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삼국지 헌제가 되다 | |
장르 | 삼국지, 대체역사 |
작가 | 주윤 |
출판사 | 제이플미디어 |
연재처 | |
연재 기간 | 2022. 05. 02. ~ 2022. 12.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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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주윤. 약칭은 '선조헌제'다.2. 줄거리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22년 5월 2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 주기는 월화수목금토 오후 8시.2022년 6월 24일 유료 연재로 전환되었다.
2022년 8월 15일 네이버 시리즈에 연재본이 발매되었다.
2022년 12월 30일 208화에 본편 완결을, 209화에 후기를 올리며 완결을 맺었다.
4. 특징
미래인 빙의물이기는 하나, 독특하게도 현대인이 아닌 과거 조선시대 인물인 선조 이연이 더 과거인 후한 말의 헌제로 빙의하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선조 이연은 즉위식 도중 벼락을 맞고 죽어 지옥에 끌려가, 자신이 미래에 지을 죄를 미리 보고 온다.[1] 원래는 미래에 지을 죄 탓에 지옥행이 확정되었으나, 염라대왕이 나라 하나를 부흥시키면 죄를 사면해 주겠다며 조조에게 의탁 중인 헌제[2]에 빙의시킨다. 선조는 그 특유의 사이코패스적인 기질과 뛰어난 정치적 능력으로 조조에게서 벗어나려 한다.무료 연재 당시 표지는 선조(조선) 문서에 있는 선조의 어진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5. 등장인물
5.1. 후한
5.1.1. 황실
헌제가 이끄는 주인공 세력. 조조의 감시를 받으며 살다 허도를 탈출한 다음 신야에 자리를 잡는다. 방어하기가 어려운 신야를 떠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상용, 한중으로 진출했고 현재는 한중을 본거지로 장안과 낙양을 포함하여 상당한 세력을 불렸다. 인재들도 충성심이 강한 충신들과 유능한 참모들, 맹장과 지장을 골고루 가지고 있고 나중에 합류할 것으로 생각되는 인재들도 상당하다.- 이연 = 선조 헌문제 유협
본작의 주인공. 누가 선조 아니랄까 봐 자신이 "신하들을 좀 갈궜다고 지옥에 떨어질 뻔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뻔뻔하지만,[3] 역시 선조답게 머리는 좋다. 특히 제 안위를 궁리하는 일에는 머리가 기가 막히게 돌아가서, 미래의 문물까지 도입해 가며 헌제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그 미래 문물이라는 게 붕당 만들어 갈라치기, 선위쇼로 신하 기강 잡기 같은 1400년 앞선 선진 정치문물과 혐성질이다.[4]
계속되는 정치질에 학을 뗀 조조에 의해 황궁에 감금당했으나, 동승과 복완 등에게 오합지졸이나마 농민과 군사들을 모으게 하며 반격의 기회를 노린다. 그리고 사마의의 도움을 받아 약까지 쓰며 곧 죽을 것처럼 보일 정도의 꾀병을 부려 조조를 방심시킨다. 조조는 이연에게 어찌나 시달렸는지, 황제가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너무 기뻐서 두통조차 잊을 정도였다. 때마침 하내에서 양추의 난이 벌어지며 조조가 최중요 전력 대부분을 이끌고 출격하자[5] 친위 쿠데타를 벌인다. 허도를 장악한 후에는 조조파 관리와 호족 대부분을 숙청하고 포로로 잡힌 순욱의 아들 순운을 통해 빈 찬합과 함께 고맙다는 전언을 보내며 티배깅을 벌인다. 조조는 빈 찬합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다가 서둘러 허도로 돌아와서야 불태워지고 텅 빈 허도를 보고 황제가 딱히 의도하지는 않은 뜻을 짐작하게 되었다.
이 친위 쿠데타를 통해 조조 파벌이 입은 피해를 보면 전투 중에 만총과 조홍이 전사했고, 사마의가 하인들을 이끌고 조조파 인사 여럿을 습격하여 정욱 등이 살해당했다. 허도 장악 후에는 사마의가 조홍을 사칭하여 황궁에서 유인책을 펼쳤고, 이에 넘어가 입궐했다가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 살해당한 이들은 치려, 조진, 조휴, 하후상, 하후패, 곽온, 가규, 왕릉, 환범 등이 있다. 그나마 넘어가지 않고 도망친 이들은 사마의가 남겨진 하인 등을 심문하며 추적해 처리하여, 살생부에 오른 이들 중 7할은 확실하게 죽고, 2할 가량은 쿠데타의 혼란때 죽거나 허도 안에 숨은 것으로 추측했으며, 도망치는데 성공한 이들은 1할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허도에 남은 조조파 인사들의 가족들마저 습격당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몰살당했다. 즉 조조 일파의 세력의 기반도, 차세대를 맡아야 할 인재들도 이 친위 쿠데타 한 번으로 증발해 버린 셈.
그리고 종요와 순운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조조가 대노하여 회군하기 전, 노획한 군량들을 주변 백성들에게 나눠준 후 허도를 불태우고, 첫날에 140리, 둘째 날에 100리를 돌파하는 엄청난 속도로 형주를 향해 향해 달아나다가 장수와 가후와 합류해 공성전을 준비한다. 군사능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장수의 성격을 파악하고, 가후의 속내를 읽어내서 언변으로 눌러버리며 둘을 휘하에 넣는 데 성공하고 장수에게 유표한테 원군을 청하되 한참 싸움이 격한 보름 후에 전령을 보내라고 명한다.
조조에게서 탈출한 이후 장수군을 흡수하고 신탐, 장로, 단외를 정벌하며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한다. 이후 반원소연합군을 이끌고 관도대전을 벌여 승리하고 원소를 제거했으나 조조의 계략에 넘어가 하북을 홀라당 뺏겨버린다.[6]
이후 훈고학의 후진성과 호족들의 썩어빠진 사고방식 때문에 이 상황에서는 간신히 군벌들을 정리한다고 해도 후한은 다시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해결하려면 사상적 개조가 필요하다며 성리학을 창시한다. 자신이 외우고 있던 조선시대의 유학 경전과 해석들을 집대성한 뒤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엮어서 반포한다.[7] 1400여년간 발전된 유학을 뼛속까지 익히고 온 선조인데다 나름 말빨까지 뛰어나기에 후한의 대학자인 사마휘 같은 이들도 황제의 유학 이해도가 엄청나다며 감탄한다.
결국 기나긴 전란 끝에 조비를 죽이고 손권의 항복을 받아내며 중원을 통일했고 이후 마지막 불안요소였던 사마의마저 숙청한다. 이후 대동법, 참근교대, 성균관 등 여러 개혁들을 진행했고 234년 4월 21일 실제 헌제가 죽었던 날 사망한다. 사후 선조라는 묘호를 받았다. 살아생전 막강한 황권을 구축해놓았기에 이후 중국의 역사에서 유(劉)씨 성을 가진 후손들 외엔 황제가 될 수 없어 실권자들은 원 역사의 일본에서처럼 유씨를 명목상 황제로 모시고 정이대장군으로서 실질적 권력을 휘두르는 식으로 통치했다고 한다.
댓글란의 독자들에게는 런조라는 별칭으로 불리곤 한다. 임진왜란 당시 도성을 버리고 도주(run)했던 행적에 빗댄 것으로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 오래전부터 흔히 불려온 별명이다.[8] 작중에서 보인 하루 140리[9] 도주라는 엄청난 속력은 실제 역사에서도 실현한 것이지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것이기에 작가의 말에서 길게 설명하였다.
- 복황후
헌제의 황후. 겁 많고 심약한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궁녀를 시켜 이연의 밀서를 궁 밖으로 내보내는 등, 이연이 조조에 맞설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대단히 많은 도움을 주었다. 친위 쿠데타를 위한 황궁 탈출 과정에서 조홍의 병사들이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만다. 이연은 "내가 당신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할 수 있는 인간성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당신을 죽게 한 조조로 하여금 자신과 같은 하늘 아래 태어난 것을 후회할 만큼 고통받고 자손만대에 이르도록 역적으로 비난받게 만들어 주겠노라"는 말로 복수를 맹세한다. 한동안 허도에 가매장하고 방치된 상태였으나 관도대전이 끝난 후 시신을 수습해서 제대로 장례를 한다.
- 동귀비[10]
헌제의 후궁. 황제가 도망치자 치려에게 머리채를 잡혀서 끌려나와서는 비밀 옥에 갇혀버렸다[11]. 후일 사마의가 구출했으나 아버지 동승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절해버린다. 허도 탈출 과정에서 복황후가 죽음을 맞은지라 사실상 내궁의 업무를 본인이 보고 있는데 어지간한 일들은 황후가 다 처리했고 그 황후가 죽은지도 얼마 되지 않아 관련 업무 경험이 적은 탓에 일이 벅찬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독자들 사이에선 유력 황후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선조가 아버지가 죽었기에 무리라고 하며 무산되었다.
- 동승
이연이 의대조를 회수하고 병사 육성을 맡기면서 의대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 당장의 숙청은 피하나, 병사 육성을 불안요소로 여긴 조조에 의해 견제받던 중 술에 취해 기밀을 유출하면서 체포된다. 이후 비밀 감옥에 갇혀있다 친위 쿠데타 후 사마의에게 발견된다. 살생부에는 '생'으로 분류되어 있었으나, 사마의가 독단적으로 '살'을 명령하여 그를 죽인 뒤 이연에게는 '구하러 갔으나 이미 살해당한 뒤였다'고 거짓으로 고했다. 사실 이연도 동승이 능력에 비해 야망도 지나치고 지위도 과분하여 더는 못 쓴다고 여기고, 한직에 처박아둘 생각이었다. 그나마도 원래는 죽일까도 생각하다가, 아무리 후궁의 아비라곤 해도 장인은 장인인데다가 염라의 눈치가 두려워서 살려뒀던 것. 이 때문에 사마의가 이연의 진심을 눈치채고 죽인 것인지, 차후 권력구도에 방해가 될 것이라 여겨서 죽인 것인지가 확실치 않다. 이연은 사마의의 거짓말을 눈치챘지만 일단은 모른 척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잊지 않고 추후 사마의를 숙청할 때 동승을 암살했던 사실을 다시 들춰내 이를 명분으로 처형한다.
- 미인 진련 → 장련
유표가 사별한 전처 진씨의 조카라면서 후궁으로 보낸 인물.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며 황제를 대할 때조차 냉담하여 이연은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정체가 밝혀지는데, 본명은 장련으로 애초에 유표의 처조카가 아니었으며 정체가 들킬까봐 냉담하게 행동한 것이었다. 진짜 정체는 장사 태수였던 장선의 딸로, 원래 장선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된 뒤 장선과 함께 유표의 볼모가 되어있었다. 그러다가 유표가 장선을 독살한 뒤 장선이 죽은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할 겸해서 황제한테 보내 치워버린 것이었다. 아버지가 죽었음을 안 이후 이연의 지시로 오빠 장역이 유표에 대항해 반란하도록 부추긴다. 이후 아버지를 죽인 유표에 대한 복수심으로 정신이 약간 이상해졌고 저주인형으로 유표를 계속 저주하는 복수귀가 되었다.
- 헌목황후 신희(신헌영)[12]
복황후 사망 후 새로 들인 황후. 유력가나 특정 파벌에서 들이자니 정치적 부담이 컸기에 상대적으로 세력도 약하고 중립에 가까웠던 신비의 딸이면서 미래지식을 통해 능력이 뛰어나면서도 탐욕스럽지 않다는 걸 아는 신희가 선택되었다. 신희와 황제는 10살 가량 차이가 나고 황제가 20대 초반에 결혼이 진행되었다보니, 신하들이 황제를 로리콘이 아닌가 바라보기도 했다. 황제도 이 때문에 성인이 될 때까지 관계는 미루기로 한다. 나이가 어린데다 천성이 착하고 순수하기에 음험한 성격의 이연은 신희와 대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13] 천성이 착한 것과는 별개로 판단력은 성인 못지 않아서 아버지인 신비가 놀라워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연도 쩔쩔맬 지경. 원 역사처럼 자질 역시 뛰어난 덕인지 성리학의 이해도 역시 선조 다음으로 뛰어나며, 주인공이 친정으로 한중을 비웠을 때 사마의의 음모에 조정이 휘둘리지 않도록 여러 차례 돕는다. 이연이 사망한 뒤 유혼이 즉위하자 태후로서 뒷받침을 하여 황실을 안정시키는데 공헌한다.
