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 | |
장르 | 대체역사, 게임빙의 |
작가 | 마늘맛스낵 |
출판사 | JHS BOOKS |
연재처 | |
연재 기간 | 2020. 07. 05. ~ 2023. 04. 10. |
이용 등급 | 전체 이용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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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폴란드 여왕 키우기를 집필한 마늘맛스낵.2. 줄거리
고려 시대 삼별초의 무장으로 살아남아라.
그것도 남미에서.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상민은 어느날 역사 대전략 게임[1]을 하던 도중, 게임 속으로 빠져들며 고려의 삼별초의 일원이 되어 남아메리카[2]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려를 새롭게 건국하며 역사가 개변되게 된다.그것도 남미에서.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20년 7월 5일부터 일일연재 중이다.2021년 1월 13일부터 네이버 시리즈에서도 연재를 시작했다.
2022년 3월 기준, 주 5일 연재 중이다.
2022년 7월 13일 휴재 겸 연재주기 변경 공지가 올라왔다. 완결까지 주4회 연재될 예정이며, 현재 월화목금 연재 중.
작가의 건강 문제 때문인지 연재 지연과 휴재가 잦은 편이다.
2023년 2월 10일 본편이 완결되었다.
2023년 2월 16일부터 외전이 자유 연재[3]로 연재가 시작되었다.
2023년 4월 10일 외전이 완결되었다.
4. 특징
연재 초반의 제목은 남미에 떨어진 고려였고, 대체역사 갤러리에서는 지금도 남미고려라는 약칭으로 불린다.주인공이 게임 속 캐릭터를 만들 때 불로불사[4] 특성을 부여하여, 소설 속에서도 오랫동안 살아나가며 긴 시간 동안 국가를 경영하고 기술을 개발해나간다. 그 결과 대체역사물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남북미를 동시에 먹고도 태평양과 대서양의 대다수의 섬, 남극까지 먹어치우는 그야말로 크고 아름다운 판도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역사적 주요국 버프를 추가하고 인물간 유사성을 조금 높게 설정했기 때문에 역사가 개변된 와중에도 유럽이 열강의 지위를 잃어버리지 않으며, 원역사의 위인들이 등장한다.
2022년 만우절 당일만 표지가 옥좌에 앉은 역시 불로불사 종특의 이 황제로 바뀌었다.
5. 등장인물
5.1. 김상민(태조 해민)
金常民. 본작의 원탑 주인공. 역사게임을 좋아하는 현대의 회사원에서 대몽항쟁기의 삼별초의 무장으로 빙의하였다. 남미에서 병자년(1276년)에 고려를 새로 건국하면서 성을 부여의 해모수에서 따온 해씨로 바꾸고 해민(解旻)으로 개명한다.[5] 연호에서 따와 개천제라고도 불린다. 인두법 보급, 화약 개발, 한글 및 아라비아 숫자 도입, 직결식 글꼴 인쇄술 보급, 관료제 개편, 미터법 도입, 과거제 도입, 마약 금지 등의 업적을 남긴다. 불로불사 특성으로 인해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아 자신이 신적 존재로 우상숭배받는 것을 피하고자 태자에게 제위를 넘기고 훈요 128권[6]을 전한다. 황제가 권력을 민간에 이양하자 가면을 쓰고 시중으로 활동했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시중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수백 년 동안 제국을 암중에서 통치하고 있으며 막대한 권력과 무력, 금력[7]을 보유하고 있다.존재 자체가 고려 최고의 기밀로 취급된다. 그의 조력을 목적으로 창설된 정보총국 제 4국(여의국), 황실 직계 일원들, 각 부처에서 오랫동안 종사한 최고참급 신료들, 그리고 그들과 밀접하게 선이 닿아있는 재계의 거물급 기업인 몇몇 등 정말 극소수만이 그의 정체를 알고 있다.
실로 신적인 존재라 종교적으로는 그를 깃털 달린 뱀으로 여기며 신격화하는 쿠쿨칸교,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선지자로 여기는 제국교가 있으며, 중동 지역에서도 무함마드의 재래라고 봐도 좋을 만큼 거한 활약을 펼치는 바람에 그 쪽에서도 종파가 생겨났다. 팬들은 농담삼아 전 세계에 정체가 들통난 주인공이 황금 옥좌에 앉는 것으로 작품이 끝날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원래는 싸움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이었지만, 특성 덕분에 빙의한 삼별초 무장의 검술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데다 프랑스 기사들과 교류로 그들의 검술까지 받아들인 최고 수준의 무장이 된다. 그리고 수백 년의 세월동안 넘쳐흐르는 시간,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넘은 회복력 덕분에 점점 더 강해져, 완력만으로 맹수의 목을 돌려버리고, 회색곰과 아무렇지 않게 뒹굴며 놀 수 있고, 방탄 장비 없이 맨몸으로 총알을 튕겨내며 수류탄이 손 안에서 터져도 생채기 하나 없는 초인이 되어 버린다. 본편 종료 시점 즈음해서는 방사능 지대에서 맨몸으로 활동하고 진심으로 살의를 품자 철갑판이 진동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일종의 초능력이 있는지 회색곰이나 고래 같은 생물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며, 불완전하며 단편적이긴 해도 미래를 예지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돌발상황에서의 임기응변이나 판단력도 완벽한 수준이다.[8]
여담으로,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고 코카콜라보다 펩시콜라를 더 좋아한다.
5.2. 상민의 배우자들
주인공인 상민이 오랜 시간 동안 살아오면서 만난 아내들. 다만 첫 부인인 왕예 시절을 제외하면 모두 상민이 배후의 통치자로서 활동하던 시절에 만났기 때문에, 이들 모두 공식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결혼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상민을 보좌하는 여의국의 사도들은 상민이 오히려 여인들을 사귈 것을 바라고 있는데, 초인으로서 만사에 권태를 느끼는 상민이 여성에게 마음을 붙여 제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이들 중 역사에서 이름을 남긴 인물들은 모두 행복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는데[9], 여기에 더해 역사적 인물 중 상민이 처음으로 맞은 재혼 상대인 잔 다르크가 가슴이 컸다는 기록을 종합해 상민의 취향이 "박복한 거유 미녀"라는 드립이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작품 외적으로 팬덤에서 나온 드립에 불과했으나, 나중에는 상민을 섬기는 인물들까지 언급하는 준공식 설정이 되어 버린다.
- 왕예(王蘂)
상민의 첫 번째 부인. 묘호는 천덕태성황후(天德太聖皇后). 고려에서 삼별초와 함께 남하한 고려 왕족 왕온의 딸이다. 이후의 고려 황제들은 모두 주인공 상민과 왕예의 후손들이다. 해씨 고려의 초대 황후가 왕씨 고려의 왕족인 왕예인 탓에 이후 황제들은 모두 왕씨 고려의 핏줄을 이어받았고, 이를 두고 쌍용지손이라는 칭호가 붙어있다. 고려의 시조가 용의 후손이라는 전설이 있는데, 상민 역시 용과 관련된 전설이 생전에도 떠돌았기 때문이다.[스포주의] - 정실부인이자 황후인 왕예 외에도 고려 건국 이후 각 부족의 통합을 위해 결혼한 측실들이 있었는데, 이들 사이에서 얻은 후손은 제왕지손(諸王之孫)이라 칭한다.
- 연화
원주민 출신의 시녀. 직첩은 덕비(德妃). 장신으로 유명한 테우엘체족 출신으로, 가면시중 시절 상민의 시녀였다가 아내가 되었다. 잔 다르크보다 오래 살았다고 한다. 나중에 그녀의 후손이 정구(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하는 장면이 나온다.
- 잔 다르크
프랑스의 그 성녀 잔 다르크. 묘호는 장무태성황후(將武太聖皇后).[11] 처음에는 아직 북미를 장악하지 못한 이교도 고려를 정벌하기 위해 누벨 오를레앙에 파견되었으나, 원래 세계에서 기독교 계열 고아원에서 자라고 자신이 왜 이 세계에 떨어졌는지를 고민하던 상민의 기도에 당황하고, 자신에게 들리던 천사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다. 그 이후 원 역사보다 더욱 잔혹해진 아즈텍에 맞서게 되고 타락한 교회를 마주보게 되며 이전과 같은 광신을 버리고 상민의 아내가 된다. 단, 상민은 이때 연화를 아내로 데리고 있었던 것도 있고, 상민의 존재를 숨겨야 하기에 과도한 망나니짓을 해서 처형당할 황족과 위장혼인을 한다. 그 후 다르크 가문, 즉 앙왕가의 시조가 된다.
- 루크레치아 보르자
원 역사의 루크레치아 보르자. 묘호는 정강태성황후(靖康太聖皇后). 고려 황실과 정략혼을 맺고자 하는 보르자 가문의 의지로 고려에 왔다. 원래는 황제와 혼인하려 했으나 이미 있는 아내와 금슬이 좋은 황제는 이를 고사했고, 황제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상민과 이어진다.[12] 한동안은 상민과 사이가 서먹했으나, 이후 관계가 개선되자 금슬이 좋아졌는지 자식들을 많이 보았다.
연극과 음악 등 문화,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어서 이를 바탕으로 고려의 문화계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13] 그녀의 대에 만들어진 예술의 전당의 사실상 안주인이라고 봐도 될 정도. 처음에는 서먹하기 그지없었던 상민과의 관계가 진전된 것도 그녀의 문화적 소양과 자질 덕분이었다. 상민의 다른 아내들을 약간 질투했는지 그녀들의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들어 놀렸다. 예술뿐만 아니라 의외로 독에 대해서도 박식한 면모를 보였다고 한다. 단순히 독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그 독을 적당히 배합하고 티 나지 않게 쓰는 용독술에도 능숙했다고. 이는 내내 암투에 시달리며 존속해 왔던 보르자 가문의 지혜라고 한다.
- 콘스탄티나 콤니니
오스만의 침공으로 멸망한 트라페준타 제국의 왕가, 콤니노스 가문의 여인. 직첩은 숙비(淑妃). 늘씬한 각선미가 돋보이는 미인이라고 한다. 우연히 상민의 눈에 들어 그 능력을 인정받아 부하가 된다.
원래 운영하고 있던 작은 회사를 고려에서 손꼽히는 거대 기업으로 키워냈고, 완전히 몰락했던 콤니노스 가문의 재건에도 성공해 가주가 된다. 이후엔 상민의 지시로 전국체전과 현대식 올림픽을 최초로 개최한다.
그녀가 운영하는 기업체 아타나토스의 뜻은 불멸. 대를 이어서 영원히 상민에게 충성하고 조력하는 것이 기업의 존재 목적이다.
상민과는 잠자리까지 함께하는 긴밀한 관계로 발전했지만, 정식으로 혼인을 했는지 사실혼 관계로만 남았는지는 작중에서 나오지 않았다. 슬하에 티베리오스라는 이름의 아들을 뒀다.
- 아이샤 샴마르
아라비아에서 결혼한 여인. 묘호는 소헌태성황후(昭獻太聖皇后). 샴마르 부족장의 딸이며, 나중 아랍 에미르 연방국의 대에미르(대통령)가 된 하팀의 누이이기도 하다. 이름 유래대로 상민의 불멸성을 알고 상민을 무하마드와 같이 섬긴다. 상민이 평하길 가장 속을 알 수 없는 여인. 실제로 상민 모르게 그와 관련된 무슨 일을 꾸미는 듯하다[14].
-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안나 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
원 역사의 마리 앙투아네트. 묘호는 선경태성황후(宣景太聖皇后). 모친인 테레지아 합스부르크가 신성로마제국의 몰락 이후 프리드리히 2세와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태어나게 된다. 역사가 바뀌면서 원래 역사처럼 프랑스에 시집 가지 않고 상민의 여인이 된다.
모친 테레지아가 어린 시절 주인공 김상민과 만나 커다란 트라우마와 함께 상민의 존재에 의구심을 품게 되고, 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 가문이 언제 상민의 눈밖에 나 하루아침에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면서 상민에게 바칠 존재로 낳고 길렀다. 이런 사연을 알게 된 상민은 인신공양이냐고 한탄했지만 여의국의 사도들은 용을 인간 세상에 붙잡아 둘 수 있는 묘책이라며 은근히 밀어줬다.
이후 안토니아는 상민의 곁에 남아 '악의 탄생'을 집필하는 역할을 맡는다. 상민은 자신이 저질러 온 일과 앞으로 일어나게 될 미래에 대한 기록을 남겨 자신을 신성시하는 이들에 대한 반대 자료가 되기를 기대하지만, 안토니아는 신도 악마도 아닌 또 다른 관점에서 상민을 묘사한다. 상민과 사이에서 합상혁이라는 아들을 얻었다. 물론 합씨는 합스부르크에서 따와 만든 성이며 대외적으로는 부유한 고려인 사업가 합씨와 안토니아가 결혼했다는 설정을 내세운다.
- 에이다 김
원 역사의 에이다 러브레이스. 직첩은 현비(賢妃). 정보통신의 시대에 접어든 현대에서 한손에 꼽히는 천재라고 한다. 경쟁사인 별구름을 제치고 손전화(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인 회사이자 혁신의 아이콘인 에이다 사를 경영하고 있다. 또한 광명회(일루미나티)의 부회주이다. 전 아내인 안토니아로부터 '용의 그림자'를 물려받았으며, 안토니아의 아들인 합상혁과도 나쁘지 않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사도들과 광명회원들 사이에는 상민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한 경쟁이 있는데, 합상혁이 제 1사도가 되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서로 껄끄러워 하는 점이 있다.
5.3. 고려 황실
- 고려(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 문서 참고
5.4. 고려인
- 이도
원 역사의 세종대왕. 삼별초가 사라지며 생긴 나비효과로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성공하고, 이후 심양 등이 조선의 땅이 된다. 이방원이 비행을 일삼는 장남 양녕대군 이제를 심양으로 보냈지만. 오히려 여진족의 마음을 사로잡아 북원과 다른 여진 세력들의 침공을 모조리 격퇴하여 전쟁영웅이 된다.
양녕대군이 태종의 마음을 사로잡아 왕위에 오른 이후 똑똑하던 충녕대군 이도는 정치적 입지가 위험해지나, 형인 이제를 전쟁영웅으로 존경한 덕분에 왕이 된 후에도 이제는 이도를 아꼈다. 신하들의 압박이 거세지자 이도를 지키기 위해서 고려가 사절단을 보냈을 때 사절단과 함께 고려로 떠나도록 한다.
고려로 가서 여러 학문을 익히고 다양한 철학들을 정리한 후, 시중 다음 가는 지위인 상서령에 올라 막강한 실권자가 된다.[15]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인 한글 창제는 상민이 가져갔지만, 순수이성비판을 저술한 세계관 최고의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상서령인 만큼 상민 다음가는 권력을 쥐었지만 원래 역사에서 황희의 퇴직을 막던 업보를 치르게 되어 환갑, 진갑이 되고도 사직을 윤허받지 못한다.
황제의 장인이자 외조부가 되어 고려 황실에서도 이성계의 피가 섞이게 된다.[16] 이도의 후손들은 모두 고려에서 머무는데 이도의 후손 중 한 명을 조선의 왕으로 옹립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을 현장에 있던 이들이 품기도 했으나, 이도의 후손이 극도로 거부하여 이뤄지지 않았다. 문종과 세조 단종 모두 고려에서 잘 지냈기 때문에 역사의 수혜자 중 한 명이다.
- 장영실
원역사의 장영실. 이도와 함께 조선에서 고려로 넘어와 기술장인으로 출세했다. 훗날 기술선도국장이 된다. 사후 그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영실상은 현대의 노벨상과 비슷하게 이과 계열에서 가장 권위 높은 상이 된다.
- 장성재
장영실의 늦둥이 사남. 장영실 왈 본인조차 능가하는 세기의 천재라고. 실제로도 훗날 증기기관을 발명하는 과정에서 열역학법칙까지 발견해내고 영실상을 받는다. 파라켈수스를 상민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 김홍
고려의 함대 제독이었으나, 작전에 실패하고 당시에 부르고뉴였던 네덜란드로 피신했다가 네덜란드의 왕비 마리와 결혼하여 타국의 왕족이 된다. 고려는 원래 직위나 땅이 세습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작위를 물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당대 고려인들의 부러움을 받아 고려인들이 타국으로 이주하게 되는 계기가 되게 한다. 현 네덜란드 왕가인 브루고뉴-킴의 왕족들은 모두 김홍의 후손이다.
- 파라켈수스
원역사의 파라켈수스. 야코프 푸거에게 찍혀서 고려로 이민 왔다. 교련법을 발명했으며, 상민 본인에게 불사의 단점을 들었음에도 현자의 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자 '불사는 아니어도 황금을 만들 수 있는 액체' 라는 상민의 입발림에 넘어가 남미고려 세계관 콜라[17]의 아버지가 되었다. 판권은 상민이 가져갔지만 대신 받은 산더미 같은 돈으로 온갖 유흥과 각종 과학 실험에 물 쓰듯이 돈을 쓰다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고.
