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143d69><tablebgcolor=#143d69>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25 시즌 내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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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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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2008 |
아시아시리즈 우승반지 | |
2008 |
2015 프리미어 12 {{{#c63 동메달}}} |
2015 |
2008, 2009, 2011, 2012, 2015, 2019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3루수 부문 베스트 나인 | ||||
그렉 라로카 (오릭스 버팔로즈) | → | 나카무라 다케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 | 코야노 에이이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코야노 에이이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 | 나카무라 다케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 | 케이시 맥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아카미나이 긴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 | 나카무라 다케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 | 브랜든 레어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마쓰다 노부히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 | 나카무라 다케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 | 스즈키 다이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2014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지명타자 부문 베스트 나인 | ||||
미첼 어브레이유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 | 나카무라 다케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 | 이대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008, 2009, 2011, 2012, 2014, 2015년 퍼시픽 리그 최다 홈런 |
2009, 2011, 2015, 2019년 퍼시픽 리그 최다 타점 |
보유 기록(NPB) | |
역대 최단 경기 1,500삼진 | 1,444경기 |
통산 최다 피삼진 | 1,956삼진(진행중) |
역대 최다 격차 홈런왕 | 23개 차 |
통산 최다 만루홈런 | 22개 |
통산 최다 홈런 허용투수 | 254명 |
교류전 통산 최다 홈런 | 79홈런 |
교류전 통산 최다 타점 | 209타점 |
{{{#fff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60번}}} | ||||
무라카미 타카유키 (2001) | → | 나카무라 다케야 (2002~) | → | 현역 |
<colbgcolor=#143D69><colcolor=#fff>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No.60 | |
나카무라 다케야 中村剛也 | Takeya Nakamura | |
출생 | 1983년 8월 15일 ([age(1983-08-15)]세) |
오사카부 다이토시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오사카 토인 고교 |
신체 | 175cm, 102kg, O형 |
가족 | 배우자 무라카미 마리에, 슬하 3남 |
투타 | 우투우타 |
포지션 | 3루수, 1루수 |
프로입단 | 2001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16번, 세이부) |
소속팀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2~) |
국가대표 |
|
등장곡 | HOME MADE 家族 - ムカイカゼ |
응원가 | 응원단 자작곡[1] |
연봉 | 2023 / ¥200,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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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프로야구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소속의 내야수.2010년대 퍼시픽 리그의 대표적인 슬러거로 홈런왕 6회, 타점왕 4회를 수상했으며[2] 일본프로야구 통산 최다 만루홈런(22개) 기록과 통산 최다 삼진(2066개) 기록을 보유한 타자다.
푸짐한 체구와 더불어 아래의 일화 이후로 일본에서는 '한 그릇 더 군'(おかわり君)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대한민국 한정으로는 이대호와 구분하기 위해 일본 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주축 선수들이 FA로 줄줄이 빠져나가기로 악명높은 세이부에서 얼마 남지 않은 원클럽맨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2. 선수 경력
