 폭발 사고
[ 195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58년 8월 14일
99 KLM 607-E편 추락 사고
1958년 2월 27일
35 윈터힐 비행기 참사
1958년 2월 6일
23 뮌헨 비행기 참사
1957년 12월 4일
90 루이섬 열차 충돌사고
1957년 11월 5일
45 아퀼라 항공 S.45 추락 사고
1957년 5월 1일
34 이글 항공 비커스 비스카운트 추락 사고
1957년 3월 14일
20 브리티시 유러피안 항공 비커스 701 추락 사고
1957년 3월 5일
20 영국 공군 베버리 C.1 추락 사고
1954년 12월 25일
28 영국해외항공 보잉 377 추락 사고
1954년 1월 10일
35 영국해외항공 781편 공중분해 사고
1953년 5월 2일
43 BOAC 783편 추락 사고
1953년 1월 31일
154 프린세스 빅토리아 호 침몰사고
1953년 1월 5일
27 1953년 브리티시 유러피언 항공 비커스 610 추락 사고
1952년 12월 5일 ~ 9일
4000+ 1952년 런던 그레이트스모그
1952년 10월 2일
112 해로우 앤 윌드스톤 열차 추돌사고
1952년 9월 6일
31 판버러 에어쇼 추락 사고
1952년 1월 10일
23 에어 링구스 C-47 추락 사고
1951년 12월 4일
24 질링엄 버스 참사
1951년 4월 16일
75 어프레이 호 침몰 사고
1950년 10월 31일
28 1950년 브리티시 유러피언 항공 비커스 610 추락 사고
1950년 10월 17일
28 브리티시 유러피언 항공 C-47 추락 사고
1950년 3월 12일
80 랜드로우 항공 참사
[ 194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49년 8월 19일
24 브리티시 유러피언 항공 DC-3 추락 사고
1949년 1월 17일
20 미 공군 B-29 추락 사고
1948년 10월 20일
40 KLS L-049 추락 사고
1948년 7월 4일
39 노스우드 상공 공중충돌 사고
1948년 4월 17일
24 윈스포드 열차 충돌 사고
1948년 3월 2일
20 사베나 DC-3 추락 사고
1947년 10월 26일
28 고스윅 열차 탈선 사고
1947년 10월 24일
32 사우스 크로이던 열차 충돌 사고
1947년 4월 23일
39 샘탬파호 침몰 사고
1946년 3월 9일
33 번든 파크 참사
1946년 1월 1일
20 리치필드 열차 충돌 사고
1945년 9월 30일
43 본 엔드 열차 탈선 사고
1945년 9월 14일
21 볼벤터 영국 공군기 추락 사고
1945년 6월 15일
27 처치 노웰 미 공군기 추락 사고
1945년 5월 6일
31 미 공군 C-46D 추락 사고
1945년 4월 23일
31 맨 섬 미 공군 B-17 추락 사고
1945년 4월 22일
21 풀벡 영국 공군기 추락 사고
1945년 2월 19일
20+ 질스 다코다 3 추락 사고
1945년 1월 10일
22 밸리 마카렛 열차 충돌 사고
1944년 11월 27일
70 영국 공군 창고 폭발 사고
1944년 8월 23일
61 프렉턴 항공기 참사
1944년 7월 27일
22 미 공군 DC-3 추락 사고
1944년 2월 19일
20 미 공군 DC-4 추락 사고
1943년 7월 3일
20 영국 공군 포커 FXII 추락 사고
1943년 3월 27일
379 대셔호 폭발 사고
1943년 3월 3일
173 베스널 그린 지하철역 참사
1943년 2월 24일
37 반달호 침몰 사고
1942년 10월 2일
239 큐라소호 침몰 사고
1942년 4월 13일
25 임버 민간인 오사 사건
1942년 1월 1일
57 스네이드 광산 참사
1941년 12월 30일
23 에클스 열차 충돌 사고
1941년 10월 31일
49 허더스 필드 공장 화재
1940년 11월 4일
27 노턴 피츠워렌 열차 사고

[ 193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39년 12월 12일
136 두체스호 침몰사고
1939년 10월 28일
35 밸리필드 광산 참사
1939년 6월 1일
99 테티스호 침몰사고
1937년 12월 10일
35 캐슬커리 열차 충돌 사고
1937년 7월 2일
30 홀디치 광산 참사
1936년 8월 6일
30 완클리프 우드무어 광산 참사
1934년 9월 22일
266 그레스포드 참사
1932년 1월 26일
60 M2호 침몰 사고
1931년 11월 20일
45 벤틀리 광산 붕괴 사고
1931년 1월 29일
27 1931년 헤이그 광산 폭발 사고
1930년 10월 5일
48 R101호 추락사고
[ 192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29년 12월 31일
72 글렌 극장 참사
1928년 6월 27일
25 달링턴 열차 충돌 사고
1923년 9월 25일
40 레딩 광산 침수 사고
1922년 9월 5일
39 1922년 헤이그 광산 폭발 사고
1921년 10월 9일
22 로완호 침몰 사고
1921년 8월 23일
28 R38급 비행선 추락 사고
[ 191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19년 10월 20일