- 테오도라 아사니나
동로마의 마지막 바실리사(황후). 마지막 바실렙스(황제)로 기록될 디미트리오스의 미망인으로 헬레나의 친어머니. 동로마가 망한 이후, 비참한 신세가 됐지만 고려의 지원금을 받아 가신들에게 겨우 봉급을 내려주는 것으로 겨우겨우 가모의 체면치레만 하다가 결국 고려로 귀화해 딸인 헬레나를 고려의 황태자비로 삼게 한 후, 본인은 진주의 데스포이나(Despoina)이자 아센가문의 가주가 된다. 이 때 고려 황족 해승원과 결혼했지만, 사실상 데릴사위로 해승원은 국서이자 왕이지만 어떠한 권한도 행세할 수 없다고 못박혔다. 또한 성씨 역시 아센 가로 이어진다.[18] 원래 워싱턴 D.C인 곳에 테르샤로마(Tertia Roma)라는 이름을 붙여 고려국에 포함된 진주의 여왕(자치권)[19]으로 지내게 됐다보니, 세 번째 로마는 망하지 않기 바라는 마음으로 고려에 바짝 엎드리기 위해 동로마 제국의 모든 기술들을 고려에게 바쳤다.[20] 훗날 불가리아의 왕이 되는 아센재웅도 그녀의 후손이다.
- 아이작 뉴턴
상민이 뉴턴을 데려오기 위해 잉글랜드에서 아이작 뉴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대거 납치해오며 생긴 아이작 뉴턴 집성촌[21]에서 사는 고려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말년까지 상민의 보살핌과 조력을 받아왔고[22] 서로 자주 얼굴을 보며 친구처럼 지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상민의 정체를 눈치챘다. 원 역사대비 100년 이상 빠르게 발전한 이 세계관에서는 만유인력 등의 업적은 역시 잃어버리지만 천재성은 어딜 가질 않아 만만치 않은 과학적/철학적 업적을 세운다.
아버지 아이작 시니어 뉴턴은 고려에서 겹빵(샌드위치) 패스트푸드점을 열었다. 이 아이작(issac) 겹빵은 대성공해서 고려를 평정한 것은 물론 해외에도 진출하는 세계적인 패스트푸드점이 되었고다. 다만 이미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아들 뉴턴은 가게를 물려받지 않고, 동생이 가업을 이어받는다.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사업가인 아버지 뉴턴과 최연소 영실상 수상자이자 고려를 대표하는 지성이 된 아들 뉴턴의 사이는 썩 좋지 않았는데, 부자가 각자 분야에서 대성공을 거둔만큼 각자 자부심이 너무 강해서 서로 굽히지 못한 모양. 그래도 부자간에 애정은 있었는지 아버지가 유언으로 아들에게 아이작 겹빵의 주식을 남겨놓은 것을 알게 되자 아들 뉴턴이 착잡해하는 장면이 있다.
- 허종욱
조선에서 고려로 이민을 온 허균의 먼 후손. 고려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비행인이다.
어릴 적부터 하늘을 나는 물건들을 묘사한 조상의 소설을 읽으며 꿈을 키워나가, 불과 열여덟 살의 나이에 최초의 열기구를 만들어냈다. 그 이후 황실과 군부의 감시를 겸한 후원을 받으며 연구를 거듭했고, 결국 헬륨을 이용한 비행선의 개발과 실용화까지 성공한다.
- 아센재웅
본래는 테르사 로마의 아센 왕가 소속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왕가 소속이라고는 하지만 간신히 왕가의 이름을 댈 수 있는 방계였던 모양. 하지만 고려와 러시아가 콘스탄티노플을 사이에 두고 벌인 전쟁 이후 맺은 셀림브리아 조약에 따라 불가리아가 독립하게 되고, 마땅한 계승자가 없던 불가리아에서 과거 이 땅을 지배했던 아센 왕가의 후계자를 보내달라는 청에 따라 불가리아의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다만 이는 스스로 원해서 왕의 자리에 올라 선 것이 아니었고, 비록 왕의 권력은 누릴 수 없을지언정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던 아센 왕가의 구성원들이 너도 나도 낙후된 불가리아 땅에 가서 고생을 하기 싫어 서로 거부한 결과 떠밀리듯 방계의 아센재웅이 불가리아의 왕이 된 것. 실제로 아센재웅이 불가리아 땅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작 겹빵이 그립다. 요구르트 말고 없는 땅.' 이라면서 망연자실하게 된다.
여기에 셀림브리아 조약 이후 불가리아가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의 봉신국이 되고 이에 따라 러시아 황제 블라디미르의 서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으며, 국내의 귀족들이 불만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키려 하는 등 헬 난이도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상황에 처하게 되며 '진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속으로 외친다. 하지만 이런 극악한 상황 속에서도 어찌어찌 재산을 투자하여 불린 돈을 바탕으로 불가리아의 낙후된 인프라를 개선하고, 귀족들을 어르고 달래며 그나마 고향인 러시아 보다는 남편을 사랑하고 멀쩡한 사고방식을 가진 아내 덕분에 어떻게든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부친인 블라디미르를 폐위하고 황제가 된 블라디미르 2세가 저지른 세계대전으로 인해 불가리아가 러시아의 동원령으로 망가질 상황에 처하게 되자 불가리아 땅과 거기에 살고 있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러시아를 상대로 총칼을 들이밀며 불가리아를 지키기 위해 토르노보-트라페지차 요새에 틀어 박혀 싸우게 된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항전 끝에 고려군의 구원이 올 때 까지 버티는데 성공하고 불가리아를 외세의 침략에서 구해낸다. 그 이후 이때까지의 애민행보와 합쳐져 자애공이라는 칭호를 얻는다. 이후 자애왕이라 불리며 세계 지도자 순위에서 최정상을 지키는 위인으로 꼽히게 된다. 또 다른 별명으로는 고려 주식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였다 하여 투자왕이라고 불리기도.
- 유수원
원역사의 유수원. 아버지 대에 고려로 이민 온 조선계 청신사. 장기 투자에 재능이 있으며 안 이아코보스와 합작해 유안 투자은행을 세웠다. 박람회에서 만난 박주항에게 투자를 제안한다. 친구인 이안코보스가 유럽계 고려인이다 보니, 극소수의 유럽계에 대한 차별 시선에 대해서 상당히 불쾌해한다.[23] 이후 안 이아코보스와 친구에서 사돈관계까지 맺은 걸로 나온다. 대공황을 예측하고 이에 대한 준비를 한 뛰어난 안목을 보여준다.
- 안 이아코보스
담쟁이거리의 청신사. 단기 투자와 외부 자금 유치에 재능이 있으며 유수원과 합작해 유안 투자은행을 세웠다. 국밥에 치즈와 땅콩버터를 넣어서 먹는 유럽계 고려인 특유의 식성을 지녔다. 이후 유수원과 사돈관계가 된다.
- 박주항
자동차의 발명가. 본인이 고안한 자동차 체계의 특허권을 포기했다.
- 조지 워싱턴
원 역사의 미국 초대 대통령. 군의 장성이었다가, 군 내부의 비리를 고발하여 인기를 얻고 정계에 진출해 중도우파~우파 정당인 교당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으며, 이 당에는 현재 정약용도 있고 군 시절 후배로는 원 역사의 사도세자인 이선이 있다. 같은 당의 절친한 정치인들로 존 애덤스와 사무엘 애덤스가 있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위협이 코앞인 세상에서 시중에 취임한다. 이후 뉴딜 정책을 펴서 대침체를 극복해내고 2차 세계대전의 전시 시중으로서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다가 승전을 눈앞에 두고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한다.
- 이선
원 역사의 사도세자. 조지 워싱턴의 친한 군 후배로 삼성장군에까지 올랐으며, 자신을 아동학대한 아버지인 원 역사의 영조 이금을 증오하고 있다. 반면 아버지와 달리 아들인 원 역사의 정조인 이산을 사랑으로 키워서 화목한 부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식가로 돈을 쓰는데 째째하지 않아서 부관도 잘 얻어먹는다고 한다.
- 이산
원 역사의 정조(조선). 할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아버지와 달리 아버지인 이선이 사랑으로 자신을 키웠기에 올바르게 자라서 현재 고려의 공무원으로 취직했다. 현재 아들도 있는데 그 아들이 원역사의 요절한 문효세자여서인지 예전에 호흡기질환으로 몸이 아팠다고 한다.
5.5. 조선인
- 남곤
조선의 문신. 원래는 출사하지 않고 집에서 책만 읽던 선비였으나, 병인몽란이 끝난 후 난중에 발생한 관료들의 결원을 채우고자 등용되었다. 등용되자마자 새로운 상국에 입조하는 조천사(朝天使) 일원으로서 방문, 동기로 출사하여 같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 조광조와 친분을 다졌다. 유리창으로 막혀 위생적으로 조리되는 고기나 해수욕장에서 걱정없이 뛰어노는 여성들, 며칠을 배를 타고 가는데도 끝없이 펼쳐져있는 남려대평원 등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고려의 위용에 충격을 받고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다.[24]
여담으로 창양의 연회장에서 본의 아니게 명나라의 길고긴 수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만 장본인.[25]
- 이윤신
원 역사의 이순신.[26] 조선의 무장으로 고려의 숭무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조선으로 귀국해 군 생활을 했다. 고려에 있을 적에 상민이 그를 고려로 끌어들이려고 온갖 애를 썼지만 완강하게 거부한다. 상민은 아쉬워하면서도 그에게 고려 황족 정도나 되어야 겨우 입을 수 있는 거미줄 방탄복을 선물한다.[27] 해전에서도, 육전에서도 압도적인 전공을 세운 명장으로 그 위명이 드높아 고려를 비롯한 전 세계 군인들도 주목을 받았다. 말년에는 고려로 넘어와 여생을 보냈으며, 죽어서도 북려 동래미 현충원에 묻혔다.[28]
사후에도 북방의 사자로 유명한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존경하는 등 최고의 명장으로 두고두고 회자된다.
- 정여립
원 역사의 대동계를 발전시켜, 고려를 모티브로 했지만 고려를 따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았기에 그보다는 좀 떨어지는 마이너판의 이상향을 만들고자 하는 사상을 만들어 대동계라 칭하며 사실상 민주주의자-공산주의자들의 시조격이 된다. 조선에서 불온한 사상으로 추방당해 고려로 떠난 후, 고려에서 사상의 기반을 마련하고 유럽의 혼란 속에서 사상을 정리하며 아드리안 양 등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정여립의 생각과 달리 정여립의 사상을 이어받은 후대의 혁명가들은 서로 싸우면서 분열되었고, 그 결과 아드리안 양이 죽은 뒤 바이에른 혁명 공화국은 몰락하였으며 이 후 대동계의 사상은 민주주의를 따르는 이들과 공산주의를 따르는 이들로 분열되게 된다. 이 중 공산주의를 따르는 이들은 또다시 분열되어 온건 사민주의와 과격파 혁명가들로 나뉘었고[29], 후자의 경우 혼란에 빠진 러시아로 넘어가 마침내 소비에트를 건국하는데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대동계는 혁명사상은 본래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변질되었으며 도리어 정여립이 이상향으로 삼았던 고려와 잘 사는 노동자들을 봉건주의의 끝판왕과 배부른 돼지들로 여기며 증오하는 미치광이들이 되었다. 심지어 고려 때문에 노동자들이 잘 사니까 혁명을 못하는 것이라며 고려가 노동자들을 탄압하지 않은 것을 증오하는 등 노동자를 위하는 마음은 하나도 없을 정도.
정여립의 후손들은 이후 루밀 키치파닐(뉴질랜드)로 이주. 처음엔 고려에서도 특별관리대상으로 놓고 감시했지만, 세월이 흐르자 위험성이 없다고 판명되어 감시가 해제되고 평범하게 잘 살고 있다.
- 왕예진
상민의 첫 아내인 왕예의 환생. 외전의 주인공으로, 나이는 19살. 외모는 청초한 미소녀로 미주의 영화배우나 세계 최대 기업인 에이다 사의 새로운 손전화(휴대폰)의 홍보 모델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미모를 가지고 있다.[30] 조선의 본국수능과 고려의 제국수능에서 모두 최고점수를 땄다. 전생의 기억이 완벽하진 않지만, 깨어나고 있는 중이며 본능적으로 상민을 찾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상민에 대한 기억을 모두 회복하고 상민과 재회한 후, 뜨거운 밤을 보낸 후에 여의국에게 환생의 용으로 불리며 불멸의 용이자 신으로 추앙받는 상민조차 휘어잡는 안주인의 모습을 보인다. 또한 상민이 이후 연애한 여자들에게 직첩을 일일이 내려주고, 에이다에게도 공식 직첩을 내려주는 것으로 상민의 다른 여자들을 챙겨주는 정실부인의 모습을 보인다. 현재 대학에서 지내고 있으며, 가면을 쓰고 교수로 일하는 중인 상민의 수업을 듣고 있다. 삼별초의 진실[31]을 알다보니 역사왜곡에 어이없어한다. 그런데 외전이 진행되면서 의외의 사실이 밝혀졌는데, 환생한 왕예인 왕예진은 상민을 지상에 붙잡아두고 싶어한 쿠쿨칸교 12사도들이 12전째 사도인 습진균의 딸 시청의 주도 하에 상민의 혈액에 있는 불로불사의 요소와 황릉에 잠들어있는 왕예의 시신에서 채취한 체세포를 융합시켜 만든 클론이었다는 것. 하지만 이 클론에 왕예의 영혼까지 강림하여 진짜 왕예가 된 것은 12사도들도 예측하지 못한 진짜 환생이었다. 다른 배우자들(잔, 연화, 루크레치아, 아이샤, 안토니아, 콤니니)의 클론들도 12사도들이 만들어 수정란 상태로 보관 중이다.
5.6. 옥저인
- 이자윤 (李紫玧)
이징옥의 손자. 북방도원수 남이의 객장으로 첫 등장한다. 북원군에 의해 심양이 함락당하기 직전 일부 군사를 이끌고 함경도로 도피한 뒤 북원측 건주여진들을 패퇴시킨다.[32] 이후 사로잡은 시버오치피양구를 설득해 의형제를 맺고 고려군과 조선군, 오우치 요시오키가 이끄는 남왜군과 합세해 퇴각중이던 북원군을 청천강에서 격퇴한다. 이때 전국옥새를 대가로 적장 바르수 볼라드를 보내주고, 고려 총사령관 진람을 통해 이를 진상하여 그 대가로 감자와 은을 포함한 물자를 받는다. 고려로부터 옥저라는 국명을 하사받고 중경 솔빈부(블라디보스토크)를 도읍으로 하여 초대 옥저국왕이 된다.
- 이석보 (李锡宝)
원 역사의 아이신기오로 시버오치피양구. 이자윤의 군대와 싸우다가 포로로 사로잡힌 뒤, 새로운 나라를 세워 악연을 끊자는 이자윤의 설득에 의형제를 맺고 양산 이씨 성을 하사받아 그의 재상이 된다. 후손인 이저혁 때부터 솔빈 이씨로 본관이 바뀐다.
- 이저혁 (李豬革)
원 역사의 누르하치. 조명전쟁 당시 조선을 지원하러 온 팔기군의 장수로 등장한다. 봉명관(산해관) 탈환이 승리로 끝나자 명군이 다시 이빨을 들이대지 못하도록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연경을 향해 진격한다.
- 이윤진 (李胤禛)
원 역사의 옹정제. 팔기 중 정황기의 부대장이며, 명 조정으로부터 태평천국을 진압해달라는 의뢰를 받아 경사(남경)에 도착한다.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지만 현무호에 띄워진 황금함대로 해군의 전략을 세우는 황제의 근자감에 쓴소리를 하고 정황기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이후 마안산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태평천국군이 몰려오자 선두로 돌격해 손쉽게 승리한다. 명 조정이 파한 틈을 타 황금(모형)함대를 싹쓸이 한 건 덤. 이후 공을 세우고 군부의 정점에 오르지만.. 자식 농사를 실패한탓에 졸지에 집안이 역적으로 몰리고 가문이 몰락한 후 충신으로 남으려한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역적이 된 충격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 나라동훈
팔기 중 정황기 소속의 장교. 태평천국의 난 때 명나라의 원병 요청을 받고 파견된 지원군의 일원이다.
태평천국군과의 전투 중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물러났는데 어쩌다보니 옥저 대사관으로 피신한 서황비의 근접경호 임무를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눈이 맞아서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이 관계는 태평천국의 난이 수그러진 뒤에도 계속되어서, 이후 정권을 장악한 서황비의 직권으로 명나라 고위직으로 벼락출세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백여 일 만에 서황비와 그 아들인 태자가 암살로 죽고, 명나라는 그대로 몰락하여 조각조각 찢어지고 만다. 서황비 사후에도 그녀의 유언에 따라 명나라에 남는다.
상해를 장악한 군벌의 수장으로 여생을 보내다 노년기에 류용을 만났고, 그에게서 보다 나은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그의 힘이 되어주고자 그동안 각을 세웠던 정적을 찾아가 함께 음독자살로 동귀어진함으로서 그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일대기를 보면 알수 있듯이 작중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 적당히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나 장교가 되고, 명나라에서 운명처럼 연인을 만났지만, 그 연인은 암살로 죽었고, 그 연인이 남긴 뜻조차 끝내 이뤄내지 못했으며, 목숨까지 내던져가며 미래를 맡긴 류용조차 결국엔 암살당했다. 그리고 류용 사후 대륙은 끔찍한 악의 제국으로 흑화해버렸고 종국에는 파멸이 예정되어 있으니...