- 폐태자 유진(劉珒)
헌문제의 장남. 성격이 포악하여 어떤 중신들도 지지하지 않았고 아버지에 의해 유배되었다. 이름(珒)도 같고 포악한 성격인 걸 봐선 임해군이 모티브이다.
- 효광황제 유혼(劉琿)
헌문제의 차남, 신헌영 소생. 의심이 많다는 단점을 빼면 3왕조의 반석을 다진 명군으로 평가받는다.[14] 이름(琿)도 같고 군주의 차남이였지만 장남이 나가리돼서 제위를 이은 걸 봐선 광해군이 모티브이다.
5.1.2. 동인
이연이 허도에 있던 시절부터 지지해온 구 호족 세력. 관습을 중시하고 훈고학의 영향을 받은 연로한 신하들이 주류로, 이연의 파격적인 정책과 성리학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으며 신진 호족을 견제하고 있다.- 복완
복황후의 아버지. 야심도 딱히 없고 능력이 대단한 것도 아닌 소시민적 인물이지만, 이연이 기용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인물 중 그나마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이라 여러 일을 맡는다. 친위 쿠데타 당시에는 체포되어 있었기에 아들 복덕이 대신 임무를 수행한다. 초고속으로 도망치는 황제 일행을 역시 고속으로 추격해오는 조조에 맞서 저지전을 벌였고 유관장 3형제보다 서열상 위인지라 미래 삼국지 게임에서 통솔과 충성심이 엄청 높을 것이라는 평가.
- 복덕
복황후의 오라비이자 복완의 아들. 원담에게 이연의 밀서를 전달하고, 친위 쿠데타 당시 백성들을 선동하여 조홍에게 맞서게 하는 등의 일을 담당했다. 유비에게는 무능하다고 까였지만, 오랜 시간 조조에게 핍박받은 원한과, 헌제 휘하에서 준비한 경험치가 상당히 쌓였는지 조조가 호표기를 동원해 들이박아도 충실하게 전열을 세워서 막아내며 선전한다. 이연의 한중 입성 이후에도 동인의 장군으로 활동하고 있다.
- 충집
선조의 호위대장 관직인 기도위를 맡고 있다. 정략이나 군략과는 크게 연관이 없는 순수한 호위무사로, 간혹 선조에게 직언을 하는 등 뛰어난 충성심을 가진 충신의 표본같은 인물이다. 모두 자기 잇속을 채우려 하는 황제파 구성원[15] 중 선조가 가장 믿을 만한 인물. 선조도 그의 충성심을 인정하지만, 혐성이 몸에 배어 버려 충신인 충집과 대면하는 것은 불편해하고 오히려 음험한 사마의와의 대면을 더 편안해한다. 물론 선조는 염라대왕의 눈치를 보고 있고, 충집 외에는 따로 믿을 만한 경호원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충신인 충집을 함부로 버릴 수는 없는 입장이다. 장수로서는 평범한 수준. 호위무사인만큼 일신의 무용은 상당하겠으나, 지휘관으로서는 딱히 주목받지 못하는 듯하다.
- 공융
동인 계열의 중신 중 하나. 조조와 사이가 좋지 않기는 하지만, 황제가 두각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일단 중립을 표방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황제의 자해쇼 때 황제의 지목으로 사건 조사를 맡을 뻔했으며,[16] 조조가 축출된 이후로는 황제파의 중신으로 활동한다. 작중 묘사된 성격은 한 마디로 '유교 탈레반'. 사실 공융이 정말 그렇게 원리원칙주의자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긴 하나, 일단은 기존에 흔히 알려진 클리셰대로의 성격으로 등장시킨 듯.
5.1.2.1. 사마씨 일가
- 사마의
이연의 오른팔인 동시에 견제 대상으로, 등장할 때부터 조조와 함께 유력한 최종보스 후보로 꼽혔다. 본작에서는 '감정이 희박하고 공감 능력이 없으며 오직 권력을 휘두를 때만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로 묘사된다. 조조는 이미 거대한 세력을 이뤘지만 황제에겐 사람이 없으므로, 그의 친위 쿠데타를 돕는다면 성공만 하면 빠르게 권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하여 이연을 따르기로 한다. 작중에서는 이연의 빙의를 전후하여 헌제의 필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헌제(이연)가 와신상담하며 기회를 노린다고 생각했다. 이연은 그의 본성을 확인한 뒤 왜 내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만 있는 거냐며 한탄하면서도 쓸 사람이 없어 결국 사마의를 등용하고, 이후 사마의는 친위 쿠데타를 준비하는 이연에게 꾀병 비결을 전수하고, 여러 밑작업을 수행하고, 이연의 황궁 탈출을 돕고, 하인들과 함께 조조파 인사들을 습격해 암살하는 등 탈출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쿠데타 후에는 제갈량의 첫 관직이기도 한 군사중랑장 직위를 받고, 살생부에 따른 숙청을 수행한다.
헌제와 같이 남양까지 도주해 장수 세력과 합류해 공성전을 벌이자 유관장 형제와 같이 외부에서 기병대를 통솔하면서 모사 역할을 하게 된다. 둘 다 못 믿는 사이인 건 피차일반이지만, 둘의 상성이 절대로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고. 하후돈이 철저하게 후방 급습을 대비하는 걸 보면서 기본적인 병력의 열세로 후방 기동전이 어려울 것을 파악하고, 보급로인 박망에서 조조의 호위대를 돌파하고 치중을 막아야 한다고 작전을 짠다. 이후에는 포로 학살을 은근히 권유하는 등 유비의 손실을 유도하면서 본성을 슬쩍 드러내어 유비에게 섬뜩함을 준다.
그 후 선조에게 크게 중용되고 상용, 한중을 한 달도 안 되어 정복하고 빠르게 세력을 가다듬은 선조가 장안을 치도록 하고 위연의 말을 듣고 자오곡을 건너 장안에 진입해 단외를 몰아낸다. 이후 관도대전에서도 반원소연합군 측으로 참가하여 황제의 별동대로 활동한다.
당장은 세력이 없어 황제에게 충성하고 있지만 언젠가 황제에게 반기를 들 속셈을 갖고 있다.[17] 관도대전이 끝나고는 지방 호족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지방 호족들에게 개별적으로 군사력 증강을 권하고 다니는데, 사마의는 호족들을 군벌화시켜서 잠재적 반란군으로 키워 점차 황제의 중앙집권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타이밍이 훈민정음의 유행과 겹치면서, 사마의가 지방 호족들에게 의병을 만들기를 권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18] 사마의가 허도 탈출 때부터 종군하며 공을 너무 많이 세우자 이연은 사마의의 권력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슬슬 경계하기 시작한다. 이를 눈치챈 사마의는 황제가 자신을 숙청하지 못하도록 보수파 호족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였고 이것이 붕당정치의 시작이 된다.
207년 조조군의 대공세에서 조조가 관중을 기습할 것을 눈치챘으나 조정이 위기에 처하면 자신이 조조를 막아내는 공을 세우겠다는 생각으로 알았음에도 병력만 준비해두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지원을 갔다가 조조의 친정에 패배했고 물타기 작전도 황후 때문에 실패하면서 결국 백의종군을 하게 되며 숙청당한다.
하지만 조조의 형주 공세에서 조정에 마땅한 지휘관이 없는 틈을 타서 복덕의 부관이 되어 황제를 구원하며 공을 세웠다.[19] 이 때문에 함부로 사마의를 죽여버릴 수 없던 황제는 백의종군의 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남만으로 유배를 보냈다. 조비를 토벌하고 손권의 항복을 받은 후 중국 최초의 사화인 건안사화를 일으켜 호족 문제를 정리함과 동시에 사마의도 숙청하기로 한다. 고기를 선물로 보내서 먹으면 동생 사마부의 상중에 고기를 먹었다고 강상죄, 거절하면 황제의 선물을 거절했다고 반역죄로 처형하려고 했으나 이를 눈치챈 사마의가 고기가 도착하자 일부러 목을 매는 척하며 자살 쇼를 펼쳐서 1차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이후 기묘사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연이 뽕나무 잎에 ‘인중위왕[20]’이란 문구를 새겨[21] 결국 사마의를 잡아들이고 억울하다는 항변에 동승 암살 혐의로 반박한 뒤 참수하며 기나긴 악연이 끝난다. 참수되는 순간까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황제를 노려봤으나 사후세계의 존재를 아는 주인공은 어차피 저 놈은 죽으면 바로 지옥행이라며 비웃었다.
- 위연
일개 병졸이었으나 장로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워 사마의의 눈에 들었고 사마의의 심복이 된다. 사마의 밑에서 종군하며 반골 기질을 드러내는 한편,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군공도 많이 세우는 모습을 보인다. 작중에서 사마의는 위연의 반골 기질을 '별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고, 천성이 싸가지 없고 무례한데다 뒷일도 생각하지 않고 지 꼴리는 대로 행동하는 막가파'로 해석한다. 처음 등장 때만 하더라도 작가가 내레이션을 넣어가며 사마의와 특별한 관계가 있을 것처럼 묘사했지만, 중반부터 묘사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사마의가 백의종군을 시작하기 직전부터 언급이 사라진다. 자오곡 계책을 이용하거나 수백 명으로 이뤄진 기병대를 격파하는 등 힘을 준 캐릭터성에 비해 허무한 퇴장.
- 사마부
사마랑과 사마의의 동생. 사마랑처럼 온건한 듯했지만 사실 사마의처럼 야심을 감추고 있다. 사마의의 지시에 따라 조조의 관중 기습 때 물타기 작전을 실행한다. 건안사화 때 유배되었다가 외부와 연락을 주고받던 것이 적발되어 참수당한다.
- 사마사
사마의와 장춘화의 장남. 연좌제로 아버지, 동생과 함께 참수된다.
- 사마소
사마의와 장춘화의 차남. 연좌제로 아버지, 형과 함께 참수된다.
5.1.3. 서인
동인들 보다는 상대적으로 늦게 이연을 지지한 신진세력. 상대적으로 동인들에 비해 재산이 적고 관직도 낮은 편이지만, 전공을 세워 일찍 출사하거나 투항한 무장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이연의 개혁에 동조하고 대동법, 훈민정음을 지지한다.- 장수
완성과 양성 일대에서 조조와 대치 중이었다. 조조가 망하길 기도하고 있으며 황제가 직접 자기 영역에 오자 혹시 자기도 조조처럼 큰 권력을 휘두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지만, 큰 야망이 없이 적당히 잘 살면 만족하는 장수의 소시민 성향을 아는 선조는 조조 휘하에서 맞을 장수의 미래를 정확히 꼬집어 장수를 귀순시킨다. 양성으로 들어가 휘하 병력 1만과 같이 공성전을 준비한다.
보름이 넘는 피튀기는 혈전 끝에 조조가 원소의 남하와, 유비의 후방 교란. 장수군의 방어를 무너뜨리지 못하고 후퇴하면서 승전한다. 그 후 조조의 굴복을 바라보았고 유표와의 협상에서 완과 양을 포함한 남양 역시 황제의 관할이 되면서 완전히 황제의 종속세력이 되었다. 그 후 행군 중에 유비와 같이 대화하면서 그의 본성을 눈치챈다.
후일 역사에는 황제가 허도를 탈출하기 전에 미리 포섭해뒀던 것으로 알려진다.
5.1.3.1. 유비군
원 역사였다면 서주로 탈출하고 관도대전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했을 상황이었지만 황제에게 코가 꿰이면서 황제 휘하에서 종군하고 있다. 주군인 유비는 조조의 자리였던 사공으로 올랐고 관우, 장비도 원 역사보다 이른 출세를 하면서 수혜를 받은 세력이 되었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군벌로서의 독립을 노리는 유비 개인의 입장에선 황제에게 발목이 잡혀 전전긍긍하는 마냥 좋아만 할 순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유비
초반에는 황제에게 승산이 전무하다 본 건지, 이연이 불러도 불응하고 몸을 사리며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이연은 연회장에서 "천하에 영웅은 승상과 좌장군뿐"이라는, 논영회를 카피한 폭탄발언을 던지며 조조와 갈라치기를 시도하고, 매일같이 조조에게 보내는 것과 동급의 하사품을 보내고, 수시로 입궐을 명하여 대면하는 등의 방식으로 집요하게 괴롭혔다. 결국 지친 유비는 두 손 들고 굴복하여 이연 휘하에 들어간다.
