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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16 22:20:40

금 따는 콩밭



1. 개요2. 줄거리 및 해설3. 여담

1. 개요

김유정의 단편소설. 1935년 3월 『개벽』에 발표되었으며, 같은해에 발표한 다른 소설 <금>, <노다지> 그리고 1937년에 발표한 <연기>와 더불어 당시 시대상황을 반영하여 모티프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2. 줄거리 및 해설

농사를 지어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던 영식이가 금광을 떠돌던 수재의 꾐에 빠져, 어떻게든 금을 캐내어서 눈앞의 가난을 면해보겠다고 애를 쓰다가 결국은 멀쩡한 콩밭만 다 망친다는 내용이다. 한때 금광을 전전했던 김유정의 체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단순히 허황한 일확천금의 꿈이라고만 해석할 수도 있지만 금을 소재로 한 김유정의 다른 작품들처럼 <금 따는 콩밭>도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한 사회적인 문맥 속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이 소설의 사회적 배경을 이루는 금광열(金鑛熱)은 일제의 수탈정책에 말미암은 것이다. 일제는 침략전쟁에 필요한 물품을 수입하기 위한 자금원으로 무엇보다 금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1930년대에는 일본령 조선의 산악지역이 금의 공급지로 변하고 말았다.

아울러 여기저기 마구 생긴 광산은 궁핍에 시달리는 수많은 농민들의 집결지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왜 영식이가 그처럼 금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가 하는 점이다. 영식의 아내 또한 처음에는 망설이는 남편을 부추길 정도로 금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 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도 전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실에 있다.

농사철 내내 뼈가 휘도록 쉬지 않고 일하지만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뿐 배고픔조차 면하기 어렵고, 밭도지[1]를 내고 나면 비료값이며 무엇이며 그동안 쌓인 칠원의 을 갚을 길도 막막하다. 말 그대로 한해한해 겨우 먹고만 살고 있는 처지인데 살다보면 몸이 아프다거나 무슨 나쁜 일이 언제든 일어날수도 있다. 그러니 농사만 짓고 있다가는 결국 비렁뱅이밖에는 될게 없다는 위기감이 영식과 아내를 사로잡게 되는 것이다. 극한의 궁핍과 희망이 없는 미래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데, 거기서 벗어나는 길은 말 그대로 '콩밭에서 금을 따는 것' 밖에는 없다는 것이 이들 부부로 상징되는 당시 농민들의 절망적인 처지인 것이다.

물론 작중에도 이 부부의 허황된 욕망을 비판하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부부의 처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이들이 농사를 열심히 짓지 않으면 소작료를 받아내기 힘들고, 금을 캐려고 콩밭을 파해치면 밭이 망쳐지는 것을 염려하여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농사나 지으라고 채근하는 마름, 그리고 농사꾼이 농사를 짓지 않고 소중한 밭에 구멍을 뚫고 지랄이니 세상이 망할 징조이다, 금인가 난장을 맞을 것 때문에 농군은 버렸다고 격노하며 농사꾼의 도리를 설파하지만 그 도리대로 근면히 일해도 미래가 절망적인 당대 젊은 농사꾼 부부의 처지에는 관심도 없고 아무런 답도 주지 못하는 동리 노인이다. 당연히 영식과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호의도 없고 본인들의 욕망을 위해 둘에게 희망없는 인내를 요구하는 이런 목소리가 곱게 들릴 리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해 수재는 비열한 속임수일지언정 영식과 아내의 처지와 욕구를 이해하고 그것을 들어주려는 척 하고 있는 것이다.[2]

금이나 돈은 부와 재산의 상징으로써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기호이며, 동시에 파멸의 길로 이끄는 미끼와도 같은 양가성(兩價性)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금을 무모하게 획득하려는(=콩밭에서 금을 따려고 하는) 주인공의 어리석은 탐욕과 허망한 망상을 그려냄으로써 인간의 어리석음을 희극적으로 묘사하고, 이를 통해 탐욕의 무망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영식과 아내가 욕망하는 것이란 특별히 대단한 부와 사치가 아니다. 수재가 '삼십만 원', '소가 만 필'과 같은 엄청난 미끼를 내걸고 유혹하지만 이 부부를 움직인 것은 그런 터무니없는 욕심이 아니라 '졸리지 않는 삶'(=굶주리지 않고, 언제 비렁뱅이로 나앉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지 않는 삶), '콩밭 한 해 소출보다는 나은 이익'이고 이들이 원하는 사치라는 것은 '흰 고무신'이나 '코다리(반건조 명태)를 마음껏 먹는 것'[3]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본작은 영식과 아내, 두 사람을 결국 파멸로 이끄는 어리석음을 조명하고 있으나, 그것을 날카로운 풍자로 파해치기보다는 연민어린 해학으로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다.

3. 여담


[1] 소작으로 얻은 밭의 임차료[2] 현대로 치면 로또 당첨을 유일한 희망으로 여기며 복권을 사는 사람들의 심리에 비교할 수 있다. 복권은 그 시스템상 '판매자' vs '구매자 전체'의 구도로 보면 판매자가 이익을 얻는만큼 구매자가 손해를 보는 구조이다. (그래야 복권 판매자가 이득을 보고 복권 사업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든 삶에서 벗어날 다른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혹시나 자신이 당첨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기대하고 복권을 사게 되고, 그래서 거의 대부분 복권값만 날리는 손해를 계속 보게 되는 것.[3] 쇠고기나 돼지고기도 아닌 명태라는 점이 포인트이다. 김유정의 많은 작품에서 배경으로 삼는 시골이 강원도의 산골을 모티프로 함을 생각하면 가장 소박한 별미가 명태 코다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