나카무라 다케야의 선수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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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WBSC 프리미어 12 |
자세한 내용은 나카무라 다케야/선수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
많은 삼진과 좋지 않은 컨택 능력을 장타력과 사사구로 커버하는 OPS 히터로, 마크 맥과이어나 애덤 던의 플레이스타일과 유사하다. 다만 맥과이어의 그것보다는 장타력이, 던의 그것보다는 눈야구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 하단의 통산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데뷔 이래 단 한번도 타율은 3할을 넘지 못했으며 커리어 최고 타율이 .285, 통산 타율은 .255 에 불과하다. 하지만 통산 출루율은 9푼 가까이 더 높은 .346 이며, 통산 장타율은 .543 에 이른다. 좋은 선구안과 강력한 파워가 가져오는 압박을 바탕으로 스윙을 아끼며 볼넷을 얻어내고, 비록 컨택은 좋지 않지만 실투는 용납하지 않으며 홈런 내지 장타로 연결시키는 타자. 상대도 그것을 알기에 더더욱 조심스레 바깥쪽 승부를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그에게 볼넷을 주게 되어 있다. 다만 이런 스타일이 으레 그렇듯이 홈런 수나 OPS에 비해서 타점이 좀 부족하고, 단타를 많이 쳐서 적립되는 통산 안타 수를 쌓기가 불리하기 때문에 명구회처럼 클래식한 누적 기록을 중시하는 일본 야구계 풍토상 다소 저평가받을 수 있는 유형이다.다만 주전으로 발돋움 하기 시작한 2008년에는 이러한 스타일의 확립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아 고 출루율 타자라기 보다는 공갈포적인 성향이 더 강했다. 이런 스타일이 자라잡기 시작한건 2010시즌 부터로, 이후 커리어 동안 타율 - 출루율 간 간극을 1할 내외로 넓히며 자기의 스타일을 완전히 확립했다. 특히 2014 시즌에는 6월 14일 기준 타/출/장. 255/.461/.650 이라는 공포의 스탯을 찍기도 했다. 출루율이 타율보다 2할이나 높다.[3]
몇 차례 심각한 부진을 겪은 뒤 2010년대 후반에는 타격폼을 개조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스윙을 가져가면서 2010년대 초반에 보여주었던 압도적 타출갭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20홈런은 우습게 넘기는 파워와 클러치 능력이 살아있어 커리어 반등을 이루어냈다. 절대적인 본인의 기량은 하강곡선에 있고 아키야마 쇼고, 모리 토모야, 아사무라 히데토, 야마카와 호타카 등 젊은 강타자들이 성장해 세이부 타선의 중심 역할을 이어받았지만, 이 때문에 나카무라는 하위타순에서 이들을 뒷받치며 아쉬운 찬스들을 짬처리하고 타점을 먹는 역할을 주로 맡게 되면서 전성기 때의 집중견제가 줄게 된 부분도 생겨 커리어 반등에 도움이 되었다.
'70%의 힘만으로도 공을 스탠드로 날릴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의 순혈 파워 히터로, 일본프로야구 최고수준의 장타력은 그의 아이덴티티이다. 야나기타 유키나 야마다 테츠토처럼 온 힘을 짜내는 것과는 거리가 먼 가벼운 스윙으로도 보는 사람 입장에선 참 쉽게쉽게 담장을 넘기는 모습이 인상적인 타자. 175cm라는, 야구선수로는 상당히 작은 키를 가지고 있지만 타고난 파워를 바탕으로 주로 당겨쳐서 홈런을 만들어내며, 홈런들이 라이너성 타구보다는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문샷이 많은 것이 특징. 세이부 시절의 팀 동료였던 와쿠이 히데아키에게 홈런을 많이 쳤으며, 이혜천이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뛰던 시절에 그를 상대로 메이지진구 구장 좌측스탠드에 꽂히는 라인드라이브 만루홈런을 치기도 했다. 다만 시원한 스윙만큼이나 삼진 또한 많아서 삼진왕을 3차례나 기록했다.
3루수로서의 수비 능력은 영 좋지 않아서 리그 실책 1위를 3차례나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았는데, 3루수로서 2014년까지 통산 필딩률 .950이라는 극악의 수비를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해가 갈 수록 1루수(.989) 기용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2014년에 들어와서는 1루수로 나왔음에도 부상을 당해 몇몇 팬들은 아예 지명타자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팀 내에 1루밖에 못 보는 에르네스트 메히아나[4], 주 포지션은 포수지만 수비력이 여물지 않은 모리 토모야, 외야수 출신이지만 체력관리가 필요한 베테랑 외야수 쿠리야마 타쿠미[5], 포동포동한 외모와 장타력뿐만 아니라 3루 수비 못 하는 것까지 꼭 닮은 야마카와 호타카[6] 등 1루/지명타자 슬롯을 차지할만한 자원이 많은데다 차기 3루수 자원도 마땅치 않은지라[7] 선수생활의 황혼기인 2020년대에도 나카무라가 3루수로 출장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게 되었다.
50m를 6.3초에 주파할 정도로 체구에 비해 스피드는 상당히 빠른 편이지만, 프로 무대에서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유일하게 통산 2000삼진 이상을 기록한 선수다. 삼진도 맞지만 홈런도 많이 친 선수다.
