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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12:19:13

소설의 시점

1. 개요2. 종류
2.1. 1인칭
2.1.1. 1인칭 주인공 시점
2.1.1.1. 장점2.1.1.2. 단점2.1.1.3. 목록
2.1.2. 1인칭 관찰자 시점
2.1.2.1. 장점2.1.2.2. 단점2.1.2.3. 목록
2.1.3. 1인칭 전지적 시점
2.1.3.1. 목록
2.2. 3인칭
2.2.1. 3인칭 관찰자 시점
2.2.1.1. 목록
2.2.2. 전지적 작가 시점
2.2.2.1. 장점2.2.2.2. 단점2.2.2.3. 목록
2.2.3. 제한된 전지적 작가 시점
2.2.3.1. 목록
2.3. 논외: 2인칭
2.3.1. 목록
3. 초점론

1. 개요

산문 문학에서의 시점(, point of view)이란 글 속에서 서술자의 위치를 조정하여 이야기의 전달 방식을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시점은 소설작법 가운데서도 텍스트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모든 소설에는 독자에게 텍스트를 전달하는 서술자(narrator)가 존재하며, 이 서술자를 어떤 위치에 놓을 것인가, 서술자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할 것인가, 혹은 서술자가 독자에게 어떠한 정보를 제공할 것인가에 따라 묘사의 방향과 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각각의 시점은 저마다의 특징이 있으며, 시점을 잘 활용하는 작가는 독자의 몰입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지만 반대로 혼란스러운 시점은 글 자체를 난해하게 만들 수도 있다.

보다 난이도가 높은 작문에서는 한 소설 내에서 시점을 바꿔 가며 내용을 전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나 오상원의 <유예>, 김원일의 <도요새에 관한 명상>, 성석제의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등이 있다.

이하 서술되는 '관찰자', '화자'는 모두 소설의 서술자를 뜻한다. 소설의 서술자는 시점의 구성에 따라 작가와 같을 수도, 같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는 '작품을 쓰는 사람'이고, 서술자는 '작품 내부에서 이야기를 말해주는 가상의 화자'를 가리킨다. 작가는 항상 작품 외부에 있으며, 서술자는 작품 안에서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1인칭)이 될 수도 있고, 이야기 밖에서 이야기를 서술(3인칭)할 수도 있는 것이다.

2. 종류

소설의 시점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크게 네 가지 전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네 가지는 다시 서술자의 위치에 따라 두 개의 범주로 구분된다.
소설의 시점
이야기 속의 서술자 (1인칭) 이야기 밖의 서술자 (3인칭)
비관찰자 시점 1인칭 주인공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관찰자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3인칭 관찰자 시점

2.1. 1인칭

서술자인 ''가 주어가 되어 소설의 문장을 풀어낸다. 그래서 일기[1]나 기록문 등의 형식을 취하기도 하며, '나'가 상황과 사건들을 말하는 형식으로 쓰이는 게 보통이다.

최고의 장점은 몰입감이다. 주인공인 인물이 이야기 속에서 자기가 겪은 일을 자기의 감상과 함께 직접 말해주기 때문에 작품을 훨씬 생생하게 읽을 수 있고 글을 쓸 때도 주인공의 심리나 처한 상황 등을 더욱 세세하고 긴장감 있게 묘사할 수 있다.

