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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f9d83e><colcolor=#00386a> 청 제11대 황제 광서제 | 光緖帝 | |||
| | |||
| 광서제의 어진 | |||
| 출생 | 1871년 8월 14일 | ||
| 청나라 직예성 북경 공왕부 | |||
| 사망 | 1908년 11월 14일 (향년 37세) | ||
| 청나라 직예성 순천부 중난하이 영대 함원전 | |||
| 능묘 | 숭릉(崇陵) | ||
| 재위기간 | 청 제11대 황제 | ||
| 1875년 2월 25일 ~ 1908년 11월 14일 (33년 263일)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9d83e><colcolor=#00386a> 성씨 | 중국식: 애신각라(愛新覺羅) 만주어: 아이신기오로(ᠠᡳ᠌ᠰᡳᠨ ᡤᡳᡠ᠋ᡵᠣ) | |
| 휘 | 중국식: 자이톈(載湉) 만주어: 자이탼(ᡯᠠᡳ ᡨᡳᠶᠠᠨ) 한국식 독음: 재첨 | ||
| 부모 | 친부 순친왕 혁현 친모 예허나라 완전 | ||
| 양부 문종 현황제 양모 효정현황후[1] | |||
| 형제자매 | 7남 3녀 중 2남 | ||
| 배우자 | 효정경황후 예허나라씨 | ||
| 후궁 | 단강황귀비 타타라씨, 각순황귀비 타타라씨 | ||
| 신장 | 161~164cm[2] | ||
| 한호 | 바다랑아 도로 한(ᠪᠠᡩᠠᡵᠠᠩᡤᠠ ᡩᠣᡵᠣ ᡥᠠᠨ᠌) | ||
| 칸호 | 바다르굴투 토로 칸(ᠪᠠᠳᠠᠷᠠᠭᠤᠯᠲᠤ ᠲᠥᠷᠥ ᠬᠠᠭᠠᠨ)[3] | ||
| 묘호 | 덕종(德宗) | ||
| 시호 | 중국식: 동천숭운대중지정경문위무인효예지단검관근경황제(同天崇運大中至正經文緯武仁孝睿智端儉寬勤景皇帝) 만주어: 암발링우 황디(ᠠᠮᠪᠠᠯᡳᠩᡤᡡ ᡥᡡᠸᠠᠩᡩᡳ) | ||
| 연호 | 1875년 ~ 1908년 중국식: 광서(光緒) 만주어: 바다랑아 도로 | ||
1. 개요
청나라의 제11대 황제이다.청나라 최초의 방계 혈통 황제이며, 원래대로라면 1항렬 1황제의 원칙[4]에 따라 계승권 자체가 없어 방계 황족으로서 풍족한 환경에서 편하게 살 운명을 타고났으나 큰어머니이자 이모인 서태후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옹립되어 사실상 서태후의 꼭두각시로 살아가다가 결국 독살을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한편으로는 쓰러져 가는 청나라를 지키려고 무술변법을 시도하는 등, 마지막까지 고군분투했던 안타까운 군주이기도 하다.