친위 쿠데타 당일, 만총의 진압군에 맞서는 복덕의 실력이 부족하다 판단하고, 좌장군 지위를 내세워 진압군에 가세하는 척하며 돌격하여 일검에 만총을 죽여버렸다. 직후 사병들을 앞세우고 백성들 사이의 명성을 이용하여 거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추격하는 조조군을 상대로도 싸워서 길을 여는 데 성공하며 장수군과 합류해 공성전에 나선다. 조조에게 패한 전적은 있어도 헌제 세력의 가장 유능한 군사전문가지만 헌제는 분명히 단순한 장수나 신하의 입장으로 만족할 자가 아니고 서주로 도망칠 가능성도 높다면서 감시역으로 사마의를 참모로 붙여두었다.
인재를 보는 눈이 뛰어나 이연의 본성을 가장 정확하게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연도 유비를 기회만 있으면 도주할 믿지 못할 사람으로 여긴다. 정난 과정에서는 쉴새없이 떠들면서 군사를 이끌고 도주 중에 만난 조조를 상대로 뻔뻔하게 누명을 씌운다.
사마의의 조언과 작전으로 하후돈을 격파하고 조조군의 보급선에 큰 피해를 입히나, 포로 학살을 은근히 유도하는 등의 면모에서 사이코패스 기질의 편린을 감지하고 섬뜩함을 느낀다. 이후 칭병하고 서주로 도망가려다가 선조가 집으로 몇 번씩이나 찾아와 사공 자리를 부탁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붙들렸고, 원소만 정리하면 서주로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황제를 위해 일한다. 선조가 대필해준 원 역사의 출사표를 표절한 상소문을 올려 대단한 명문이라며 칭송받았고, 이를 토대로 반원소연합군이 결성된다.
원소가 토벌되기는 하였으나 예상치 못한 조조의 배신으로 서주로 갈 수 없게 되어 계속 황제의 아래에 종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출사표라는 명문 때문에 모든 사람으로부터 충신 대접을 받고 있어 맘대로 황제 측에서 이탈하지 못하는 상태다. 황제 이연은 애초에 그를 서주로 보내줄 생각 따위는 없었고, 겉으로는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이 서주로 못 보내 주겠다'며 위로만 해 준다. 그렇다고 유비가 멋대로 서주로 가 버리면 황제의 명을 무시하고 도망친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명분을 무기 삼던 유비에게는 치명타가 될 것이다. 황제에게서 벗어나는 그나마 최선의 방법은 조조가 끝장난 후 그를 더 이상 붙잡을 명분이 사라진 황제와 좋게 결별하는 것인데, 조조가 사라지고 황제가 한실을 복구할 경우 엄연히 당대의 군벌 중 하나로 나름 야심이 있던 유비의 성장은 거기서 끝난다. 한 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진퇴양난 상태.
형주 전역에서 패배하고 익주로 런을 시전하며(...) 입지가 약해졌으나그 황제에 그 신하하북 전역에서 조비의 목을 베며 이를 덮을 만한 큰 공을 세운다. 이후 중산왕의 작위를 받았고 황제의 수레를 탈 수 있는 특별대우를 받으며[22] 원 역사보다 21년이나 더 살고 82세에 자연사할 때까지 떵떵거리며 잘 살았다고 한다. 군벌 유비로서는 황제에게 코가 잘못 꿰여서 죽을 때까지 신하 노릇이나 하게 되었고 유비도 이 사실은 안타까웠는지 방탕하게 생활했다고 하지만, 결국 황제와 함께 난세를 끝낸 최대 공신이자 충신으로 역사에 이름이 남게 되었고 본인의 개인사 측면에서도 나라 뿌리 뽑아서 이릉에서 불태우고 형제의 복수도 실패하고 죽었던 것과 달리 한 황실도 살리고 형제들과 하하호호하며 훨씬 잘 살다가 갔으니 본인 생각이야 어쨌든 작중 최고 수혜자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할 수 있겠다.
- 관우
유비의 의형제. 갖은 혐성과 인성질이 흘러넘치는 본작에 말랑한 인간미를 보태주는 개그캐. 건안정난 당일 유비와 같이 군을 이끌어 성공으로 이끈다. 원술 토벌전에서는 성공적으로 적장을 죽였지만 돌아왔을 때는알콜 성분으로 비열이 낮은술이 이미 식어있어서 어색해 했다. 조조의 회군에서 도망치는 헌제 일행의 선봉대를 맡아 이끌면서 초병들을 제거하고[23] 길을 열었다. 마침내 쫓아온 조조군을 상대로 유비와 같이 조인, 조홍의 기병대를 상대로 싸웠다가 물러난다. 유비가 조조를 상대로 거짓 프로파간다 연설을 하자 부끄러워하면서 얼굴이 벌게졌다고 묘사된다.[24] 관도대전에서는 유비와 함께 반원소연합군으로 참가하였다.
이후 익주의 유장이 황제에게 SOS를 요청하자, 그나마 야심이 적고 능력은 좋은 탕구장군 관우가 익주 전역 사령관으로 임명된다. 물론 의심 많은 선조답게, 유비가 관우에게 몰래 수작을 부릴 가능성을 우려해 직접 전쟁터까지 관우와 동행하여 관우를 제어하려고 한다. 익주 전역에서는 채모와 맞서 전술적 승리를 거두나 수군이 없다는 한계로 결정적 승리는 거두지 못한다. 이후 조조의 침공이 임박하여 조정의 주력이 철군할 때 익주에 남아서 익주 북부 방어를 맡는다.
익히 유명한 것처럼 오만할 정도로 자부심이 강한 성격. 그래서 자신을 인정해 주는 황제의 칭찬을 안 그런 척하면서도 은근히 바라고 즐긴다. 물론 뛰어난 능력으로 후한을 부흥시킨 헌제의 칭찬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영광이겠으나[25] 관우는 댓글창에서나 선조의 생각으로나 잼민이, 어린애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독 좋아한다.[26] 선조도 관우의 그런 성격을 알아서, 그를 적당히 추켜세우면서 어르고 달래며 활용한다.
오만하긴 해도 선조 헌제나 조조, 사마의 같은 인간말종급의 혐오감 그 자체인 혐성은 아니고, 백성들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등 민심을 얻는데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기에 무난히 출세하며 지냈다. 야심가인 유비와 달리 황제를 따르는데 별 거부감이 없어보이는 듯한데, 본인의 충의에 자부심이 크면서도 선조 헌제 공인으로 야심이 적은 관우에게 황제에게 충성해서 천하를 안정시킨다라는 대의에 따르는 것은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기 때문인 듯.
- 장비
유비와 관우, 복완 복덕 부자를 피해서 간신히 헌제를 쫓아온 조조의 기병들을 막아서며 장판파 유사버전을 재현한다. 관도대전에서는 유비와 함께 반원소연합군으로 참가하여 장합군을 격파한다. 이외 등장 비중은 적은 편.
- 미축
황제가 유비에게 하사품을 올릴때 표를 올리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등장하였다. 황제가 유비를 삼고초려 할때는 유비와 함께 난처해한다.
5.1.3.2. 구 원소군 출신
- 장합
원소군 시절 관도대전에서 장비와 맞섰으나 대패한다.[27] 원소군이 멸망하고 조조가 하북을 장악한 이후 신비와 함께 방랑하다가 순욱의 주선으로 황제군에 귀순한다. 그 뒤로는 사마의를 견제하려는 황제의 의도에 따라, 막 항복해서 세력이 미약한 장합이 대신 현장실무자 장군으로 많이 굴려진다. 기책을 선호하지 않는 정석적이고 무난한 장군감으로 평가받는다. 조조에게 패전했기 때문에 사마의가 백의종군으로 숙청당할 때 어쩔 수 없이 같이 백의종군을 당하는데, 장합을 숙청할 의도는 없었기에 사마의와 달리 편한 곳으로 보내진다.
- 원담
원소의 장남. 헌제가 밀서를 보내 여러 지령을 내리는데, 이런 지령이 원담 본인의 이익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일단 지령에 잘 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단은 헌제의 장기말 신세를 자처하고 있다. 그 덕분에 원술이 살아나고 옥새를 원담이 가지게 되는 등 점차 역사가 변하고 있다.
헌제의 밀서대로 하내군에 반란이 일어나자, 각지에서 훈련을 핑계로 모은 2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남하하게 되고 하내의 친원소파가 친조조파를 제거하는데 성공한 틈을 타 하내에 무혈입성한다. 이후 하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조조가 본인이 직접 2만 5천 군사를 이끌고 하내로 온 통에 조조와도 맞붙게 되고 조조군 올스타들을 상대로 기병을 이용한 기동전으로 치고빠지면서 싸우며 2달 가까이 버티지만 결국 밀려난다. 그러나 그 사이 허도가 불타고 조조의 인척과 지지세력이 붕괴직전까지 가는 치명타를 입었으니, 엄청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그럼에도 원소에게는 호족들을 다루려는 자신의 뜻과 능력을 이어받지 못했다고 인정받지 못하며 청주 자사로 발령났지만 이연의 공작으로 거기장군에 오르게 된다.[28] 한편 헌제는 원담에게 낙양을 공격하면 활로가 열린다고 명하고, 하내를 탈환한다는 명목으로 급조한 군사를 이동시켜서 그대로 하내를 지나쳐 낙양을 점령한다. 원소는 경악한 척 하면서도 이를 이용해서 원담을 반역자로 몰아세우고 숙청한 후 낙양과 하내를 동시에 흡수할 계획을 세우지만, 이미 원담은 헌제와 붙어서 최소한의 보급을 확보한 상태.
결국 관도대전 열리면서 반원소연합군 측으로 참전하고 승리하면서 원소에게 복수하는 것을 성공한다. 사마의가 아무리 역적이라도 아버지를 직접 죽인 게 알려지면 평판에 나빠질 거라며 설득해서 원소를 죽이는 공은 사마의에게 넘긴다.
그 뒤로는 통일까지 황제 밑에서 주요 장군 중 하나로 활동한다. 마지막 조비 토벌전 때는 우금의 항복을 받아낸다. 비록 황제의 계략에 놀아났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원래도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비참하게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 중원 재통일의 공신 중 하나로 이름이 남게 되었다. 또한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우며, 원역사의 부정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고 뛰어난 능력들만 연이어 보였기에 이런 장남을 후계자로 세우지 않고 죽이려고 한 원소에 대한 비판도 후대에 거세질터니 어찌보면 자신을 내다버린 아버지에게 성공적인 복수를 한 셈이다. 또한 원술의 원가도 참칭으로 몰락했고, 원소의 일가도 모두 역적으로서 몰락했지만 원담의 일가만이 명문가로서 계승될테니 후대의 원가는 원담을 중시조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29]
작중에서 바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특한 인물도 아니라고 언급되는데, 그 탓에 황제의 본모습을 눈치채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황제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인물 중 하나.
5.1.4. 중도
- 신비
원소의 신하 겸 원담의 모사. 하내 공방전 이후 원담을 멸시하는 원소의 태도를 보고 의중을 깨닫는데 정작 원담을 끝장내지 못하는 상황을 의아하게 여긴다. 그 후 원소가 참살당하고 하북이 조조 손에 들어가자 장합과 함께 황제에 귀순했다. 딸 신희가 황후가 되면서 국구가 되었다. 신희가 황후가 될 때 혹시 황제가 자신을 버림패로 쓰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서[30] 사직을 청하는데 그럴 생각이 없었던 이연은 받아들인다. 본래 서인으로 분류되지만 황후를 배출하여 정치적 공격을 우려하여 조정에서 물러난다.
- 가후
장수가 가장 신뢰하는 모사이다. 선조한테 만나자마자 공신 권유와 항복 권유를 받는다. 받아들이려는 장수에게 헌제를 한중이나 형주로 보내자고 하면서 거부할 것을 주장하지만, 가후가 어떤 인물인지 역사적 기록으로 아는 헌제에게 정곡을 찔리면서 역으로 설득당한다. 그 뒤로는 장수와 황제의 모사로 활동한다. 사마의의 위험함을 눈치채고 장수에게 그를 멀리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합비 공방전에서는 유비와 함께 황제의 전략에 동조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비 휘하에서 모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원 역사의 안전주의 성향 때문인지 본작에서도 확실한 동인, 서인 세력으로 분류되지 않는 중립적인 태도를 보인다.
