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 | 호텔 뉴재팬 |
영어 명칭 | Hotel New Japan |
일본어 명칭 | ホテルニュージャパン |
개업 | 1960년 |
폐업 | 1982년 2월 8일 |
철거 | 1996년 |
주소 | 도쿄도 치요다구 나가타초2초메 13-8 東京都千代田区永田町二丁目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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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에 있었던 지금은 없어진 호텔.사토 타케오(佐藤 武夫)가 설계하고 1960년에 완공했으며 주식회사 호텔 뉴재팬(株式会社ホテルニユージヤパン)이 운영을 시작했다. 지하 2층에서 지상 10층까지 높이에 걸쳐 513개의 방이 있었다. 연면적은 46,697㎡(약 14,126평).
본래는 고급 아파트로 계획했으나 호텔로 변경했다. 당시는 1964 도쿄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호텔 붐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했다.
호텔이 개업하면서 아름다운 외관과 더불어 호텔 내부에 레스토랑, 오픈 카페, 쇼핑 아케이드 등을 세우는 획기적 아이디어로 일본 최초의 도시형 다기능 호텔의 모델케이스가 되면서 도쿄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그리하여 정·재계, 연예계 등 각계의 유명인들이 이 호텔을 많이 이용했고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고급 호텔이 계속해서 늘어나던 가운데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계속되는 적자로 도산할 위기에 처했는데 일본 주식계의 거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실업가 요코이 히데키[1]가 호텔을 매수하고 2년도 안 돼서 정상급 호텔로 부활시켰다.
2. 사고
호텔 뉴재팬 화재 사고 보도 | 호텔 뉴재팬 화재 사고 재현 애니 |
호텔 뉴재팬 화재 사고 / ホテルニュージャパン[ruby(火災, ruby=かさい)] / Hotel New Japan fire disaster
그런데 개업한 지 22년만인 1982년 2월 8일 화재 참사가 벌어졌다.
오전 3시 24분에 갑자기 불이 났는데 불은 9층과 10층을 중심으로 번졌으며 같은 날 12시 30분이 지나서까지 9시간에 걸쳐 진압이 이루어졌다.
사망자 33명, 부상자 34명이 발생한 대참사였다. 화재 원인은 9층 938호실에 투숙해 있던 영국인 남성[2]이 담배를 피우다가 그대로 잠드는 바람에 꺼지지 않고 남은 담뱃불이 큰 불로 번진 것이었다. 사망자 중에는 직접적인 화재로 인해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유독가스를 피해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죽은 사람도 있었고 결과적으로 사망자 33명 중 13명이 추락사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렇게 추락사한 사망자들과 달리 침착하게 시트로 밧줄을 만들고 내려가서 대피하고 심지어 다른 투숙객의 피난까지 유도한 생존자도 있었는데 그는 한국 최초의 일본식 돈가스집인 명동돈가스의 창업자 윤종근 회장이었다. 당시 10층에 묵던 그는 연기가 들어차고 붉은 화마가 넘실대는 와중에도 대연각호텔 화재 사건을 떠올리며 침착하게 침대 시트를 여러 장 묶어서 탈출에 성공하여 일본 각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으며 다른 층에 있던 일본인 신혼부부를 구해서 의인으로 더 유명세를 탔다. 이후 보상 협상과 수습 단장을 맡았는데 이 과정에서 그와 함께 동행한 한국인 8명의 시신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한동안 큰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고 하며 창문을 보면 대낮임에도 죽은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연기만 봐도 불안해 잠을 못 잤다고 한다.
사망자는 일본인 11명, 한국인 8명[3]과 대만인 12명[4], 미국인 1명, 영국인 1명이었다. 일본인이 아닌 사망자들은 당시에 있었던 축제, 관광 등의 이유로 입국한 사람들이었다. 화재를 키운 원인으로 소방설비 미비와 허술한 초동 대응 등이 지목되었는데 한마디로 이 사건도 안전불감증이 피해를 키운 셈이다.