그만큼의 단점은 역시 '나'라는 틀에 갇힌다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의 시각으로만 상황을 알 수 있고, 그래서 한계가 명확하다. '나'가 사건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갖고 있고 어떤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사건에 대한 인식의 정도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사건이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고, '나'가 부재한 사건이 많을수록, 그 사건이 중요한 사건일수록 묘사가 힘들어진다. 억지로 해당 사건을 설명하려 하면 어색해지며, 그렇다고 묘사를 어설프게 하면 독자가 이해하기가 힘들어진다. 또한 독자들도 서술자가 보고 느낀 것만을 알 수 있다는 한계를 갖게 되어 서술자를 제외한 인물들의 감정을 묘사하거나, 극적 아이러니를 조성하는 것이 어려워진다.[2]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인가에 따라 서술자를 누구로 정하는가가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서술자를 잘 고른다면 이런 난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지만, 잘못 고르면 이야기를 흥미롭게 끌고 가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 때문에 엔더의 게임으로 대히트를 친 오슨 스콧 카드가 쓴 작법서 '캐릭터 공작소'에서도 1인칭은 어렵다는 식으로 말이 나온다.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쓰면 독심술이라도 쓴 것마냥 주인공이 남의 심리와 행동 원인 등을 마구 꿰뚫어서 서술하거나, 자기 몸 간수하기도 힘든 급박한 상황인데 주변 상황이나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주야장천 상세하게 묘사해 대는 어색한 경우도 나오기도 한다. 가령 주인공과 동료들이 적과 급박하게 싸우는 중인데 주인공이 자기 싸우는 것을 한참 묘사하고 옆을 보니 동료가 싸우는 모습을 한참 묘사하고 다시 옆을 보니 또 다른 동료가 싸우는 모습을 한참 설명하는 전개다. 이런 묘사는 3인칭 시점에 더 잘 어울린다.

그렇기에 1인칭이란 것은 여러모로 제약이 심한 시점이지만 한편으로는 잘 쓰면 그만큼 활용도가 높기도 하다. 전술했듯 주인공에 대한 몰입도가 높으며, 숙련된 작가는 주인공의 시각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오히려 유용하게 써먹을 수도 있다. 특히 1인칭 주인공은 자신의 한계로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독자들은 이해할 수 있는 식의 서술을 하여 재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처럼 남녀관계를 잘 모르는 어린아이라는 서술자의 한계를 이용해 매력적인 상황묘사를 보여주는 작품이 대표적이다. 한편 앨저넌에게 꽃을은 주인공이 저지능자였다 실험을 통해 고지능자가 되었다가, 다시 실험의 부작용으로 저지능자로 돌아가면서 상황 판단력과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이 계속 바뀌는 묘사를 보여준다.

또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꼭 고정적일 필요는 없다. 챕터에 따라서, 혹은 편수에 따라서 1인칭 주인공을 바꿔가면서 서술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서 주인공이 A고 등장인물이 B라고 한다면, A와 B가 서로 대화할 때 주인공 A 시점에서 B에 대한 생각을 서술하고, 그 이후는 B의 시점에서 A에 대한 생각을 서술할 수 있다. 이것을 잘 이용한다면 주인공 vs 주인공이라는 군상극 같은 전개도 가능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서술자가 이야기를 자신의 주관에 따라 왜곡할 수 있다.'는 클리셰 서술 트릭 역시 써먹을 수 있다. 각종 스릴러추리물 등에서도 알고 보니 주인공이 범인이었다거나, 알고 보니 주인공이 악당이었다는 식의 상황의 반전을 충격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영상(비주얼) 매체인 경우 제대로 1인칭을 실현하려면 카메라 앵글도 주인공의 시점이어야 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만 1인칭 서술이 가능하고, 작품 전체적으로 1인칭을 관철하는 작품은 만들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1인칭인 영화는 하드코어 헨리밖에 없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 등에서는 좀 적극적으로 쓰인다.
대신에 영상에서도 나레이션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쓸 수 있다.

2.1.1. 1인칭 주인공 시점

1인칭 주인공(Participant first-person) 시점 또는 주인공 시점, 본인 시점은 서술자가 곧 등장인물 중에서도 이야기의 주인공이며, 사건의 중심에 서는 것을 말한다.
2.1.1.1. 장점
2.1.1.2. 단점
2.1.1.3. 목록

2.1.2. 1인칭 관찰자 시점

1인칭 관찰자(Observant first-person) 시점은 주인공이 아닌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 주인공을 관찰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시점이다. 서술자가 반드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서술자를 의인화된 길고양이나 호텔 로비의 행운목으로도 얼마든지 설정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서술자가 자신이 본 이야기를 남에게 말해주는 이야기의 형식이 되고, 사건의 중심은 주인공이 된다.
2.1.2.1. 장점
2.1.2.2. 단점
이러한 제약들로 인해 독자에게나 작가에게나 여러모로 까다로운 시점이라서, 1인칭 주인공 시점에 비해서 인기가 낮다.
2.1.2.3. 목록

2.1.3. 1인칭 전지적 시점

1인칭 전지적(Omniscient first-person) 시점이란 1인칭 관찰자 시점이면서도 서술자에게 전지성을 부여하는 특수한 경우이다.

