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73년 12월 14일부터 2017년 12월 22일까지 존재한 시험. 고입선발고사라는 이름보다는 연합고사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린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일반계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을 얻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었다. 중학생 판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연상하면 쉽다.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매월 모의고사도 실시했다. 문제 출제는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마찬가지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출제했으며, 시행은 각 교육청에서 주관했다. 비평준화 지역인 경우는 선발고사 시행일 당일에 자신이 지원서를 접수한 학교에 직접 가서 고입선발고사를 응시해야 했다.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 합격자는 교육청에서 원서접수를 했다.보통 매년 12월에 실시했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과는 달리 배점이 지역마다 달랐다. 가령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의 경우 필기 180점 + 체력장 20점의 200점 만점이었다.
과거에는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꼭 봐야 했으나,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의 도입 및 내신만으로 가는 방식이 도입되어 대다수의 지역에서 폐지했고, 2017학년도까지 일부 지역에서만 실시했다. 주로 비평준화 지역에서 실시했으며, 이미 평준화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입학 자격고사라는 이유로 고입 선발 고사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2] 예전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중학교 선배들이 교문 앞에서 응원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시대에 연합고사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중학교 졸업 시점의 학업 성취 수준을 공신력 있는 국가 기관을 통해 중간 점검해서 향후 교육 정책에 참고 및 반영한다는 의미와, 일반계 고등학교 지원자들의 인재풀(pool)을 학군내 일반계 고등학교에 각각 동등하게 배분해, 입학생 인재풀을 같은 수준으로 맞추어 주는 것이었다. 즉, 어느 한 학교가 수재를 끌어모아 명성을 쌓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 명성을 쌓고 싶으면 교육을 잘 해 졸업생 질을 올리라는 의도가 좋은 제도였다.[3]
비평준화 지역 한정으로 성적에 따라 지원 고등학교가 갈리는 냉혹한 입시판을 체험하기 때문에 대학 입시의 전초전 역할도 했다. 그리고 고입선발고사 득점 성적과, 3년 후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비교 분석해보면, 전국/광역 단위 백분위 성적은 별 차이가 없었다. 하위권 학생들의 경우 전국/광역 단위 백분위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도 꽤 있지만, 상위권 학생들(대학수학능력시험 4% 이내)의 성적은 견고해서 그 안으로 치고 들어가기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물론 평준화 지역은 연합고사 성적 가지고 뺑뺑이 돌리는 것이었으므로 그런 게 없었다.
나중에 외국어고등학교 등 특수목적고등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겼고, 정치권과 정부가 특목고의 당초 설립 목적에 걸린 법적 제한(학생의 진로, 교육 커리큘럼)을 풀어주어 사실상 비평준화시대의 명문고등학교 역할을 하도록 방치함에 따라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가 무력화되어갔고, 이후 저출산 등으로 학생수가 줄면서 커트라인으로서의 연합고사도 의미가 없어졌다. 즉, 내신과 선발고사 점수가 전부 낮아도 하위권 학교라도 진학이 가능하다.
결국 2018학년도 시험을 끝으로 고입선발고사는 폐지되었다.
2. 역사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처음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이를 위해 1973년 12월에 최초로 실시되었다. 이전까지 고입선발은 어디까지나 각 고교 자율로, 자체 선발시험을 치르기도 하고 중학교 내신을 활용하기도 하고 무시험[4]으로 선발하기도 했으며, 소위 명문고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경쟁이 치열했다.다만, 고입선발을 위한 국가고사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5.16 군사정변 직후 군사정부는 고교 진학제를 일대 쇄신한다는 명분으로 '중・고교 및 대학 입학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하여 1962학년도와 1963학년도에 전국 공통의 국가 고사가 치러진 바 있다. 이 시험 결과로 학교가 명확히 서열화되자 지방의 여러 학교가 시험에 반대하면서 국가고사제는 2년 만에 폐지되었다. 당시 경제 상황에서 전국적 시험 관리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점도 폐지의 한 이유가 되었다.