이후 호텔 뉴재팬의 각종 불법 운영이 밝혀져 당시 사장이었던 요코이 히데키는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금고 3년의 실형 판결을 받았는데 수전노에 매우 막장스러운 인물로, 계속되는 소방청의 경고에도 단지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호텔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고 있다가 영업정지를 시킨다니까 그제서야 눈에 띄는 곳에만 몇 개를 설치했는데 그것조차도 건성으로 설치해서 대부분 수도배관조차 연결되지 않은 장식품에 불과했다. 소방교육도 돈이 든다는 이유로 전혀 실시하지 않아서 직원 중 단 한 명도 화재시에 경보기를 울리는 방법이나 소화전을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다고 한다. 심지어 겨울에는 난방을 가동할 때 공기가 지나치게 건조해지지 않게 가습기를 같이 틀어 줘야 하는데 전기요금 더 내는 게 아깝다고 가습기의 전원을 꺼 놓는 바람에 공기가 너무 건조해져 화재가 더 쉽게 번지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정상이었던 소방설비가 화재를 감지하면 자동으로 닫히는 방화문이었는데 소방점검이라는 개념 자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던 곳이다 보니 문앞에 두툼한 카페트를 깔아 놓는 바람에 방화문이 카페트에 걸려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단열재를 사용해야 하는 호텔 벽도 경비절감을 위해서 콘크리트의 일부를 덜어내고 목재로 때운 후 베니어 합판으로 덮고 그 위에 값이 싸다는 이유로 가연성 벽지로 마감하였다. 게다가 배선이나 공사를 위해서 뚫었던 구멍들도 경비 절감을 위해서 메우지 않은 채로 벽지로 덮어버리는 바람에 호텔 전역으로 원활히 불이 번질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는 결과를 낳았다.
화재 당시에도 인명 구조보다 고급 가구를 먼저 빼낼 것을 지시했고 현장에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렸는데 보도진에게 확성기로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인사하고 '그나마 9층, 10층밖에 안 타서 다행이다'라는 황당무계한 발언을 했으며 '화재의 원인을 제공한 투숙객이 잘못한 거다'며 모든 책임을 투숙객에게 떠넘기는 망언을 했다.[5]
오원석 작가의 한국 한자성어 학습만화인 따개비 한문숙어 2권에서 아비규환이라는 성어 학습을 위해 이 사고를 소재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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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고 이후
사고 이후 호텔 뉴재팬은 영업 금지 처분이 내려져 2월 10일부로 영업을 중단했고 건물은 14년간 흉물스럽게 방치되었다가 1996년에야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에는 2002년 12월 16일에 완공된 푸르덴셜타워가 들어서 있다.
정말로 있었다! 저주의 비디오라는 심령영상 프로에서 이 사고와 관련된 유령 목격담과 관련 영상자료가 방영되기도 했다. 투고자는 그 지역을 운행하는 택시기사였다.
화재 당시 임시 합동 분향소가 있었던 도쿄의 조죠지(増上寺)에는 사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관음상이 건립되어 있는데 사고 발생 5년 후에 요코이가 직접 세운 것이다.
지하층에서 뉴재팬과 별개로 영업되었던 고급 나이트 클럽 '뉴라틴 쿼터'(ニューラテンクォーター)[6]는 호텔 폐쇄 후에도 1989년까지 영업을 계속했다.
이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엔 하네다 공항에서 일본항공 350편 추락 사고가 일어나 도쿄 소방청은 과중한 업무로 죽어나갈 지경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바쁜 나날이 이어졌고 19년만인 2001년 9월 1일에는 도쿄도 신주쿠구 가부키초의 묘조 56 빌딩(明星56ビル)에서 화재가 일어나 44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요코이는 이 화재로 엄청난 욕을 먹었고 관련 재판은 10년 가까이나 질질 끌었는데 그 와중에 1991년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사들였지만 정작 빌딩을 사들인 지 몇 년 안 가 손해를 보고 되팔아야 했으며 1992년 금고 3년과 보상금을 내놓으란 판결이 나와 막대한 재산을 헐값에 처분해야 했다. 늘그막에는 다이에이 히몬냐라는 대형 상가랑 볼링장 1개만 남았고 몰락한 신세를 한탄하면서 술을 자주 들이켰다고 한다. 1998년 11월 30일 볼링장을 둘러보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병원에서 85세로 사망했다.
심지어 사장 일가도 그야말로 파탄났다. 장남 쿠니히코는 이혼 및 파산으로 술에 미쳤다가 2008년에 동맥을 끊고 자살했고 차남도 파산 및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배다른 3남도 사기 혐의로 입건되는 등 여러 논란을 벌여 일본에서 달아나 하와이에서 칩거하고 있다. 외손자인 ZEEBRA도 양자로 삼았는데 그는 이들과는 다른 길을 걷기는 했다.