- 이홍력
이윤진의 둘째 아들. 러시아 황실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고 그 처리 과정에서 역적과 비슷하게 몰려 반란을 일으킨다. 본인 스스로는 나약한 정부 관리 나부랭이들 대신 모든 일을 다 해온 자신들 '팔기'가 정권을 손에 넣어야 한다 생각하며 팔기 중에 오기를 규합해 반란을 일으켰다 생각했지만, 사실 상 옥저 정부에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다. 극한의 시베리아에서 어느정도 버티며 싸웠지만, 물자와 보급이 없기 때문에 남하해서 몽골을 지나 중국대륙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에 처신을 잘못 하는 바람에 군벌 이소청에 의해 살해당하고, 묻힌 시신은 올가를 설득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고려 대외국 요원이 쫓아와 목을 잘라갔다. 이후 올가는 이홍력의 머리를 걷어차며 공놀이를 한 후, 아버지의 제사상에 바치면서 원한을 푼다.
5.7. 러시아인
- 이반 3세
모스크바의 대공. 모레아가 멸망한 후 자신의 아버지 바실리 2세에게 몸을 의탁한 카테리니 자카리아의 딸, 조이(소피아) 팔레올로기나와 약혼한다. 이후 고려에 자리잡은 처형 헬레나 팔레올로기나가 보낸 선물과 함께 온 저명한 의원을 궁중 의사로 삼으로써 류리크 왕조가 원 역사보다 치세를 이어가게 된다.
- 블라디미르 1세
고려 다음가는 제 2의 제국을 꿈꾸며 엄청난 영토를 정복했다. 고려의 강력한 대항자를 자처했지만 속으로는 고려의 국력에 찬탄기도, 두려워 하기도 했다. 불가리아 등 정교회를 믿던 지역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며 해방제라 불렸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 공성을 앞두고 여유 부리다가 고려의 비행선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고, 결국 콘스탄티노플을 온전히 손에 넣지 못한 채 정복전쟁을 마무리했다. 한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속으로 경외하던 사촌인 해원과 독대하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후에는 고려와의 기술력 차이를 좁히기 위해 내치에 신경쓰다가 아들 블라디미르 2세에 의해 폐위당했다. 수도원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대전쟁을 말아먹고 혼이 쏙 빠져서 찾아온 아들 블라디미르 2세와 함께 뛰어내려 자살했다. 둘째 아들인 드미트리에게 온전히 정권을 넘겨 주기위해 함께 자살했으나, 드미트리는 그의 능력을 경계한 이윤진의 아들에 의해 암살당했고 류리크 왕조의 종통이 끊겼다. 다만 드미트리의 딸 올가는 살인멸구 당하기 전에 잠입해 있던 고려 대외국 요원에 의해 구출되었고, 루테니아의 여왕이 된다. 이후, 루테니아는 악명을 떨친 해방제 블라디미르 1세의 손녀의 나라임에도 고려의 제왕지손과 혼인하여 2차 세계대전에서 큰 활약을 펼쳐 유럽 3대 강국 중 하나가 됐으며 류리크 왕조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셈이 됐다.[33]
- 블라디미르 2세
러시아가 진짜로 강하다는 착각에 빠져 쿠데타로 아버지 해방제를 몰아내고, 4국동맹을 규합해 대전쟁을 일으켰다. 결과는 불가리아조차 넘지 못하고 참패. 역으로 궁지에 몰리고 나서야 뒤늦게 현실을 깨닫고 공포에 빠진다. 전형적인 과대망상형 폭군이자 암군.
5.8. 도이치인
-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원 역사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34] 국명을 프로이센에서 도이치로 바꿨다. 여기서도 아들을 학대한다. 프리드리히 2세를 고모인 루이제가 고려로 데려가자 화가 나서 외교적 갈등도 벌어지고, 1차 세계대전이 터졌음에도 고려의 지원도 거부하며 비협조적으로 굴며 고집을 부리나 전쟁이 본격적으로 명예와 긍지를 잊어버리고 잔혹해지기 시작한 시점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 시작하며 아들 둘을 학대로 죽이고 3남인 프리드리히마저 해외로 도망치게 한 행적을 후회한다. 끝내 병으로 전쟁 도중 병으로 자신의 수명이 얼마 안 남은 것을 알자 고집을 꺾고 고려에게 식량 지원 요청 및 북대동양 조약기구에 가입한다 도움을 청한다. 고려에 피신가서 유학 중이던 아들 프리드리히에게 뒤늦게 편지를 보내서 왕위를 양도함을 유언으로 전한다. 또한 이 때 고려랑 친한 외교를 계속 하라고 하면서 자신은 이걸 어긴 것을 후회한다고 한다. 또한 부국강병을 이루라 하면서 오스트리아를 용서하고 포용하라는 내용 등도 유언장에 남긴다.
- 프리드리히 2세
원 역사의 프리드리히 대왕. 흔히 감자대왕이라 불리는 그 인물이다.
원 역사 처럼 부친에게 학대와도 같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어린 시절 모국을 찾아온 고려 황후이자 프리드리히 2세의 고모할머니 루이제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고려로 유학을 가는데 성공한다. 그 결과 부친의 뒤틀린 가정 교육과 훈육 대신 이상적인 가정이던 고려 황실의 보호를 받으며 평온한 유년생활을 지내게 된다. 이 때, 황제 해원과 황후 루이제의 배려를 받아서 황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생활하는데 다정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고려 황실의 모습에 "왜 내 성이 해씨가 아니라 호엔촐레른인가?"라고 한탄하면서 해원이 차라리 자신의 아버지였으면 하는 생각을 수없이 한다. 이 후 사관학교를 거쳐 교육을 받던 와중 터진 세계대전에서 부친인 프리드리히 1세가 죽게 되고, 그 뒤를 이어 프로이센으로 돌아와 왕위를 물려 받는다. 이후 유학하던 시절의 중학교 동창 인맥들을 끌어들였는데, 이들 모두가 고려에서도 상류층에 속하는 지식인들이었다보니 나라를 급성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친노동자 정책을 펼치는 등 나라를 개혁하는데, 아내인 마리아 테레지아도 우수하다보니 동군여합으로서 우수한 덕에 우수한 왕과 여왕 덕분에 도이치는 최전성기를 이루며 유럽의 최강국으로 자리 잡는다.
이 후 고려의 참전과 도움으로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되고 패전하게 된 오스트리아를 흡수하며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를 아내로 받아들이게 된다. 성적 지향은 원 역사에서도 그러했듯 동성애 기질이 있지만, 의외로 테레지아와 매우 잘 지내며 금술마저 좋다.
- 마리아 테레지아
원 역사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동일 인물. 허나 여기에서는 오스트리아가 패전국이 되면서 합스부르크 왕가가 몰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 후 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의 결합을 위해 프리드리히 2세와 동군연합으로서 결혼하게 된다.
어린 시절 빈에 잠입하여 황제를 협박했던 상민과 만났으며 그 과정에서 왕궁의 근위대가 상민 한 명에게 몰살당하고, 아버지가 협박당하는 충격적인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이 후 자신이 기억하는 '그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내기 위해 자료들을 모으고 마침내 고려의 시조이자 태조 해민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다. 이 후 어떠한 경위로 상민의 수족인 여의국과 연결이 닿게 되고, 이를 통해 상민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과거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상민의 모습을 보고, 불로불사의 그의 존재를 깨닫고 경외감을 느끼며 딸인 원 역사의 마리 앙두아네트[35]인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안나 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를 상민의 여자로 바치며(?) 후손들에게도 절대 고려와 대적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36]
5.9. 프랑스인
- 아드리안 양
고려계 프랑스인이자 전 궁정백이었던 양백현의 자손. 정여립의 제자로, 대동주의를 제시하며 농민봉기를 이끌었고 끝내 착취당하던 농민들을 규합해 세운 바이에른 농민공화국의 지도자가 된다. 이후 내부의 권력투쟁에 휘말려 암살당해 사망했고, 그의 사후 바이에른 혁명공화국은 몰락일로를 걸었다.
- 루이 13세
프랑스 왕국의 마지막 왕. 사치로 국고를 헛되이 탕진하며 여론이 나빠지자 압력에 못이겨 삼부회를 소집한다. 그러나 왕과 제1, 2신분이 야합한 삼부회는 공전하고 격분한 제3신분이 따로 떨어져나와 국민의회를 설치하려고 하자 창칼로 제압해버린다. 손쉬운 승리를 거둔 루이 13세는 삘받은 김에 채무불이행을 선언해버렸는데, 프랑스의 부채는 비단 제3신분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있었고 뜬금없는 디폴트 선언에 고려가 격분하여 추심전쟁을 일으킨다. 패전 끝에 일어난 혁명으로 탄핵당한 뒤, 유폐되었다가 탈출 시도에 실패하고 처형된다.
- 외젠 드 사보아카리냥
원역사의 프린츠 오이겐. 전 프랑스 국민의회 내 급진파의 수장이자 옛 프랑스 제1공화국의 통령. 혁명 성공 이후에도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클로드의 온건파를 몰아내고, 루이 13세를 처형시키며 공포 정치 노선을 걷는다. 통치과정에서 국가채권인 아시냐를 발급해 구 사회지배층의 재산을 운용했지만 무분별한 융통으로 채무가 늘어나자 경제가 파탄에 이르고, 이 땐 이미 4개국간 밀실동맹으로 미래의 조약국들과의 적대 구도가 잡혀 있었기에 고려가 가진 아시냐의 채무로 발발한 2차 추심전쟁은 거의 고려의 개입 명분으로 쓰였다. 또한 고려가 부르봉 왕가를 부활시킬 거라는 인식을 퍼트리며 독재자로서 권력을 유지했다가 막판엔 암살을 당하는 와중에도 최후는 혁명가답게 갔다지만, 그의 통치는 결국 그냥 또 다른 군주제에 불과하다고 학자들에게 대차게 까인다. 사후에도 모든 군주제의 수호자로 여겨진 고려에 의해 안정시킨 공화제가 제대로 역할을 하게 되어 비판 받는다.
- 클로드 드 빌라르
전 프랑스 국민의회 내 온건파의 수장. 외젠의 쿠데타로 인해 쫓겨나기 전까지 매입했던 막대한 양의 아시냐를 훗날 고려에게 판매하며 조력을 얻었다. 나바르 공국으로 피신한 뒤 프랑스 왕족을 입헌군주로 세우고 적법한 프랑스나바르 왕국을 주창한다. 외젠의 침공에 저항하다가 전사한다. 그렇지만 정당하게 선출된 정부였기에 고려에서는 클로드의 정부가 합법적인 정부고, 외젠의 정부를 공화제의 탈을 쓴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불법정권으로 여겼다.
- 사를 루이 드 세콩다
원역사의 몽테스키외. 프랑스나바르 왕국의 전 외무대신. 북대동양조약을 위해 고려로 간 사이 외젠이 나바르를 점령한다[37]. 프랑스 제2공화국의 첫 통령이 된다.
- 몽테스팡 후작부인
루이 13세의 정부. 보석 하나에 오백만명의 일급에 달하는 거금을 쏟는 사치를 부리는 등, 국고를 탕진할 뿐더러 인성도 별로인 악녀였으나 당시의 부정적인 평판에 불을 붙인 평원파의 선동과 날조[38]로 인해 처형당한다.
- 껑땅
파리 코뮌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공산주의자. 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젊은 시절 일터에서 혹사당하다가 바이에른 공화국 소속 간첩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대동계 2계로 거듭나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알자스 로렌의 노동자들을 이끈 3인 중 하나.
- 장 자크 루소
원 역사보다 훨씬 이른 나이부터 프랑스에서 생활했는지, 열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소년병으로 징집되어 전장에 섰다. 다만 그 때는 패전을 목전에 둔 대전쟁의 말엽이었고, 처음으로 실전투입된 고려군 전차의 위용과 전장의 참혹함에 크나큰 충격을 받는다. 이 경험으로 말미암아 훗날 반전주의 작품을 주로 집필하는 작가가 되었다.
- 에티엔 가브리엘 모렐리
대동계 3계라 할 수 있는 파리 코뮌 내 급진파. 프랑스에서 추방당하자 러시아로 향했으며, 혁명 끝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소비에트를 점령한다. 묘사되는 것은 그야말로 미치광이로 고려가 노동자를 탄압하지 않아서 혁명을 못한다며 증오하고, 잘 사는 노동자들을 배부른 돼지라 증오한다. 모렐리의 이런 모습을 두고 지나의 파시즘 사상의 시초인 진사당은 비록 배우지는 못했으나 타고난 안목으로 공산주의자들은 민중이 위대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래야 자신들이 위대해진다고 여기며 민중들을 결코 위대해지게 하지 않고 이용하려는 자들이라는 핵심을 파악해 지적한다.
- 볼테르
원역사의 볼테르. 프랑스 제2공화국의 통령 출신. 파리 코뮌 내에서도 메이블리로 대표되는 온건파는 노동당이란 타협책을 제시해 국민 의회로 흡수했지만, 모렐리로 대표되는 급진파는 결국 국외 추방했다.
- 앙투안 라부아지에
흔히들 아는 그 라부아지에 맞다.
원 역사에서 현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렸던 그 능력이 어디 가진 않았는지, 고려에 유학 한번 가본 적 없는 비(非)고려계 학자였음에도 질소고정법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는 대업적을 세운다.
5.10. 네덜란드인
- 빌럼 5세
네덜란드의 왕세자로 등장. 고려의 태자였던 해원과 프로이센[39]의 공주 루이제의 네덜란드의 왕궁에서 벌어지는 궁중무도회에서의 첫 만남과 연애를 해원의 절친한 친구로서 구경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이 때 이미 유부남이었지만, 해원과 빌럼 둘 다 장난기 가득한 쾌활한 미청년들이었다보니 여자들의 동경 어린 시선을 받는다.
이후로도 해원과 절친한 친구로서 각자 고려의 황제와 네덜란드의 국왕이 된 후에도 우정은 변치 않으며 전쟁 이후 세계의 문제를 정리하는 일도 옆에서 직접 들을 정도.
이때 해원은 친구인 빌럼에게 조만간 식민지를 해방시킬 것임을 미리 알려주어, 이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해둔 덕에 파푸아 섬을 그냥 독립시키는 것이 아닌 네덜란드 연방왕국으로 만들어 국왕이 6개월마다 네덜란드와 파푸아에 번갈아가며 거주하는 식으로 네덜란드-파푸아의 공동 국왕으로 자리잡는다.
양위한 후 상황이 된 해원의 방문을 친구로서 환대하나 그가 사실상 소련의 탄생을 예견하여 러시아에 대해 우려를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떠나는 해원에게 다음에는 적당히 양위해서 남은 여생을 즐겁게 놀며 즐기고 고려로 놀러오라는 제안을 듣는다.
5.11. 잉글랜드인
- 네드 러드
잉글랜드 공산혁명의 지도자. 원 역사의 러다이트 운동에서 유래된 인물이다. 본래 평범한 노동자 출신이었다가 억울하게 휘말린 경우였지만, 지도자가 된 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권력보다 잉글랜드인들의 행복을 우선시한다.
바뵈프의 광기를 우려하며, 공산주의자들의 행동이 이미 변질될대로 변질되어 제정의 폭압과 뭐가 다르냐 생각하고는 잉글랜드인들의 운명을 위해서 고려와 타협하려 하나 아내 샬럿의 배신으로 유폐된다.[40] 이후 고려군에 의해 구조되고, 샬럿을 향한 배신감[41]과 광기에 절망하고 한탄한다. 샬럿이 광기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 합리화속에서 죽은 후, 네드 러드를 따르는 계파들이 정권을 잡고 온건하고 안정적인 공산주의체제를 만들어나가 먹고 사는 문제는 없지만 그 대신 공산주의체제의 모순적 한계상 발전이 막혀서 중진국 상위권 수준의 GDP에서 막혀버리고 말았다.
- 샬럿
네드 러드의 아내. 원래부터 공산주의자였지만, 이후 바뵈프에 동조하여 세계전쟁을 일으키는데 왕정을 향한 증오를 표방하나 실상은 본인이 왕족처럼 살며, 당 간부들은 귀족처럼 굴고 있다. 윈저성을 중세시대의 낭비벽의 상징이라 생각해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정원 달린 작은 가옥에서 살려는 남편 네드 러드를 자식들 안위로 설득한 후, 윈저성을 왕정 시절보다 더 휘황찬란하게 꾸미고 본인이 독재자이자 여왕으로서 행세하고 있다.
또한 남편 네드 러드는 물론이고 네드 러드와 사이에서 본 아들과 딸까지 감금해버리며 유사시 이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려놨다.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서 잉글랜들인들의 목숨을 다 앗아갈 수 있는 악녀 중의 악녀로 민간인 학살까지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 직접 민간인 학살을 지시해 잉글랜드 군인들의 반감을 키운다.
아서 콜리와 불륜까지 저질렀었으며, 결국 체포되고 감옥에서 자신이 탄압한 혁명가 출신 여자에게 꼰대짓을 하면서 선민사상을 드러내다가 되레 여왕이라는 질타를 받고, 자신이 증오하던 왕정 자체가 됐음을 깨닫지만 이후에도 정신승리를 한다. 재판 후 처형된다.