4. 여담
- 애칭인 '오카와리군(おかわりくん, 한그릇더군)'은 선배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뭐니?'라고 물었을 때 '"한 그릇 더" 입니다.'라고 대답해서 생겼다. おかわり(오카와리)라는 말이 보통 음식 리필을 요청할 때 쓰는 단어라서 통통한 그의 이미지와 어울리는데다 멀티 홈런까지 많기 때문에 '한방 더'라는 이미지의 애칭으로 굳혀졌다. 프로야구 스피리츠 시리즈에서도 연발(連発)의 상위호환의 전용 능력으로 오카와리가 있는데, 홈런을 치면 멀티홈런을 칠 때까지 파워가 상승하는 능력이 있으며 연발보다 오카와리의 효과가 더 크다.
오른쪽이 무라카미 마리에.
2살 연상의 탤런트 무라카미 마리에와 2008년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3남을 두고 있다. 장남은 2009년 7월 22일생, 차남은 2011년 12월 3일생, 3남은 2014년 6월 12일생이다.
- 이대호가 일본에 진출했을 당시 한국 언론에서 라이벌로 거론하기도 하였는데, 사실 두 사람의 타격 스타일은 많이 다르다. 나카무라 다케야가 압도적인 장타력을 앞세운 스테레오 타입 슬러거라면, 이대호는 기본적으로 교타자에 타고난 파워가 더해진 스타일이다.
- 팀 후배 유망주 야마카와 호타카가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통통한 체형과 장타력 등 닮은 점이 많아 기대를 받았고, 오카와리 2세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2018년 포텐이 터지면서 세이부의 4번타자 자리를 계승했지만, 2023년에 강간 논란이라는 불상사를 일으킨 뒤 FA로 팀을 떠나면서 구단 이미지에 먹칠을 해버렸다.
- 오랜 경력과 준수한 성적을 자랑하지만, 잦은 부상으로 정작 국가대표와는 인연이 별로 없었다. 32세가 된 2015년에 프리미어 12 국가대표로 처음 차출되었으나 준결승에서 한국에게 패해 우승이 좌절되었고[8], 2년 뒤 WBC에서는 노쇠한 기량으로 인해 국대 홈런타자 자리를 뒷 세대의 쓰쓰고 요시토모나 나카타 쇼에게 물려주면서 이 이후에 국가대표로서는 뽑히기 어렵게 되었다. 3루수 포지션엔 장타력은 나카무라보다 밀리지만 대신 우월한 수비력을 가진 마츠다 노부히로라는 대체제가 있고, 그리고 그 뒤에도 후배인 야마카와 호타카가 충분히 그의 자리를 채워주고 있기에 사실상 국가대표에서의 경쟁력도 밀린다. 어찌보면 양준혁과 비슷한 케이스의 국가대표에서는 비운의 선수.
- 2살 아래의 동생 나카무라 미츠스케도 야구선수로 포지션은 형과 똑같은 3루수. 그러나 플레이 스타일은 형과 반대로 타격보다는 수비로 승부를 보는 똑딱이 3루수이며 키는 형과 비슷하지만 홀쭉한 몸매를 가졌다. 오사카토인고교를 졸업하고 교토산업대학에 진학했으며 그 후 프로에 가지 못하고 회사를 다니며 사회인야구 클럽팀에서 뛰고 있다.[9]공교롭게도 사회인야구 클럽팀 대회 결승이 형의 홈구장인 메트라이프 돔에서 열렸고 그 곳에서 대회 우승에 성공했다.
- 장남인 나카무라 유토도 야구를 한다고 한다.#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초등학교 6학년인데도 벌써 키가 170cm다.
- 2018년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한 다음 잔류했는데, 그 이유가 "FA권한을 가지기 귀찮다"였다(...)
- 타격 연습 시 낮은 볼, 변화구 등 다양한 구질에 대처하기 위해 스파이크 대신 그라운드에서 잘 미끄러지는 신발을 신는다. 그리고 땅볼 타구 대신 타구를 띄우는 데 중점을 둔다.
- 고교 동기생 이와타 미노루는 '흔들림이 없는 무서운 타자', '조금이라도 실투가 들어가면 홈런으로 연결하는 타자'로 그를 정의했으며 나카무라가 통산 2,000삼진을 당하자 '오랜 기간 동안 홈런을 쳤기 때문에 그런 기록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며 오히려 칭찬했다.