그의 시기 청나라는 멸망의 조짐이 보이던 시기였다. 민란으로 인해 흉흉해진 민심, 열강 세력들의 침략이 이어지고, 광서제 말기에 이르자, 청나라 정부는 북경 주변만 통치가 가능해지고, 지방에서는 군웅할거가 발생하여 정부의 권력은 상실되었다. 한편 광서제가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친조카가 즉위했으나, 약 4년 만에 강제 퇴위당하며 청나라도 결국 멸망했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사진을 찍은 황제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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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고궁박물원의 녹지어룡도화식병 전면의 그림 |
| 잉어가 승천해 용이 되려고 하지만 하늘에 이미 다른 용이 가로막고 있어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광서제의 처지와 유사하다.[5] |
무려 34년간 청나라의 황제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37년의 짧은 인생을 살고 요절했다. 특히 모든 것을 서태후에게 통제당하며 산 데다 황제가 되었어도 실권을 서태후한테 거진 다 빼앗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변법자강운동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에는 변법자강운동이 실패하자 여생을 갇혀 살다가 나중에는 독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게다가 그가 즉위할 때 그나마 눈곱만큼이라도 가망이 있었던 청나라는 그가 죽을 무렵에는 사실상 멸망 직전에 놓였다. 광서(光緒), 즉 빛나는 후계라는 연호가 무색하다. 하지만 변법자강운동 등을 보면 결코 의지가 없진 않았으며, 당대의 평가를 보면 총명하고 당시 정세 파악도 정확히 하는 등 유능한 군주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꼭두각시여도 향락에만 빠진 동치제와 다른 점은 그 부분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청나라 개혁의 의지 때문에 누군가에게 독살되었다. 그래서 청국의 마지막 명운을 지키려던 광서제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이들도 많다.[6]
물론 변법자강운동이 완벽한 근대화의 성공을 보장할 순 없었겠지만, 적어도 청나라 황실 지지 입장에서 보면 "청나라의 멸망을 늦추고 최소한 신해혁명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강력한 보수파의 거두인 서태후가 살아있는 한, 청나라의 근대화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또한 서태후가 찬성했다고 쳐도 비슷하게 비유되는 갑신정변이 그렇듯, 위로부터의 근대화라는 큰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서태후가 처음엔 지지했지만, 이후 철회한 것도 이런 무리한 개혁의 위험성과 실각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란 말도 있다. 다민족에다 당시 수억 인구와 넓은 영토를 자랑한 청나라라면 그 위험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또 개혁을 하지 않으면 그것 역시 살아남기 어려웠고 이는 현실이 되었다. 단, 정말 그가 실수한 게 있다면 정치 초짜 티를 벗지 못한 채 운전대를 잡아 서툴었다는 것[7]이며, 그래서 너무 급하게 개혁을 밀어붙이려 한 점이다. 급변한 정책 때문에 초래될 사회적 혼란에 더해 과거시험 응시자 + 관청과 녹영 축소로 생긴 실직자 + 지배층 만주족 집단이 개혁에 반발할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게 광서의 패인이 되었고, 고로 기득권을 가진 신사층 대부분의 여론이 너무 좋지 않았기에 무술정변이 그들 민심을 얻어 성공해 버린다.
왕조의 직계 혈통이 단절되어 즉위한 방계 출신 군주이며, 실권자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강제로 군주가 되어 제대로 된 정치를 하지 못하고 요절했다는 점에서 청나라판 철종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강한 개혁의 의지를 가졌지만 외세의 침탈과 이미 망조가 든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뜻을 펼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고종도 많이 떠오르는 인물이다. 재미있는 점은 광서제와 고종은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이며 또한 각 왕가 내에서의 항렬자가 한자까지 같은 재(載)자라는 것이다. 다만 고종은 본인이 주도하여 나라를 말아먹기도 했고, 또 그 나라를 되찾으려고 뭔가 하려고도 했다는 점에서 행동력이 있었으므로 완전한 동일선상에 두기는 어렵다.