5.12. 루테니아인
- 올가 드미트리예브나 류리크
루테니아의 초대 여왕이자 국모. 해방제 블라디미르 1세의 손녀이자 드미트리의 딸로 아들 이홍력이 멋대로 드미트리 일가를 죽이는 만행을 벌인 것에 충격을 먹은 이윤진이 올가를 믿을만한 수하에게 빼돌려 피신시켰다가 고려에 의해 구조됐다.
이후 고려에서 왕예의 후손도 아닌 제왕지손에 불과한 고려 방계 황족 해대헌과 결혼해서 딸만 셋을 낳았다.
어린 시절의 올가를 실제로 봤던 불가리아의 왕비인 옐레나[42]의 증언과 고려의 보증으로 혈통이 입증되어 루테니아의 여왕의 자리에 오르나 내부의 도전을 받게 되고, 스스로를 '키이우의 올가'라 칭하며 암살자의 머리통을 내던지는 압도적 카리스마로 이를 누르며 카리스마에 매료된 마초적인 반대파들이 도리어 충성을 맹세하게 된다.[43]
2차 세계대전에서도 상징적인 존재로서 소련에 맞서며, 루테니아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구심점이 됐다. 사후에도 루테니아 국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세계의 유명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 키릴로 라주모프스키
루테니아 지역의 코자키들의 우두머리인 헤트만(총사령관)이자 독립운동가였으며, 동시에 러시아의 백작이었다. 그러나 백작 작위는 노골적인 회유시도라 여겨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올가의 혈통과 정통성은 인정하나, 올가가 모스크바를 수복하면 키이우가 아닌 그곳을 중심지로 둘 거라 생각하며 편을 들지 않았지만 남편을 죽이려던 암살자들의 머리를 잘라서 내던지면서 경고를 보이는 올가의 카리스마와 키이우의 올가를 자처하는 그녀의 말에 매료되어서 영원히 키이우의 올가로 남을 것을 약속받자 충성을 맹세한다.
그 후, 손자를 올가의 장녀랑 혼인시켜 손자가 차기 국서의 자리를 약속받게 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 루테니아의 늙은 재상으로서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도 못함에도 키이우가 함락될 위기일 때, 최전선에서 함께 했던 올가에게 뒤를 맡기기 위해 피신시키고 마지막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한다. 루테니아인들에게 사후에도 존경받으며, 키이우의 올가라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고 하는 올가를 대견하고 감사하게 바라볼 정도로 루테니아에 대한 애정은 진심이었다.[44]
5.13. 지나인
- 류용
원 역사의 유용. 갓난아기 시절, 태평천국 토벌을 명분으로 무창 대학살을 저지른 프랑스,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3국의 만행에 반감을 품은 네덜란드 총사령관 요한 바이난드 반 구르에게 부모를 잃고 홀로 남겨졌던 것을 거두어졌고, 아들인 마르코에게도 류용을 후원해주라고 하였기에 소년기를 편안하게 보냈었다고 한다.
지나인이지만, 대부분 지나인과 고려인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고려인인척 살아갈 수도 있었고 네덜란드 대학인 레이던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다양한 학문을 배우고 네덜란드인 여성과 결혼하면서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혈통을 잊지 않았기에 명나라로 돌아가서 석암(石庵) 선생이라 불리고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만들어 개혁을 하려고 한다. 순수하고 이상적이며, 선인이자 지나의 마지막 희망이었으나 결국 기윤이 보낸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당하고 그의 이름은 파시스트들에게 악용당하게 된다.[45]
순수한 이상주의자인 그의 모습에 상민도 그의 죽음을 예지하고 있었던 탓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순수한 그의 이상과 달리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을 악의 소굴인 중화민국의 갭을 인지하기에 그를 적극 살리려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상민이 선물로 준 발화갑(라이터)이 암살자의 총격을 한 번은 막아줬지만 연이서 쏘아진 총격에 이마를 노린 세 번째 총격을 가슴팍에 있던 발화갑이 막아주지 못한 탓에 사망했었다.
- 기윤
원 역사와 달리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고 중국 공산당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러나 점점 권력에 눈이 멀어가며 순수한 이상이 있던 초기와 달리 류용의 영향력을 질투하여 류용의 중화민국이 통일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암살자를 보내 류용을 암살한다. 소련의 모렐리와 서로의 생각을 알면서 싫어했는데, 정작 본래 목적인 노동자들을 위하는 생각은 조금도 없이 피에 미쳐있다고 할 정도로 잔인하고 과격한 것은 같지만 어떠한 수준의 차별 자체가 없게 하려는 모렐리와 달리 기윤은 외세에 배타적인 중화사상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류용을 죽인 탓에 벌어진 혼란 속에서 권력을 잡고 중화8제국을 세운 습진균이 독가스를 이용하며 공격해온 탓에 대패하여 내부는 습진균과 같은 중화사상 + 파시즘적 우월주의자임에도 유목-멘셰비키로 취급당하며 사살당한다.
- 이소청
류용의 중화민국이 중원 패권의 유력한 후보가 되었을 때, 섬서, 산서, 사천을 기반으로 두고 있던 중국대륙 서쪽의 군벌. 쫓겨 내려온 옥저 반군의 우두머리 이홍력을 살해하고 그 무리들을 흡수했다. 땅에 묻은 이홍력의 시신이 파헤쳐지고 목이 잘려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지만 미친놈 소행으로 흘려 넘긴다.
- 진사당
태평천국의 동왕(東王)으로 습진균의 스승. 태평천국이 소멸하고 포로로 잡힌 뒤, 습진균에게 그릇된 사상을 주입해 악의 권화로 자라나게 만든 장본인.
- 습진균(시진진)
악의 탄생으로 등장한 인물로 사실상 중화판 히틀러. 파시즘대신 중화사상을 주장하며 유대-볼셰비키나 배후중상설 대신 유목-멘셰비키를 적대시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리며 개성에서 민간인들을 독가스로 10만명을 살해하며, 유목-멘셰비키라는 소련과 손을 잡고 조선을 침략한다.
- 낭화신
- 당규삼
독가스로 생체실험을 하며 사람들을 죽이는 사이코패스.
- 시청
습진균의 딸이지만 상민이 거두어 길러 뛰어난 인재로 자라 12번째 사도 자리까지 올라간다. 상민이 승천하지 못하도록 그의 배우자들을 클론으로 부활시킨다는 계획을 저질러버린다.
6. 개변된 역사
많은 나라들이 삼별초의 부재부터 시작해 고려의 영향까지 합쳐지며 수많은 나비효과를 거쳐 원래의 역사와 달라졌다. 다만 상민이 현대에 있을 때 게임 옵션을 설정한 영향으로 역사적 주요 인물들은 달라진 역사에 상관없이 등장하고 있다.6.1. 예맥한계 국가
현실의 한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 동북아시아를 뿌리를 두고 고조선, 고려(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내세우고 있다. 고려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17세기에 이미 세계에서 잘 나가는 열강 국가로 취급되고 있으며 조선, 옥저, 백제 모두 상당한 군사력이나 국력을 가진 열강이며 배후에 있는 고려는 아예 세계 질서의 수호자로 여겨지며 유럽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위치에 예맥한계가 서있다고 여긴다.- 고려
한반도에 있던 개성을 수도로 한 고려와는 다른 남미에 새롭게 세워진 고려. 국성의 "해씨" 이전의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해씨 고려와 왕씨 고려로 나눈다.[46] 유럽권과의 첫 대면 때부터 엄청난 국력과 군사력으로 충격을 안겨줬고, 이 구도는 이후에도 깨지지 않고 지속되어 결국 전 세계 만방이 동경의 대상으로 여기는 극초강대국이 된다. 자세한 내용은 고려(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 문서 참고.
- 조선
삼별초가 사라진 이후로는 크게 역사가 바뀌지 않았으나, 조선 초에 이르러 고려가 조선과 접촉하며 역사가 크게 틀어지게 된다. 양녕대군이 그대로 왕위에 오르고, 원래 세종대왕이 되었어야 할 이도는 고려로 배를 타서 떠나 고려 제일의 학자로 명성을 떨치며 상서령[47]이자 황제의 장인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세종대왕 이도 대신 왕위에 오른 양녕대군은 만주의 일부를 수복하는 등 평타는 쳤지만 손자 때부터 서서히 암군이 등장하며 망조가 들기 시작했고, 병인몽란이라는 몽골의 침략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고려가 몽골군을 대파하며 조선을 구원하며 재조지은을 새겨주며 이후 고려를 상국으로 섬기게 된다. 그러다가 경신대기근 당시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완전한 친고려 문화가 정착한다.[48] 이후 조선 왕실은 가뭄으로 인한 입지 타격을 피하기 위해서 결국은 계속해서 거부하던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였다.[49]
영토 변화가 조금 있는데 한반도에 속하는 함경도는 옥저에게 넘겨줬지만 대신 요동과 요서, 그리고 필리핀 북부인 루손 섬을 소유하고 있는 등 훗날 동아시아 최대 지역강국이 될 자질을 갖게 된다. 17세기 현재 예맥한계 국가 중 하나로서 열강의 일원으로 위치하고 있다. 명나라의 허약함에 언제든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여 화북을 점령하고 싶었지만, 고려에서 황제의 뜻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제지하고 있어서 억지로 참고 있다.
고려가 북려대륙에서 확장할 때 조선 유민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부족한 예맥한계 인구를 보충하고 있으며, 이 유민들이 고려에 자국 사정을 전하면서 몽골 원정에 대한 요구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조선 조정은 인구 유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재조지은을 베풀어 주신 상국에게 감히 대들지는 못하고, 고려에서 퍼주는 지원도 쏠쏠하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유럽에서 벌어진 대전쟁이 끝났을 무렵, 조선은 일단 아시아에서는 최강국에 속하며 유럽 기준으로 봐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인구도 많고, 사람이 살기 좋은 땅들을 보유한데다가 개성이 고려령인 덕분에 개성을 통해서 고려의 최신 문물들을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덕분에 인구 규모만이 아니라 산업과 발전도, 그리고 군사력까지 모두 갖춰 동아시아 최대 지역강국이 될 자질이 벌써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18세기 후반대를 기준으로 하여 도이치와 더불어서 세계 2위를 다투는 강대국이 됐다. 그러나 사회 전체에 군인들을 업신여기는 풍조가 만연해 있고[50], 위정자들은 낙관주의가 지나쳐 무사안일에 젖어있으며, 각계각층의 부정부패와 부조리도 심각하다. 당시 개성에서 근무했던 에런 버가 조선을 두고 말하기를, 잘 사는 나라긴 한데 나라에 도둑놈들이 너무 많다고 평했다. 원역사의 삼정의 문란이 적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부정부패는 방산분야 전반에 스며들어 있어, 이후 전쟁 때 그 대가를 치르고 압록강에서 방어전을 치렀어야 했다. 그러나 워낙 강대국이라 기본 산업력이 다르기에 초반의 굴욕을 제외하면 압도적인 산업력과 경제력으로 막강한 전력을 보여주었으며, 내부의 부패를 일소한 후에는 피해복구도 순식간이었다.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국토에서 기이할 정도로 인재가 많이 나오지만 정작 그 인재들은 조선을 떠나 타국(특히 고려)으로 이민을 떠나는 경우가 부지기수. 고려의 외인부대에도 조선인 출신 지원자가 굉장히 많이 몰린다고 한다. 실제로 작중 내용을 보면 원 역사 조선의 유능한 위인들의 대다수가 조선이 아닌 고려 국적으로 등장한다. 고려와 말과 글이 통하고 문화도 같은 뿌리다보니 이민에 필요한 것이라고는 능력 정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육열은 그대로인지 조선의 한양대학은 국제적으로 알아주는 대학 중 하나로 여겨진다고 한다.
- 옥저
반역자로 몰려 죽은 이징옥의 손자 이자윤이 고려의 지원을 받아서 건국한 나라로 예맥한계 국가 중 하나. 입헌군주제이며, 뿌리는 같으나 왕실의 관계가 심하게 험악하여 조선과는 라이벌 관계이다. 여진족들이 대규모로 소속되어 있으며 원 역사의 청나라 황실은 여러 번 재상을 반복한 옥저 최고의 권력가로 있다. 유목민들이 주축이 된 국가답게 기병이 유명하고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해 열강 중 하나에 속하지만, 유목민족적 과감성 때문에 은근히 사고를 많이 치는지라 고려에선 조선을 좀 더 높이 쳐주는 경향이 있다. 영토는 만주와 시베리아 일대로, 해외 영토가 없고 인구도 적다. 이 때문에 태생적으로 기형적인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가 될 수밖에 없고 무역 제재나 투기자본 등의 경제적 공격에 극도로 취약하다.
몽골을 합병하고 시베리아 동부까지 진격해 고려에서 '옥저가 지도에 색칠놀이하는 재미에 빠졌다'고 할 정도로 영토를 확장했다. 이후 몽골은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하였으나,[51] 여전히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며 수많은 자원 덕분에 적은 인구수에도 고려를 제외할 경우,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에 속하게 됐다고 한다.
- 남왜 → 백제
삼별초가 없어져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이 반 년 빨라지자 카미카제를 맞지 않고 성공[52], 일본열도가 남왜와 북왜로 동강난다.[53] 오우치 가문은 남왜의 쇼군으로 활동하다가[54] 약 200년 뒤, 오우치 가문이 고려에 입조하고 지원을 받아 쇼군 오우치 요시오키가 부여 씨로 성을 바꿔[55] 부여의흥이란 이름으 세운 나라로 예맥한계 국가 중 하나. 입헌군주제를 채택했으며 열강 중 하나로 취급되고 있으나 내부 갈등이 매우 심각한 듯하다. 해적 토벌을 성실히 한 공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보르네오를 백제 영토로 인정받았다. 일본의 서쪽을 지배하고 있으며 남은 일본의 절반을 지배하는 강화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규슈, 시고쿠, 혼슈 서부를 점유하고 있다. 강화 출신 고려 황후가 정치적으로 자폭한 뒤 백제 출신의 후궁의 아들이 차기 황권을 가질 황태자가 되어 대박이 터졌다. 사실 고려는 외가라고 더 뭘 해주진 않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하고 특히 강화의 영향력을 고려황실에서 지워버려서 백제 입장에선 즐거운 일이다.
18세기 후반 기준으로 군대의 경험과 기세 등의 정예도는 동아시아 예맥한 3국 중에 가장 낫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이가 안 좋은 강화와 상시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군대에 소홀할 수 없었던 듯. 하지만 국가의 체급이 작기 때문에 그 숫자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한다.
2차 대전 이후 강화를 흡수통일하였는데, 장기적인 포텐셜만 보면 현대의 일본보다도 높아[56] 세계적 강대국 중 하나로 남았지만 단기적으로는 강화의 떨어지는 경제력과 사회문화를 수습하느라 상당히 고생을 했다고 한다. 현대에는 만화영화가 유명하다고 한다.
6.2. 아시아
- 북왜 → 강화 → 대화(야마토)
도쿠가와 가문이 다스리는 나라. 여몽원정군에 굴복한 천황을 비난하고 쫒아내면서 세워진 북왜로써, 몽골군이 떠난 이후 남왜를 몰아붙였으나 몽골군을 지원받은 남왜에게 다시 밀려나버리자 아예 자기도 몽골에 입조해버렸다. 대신 여전히 외왕내제를 하며 천황을 지칭하고, 교토에서 에도로 천도한다.[57] 외부의 침입인 여몽원정의 충격으로 인해 민족감정에 더 일찍 눈을 떴다. 남왜가 백제로 이름을 바꾸고 예맥한계로 민족 정체성을 바꾼 반면, 고유의 야마토 민족성을 내세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조-명 전쟁을 일으킨 명나라의 주익상과 동맹을 맺고 백제를 침공한다.[58] 초반에는 나름 선방했으나, 지원 온 고려군의 작렬탄 포격에 도쿄가 불타오르고 천황 일가가 폭사하여 시체도 못건지는 사태가 벌어지면서[59] 백제와 휴전한다. 정신적 지주인 천황 일가를 죽여버렸다는 것에 당황한 고려군이 뒤늦게 조의를 표했으나 반고려 감정이 치솟았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아예 철저하게 초토화시킬까 고민하다가고려 해군 소속의 덕천신강[60]을 지원하여 도쿠가와 가문의 북왜 정권 장악을 돕는다. 이후에 덕천신강이 쇼군이 되어 강화로 국명을 바꾸고 고려에 패권을 인정한다.[61]
이탈리아의 식민지인 해남도를 명나라가 탈환하려고 할 때, 협력했다가 오랜 동맹인 명나라를 뒷통수 치고 해남도를 빼앗으며 섬나라 혐성국 이미지를 다시 보여줬다.[62] 심지어 야쿠자의 세력이 강해지며 해남도에서 아편을 대량 재배,유통하고 있다. 마약을 극혐하는 고려가 노려보는 중. 고려의 패권을 인정하고 있어서 태평양 방면으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지만 원 역사의 일본처럼 국력을 투사하려는 욕망이 강하다. 고려의 현 황후가 강화 출신인 것과 작중 열강들과 동일한 위치에 서있던 것을 보면 유럽 대전쟁 이전에 어떻게든 열강의 반열에 올라가는데 성공했다.[63] 다만 17세기에 들어 범죄집단의 확산과 극단주의 사상이 퍼지면서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황이며 이 나비효과로 인해 고려로 시집간 황후가 무리수를 두게 했으며 고려의 후계문제를 일으킬 뻔 했다. 덕천왕조의 시조가 고려에서 사사했고 오랜시간 고려와 밀접한 관계를 지녔고 고려황후까지 배출했으나 잉글랜드처럼 신뢰하기 어려운 섬나라로 여겨지고 있으며 실제 제국 외교등급에서도 둘 다 최하위인 5등급이다.