- 사마랑
사마의의 형. 인격과 능력을 인정받는 인물로, 사마의와는 달리 정말로 선한 인물인 모양. 그러나 헌제와 동생이 숙청을 시작하자 어쩔 수 없이 헌제 측에 가담해 숙청을 도왔다. 의외로 동생과는 별개로 정치 성향은 중립. 하지만 동생을 돕다가 제갈량에게 걸렸고, 사마씨로서는 보기 드물게 어느 정도 있는 충성심과 선량한 편인 사람됨을 염두에 둔 황제에 의해 파직 후 남양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이후 건안사화 때는 참수당한 두 동생과는 달리 아버지 사마방이나 다른 사마 가문 사람들과 함께 유배를 가는 정도로 그친다.
5.1.4.1. 사마휘 계열
명망있는 유학자 사마휘를 후한에 상리학을 보급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한편 제갈량, 방통, 서서 등 아직 어린 사마휘의 제자들을 나중에 자연스럽게 등용하기 위해 사마휘를 영입한다. 학문 연구를 주로 담당하는 편이긴 하지만 덤으로 내정도 담당한다.- 사마휘
권력을 꺼리는 탓에 모든 군벌의 영입을 거절하고 제자들이나 양성하며 신야에 조용히 살고 있었으나, 유학자로서 명분상 황제의 부름은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한중으로 올라온다. 당대의 명사들은 인물평을 내리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는데 이는 사마휘도 마찬가지였고, 황제의 행적을 보고 잔혹하기보단 간사하고, 흉포하기보단 협잡스럽고, 유능하지만 혐오스럽다. 세간의 시선을 신경쓰기에 언제든지 자신의 겉모습을 위장할 수는 있으니, 진심으로 타인을 위하지는 않는다.라며 성군은 아니지만 암군이나 혼군도 아닌 난세에 최적화된 소인배라는 정확한 평을 내렸다.
본래 황제의 조정에서 적당히 존재감 없이 머물다가 빠져나올 생각이었으나, 황제가 창시한 천년 후의 성리학 때문에 간단히 코가 꿰어버렸다. 성리학은 사마휘에게조차 이해하기 버거운 것이었던데다[31] 선조의 유학 실력도 대단했고 학자로서의 자존심도 있기 때문에 성리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사직을 미루다 보니 코가 꿔어버린 것. 그 와중에 황제가 일거리[32]를 던져주기도 하였기 때문에 일거리가 계속 쌓이는 상황이다. 나중에 언급되는 바에 따르면, 황희처럼 죽기 직전까지 부려먹힌 것으로 추측된다.(...)
- 제갈량
사마휘의 제자로 과로에 시달리던 사마휘가 업무, 그 중에서도 내정 처리를 짬처리시키기 위해 불러들이면서 황제의 조정으로 불려온다.[33] 본인은 대장군보다는 재상이 되고 싶다고 한다. 무시무시한 워커홀릭으로, 일을 짬처리 시키려 했던 사마휘가 기겁하고[34]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도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한다. 황제는 제갈량을 전농중랑장으로 임명하려 하였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처음에는 대사농의 시랑으로 임명하고 일주일만에 상서로 또 다음주에는 시중으로 한 달 뒤에는 전농중랑장으로 파격적인 승진트리를 타게 된다.[35] 207년 기점으로는 대사농의 자리에 올랐다.
선조는 어차피 사마의, 장합, 유비, 관우, 원담 등 유능한 장수들은 많으니 제갈량에게는 군무를 맡기지 않고 오직 행정가로만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제갈량이 머물던 관중 일대를 조조가 기습하면서 겨우 2000명의 오합지졸 잡병만 가진 채 조조군의 최정예 3만명에 맞서는 상황이 되었으며, 그냥 항복하거나 도망가자는 제안을 물리고 조조에 맞서기로 한다. 병서를 좀 읽기는 했지만 실전 경험이 없는 제갈량이었기에 본인도 조조를 이기지 못하고 선평성을 지키다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한데 여기서 제갈량의 군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며[36] 조조의 공세를 좌절시킨다.[37] 신평성에서 조조군을 무찔러서 모두 기쁜 와중에 조조군이 농지를 불태워서 이로 인해 일을 얼마만큼 해야할지 고심하면서 일귀신 기질은 어디 가지 않았다.(...) 조조가 죽은 뒤 황제가 하북의 조비를 정벌하자 황제군의 보급 및 후방 경비를 지휘하는데, 조비가 황제군의 보급선을 끊으려 해도 철두철미한 방어 테세를 유지해서 손도 못쓰게 한다.
- 서서
제갈량 아래에서 행정 업무를 돕다가 선평성 전투 전에 제갈량의 명으로 탈출한다. 중원 재통일 후 장안으로 천도하는 행정업무를 담당한다.
- 방통
조조 사후 하북 공세에서 군재가 부족한 황제의 참모 겸 부관 노릇을 한다.
5.2. 조조군
황제의 친위 쿠데타로 인해서 세력 수도인 허도가 잿더미가 되었고, 허도에 남아있던 조조군 장수와 관리들이 몰살을 당했다. 정욱을 비롯한 2세대 장수들이 사망했고 이연의 살생부에 올라간 사람들 중 7할은 확실하게 죽었다. 실로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으며 본편 최대 피해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와신상담으로 인해 대오각성한 조조가 손책을 죽이고 하북세력을 흡수해 다시 최종보스 위치에 오른다.[38] 그렇다고 해서 원래 역사의 원소군+조조군 만큼 센 것은 아닌데 건안정난으로 인한 미래 인재들의 사망, 장합 등 인재들의 추가적 이탈, 서량이라는 기병공급지 장악 실패, 협천자라면서 정작 천자가 도망가서 명분이 없는 상황, 조조의 집권 과정에서 지방 호족들의 권리 증가로 인한 조조의 하북 지방장악력 약화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겉보기보다는 세력의 힘은 약한 상태이다.- 조조
빙의 후 정치질을 벌여대는 이연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인물. 처음에 헌제가 반격에 나설 때만 해도 '현실파악 못 하는 애새끼' 혹은 '막 나가는 애새끼' 정도로만 여겼으나, 선조의 1400년을 앞선 최첨단 혐성과 정치쇼에 시달린 나머지 '생각할 때마다 짜증나는 새끼, 사람 빡치게 만드는 데 재주 있는 새끼'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어찌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는지 선조가 몰락해 자신에게 자비를 구걸하는 망상을 하였고, 이연이 꾀병으로 죽어가는 척을 했을 때는 드디어 그 악독한 놈이 천벌을 받는다며 대낮에 술판을 벌이며 좋아할 정도[39]. 특히 그놈의 선위 파동에는 아주 지독하게 시달린 나머지, 나중에는 선위라는 단어만 들어도 발작을 일으킬 지경이 된다.
하내에서 원담과 수 주간 장기전을 벌인 끝에 그를 밀어내고 하내를 차지하며 원소 세력과의 전쟁에서 초반 승기를 잡는가 싶었으나, 허도에서 황제가 친위 쿠데타(일명 건안정난)를 벌여 본인의 지지 세력이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성을 잃는다. [40] 포로를 관리할 시간이 없다고 모조리 학살해버리고 순욱의 반대를 강제로 누르고 허도까지 전력으로 진격했으나 이미 불타오르는 허도를 보게 된다. 이에 군량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헌제가 백성들에게 나눠줬던 식량을 반항을 억누르며 다시 빼앗아서 추격하나[41], 너무 빠른 어가의 속도에 나날이 멀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한다. 그래도 병력을 기병 위주로 편성하고, 보병들은 수레에 태워 기동력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하루에 200리를 돌파하는 엄청난 속도로 선조를 따라잡는데는 성공하나, 조조군이 완전히 지친 상태에서 복완과 유비 등이 차례로 군을 이끌고 발목을 잡고 장비가 백하의 다리에서 장판파를 시전하는 사이에 사마의가 다리를 끊어버린 탓에, 황제가 장수의 세력권인 남양으로 넘어가는 걸 막는데 실패하고 만다.
그 와중에 선조는 무지막지한 프로파간다까지 살포해 조조의 인식을 나락으로 보내는데, 조조는 신하 주제에 황제를 가두어 두었다가 병에 걸리자 신이 나서 술판까지 벌인 희대의 불충신이고, 육촌인 조홍은 임신한 황후를 겁탈하려다 살해한 희대의 색노이자 불충신이며, 황제가 도망치자 조홍이 허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학살했다는 내용이다. 보면 알겠지만 술판 벌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하지만 평소에 조조가 서주 대학살 등 이런저런 더러운 짓거리를 벌였기 때문에 민심이 좋지 않기도 했고, 추가적으로 하내에서도 포로들을 또 학살했기 때문에 그렇게 설득력이 넘친 소문이 완성되었다. 그 결과 하루 140리의 초강행군에 백성들이 따라올 때 '서주' 한 마디면 죽을 때까지 걸었고, 강 주변 배를 가진 어민들과 주민들도 겁 먹고 몽땅 강 건너 도주했다.[42] 보통은 군대가 다가와도 백성들이 집과 땅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은 생계가 없어지기 깨문에 꺼리지만, 이번엔 상대가 그 악명 높은 학살자 조조였기 때문에 백성들까지 '도망치면 살아남을 가능성이라도 있지, 잡히면 조조에게 반드시 죽는다'란 마인드로 죽기를 각오하고 쉬지 않고 밤낮으로 강행군을 이어간 것. 비도덕적인 통치행위가 가져오는 실질적인 피해를 몸으로 겪고 있다.
3주간의 공성전을 치르던 중, 원소가 역경을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받자 퇴각하나 황제군에게 뒤를 잡혔으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삶을 포기하고 역사에 이름 한 줄은 남길 수 있도록 아름다운 죽음을 맞을 각오까지 한다. 하지만 선조에게는 원소에 맞서려면 아직 조조가 필요했기에 조홍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는 대신 오궤이십오고두례를 하는 수모를 겪은 뒤 형식적으로 사면받고 승상에 임명된다. 이때 선조의 강요로 수치심 속에서 박장대소를 한다. 그후 선조한테 제대로 굴욕당한후 감정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상당히 너그러워 졌다. 어지간한 일은 선조에게 당한 굴욕보단 못하기에 폭발기준점이 선조로 상향되었기 때문. 하지만 속으론 황제에게 제대로 굴욕을 갚고자 하는 모습이 강해졌으며 진정으로 와신상담[43]을 하며 훗날을 기약한다.