4. 여담
광서제는 개인적으로도 매우 불행한 황제였다. 광서제는 서태후의 압박 때문에 그녀의 조카인 효정경황후(융유황태후) 예허나라씨(隆裕皇后 葉赫那拉氏)[8]와 결혼해야 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불행했는데 광서제는 고집 세고 성격도 나쁜 황후를 싫어해서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애정을 주지 않았다. 특히 융유황후는 후비들을 괴롭히고 남편인 광서제를 감시하는 역할도 했기에 광서제가 더욱 미워했다. 서태후를 모셨던 궁녀의 증언에 따르면, 문안 인사를 온 황후가 이제 나가보라는 광서제의 말을 듣고도 침전에서 나가지 않고 버티자 격노한 광서제가 황후의 머리채를 잡고 침전 밖으로 끌어냈을 정도였는데, 이게 광서제가 붕어하기 10일 전의 일이었다.| 파일:external/img.tv.cctv.com/IMAG1239844275894863.jpg |
| 진비 |
광서제는 1900년 의화단 운동으로 열강 연합군이 베이징을 습격할 때 잠시 시안(西安)으로 탈출했지만, 그 사이에 진비가 서태후에게 살해된다. 이때 진비 역시 유폐되어 있었는데, 서태후는 진비를 죽일 생각으로 "너무 예뻐서 함께 탈출하다가 외적에게 강간을 당할 수 있다." 는 이유를 내세워 진비에게 자결을 강요했다. 일설에는 진비가 황제를 자금성에 남겨 연합군과 협상을 통해 서태후 일당을 일소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하며, 이를 우려한 서태후가 "너 먼저 우물에 빠지면 나도 따라서 빠지마"라고 설득한 다음 유유히 피난길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아니며 설득하기는커녕 진비가 자살 강요를 거부하자 빡친 서태후가 저 년을 죽여버리라며 고함을 지르자 반항하는 진비를 환관 최옥귀가 강제로 우물에 밀어 넣어 죽였던 것이다. 이때 그녀의 나이 향년 24세였다. 후일 서태후는 뻔뻔하게도 "내가 화낸 건 맞지만 죽이라고 했던 건 아닙니다" 라며 딱 잡아뗀 뒤, 최옥귀에게 죄를 뒤집어씌웠고 정작 최옥귀는 처벌하지 않고 그를 출궁시키는 것으로 끝냈다. 진비의 가족들이 슬퍼하며 우물에서 그녀의 시신을 건져올릴 때도 광서제는 유폐당한 신세라서 차마 나타나지 못했다. 광서제의 시종이 현장에서 진비가 생전에 썼던 낡은 휘장 하나를 슬쩍 가져와서 그에게 갖다주었을 때 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 광서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고 한다.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에서 제일 유명한 유물 중 하나인 취옥백채가 광서제의 결혼 때 혼수품으로 들어온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다만 국립고궁박물원 측에서는 해당 전설을 소개하면서도 청조의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며 후대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청나라 황제 중 선통제와 함께 사진을 찍은 황제다. 문서 최상단의 가마에서 내리는 사진을 포함해 꽤 사진자료가 남아있는 편이지만 아쉽게도 공식적으로 확실하게 광서제의 모습을 찍은 것으로 인정받은 사진은 가마에서 내리는 사진 딱 한 장뿐이다. #
레지널드 존스턴의 《자금성의 황혼》에 나온 광서제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다.
광서제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자료이다. 출처를 참고하면 사진 아래에 '광서황제형상'이라는 설명이 적혀있다.
마찬가지로 광서제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자료로, 미국 유타주 오그던(Ogden)에서 1894년부터 1907년까지 판매된 담배 카드(Ogden's 'Guinea Gold' Cigarette Cards) 등에서 광서제의 것으로 사용되었다. 다만, 해당 카드에서는 앉아 있는 인물이 아닌 좌측의 어린 인물을 광서제로 적시하였다. 어린 광서제 옆에 앉아있는 인물은 광서제의 친부인 순현친왕 혁현이라고 한다. 출처 허나 "이 사진이 광서제일 리 없다." 는 지적도 있는데, 3세에 즉위해서 어린 아이였던 시절에도 광서제는 공식적으로는 청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 황제였다. "아무리 부자 간의 정과 의리가 있다고 하나 감히 친왕만 앉고 황제를 세워둔 채 사진을 찍을 일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사진을 본 푸이는 이것이 광서제의 사진이 아니라 혁현의 둘째 아들인 자신의 부친, 즉 2대 순친왕 재풍과 찍은 사진이라 지적하였다고 한다.
1902년 1월 8일 프랑스 출신 기자가 가마에서 내리는 광서제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으며 현재까지는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광서제의 모습을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면에서 찍은 사진은 아니기 때문에 광서제의 얼굴은 초상화로만 알 수 있다.