18세기 후반부 들어서는 야마토주의(대화주의)라는 극단주의 사상을 내세운 마쓰다이라 타카타케가 결국 실권을 장악하고, 도쿠가와 가문은 완전히 뒷방 늙은이로 전락했다. 국명까지 강화에서 대화(야마토)로 바뀌었다. 습진균을 경솔하게 돕다가 대전 초기 어이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고려에게 패배했는데, 할 일이 많았던 고려는 귀찮아져서 백제에게 떠넘겼다. 백제는 이를 통일의 기회로 생각하여 흡수 통일을 하려고 했다가, 백제와 강화 양쪽의 반발심을 우려해 일단 이중군주국이 되기로 하여 현실의 오-헝 제국처럼 백제-강화 왕국이 되었는데, 실제로는 백제에게 흡수 통일된 것과 다름없다고 보여진다.[64]
- 명나라
작중 공인 호구 국가. 겉모습만 고려인 등 예맥한계와 비슷할 뿐, 야만스러운 미개인들로 취급되고 있으며 멸망전까지도 뜯어먹기 좋고, 만만한 샌드백으로 여겨지고 있었다.[65]
물론 처음부터 호구는 아니었다. 병인몽란 때 전쟁터에서까지 연회를 벌이다 포로로 잡혔다가 생환하고 대오각성한 주우철의 대[66]에는 대외관계도 나름 깔끔하게 정립하고 내부정리도 정력적으로 하는 등 장차 세계 열강으로 발돋움할 저력이 충만했다. 그러나 1600년대 초반에 당대 황제 주익상이 아시아의 패권을 노리고 대전쟁을 일으켰다가 완전히 참패[67]한 뒤로 국운이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수습하지 못했다.[68]
중화사상에 빠져있지만 이미 내부에서도 천명을 잃은 거 아니냐는 말이 오가며, 유럽 국가와 예맥한계 국가들로 이뤄진 열강들에게 이권을 골고루 뜯어먹히고 있었다. 이를 두고 양동이라[69] 부르며 증오하지만, 고려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 자제를 하는 예맥한계 국가보다[70] 생김새도 다르고, 하는 짓은 더욱 악랄한 유럽 열강들을 더 미워한다.[71][72] 개중에서도 현실감각이 있는 지식인들은 세계 정세도 얼추 알고 있고 고려를 군자의 나라라 생각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런 식자들은 한 줌도 채 되지 않고, 중화사상과 한족우월주의 사상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절대다수는 자신들이 세계적으로 야만스러운 미개국 취급을 받고 있다는 현실도 인지하지 못한다.
멸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세워져 준동하면 귀찮아진다는 고려의 속내 때문에 진작에 망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꼬라지로 제법 오래 존속했지만, 태평천국의 난이 벌어진 와중에 황제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그 아들들이 내분과 암살로 죽으며 황제의 직계혈통이 사라지자 국가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 고려가 어떻게 다시 손을 쓸 겨를도 없이 멸망하고 만다.[73][74] 그 후 수많은 군벌들이 사방에서 난립하며 다시 춘추전국시대가 열려버렸다.
- 중화제8제국
습진균이 황전겸을 독살하고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정권을 장악한 뒤, 그 국명을 바꾸며 새로이 세운 국가. 어원은 중화의 땅에서 일어난 여덟 번째 제국[75]이라는 뜻이다. 작중에서는 주로 중화제국이라고 줄여 부른다.
뛰어난 생화학자인 당규삼이 개발한 생화학무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지지부진했던 국공내전을 1년만에 종식시켰다. 때문에 반공을 내세워 초반 대외적 이미지와 국제외교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저렴한 인건비와 기업 보호를 보장하며 외국들의 공장과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유치했으며[76],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닥치는대로 기술을 빼돌리고 있다.[77]
대총통인 습진균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개인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전체주의 사회이며, 반공사상과 함께 유목민 음모론[78], 한족 우월주의를 내세워 명말 혼란기에 지치고 열등감을 느끼던 중국인들에게 광신적인 지지를 받았다. 유목-멘셰비키(...)에 대한 강제수용소와 학살을 저지르다 고려에 도움을 청하러 간 몽골의 엠케바토르의 손녀가 고려 황제와 결혼한 것을 공개비난하는 것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전쟁준비에 들어갔으며, 소련과 동맹을 맺고 고려령 개성과 탐라를 공습하여[79]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나치 독일을 능가하는 광기를 보여주다가 고려의 핵공격을 자초하여 멸망했다.[80]
전후 전범국으로써 9개국으로 분할(사실상 분열)[81]되었으며, 세계적으로 '중화'라는 단어는 원역사의 '나치'와 비슷한 악의 상징이 되었다. 패전 후 드러난 전쟁 범죄들에 더해, 핵과 탄저균 등으로 내륙 교통의 중심인 호북성 일대가 오염되어 거주 불가 지역이 되버렸고, 국제연합군을 막기 위해 습진균이 명령한 황하 제방 폭파에 엄청난 민간 피해가 발생하여 한족우월주의에 차별받았던 화북[82]을 포함한 북부 지방의 민심이 완전히 등을 돌리고 한족 사상 자체에 질려버리게 되면서 향후로도 중국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기 어렵게 된 상태다.
- 주나라
원역사대로 장사성이 세운 나라. 주원장의 명나라보다 풍요로운 곳에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밀리다가 결국 대만까지 쫓겨나고 말았다.
명나라가 엉망이 되면서 무너지는 동안, 친고려 노선을 택한 덕분에 고려의 환태평양 경제협력기구.[83]에 참가하기도 하는 등 그럭저럭 잘 나가고 있다. 제국 황제에게 봉선하여 중화의 천명을 거머쥘 것을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화제국이 무너진 이후 대만해협에 가까운 복건성의 대부분을 받게 되어 영토가 확장되었으나, 대만섬에서 살던 이들은 이미 선진국 국민으로서 개개인은 예맥한 삼국 못지않게 부유했고[84], 그에 비해서 복건성의 한족들은 주나라 본토인 대만섬과 달리 가난한 빈민들이 많다보니 사회적 갈등이 심해졌기에 30년간 고생했다고 한다. 일단 한족 국가이긴 하나, 대만섬 한정으로 따질 경우, 유일한 선진국인 한족 국가인 셈.
- 동남아시아
고려의 패권에 따라서 열강들이 원하는 대로 나뉘게 되었다. 여러조각으로 나뉘었던 인도네시아는 독립하며 누산타라 연방으로 합쳐졌으나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파푸아 섬은 네덜란드 국왕이 파푸아의 국왕도 겸하는 동군연합 형태로 재탄생하게 됐다. 그나마 브루나이가 현실보다 더 큰 영토를 지니게 된 점이 다르다. 필리핀은 북부의 루손이 조선령, 남부의 마간다나오 제도가 고려령이 되었다. 인도차이나의 경우 명나라 말기에 운남성 일부가 대리국으로 독립했다. 본작에서는 주요 사건에서 벗어나 있어서 잘 언급도 되지 않는다.
- 몽골
초반에는 고려가 타도해야 할 숙적이며, 고려와 러시아에 과거에 치욕을 안겨준 흑역사로서 언급된다. 그러나 옥저에게 합병될 정도로 몰락했으며, 옥저의 타협안을 왜곡적으로 해석하여[85] 무력투쟁을 벌여 옥저가 견디다 못해 질려서 중화8제국에 몽골을 넘기게 만들어버렸다. 이에 몽골인들은 처음에 좋아했으나, 중화8제국의 대학살을 당하게 되고 황금씨족의 생존자 엔케바토르가 아들의 희생으로 겨우 탈출하여 고려로 향해 처절한 모습으로 도움을 요청하며 손녀가 고려의 황후가 된다.[86]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립하여 예맥한의 지원으로 성세를 이루게 됐다고 한다.
6.3. 유럽
- 네덜란드
부르고뉴 공국시절 잉글랜드에서 왕비를 모시고 탈출한 김홍이 마리와 결혼한 이후 친고려 국가가 되었다. 네덜란드의 왕세자는 고려의 황태자이던 시절의 해원과 절친이기도 했을 정도로 친고려 국가이며, 덕분에 고려의 황태자비를 뽑는 무도회가 네덜란드에서 열리기도 했다.[87] 친고려 국가 중에서도 에이레와 더불어서 유럽의 핵심 동맹국으로 취급되며 큰 우대를 받는다.
네덜란드의 가장 오래된 대학인 레이던 대학교은 네덜란드의 왕공족들도 흔하게 다니는데다가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와 바뤼흐 스피노자의 출신 대학이기도 하며, 여기 세계에서도 유럽 제일의 대학 중 하나로 취급된다. 류용 역시 레이던 대학에서 많은 학문을 배웠다.
네덜란드의 파푸아령인 파푸아네덜란드는 아발론(호주)과 더불어서 대동양의 패자라고 한다. 또한 네덜란드의 왕은 6개월은 네덜란드에서, 나머지 6개월은 파푸아네덜란드에서 지내며 양국의 공동 왕으로서 지내는 의무가 이어지고 있다.[88]
- 도이치
원역사의 독일 내지는 프로이센에 해당한다. 고려 황실과 국혼 이후 사국동맹에 둘러 싸여 맹공을 당했으나 승전 후 오스트리아를 혼인으로 합병하는 등 사실상 유럽 최대 강국이 되었다. 앞으로 유럽 지역의 패권은 도이치가 쥔다고 평가될 정도로 지역강국이 됐다.[89] 산업력 역시 고려의 지원을 받은 전통 강국인 에이레와 네덜란드마저 능가해버렸고, 조선과 더불어서 세계 2위를 다투는 강대국이 됐으며 역사상 유례없는 전성기에 도이치인들 모두가 국가적 자부심에 차있다고 한다.[90] 다만, 사회 분위기가 지나치게 경직되고 보수적이라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두번째 대전쟁이 시작되면서 오랜 경쟁자인 조선을 제치고 단독 2위 자리를 굳혀가는 듯하다. 심각한 부패와 비리에 시달리는 조선과는 달리, 프리드리히와 테레지아의 치세에 국가 체질을 제대로 확실하게 개선했고[91], 이후에도 별다른 실정 없이 그 기조를 제대로 유지했기 때문. 곧 벌어질 소련과의 전쟁에서 처음에는 고전했지만, 이내 유능한 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밀어붙이며 1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압도적인 보급량으로 소련을 압도한다.[92] 전후에 유럽연합을 창설하는데, 유럽의 2인자 프랑스와 경쟁관계에 들어서게 된다.[93] 세계 경제 3위의 강대국으로 2위인 조선과 근소한 차이로 경쟁하고 있다.
- 이탈리아
보르자 가문이 몰락하지 않고[94] 대권을 쥐면서 원 역사보다 훨씬 빠르게 통일 왕조가 출범했다.[95] 루크레치아를 고려에 보내 국혼을 맺으며 우호관계를 다졌고, 고려 뿐만이 아닌 여러 타국의 학풍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교류하면서 문화적으로 크게 융성했다. 한때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산업혁명의 제2주자 등의 수식어가 붙었을 만큼 정말 잘 나갔다.
덕분에 국제무대에서도 일찍부터 열강으로 통했지만, 4국동맹이 일으킨 대전쟁에서 열강답지 않게 약한 모습을 보이며 망신살을 거하게 뻗쳤다. 해군의 경우엔 체급과 내실 양쪽 다 상대적으로 크게 우위인 베네치아 해군을 맞아 싸워서 어쩔 도리 없이 패배한 것이지만, 육군은 그냥 답이 없다.
여담으로 파스타 애호가들이다. 심지어 전쟁 직전에도 고려산 무기보다는 고려산 면 양념용인 토마토 통조림을 구매하는데 더 열중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싸움은 못해도 요리는 잘한다는 편견이 박혀있지만, 그래도 유럽의 경제강국 중 하나로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 불가리아
독립하면서 고려인 아센재웅을 새로운 왕으로 옹립했다. 건국 초기에는 러시아의 봉신국으로 조용히 지냈으나 사국동맹 전쟁이 발발하자 과도한 요구를 하는 러시아 대신 고려의 편에 선다. 이때 지원군이 올때까지 세계 제2의 패권국이라는 러시아의 진군을 혼자서 저지하는데 성공하면서 세상에 저력을 알림과 동시에 일개 불가리아조차 뚫지 못하는 러시아의 실상을 까발려버렸다. 체급은 작지만 내실이 튼튼한 국가로 통한다. 요구르트가 유명하고, 1차대전 후에는 아이작 겹빵의 1호 해외지점 국가[96]가 되었다.
- 그리스
불가리아와 같이 독립하였다. 불가리아처럼 새로운 왕을 옹립할 때 로마의 후예인 해원을 섬기려고 난리를 피웠다. 고려는 이러한 행동을 무임승차로 생각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난 후에는 국가 단위로 자기세뇌를 끝맞쳐 정말로 자신들이 고려의 일부라고 여기게 되었고[97], 작중 웃음벨 포지션을 가져갔다.
그러다가 막판에 열강들에게 고려가 안보를 담당해줄텐데 무슨 군사력이 필요하냐고, 모두 안보를 고려에게 떠넘기자는 발언을 하면서 고려의 대사가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98]
- 포르투갈
처음에는 고려와 희망곶 조약[99]을 맺으며 나름 협력적이었지만[100], 결국 이익 충돌로 고려와 목화전쟁을 벌였다가 패배하고 해상 패권을 잃으면서 천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대표적인 반고려 국가중 하나였으나 사국동맹 전쟁 당시 베네치아에 주문하고 대금까지 지불했던 전함을 베네치아가 양도를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압류한 것에 분노해 중립을 지켜 살아남는다. 이후 리스본 대지진으로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고려의 대규모 지원을 받고 이어서 고려에 의한 영향력으로 유럽 각국에서도 뒤늦게 지원들을 보내면서 친고려 국가로 돌아서고 유럽 전체에 인본주의의 상징이 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도 친고려로 전환한 덕에 사회적으로 안정이 되고 많은 발전을 이뤘기에 공산주의자들에게 함락되지 않았다. 전후에도 선진국에 속한다.
6.4. 알비온 연합
원역사의 영국에 해당한다. 대영제국으로 통일되지 못하고 3개국 연합을 이루고 있으며 유럽의 친 고려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나하나로는 프랑스나 도이치에 견주기는 부족했지만, 알비온 연합으로 뭉칠 경우 프랑스에 비해서는 크게 꿀리지 않는 듯. 잉글랜드가 공산화되어서 현재 해체된 상태다.- 잉글랜드
왕가에 고려 황족의 피가 흐르고는 있지만, 친고려 국가이면서도 통수를 잘 치는 혐성국 이미지가 강하다. 고려에 강화와 더불어서 잉글랜드를 두고 섬나라 족속은 믿을 게 못 된다. 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주 원인. 그렇지만 일단 친고려 국가인지라 호주의 서쪽 부분을 소유하고 알비온 연합의 맹주격으로 잘 나가고 있다. 왕실에 쌍용지손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러나 고위층들의 내부 부패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으며, 그 탓에 공산주의 세력이 준동하는데다가 고려의 뒷통수를 치고 강화처럼 고려에게 금을 대규모로 교환을 요구한 탓에 고려에게 배신자로 찍히게 됐다. 대침체 시기 과도하게 노동자를 탄압하여 공산혁명이 터졌고, 왕가는 뉴펀들랜드(호주의 서부)로 피신했다. 2차 대전중 유럽에서 고려를 적대했지만 지정학적으로 고립되었고 결국 패배하였다. 다만 공산주의의 모순성을 스스로 드러내게 할 목적으로 국체는 존속한다. 네드 러드 계파는 타락하지 않은 순수한 이념으로 어느 정도 경제를 회복시켰지만, 공산주의의 모순성 때문에 성장의 한계에 가로막혀버린다.[101]
- 에이레
원역사의 아일랜드.[102] 고려의 도움으로 독립에 성공하고, 고려와 함께 잉글랜드와 싸운 대표적인 친고려 국가이며, 그 대가로 호주 동쪽을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악연이 깊은 잉글랜드와 느슨한 연합인 알비온 연합을 만드는 데 동의하고 협력하고 있다. 고려의 유럽 동맹국 중에서 네덜란드와 더불어서 고려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우선보호국이다. 심지어 고립주의자들조차도 에이레와 네덜란드만 보호하면 되지 않냐고 할 정도로 에이레와 네덜란드에 대한 보호는 고려인이라면 누구나 당연시 하고 있는 모습. 유럽 국가들 중 1인당 GDP는 최상위에 속하며, 본토보다 해외영토가 더 크고 경제력도 강한 탓에 따로 분리되어 평가되기는 하지만 일단 호주(아발론) 역시 에이레령이다.
