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

"지금 황하의 얼음이 녹기 전에 이들을 하서(河西)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얼음이 녹은 후에는 이들이 북쪽으로 도망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 저들은 오랫동안 방랑하며 자유로운 습속을 지녔으니, 이는 마치 정원에 사는 사슴과 같다. 급히 몰아붙이면 흩어져 도망칠 것이고, 느긋하게 다루면 안정될 것이다. 내게 그들을 잘 다룰 방법이 있으니, 굳이 이주시킬 필요는 없다."

"우리를 하서(河西) 지역으로 몰아넣는 것은 우리를 장차 죽이려는 것이다!"

"신(臣)이 듣기에, 성인(聖人)은 홀로 밝음으로써 다스리지 않으며, 솥은 하나의 다리로 서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반딧불의 미미한 빛이라도 해와 달의 빛을 더욱 더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선대 신하인 안동(安同)은 일찍이 성스러운 시대의 운명을 따라 태조(太祖)께 몸을 의탁하고, 진심을 다해 힘을 바치며 험난한 상황 속에서 공을 세웠습니다. 신은 어리석고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송구스럽게도 폐하의 팔다리가 되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은혜로 신을 길러 주시고 조정의 정무를 맡기셨으니, 신으로서는 미미한 정성을 다해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하나, 노노원이 간악하고 허망한 행위로 거짓된 죄상을 꾸며내었고, 결국 하늘의 위엄이 더해져 신에게 벌을 내려졌으니, 신의 집안 사람들 모두가 주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곧 운명이지, 신의 과실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노노원은 겉으로는 충성스럽고 올곧은 척하나, 속으로는 간사한 꾀를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 그를 중용하여 심복으로 삼으셨으니, 이로써 화근이 가까운 곳에서 터질까 두렵습니다. 신은 노노원과 살아서는 원수가 되었고, 죽어서는 원한 맺힌 귀신이 될 것이나, 사사로운 이유로 노노원을 비방하거나 헐뜯은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이렇게 진실한 마음을 털어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