이후 반원소 연합군으로 참전했으나 몰래 원희를 생포해서 빼돌리고 마약을 먹여 살아만 있는 폐인으로 만들어 허수아비로 삼고 구 원소군 세력을 장악한다. 이후 황제군을 기습공격해서 손책을 죽이고 하북 전체를 점령한다. 황제에게 한 번 패배한 이후 자신이 천하통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하북을 장악한 일개 지방 패권 세력으로 남는 대신 황제에게 복수한다는 목적만 남았다. 5년간 하북 내부 정리를 한 후 10만 대군으로 황제군에 총공세를 시도하는데, 수년간 황제에게 시달린 경험상 황제의 정치력이 너무 뛰어나 외교적 수단을 쓰면 필패하니 황제가 술수를 부릴 틈을 주지 않고 오직 군사적으로만 승부를 봐야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조조의 야심찬 기습 작전은 제갈량이 선평성에서 잡병 2000명으로 우주방어를 하며 허무하게 망해버렸고, 숙청을 피하기 위한 사마의와의 밀약으로 퇴각하는 길에 동관을 불태우며 체면치레만 하고 돌아간다. 이후 스트레스로 지병이 더욱 악화되어 원 역사에서의 수명은 더 남았음에도 의원에게서 길어야 1년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이후 유종과 밀약을 맺고 황제를 죽이기 위한 인생 마지막 도박적인 공세를 가해서 황제를 양양성에 가둔 뒤 함락 직전까지 몰아붙인다. 하지만 함락 직전 홍수가 몰아닥치며 조조군 병력은 반토막이 나버리며 실패한다. 이후 허허실실의 계략으로 사마의를 속여 최후의 공세를 시도하지만 이를 눈치챈 사마의가 조조의 트라우마인 오궤이십오고두례를 재현하여 조롱하자 혈압이 올라 칠공분혈하며 피를 토하고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다. 몸만 마비되었을 뿐 정신은 온전하고 눈알을 굴리거나 신음을 낼 수는 있으니 뇌출혈로 인한 잠금증후군#인 듯. 온몸이 마비된 상태에서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고 하늘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는데 이렇게 되다니 억울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후 권력을 노린 조비에게 목이 졸려 사망하는 심히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여러모로 비참한 최후지만 삼국시대를 열어젖힌 통치자, 장군으로서 능력은 가히 명불허전이라 황제는 한 번도 정면대결에서 조조를 이기지 못했고 완성과 하북을 제외하고 뒤통수 맞아 위기에 빠진 것만 3번이다. 개중 제갈량이 농성으로 저지한 한 번을 제외하면 2번은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구사일생이었고 마지막 양양성에선 명백히 죽을 상황에 하늘이 홍수를 내려줘서 살았으니 끝내 황제 자신의 역량으론 조조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이토록 두렵고 무서운 적수였기에 살아있는 내내 긴장감이 유지될 수 있었고 독자들에겐 매력적인 빌런, 황제와 함께 작품을 이끈 쌍두마차로 인정받는다. - 조비
후계자 자리를 놓고 형제들과 경쟁 중. 혼자 공을 세우겠다고 조창과 조식에게 전달하라던 명령을 전달하지 않았는데, 예상치 못하게 조창이 큰 공을 세우자 자기가 명령을 안 전해놓고 조창과 조식이 명령을 어겼다고 누명을 씌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창과 사이가 심하게 나빠졌고, 조창과 조식을 조롱하는 그림을 그렸다가 조창이 폭발하게 만든다.[44] 결국 조비와 조창의 사병들이 업 성내에서 칼부림을 벌여 수백명의 사상자가 생겼고 격노한 조조에게 수감당한다. 조조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출하러 가는 대신 화북을 지키기 위해 남는다. 조조가 혼수상태에 빠진 후 조창이 거병을 준비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선제공격으로 조창을 기습하고 아버지 조조를 직접 교살한 뒤 죽기 전에 자신에게 후계를 맡겼다고 유언을 조작한다. 하지만 동생을 직접 죽이고 아버지도 죽인 것이 매우 의심되는 등 권력 승계 과정이 너무 더러웠기에[45] 조조와 달리 장악력이 매우 떨어진다. 황제군을 기습하려다가 벌어진 조우전에서 패배하고 사망하며 결국 조비군은 멸망한다. - 조창
후계자 자리를 놓고 형제들과 경쟁 중. 형제들 중 가장 군재가 뛰어나서 퇴각하는 황제군을 상대로 큰 공을 세운다. 그러나 조비가 자신이 군령을 어겼다고 누명을 씌운 뒤 그림으로 조롱까지 하자 폭발해서 조비를 폭행하려고 한다. 결국 조비와 조창의 사병들이 업 성내에서 칼부림을 벌여 수백명의 사상자가 생겼고 격노한 조조에게 수감당한다. 조조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출을 위해 출진한다. 조비와의 후계 싸움에서 패배하고 사망한다. - 조식
후계자 자리를 놓고 형제들과 경쟁 중. 대사가 별로 없으며, 속마음 묘사도 작은 따옴표 안에 그대로 묘사되는 두 형제들과 다르게 '...'로만 표시되는 등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조비가 권력을 장악할 때 조창 다음으로 자신도 숙청될 것을 눈치채고 남쪽으로 도망가 손권에게 귀순한다. 하지만 황제가 하북을 장악하자 손권이 항복의 표시로 유기와 함께 목을 베서 결국 사망한다.
- 순욱
조조의 최측근 모사. 본작에서는 한나라의 충신인지는 몰라도, 헌제의 충신은 분명히 아니다.[46] 점차 움직임을 보이는 이연을 찾아가서 조조에게 대항하면 폐위되고 죽을테니, 권력을 바라지 말고 부귀영화나 누리라는 굉장히 수위 높은 말을 한다. 이에 이연(헌제)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사를 밝히자[47] 조조와 같이 헌제를 치울 방도를 고민하다가, 헌제의 밀서를 받고 움직이던 원담의 공격을 상대하느라 하내에 간 사이에 거사가 일어나서 허도가 초토화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연에게 빈 찬합을 받은 것은 덤. 대책을 논의 하면서 하후돈의 즉각 회군 주장을 반대하면서, 포위한 후 장기전으로 가자고 주장했으나 이성을 잃은 조조는 이를 묵살하고 허도로 회군하며, 순욱은 뒤처리를 명목으로 하내에 남겨진다. 이연이 허도를 불태우고 남쪽으로 런 했기 때문에 순욱의 예측은 결과적으로 틀리게 되었다.
본인의 목표였던 난세 종결이 헌제의 스노볼링으로 크게 어긋나자, 이제 그 어떤 대의명분도 없는 조조에게 더 붙어야 하는지 고민하다, 조조가 원희를 앞세워 원소군 세력을 장악하자 결국 조조의 곁을 떠난다. 중간에 만난 장합과 신비를 설득해서 헌제에게 투항시키고, 본인은 초한지의 장량처럼[48] 속세를 떠나 사라진다.
- 조홍
조조가 하내로 출병한 사이 허도, 황궁의 경비와 관리를 맡았으나, 이연의 친위 쿠데타 과정에서 휘하 병사들이 황궁을 탈출하던 복황후를 죽이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이후 황궁에서 농성하며 조조의 회군을 기다리려 했으나, 이연이 직접 나서 황후 시해를 언급하자 병사들은 물론이고 다른 호족들마저 혼란에 빠져든 탓에 황궁이 함락되고 죽는다. 이후 이연은 허도를 떠나면서 손수 '역적 조홍이 황후를 겁탈하려다 죽였다', '조홍이 궁지에 몰리자 허도에 불을 질렀다'는 소문을 퍼뜨렸는데, 여기에 점점 살이 붙더니 '조홍이 황후를 시간했다', '조홍이 황후의 시신을 삶아 먹자 벼락이 떨어져 허도에 불이 났다' 등의 괴담으로 진화해 버렸다.
- 종요
반 조조파로 위장한 조조의 수하. 헌제 세력을 배신하고 거사 계획을 조조에게 일러바쳤다. 허도에서 조조의 수하들이 숙청당하는 와중에도 간신히 목숨을 건져서 조조에게 도망친다.
- 정욱
친위 쿠데타 당시, 황제가 도주했다는 조홍의 연락을 받고 입궐하다가 사마의를 마주쳤고, 그가 건넨 죽간을 읽으려고 펼쳐본 틈에 철퇴를 머리에 맞고 허무하게 사망. 김종서의 최후와 비교하는 댓글이 있다.
- 곽가
이연이 조조의 세력을 꺾기 위해 누명을 씌워 하야시켜 버렸다. 유비의 조력으로 몰래 반입한 화살을 가지고 자해하여 암살 미수 사건을 조작한 뒤, 화살 제작자가 영천 곽씨의 관련자라는 의혹이 제기되도록 수를 쓴 것. 이에 황제 암살 미수 사건의 연루자가 되어 버린 곽가는 황제파 관료들을 달래기 위해 일시적으로 사직서를 내고 물러나야 했는데, 덕분에 친위 쿠데타를 피해 갔으니 일단은 본인 입장에서나 조조군 입장에서는 전화위복이라 하겠다. 조조군이 하북으로 이동한 후에도 등장하지 않는데, 조조군이 망조가 든 것을 보고 복귀하지 않고 그대로 떠난 듯하다.
- 하후돈
완성 포위전을 벌이던 조조가 박망에서 공격받던 치중을 구원하기 위해 팔천의 병력과 같이 파견한다. 유비는 조조가 아니라면 승리할 자신 있다고 정면승부를 할 작정이었지만, 조조에 비해 열세인 군세를 신경 쓴 사마의에 의해 매복과 야습 등을 위주로 작전을 바꿔 하후돈을 요격한다.
하후돈은 어지간한 피해는 각오하고 유비가 숨은 박망을 공격했지만, 수색하느라 군을 나누면 우수한 야전 지휘관들을 이용해 각개격파를 노릴거라고 생각하고 병력을 뭉쳐놓자 위치를 미리 읽어내고 화공을 날려서 치중을 죄다 불살라버린다. 결국 계속해서 농락만 당하다 병력 절반도 건지지 못하고 퇴각한다.
하후씨는 조씨 집안과 깊은 연관이 있는 만큼 그 또한 항복해봤자 가문이 살아날 방법이 없다고 판단, 조비가 사망한 후 끝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한다.
- 하후연
사마의와 유비의 화공에 당해서 왼쪽 얼굴 절반이 불타는 심한 부상을 입고 목숨만 간신히 건진다. 그 후 젊은 나이에 흉측한 괴물같은 몰골이 되어버린 것을 한탄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한다. 대신 깨달음을 얻어 황제 연합군과 원소군의 전쟁 중 문추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신중해졌다. 양양성 전투에서 홍수로 양양성 내부에 고립된 후 간신히 탈출하지만 사마의와 복덕에게 붙잡혔고 귀순을 거절하고 참수당한다.
- 순유
곽가, 정욱, 순욱이 각각 사직, 사망, 은둔하면서 조조군의 4대 모사 중 유일하게 조조의 곁에 남아있다. 조조가 맛이 가고는 있지만 순욱이 사실상 조조를 배신한 상황에서 자신까지 조조를 떠날 경우 순씨 가문이 조조의 복수로 풍비박산날 것을 우려해서 남아있다. 조비가 세력을 계승한 후에는 어차피 순씨 가문의 먼 친척들은 이미 황제의 조정에서 관직을 얻는 등 잘 살고 있는데 굳이 조조도 아닌 조비에게 충성할 이유를 찾지 못해 조비에게 별 조언을 하지 않고 태업한다. 조비가 사망하자 바로 투항한다.
- 장료
양양성 전투에서 하후연과 함께 성 안에 고립된다. 탈출을 시도한 하후연과 달리 자신이 이런 처지가 된 것은 그간 동탁, 여포, 조조 같은 폭군들을 따른 업보라는 생각이 들어 삶을 포기하고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과 함께 황제군 속으로 돌격한 후 실종된다.
5.3. 손씨 일가
- 손책
원술 토벌전에서 황제와의 밀약으로 합비를 차지한다. 반원소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가 조조의 배신으로 포위공격을 당한다. 패배가 명확해지자 손권을 탈출시키고 후위를 맡아 싸우다가 전사한다. 과격한 성격으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실제로 그렇게 죽은 원 역사보다는 비장한 최후를 맞이했다. 본인 역시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은 맞았지만, 이름 없는 자에게 죽는다는 말은 틀렸다고 하면서 황제 휘하에서 역적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었으니 죽은 아버지 손견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죽음이라 생각한다. 황제의 지시에 따르는 모습을 보였고, 조조에게 기습당해서도 끝까지 싸우다가 죽었으며, 동생인 손권도 황제에게 항복해서 강동 땅을 바치고 식읍 5000호와 제후의 자리 유지라는 대가를 받아냈으니 한의 충신으로 기록될 듯하다.
- 손권
손책의 희생으로 조조군의 공격에서 탈출해 세력을 물려받는다. 손책이 조조에게 살해당하면서 원 역사와 달리 조조와는 타협 불가한 원수지간이 되었다. 이후 황제의 밀서를 받고 장역의 반란으로 혼란한 유표군의 강하를 친다. 술을 좋아한다. 조조가 형주를 기습할 때 조조와 불가침조약을 맺지만 바로 불가침조약을 깨버리고 조조군을 공격해 합비신성을 함락시킨다.