- 스코틀랜드
스카치 위스키 외에는 내세울 게 없다고 작중 평가되는 인지도 0의 국가. 위인들을 고려한테 뺏겼다.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이전에 잉글랜드처럼 노동계층을 착취하여 공산혁명이 발생할 뻔했다. 대전중에 잉글랜드에게 압도되었고 이후에 고려의 개입으로 영토를 되찾았지만 고려정부의 경고를 듣는 처지가 된다.
- 아발론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 국가. 에이레의 속령이며, 호주 서쪽인 잉글랜드령 뉴펀들랜드와 호주 동쪽인 에이레령 누아 에린이 합쳐져서 현실 호주와 동일한 영토를 지닌다. 잉글랜드의 공산화로 인해 뉴펀들랜드로 피신한 잉글랜드 공주가 에이레 왕자와의 혼인을 통해 합쳐진 것으로 나온다. 일단 에이레령이지만 잉글랜드와 동군연합을 하고, 뉴펀들랜드 지역의 사람들은 잉글랜드 본토의 보수적인 성향과 달리 개방적이라 피신을 온 잉글랜드인들도 자신들의 처지와 이에 대한 영향을 받았는지 충돌이 벌어지지 않게 조심한듯 하여 대동양의 패자로 군림하게 됐다. 오히려 잉글랜드 상류층이 가져온 문화로 인해서 아발론의 문화가 급격히 발전하고, 잉글랜드의 화려한 문화와 더불어서 잉글랜드 왕가도 에이레와 동군연합이긴 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6.5. 사국동맹
고려의 패권에 도전하는 유럽국가 동맹. 러시아, 프랑스, 베네치아, 오스트리아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 역사의 1차 대전 패전국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103]
반고려 국가들의 우두머리. 세계 제이의 제국을 자처하고 있다. 로마노프 왕조가 생긴 것과 달리 류리크 왕조가 고려인 의사의 치료로 인해서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 동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 고려로 가지 않는 유민들이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로 많이 갔다. 그래서 고려 황실과 친밀하게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허상에 불과했던 세계 제이의 제국이라는 이름에 취해 고려를 누르고 세계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러시아의 정신 나간 야망에 의해 전쟁이 발발하고[104] 의외로 불가리아에게 발목이 잡히기 시작하더니 고려의 개입이 시작되자 밀리기 시작한다. 결국 전쟁에서 패배해 영토가 갈가리 찢겨져 나가고 말았다. 덕분에 유럽 지식인들에게는 고려의 진짜 제국의 위용을 알리게 됐다.
결국 왕실은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방이 되어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를 건국했다. 2차 대전 시기에 폴란드까지는 신속하게 점령했지만 도이치, 프랑스 등 대동양 조약기구의 개입으로 결국 패배해고 해체되어 핀란드와 루테니아에게 일부 영토를 떼어주고 나머지 영토에는 폴로츠크 공국, 노브고로드 인민공화국, 블라디미르-카잔 인민공화국, 아스트라한, 알라니야, 시비르가 세워지게 된다. 이 중 공산주의를 표방한 두 인민공화국은 공산주의 특유의 내부 모순 때문인지 처참하게 몰락했고, 러시아의 류리크 왕조는 루테니아에서 이어지게 된다.
- 프랑스
초반부터 고려와 엮여서 피해를 보기 시작했다. 와인품평회에서 고려에게 지고 고려의 포도나무 밀수 과정에서 벌레까지 유입되는 바람에 프랑스 와인 산업이 망해버렸다.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다가 빡친 고려에게 추심전쟁으로 두들겨 맞고는 식민지를 빼앗겼다. 결국 본래 역사처럼 혁명이 일어나고 외젠을 국가원수로 하는 공화정을 수립했다. 고려와의 지속적인 마찰을 빚었고 결국 사국동맹 소속으로 전쟁을 시작했다. 참호전으로 버텼지만 전차를 투입해 공격한 고려군에게 포위되고 패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심지어 이 사국동맹을 맺고 전쟁을 시작한 이유가 고려는 황제의 지배를 받는 국가이므로 당연히 부르봉 왕가를 복위시키려 할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었으나, 고려는 빚만 잘 갚아주면 내정간섭 안 한다라는 입장이었기에 후에 항복하려던 프랑스 측 인물들이 이를 알고는 허탈해하는 장면이 나온다.[105] 그러나 최근 전개에 따르면 국민이 단합하여 금 모으기 운동을 하면서 부활의 가능성이 보여서, 조만간 세계 열강으로 복귀할지도 모른다는 작중 예측이 나왔다. 고려에서도 프랑스가 부활해서 도이치를 견제하는 위치를 해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전쟁에서 패배했음에도 대가가 가혹하지 않은 배려를 받았다는 것은 프랑스인들도 느끼고 있는지라 적당히 지역 강국 정도로 만족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오해를 해서 괜히 고려랑 전쟁을 했던 거고, 고려는 오히려 외젠보다도 공화주의를 더 존중했었기에[106] 프랑스인들은 "우린 왜 싸운 거지?"라는 허탈함이 큰 편이다. 당장 금 모으기 운동으로 빚의 2할을 단숨에 갚아버리며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랑은 차별성을 강조하는 데 성공했다.[107]
2차 세계대전에서는 올바른 편인 고려측의 편을 들어 승전국이 됐으며, 소련을 고려가 멸망시킨 후에 도이치군과 프랑스군이 뒤늦게 모스크바에 입성하는데 이 때 이미 유럽연합에 대한 계획이 짜여져있었던 것이 나온다. 또한 유럽의 1인자 도이치와 2인자 프랑스는 친밀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유럽연합 내에서 유럽 패권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음이 나온다. 이후 도이치가 유럽의 1인자, 프랑스가 2인자인 구도로 굳혀지며 세계적인 선진강국 중 하나가 됐다.
- 베네치아
무역으로 번영하고 북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투사하며 열강이 되었지만 전쟁 과정에서 고려에게 패배하여 본토인 이탈리아 옆에 위치한 섬은 잿더미가 되었고 북아프리카에서 버티려 했으나 결국 제일 먼저 사국동맹에서 이탈했다. 유대인 차별과 격리를 실행하는 정책을 폈었고, 유대인 박해는 레위니옹과 모리셔스에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원인이 됐다.
- 오스트리아
사국동맹 소속으로 전쟁을 수행했으나 독립을 원하던 다수의 민족들과 고려의 개입으로 제국이 해체당했다. 이후 오스트리아를 유지하기 위해서 도이치와 혼인 합병했다.
6.6. 중동
상민이 신분을 숨기고 아라비아 반도에서 공작을 시행하여 원역사의 사우드 가문은 사라졌으며 그들이 지원한 극단주의 무슬림 학파도 함께 사라졌다. 덕분에 온건주의 이슬람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라크
상민이 박성민이란 가명으로 세운 나라. 바그다드에 국립대도서관(지혜의 집)을 재건하여 교리적 관행을 촉진했다. 그리고 오랜 농경으로 염화된 땅을 되살리려 노력해 효과를 보고 둑과 제방, 철도와 항구를 만들고 종교적 갈등을 해소하며 사분오열된 부족들도 규합했다. 이로 인해 이슬람 율법학자들과 신학자들마저도 상민의 집정기를 옛 아바스 황금시대에 버금갈 수 있다는 찬사를 보낼 정도까지 발전한다.
이후 아이샤와 자신의 아들인 만수르알 '바키[108]'를 술탄에 올리고, 술탄의 실권을 명예직에 가깝게 제한하여 부족마다 의원을 뽑고, 국정은 수상인 사드라잠과 휘하의 와지르들이 내각을 꾸려 통치하는 이슬람식 입헌군주정으로 정치를 안정시켰다.[109]
- 오스만 투르크
한때 고려에 적대적이었으며, 로마를 멸망시켜 고려의 황후가 됐던 헬레나에게 원수 국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시대가 흐르며 점점 국력이 약해져 결국 러시아의 침략을 감당하지 못해서 고려에게 의존하게 되고[110], 결국 약소국이 된 오스만은 튀르키예로 바뀌어 고려에게 의존하는 친려 국가가 됐다.
6.7. 아프리카
북부는 이슬람교가 득세하나 중부와 남쪽은 고려에서 건너온 만종에 의한 불교가 성행하고 있다. 심지어 관직에 오른 승려 출신들도 흔할 지경.- 무타파 제국
외왕내제 국가. 왕의 호칭은 므웨네. 특산물은 각종 중금속 자원이다. 국교인 만종의 영향을 받은 아프리카 최대 지역강국으로 아프리카 전체의 패권을 쥐려던 야심을 보이면서 같은 흑인들까지도 대규모 학살, 정복을 하려고 하는지라 고려에서 제지하고 있다. 아프리카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고려 황실에서 대형 둑을 만들어 줬다.
- 마라케시
아프리카 내 대표적인 친려 국가. 과거 무함마드 혈통의 무슬림 샤리파 공주를 비무슬림인 고려 황제의 황후로 보내며 얻은, 외교적 안보 등의 지원으로 인해 나라 살림이 피며 종교적 관용이 확산되었다. 동맹국과 조약국 간 전쟁 시기엔 고려가 파병할 때 국토 내의 항구 등 이동로를 지원하며 고려의 오랜 동맹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 아주란
동맹국과 조약국간 전쟁 시기엔 대부분 이슬람을 믿어 기독교를 싫어했다.
- 악숨
에티오피아. 현재 악숨으로 국호 변경.
솔로몬 왕조가 다스리는 기독교계 국가. 동맹국과 조약국 간 전쟁 시기 이전부터 아프리카 내에선 강국 반열에 들었으며, 패악질을 부리던 베네치아와 맞닿아 있어 사이가 매우 나빴다. 당시 섭정 통치하던 멘테밥이란 왕비가 친려 노선을 타려 했다. 같은 기독교계인 유럽 국가들에게 핍박받아 사이가 안 좋았지만, 고려의 설득으로 이탈리아와의 협상장에 나서게 되며 대등한 위치에서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다.
- 콩고
왕의 호칭은 아웨네콩고. 고려 황실에서 철도를 만들어 줬다.
- 메리나
국교는 만종. 무타파와 비슷한 시기 만종의 선교활동을 통해 중앙집권국가로 거듭났다.
- 지부티
아프리카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고려 황실에서 항구를 만들어 줬다.
- 부간다
지부티와 같이 고려 황실에서 항구를 만들어 줬다.
6.8. 기타 국가
- 루밀 키치파닐
Lu'umil Ki'ichpanil. 마야어로 '아름다운 땅'이라는 뜻이다. 대표적인 친고려 원주민인 마야가 고려에게 뉴질랜드에 해당하는 섬을 할양받아 세워진 국가로, 나중에 마야가 고려에 합병되며 마야 국적자들이 고려와 이중국적이 되자 자연스럽게 국가 전체가 반쯤 고려 소속이 된다. 나중에는 고려에서도 아예 이름만 다른 고려 땅 취급한다. 주변 국가들과 관계도 좋고[111], 근처에 세계 패권국인 고려가 있으니 어디 가서 시달릴 일도 없으며, 주민 대부분이 독실한 쿠쿨칸교 신도라서 범죄율도 낮다. 그래서 군대도 없고 정보조직도 없고 경찰만 대충 있는, 어디에서 관심받을 일도 없고 딱히 주변에 관심을 주지도 않는 꽃동산같은 나라라는 듯.
- 이스라엘
모리셔스 섬과 레위니옹 섬에 세워진 유대인들의 국가. 고려는 본디 유대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112], 해원 황제 시기 1차대전이 일어나며 베네치아가 유대인을 박해하고 시온주의가 생겨나자 세계의 질서의 수호자를 자칭하던 고려에서는 이스라엘을 건국시켜주기로 한다. 물론 원 역사의 영국처럼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에 덜컥 땅을 내주는 미련한 짓을 하지는 않고, 그들이 팔레스타인 쪽 예루살렘 등에 미련을 버리도록 유일하게 비어있던 섬인 모리셔스와 레위니옹 쪽에 땅을 내어 준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이주의 자유가 있어서, 싫으면 안 가면 그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113] 이 섬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두 섬을 시온 제도라고 이름붙였으며 특기를 살려 금융업 쪽에 종사하는데, 처음에는 뒤가 구린 돈을 받아주는 조세 피난처로 활동하다가 고려에 의해 철퇴를 맞고 2차대전 후 유대인들에게 참전을 독려하며 점수를 땄다고 한다.
6.9. 용어
- 쌍용지손(雙龍之孫) : 왕씨 고려의 왕가는 본래 용의 자손으로 불렸는데 상민의 비범한 능력을 본 사람들이 상민도 동해의 용으로 부르면서 해씨고려의 황실은 두 마리 용의 자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즉 해민(상민)과 초대 황후 왕예의 후손을 이르는 말이다. 반대로 왕예의 후손이 아닌 후궁의 후손들은 제왕지손이라 부른다.
- 시중(侍中) : 고려의 최고 관료직으로, 해윤의 금헌칙서 이후 입헌군주제가 시행된 고려의 실질적인 통치자. 입헌군주제 국가의 총리나 마찬가지다. 시중의 건물인 정녕당에서 따와 경칭은 당하(黨下)이다. 외모를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고 오랜 세월 동안 상민이 역임했으며, 이 시기를 가면시중 시기라고 부른다. 세월이 흐르면서 상민이 사임한 후, 개천 263년부터 가면시중 대신 민선시중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원래 중서성에서 선출하는 내각제 형태였지만, 어느 사이를 기준으로 상민의 의도대로 국민들이 투표로 뽑는 구도로 바뀌었다. 입헌군주정이지만, 선출방식이나 권한은 대통령에 가까운 지위다. 뒤에 숨어있는 상민을 제외하면 임기 동안 사실상 고려 최고 권력자. 각 부서의 상서(장관)들을 임명하고 부리는 위치인 만큼, 일 중독인 시중의 아래에서 상서들부터가 업무에 의한 혹사로 죽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114]
- 상서령(尙書令) : 고려의 시중 다음 가는 2인자의 지위. 이도가 앉았던 자리. 상민이 북려대륙에 있는 동안 시중의 직무를 대행했다. 본작에서는 이도 이외의 상서령은 딱히 등장하지 않았었다. 이후 민선시중이 된 후에는 시중이 자신의 정치적 동반자를 상서령으로 임명하는 것이 됐기에, 시중이 대통령이라면 상서령은 국무총리와 같은 위치로 고정됐다.
- 중서성(中署省): 고려의 의회. 중서령(中署令, 국회의장)을 선출할 권한은 시중에게 있었지만 개천 200년에 가면시중이던 상민이 중서성에 선출권을 양도했다. 또한 개천 263년부터 시중의 선출권도 양도했다가 이후 국민투표로 변경되었다.
- 정보총국(情報總局) : 태조 때부터 창설된 고려의 정보기관. 제1국 대내국, 제2국 대외국, 제3국 마약단속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계 최초의 정보기관답게 가장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겜돌이 상민답게 암살검이 장비로 지급되었다. 국훈은 어둠 속에서 나아가되 끝은 빛을 지향한다.
- 여의(如意)국 : 정보총국 중 제4국이며 2대 황제인 해진이 창설하였다. 존재 자체가 최고 기밀으로, 심지어 같은 정보총국의 국장급 인사들조차 4국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지 무슨 일을 하는지 돌아가는 사정은 어떤지 등을 알지 못한다는 암시가 있다. 부서 이름을 여의주에서 따온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오로지 상민을 암중에서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되었으며, 표면상으로는 정보총국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상민의 직속 수하들이다. 정보총국에서도 가장 충성스럽고 뛰어난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상민이 손수 하나하나 골라가며 뽑았기에 충성심이 하늘을 찌르며, 자부심도 하늘을 찌른다. 초대 황제이자 현인신이자 선지자인 상민을 직접 수행한다는 점 때문에 이들은 극악한 고문도 웃으며 견딜 수 있을만큼 맹목적으로 상민을 추앙한다. 많은 요원들이 쿠쿨칸교와 제국교도들이며, 개중 최고위 요원 11명을 따로 구분하여 11사도라 자칭한다. 국훈은 '불멸의 용을 위하여'.
- 쿠쿨칸교 : 상민을 쿠쿨칸으로 모시는 종교. 상민이 제물로 잡혀간 선원들을 구하기 위해 마야의 치첸 이트사를 정벌하고 창시했다. 여러 종교들로부터 이런저런 모티브들을 따와 일신교적 성향을 더하고 자비를 중시하는 교리를 도입한 탓에 살생을 극도로 꺼리며, 이는 후납 쿠적 신앙이라 불린다. 쿠쿨칸이라는 익숙한 존재를 모시기 때문에 중려대륙의 주력 종교이다. 상민이 왜 쿠쿨칸이 되었냐면 그의 두정갑 차림을 보고 깃털 달린 뱀으로 여긴 것. 고려의 영향을 받아 깃털 달린 뱀은 동양의 용의 형상을 취하게 된다. 이들의 집요함은 상민도 끔찍하게 여길 정도로 대단한데, 교전과 교리, 언행을 분석한 끝에 상민의 정체(태조 해민=청해 초대 통령=쿠쿨칸)를 밝혀낼 정도로, 이는 고려 역사학계에 정설로 여겨지게 된다. 어느 새부터인가 여의국에 쿠쿨칸 교도들이 들어오자 이에 질겁한 상민이 처음엔 그들을 밀어내려 했지만, 신에게 버림받았다 여기고 실의에 빠져 자살을 할 정도로 광신적인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심적으로 꺼림칙해하는 것과 별개로 충성심과 능력은 확실하게 검증된 인재들이라 여러 분야에서 요긴하게 써먹고 있다. 고려 성공회의 영향을 받아 최고 지도자의 지위는 총대주교이다.
