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04:24:35

반종교

파일:attachment/antireligion.jpg
1. 개요2. 핵심 주장
2.1. 종교무용론: 종교에게서 도덕윤리를 탈환하라2.2. 종교 논리의 불완전성: 신과 종교는 아무 관계가 없다2.3. 종교 유해론: 종교는 인류에게 해악이 된다
3. 유사 개념들과의 구분4. 반론5. 사례
5.1. 공산권의 국가 무신론5.2. 신무신론 운동
6. 관련 어록7. 인물
7.1. 가상 매체에서의 사례
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반종교(, anti-religion) 또는 반종교주의는 제도 종교, 종교단체, 종교적 교리와 도그마에 반대 혹은 적대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현대에 들어 新무신론 운동가들에 의해 이 개념은 더욱 확장되어 사실상 반신론이나 신합리주의, 세속적 인본주의, 자유사고(free thought) 등의 개념들과 융합되다시피 했다.

종교의 자유는커녕 종교 자체가 부정당하는 일부 국가 무신론(state atheism)적 환경에서는 반종교를 빙자한 종교 박해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서구 문화권을 기준으로 해서 반종교는 보통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를 비롯하여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구성된 여러 사회적 현상과 결사체들에 대한 반대와 거부 및 공격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과거에는 국가 주도적인 반종교였다면, 오늘날에는 시민사회 주도적 내지는 무신론자 개개인에 의해 주도되는 반종교가 호응을 얻고 있는 상태다. 당연한 것이 민주주의가 정착된 서구 시민사회에서 국가 무신론 같은 것을 외쳤다가는 되려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국가 차원에서는 국교를 정하지 않는 수준에서 그친다.

제도와 교리와 모임과 기타 종교적 사회 현상에 대한 반발이므로, 각각의 종교에 대한 한정적인 반대 운동들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가장 유명한 건 역시 반기독교겠지만 그 활동 양상이나 배경 논리, 동기의 측면에서는 사뭇 다르다. 그 외에도 반유대주의에 기반한 반유대교, 반가톨릭주의 같은 것도 거론할 수 있겠다. 경우에 따라 샘 해리스처럼 영성(spirituality)이나 명상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경우도 있다.

반신론까지 더해져 다소 과격하게 보자면 반종교주의인 사람에게는 일반 종교들도 사이비 종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 할 수 있다.[1] 정상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극단적인 반종교주의자들은 각종 종교적 사고와 행동들을 전혀 동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핵심 주장

2.1. 종교무용론: 종교에게서 도덕윤리를 탈환하라

반종교는 종교의 필요성을 분쇄하기 위해, 지금껏 전통적으로 종교의 사회적 순기능이라 여겨졌던 역할들을 부정하거나, 종교가 아니더라도 그러한 순기능들이 달성될 수 있다는 두 가지 방향으로 주장한다. 전자의 측면에서, 반종교는 미국을 포함한 가장 종교적인 국가들의 통계 데이터를 보면 가장 세속적인 국가들의 그것보다 더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로 나타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들은 지금껏 인류가 너무 오랫동안 종교에게 도덕윤리의 결정권과 판단 권한을 위임해 왔다고 생각하며, 이제는 과거 청동기 이전 시대의 유물에게서 도덕윤리를 되찾아 와서 현대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윤리를 정초해야 함을 역설한다.

샘 해리스의 《도덕의 풍경》(The Moral Landscape)은 도덕과 종교의 관계에 관하여 반종교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반종교에 과학주의가 더해져 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입장과는 약간 다르게, 도덕적 판단의 권한이 인본주의적 지성과 합리라기보다는 과학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2] 애석하게도 국내에 이 책은 2014년 기준으로 번역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후자의 측면에서, 반종교는 " 없는 선(善)"(Good without god)을 슬로건으로 하여, 종교의 도움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선해질 수 있고 사회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반종교주의자들은 "때로는 종교가 어쩌면 유익이 되는 점도 있기는 하다" 면서 유연한 입장을 취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인류가 벗어던져야만 하는 이유는, 이하에 설명될 심각한 부작용과 역기능 때문이다. 즉, 비용이 편익보다 너무 크다는 것이다.