이러한 서술자의 전형적인 예로 '영혼 서술자(ghost narrator)'가 있다. 죽은 이의 영혼을 서술자로 설정해,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고 서술자의 주변 인물이나 서술자와 관련한 사건 따위를, 서술자의 경험과 더불어 서술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1인칭 관찰자 시점을 취하면서도 그 서술자가 사신이라 등장인물의 내면 묘사가 자주 들어가는 소설 책도둑이 있다. 아님 에덴즈 제로의 샤오메이는 시간을 읊는다고 하여 시청자를 의식, 자세한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또한 사이키 쿠스오의 재난의 주인공 사이키 쿠스오도 비슷한 경우인데, 이는 주인공이 초능력자라 사람의 속마음이나 관련 사건들을 저절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작품 내에서 넨도 리키사이키 쿠스케처럼 이게 안 통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2.1.3.1. 목록

2.2. 3인칭

3인칭 시점의 경우 서술자는 작품 밖에 존재하며, 스토리 안에서 아예 서술자의 자리가 아예 없는 시점이기에 '서술자'를 나타내거나 묘사하는 문장이 없다.

그러나 1인칭처럼 서술자가 어떤 인물이라는 명확한 설정이 있는 게 아니므로, 아래에서 서술된 시점들은 구분이 모호한 점이 있다. 1인칭 주인공이나 1인칭 관찰자는 그 설정상 어디까지 사건을 볼 수 있는지가 명확하지만, 3인칭 시점에서는 그런 게 없으니 작가 마음대로 써도 되기 때문이다.

2.2.1. 3인칭 관찰자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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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3인칭 관찰자(Observant third-person) 시점은 무비 카메라(movie camera) 시점, 작가 소멸 시점, 작가 관찰자 시점, 3인칭 객관자 시점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작품 밖의 서술자가 주관을 배제하고 관찰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서술한다. 인물의 내면을 서술하지 않고, 사건에 대한 평가 등도 직접적으로는 하지 않으며,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므로, 독자가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다.

일반적인 영화드라마를 생각해보면, 관객이나 시청자는 영화, 드라마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고 관객이나 시청자가 어떠한 시공간에 있더라도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이나 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한 관객이나 시청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만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3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그러므로 소설에서도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잘 활용한다면 소설 자체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극적인 느낌을 독자들에게 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한 컷이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영상매체와 달리, 소설에서는 모든 것을 서술로 해결해야 하기에 겉으로 보이는 것만 서술해서 이야기를 끌고나간다는 것은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지나치게 이야기가 건조해지거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운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쉬워서 생각만큼 인기 좋은 전개 방식은 아니다. 특히 장편 소설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는 것은 매우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동서고금 장편 소설이 3인칭 관찰자 시점인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17]

메타픽션적인 요소도 거의 이 시점에서 발생한다.
2.2.1.1. 목록
소설의 경우, 순수 하게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여진 목록들만 정리되었다.
참고로 한국 소설 오발탄, 소나기, 만무방,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은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서술자가 등장 인물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거나 내면을 묘사 하는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할 수 없다.

소설
미디어
게임

2.2.2. 전지적 작가 시점

전지적 서술자(Omniscient narrator) 또는 3인칭 전지적(Omniscient third-person) 시점이라고도 한다. 이는 서술자가 작품 밖에서 사건을 서술하는(3인칭) 동시에 모든 것을 알고 있는(전지, 全知) 것을 말한다.

