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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24 12:50:32

글렌 극장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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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사고 당시3. 사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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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Glen Cinema Disaster
1929년 12월 31일 영국 스코틀랜드 페이슬리(Paisley)의 글렌 극장에서 있었던 사고.

2. 사고 당시

페이슬리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인근의 마을로, 1901년에 열린, 로얄 애니메이티드 픽쳐스(Royal Animated Pictures)라 불리기도 한 글렌 극장이 페이슬리의 유일한 극장이었다.

당시 연말을 맞아 아이들이 글렌 극장에 모여 The dude deperado라는 단편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연말이라 새해 휴일 맞이 집안 청소도 할 겸 부모들이 아이들을 극장에 보냈었다. 상당수의 관객들은 5~14세 사이의 어린이었고, 어른은 소수였다. 당시 관객 수는 무려 700~ 1000여명 사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기가 일어났다. 연기를 본 누군가가 "불이야!" 라 크게 외쳤다. 화재 알람까지 일어나자 아이들은 겁에 질려 다이어스 윈드(Dyers Wynd)거리로 향하는 건물 출입구로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하필 문이 잠겨있었고, 거기다 문은 안으로 열리는 문이었다. 겁에 질린 아이들 뒤로 다른 아이들이 계속해서 오면서 아이들은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눌린 아이들이 압사당해 죽어갔고, 화재 소식을 들은 경찰과 소방관들이 출동했을 땐 이미 수많은 아이들이 죽은 뒤었다.

결국 사고로 72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69명은 어린이었고, 가장 어린 사망자는 18개월 된 아기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당시 글렌 극장에선 불이 나지 않았었다. 화재 알람이 울린 이유는 당시 니트로셀룰로오스로 만든 필름을 건전지 위에 올리면서 살짝 불이 나긴 했었다. 이 불 자체는 빨리 진압됐었지만, 이 연기가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오해가 생겼었다.

3. 사고 이후

사고 자체는 오해로 인한것이었으나, 비상구가 막혀있던 것 때문에 큰 피해가 생겼기에, 극장 담당자는 재판을 받아야했다. 하지만 처벌을 받지 않았다.

다음해 1월 4일 합동 장례식이 열렸다.

1909년, 극장 관련 소방법이 개정되면서 출입구 수가 늘어나고, 출입문은 손잡이가 큰 패닉바 형태로, 또 안에서 밖으로 열리는 구조로 만들도록 법으로 지정되면서 이러한 참사가 또 다시 일어날 일을 막았다.

호크헤드 공동묘지에 추모비가 있고#, 2021년 12월엔 새로 만든 추모비가 공개됐다.#

글렌 극장 건물 자체는 아직도 남아있다. 다만 극장으로 영업은 중단했고, 일반 상가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