황제는 하북을 장악한 후 손권의 영토도 탐내 강동을 공략할 준비를 한다. 합비도 점령했고 강력한 수군을 가진 손권과의 싸움은 수 년이 걸릴 것이라 예상했는데, 정작 손권은 덜컥 황제에게 항복해온다. 황제가 조비군을 마지막으로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세력을 멸망시키자 동맹할 세력도 없고 황제군과 전쟁해도 이길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 명분 없이 항복한 것은 아니어서, 강동으로 도망친 조식과 유기 등의 역적들을 뒤늦게라도 참수한 다음 스스로의 몸을 묶어 죄인을 자처하며 조정에 투항한다. 황제는 손권이 곱게 항복하자 역적을 참했다면서 오히려 칭찬하고 식읍 5000호[49]와 함께 공을 치하하고 잘 대해줬다.[50]
5.4. 원소군
이연이 조조 다음으로 경계하는 세력. 원소도 만만치 않은 정치질을 하는 인물인데다 조조의 세력이 크게 상했고, 전국옥새까지 가지고 있었던 명실상부한 최대 세력이었다. 이연이 소집한 동맹군에게 관도에서 패배하고 원소가 사망하며 사실상 멸망했다. 그 후에는 원희를 허수아비로 내세운 조조로 인해 지도부만 원씨에서 조씨로 교체된 꼴이 되어버렸다.- 원소
원술에게서 옥새를 압수하고 감금시킨다. 하북을 거의 재패했지만 아직 공손찬이 역경에 틀어박혀 버티고 있기에 대치 중이라고 언급된다. 양성 공성전 중 역경을 함락시켰다는 소식으로 등장. 큰아들 원담이 정치력 없이, 자신의 의도도 읽지 못하는 멍청이라고 무시하고 셋째 원상을 후계자로 세우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본인이 얼자 출신이라 신뢰할 만한 혈족이 적어서 원담을 끝까지 몰아세우지도 못하는 상태. 옥새를 얻고 은근히 칭제하려고 분위기를 봤지만 반발이 너무 힘해서 부하에게 책임을 떠넘겨 죽게 만들었다. 호각이었던 관도대전에서 원술의 트롤링 한 방에 오소가 점령당하며 참패한다. 호위 몇 명과 함께 탈출하던 중 원담과 사마의의 추격에 붙잡혀 사망한다.
- 원희
원소의 차남. 조조군의 거짓 내통 제의에 응했으나 역으로 포위당해서 조조에게 생포당한다. 이후 조조가 오석산을 먹여서 살아만 있는 폐인 상태가 되었고 조조는 원희를 허수아비로 내세워 구 원소군을 장악한다. 대외적으로는 전투 중 두부외상을 입고 장애를 얻었다고 알려진다. 이후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데, 어차피 명분용 허수아비로만 내세운 것이라 언급할 필요도 없기 때문. 계속 숨만 쉬는 폐인으로 남아있거나 마약 때문에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 원상
원소의 삼남. 원소 사후, 심배의 도움으로 전장에서 탈출한다. 아버지의 잔존 세력을 모아 하북을 차지하려는 조조와 싸우지만 전력의 차이로 패배하게 된다. 조조의 계속된 추격에 요동까지 도망치지만 공손강에게 살해당하고, 목은 조조에게 보내지는 최후를 맞이한다.
- 원술
조조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모든 것을 잃었지만, 원 역사와는 달리 선조의 개입으로 원담이 제때 원군을 보내 준 덕에 목숨을 건져 원담의 세력권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일단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원소나 원담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부담이 가는 사람이기에 유폐당하고 옥새도 빼았기고 만다. 그래도 원담이 꿀물은 실컷 줘서 꿀물은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개그 포인트. 원소가 오소 방어군의 형식적 지휘를 맡기고 실제 지휘는 저수가 하도록 했으나, 연합군이 퇴각하려 하자 저수와 상의도 없이뒤를 쳐야한다며 추격할 것을 명령해서 오소가 점령당하게 만들어버린다. 오소가 점령당하자 어차피 황제군에게 잡히면 죽은 목숨이라며, 꿀물단지가 있는 방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그 속에서 꿀물을 마시며 자살한다. 여기서도 꿀물과 관계된 개그스러운 최후를 맞았지만, 정사의 비참한 최후에 비하면 나름 비장한 최후를 맞았다.
- 저수
원소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막료로 연의를 통해 알려진 모사가 아닌 군지휘관으로서 모습을 보여준다. 실질적인 오소 방위군 사령관으로 급습해온 황제군에 맞서는데 세세하고도 적절한 전술 지휘로 화공을 시도하는 황제군의 공격을 막아내며 방어에 성공하는 듯 싶었으나 원술의 돌발 행동으로 억울하게 패전하고 만다. 사로잡힌 다음에는 역사대로 원소에 대한 충심을 지키다 처형. 황제에게 투항해 살아남은 원담, 장합을 제외하면 원소군에서 지휘관으로서 역량이 강조되는 유일한 인물이라 길지 않은 등장에 비해 임팩트가 있다.
- 전풍
조조가 원희를 내세워 원소군을 접수할 때 조조에게 투항하여 이후 조조군의 주요 참모 중 하나로 활동한다. 하북 전역에서 조비가 사망하고 조비군의 주요 장수들이 죄다 전사하거나 투항할 때에 이전과 함께 탈출하여 업에서 농성한다. 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업이 함락당하며 사망한다.
5.5. 형주
- 유표
현 형주목. 단기필마로 내려와서 호족들을 포섭해 형주의 패권을 쥐었고 황제와도 비슷한 삶을 누린 걸물. 장수를 이용해 조조를 견제하고 있으나, 그 사이는 좋지 않다.
채모가 양양 태수직을 받아가면서 대립각을 세우자, 2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헌제를 찾아온다. 시선이 있는 곳에서는 충신 연기를 했으나, 둘만 남자 헌제와 맞먹으며 협상을 진행한다. 그 결과 완성과, 양성, 신야를 헌제의 직접 세력권으로 인정하고 처조카를 후궁으로 들이면서 협약을 맺는다. 헌제는 유표는 정치적으론 매우 유능한 인물이나, 군재 자체는 대단치 않은데다 이미 노년의 나이라 수명이 길게 남지 않았고, 자식들이 무능함을 알기에 맺은 것.
이후 황제의 영향권에서 약탈을 하려고 간을 보는 순간, 처조카랍시고 후궁으로 보냈던 진련이 사실 유표의 혈연이 아니었음이 밝혀지면서 황제에게 한 방 먹는다. 구체적으로는 장역의 반란과 손권의 침략을 유도하는 계략을 짜내면서 장역과 손권에게 협공을 당한다. 당연히 약탈 준비는 도루묵이 되었다.
208년 선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원 역사보다 몇 달 빠르게 사망한다.
- 유기
유표 사후 유종과의 후계 분쟁에서 밀리고 황제군까지 형주로 진격하자 손권에게 바로 붙어버린다. 하지만 손권이 조정에 투항할 때 조식과 함께 참수당한다.
- 유종
유표 사후 형 유기는 잽싸게 손권에게 붙어버리고 황제가 내려오자 항복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다. 그러나 조조가 황제 참수작전을 위해 내려온다는 말을 듣고 조조와 동맹을 맺은 뒤 청야전술을 쓰며 지연전을 펼친다. 황제를 도발하기 위해 항복을 권하는 칙사의 눈, 귀, 혀를 자르며 고문한 뒤 참수하는 모욕을 해서 황제군으로서도 위신을 세우기 위해 그냥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 조조군과 협력하여 황제를 위기로 몰아붙였으나 홍수에 휘말려 허무하게 익사한다.
- 문빙
반원소연합군의 형주군 지휘관으로 파견되나 적극 가담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온 것인지 전투를 하는둥 마는둥 하다가 떠난다.
- 채모
형주의 대호족. 유표를 도와 형주의 패권을 쥐게 한 인물이다. 헌제의 구원병 요청 전령을 받고, 2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문빙과 같이 찾아온다. 전쟁은 이미 끝난 뒤라서 도움은 되지 못했으나, 헌제가 보답이라고 양양태수 자리를 하사하자 당황한 문빙과는 달리 잽싸게 받아낸다. 당시 양양은 형주의 핵심 지역 중 하나로, 유표의 거점이기도 했기에 대놓고 대립각을 세운 셈이다.
익주 전역에서 자신의 사병들을 이끌고 익주 남부를 장악한다. 관우와 싸워 패하지만 수군 전력의 우세함을 이용해 무승부를 이끌어낸다.
양양 포위전에서 실종되었는데 익사체로 발견된 유종과 같은 배에 타고 있었으므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장선
전 장사태수. 유표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고 딸 장련과 함께 유표의 볼모가 된 상태였다. 그러나 사실은 유표가 한참 전에 이미 독살했고, 유표는 장선이 죽은 것을 숨기기 위해 장련을 자기 처조카로 속여서 황제의 후궁으로 보내버렸다.
- 장역
장선의 아들. 장선이 유표의 볼모가 된 채 살아있는 줄 알고 조용히 장사에 있었으나 장련에게서 장선의 사망 사실을 들은 뒤 유표에 대항해 3만의 병력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이연은 원래 장역은 버림패로 써버리고 유표에게 죽게 놔둘 생각이었으나, 나라를 살리더라도 그 방법도 옳아야 한다는 염라대왕의 말이 떠올라 생각을 고쳐먹고 장역을 구출하기로 한다.
5.6. 서량
- 마등
이연에게서 약탈을 멈추고 군마를 제공해준다면 서량의 일인자가 되도록 도와주고 식량도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러나 조조가 종요를 통해서 황제를 더 많이 약탈한다면 지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동시에 보내와서 고민한다. 하지만 황제가 제대로 된 작위와 결혼동맹을 제안하자[51] 황제 측으로 가담한다. 이후 수년간 군마를 공급하며 동맹 관계를 유지하다 황제군이 익주와 형주까지 장악하자 천하의 대세는 완전히 황제에게 기울었다고 보고 아들 마초와 함께 1만 병력을 이끌고 하북 공세에 종군한다.
5.7. 익주
- 유장
현 익주목.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대충 둘 다 부르면 서로 견제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황제군과 유표군 둘 다를 익주에 불러들인다. 그러나 이는 황제군과 유표군 각각이 익주를 남북으로 갈라먹는 결과를 낳는다. 이후 황제군은 약탈을 자제하지만 유표군은 백성들을 약탈한다는 것을 듣고 백성들이라도 덜 죽게 하자는 생각으로 그냥 황제에게 투항하기로 결심한다. 이런 결심을 알게 된 성도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목을 매달고 자살한다. 무능한데다 자신의 분수도 알지 못했지만, 통치자로서 백성들을 생각하는 최소한의 양심을 보였기에 나름 독자들의 평이 좋은 인물.
5.8. 기타 세력
- 장로
한중 태수이자 오두미도의 교주. 어느 정도 통찰력을 가졌기에 황제가 진출할 방향은 한중 뿐이니 자신을 공격하리라는 것은 예측하고 한중의 험한 지형을 이용해 농성하기로 한다. 하지만 황제군은 선조의 미래지식으로 화약을 가지고 있었고, 하필이면 성문 가까이 있다가 공성용 화약이 폭발하면서 몸에 불이 붙어 몸부림치다가 불타죽는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후 황제의 뜻을 거역해서 천벌을 받고 벼락에 맞아 죽었다고 소문이 난다. 이후 오두미도는 황제를 숭배하는 황제교로 변질된다.
- 신탐
상용의 태수로 거대세력 사이에서 줄타기로 살아남아왔으며, 황제군의 침공이 임박하자 장로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그러나 유비와 사마의의 진군 속도가 예상보다 너무 빨랐기에 지원이 오기도 전에 상용이 함락되며 전사한다.
- 단외
장안을 장악하고 있던 군벌. 원담을 이용한 양동작전에 낚여 장안을 사마의에게 그대로 내줄 뻔했으나 원소가 이를 간파하고 단외에게 알려 제때 장안에 돌아오는 것은 성공한다. 나름 경험이 많은 장수였기에 화공으로 황제군을 격퇴하려 했으나 사마의 쪽에서 오히려 더 크게 맞불을 놓으면서 실패한다. 이후 선조가 주머니 속에 넣어 건넨 계책인 화우지계에 당해 패퇴하고 장안을 내줬으며, 부하들을 버리고 혼자 서량으로 도망친다. 이후 9년간 서량에서 버텼으나 결국 마등에게 패배해 참수당하고 조정으로 수급이 보내진다.