31 레벤트 광산 사고
1919년 1월 1일
201 ~ 205 로라일호 침몰 사고
1918년 9월 25일
470 오틀란토호 침몰 사고
1918년 7월 14일
37 UB-65 침몰 사고
1918년 10월 24일
364 프린세스 소피아호 침몰 사고
1918년 9월 16일
79 글래턴호 폭발 사고
1918년 7월 1일
134 칠웰 탄약 공장 폭발 사고
1918년 2월 24일
94 플로리젤호 침몰 사고
1918년 1월 31일 ~ 2월 1일
105 메이 섬 전투
1918년 1월 12일
155 민니 광산 참사
1918년 1월 12일
188 오팔호 침몰 사고
1917년 7월 9일
843 뱅가드호 폭발 사고
1917년 6월 13일
43 애쉬톤 언더 라인 폭발 사고
1917년 2월 21일
650+ 멘디호 침몰 사고
1917년 1월 29일
32 K13 침몰 사고
1917년 1월 19일
73 실버타운 폭발 사고
1917년 1월 19일
30 E36호 침몰 사고
1916년 12월 5일
35 번보우 탄약 공장 사고
1916년 8월 21일 ~ 24일
40 로우 무어 폭발 사고
1916년 4월 2일
115 파버샴 공장 참사
1915년 6월 22일
226 퀸틴스힐 철도 참사
1915년 5월 27일
352 프린세스 이레네호 침몰 사고
1915년 5월 7일
1198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
1914년 10월 30일
83 로힐라호 침몰 사고
1914년 10월 14일
439 셍헤니드 탄광 참사
1914년 5월 29일
1014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호 침몰사고
1914년 1월 16일
58 A7호 침몰 사고
1912년 7월 9일
91 카데비 광산 참사
1912년 4월 14일 ~ 4월 15일
1514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1910년 10월 21일
344 프레토리아 광산 참사

[ 1900년대 이전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09년 2월 16일
168 웨스트 스탠리 광산 참사
1908년 10월 27일
29 야머스호 침몰 사고
1906년 12월 28일
22 엘리엇 정션 열차 충돌 사고
1906년 7월 1일
43 세일스버리 열차 충돌 사고
1905년 11월 19일
39 왓슨 스트리트 하숙집 화재
1905년 7월 27일
20 홀로드 열차 충돌 사고
1905년 3월 10일
33 1905년 캠브리안 광산 참사
1903년 1월 27일
52 코니 병원 화재
1902년 4월 5일
25 1902 아이브록스 참사
1898년 6월 21일
34 알비온호 진수식 참사
1896년 4월 30일
82 펙필드 광산 참사
1892년 8월 26일
112 파크 슬립 광산 참사
1888년 9월 5일
63 모리스우드 광산 참사
1887년 9월 5일
186 엑세터 극장 화재
1887년 2월 13일
39 와트슨 광산 참사
1887년 5월 23일
73 우드스톤 광산 참사
1885년 12월 23일
81 마디 광산 폭발 사고
1884년 7월 16일
24 불하우스 브리지 열차 탈선 사고
1883년 7월 3일
124 다프네호 참사
1883년 6월 16일
183 빅토리아홀 참사
1882년 2월 16일
63 트림돈 그랜지 광산 참사
1881년 10월 14일
189 아이마우스 참사
1879년 12월 28일
59 테이 브리지 붕괴 사고
1878년 9월 11일
268 애버컨 광산 참사
1878년 6월 7일
189 우드핏 광산 폭발 사고
1878년 9월 3일
600+ SS 프린세스 앨리스 침몰 사고
1877년 10월 22일
207 블랜타이어 광산 참사
1874년 12월 24일
34 쉬프톤 처웰 열차 탈선 사고
1874년 9월 10일
25 소프 열차 충돌 사고
1873년 3월 20일
535 SS 아틀란틱 침몰 사고
1871년 2월 24일
38 펜터 광산 폭발 사고
1868년 12월 26일
26 퀸핏 광산 폭발 사고
1867년 1월 15일
40 리진트 공원 참사
1866년 12월 12일
361 오크스 폭발 사고
1866년 1월 11일
220 런던호 침몰 사고
1865년 3월 15일
20 벨 스트리트 홀 화재
1865년 1월 16일
20 던디 압사 사고
1864년 10월 6일 ~ 7일
53 뉴캐슬 대화재
1864년 3월 11일
244 데일 디크 저수지 붕괴 사고
1861년 8월 25일
23 클레이턴 터널 열차 충돌 사고
1853년 10월 20일
30 하트레이크 참사
1852년 2월 26일
444 ~ 450 버큰헤드호 침몰 사고
1850년 3월 30일
150+ 로얄 애들레이드호 침몰 사고
1849년 2월 19일
70 로얄 극장 참사
1848년 8월 18일
100+ 모레이 어선 참사
1846년 7월 9일
39 이스트 휠 로스 광산 참사
1845년 5월 2일
79 그레이트 야머스 대교 붕괴사고
1844년 9월 28일
95 해스웰 광산 폭발 사고
1838년 7월 4일
26 휴스카 광산 참사
1812년 5월 25일
92 펠링 광산 참사
1808년 9월 20일
23 로얄 오페라 하우스 화재