37세에 안타깝게 요절한 것 때문에, 전형적인 전근대 중국 황제 이미지로 기억되는 마지막 인물이 되었다.[12] 마치 클레오파트라 7세가 전형적인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이미지로 기억되는 마지막 인물이고 잔 다르크가 중세 프랑스 왕국의 명장으로 명성을 떨치는 마지막 인물인 것과도 비슷하다.[13] 만약 그가 천수를 누렸다면 선통제처럼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봤을 수도 있으며, 변수에 따라서는 말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이나 냉전에 휘말리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14]
5. 창작물에서
- <신 중화일미> 애니메이션에서는 고증에 맞지 않게 상당한 뚱뚱보에, 복식도 이전의 한족 왕조의 황제들이 입었던 한푸, 정확히는 곤복과 비슷한 옷과 면류관의 차림으로 등장한다. 청나라 황제 복식보다는 차라리 선조격 국가인 금나라[15]의 황제 복식에 더 가까운 스타일이다.
- 《천공의 옥좌》에서는 가상의 나라 덕나라의 황제가 나오는데, 황태후의 양자가 되어 황제가 되고, 충신들과 같이 황태후를 내치려다 주인공의 오라버니(= 환관)가 결정적인 상황에서 배신을 하여 결국 유폐[16] + 강제결혼[17]까지 하고, 그 여파로 자유롭지 못하다. 광서제의 나라와 이름, 성씨, 태어난 과정 그리고 어이없게도 허수아비인 상태라도 "국정 최종 결정자"이지만 의협 일지매로 나오면서 백성을 구하는 일을 제외하면 전개 과정은 광서제와 똑같다.
- 《고종, 군밤의 왕》에서는 강남에서 올라온 백만인소를 읽고 각성하여 의회를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으로 손덕명과 원세개를 등용하여 친정에 나섰다. 하지만 청이 계속 '천조'로 남을 수 있게 무력을 동원하여 급히 변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토지개혁 때문에 외번과 강남의 민심이 요동쳤고, 권력에 취한 원세개가 쿠데타를 일으켜 자금성에 유폐되는 신세가 됐다. 조선의 개입으로 쿠데타를 제압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조바심과 편벽된 마음 때문에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황권을 공화정부에게 이양하였고, 주나라 이후 중원이 수천 년간 고집했던 천조질서가 소멸했음을 선언했다. 이후 등장은 없지만 타타라씨가 낳은 아들이 다음 황제가 되고 자신의 손자가 또 그다음 황제가 되는 등 원 역사보다 월등히 행복한 삶을 살았다. 자세한 내용은 고종, 군밤의 왕/등장인물 문서 참조.
- 《조선, 혁명의 시대》에서는 의화단 운동 당시 서태후의 꼭두각시로, 사로잡혀 서경으로 끌려가다 9개국 연합군의 일원이던 대한제국군에게 구출되어 자유를 되찾는다. 이후 서태후는 정치적 개입을 완전히 포기하는 조건으로 북경으로 돌아오고 유폐된다. 이를 기점으로 친한 군주로서 변법자강운동을 재개한다. 1907년 현재 헌법을 반포하고 입헌군주제 선언을 준비하고 있으나 혁명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주인공인 이선의 변경 분리 계획의 일부로서 만주로 물러나 나라와 황실은 보존할 수 있을 듯하다. 주인공을 존경하여 이선과 정상회담을 하기도 했다. 기존 역사와 같이 독살당하지는 않고 변법자강운동도 나름 더 길게 시행되어 청나라의 수명도 연장되었지만 과로에 시달리다 결국 단명하게 되었고 그의 죽음으로 구심점이 사라진 중국은 분열된다. 그리고 이선의 계획대로 청나라는 북경은 물론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한 요동 지역 대한제국의 종속국으로 전락하였지만 나라와 황실은 살아남는다.