5.9. 기타 인물
- 염라대왕
선조를 즉위 첫날부터 벼락맞게 한 장본인. 선조의 죄는 무거우나 그가 수많은 인재를 발탁했던 것도, 자리 보전하는 정치질 하나는 뛰어났던 것도 사실이기에, '그 능력으로 망해 가는 남의 나라 하나를 살려내면 지옥행을 면해 주겠다'며 기회를 주어 헌제 유협에게 빙의시켰다. 능력을 바르게 쓰지 않아 죄인이 된 것이니 이번에도 그 능력을 바르게 쓰지 않으면, 즉 한나라를 살려내더라도 그 과정과 방식이 올바르지 못하면 벌을 받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 때문에 선조는 작중 내내 염라대왕의 눈치를 살펴가며 모범을 보이는 척이라도 했으니, 능력은 있는데 책임감이 없어서 나라를 말아먹은 선조의 외부장착형 양심회로 같은 역할을 했다. 조조와의 최종 결전에서 선조가 팔에 화살을 맞고 양양의 내성에 포위되어 도저히 살 길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이 되자 자신을 이런 처지에 몰아넣은 염라대왕을 마구 저주하는데, 염라대왕이 기도를 들어준 것인지 갑자기 폭우가 내려 조조군의 공세가 실패한다. 많은 독자들이 사후 염라대왕 앞에서 다시 심판받는 선조를 보고 싶어했으나,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염라대왕의 존재는 선조가 본래 성향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족쇄인 동시에 원 역사에 기록된 악인을 처단하는데 있어 거리낌없이 움직이게 만든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아직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처벌을 내리는 염라대왕인만큼[52] 원 역사에 기록된 악인은 악행을 저지르기 전에 죽여도 지옥행이 확정이기 때문. 대표적으로 사마의의 목을 날렸을 때. 원역사의 사마의가 저지른 짓은 딱 불충 그 자체고, 그 후대인 진나라에서 벌어진 병크는 다름아닌 오호십육국시대. 불충 하나만으로도 모자라 후손들도 개판이 됐고 나라까지 박살났으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5.10. 에필로그
- 이세민
성리학의 영향으로 황권이 너무 강해져서인지 스스로 칭제하는 대신 한나라 최초의 정이대장군이 되어 실권만 쥐고 양광, 돌궐, 토번, 고구려 등을 토벌한다. 이후 이세민의 자손들이 정이대장군을 세습하며 한나라는 상징적인 황제와 실권자인 정이대장군이라는 특유의 이중 권력체제가 성립되고 현대까지 이어진다.
- 장제스
한나라 12왕조의 정이대장군. 국공내전 이후 황실과 함께 남경으로 천도한다. 중원은 남쪽의 한나라와 북쪽의 공산 정권으로 분단된 듯.
6. 평가
선조의 신들린 이간질, 정치질과 영원히 고통받는 조조가 일품인 독특한 삼국지 대체역사물이다. 선조가 헌제에게 빙의하자마자 본래 역사에서 신하들과 광해군의 피를 말리곤 했던 양위 쇼를 시전해 조조를 엿먹이기, 유비를 포섭하기 위한 첫 수로 논영회 벤치마킹 폭탄발언 던지기, 첫 전투에서는 스스로 수도를 불태운 뒤 조조군에 누명을 씌우고 자신은 광속으로 도망치기... 본작의 전개는 기본적으로 이런 골때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잘 나가던 조조가 헌제로 빙의한 선조에게 그대로 관광타는 전개로 틀어지면서 한 순간에 몰락하는 것에서 대체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할지, 아니면 분노를 느껴야 할 지는(...) 독자의 판단. '주인공이 어떤 인성질을 부려도 전부 다 납득 가능하다', '주인공이 혐성질을 해도 사이다, 당해도 사이다' 등의 평을 받고 있는데, 빌런은 조조지만 주인공인 선조 역시 만만찮은 인성을 자랑하는 비호감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런 선조가 좀 구른다고 한국인 독자들 눈에 안쓰러울 리도 없고, 애시당초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기대하는 것도 1400년 앞선 선진문명(?) 권모술수 정치질또한 일반적인 삼국지 대체역사물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사건 전개가 많이 등장한다. 대다수의 삼국지 대체역사물은 모종의 이유[54]로 역사를 미리 아는 주인공이 재야의 유능한 인재들을 선점하거나 주요 사건에 개입해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식으로 삼국지 시리즈 신군주 플레이하듯
일반적인 삼국지물에서는 다양한 삼국지 인물들이 나오면서 등장인물의 수가 많아지지만 이 작품에서는 주로 선조의 원맨쇼로 이뤄지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수가 적고 오리지널 인물이 등장하더라도 어느 순간 사라진다. 실제로 이름만 나왔다가 등장하지 않는 인물도 있고, 장비처럼 삼국지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인데도 대사 하나 없는 경우도 있다.
또한 황제가 안정적인 세력을 구축한 이후부터는 다소 지루해졌다는 평이 있다. 일반적인 인재선점 땅따먹기 삼국지물과 별로 다르지 않은 전개가 되면서 이 소설의 최대 묘미였던 선조와 조조의 서로를 엿먹이는 좆간질 전개가 나오기 어려워졌기 때문.[56] 어떻게든 선조를 엿먹이려 발악하는 조조와 어떻게든 다 튕겨내는 선조의 구도로 가니 아무래도 긴장이 떨어진다. 이후 작품 최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전쟁이 끝나고 내부정리를 위한 숙청이 시작되자 또다시 선조의 신들린 인성질이 등장하며 초창기의 폼이 되살아났고(...) 평가가 반등하며 결말까지 깔끔하게 마무리지었다.
7. 기타
- 선조가 염라대왕 앞에 갔을 때 조선의 죄 많은 왕들이 지옥의 죄수로서 형벌을 받는 광경을 보는데, 그들이 생전에 지은 죄를 풍자하는 해학적이면서도 충격적인 묘사가 걸작이다. 광해군은 99999칸짜리 지옥의 궁궐을 혼자서 짓고 있고[57], 인조는 그 옆에서 광해군이 궁궐을 다 지을 때까지 삼궤구고두례를 하는데 절하는 속도가 느려지거나 이마에서 쿵 소리가 나지 않으면 만주족 귀신(...)이 채찍질을 하며, 세조는 밥 대신 사약을 마시고, 연산군은 이빨 달린 지옥 사슴들에게 산 채로 뜯어먹히고 있다[58]. 그와중에 충무공은 자연재해 취급받아서, 임진왜란의 왜군에 대해 '조선의 혹독한 기후와 이순신에게 적응하지 못했다'고 표현한다.
- 설정상 선조는 즉위식 날 벼락을 맞고 환생했지만, 전개상 재위 중의 사건을 미리 경험해본 듯한 묘사도 나온다.[59] 물론 설정에 따르면 염라대왕이 미래를 미리 보여준 덕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상상력을 발휘해서 역사대로 1608년 죽고 환생했다고 보면서 읽어도 무방하다.
- 일반적인 삼국지물이 마치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게임할 때 능력치 좋은 적장을 나중에 등용하려고 살려주는 것처럼 네임드를 최대한 포섭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반면, 이 소설에서는 정욱 같은 네임드들조차 가차없이 비명횡사 시켜버리는 파격적인 전개를 보이는데 그런 점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하다.
- 문장도 파격적이라면 파격적인데, 일반적인 역사물에서는 동양 역사를 다룬다면 서양에서 유래된 단어는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나[60] 본작에서는 이런 용어를 굳이 지양하려 하지는 않는 편이다. 작중 인물의 대사에서는 외래어가 거의 없고 내레이션이나 해설, 독백에서만 많이 등장하는데, 이를 볼 때 작가의 실수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단어 선정에 신경쓰지 않는 듯하다. 다만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독백에서 외래어가 많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댓글창에서 독자들의 반발이 간혹 존재한다. 아무래도 독백은 작중 인물의 대사와 비슷하게 취급되어 그런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이 조선시대 사람인데 어째서 현대인이나 알법한 외래어를 아느냐는 식. 사실 이건 본작은 독백 역시 나레이션이 등장인물의 심중을 읽고 이해하기 쉽게 현대어를 섞어서 해설해주는 형식, 그러니까 전지적 작가 시점이기 때문이라 문학적으로는 문제없는 서술방식이다. 진짜 고증오류는 순욱이 얼굴마담을 언급하는 장면이다.
- 후기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작가가 두 차례의 연재 실패 후 처음으로 완결낸 장편 소설이다. 초반부의 신들린 혐성질에 비해 후반의 임팩트가 약한 점이나 미회수 떡밥이 있는 점은, 장편 연재가 처음이라 후반부 기획이 잘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 빈 선조의 몸에는 다른 현대인이 빙의하게 된다.[2] 정확히는 의대조 사건의 밀서가 전달은 되었지만 발각되지는 않은 199년경이다.[3] 그래도 본인이 보기에도 임진왜란 때의 본인의 행보가 추하긴 했는지, '이게...나라고?'라고 독백하면서 자신이 늙어서 노망이 난 게 아닌지 생각한다. 이 때문에 꽤나 충격받은 덕인지 전체적으로 실제 역사 속의 선조보다는 좀 나은 인물이 되었다. 보통은 또 벼락을 맞을까 하는 두려움이 선행의 원동력이 되지만, 그동안 공부했던 성리학적 사고관 역시 영향을 미친다.[4] 물론 본인이 어느 정도 힘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이 생겨난 이후로는 원시적인 화약 제조나 농서 집필 같은 진짜 미래문물도 활용한다.[5] 황제가 죽으면 조조가 의심을 받고, 당시 허도에 머무르던 고관들을 상대로 책임론이 나올 수밖에 없기에 중요한 인원은 대부분 데리고 떠났다.[6] 그렇다고 해서 원정이 아예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었다. 조조가 허도를 포기하고 하북으로 가버린 결과 허도에 가까이 있던 황제가 느끼는 조조의 위협이 줄어들었으며, 무엇보다 결과만 보면 황제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던 원소를 제거하는데 성공하기는 했다. 그 외에도 황제가 원소를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모음으로서 황제의 권위가 오르는 등 소소한 효과를 거둘 수는 있었다.[7] 그 결과 황제의 지지세력을 지식인들까지로 넓혀 천하의 인재를 황제 측으로 끌어모을 수 있었고, 유학에서의 충성심이라는 가치를 재조명하여 지방에서 호족의 반발·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8] 이에 대비되게 인조는 '런도못한조'로 불리기도 한다.[9] 1리가 약 400m이므로 140리면 56,000m, 즉 56km가 나온다.[10] 정사를 기반으로 한다면 귀인이 맞다. 이 인물의 호칭 문제에 대해선 헌제귀인 동씨 항목 참조.[11] 이는 연의에서 복황후가 당한 일과 거의 같다. 복완과 함께 조조 암살을 도모한 것이 발각된 후, 벽장에 몸을 숨겼으나 치려가 벽을 부순 뒤 황후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서 죽였다는 설정. 그나마 본작의 동귀비는 죽음만은 면하였다.[12] 휘가 불명이고 신헌영이라는 자만 알려져 있는데, 신희라는 이름은 작가의 창작이다.[13] 애초에 이연은 신헌영 말고도 충집 등 진정한 충신들을 되게 부담스러워 했다. 이연 본인의 음험한 성격에 이런 순수하고 착한 감정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14] 원 역사의 광해군이나 작중 조조와는 달리 선양 등으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고, 일단 황제가 공인한 후계자에 태후의 지원을 받았기에 자신의 정통성에 대한 문제가 없었던 덕분인 듯하다. 특히 형인 유진이 임해군처럼 포악한지라 누구도 지지하지 않았던 덕분도 있다.[15] 복완과 충집을 제외한 다른 황제 조정의 구성원들은 딱히 충성심이랄 게 없다. 와신상담 중인 조조는 말할 것도 없이 반쯤 독립된 상태인데다 복수심으로 충만한 상태이고, 사마의도 기회만 되면 황제 자리를 노릴 사이코패스이다. 