3인칭 관찰자 역시 작품 밖에 있기는 하지만 보이는 내용만 그대로 서술하는 것과 달리, 전지적인 서술자는 인물의 내면이나 인물 간의 관계, 과거나 미래의 사건 등을 전부 파악한 채로 이야기를 서술한다. 인간의 사유에서 가장 떠올리기 간편한 시점이라는 특성 때문에 오랜 시간 가장 많은 소설의 시점으로 채택되었으며, 특히 고전소설 시대에는 굉장히 보편적으로 쓰였지만 현대에는 여러가지 다른 여러가지 시점의 정립으로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2.2.2.1. 장점
2.2.2.2. 단점
서술자의 눈으로 쓰는 묘사와 등장인물 간의 대화를 적절하게 배치하지 못할 경우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정보만을 사전처럼 줄줄 뱉어내는(흔히 '설명충'이라고 하는) 글이 되어 버리고 만다. 초보 작가일수록 이 서술자의 '전지성'에 매몰되기 쉬운데, 진정한 문학이란 체호프의 말처럼 '달이 빛난다고 직접 말해주지 말고, 깨진 유리조각에서 반사되는 반짝이는 빛을 보여주어야' 하는 법이다. 서두에 이것저것 이야기하면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동시에 몰입감을 깨트려 지루해지기 쉽다. 따라서 이 시점으로 글을 쓸때는 서술자의 관찰을 적절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
2.2.2.3. 목록

2.2.3. 제한된 전지적 작가 시점

제한적인 전지적 서술자(Limited omniscient narrator), 선택적 시점(Selective perspective)이라고도 한다. 이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하위 갈래로, 전지성에 따른 단점을 상쇄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선택적 시점에서는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이하 '시점자')를 선택하여 오로지 이 캐릭터의 내면과 캐릭터의 눈으로 바라본 사건만을 서술한다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시점자에 한해서는 1인칭 시점과 같은 서술 규칙을 따라서 시점자 개인의 독백이나, 생각 등을 자유롭게 서술하지만 동시에 1인칭 시점의 특징을 공유하기 때문에 3인칭 시점임에도 시점자의 지식이나 성숙도, 의식 유무에 따라 서술에 제약을 받는다. 예를 들어 시점자가 특별한 조건 아래에 있거나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을 경우, 목격하는 일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동반되지 않은 피상적인 내용만이 묘사가 되는 식이다. 때문에 한 인물의 시각에 몰입하기가 더 쉽다.

A가 주인공, B가 등장인물이고, A와 B가 대화를 한다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은 A, 즉 '나'의 대사와 내면을 알 수 있지만 B의 내면을 알 수 없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서술자는 A와 B의 대사와 내면을 전부 알 수 있다.
제한된 전지적 작가 시점은 3인칭이기 때문에 A를 '나'가 아니라 서술자가 'A' 라고 서술하고 서술자는 A의 내면을 알 수 있지만 B의 내면을 알 수 없다. #

그러니 제한된 전지적 작가 시점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지만, 서술하는 것이 주인공이 아니라 서술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에 《얼음과 불의 노래》 같은 군상극 소설에서 자주 채용하는 시점이다. 군상극, 특히 전쟁물이나 대하사극 같은 대규모 사건을 다루는 소설의 경우 묘사 난이도가 높다. 1인칭으로 다루기엔 사건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기에 맛이 제대로 살지 않고, 상황이 극적이고 복잡한 경우가 많아 3인칭 관찰자로 다루기에는 이해가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 전지적 3인칭으로 다루면 역사책을 요약해서 읽는 꼴마냥 몰입감이 부족해진다. 그래서 해당 사건에 휘말린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을 다뤄서 큰 상황을 이해시키면서도 디테일과 몰입감 역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물론 군상극이란 특성상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난이도가 높다. 조지 R.R. 마틴은 얼음과 불의 노래를 쓰면서 어떤 시점자를 다룰 때 가장 어렵냐는 독자의 질문에 브랜 스타크를 언급한 적이 있다. 나이가 10살도 안 된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이 미성숙한 시점자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비춰질까를 매번 고민하면서 작업해야 되는 부분이 까다롭다고.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 브랜 스타크가 시점자로서 남녀의 성교를 목격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때의 서술은 다음과 같다.
방 안에서는 어떤 남자와 여자가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둘 다 벌거벗은 몸이었다. 브랜은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여기서 '드잡이질'은 '서로 머리채나 멱살을 움켜잡고 싸우는 짓'을 뜻한다. 즉, 어린아이인 시점자가 성교 장면을 남녀가 부둥켜 싸우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소설의 서술도 이를 따라간 것이다. 박태원이 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역시 의식의 흐름을 묘사하기 쉽도록 이러한 시점을 택하고 있다. 이 글의 일부를 이용하여 제한된 전지적 작가 시점과 완전한 전지적 작가 시점의 차이점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파일:전지적 작가 - 제한된 전지적 작가.png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시점(좌)과 이를 완전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꿀 경우(우)의 비교.
(2008학년도 6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모의고사 언어 영역 25번 문제 발췌)
원문(제한된 전지적 작가)
구보(시점자)는 자기가 이러한 사내와 접촉을 가지게 된 것에 지극한 불쾌를 느끼며, 경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그와 사이에 간격을 두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딱한 사내는 도리어 그것에서 일종 득의감을 맛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뿐 아니라, 그는 한 잔 십 전짜리 차들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그렇게 몇 병씩 맥주를 먹을 수 있는 것에 우월감을 갖고, 그리고 지금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
변형문(완전한 전지적 작가)
구보(캐릭터)는 자기가 이러한 사내와 접촉을 가지게 된 것에 지극한 불쾌를 느끼며, 경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그와 사이에 간격을 두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딱한 사내는 도리어 그것에서 일종 득의감을 맛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한 잔 십 전짜리 차들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그렇게 몇 병씩 맥주를 먹을 수 있는 것에 우월감을 갖고, 그리고 지금 그는 행복하였다.