- 제국교 : 상민을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예언자이자 선지자로 모시는 종교. 북미에서 유럽으로 퍼진 필록세라를 계기로 등장했다. 고려 성공회에서 파문당한 일부 성직자들이 새로 창설했으며, 교파의 형성 과정에서부터 황제의 입김이 닿아 있다. 상민이 시중직을 내려놓고 고려를 떠날 낌새를 보이자 두려움을 느낀 황제가 어떻게든 그를 붙잡아 보고자 적극적으로 손을 쓴 것. 정작 상민은 시중직에서만 물러날 뿐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려를 지킬 생각이었으니, 그 걱정은 결과적으로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쿠쿨칸교와는 사실상 같은 신을 섬기는 신앙이어서 우호적이지만 베이스 신앙이 다른지라 기묘한 거리감이 있다. 이름 때문에 황금옥좌 드립이 더 심해졌다.
- 수햄: 남미고려 세계관의 스팸이다.
- 아이작 겹빵: 아이작 뉴턴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 시니어가 만든 빠른 음식점. 고려에서 제일 가는 패스트푸드점으로 있으며 배달음식의 시초격이다. 아센재웅이 특히나 배달 시켜 먹는 것을 좋아했다.
- 위엄(威嚴)급 전함 : 고려가 그동안 개발하고 운용해 온 선박기술을 집대성해서 만든 최초의 대형 전함. 개천 430년의 관함식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보였다.
그 시점에서 이제 막 원시적인 장갑함을 만들기 시작하던 세계 열강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으며, 원 역사의 전함이 그러했듯 존재 자체가 전쟁 억지력으로 작용했다.
총 일곱 척을 건조해서 다섯 척은 고려가 운용하고 두 척은 스웨덴과 프로이센에 각각 한 척씩 판매했다.
후일 페르시아만 해전에서 한 척이 중파되는 손실을 입었지만 추가 건조는 없었다. 함의 설계 사상이나 적용된 기술 자체가 근대식 전함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격의 전드레드노트급이었기 때문. 그러나 이 점을 알지 못하는 세계 열강들 사이에서 최초의 건함 경쟁이 발발한다.[115] - 불공(不恐)급, 불굴(不屈)급 전함 : 위엄급 전함을 건조하고 운용하며 쌓은 노하우와 새로 개발된 신기술들을 전부 들이부어 만들어낸 최초의 근대식 전함. 처음 건조한 다섯 척은 불공(不恐)급, 건조 과정에서 찾아낸 개선점을 반영하여 추가로 건조한 다섯 척은 불굴(不屈)급으로 명명되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 역사의 드레드노트급 포지션에 있다. 종전까지 없었던 혁신적인 신기술들을 전면 채용해 압도적인 성능을 확보한 것과, 그로 하여금 기존에 존재했던 전근대적 전함들의 전략적 가치를 없애버린 파급력까지 드레드노트와 동일하다.
이전 함급인 위엄급이 페르시아만에서 체면을 구긴 반면 이 전함은 아덴 해전에서 무지막지한 괴력을 선보이며 베네치아+오스트리아 함대를 갈아마셨다.[116]
후속 함급은 명성급이며, 그 이후에도 고려 전함의 계보는 격노급, 진노급, 전율급[117]으로 이어지다, 군림급 초중전함[118]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 투투테펙급 항공모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항공기의 향후 발전가능성에 주목한 고려 해군이 건조한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총 여덟 척이 건조되었으나 대외적으로는 일곱 척이 건조되어 각 함대에 배속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나머지 한 척은 상민의 전용 기함, 새벽호가 되었다. 후속 함급으로 오타와급이 개발 중에 있다. 이후 함급은 피마급, 살리급, 나코다급, 미주리급으로 계보가 이어진다. - 청신사(淸新士)
청해, 특히 담쟁이거리를 주무대로 삼는 금융인들을 일컫는다. 줄여서 그냥 신사라고 부르고 있다. 고려의 새로운 상류층들로 세계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힘들을 지니고 있게 됐으며, 정치적 입장은 따지지 않고 그저 이윤만을 따지는 이들이기에 고려 정부에서도 시중 산하에 금융위원회를 설립해서 이들을 견제하면서도 활동을 장려하는 등 통제에 신경쓰고 있다. - 담쟁이거리
청해에 위치했다. 월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담쟁이거리라 불린 이유는 오래된 벽돌집들이 시대가 흘러서 담쟁이넝쿨들이 자라서 붙어버린 이름이다. 점점 벽돌 건물들을 바꿔나간다고 하니, 이름과 모습이 다른 지역이 될거라고 한다. 세계 최대의 증권거래소인 청해 거래소를 중심으로 엄청난 숫자의 은행들, 보험 회사들, 신용평가사들, 언론사 등이 모여있다고 한다. - 남려(南麗), 중려(中麗), 북려(北麗)
남아메리카, 중부 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여기서는 고려의 려가 붙어서 대륙의 이름으로 이렇게 정해졌다. - 광명회
고려 최고위 기업가들이 모인 집단으로, 암중에서 고려 재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상민의 정체를 아는 이들만이 회원이 될 수 있다. 자신이 손수 만들지도 않았고, 만들라고 지시한 적도 없지만 회주는 상민이다. 상민은 전생의 렙틸리언 도시전설처럼 용인이 고려를 지배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나돌까봐 학을 떼지만, 동시에 자신의 뜻에 아무 말 없이 순응하고 여론을 조성하기에 내버려두고 있다. 영국의 경제공격에 의한 대침체가 발생하자 정부시책(상민의 뜻)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을 표명한 끝에 상민이 회주로서 참석해 지시를 내리자 사생아나 다름없었던 자신들이 드디어 인정받았다며 펑펑 울어댔다.
7.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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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9.69 / 10 | 조회 수 431만 2023. 11. 11.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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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3.96 / 5.0 | 참여자 168명 2023. 11. 11. 기준 |
극초강대국 상황임에도 사회 내부의 모순, 이념갈등, 주인공의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국민적 각성에 의한 도덕주의적 관념의 확립 등을 묘사하며 고려의 국력이 점점 압도적으로 강해지면서도 긴장감이 비교적 하락하지 않은 대체역사소설이란 기록을 세웠다. 연재에 대한 비평도 타 소설에서도 지적되는 수준이라서, 작가가 어떻게 수위를 조절했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다소 편의적인 부분이 있더라도 거의 전세계를 무대로 또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한 점 또한 호평받는다. 말 그대로 세계의 지도를 다시 구축한 대체역사물은 현 시점 이 소설이 유일하다.
8. 기타
- 상민은 추억의 방이라는 곳에 태조 해민시절 옛 물건들(개정판 이전의 훈요128권)과 아내들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다. 일기들도(왕예와의 서신) 보관하고 있는데 괜히 밖으로 나돌면 자신의 흑역사가 될까봐 박제하고 싶진 않다고.
- 작중 역사학자들은 어떻게 삼별초의 유민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려 대륙까지 이동해왔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루트만 해도 태평양 횡단설이 여러 개에 대양을 가로지르는 건 말이 안 되니 연안을 따라 동남아를 거쳐 인도를 지나 아프리카를 돌아 남려 서해안에 표착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있다. 그런데 이것도 말이 안되는게 년단위 항해로 육지에 정착을 강하게 원했을 유민들이 어째서 동해안이 아닌 서해안에 정착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 보통 고려인들은 신의 개입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역사학자들조차 이에 대해선 상당수가 굴복해버렸다고.
상민이 은퇴 여행을 하면서 지구 반바퀴 횡단 루트를 거슬러 올라가며 그 당시부터 미리 준비해두었던 그릇 등 생활물품들을 파묻어[119] 증거를 만들어주어 이 후 이 인도양 항해설이 정설이 되었다. 하지만 이 후 세상이 발전하면서 더 뛰어난 연대 측정 기술들이 발견되면서 여러 오류들(유물이 발굴된 땅의 연대와 유물의 연대가 맞지 않음 등)이 지적되고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1]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사의 게임으로 묘사된다. 다만 역설사 게임이 삼별초가 진도로 향하는 시기인 1270년을 커버하는 건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뿐인데, 이 시리즈는 한국이나 신대륙 쪽을 구현한 적이 없다. 묘사되기로는 그동안 역설사에서 나왔던 게임들을 총망라한 궁극의 신작인 것으로 묘사된다. 지도자에게 불로불사 능력이 부여되는 것으로 보아 모드를 여럿 섞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역사적 인물 등장' 옵션 덕분에 세종대왕 이도, 나폴레옹, 워싱턴 등도 등장한다.[2] 우루과이 근처로, 진도로 향하던 원래 삼별초 선단의 위치의 대척점[3] 안녕하세요, 스튜디오 JHS입니다.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의 외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외전은 자유 연재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네이버 시리즈 작품 페이지의 이용안내)[4] 정확히는 늙지 않고 독이나 질병에 면역에 걸리지 않을 뿐 죽음에 이를만한 큰 부상을 입으면 죽는 불로영생에 가까운 형태. 주인공도 그걸 알고 있기에 위험한 일에 직접 뛰어들거나 하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백 년을 살다보니 지루해서 익스트림 스포츠나 특수 작전을 직접 지휘하기도 한다.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초인조차 뛰어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5] 개명했지만 작품에서는 계속 상민으로 지칭된다.[6] 이는 후일 제국 통치론이라는 열 권짜리 책으로 개정된다. 128조도 아니고 128권이란 걸 안 후손들은 기겁을 한다.[7] 미래인 치트로 온갖 사업아이템을 선점한 덕에 수많은 기업들을 수중에 두고 있으며 개인 자금으로 항모전단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이다. 외전 시점 전 세계 GDP의 총량의 7할을 고려가 보유중인데, 그 고려 부의 절반 가까이가 상민의 소유다.[8] 이에 대해서는 주인공이 불로불사 특성 외에도 설정했던 특성 몇개가 시너지를 내면서 이런 효과가 나오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조합이 일당백+적응력+문무겸전. 일당백에 의해서 평균적인 인간을 초월하는 무력을 내며, 동시에 적응력으로 인해 시대의 흐름에 의해 개인의 무력이 변화하더라도 그에 적응하는 무력을 낼 수 있으며, 문무겸전으로 인해 동시에 지력까지 같이 보장받는 게 아니냐는 추측.# 즉 초기에는 칼 든 백 명의 병사와 같은 무력(일당백)과 그 당시 모사 백 명 수준의 지략(일당백+문무겸전)을 갖췄다면, 이제는 거기에 적응력이 덧씌워져서 방탄복 입고 RPG-7든 백 명의 보병과 같은 무력(일당백+적응력)과 박사급 지식과 현장 경험을 갖춘 장군 백 명 수준의 지략(일당백+문무겸전+적응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그것과 별개로 초능력 각성은 아무리 봐도 스텔라리스다.[9] 잔 다르크는 화형당했고,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여러 번 정략결혼에 이용당했으며,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사형,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도박 중독으로 전 재산을 탕진했다. 게다가 이들 모두 마흔이 되기 전에 요절했다. 게다가 (이름이 남진 않았지만) 오스만에 의해 멸망한 왕가의 후예, 사우드 가문에 의해 밀려난 부족의 딸도 좋은 운명을 맞았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스포주의] 외전 시점에서 600년의 세월을 넘어 조선에서 왕예진이라는 이름으로 환생했다. 부활한 후 어릴 때부터 꿈에 전생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대학 입학을 위해 고려로 가자마자 점점 기억이 돌아오더니 청해에 도착하자마자 기억이 완전하게 돌아왔다. 상민도 왕예의 기운을 느꼈고 결국 다시 만나 재결합한다.[11] 강대한 무력과 힘을 갖추어 여러 차례 전장에 나아가 외적을 정벌하며 국가를 평안하게 하여 붙은 시호로, 이하 묘호는 전부 환생한 왕예가 내렸다.[12] 이를 두고 상민은 '이젠 하다 하다 정략결혼까지 나한테 떠넘기는구나.' 라며 루크레치아 앞에서 푸념했다. 물론 고려말이라 루크레치아는 못 알아들었다[13]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하나가 바로 고려군이 쓰는 군가. 제국행진곡.[14] 평소 언행으로 미루어보아 이슬람교 계통의 종교적인 신격화로 추정된다.[15] 고려로 이주하자마자 고기 요리에 빠진 것도 웃음 포인트.[16] 고려 황제에게 이성계의 피도 흐르기 때문에 조선은 안심할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성계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것은 왕건의 피 외에도 이성계의 피가 흐르는 고려 황실에 대한 도전도 되는 셈이었기 때문.[17] 앞에 그의 이름을 붙여 주로 파라콜라라고 불린다.[18] 해승원은 정중한 학자였는데, 어차피 5형제고 형들이 여럿 있다보니 자신의 성이 이어지지 않는 것은 상관하지 않았다.[19] 자치권을 준 연방 제도지만, 타국에서는 이를 대공국 정도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20] 예를들어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된 그리스의 불과 보라색 염료가 그 예다.[21] 상민이 직접 납치를 지시한 건 아니었다. 상민이 뉴턴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름이랑 대략적인 생몰년도뿐이었는데, 단순히 이름만 갖고 사람을 찾기엔 잉글랜드에 동명을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때문에 상민의 지시를 따르던 부하들은 도대체 이 사람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들을 다 데려오자고 발상의 전환을 한 것. 엄연히 납치였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고려에서 풍족하게 잘 살게 됐다며 오히려 좋아했다고 한다.[22] 처음 만났을 땐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어서 범인들을 모조리 광산으로 보내버렸고, 말년에 주식투자 실패로 날렸던 돈도 뒤에서 손을 써서 전액은 아니더라도 상당부분을 보전해 줬다[23] 사실 황실 모독이 될 수도 있기에 타인종에 대한 모욕은 금기사항이다. 하는 놈이 이상한 것.[24] 이 부분에서 같은 충격을 받은 조광조와 개혁의 노선이 다른데, 남곤은 중상주의적 기조의 점진적인 개혁을, 조광조는 중농주의적 기조의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했다.[25] 유럽과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사절이 전부 모인 연회에서, 고려 황제가 전국 옥새를 자랑하며 천명이 짐의 손에 들어왔다는 말을 했는데, 유럽의 사신 하나가 천명이 뭐냐고 물었다. 이걸 어떻게 유럽인들이 알아듣게끔 설명한다고 하는 것이 천명을 잃었다=>신에게 버림받았다=>파문당했다! 라고 알아들어 버린 것. 이 문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 전역에 퍼졌고 저놈들은 파문당한 놈들이니 얼마든지 털어먹어도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버리고 말았다.[26] 원래 이순신 4형제의 이름은 중국의 전설상 성인의 이름을 따 희신/요신/순신/우신이었는데, 본작에서는 고려가 천명을 가져가며 요순의 의미가 퇴색되었기 때문에 대신 군주의 상징물의 이름을 따 호신(瑚臣)/조신(璪臣)/윤신(玧臣)/규신(珪臣)이 되었다.[27] 이 방탄복 덕분에 바부얀 해전에서 근거리 저격을 맞고도 목숨을 건졌다. 그 이전에도 방탄복 덕분에 고비를 잘 넘긴 적이 몇 번 있는 듯.