국가 고사가 없어지고 시도별 공동출제로 바뀌었는데, 이때는 학교에서 스스로 단독 출제를 하는 경우와 연합 출제된 문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공존하였다. 그러나 연합 출제한 문제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등의 이유로 점차 단독 출제를 선호하는 흐름이 1973년까지 이어졌다.
3. 2018학년도까지 실시한 지역
2017년 12월 22일에 실시된 2018학년도 고입선발고사를 마지막으로 전면 폐지되었다.3.1. 2018학년도 이전에 없어진 지역
2018학년도 고입선발고사를 시행하는 지역보다 폐지된 지역이 많았다. 이는 상술한 것처럼 고등학교 평준화 및 무시험 전형 등의 도입 및 학생 수가 줄어들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1998학년도부터 폐지)
- 부산광역시 (1998학년도부터 폐지)
- 대구광역시 (2000학년도부터 폐지)
- 인천광역시 (1998학년도부터 폐지)
- 광주광역시 (1998학년도부터 폐지)
- 대전광역시 (2000학년도부터 폐지)
- 세종특별자치시 (2015학년도부터 폐지)[9]
- 경기도 (2013학년도부터 폐지) - 200점 만점, 내신 산출
- 강원도 (2013학년도부터 폐지)[10]
- 충청북도 (2016학년도부터 폐지)[11]
- 충청남도 (2018학년도부터 폐지)[12]
- 전라북도 (2018학년도부터 폐지)
- 전라남도 (2016학년도부터 폐지)[13]
- 경상남도 (2002학년도부터 폐지)[14]
4. 응시 과목
4.1. 1교시
4.2. 2교시
4.3. 3교시
5. 여담
앞서도 언급되었지만, 1980~1990년대 비평준화 지역의 경우 연합고사 커트라인에 따라 어느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지 여부가 갈렸다.예를들어 한반이 70명인 경우 1~40등까지는 일반계, 41~55등까지는 상업고등학교, 56~70등은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당시 과열된 고등학교 입시로 결국 정부에서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다.
따라서 학생 수가 많았던 1960년대 말~1970년대 초반 출생자의 경우,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극히 드물지만 운이 나쁘면, 반에서 중간 정도인 학생도 연합고사에 떨어져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19] 하위권 학생의 경우, 담임 선생님이 처음부터 특성화고등학교(당시 실업계, 전문계)에 원서를 넣으라고 권유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특성화고등학교 원서는 연합고사를 치르기 전에 넣었고, 그 중 인기가 없는 학교는 낙방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웬만해선 다 합격했다. 최소한, 수도권은 지망 고등학교 따위를 써 넣는 식이 아니었으므로 아래 원서접수 운운은 지방 사례일 가능성이 높다.[20]
복수지원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모의고사 성적을 토대로 담임 교사와 상의해서 합격권에 들어가는 고등학교 단 1곳에만 원서 접수를 했다. 대학입시처럼 가나다군 복수 지원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따라서 떨어졌다면 2월 쯤에 추가모집 공고가 난 고등학교에 원서를 내 들어가거나, 재수를 해야 했다. 아니면 검정고시를 보던가.
