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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16 19:21:27

각순황귀비 타타라씨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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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청 황제 · 역대 청의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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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광서제의 후궁
각순황귀비 | 恪順皇貴妃
파일:각순황귀비.jpg
출생 <colbgcolor=#fff,#1f2023>1876년 2월 27일
사망 1900년 8월 15일 (향년 24세)
시호 각순황귀비(恪順皇貴妃)
지위 진(珍)빈 ⇒ 진비 ⇒ 진귀인 ⇒ 진비
타타랍(他塔喇)씨
가계 부친 예부시랑 장서(長敍)
언니 단강황귀비
부군 광서제
자녀 슬하 자녀 없음

1. 개요2. 생애3. 미디어에서

1. 개요

청나라 덕종 광서제의 후궁이다.

2. 생애

그녀는 13세 시절이던 1889년 언니와 함께 수녀선발에 참가하여 입선. 진빈이 된 뒤 진비로 진급했다. 광서제에게 가장 총애를 받았던 후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인에 밝고 외향적인 성격 때문에 한때 서태후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정치에 간섭하고 매관매직을 했다는 이유[1]로 서태후의 노여움을 사 귀인으로 강등되지만, 후에 진비로 복귀했다.

무술정변 후 서태후에 의해 자금성 내 냉궁에 유폐되었다. 1900년 의화단의 난이 한창일 때 서태후의 명에 의해 환관 최옥귀에 의해 우물에 던져져 죽었다. 서태후는 외모가 뛰어나 적들에게 강간당할 우려가 있으니 자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진비는 끝까지 저항하며 버텼으나 소용이 없었다. 서태후와 광서제가 북경으로 돌아온 뒤 시신은 우물에서 건져져 각순황귀비로 시호되어 서릉에 있는 광서제의 숭릉비원침에 묻혔다.

진비가 투척된 우물은 자금성 내에 진비정(珍妃井)이라는 이름으로 현존한다. 생전에 거처했던 경인궁 옆 불당인 회원당(懐遠堂)에 언니 근비가 1920년경 베껴그린 정위통성(精衛通誠)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3. 미디어에서


[1] 당시 청나라는 매관매직이 합법이었다. 후궁들의 봉급은 적은 편이어서 매관매직으로 돈을 버는 경우가 많았고, 서태후도 매관매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