- 2010년 드라마 <창궁지묘>에 등장한다. 서태후의 꼭두각시로 살다가 독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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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권 「미사한등전(米思翰等傳)」 269권 「색액도등전(索額圖等傳)」 미사한 · 고팔대 · 마이한 · 전육선 · 두진 · 살목하 색액도 · 명주 ,여국주 불륜, 270권 「학욕등전(郝浴等傳)」 271권 「서건학등전(徐乾學等傳)」 272권 「탕약망등전(湯若望等傳)」 학욕 · 양소온 · 곽수 서건학 ,옹숙원, · 왕홍서 · 고사기 탕약망 · 양광선 · 남회인 273권 「이솔태등전(李率泰等傳)」 이솔태 · 조정신 · 낭정좌 · 동봉채 · 마륵길 · 시유한 304권 「장조등전(張照等傳)」 장조 · 감여래 · 진덕화 · 왕안국 · 유오룡 · 양여곡 · 장태개 · 양석불 · 팽계풍 · 손희렴 · 몽린 305권 「전진군등전(錢陳群等傳)」 전진군 · 심덕잠 · 김덕영 · 전재 · 제소남 · 진조윤 · 동방달 · 전유성 · 추일계 · 사용 · 왕창 306권 「조사일등전(曹一士等傳)」 307권 「위위곽전(魏韋郭傳)」 조사일 · 이신수 · 호정 · 중영단 · 시조생 · 저인지 윤계선 · 유우의 · 진대수 · 장윤수 · 진굉모 308권 「나소도등전(那蘇圖等傳)」 나소도 · 왕초증 · 서사림 · 윤회일 · 왕서 · 방현 · 풍광유 · 양석불 · 반사구 · 호보전 · 왕창 318권 「아계전(阿桂傳)」 319권 「우민중등전(于敏中等傳)」 장가아계 우민중 · 뉴호록 화신 · 소릉아 322권 「두광내등전(竇光鼐等傳)」 323권 「황정계등전(黃廷桂等傳)」 두광내 · 이수방 · 범의빈 · 조석보 · 사진정 · 전풍 · 윤장도 황정계 · 악미달 · 양정장 · 장유공 · 이시요 · 오미태 · 관보 324권 「방관승등전(方觀承等傳)」 방관승 · 부찰부명안 · 주원리 · 이한 · 이세걸 · 원수동 · 정대진 · 유아 · 육요 · 관간정 · 장조규 · 호계당 325권 「이청시등전(李淸時等傳)」 326권 「개태등전(開泰等傳)」 이청시 · 요입덕 · 이굉 · 하위 · 오사작 · 살재 · 난제석 · 한횡 개태 · 아이태 · 계림 · 원푸 340권 「왕걸등전(王傑等傳)」 341권 「경규등전(慶桂等傳)」 왕걸 · 동고 · 주규 경규 · 유관지 · 대구형 · 대균원 · 탁진 · 장후 · 노음부 342권 「보녕등전(保寧等傳)」 343권 「서린등전(書麟等傳)」 보녕 · 송균 · 배탄 · 박계특 서린 · 각라길경 · 각라장린 · 비순 · 장백령 · 백린 344권 「늑보등전(勒保等傳)」 345권 「영보등전(永保等傳)」 늑보 · 액륵등보 ,호시현, · 덕릉태 영보 · 혜령 · 의면 · 영선 · 복녕 · 경안 · 태승은 386권 「문경등전(文慶等傳)」 387권 「숙순등전(肅順等傳)」 388권 「계량등전(桂良等傳)」 문경 · 문상 · 보윤 숙순 · 목음 · 초우영 계량 · 서린 · 관문 · 문욱 389권 「백준등전(柏俊等傳)」 390권 「가정등전(賈楨等傳)」 391권 「왜인등전(倭仁等傳)」 백준 · 인괴 · 서상 · 전경 가정 · 주조배 · 주봉표 · 단무겸 왜인 · 이당계 · 오정동 392권 「새상아등전(賽尙阿等傳)」 393권 「이성원등전(李星沅等傳)」 394권 「서광진등전(徐廣縉等傳)」 새상아 · 눌이경액 이성원 · 주천작 · 노숭광 서광진 · 엽명침 · 황종한 395권 「상대순등전(常大淳等傳)」 상대순 ,쌍복 왕금수 왕수동, · 장문경 · 도은배 ,다산, · 길이항아 · 나준전 · 서유임 · 왕유령 396권 「오문용전(吳文鎔等傳)」 397권 「육건영등전(陸建瀛等傳)」 오문용 · 반탁 · 등이항 육건영 · 양정문 · 청린 · 숭륜 · 하계청 399권 「여현기등전(呂賢基等傳)」 여현기 · 추명학 · 대희 · 장비 · 황종 · 도정걸 · 풍배원 · 손명은 · 심병원 · 장석경 400권 「하계진등전(何桂珍等傳)」 401권 「상영등전(向榮等傳)」 하계진 · 서풍옥 · 온소원 · 김광저 · 이맹군 · 조경현 상영 · 화춘 · 장국량 402권 「오란태등전(烏蘭泰等傳)」 오란태 · 등소량 · 주천수 · 요문선 · 문서 · 팽사거 · 장옥량 · 노점오 · 유계삼 · 서쌍래 · 구등룡 · 왕국재 · 호곤원 · 대문영 403권 「승보등전(勝保等傳)」 404권 「승격림심등전(僧格林沁等傳)」 승보 · 탁명아 · 진금수 · 덕흥아 승격림심 · 서통액 · 항령 · 소극금 · 하건오 · 전순 · 사영춘 · 악선 405권 「증국번전(曾國籓傳)」 406권 「낙병장등전(駱秉章等傳)」 407권 「강충원등전(江忠源等傳)」 증국번 낙병장 · 호림익 강충원 · 나택남 408권 「이속빈등전(李續賓等傳)」 409권 「탑제포등전(塔齊布等傳)」 이속빈 · 정예의 · 증국화 · 이속의 · 왕진 · 유등홍 · 장익풍 탑제포 · 필금과 · 다융아 · 포초,송국영 누운경 담등달, · 당인겸 · 유송산 410권 「팽옥린등전(彭玉麟等傳)」 411권 「이홍장전(李鴻章傳)」 팽옥린 · 양악빈 · 왕명산 · 손창개 · 양명해 · 사준여 이홍장 412권 「좌종당전(左宗棠傳)」 413권 「증국전등전(曾國荃等傳)」 좌종당 증국전 · 심보정 · 유곤일 414권 「이신전등전(李臣典等傳)」 이신전 · 소부사 · 이원길 · 유연첩 · 팽육귤 · 장시일 · 오유수 · 주남계 · 나봉원 · 이상화 · 소경연 · 오종국 415권 「황익승등전(黃翼升等傳)」 황익승 · 정의방 · 왕길 · 오가방 · 이성모 · 이조빈 · 강복산 · 유배원 416권 「정학계등전(程學啟等傳)」 정학계 · 하안태 · 정국괴 · 유명전 · 장수산 · 주성파 · 주성전 · 반정신 · 오장경 418권 「원갑삼등전(袁甲三等傳)」 419권 「낙병장등전(左宗棠傳)」 420권 「한초등전(韓超等傳)」 원갑삼 · 모창희 유장우 · 유악소 · 잠육영 한초 · 전흥서 · 증벽광 · 석보전 421권 「심조림등전(沈兆霖等傳)」 심조림 · 조육영 · 허내보 · 조광 · 주준 · 이함 · 장상하 · 나돈연 · 정돈근 · 방종로 422권 「왕무음등전(王茂廕等傳)」 왕무음 · 송진 · 원희조 · 문서 · 육록 · 서계여 · 왕발규 · 염조윤 · 뇌이함 · 도양 · 오존의 · 은조용 423권 「종직진등전(宗稷辰等傳)」 424권 「오진역등전(吳振棫等傳)」 종직진 · 윤경운 · 왕증 · 목집향아 · 유백천 오진역 · 장량기 · 모홍빈 · 장개숭 425권 「이혜등전(李僡等傳)」 426권 「왕경운등전(王慶雲等傳)」 이혜 · 오당 · 영한 · 유용 · 교송년 · 전정명 · 오원병 왕경운 · 담정양 · 마신이 · 이종희 · 서종간 · 왕개태 · 곽백음 451권 「이조의등전(李朝儀等傳)」 이조의 · 단기 · 정수창 · 증기봉 · 저유립 · 서철산 · 계중행 · 유함방 · 진횡거 · 유지개 · 이용청 · 이금용 · 김복증 ,웅기영 사복가, · 동조용 452권 「홍여규등전(洪汝奎等傳)」 홍여규 · 양종렴 · 사박 · 사극관 · 심보정 · 주기앙 ,주기조, · 종원한 · 서경장 · 서진 · 괴광전 · 진휼성 · 반민표 · 엄작림 · 당석진 · 누춘번 