밑줄친 부분을 보면 제한적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서술자가 추정하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는 ~하였다라고 서술자가 정확히 구보의 생각을 서술한다.

한편으로는 1인칭 대명사(나) 대신 시점자의 이름이나 3인칭 대명사(그, 그녀)를 주어로 사용해서 서술상 거리를 좀 더 두고 객관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며, 더 넓은 시각을 보여줄 수도 있는 중간적인 시점이다. 이 제약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서술상 특징이기 때문에, 상황 따라 전지적 시점이나 관찰자 시점에 가깝게 바꾸는 경우도 나온다. 예시로 앞서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여주인공 이야기라면 괴물의 등장 과정에 대해서는 전지적 3인칭에 가깝게 상세히 서술하다가, 여주인공이 괴물을 만나 잡아먹히는 과정은 공포감을 주기 위해 여주인공이 괴물을 보는 제한적 시점으로 서술하다가, 잡아먹힌 후에는 그 옆의 남자친구가 그 광경을 관찰하는 시점으로 전환하여 여주인공이 잡아먹힌 뒤로는 죽었는지 어쨌는지 등의 정보를 제한하는 식으로 쓸 수 있다. 물론 이런 것을 남용하면 이야기가 난잡해진다는 단점도 있다.
2.2.3.1. 목록

2.3. 논외: 2인칭

흔히 '2인칭(second-person) 시점'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는 '(서술자에 따른) 소설의 시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상술한 1인칭 또는 3인칭 시점에서 주어로 쓰이는 인칭대명사를 '나', '그', '그녀'가 아닌 '너(you)'로 바꾼 것으로, 마치 서술자가 독자를 작중 등장인물과 동치시켜 독자에게 이야기하듯 진행하는 문체의 일종이다. 작품의 주인공이 1인칭이라면 이를 관찰하는 모든 '너'는 3인칭이 된다. 1인칭과 3인칭을 섞어 쓰는 경우에도 이러한 문체를 사용할 수 있다.

2인칭에서는 대화에서 상대방을 가리키는 대명사인 '너'나 '당신' 이전에 한 개인이 존재한다. 따라서 2인칭이란 개념은 타인을 인식하고 그 타인이 개인과 상황 따위의 맥락을 공유해야 사용 가능한 일종의 생략과 같다. 제 아무리 서술자가 2인칭 대명사로 지칭된들, 독자에겐 제3의 인물이며, 그 시점을 가진 주체는 스스로를 1인칭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2인칭 시점이라는 것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요컨대 주체와 객체 이외에 시점이 적용되는 것은 없다.