인구 규모에 비해 학교가 적은 지역의 경우, 타 지역보다 성적이 좋아도 연합고사에서 떨어져 고등학교에 못 가는 일도 있었다. 다만, 운 나쁘게 떨어졌다고 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좀처럼 듣기 힘든 단어이지만, 과거에는 특수지 고등학교라 하여 야간반이 따로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가 있었다.[21] 본래는 직장 생활을 하는 청소년들이 학업을 병행할 수 있게 설립한 것이었으나,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이 좋아지면서 이처럼 주경 야독을 하는 청소년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애초 설립 취지는 퇴색하고 소위 불량 청소년들이 모이는 곳으로 인식되면서 이미지가 매우 나빠졌다. 송포유에 등장해 악명을 떨친 그 학교도 원래는 이런 취지로 설립한 학교였다가 위상이 추락한 케이스.[22] 그러다 보니, 중학교 때 지극히 평범했던 학생들이 운 나쁘게 양아치들이 모이는 학교로 가게 되어 고생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런 경우 어찌어찌해서 평범한 인문계로 편입해 어쨌든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하는 듯. 가장 운 나쁜 케이스는 미술에 소질이 있어서 예고 진학을 준비했는데 떨어지고, 차선책으로 일반계를 진학했으나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에 걸려 떨어져 특수지 고등학교에 가는 것이었다. 이런 불행한 일을 막기 위해 1990년대의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은 반에서 중간 정도 등수인 학생들에게 차라리 상위권 특성화고등학교에 원서를 넣으라고 권유했다. 일종의 하향 지원인 셈인데, 그래서 당시만 해도 상위권 실업계 학교는 그래도 일반계(당시 인문계) 갈 뻔한 애들이 진학하는 곳이라 해서 인식이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 1990년대 양천구, 강서구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저 당시 중학교에서 중상위권에 속했던 학생들은 주로 영등포여자상업고등학교(현재 영상고등학교), 경복여자상업고등학교로 갔다. 이들 학교는 지역 내에서 학생의 품행에 대한 나쁜 소문은 없었다.
특수지고등학교가 아니더라도 연합고사 결과 발표가 나고 나서 후기로 학생을 모집하는 고등학교들이 있었으며, 비평준화 지역의 경우 전기에서 정원이 차지 않거나 혹은 변두리 지역에 위치한 일부 하위권 고등학교는 명문고와 경쟁을 하며, 전기에 모집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후기에 아예 따로 학생을 모집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따라서, 꼭 연합고사를 합격해야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 재수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저런 고등학교로 가는 경우도 많이 있었는데, 저렇게까지도 진학하고 싶지 않은 학생들의 경우 재수를 택하는 경우가 있기는 있어서 연합고사 대비 재수학원도 여기저기 있었다.
다만 앞서 언급되었듯이, 2000년대 이후 중학교 상위권 학생들이 특수목적고등학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몰렸고, 인문계 고등학교의 인기는 시들해 졌으며, 입시 제도가 바뀐 데다가 학생 수 감소로 인해 경쟁률이 줄었기 때문에, 연합고사 탈락이 두려워서 일부러 하향지원을 할 필요는 없어졌다.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 적용되는 지역은 그냥 지망하는 고등학교 쓰고 추점되기만 기대하면 될 뿐이다. 당연히 내신이고 연합고사고 다 필요없다.
하지만, 명문대 진학률이 낮은 일반계 고등학교의 위상은 과거에 비해 낮아졌고, 대졸 미취업자 증가로 인해 이럴 거면 차라리 특성화고등학교, 마이스터고등학교 가서 전문 기술을 미리 배우자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므로 미래에는 오히려 하위권 인문계 고등학교들이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23]
그러나 최근에는 오히려 중하위권 특성화고등학교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매체로 인해 특성화고등학교의 실상이 폭로되었으며[24], 입시에서 정시 비율이 높아지는 바람에 특성화고등학교 미달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고한다. 게다가 향후 고교 학점제까지 고려한다면 2035년 이후에는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일반계고등학교와[25] 상위권 특성화고등학교[26], 특수목적고등학교만 남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학교 3학년생들 중 고등학교 진학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용도로 이용되었다.