2.2. 종교 논리의 불완전성: 신과 종교는 아무 관계가 없다

반종교의 큰 동기 중 하나는 종교의 논리가 모순된다는 점이다. 굳이 종교의 논리를 하나하나 따져보기보다는 여러 종교 간의 비교를 통해 쉽게 모순점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외에도 무수히 많은 종교들이 있다. 많은 종교에서 신, 절대자의 개념은 유일신에서 다신교, 토테미즘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형태로 존재한다. 신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종교를 믿는것이 의미 있는 행위가 되려면 종교에서 제시한 믿음이 신에 대한 믿음과 일치해야 한다. 대부분의 유일신교에서 타 종교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지만 많은 종교 중에 어떤 종교가 참된 것인지 객관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당연히 종교의 경전 내에서 답을 찾는것은 객관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신을 믿는 데 있어서 종교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다. 무수히 많은 종교들이 현실에 존재하며 오늘날에도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고 있는것이 그 증거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굳이 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종교를 믿어야 하는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2.3. 종교 유해론: 종교는 인류에게 해악이 된다

반종교는 종교의 필요성을 분쇄하기 위해, 종교가 갖고 있는 사회적 역기능을 강조하며, 본질적으로 종교라는 현상이 그 제도와 교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사회적 역기능을 필연적으로 유발하거나 내지는 방치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한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역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일 것이며, 실제로 미국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 반종교가 빠르게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인류 역사에 종교가 없었다면 과연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졌겠냐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국내에서도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과 같은 스캔들이 터지면서 무신론과 반종교에 대한 관심이 크게 폭증하기도 하였다.

반종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류 역사의 수많은 갈등과 분쟁, 살인, 반목, 충돌들은 그 기저에 결국 종교적 열망과 편협한 도그마가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한다. 종교라는 것이 인류에게 있어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인류의 가장 추악한 모습들을 만들어내는 주체로 기능해 왔다는 것. 이중 일부는 종교가 개인에 있어서도 도덕 향상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하며, 실제로도 이런 연구가 있기 때문에[3] 이들의 목소리는 그칠 날이 없다. 여기서도 논자에 따라서는 "종교가 가장 직접적으로 이를 부채질했다" 고 생각하거나, "종교적 문제가 하나의 트리거가 되었을 것" 이라고 생각하거나, 가장 온건하게는 "종교가 그들의 자기합리화부추겼다" 고 생각하는 등 천차만별이다. "선한 사람이 악행을 하게 하려면 종교가 필요하다" 는 유명한 말도 이와 관련성이 있다.

한국에서도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코로나 19 집단 감염이 하루가 멀다하고 나왔으며, 2021년 조사에서 1년만에 한국 교회의 신뢰도가 32%에서 21%에서 급락한 것 역시 기독교에 관해 종교 유해론이 큰 힘을 얻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유사 개념들과의 구분

사타니즘과 혼동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사타니즘도 결국 일종의 종교라서 반종교에서 배격하는 대상이다.

반신론과의 구별은 어렵다. 현대의 신무신론과 반신론, 반종교 사이의 교집합은 대단히 크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개념적으로만 구분한다면, 반신론이 신학적, 신론적, 신에 대한 형이상학적 아이디어를 공격한다면 반종교주의는 의례와 제도, 교리로서의 종교를 공격한다는 차이가 있다. 직관적으로 "신에 대한 반대" 가 반신론이고, "종교에 대한 반대" 가 반종교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이라는 개념과 종교 사이에는 큰 교집합이 있지만, 신 자체는 제쳐두고 종교만을 반대하는 경우도 분명히 없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21세기의 현실에서 반종교주의자와 무신론자, 반신론자들이 많이 겹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개념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적기는 하지만, 반종교이면서 유신론자인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하고[4], 혹은 반종교이면서 무신론자[5]이기는 하지만 반신론도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은 일종의 종교라고 보아서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6]

반기독교의 경우, 크리스트교 종교현상이라는 주제에 대한 반대라는 점에서는 반종교의 한 종류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반기독교인들이 반종교주의자라고 곧바로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불교나 민족 종교 계통 등을 배경으로 하는 반기독교인의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독교 내에서도 개신교도가 같은 신을 모시는 가톨릭과 유대교를 반대하고, 가톨릭 신자가 개신교를 반대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역시 개념적으로는) 반종교주의자들은 반기독교인이기도 하다고 볼 수는 있겠다. 반종교는 대부분의 경우 크리스트교에 대한 반대를 포함하기 때문. 즉, 반기독교가 반종교의 하위 분류라고 볼 수 있겠다.

국가 무신론주의는 국가의 이름으로 반종교를 권위적으로 강요하려는 시도로, 모든 종류의 종교적 활동과 모임, 결사, 신앙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한다. 한때 반종교는 국가 무신론주의와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으나, 오늘날의 반종교는 대부분 국가 무신론주의와는 큰 관련성이 없다.