결국, 2인칭 시점이라고 불리는 문체 자체의 특징이 분명히 있기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글의 스타일이나 기교일 뿐, 별개의 시점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래는 그 예시다.
너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너에게 첫눈에 반했다.
가령 위와 같은 글에서 첫번째 문장은 분명히 주어가 '너'이지만, 어디까지나 1인칭 시점이다. 왜냐면 '네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사실은 '나'가 목격하고 나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배가 고프다. 그래서 치킨을 시켜먹는다.
이런 글이 대표적인 2인칭 서술 방식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한데 왜냐면 '너'라는 대명사는 '나'가 있어야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2인칭 시점에서의 '나'를 억지로 상정하자면 신이나 전지적 존재, 혹은 작가가 될 것이다. 즉,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단순히 '그/그녀' 대신 '너'라는 대명사를 사용했을 뿐이지 별개의 시점은 아닌 것이다. '그녀는 배가 고프다. 그래서 치킨을 시켜먹는다'로 바꾸어도 뉘앙스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또 편지의 형식을 빌리는 서간체 소설 중에도 일종의 2인칭 시점으로 된 것이 있다. 다만 서간체는 어디까지나 본질적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이며 서간체에서 2인칭 시점이 사용된다면 위에 설명했듯 본격적인 2인칭이 아니라 1인칭 '나'의 시점에서 관찰한 '너'의 이야기를 '나'의 시점에서 쓰는 것이 된다.
너는 엄마에게 너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네가 하는 일이 엄마의 삶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이 여겨졌다.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 中

가장 유명한 2인칭 시점의 소설은 역시 베스트셀러인 신경숙엄마를 부탁해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의 1챕터는 '나'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2인칭 시점으로 되어 있다. 3인칭으로 바꾸어 써도 전혀 무리가 없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이 소설에서 2인칭의 사용은 묘하게 강한 임팩트를 주는데 다름 아닌 각각의 독자들 '너'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서, 모든 자식들이 응당 가지고 있는 '부모에 대한 죄의식'을 자극하는 것이다.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볼 수 있게 되면서 관찰되는 '나'의 딸을 서술자인 '나'가 서술하는 매우 특이한 형식을 띄고 있다.

호루스 헤러시 소설 시리즈의 최종장인 종말과 죽음(The End and the Death) 2권에서 주인공인 호루스 루퍼칼의 시점으로 사용되는데, 이는 행동의 주체가 호루스 본인인지(1인칭), 호루스를 조종하는 카오스 신인지(3인칭) 여부를 모호하게 하는 문체이다.

주인공을 독자로 잡고 진행되는 경우라면 2인칭을 연상케 하는 서술이 아주 적극적으로 나오게 된다. 특히 보는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한 게임북이나 매뉴얼, 노래 가사, 비디오 게임 등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비디오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가 행동을 하면 그 결과를 문장으로 출력해야 했기에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한 2인칭으로 이루어진 서술이 필요하고, 특히 고전 텍스트 어드벤쳐나 머드 게임에서는 모든 것이 문장으로 출력되었기에 이런 서술을 수도 없이 볼 수 있었다[20]. 이후로는 그래픽의 발전으로 대부분의 상황을 화면으로 전달할 수 있기에 이런 서술이 현격히 줄었지만, 아직도 상당히 많은 게임에서 '당신은 300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혹은 '당신은 죽었습니다' 같은 문장이 종종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21] 물론 이건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는 쓸 수 없는 방식이기는 하다.

2.3.1. 목록

3. 초점론

'종류' 목차에서 분류한 서술자의 위치에 따른 범주 바깥의 이론. 초점론에서는 사건의 체험(초점, focalizer)과 사건을 서술(발화, voice)을 분리한다.

소설의 시점/초점 참고.