6. 관련 문서
[1] 2001학년도부터 마지막 시험인 2018학년도까지 제공된다.[2] 물론 커트라인에 미달되었다고 고등학교에 아예 진학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고, 고등학교 입시가 끝난 직후 추가모집 공고가 난 학교에 원서만 내면 아무 절차 없이 진학이 가능했다. 이런 곳에서는 고입선발고사 성적을 가지고 뺑뺑이 돌렸다.[3] 연합고사가 없는 지역도 뺑뺑이-추첨을 돌려서 어느 정도 맞춰줄 수 있었다. 다만 3년 동안의 내신을 합해서 뺑뺑이 돌릴지, 연합고사를 통해 중학교 3학년 말의 실력을 바탕으로 뺑뺑이 돌리는지의 차이는 존재했다.[4] 주로 정원 미달 학교. 원서만 넣으면 합격 통보를 무조건 내주었다.[5] 평준화 지역(특이하게도 광역시 승격 이후에 평준화를 도입했다.)임에도 마지막 고사까지 봤을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유일하게 내내 개근으로 봤다. 다만 타 지역과 달리 미술과 음악을 보지 않았다.[6] 2008년부터 2013년까지는 평준화 지역인 포항시에서만 실시하였다.[7] 1999~2007학년도에 잠깐 폐지되어 자체적인 논술고사로 시험을 실시하였다가, 2008학년도에 포항시가 평준화되면서 다시 부활했었다. 이후 2013년부터는 다른 지역도 자체 고사를 대체하였다.[8] 2001~2002학년도에 잠깐 폐지되었다가 2003학년도에 다시 부활했었다.[9] 세종특별자치시만 따졌을 경우 2014학년도에만 실시하였다. 딱 1년만 보고 사라진 시험 경상남도 2015학년도와 비슷한 케이스다.[10] 본래는 2002학년도에 폐지하였으나 2008학년도부터 다시 실시했었다.[11] 본래는 2002학년도에 폐지하였으나, 2011학년도부터 다시 실시했었다.[12] 본래는 2001학년도에 폐지하였으나, 2005학년도부터 다시 실시했었다.[13] 본래는 2000학년도에 폐지하였으나, 2004학년도부터 다시 실시했었다.[14] 다만 2015학년도 고교 신입생 한정으로 다시 실시했었다. 이후 2016년부터 교육감 선거로 교육감이 바뀌자마자 다시 폐지되었다. 그렇게 2015년도 졸업생들만 고입선발고사를 쳤다.[15] 뒤에 국사(현 역사 중 한국사 부분) 포함.[울산] 울산광역시는 치지 않았다.[17] 이 중 10문제는 듣기평가이다.[울산] [19] 특히 지방에서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반면 수도권은 입시생이 많지만 학교도 많았기 때문에 정말 하위 10% 중 실업계 원서를 거부한 1~2명 정도나 고등학교를 재수할까, 중간 성적이 고등학교 떨어질 일은 절대 없었다.[20] 가령 일명 마진창(마산, 진주, 창원)은 '학(성)고'에 원서를 넣었다고 함.[21] 설명을 추가하자면 평준화 지역 내 중학생이 원거리 통학 등으로 통학이 어려운 학교를 특수지 고등학교로 지정하기도 한다. 특수지 고등학교 중에서도 서울 우신고등학교의 경우 수도권 전철 1호선 온수역 부근에 있어 개교 당시 특수지 고등학교로 지정됐으나 우수 중학생들을 장학금으로 스카우트하며 서울대 합격자를 100명 이상씩 배출하자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적용대상학교가 됐다.[22] 단, 해당 학교는 정규 고등학교가 아닌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이다.[23] 다만 수시 전형이 강화되면서 농어촌전형을 노리는 학생의 경우 일부러 이런 학교로 진학하기도 한다. 학교 측에서도 상위권 소수학생을 집중적으로 밀어줘서 내신과 교내 대회 독식하고 좋은 대학교 보내면 나쁠 게 없기 때문.[24] 대부분 중하위권 특성화고등학교와 관련된 얘기이다. 상위권 특성화고등학교는 얘나 지금이나 여전히 선호된다.[25] 소규모 학교들은 멸종될 가능성이 높다.[26] 이들은 웬만한 일반계고등학교를 뺨칠 정도로 입결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