과학적 회의주의(scientific skepticism)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얻어진 지식에 자신의 지성을 최대한 의존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대해서는 건전하고 건설적인 의심을 유지하는 입장이다. 적지 않은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이 실제로 반종교에 찬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한편으로 가장 유명한 과학적 회의주의자들 중 일부는 반종교의 몇몇 주장들에 우려를 표하고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만일 반종교의 모든 논지와 근거들이 엄밀하게 검증된 과학적 사실들에 근거한다면 과학적 회의주의는 반종교의 추진력이 될 수 있겠지만, 반종교가 검증되지 않은 확신이나 잘못된 주장에 근거한다면 양자는 마땅히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주의, 내지는 과학만능주의도 반종교와 관계가 상당하다. 과학주의는 인류에게 당면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디까지 과학의 교도권(magisteria)을 인정해야 하는가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종교라는 사회 현상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의 문제와도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다. 폐기되어야 할 종교의 대안으로서 새롭게 과학을 제안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더 극단적으로 가면 도덕률 부인주의가 된다. 이는 도덕률이라는 선험적, 신비적, 관념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모두 생물학적 현상으로만 파악하는 태도이다.[7]

4. 반론

무신론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상당히 급진적인 철학이기 때문에, 온건한 무신론자나 종교 문제에 무관심한 학자들에게까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8] 종교를 일종의 시지각 패턴 인식 능력의 부산물로서 여기는 온건한 무신론자들에게, '종교는 일종의 컴퓨터 바이러스와 같은 위험한 '이라는 주장은 반종교주의자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종교의 존재 의의나 존폐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므로 인류학이나 종교학에서 비판적으로 개입할 여지도 열리게 되었다.

상당히 논쟁적인 주제가 될 수 있으므로, 이하의 각각의 논점에 대해서는 실제로 이를 학술적으로 또는 저술 활동을 통해서 뒷받침하고 있는 학자들 및 관련 저서들을 조금 거론해 보기로 하겠다.

이 외에도 상술된 주제들은 하나하나가 대중적 수준에서, 그리고 학술적 수준에서 극심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치열한 쟁점들이기 때문에, 미처 거론하지 못한 논자나 언급하지 못한 의견들이 많이 있다.

5. 사례

5.1. 공산권의 국가 무신론

대표적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 공산권은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에 따라 무신론 국가를 표방했다. 이른바 종교를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국가 무신론 정책이다. 공산주의 본산인 소련의 경우 레닌-스탈린[16]-흐루쇼프 시대를 가리지 않고 종교탄압 정책을 시행했고, 전투적 무신론자 협회를 결성하거나 과학자 협회를 공산당 차원에서 조직하여 무지몽매 봉건잔재로 선언하고 종교인들을 박해했다. 동구권 국가들 역시 소련식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답습했다. 한 예로 냉전 시기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엔베르 호자의 철권통치를 받았는데, 이 동안에 호자는 완전한 국가 무신론을 선포함으로써 인류 역사상 최초로 반종교적이고 무신론적인 정책을 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모든 종류의 종교적 저작이나 종교 활동은 일체 불법으로 규정되었으며, 국내의 종교인들은 고문사형을 당하고 외국인 종교인들은 일괄 추방을 당했다.

한편 동유럽, 중부유럽 위성국가들이나 동독은 상대적으로 덜 폭력적이었으며, 형식적인 종교의 자유는 인정했지만 교육 과정에서 종교와 관련된 내용을 삭제해버리고 성직자들을 일반인보다 더 집요하게 감시하거나, 재정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등 여러 꼼수를 동원하여 실질적인 종교탄압을 가했다. 특히 에스토니아체코는 이 시절의 영향으로 종교 인구가 공산화 이전 수준으로 증가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둘은 공산화 이전에도 어느정도 세속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비단 공산주의의 영향 뿐만 아니라 체코나 에스토니아 같은 동유럽의 역사상 제국들의 변경지대는 현지 주민들의 종교적 열망과는 영 상관없는 지정학적 열강들의 영향력에 따라 종교 지형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고, 발트 3국, 핀란드 같으면 특유의 지리적, 역사적 영향으로 인해 애초에 기독교 문화의 전파도 더디고 늦었다는 점도 있다. 체코의 경우 중세 말과 근세 자국의 역사를 주도한 종교는 후스파였다가 30년 전쟁 이후 지배권을 재확립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정부가 카톨릭을 강제하면서 재개종도 더디고 어설프게 이루어지다 결국 문화와 사회에서 종교 전체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키웠고, 라트비아, 핀란드, 에스토니아 같은 경우는 원래 기독교 전파 자체도 중세 후기나 돼서야 제대로 될만큼 늦었던게 바로 이후 근세 종교지형 자체가 각각 카톨릭, 개신교, 정교회를 믿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스웨덴, 러시아 이웃 열강간 경쟁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원래 자체적인 역사적 문맥에서도 종교적 정체성이 애매모호했던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자국 역사상 최초로 아예 어떤 형태던간에 기독교를 안믿는거 자체를 옵션으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걸 반강제했던 공산화의 경험이 아예 사회적으로 종교성의 관짝에 못을 박아버린 셈이다.