457권 「장동재등전(蔣東才等傳)」 장동재 · 이남화 · 동리고 · 동전승 · 우사한 · 조덕경 · 마복진 · 정문병 · 방요 · 등안방 458권 「서연욱등전(徐延旭等傳)」 서연욱 · 당형 · 하경 · 장조동 459권 「풍자재등전(馮子材等傳)」 풍자재 · 왕효기 · 진가 · 장종한 · 소원춘 · 마성치 · 왕덕방 · 장춘발 · 소득룡 · 마유기 · 오영안 · 손개화 · 소득승 · 장고원 · 구양이견 460권 「좌보귀등전(左寶貴等傳)」 461권 「송경등전(宋慶等傳)」 좌보귀 · 원영산 · 등세창 · 유보첨 · 대종건 송경 · 여본원 · 서방도 · 마옥곤 · 의극당아 · 장순 462권 「정여창등전(丁汝昌等傳)」 463권 「당경숭등전(唐景崧等傳)」 정여창 · 위여귀 · 엽지초 당경숭 · 유영복 464권 「이단분등전(李端棻等傳)」 이단분 · 서치정 · 진보함 · 황준헌 · 증화 · 양심수 · 양예 · 유광제 · 담사동 · 임욱 · 강광인 465권 「서동등전(徐桐等傳)」 466권 「서용의등전(徐用儀等傳)」 서동 · 강의 · 조서교 · 고아랍계수 · 하영년 · 희탑랍유록 · 육현 서용의 · 허경징 · 원창 · 토묵특입산 · 최가연원 471권 「성선회등전(盛宣懷等傳)」 472권 「육윤상등전(陸潤庠等傳)」 성선회 · 서징 육윤상 · 세속 · 이극탄 · 양정분 · 서방 · 노내선 · 심증식 473권 「장훈등전(張勳等傳)」 474권 「오삼계등전(吳三桂等傳)」 475권 「홍수전전(洪秀全傳)」 장훈 · 강유위 오삼계 · 경정충 · 상지신 · 손연령 홍수전 476·477·478·479권 「순리전(循吏傳)」 백등명 ,탕가상 임진단 우종요, · 송필달 · 육재신 · 장목 ,장훈(張塤), · 진여함 · 목수 ,진시림, · 요문섭 ,황정린, · 낙종린 ,최종태 조진조, · 조길사 · 장근 · 강고 ,장극억 가박, · 소사요 ,위입정 고음작 근양, · 최화 · 주중횡 · 유계 · 도원순 · 요기형 · 동국롱 · 육사 · 공감 · 진덕영 · 예복전 · 장림 · 염요희 · 남정원 · 엽신 · 시초정 · 진경문 · 주인룡 · 동화 · 이위 · 사중훈 · 이대본 · 우운진 · 장견도 · 소대업 · 주극개 ,정기 강기연 언여사 주제화, · 왕휘조 ,여돈화 주휴도, · 유대신 · 오환채 · 기대규 · 소희증 · 장길안 ,이육창, · 공경한 · 개방필 · 사소등 · 이갱예 · 이병수 · 적상경 · 장돈인 · 정돈윤 · 이문경 · 유체중 ,유후, · 장기 ,석가소, · 유형 ,서동, · 요간지 · 오균 · 왕조겸 · 조근 · 계초만 · 장작남 · 운무기 · 서대영 · 우수매 · 하왈유 · 오응연 · 유병림 ,진숭지 하자령 소세본, · 이병도 ,유주 주근인 추종준 왕무훈, · 괴덕모 · 임달천 · 방대제 · 진호 · 양영서 · 임계 · 왕인복 · 주광제 · 냉정형 · 손보전 · 가소경 · 도관준 · 진문불 · 이소 · 장해 · 왕인감 480·481·482·483권 「유림전(儒林傳)」 손봉기 · 황종희 · 왕부지 · 이옹 · 심국모 · 사문존 · 고유 · 탕지기 · 육세의 · 심윤 · 응휘겸 · 주학령 · 심호정 · 백환채 · 호승락 · 조본영 · 유원록 · 안원 · 이공 · 조포 · 이내장 · 이광파 · 장형양 · 왕무굉 · 이몽기 · 호방 · 노사 · 고동고 · 맹초연 · 왕불 · 요학상 · 당감 · 오가빈 · 유희재 · 주차기 · 성유 · 소의진 · 고염무 · 장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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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서태후가 광서제의 양어머니로서의 지위를 행사했다.