- 서태웅처럼 집에서 5분 거리로 가깝다는 이유로 야구명문고인 오사카 토인고교에 진학했다고 한다. 다만 나카무라가 진학할 때는 오사카 토인고교가 지금같은 위상까지는 아니었는데, 한 학년 아래인 니시오카 츠요시도 원래 PL학원고등학교에 가려다가 떨어져서 PL을 이기겠다는 각오로 토인에 진학했다고 한다. 이후 오사카토인은 경쟁자인 PL학원이 가혹행위 논란 등이 연달아 터져 사실상 폐부되면서 오사카 최고의 야구 명문이자 코시엔에서 손꼽히는 강호 학교가 되었다.
- 신인 시절부터 60번을 달고 있는데 이유는 별 거 없고 남는 번호 중 본인 덩치에 어울리는 번호를 단 것. 등번호에 별로 관심이 없는지 바꿀 생각은 없었다고.
5. 관련 문서
[1] その胸を焦がす 炎のままに 気迫で打ち抜くんだ バックスクリーン(그 가슴을 태우는 불길과 같이 기백으로 꿰뚫어라 백스크린/소노 무네오 코가스 호노오노 마마니 키하쿠데 우치누쿤다 박 스크린)[2] 2016년까지 규정타석을 채운 시즌에는 항상 홈런왕을 수상했다.[3] 이정도 출루율과 타율간의 간극을 보였던 타자는 약먹던 시절의 베리본즈를 제외하면 야구 역사에서 찾기 힘들다. 물론 나카무라의 이러한 스탯이 시즌 내내 유지되지도 않았고.[4] 다만 메히아는 2018년부터 퇴물이 돼서 거의 대타로 나오고 있다. 2019년과 2020년 2년 연속 2군에서 개막을 맞이하는 굴욕도 겪었고.[5] 메히아가 1군에 못 올라오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사람이 고정적으로 지명타자를 차지해서이다. 타격은 선구안이 굉장히 뛰어나고 발 빠른 중거리포였지만 현재는 도루는 사실상 하지 않으며 장타도 뜬금포 정도밖에 없으며 강점이었던 출루능력도 예년만 못하다. 그러나 명구회 가입을 목전에 뒀던 선수라 꾸준히 주전으로 기회를 줄 듯하다.[6] 1루수 자리에 굉장히 애착이 큰 상태라 지명타자로 돌릴 가능성은 낮지만 쿠리야마 때문에 어차피 지명타자로 돌릴 수도 없다.[7] 주전 3루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던 유틸리티맨 토노사키 슈타가 아사무라 히데토의 FA 이적 후 주전 2루수 자리를 차지했고 이후 세이부가 키워낸 주전급 내야수는 없다.[8] 이 대회에서도 부상 때문에 거의 벤치 멤버로 나왔다. 도쿄 대첩(야구)으로 불리는 준결승전 마지막 아웃카운트의 주인공으로, 대타로 나와 바운드가 상당히 큰 땅볼을 때렸으나 3루수 황재균이 숏바운드로 잘 잡은 뒤 1루에 송구하여 아웃됐다.[9] 프로야구선수들을 보면 부모, 형제 중에 프로야구 선수는 아니지만 대학까지 야구선수를 했으며 사회에 나가서도 사회인야구에서 꾸준히 선수로 뛰는 경력을 가진 사람이 상당히 많다. 이시미네 쇼타, 마츠다 노부히로, 야스다 히사노리 등. 어떻게 보면 오미네 유타, 에무라 나오야, 스미 코타, 타나카 야스히로, 도노우에 나오미치, 나카자키 쇼타 등 부모, 형제가 나란히 프로에 가는 것은 집안 대대로 훌륭한 야구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물론 집안 대대로 백업/2군인 애매한 집안도 있고, 같은 집안인데 몇 명은 최고의 대스타인데 나머지는 2군전드나 프로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10] 설정상 신노스케 가족이 사는 곳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연고지인 사이타마현이다.[11] 영상 초반부 녹화 장면으로 보아 본인이 직접 녹음까지 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