동양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 시대에 종교탄압을 이어갔고, 현재에는 형식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나 공산당원의 종교단체 가입은 금지이며 당 이념에도 무신론을 표방함을 밝히고 있다. 베트남 공산당도 주류 종교인 불교는 물론이고, 가톨릭은 과거 남베트남의 고위층과 연관되었단 이유로 전간기 동안 가혹한 탄압을 가했다. 북한도 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극악의 종교탄압 국가이다. [17]

결국 이러한 공산권의 정책은 프랑스와 같이 현대 이전부터 세속주의가 유행했던 국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구권 국가들이 무신론과 탈종교주의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만들었다.

5.2. 신무신론 운동

신무신론 운동가들은 반종교에 깊이 경도되어 있으나, 알바니아와 같은 국가 주도적 반종교보다는 인간이 교육과 계몽을 통하여 이성과 합리를 깨우쳐서 자연스럽게 종교를 거부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주류이다. 설사 그 종교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그 종교를 조용히 믿고 있는 사람들과 믿으려는 개인의 자유는 국가가 통제할수 없다. 이걸 통제한다면 종교의 자유에 어긋나게 된다. 그리고 종교 자체가 개인의 신념이기 때문에, 그 종교의 시설을 제거한다 해도 그 사람이 믿는다고 하면 그 사람 자체적으로 믿을 수 있고, 혼자서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애시당초 통제도 불가능하다.

6. 관련 어록

인류는 이제 황금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먼저 이 문을 막고 있는 괴물부터 처치해야 하는데,
그 괴물이 바로 종교인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
종교란 객관적인 현실을 왜곡시켜 환상을 보게 하는 사회적 의식의 한 형태이다.
호르스트 디레 외, 《세계사 수첩》[18]
구약성서의 신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

7. 인물

7.1. 가상 매체에서의 사례

8. 관련 문서


[1] 물론 사회에 큰 해를 끼치는가, 제대로 된 뿌리를 가졌는가 등의 차이점은 인식하고 있다.[2] 예를 들어 해리스는 체벌이 동기심리학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 성과를 거론하며 윤리적 작업에 과학이 관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학이 도덕윤리의 영역을 흡수할 수 있는가의 논제는 이 항목의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여기까지만 소개하기로 한다.[3] Cowell, J. M., & Decety, J. (2015). The neuroscience of implicit moral evaluation and its relation to generosity in early childhood. Current Biology, 25(1), 93-97;Hofmann, W., Wisneski, D. C., Brandt, M. J., & Skitka, L. J. (2014). Morality in everyday life. Science, 345(6202), 1340-1343.[4] 신을 믿지만 제도로서의 현실 종교에 대해 극히 비판적인 경우[5] 이들은 자신이 무신론자일지라도 사상과 종교의 자유, 문화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존중하기 때문에 종교인들을 '계도'나 차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존중할 대상으로 생각한다.[6] 보통 좌파나 아나키즘 쪽에서 무신론이나 과학만능주의의 이데올로기성을 비판하고 경계하는 경우가 많다.[7] 이 수준까지 가면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도덕률이나 사회계약론 등도 생물이 원초적으로 가지는 보호본능 같은 생물학적 근거를 모든 사람에다 보편적으로 적용하면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8] 상술하였다시피 무신론과 반종교는 별개의 철학이다.[9] 볼링장은 여전히 성황이지만 볼링 동호회는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는 점에서 나온 주제이다.[10] 종교 유해론과는 대립한다. 그들이 말하는 종교의 범위가 넓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좁은 의미의 종교를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므로.[11] 반드시 종교적 형태를 가질 필요가 없을 뿐, 종교적 형태를 가진다고 공동체의 결속, 질서, 상호부조를 못하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원시 시절부터 오랜 세월 그 역할을 종교적 형태를 가진 종교가 담당했음을 인정하고 있다.[12] 민문홍, '에밀 뒤르케임의 사회학', 아카넷. 2001.[13] 이러한 신앙적 배경을 두고 흔히 "credo quia consolans" 라고 부른다. 신앙주의 항목도 함께 참고.[14] 물론 "종교적" 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선결될 필요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Diener, Suh, Lucas, & Smith, 1999 참고.[15] 단, 종교사학자 르낭은 자신만의 관점에서 종교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르낭은 가톨릭 냉담자로, 사복음서 사이의 모순이 그가 신앙을 버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16] 다만 스탈린 시대에는 의외로 제2차 세계 대전과 소수민족 통합 등 정치적인 이유로 러시아 민족주의를 자극하기 위해 러시아 정교회가 상당수 허용되었다.[17] 단지 구분하기 위한 명칭이다. 북한은 대한민국 헌법으로는 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이다. 다른 나라는 국가로 본다.[18] 구 동독 역사교과서의 참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