[2] 161cm는 학자들의 연구결과고 164cm는 유골 조사의 키이다. 그러나 키에 대한 정보가 차이가 있는데 사진을 보면 광서제의 키는 160cm대 초반에서 160cm대 중반으로 보인다.[3] Badarɣultu Törö. 현대 몽골어로 Бадаргуулт төр хаан (Badarguult Tör Khaan)[4] 한 항렬에서는 황제도 1명만 나올 수 있다는 원칙이다. 지금까지 청나라 황가는 부자 직계 세습으로만 이루어져 문제가 없었으나, 사촌형 동치제의 항렬이 '재'자 항렬인 '재순'이라 같은 항렬자의 '재첨'은 원칙대로라면 제위를 이을 수 없었다.[5] 실제로 해당 유물은 광서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일설에는 광서제가 소장했던 화병이라 하는데 이 화병의 그림을 볼 때마다 서태후에게 휘둘리는 자신의 처지와 같다며 한탄했다고 한다. 이후 서태후가 이 화병을 보고 광서제의 의중을 알아채면서 광서제를 암살하기로 계획했다는 설도 있다.[6] 변법파는 자신들을 믿고 기용해 준 광서제를 개혁의 구심점으로 여기며 그에게 충성을 바쳤다. 담사동은 자기가 죽지 않으면 황제에게 보답할 길이 없다며 동료들의 피신 권유를 물리친 채 순순히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해외로 망명한 변법파 인사들 또한 보황(保皇) 운동을 전개하며 광서제의 복권을 적극적으로 꾀하였다. 출처[7] 사실 광서는 서태후에 매 순간을 치이며 살아갔기 때문에 정치적인 기회 자체를 이때 처음 얻은 것이고, 그마저 청이 망국 직전의 막장이라 시간이 별로 없었으므로 누구라 한들 반전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똑같이 망하기 직전의 왕조를 맡아 타의에 의해 생을 마친 숭정제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데, 숭정은 더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제 발로 걷어찬 멍부라서 그렇다.[8] 1868년 ~ 1913년. 본명은 예허나라 징펀(葉赫那拉 靜芬). 서태후의 조카로, 광서제에게는 사촌 누나가 된다. 광서제 사후 태후로 봉해졌고 선통제 때 섭정을 맡았다.[9] 1876년 ~ 1900년. 본명은 타타라 서설(他他拉 瑞雪).[10] 당시 성차별이 심한 시대인 터라 남장을 하는 여성을 좋게 보지 않았다.[11] 당시에는 사진을 찍으려면 20분이나 걸렸고 20분 동안 부동자세로 있어야 하기에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12] 중국의 마지막 황제는 후임자인 선통제이지만, 이쪽은 전형적인 전근대 중국 황제로서의 삶은 어린 나이에 짧게 경험했고 이후에는 불안정하게나마 근현대적인 삶을 살았다.[13]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둘 다 요절했다'는 것이다.[14] 동갑인 인물들 중 요안니스 메탁사스는 1941년까지, 피에트로 바돌리오는 1956년까지 살았다.[15] 정확히는 금희종 치세부터...[16] 오늘날의 자금성 중난하이[17] 당연히 아내가 될 사람은 황태후 쪽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