[1] 여기서 초보 작가가 하는 실수로는 '나'라는 인칭대명사를 절대 써서는 안 된다는 강박 관념이다. 이건 1인칭 시점이라 굳이 서술자인 '나'를 지칭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인데, 명백하게 잘못된 논리이다. 일단 '주어'가 없으면 문장 성립 자체가 안 되는데, 서술자가 자기 자신을 주어로 지칭해서 서술해야 할 때가 의외로 많다. 이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초보 작가들이 쓸데 없이 '나'를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쓰곤 하기 때문에 사용을 자제시키곤 하는데, 이것이 아예 써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와전되거나, 1인칭 시점과 일기를 동일시해서 '나'를 쓰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인식하는 경우다. 일기와 1인칭 시점의 소설을 동일시하는 건 크게 잘못된 인식이다.[2] 물론 불가능하거나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술자의 자폐증이나 성적 지향을 이용한 소설은 이미 숱하다.[3] 네모 선장을 주인공으로 본다면 1인칭 관찰자 시점이라 할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이 작품의 주인공은 화자인 아로낙스 박사다.[4] 영화지만 작중 (대부분의) 앵글이 '주인공이 보는 모니터, 셀카, 핸드폰 등의 화면'이라는 설정.[5] 주인공 다움이의 시점 부분을 의미한다.[6] 제2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역한 군의관 출신. 즉 그는 의사이자 군인으로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으며, 그 자신은 선량하고 도덕적이지만 극단적인 폭력에 익숙하다는 특이한 배경을 가졌다. 그래서 왓슨은 언제라도 의사가 필요한 일이 발생하면 즉시 나서서 처리할 수 있고,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면 총까지 꺼내들고 맞설 수 있으며, 어지간한 위기 상황이 닥쳐와도 쉽게 동요하지 않고 굳건한 정신력을 유지할 수 있다.[7] 디아블로 4의 메인 스토리는 로라스가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걸로 전개된다. 즉, 디아블로 4의 이야기는 먼 미래 시점에서 로라스가 이미 일어났던 일을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로라스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미 전부 다 알고 있는 입장이고 오랫 동안 방랑자의 조력자로 활동했다는 뜻이 된다.[8] 상술했듯 1인칭 관찰자 캐릭터를 잘 조형해서 장르의 특성과 훌륭하게 어우러지게 만든 좋은 사례. 단, 셜록 홈즈의 사건집에 수록된 '탈색된 병사'와 '사자의 갈기'는 1인칭 주인공 시점, 사건집에 수록된 '마자랭의 다이아몬드'와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에 수록된 '마지막 인사'는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였다.[9] 아서 헤이스팅스가 나오는 모든 작품이 여기에 해당되며 그 외에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메소포타미아의 살인, 움직이는 손가락 등이 이런 형식을 취하고 있다.[10] 서술자 동만의 관점으로 외할머니와 할머니의 대립과 화해 속에 상징되어 있는 남한과 북한의 대립과 화합을 무속이란 공통 주제에 담고 있다.[11] 주인공 유재필의 이야기를 서술자 이문구가 얘기해준다.[12] 해당 작품은 한국 근현대문학의 고전이라 불리기도 하며, 국어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에서는 1인칭 시점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읽게 하곤 한다.[13] 다단계 액자식 구성을 하고 있지만, 1단계 액자에서는 소설가가 과거에 만났던 사람이 해줬던 이야기를 전달하는 내용으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과거에 만났던 사람이 2단계 액자에서 사실은 본인이 벨보이 시절에 호텔의 콘시어지(스토리 진주인공)였던 사람의 이야기를 3단계 액자 이야기로 내레이션 하고 있어 일종의 1인칭 관찰자의 관찰자시점이다.[스포일러] 본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맞으나, SNS를 소재로,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본인의 행적에 대한 객관화를 선보여 주관자와 객관자의 경계를 허문 문제적 작품이기에 여기에 기술한다.[15] 1편의 캠페인에서 플레이어가 주인공이나 상관으로부터 명령을 받는 시점이기 때문이다.[16] 시즈가 주인공인 에피에서는 리쿠의, 포토가 주인공인 에피에서는 소우의 시점으로 진행된다.[17] 사실 3인칭 관찰자 시점 소설 자체가 매우 적은편이다.[18] 탐정 샘 스페이드 시리즈는 전부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였다.[19] 예외적으로 캐릭터 1명은 1인칭 시점이다.[20] "당신은 동쪽으로 갔다. 슬라임이 당신을 공격한다! 슬라임이 당신의 피부를 살짝 녹였다.(-4) 당신은 얼어붙은 폭풍을 날려 슬라임을 박살냈다.(-157) 슬라임이 죽었다. 당신은 300의 경험치와 100의 골드를 얻었다." 같은 식으로 게임이 진행되곤 했다.[21] 하지만 이 역시 2인칭스러운 서술이지 2인칭 시점은 아니다. 어쨌거나 그 말을 하는 화자는 시스템이라는 제3자이기 때문에, 위의 모든 것들은 3인칭 시점의 서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