그나마 믿을 만한 구성원들을 보면, 신비와 마등은 황제가 겨우 결혼동맹으로 붙잡은 상대들이고, 장수나 장합은 충성심보다는 자기 안전이 더 중요하며, 사마휘는 기회만 되면 벼슬 때려치고 낙향할 생각 중이고, 유비는 당대의 평가를 신경쓰다보니 황제 편에 붙은 것이지 기회만 되면 떨어져나갈 인물이다. 유표나 손권은 아예 황제 말을 듣는 척만 하는 독립된 제후에 가까운 사람들이고.[16] 일단 중립이니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수사할 거라는 명분이 있는데다, 공융의 성격이면 황제파든 조조파든 공평하게 들쑤실 것인데 그러면 조조 쪽이 더 저지른 짓이 더 많다. 뻣뻣한 성격이라 회유나 협박도 안 통한다. 다만 조조 파벌의 어마어마한 반발 덕에 실제로 진행되지는 않았다.[17] 사마의가 황제에게 반심을 대놓고 밝혀서 황제도 이를 안다. 그러나 사마의만큼 능력 있는 인재도 드물어서, 황제도 사마의를 함부로 숙청하거나 내쫓지 못하는 상태에 놓였다. 이후 황제의 권력이 커지고 인재를 많이 얻게 되면서 사마의를 계속 살려둘 필요성이 줄어들자, 당연히 사마의는 숙청당할 위기를 여럿 겪게 된다.[18] 사실 아주 헛짓거리는 아니다. 원 역사의 송명청 시기에도 지방 반란은 수도없이 일어나 제국 멸망의 원인 중 일단을 차지한 걸 보면, 사마의가 지방 반란을 부추기고 다니는 것은 충분히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전략이다. 다만 앞뒤 상황을 보았을 때 사마의가 원하는 방향으로 지방 병력이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사마의가 수혜를 볼 가능성은 0%에 수렴할 뿐.[19] 물론 사마의의 입장에서도 노렸던 바가 100% 들어맞지는 않았다. 사마의가 노렸던 건 양양성의 성문이 뚫리고 위급한 상황에서 구원을 해 아예 귀양조차 보낼 수 없을 정도로 대공을 세우는 것이었는데, 성문이 뚫린 순간 홍수로 인해 조조군이 반절 이상 쓸려나가서 선조가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났기 때문.[20] 사람 인(人)에 가운데 중(中)이니 이는 사마의의 자인 중달(仲達)을 뜻한다.[21] 물론 원조인 주초위왕처럼 꿀로 글씨를 써 놓는 방법은 선조도 시도해봤지만 실패한 터라 결국 벌레를 잡아 직접 잎을 들이대 파먹게 하는 방식으로 인중위왕의 흔적을 만들었다. 당연히 사람의 손으로 직접 새긴 건 아니었던데다 선조가 해당 장소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기 때문에 진실은 묻혔다.[22] 중산왕의 작위는 유비의 직계 조상인 중산정왕 유승과 같은 봉지를 준 것으로 보이고, 황제 수레 특전은 원 역사를 아는 선조 헌제에 의한 개그성 장면이다. 원래 유비는 어린 시절부터 황제의 수레를 타고 싶다는 발언을 했다가 어머니와 숙부가 우리 가문을 멸문시킬 셈이냐고 혼을 낸 적이 있었다. 즉, 유비는 황제는 못 되었어도 황제의 수레를 타겠다는 소싯적 꿈만은 이룬 셈이다.[23] 그 와중에 쿨가이 관우를 패러디했다.[24] 다행히(?) 관우의 얼굴이 원래 붉기 때문에 부끄러워한 것이 티가 안났다는 게 개그 포인트.[25] 특히 후한 시대는 이름 있는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듣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그런 평가를 해준 것을 은혜로까지 여기던 시대였다. 능력 좋은 황제가 직접 인정한 명장이라는 타이틀은 굉장히 특별하기 때문에 평생 자랑할 만하고도 남으며 역사에 길이 기록될 만한 건수인 셈이다.[26] 실제 역사상 관우도 이런 자존심 세고 칭찬 좋아하고 잘 삐지는 순수한 어린이 같은 성격이었다.[27] 전략 전술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인 상성이 안 맞는다고 한다.[28] 사실 조조군 올스타를 상대로 빈집털이 될 뻔 한 걸 2달 가까이 막아내며 역경루 함락 시간을 벌어준 건 엄청난 공이지만 원소는 애시당초 원담에게 후계 자리를 맡길 생각이 없었기에 인정을 안하려 한 것이다. 그 와중에 황제는 원소와 원담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기 위해 벼슬을 내린 것.[29] 원소의 경우엔 역적이라 역적인 원소보단 원소의 아들이나 원소에게 버림받고 황제에게 충성하며 공신이 된 원담을 중시조로 여기며 후손들도 원소랑은 거리를 벌릴 가능성이 높다.[30] 혹시 황제가 어린이를 좋아하는 성적 취향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잠깐 하는데, 다른 후궁들은 전부 연상녀이니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평한다.[31] 성리학은 그 해석에 대해 몇 달씩이고 키배를 뜰 수 있는 주제가 수두룩하다. 처음엔 몇 달 정도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후 사마휘는 빌어먹을 성리학. 빌어 처먹을 훈민정음(...)이라 말하면서 유학 공부하다 죽은 귀신이 황제에게 붙었나고 말할 지경이다. 웃긴 건 이연은 유교 탈레반 국가인 조선 왕의 귀신이니까 유학 공부하다 죽은 귀신 맞다. 본의 아니게 정답을 맞춘 수경선생.[32] 황후 교육, 경연 개최, 내정 처리 등[33] 사마휘는 제갈량에게 부탁한 이후 계획대로라 미소지었다(...)[34] 일이 점점 늘어나지 않느냐는 사마휘의 항변에 나랏일은 끝이 없는 법이라고 답한다.[35] 맹꽁이 서당에도 종종 나오는 조선시대 야담인데 임금이(시대마다 다르다.) 초야에 묻힌 유능한 선비를 조정에 발탁하기 위해 특혜를 내리나 신하들이 반발하자 도리어 직급을 한 단계 더 올려버리는 강수를 두고 이런 일이 세번 반복되자 신하들이 보다 못해 합의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이다. 실제로 선조는 이런 식으로 인재들을 깜짝 발탁해서 급속 승진시키는 경우가 꽤 있었다. 임진왜란 직전에 전쟁의 전조가 보이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이순신, 이억기, 원균(?)같은 인재들을 폭풍 승진시켜 남쪽으로 보내 수군을 강화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시이자 정치질의 극치이다. 왜 정치질인가하면 이순신은 원래대로라면 올랐을 자리라는 점과 원균은 정치적 거래로 오른 티가 나는 업무능력이 형편없는 것임에도 이균이 어거지로 한 것이다.[36] 병서에 나온 FM을 그대로 실천해서 조조가 뭔가 해볼려고 하면 딱딱 정석대로의 파훼법을 내놓았다. 나레이션 왈, 원래 수성전은 매뉴얼대로만 하면 되는 전투인데 제갈량은 모든 걸 매뉴얼대로 하는 보기 드문 미친놈이라 잘 막은 거라고..[37] 이때 조조군이 성은 포위되었다 하면서 항복을 권하는 말이나 제갈량의 답변을 보고 제갈촌부라 하는 말은 제갈량 vs 왕랑을 오마주 하였다.[38] 원소의 핵심 참모였던 전풍도 조조군에서 종군하고 있다.[39] 황제가 아픈데 술판을 벌이는 건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지만,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황제에게 계속 시달리느니 차라리 황제가 죽고 내가 암살 누명을 뒤집어쓰는 편이 스트레스가 적을 것'이라며 오히려 좋아했다.[40] 작중 서술로는 0.7서주 정도의 진노였다고.[41] 사실은 이 또한 이연의 묘수였다. 어차피 허도를 버리고 달아나는 마당에 쌓여 있는 곡식을 챙겨 들고 갈 수도 없으니, 결국은 버려두고 가든지 조조가 군량으로 쓰지 못하도록 없애든지 해야 하는 판이었다. 이것을 그냥 버리지 않고 백성들에게 줌으로써, 차후 조조가 그것을 빼앗아 쓰려 하면 '황제가 나눠준 곡식을 조조가 도로 뺏는다'며 악명을 추가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42] 이 때문에 조조군은 강 주위의 호족을 찾아가고 설득하여 강의 얕은 부분을 알아내서 겨우 강을 건너가는 시간 낭비를 해야 했다. 그 와중에 호족이 황제가 퍼트린 소문을 조조한테 알려줘서 조조의 혈압이 오르는건 덤.[43] 진짜로 밤마다 장작 위에 누워 잠을자며(臥薪와신), 아침마다 곰의 쓸개를 생으로 씹어먹었다(嘗膽상담). 조조가 얼마나 빡쳤는지 보여준다.[44] 조비가 원 역사에서 같은 수법으로 우금을 조롱해 화병으로 사망하게 만들었던 일을 차용한 것이다.[45] 이연은 소식을 듣고 숙청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라며 송 태종이 연상된다는 반응을 보였다.[46] 실제 역사상의 평가에서도 순욱이 난세의 도래를 늦추기 위해 한나라의 수명을 연장하려 들었다는 것은 역사가들이 인정하지만, 당대 헌제와 황실의 비극에는 그저 조용했던 인물이다. 애당초 동탁에 의해 황제에 오른 명분 부족한 황제였던 헌제를 내심 인정하지 않았을 거란 평가가 있다.[47] 이때 헬싱의 소좌의 연설을 패러디한 말을 한다.[48] 실제 장량은 속세를 떠나기는 커녕 유방이 죽고 나서도 수도에서 살다가 죽었다.[49] 식읍 5000호면 원 역사 위나라에서도 이보다 많은 식읍을 가진 사람은 등애, 종회, 장로, 만총, 왕기뿐이다. 그 장합조차도 4300호였으니, 황제가 진짜 큰 대우를 해준 것이다. 사실 손권이 대놓고 저항했으면 식읍 5000호 보다 피해가 더 컸을 테니 황제 입장에서도 큰 경제적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다.[50] 손권 역시 황제가 관대할 것을 믿고 항복했다고 한다. 항장들을 잘 대우해주던 황제의 평상시 모습을 보고 항복해도 목숨이 날라가진 않을 것이라 확신해서 자신의 값어치가 높을 때 항복한 것이다. 심지어 이때 원 역사와 달리 노숙조차도 항복을 주장했고, 주유는 처음에는 항복에 반대했으나 대세 여론에 못이겨 결국 항복에 동의했다고 한다. 식읍 5000호에 오정후의 작위를 유지하니, 손권 입장에선 강동을 넘긴 것에 확실한 좋은 대우를 받은 셈이다.[51] 물자 지원은 적지만, 이 제안으로 마등은 서량의 일인자가 될 명분을 얻으며 혈연으로 황제와 얶히게 되면서 황제가 맘대로 동맹을 파기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52] 당장 주인공인 선조 본인도 즉위 당일 '미래에 저지를 예정인' 죄를 이유로 처벌을 받았으니.[53] 물론 정황상 가짜일 가능성도 있지만 알 수 없다.[54] 삼국지를 좋아하던 현대인인데 모종의 사유로 타임슬립 또는 당대인에게 빙의했거나, 당대인이 사망 후 회귀하거나 하는 등[55] 하필이면 이것이 동탁이 낙양을 불태웠던 사건과 똑같다 보니, 이연 세력의 소행임이 발각났다면 그 후폭풍 또한 절대로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알았으니 이연도 선수를 쳐 조조 세력, 특히 죽고 없는 조홍에게 미리 죄를 씌워 두었던 것이고.[56] 이렇게 된 이유는 크게 둘이 있는데, 먼저 삼국지 관련 소재 자체가 주인공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안정적인 세력권을 구축한 뒤에는 남은 세력들을 정리하고 중원을 통일하기까지 적과 전장만 달라지는 똑같은 정복전쟁 노가다만 반복되면서 재미가 떨어진다. 실제 역사에서는 북방민족의 준동이나 반란 등 여러 사건들이 방해가 되어 통일까지 여러대가 걸리고 왕조도 한번 바뀌었지만 게임이나 소설에서는 이런 날벼락을 주인공에게 부여하면 당연히 소비층이 반발하므로 넣기도 어렵다. 삼국지 관련 매체들이 진나라와 팔왕의 난은 다루지 않는 것도 이 까닭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작가의 필력. 웹소설 중 상당수는 소재빨로 반짝 재미있다가, 중반을 넘기면서 소재가 떨어지면 작가의 실력 부족이 드러나며 전개가 루즈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설을 칭하는 4드론(클리셰)이라는 말까지 있는데, 본작은 후반부에 다시 초창기의 폼이 살아나기에 그럭저럭 극복에 성공한 편.[57] 자금성이 9999칸이다.[58] 광해군은 무리하게 궁궐 공사를 지었다가 반정세력이 들고 일어날 명분을 줬으며, 인조는 삼전도에서 만주족인 홍타이지에게 삼궤구고두례를 하며 항복했다. 세조는 단종을 몰아내고 단종에게 사약을 내렸으며, 연산군은 즉위하자마자 성종의 사슴을 활로 쏴죽였다는 야사가 있다.[59] 특히 삼궤구고두례를 벤치마킹한 오궤이십오고두례는 자신이 죽은 이후의 일임에도 써먹고 있다. 이 역시도 설정상 벼락맞고 죽었을때 자기 후손이 하고 있는 짓을 봤으니 가능한 전개긴 하다.[60] 일반적으로 작중 인물의 대사는 물론 독백이나 내레이션이나 해설에서까지 외래어를 최대한 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