4. 여담
- 도쿄 소방 역사상 단 두 번 뿐인 도쿄도내 모든 소방서가 진압을 지원하는 "제4출동(第4出場)"이 바로 이 화재였다.[7]
- 소년탐정 김전일의 에피소드 중 장미 십자관 살인사건의 배경이 이 사고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중에 나오는 호텔 화재 사고에서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점과 호텔 화재 사고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내용이 비슷하다.
- 따개비 한문숙어에서도 언급된다. 아비규환 편에서 사건 당시 한국 신문에 실린 흑백사진을 보여주면서 쪼달 선생이 일본에서 화재가 나 많이 죽었다고 말한다.[8] 이를 본 따개비는 안타까워하며 '사람에게 날개가 있더라면 이렇게 불이 나도 떨어져 추락해 죽지 않을 텐데.'라고 말한다.
- 일본 힙합계의 거물 뮤지션 ZEEBRA는 요코이 히데키의 외손자다.[9] 따라서 ZEEBRA의 딸이자 JYP 소속 일본 걸그룹 니쥬의 멤버 나카바야시 리마[10]는 히데키의 진외증손녀[11]다. ZEEBRA는 요코이 히데키의 사망 당시 재산이 빚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상속 포기를 신청했다고 한다.
- 이 사고가 발생하기 14년 전인 1968년에 발생한 이케노보만게츠죠 화재 사고도 부실한 소방 설비와 미흡한 초동 대처 등 유사한 부분이 많아 이후 재조명되기도 했다.[12]
- 윤종근 회장의 화재 사건 탈출기가 명동돈까스 블로그에 올라왔다. #
- 사건 다음날 일본항공 350편 추락 사고가 일어났다.
- 부천 호텔 화재 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2003년 이전에 세워진 시설은 스프링클러 규제가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부분의 댓글은 호텔 뉴재팬 사고를 거론하면서 참담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5. 둘러보기
역대 일본의 대형 사고 및 참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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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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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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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49년 9월 22일29 이노타니 대교 붕괴 사고 1949년 4월 30일63 나타치 기뢰 폭발 사고 1948년 3월 31일49 킨테츠 나라선 열차 추돌 사고 1948년 1월 28일188 죠오마루 조난 사고 1948년 1월 5일36 메이테츠 세토선 열차 탈선 사고 1947년 5월 29일41 미 공군 C-54 추락 사고
[1] [ruby(横井英樹, ruby=よこい ひでき)], 1913~1998.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17살에 집을 나와서 회사를 일으키고 29살에 3,000명의 사원을 이끌었으며 일본이 전국적으로 빈곤에 허덕이던 패전 직후에도 총자산 20억 엔을 소유했을 정도로 대성했으며 일시적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매수한 적도 있을 정도로 상당한 수완가였다.[2] 정작 이 인물 또한 사망했다.[3] 윤종근 회장과 함께 경영기법을 배우러 온 사람들로 전 보사부 및 체신부 장관이었던 김태동, 안무정 도성상사 사장, 서동금 롯데칠성음료 상무, 이주흥 금성사 상무와 같은 고위 엘리트층 인사들도 있었다.[4] 희생자 대부분은 한국, 일본, 대만 세 나라의 국민들이다.[5] 직원들은 비상사태에 사람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 역할도 해야 되는데 이를 못 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당장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만 봐도 왜 선박을 불법 개조한 청해진해운보다 이준석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욕을 더 많이 먹었는지 생각해 보자. 그만한 이유가 다 있다.[6] 역도산의 피습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유명하다.[7] 다른 하나는 1964년에 발생한 시나가와 카츠시마 창고 화재(品川勝島倉庫爆発火災).[8] 사건도 사건이고 전술했다시피 희생자 중에 한국인도 상당수 포함되어서 한국에서도 크게 보도되었다.[9] 아들 말고도 장녀가 있는데 이 사람이 ZEEBRA의 어머니다. 그런데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 인물을 히데키의 양자로 입적하여 아들인 것도 맞다.[10] 성이 다른 이유는 ZEEBRA가 이혼하면서 그녀의 언니와 그녀의 호적을 어머니로 옮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어머니의 성인 나카바야시가 법적 성씨다.[11] 엄밀히 말해 직계가 아니며 진외가란 아버지 외가(할머니의 친정집)를 뜻하는 말이다. 요코이 가문은 리마에게 있어서 진외가다.[12] 이케노보만게츠죠 화재는 여기에 더해 반복된 증·개축으로 인해 건물 내부 구조가 미로처럼 복잡해져 비상 상황에서 신속하게 대피하기 힘들었다는 점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