1807년 11월 19일
400+ 로치데일호 프린스 오브 웨일스호 충돌 사고
1807년 4월 18일
60 ~ 90 하위치 페리 참사
1807년 2월 23일
27 ~ 34 1807년 뉴게이트 참사
1806년 12월 25일
22 스톳필드 어선 참사
1806년 3월 16일
400+ 인빈시블호 침몰 사고
1800년 5월 17일
673 퀸 샬롯호 화재
1727년 9월 8일
80 번웰 인형극 극장 화재
1707년 10월 22일
1400+ 실리 영국 해군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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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는 2층으로 알려졌으나 4층으로 정정되었다.#[2] 런던광역경찰청은 미국GE의 자회사인 Hotpoint 社의 'FF175BP' 모델이라고 밝혔다.#[3] 한국으로 치면 영구임대 아파트나 도시형 생활주택, 혹은 행복주택에 가까운 형태다.[4] 한국과 영국의 차이점은 저층주택과 초고층아파트의 포지션이 정반대라는 것. 영국에서는 하층민들이 그렌펠 타워 같은 초고층아파트에 살고 부자들은 대부분 저택이나 고급 저층아파트에 산다.[5] 런던에서는 이런 동네가 적잖게 있다. 런던이 웨스트민스터 부근을 시작으로 점점 확장된 도시이다 보니 원래는 외곽이었던 곳이 새로 개발되는 구역과 기존 도심 사이에 끼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 재개발로 점점 사라지고 있긴 하다.[6] 라마단 기간에는 일단 해가 뜨면 밤이 될 때까지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무슬림들은 날이 밝기 전에 미리 끼니를 해결해두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거나 밤잠을 짧게 갖고 대신 낮잠을 많이 자는 형식으로 라마단을 보낸다.[7] 지상 한정인 이유는 바다까지 보면 파이퍼 알파 화재 사고가 사망자 수가 더 많기 때문이다.[8] 총 거주자 수가 워낙 많아서 초기에는 수백 명 이상이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사건 당시에 여러가지 이유로 타워 밖에 있던 사람들의 신원이 속속 확인되었다.[9] 글로리아 트레비산과 아래의 마르코 고타르디는 이탈리아베네치아 출신의 동거 커플로, 이탈리아에서는 나름 살만한 북부 베네토 출신의 유망한 젊은이들이었음에도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런던에 왔다가 3년만에 이런 비극을 맞이했다. # 이처럼 이 화재의 희생자는 단순히 아랍계 및 아프리카계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저소득 취약계층에 집중된 것을 알 수 있다.[10] 의정부 아파트 화재 사고(2015)와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사고(2010) 당시 문제가 된 그 자재다. 울산 남구 삼환아르누보아파트 화재 사고(2020)에서도 외벽의 이 패널이 강풍과 만나 불이 빠르게 번지는 데 일조했다.[11] 1평당 약 1만 원[12] 이 때 그렌펠 타워의 공사비용을 아끼려고 외부 조경들을 전부 철거한 다음 자작나무 창틀도 MDF로 교체했다.[13] 이것은 생존자들의 증언과 일부 사망자의 마지막 교신으로 확실히 뒷받침되는 부분이다.[14] 8km면 서울의 경우 남산타워에서 신논현역 직선 거리 정도가 된다.[15] 내무부, 국방부, 소방청, 경찰청, 런던시청 등[16] 말이 실권이 없다지만 국왕은 영국 헌법과 전통의 수호자로 총리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를 간접적으로 행사하여 총리를 압박한 것이다.[17] 런던광역경찰청 소속의 무장경찰이 타고 온 것이다.[18] 그렌펠 타워는 윌리엄 왕세손이 거주하던 켄싱턴 궁전과 여왕의 공식 거처인 버킹엄 궁전, 그리고 버킹엄 궁전 북쪽 부지의 왕세자 거처인 클래런스 하우스와 인접해 있다. 그렌펠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건물들 중 하나였기에 참사 전후로 이들도 화재를 목격했을 개연성이 있다.[19] 엘리자베스 여왕 생전 가장 후회하는 일로 애버밴 참사 당시 권위와 품위를 이유로 국민들의 슬픔을 제대로 위로하지 않은 것은 것을 꼽았다. 이후 다이애나 스펜서가 사망했을 때도 우왕좌왕하다 왕실을 진짜 말아먹을 뻔했다. 국민의 슬픔앞에 지도자가 권위를 내세우기 보다는, 그들의 슬픔을 직접 위로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두 차례나 온 몸으로 느낀 사람이 바로 엘리자베스 여왕이었으니 이는 당연한 행보라고 할 수 있다.[20] 20대 총선, 제57회 영국 총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