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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F-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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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AA_XF-107A.jpg
노스 아메리칸 YF-107 울트라 세이버 (North American YF-107)[1]

1. 제원2. 개발 목적3. 엔진만 바꾸면4. 독특한 인테이크5. 생산과 탈락6. 관련 문서

1. 제원

형식: 단발 단좌 시제 전투기
개발 및 제작: North American Aviation
전장 / 전폭 / 전고: 18.85 m / 11.15 m / 5.89 m
익면적: 35.0 m²
탑승인원: 1명(테스트 파일럿 Bob Baker)
초도 비행: 1956년 9월 10일
중량: 10,295 kg / 18,033 kg / 18,841 kg
동력: 프랫&휘트니 YJ75-P-9 터보제트 엔진 1기 (추력 24,500 lbf)
최대 속도: 마하 2 이상
순항 속도: ?
항속거리: 3,885 km
상승한도: 16,220 m
상승률: 204 m/min.
무장: 20mm M39 기관포 4문 / 하드포인트 6개소 4.5톤의 폭장 또는 열핵폭탄
생산수: 3대
프로그램 비용: 1억 580만 달러

2. 개발 목적

F-107은 당시 눈부신 스피드로 진보하는 제트 엔진 관련 기술이 탄생시킨 기종이었다. 1950년대는 2차대전 이후에 실용화 단계에 들어선 제트 엔진이 그야말로 무서운 스피드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영국1950년 1월에 이미 바이패스에 혁신적인 재설계가 더해진 롤스로이스 콘웨이(Rolls-Royce Conway)로 터보팬 엔진의 영역에 발을 내딛었고, 뒤늦게 엔진 개발에 뛰어든 프랑스램제트 엔진의 연구에 역량을 모으고 있었다. 미국의 경우는 2차 대전 당시 영국으로 받은 기술지원에 자체 연구 개발을 더해서 추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었으며. 이와 같은 제트 엔진의 세대 교체는 기존의 항공기에 신형 엔진을 탑재하면 아예 전혀 다른 기종으로 탈바꿈하는 케이스가 나타나고 있었다.

3. 엔진만 바꾸면

1951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1954년부터 배치가 시작된 노스아메리칸 F-100 수퍼 세이버 또한 이러한 유혹에 휩쓸렸고, 더 강력한 엔진을 장비한 전투폭격기로 강화시킬 계획으로 개발이 시작된 예였다. 따라서 개발 초기만 해도 대규모의 재설계나 수정이 필요없을 것으로 여겨져 F-100B라는 명칭으로 연구가 시작되었으나, 개발진들은 곧 이 작업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공군 측에 아예 신기종에 붙이는 새 번호를 신청하게 된다. 미 공군은 개발 시기에 따라 기체번호를 붙여주고 있었던 탓에 F-106 다음으로 개발이 시작된 노스 아메리칸의 신형 전투기에는 F-107A라는 명칭을 주었다. 이윽고 공군은 1953년 10월 20일에 3대의 프로토타입을 먼저 주문했고, 1954년 8월에는 추가로 6대를 더 발주하게 된다.

4. 독특한 인테이크

F-107에 새로 장비된 엔진은 후연기를 켜면 24,500 파운드의 고추력을 발휘하는 프랫&휘트니 YJ75-P-9이었는데, 길이는 거의 그대로였지만 지름이 J57의 990.6mm에서 1,092 mm로 굵어져 F-100에 그대로 설치하기에는 너무 컸다. 따라서 기수에 위치하고 있던 에어 인테이크 구조를 그대로 활용하면 노즈 콘이 너무 작아져 새로 개발한 레이더와 화력통제장치를 탑재할 공간이 없었다. 즉, 인테이크의 위치를 옮길 필요가 생긴 것이다.

노스 아메리칸 기술진들은 이에 심사숙고를 거듭하다가 기수 아래로 옮긴 모델 NA-211과 동체 위로 옮긴 모델 NA-212 두 가지를 시험하기로 했다. 풍동 터널을 이용한 연구 결과, NA-212의 설계안이 채택되었다. 이 인테이크에는 공기 흡입량을 조절하기 위해서 유압으로 작동하는 가변 단면 덕트가 채택되었고, 이 시스템은 엔진의 출력 상태에 연동되어 자동으로 작동하게끔 만들었다. 훗날 이 인테이크는 더 발전하여 A-5XB-70에 채택되기도 한다.

이처럼 인테이크가 옮겨져 완전히 다른 인상으로 바귄 F-107A는 그것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주날개와 이어진 동체에는 새롭게 규명된 면적법칙을 적용했으며, 수직 미익도 커지고 전유동식 수평 미익을 채택하는 등 여러 부분에 걸쳐 개량이 진행되었으나 날개와 수평 미익의 형상은 F-100과 다름이 없었다. 롤 제어에는 스포일러를 붙였고, 나중에는 조종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피치와 요 댐퍼를 추가했다. F-107은 모두 합쳐 7개의 하드포인트가 있었는데, 날개에 각 3개씩, 그리고 가장 무거운 핵폭탄은 동체 중앙 파일런에 장착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처럼 인테이크를 동체 위로 올리자 동체 하부에 공간이 여유가 생기자 여기에 61킬로톤의 위력을 지닌 Mk 7 핵폭탄을 반매입식으로 장착하도록 만들었는데, 이 구조로 인해 F-107은 인테이크에서 생성된 강력한 충격파가 막 떨어뜨린 폭탄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효과가 있어서 초음속으로 날면서도 폭탄을 투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독특한 구조로 인해 조종사의 후방 시야가 방해받는 문제와 사출좌석을 작동시킬 때 상부 구조물과 부딛힐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F-107은 당시 유행하던 핵만능주의미사일 만능주의에 영향으로 인해 제공 임무보다는 전폭기로서의 능력에 촛점이 맞춰져 이런 의견들은 애써 무시되었다. 스탭들은 이 전투기를 가리켜 수퍼 세이버를 뛰어넘는다는 의미를 담아 울트라 세이버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5. 생산과 탈락

F-107A의 1호기 NA 55-5118은 1956년 9월 10일 테스트 파일럿 밥 베이커(Joel Robert Baker : 1920~2011)가 조종간을 잡고 처음 실시된 공식 비행에서 곧바로 음속을 돌파해 마하 1.03을 기록했다. 하지만 착륙 스피드가 빨라 드래그슈트를 펼치며 택싱하는 동안 노즈기어가 주저앉아버렸고, 기체는 약간의 수리와 보강이 필요해졌다.
미 공군은 XF-107과 YF-105를 놓고 비교 심사를 한 결과 폭탄창을 갖추고 있어 폭장량에 더 여유가 있는 F-105를 채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원래 이 경합은 처음부터 F-105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 격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공정한 게임은 아니었다. 울트라 세이버로 불리던 이 전투기는 시제기 3대가 완성된 상태에서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 이에 대해 경쟁사인 리퍼블릭 사의 테스트 파일럿 헨리 크레시빈(Henry Crescibene : 1927~2017)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우리 리퍼블릭 기술진들의 인식은 공군이 전통적으로 노스 아메리칸을 편파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에 의견을 함께 했지요. 노스 아메리칸이 내놓은 설계는 과연 우수했지만, 공군이 우리보다 그 디자인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승리한 건 동체에 폭탄창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나중에 베트남전에서 우리 선더치프 전폭기들은 그 공간을 단순히 365갤런 연료탱크로 썼던걸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이죠."

그렇지만 F-107은 취소되었다라도 그 독특한 형상과 뛰어난 가속 성능만큼은 높이 평가되었던 탓에 연구 실험은 계속 되었다. M39 기관포를 장착한 1호기와 3호기 55-5120은 1957년에 공군에서 NASA로 이관되어 1호기는 4회, 3호기는 42회의 각종 비행 테스트에 활용되었는데, 이때 수평 비행에서 가뿐하게 마하 2를 돌파해버리는 우수한 성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운이 없었던 3호기는 1959년 9월에 저명한 조종사 스캇 크로스필드(Albert Scott Crossfield : 1921~2006)가 타고 활주로에서 이륙하다가 일어난 사고로 크게 부서졌고, 이용가치가 없어져 그대로 사격장에 표적으로 옮겨진 다음 거기서 최후를 맞았다.

남아있던 2대 가운데 2호기 55-5119는 현재 오하이오주 데이턴에 있는 국립 미공군 박물관에 실내 전시되어 있고, 1호기는 애리조나주 투산의 피마 항공우주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6. 관련 문서



[1] 사실 YF-107은 공식적으로 받은 이름이 없다. 다만 슈퍼 세이버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 '슈퍼 슈퍼 세이버'라는 별칭이 잠깐 붙었고, 한참 이후에 '울트라 세이버'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조종사들은 특유의 흡입구 형상 때문에 '맨 이터'라는 별명으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