[28] 여담으로, 분명히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고려에서 고려인으로 여기곤 한다. 대표적으로, 현대에도 그렇듯 배의 이름에 위인들의 이름을 붙일 때, 조선에서 이윤신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할 정도.[29] 온건 사민주의자들은 도이치, 프랑스 등 각국이 혼란을 막기 위해 포섭해서 노동당쪽 좌파계 정당으로 자리 잡았고, 직접 법안들을 고칠 수 있을 정도로 정치계에 완전히 편입됐다. 무리해서 내전 같은 걸 일으키지 않아도 법안을 고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하는 부류에 공산주의자 이외는 모두 죽여야한다는 과격파로 갈라진 셈.[30] 왕예진은 몸매도 뛰어나다는 묘사가 나옴으로써 상민의 거유 취향의 시작의 이유가 전생인 왕예가 아닐까하는 독자들의 추측도 나온다. 또한 작중 공주 해지예의 평가에 따르면 아이돌을 하더라도 중심 멤버를 할 정도의 수준이라고 한다. 고려의 황족들도 왕예진의 외모를 보면서 폐월수화라 감탄할 정도로 압도적인 미모인데 동시에 초대 황후인 왕예를 닮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31] 사실 공간이동을 했던 것.[32] 월도 하나로 삼백 명을 베어 쓰러트릴 정도로 무력 또한 출중하다.[33] 단 모스크바는 막장도시로 전락했기에, 키이우가 슬라브족의 중심지로 바뀌었다.[34]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가 딸 루이제가 고려 황태자이던 시절의 해원과 결혼하는데 성공하면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됐기에 원역사의 1세는 자연히 2세가 됐다.[35] 단 부친이 다르다.[36] 2차 세계대전 후 도이치는 이 유언에 따라 핵무장에 관해서도 고려에 거스르지 않았다.[37] 클로드의 무덤에서 운수 좋은 날을 재현한 건 덤[38] 온건파는 차후 국제 외교 관계를 우려해 무기징역형을 내려서라도 루이 13세를 살리려 들었다. 덕분에 후작부인은 자길 버리고 아내와만 탈출하려 든 루이 13세의 죄 일부를 뒤집어쓰는 데 더해, 그가 악녀의 손아귀에 놀아난 남자란 동정표를 사 감형받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야 했다.[39] 훗날 도이치[40] 고려의 타협을 받아들여 자신이 지도자에서 물러나는 자유선거까지 받아들였기 때문.[41] 샬럿의 지시를 받은 감시병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총구를 겨눈 것[42] 블라디미르 1세의 딸로 올가의 고모[43] 루테니아 지역은 마초 성향이 강한데 여자의 카리스마는 드문 것이라 오히려 이것을 매력적으로 느꼈다. 당장 코자키들의 우두머리인 키릴로 라주모프스키가 충성을 맹세했다.[44] 결국 루테니아가 유럽 3위의 강대국이 되고, 식량생산량 2위의 국가가 됐으며 슬라브의 중심지이자 자존심이 됐으니 그가 바라던 슬라브족의 중심지인 키이우(루테니아)는 이뤄진 셈이다. 또한 손자는 장녀와 결혼하고 올가에겐 딸밖에 없어서 차기 역시 차리차이기에 루테니아의 왕가는 그의 후손이기도 하다. 전사했지만, 그야말로 최고의 명예를 누리게 된 셈.[45] 류용이 본다면 무덤에서 뛰쳐나올 수준이라고 한다.[46] 발해는 대씨 고려, 고구려는 고씨 고려라 부른다. 외국에서는 고려제국의 Greater Korea와 반도의 고려 Lesser Korea라고 부르기도 한다.[47] 시중 다음 가는 지위. 사실상 진짜 1인자였던 당시 상민 다음가는 실권만 따지면 2인자급이었다.[48] 경신대기근이 일어난 시기가 1670~71년인데 이 시기에 고려에서는 사진기를 동원해 조선의 참상을 알리고 무려 1, 2차 지원으로만 쌀 4만톤, 제분된 밀가루 3만톤, 스팸 9000톤, 초콜릿 및 과자류 40톤, 땅콩버터 30톤, 기름 30톤, 소 500마리, 돼지 300마리를 보내는 정신나간 국력을 자랑했다. 그것도 모잘라 3차 지원까지 했으니...[49] 당시 계몽전제주의와 절대왕권을 추구하고 있었기에, 번국들에게 의회 정치 제도를 권하던 고려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신하들의 상소에도 불구하고 자립을 외치면서 버티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후 상상을 초월하는 지원량으로 고려의 압도적인 국력 수준 차이을 체감하고 충격받아 심리적으로 굴복한 것에 더해, 신하들이 모든 사안에 '상국의 전례선현의 말씀'를 논하게 되면서 왕권이 사실상 추락하게 된다.[50] 역사에 남을 대업적을 세운 이윤신도 말년에 고려로 건너갔는데, 그 이유 중 일부로 작용했다고 한다.[51] 처음에는 몽골의 독립운동에 시달린 옥저에서 자국 광산기업의 이권을 보장해 주면 독립시켜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몽골에서 이를 서류상으로만 독립 후 경제적 식민지화하여 수탈,탄압하려는 수작으로 잘못 해석하여 무력 투쟁을 벌였다. 결국 견디지 못한 옥저가 몽골을 중화 8제국에 팔아버렸는데, 중화 8제국에서는 몽골인들을 대학살해버린다. 이 때문에 옥저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몽골의 복구를 지원했다.[52] 원나라의 협조 요구에 고려가 내부 반란군의 위험을 핑계로 대는건 고사하고, 삼별초가 제주도에서도 발견되지 않자 일본으로 갔다고 판단되면서 명분상 오히려 원나라보다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원정 지원 규모 축소도 실패하고 시간도 빨라진다[53] 원나라가 일본 남부와 교토를 점령한 뒤 고려에 그러했듯 원나라 공주를 천황에 결혼시켜 원 대칸의 부마로 만들고, 천황의 오배삼고지레와 함께 천황 명칭이 공식적으로 취소된다. 이에 왜왕이 된 천황을 비난하고 새로운 왕을 내새우면서 일본이 남조와 북조로 나뉜다. 체급과 국력은 북조가 훨씬 더 강해서 몽골군이 떠난 이후 남조를 밀어냈지만 남조가 몽골군 지원을 받아 다시 밀어올리면서 균형이 유지된 상태.[54] 남왜에서는 백제의 후손을 주장하는 오우치 가를 도래인 쇼군으로 불렀다.[55] 오우치 가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백제의 본래 성을 내세운 것이다.[56] 세계 최강국인 고려와 언어가 같다는 장점 + 바로 위에 세계 2위의 경제강국인 조선과 세계 11위의 옥저가 있는데 마찬가지로 언어가 동일하며 사이가 원만하다는 장점이 있으며, 보르네오를 통한 산유국이기 때문. 홋카이도는 없지만, 이런 효과로 인해서 현대의 일본 이상의 저력이 됐다.[57] 오다 노부나가 시대에 도쿄로 개명했다.[58]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말년에 백제와 조선 정벌을 외쳐서 내부결집용인지 그냥 노망인지남일본 통일도 못했는데 조선정벌은 노망이다 국내 무사 세력들을 자극해버리는 바람에, 내부 불만 해소와 정권 유지를 위해 뒷감당을 걱정하면서도 침공했다.[59] 본디 실권을 쥔 쇼군의 에도성이 천황이 머무는 황거 궁전 뒤에 더 높이 솟아올라 위세를 자랑했다. 그걸 몰랐던 고려군이 설마 천황이 에도성에 있지 다른데 있겠느냐며 확실하게 겁을 주기 위해 주변을 포격하는 과정에서 황거째로 날아가버린 것.[60] 도쿠가와 노부야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숙청당한 이후 고려로 망명하여 해군에 투신했다[61] 여전히 남은 국내 반고려 감정으로 입조까지는 하지 않았다.[62] 그 대가로 반고려 감정을 내새워 명 조정에서 가장 득세했던 친강화파가 전멸한다.[63] 즉 도쿠가와 가문은 도태될 위기인 북왜를 강화로 이름을 바꾸고, 열강까지 성장시킨 것이다. 또한 고려가 원하는 바를 읽어내 백제의 위협을 차단했다.[64] 애초에 원역사와 다르게, 바로 옆에 백제라는 비교대상이 있어서인지 대전 패배 직후 도쿄를 버리고 도망친 수뇌부가 총옥쇄를 외쳤음에도 일반 국민들은 심드렁해하며 오히려 고려군을 환영하는 수준이였다. 동군연합 이후 강화에서 사는 백성들도 대외적으로는 자신을 백제 사람이라고 할 정도.[65] 얼마나 호구였냐면, 조선이 경신대기근으로 골골대던 당시 그나마 멀쩡한 군병들을 명나라 땅으로 보내 약탈이라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조정에서 나왔을 정도였다. 원역사의 조명관계와는 백만광년쯤 떨어진 아스트랄한 대목.[66] 몽골은 주우철을 철창에 가두고 끌고 다녔지만, 몽골군을 격파한 고려는 포로로 주우철을 확보하긴 했어도 일단 황제로서의 권위를 지켜주기 위해 개성에서 화려한 거처에 감금하여 술과 음식은 호화롭게 지급하며 옷도 비단옷으로 지급했다. 이 때 화려한 옷과 호화로운 음식, 편안한 침상 속에서 자신의 행적을 반성하며 명으로 돌아간다면 제대로 된 정치를 할거라 다짐했으나, 명나라 조정에서 몽골에 잡혀가버린 주우철을 대신해 사촌동생 주우민을 즉위시켜버렸고, 귀환한 후에도 유폐됐다가 원역사의 정통제처럼 주우민이 아픈 틈에 탈문의 변(奪門之變)을 일으켜 복위를 했다. 심지어 사촌동생에게 감금됐을 때는 바투몽케에게 잡혔을 때보다 대우가 더 열악했다보니 이가 갈렸는지, 주우민은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의문사를 했다고 한다. 고려에 대해서는 악감정은 없는 것이 적어도 고려는 포로라도 황제로서의 인권을 존중해서 좋은 대우를 해줬고, 명나라에서 새 황제가 등극했다는 소식에 주우철을 아무 대가 없이 풀어줬기 때문이다. 고려에게 아우국을 자처할 생각까지도 있었으나, 고려에서 거절하고 대신 주나라의 형님이 되게 하는 것을 권유하면서 차관을 내어주고 구형 함선들도 내주면서 지원을 해줬다.[67] 동남아시아에서 위세를 뿌리던 거대 해적세력들에게 명나라 제후 자리와 영토 분봉까지 내어주며 끌어들였던 해전은 고려 유학파 출신의 이윤신(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백제-옥저 연합함대를 상대로 역사에 남을 기록적인 패배를 당했고, 육전에서도 인해전술을 사용해 봉명관[120]을 뚫고 요서까지 진군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공세가 돈좌되면서 결국 패배한다.[68] 육전에서 인해전술의 실패로 어마어마한 병력-인구 손실을 겪어 국력이 뚝 떨어졌고, 외국 출신의 해적들에게 벼슬과 함께 내린 권리와 영토에 대해서 해당 국적의 유럽 국가들이 정당한 주인임을 주장하거나 값을 치르고 사들였음을 주장하면서 명나라의 이권이 본격적으로 사방에서 뜯어먹히기 시작했다. 추가로 주익상이 열강들을 따라하겠다며 전국에 깔아놓은 철도[121]를 주민들이 뜯어가자 주변 지역에 사는 모든 주민을 강제차출했는데, 그 탓에 국가의 혈관이어야할 철도가 기피지역이 되어버렸다. 미래의 발전 가능성이 실시간으로 깍이는 상황.[69] 양이 + 동이[70] 특히 옥저의 경우는 명나라 입장에서 친근하게 느낄 정도로 용병으로 와서 반란 토벌을 자주 해줬다. 돈만 주면 와서 반란 토벌을 해주고 돌아가며, 산동 지역도 백제와 친분을 쌓고 고려의 경고로 인해서 조선이 하북 병합을 포기하는 등 예맥한계 국가들은 고려에 의한 타의적이긴 해도 중화사상에 심취한 한족들이 아니었다면 크게 적대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았다.[71] 특히 친고려 국가가 아닌 유럽 국가들의 잔혹함은 네덜란드 같은 친고려 유럽 국가들이 경악하고, 희생당한 사람을 보며 슬픔을 느끼며 문명인으로써 이건 아니라고 질려서 철수해버릴 정도다. 만약 명나라에서 식인 행위를 해서 여론의 분노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고려에서도 대대적인 압박을 놨을지도 모를 정도.[72] 결국 태평천국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프랑스,오스트리아,포르투갈 3개국이 무창에서 대대적인 약탈,방화,살인을 저지르는 '무창 대학살'을 일으키면서 반외세 감정이 폭발해버렸다. 이후 반개혁-반외세 세력을 기반으로 둔 동황비가 정권을 잡고 태평천국과 손을 잡으면서 정작 만악의 근원인 3개국 군대는 뒤통수 맞고 궤멸 수도 경사 내 폭동이 일어나 외국인 거주지와 대사관들이 습격받는 지경에 이른다. 고려와 다른 국가들은 모든 사태의 원인인 3개국에 이를 갈면서도 명나라에 국제법 준수와 민간인 안전 보장을 요구했으나, 명나라가 거부한 것에 더해 폭동 세력이 외국인들을 삶아 죽이거나 식인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고려 특유의 트리우마를 건드려 외국인들을 한곳으로 모아 방어전을 펼침과 동시에 비행선으로 해안 요새를 폭격해버린다.[73] 태평천국 사태의 결과로 동황비가 실각하고[122] 서황비가 실권을 잡아 마지막 개혁인 변법자강 운동을 진행했으나, 친개혁-친외세 성향의 서황비는 원래부터 인기가 적었던데다 집권 과정에서 지지기반이 된 일부 가문들과 보수세력의 손을 들어주며 개혁이 어정쩡하게 진행되다가 서황비와 태자가 총에 맞고 암살당하며 명 황실이 어이없이 끊겨버린다.[74] 당시 상민은 중동에서 사우드 가문을 몰아내고 아랍 에미르 연방을 세우고 정비하느라 명나라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관심을 끌 생각은 아니어서, 충성심과 능력이 검증된 여의국 제1사도를 주명고려대사로 보내놓았지만, 명나라의 급변사태는 상민 본인이 아닌 그 부하가 감당하고 통제하기엔 너무 크고 거센 흐름이었다.[75] 이전의 일곱 제국은 차례대로 진(秦), 한(漢), 진(晉), 수(隋), 당(唐), 송(宋), 명(明). 중국을 처음 통일한 진나라부터 지배층이 한족이 아닌 유목민족인 몽골족이던 원나라를 제외한 역대 중화제국이었다. 물론 사실 지배층이 유목민족 출신인 선비족이었던 수, 당을 포함시킨 점에서 모순이며, 이는 소설에서도 그리 서술돼있다.[76] 당시 내부적으로 부패하고 느슨해져있던 조선이 고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에 가장 호응했다가 중화제국이 전면 국유화를 실시하며 엄청난 손해를 봄과 동시에 상당한 산업력을 공짜로 줘버렸다.[77] 다만 고려는 융화가 안되는 화교와 유대인의 이민을 꺼리고 제한했기에 효과가 비교적 적었다.[78]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였던 중국도 고려처럼[123]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지만 역사적으로 북쪽 유목민들의 침공과 견제 때문에 멸망하거나 국력을 낭비하면서 성장 가능성이 꺽였다는 논리[79] 탐라는 진주만처럼 해군기지 공격이지만, 고려와 조선의 민심에 공포를 주겠다는 이유로 공격한 개성은 일부 군기지를 제외하면 엄연한 민간 도시다. 심지어 일반 폭탄이 아닌 가스탄을 써서 대량 살상을 일으켰으니 일제보다 훨씬더 막나간 셈.[80] 항복하는 자국 포로들한테 탄져균 등 생화학 병기을 감염시켜놓거나 민간인들이 폭탄을 들고 달려드는 등 소련 패전 후 동아시아 전선으로 배치된 유럽군이 이건 대체 무슨 지옥이냐며 경악할 정도. 전쟁 후반부엔 피난가는 자국 백성들을 상대로 생화학 공격을 하는 악랄한 짓을 보여줬다.[81] 독립한 몽골, 무주지가 된 호북성, 대만의 주나라에 흡수된 복건성 제외[82] 베이징(칸발리크)을 수도로 삼았던 원나라 이후 명나라의 북경 천도, 청나라의 중원 통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화북이 정치 중심지가 되지도 않았고, 난징을 중심지로 삼아 국공내전을 벌이고 '순혈한족'을 추구한 선전한 중화제국에 의해서 유목민/공산주의자와 피가 섞였거나 부역자라는 명목으로 도매급으로 엮여서 차별,탄압 받았다. 대놓고 화북의 유목-멘셰비키라고 할 정도.[83] 고려, 조선, 옥저, 백제, 강화, 유구, 주나라, 루밀 키치파닐(현실 뉴질랜드에 위치한 마야쪽 고려계 국가), 네덜란드, 마긴다나오, 에이레, 잉글랜드. 네덜란드는 파푸아 섬을, 에이레와 잉글랜드는 호주의 동서를 각각 식민지가 아닌 고유의 영토로 만들었기 때문[124] 아직 부족한 나라들은 참가하지 못했지만, 주나라는 적어도 저기 참가할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 사회적 발전이 됐다는 뜻이다.[84] 대만섬에 살던 이들은 고려의 질서하에서 예맥계 국가들과 친하게 지내서 풍요롭게 살았는데, 왜 굳이 저런 전쟁범죄자들을 위해서 자신들이 희생해야 하냐고 반발했다. 이미 근대화는 이전에 이루고, 선진국급 경제력을 갖춘 기존 주나라인들의 경우는 대만인으로 따로 구분되기까지 했다.[85] 옥저의 배후인 고려가 과거의 원한으로 탄압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인권 중시문화를 가진 고려의 영향을 받는 옥저는 몽골을 탄압할 생각이 없었다.[86] 이에 몽골을 열등민족으로 규정하던 중화제8제국이 미개한 혼사라고 비난하면서 고려가 분노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엔케바토르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87] 18세기 기준으로도 네덜란드의 왕은 고려의 황제인 해원과 절친이라 국가들끼리 연합을 만들 당시에 오랜만에 재회해 반가워하며 포옹하기도 한다. 각각 왕과 황제가 된 후에는 편지를 주고 받았지만, 예전처럼 같이 장난 치고 놀지는 못해서 그리움이 많았었다.[88] 만약 이런 것이 없다면 거리가 먼 파푸아네덜란드에서 독립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 동시에 네덜란드에 왕정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도 하는데 거리가 먼 두 지역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이기 때문.[89] 고려에서 프랑스의 처벌을 약하게 하면서 풀어준 이유가 프랑스가 부활해서 도이치를 어느 정도 견제해줘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일 정도.[90] 이 자부심이 너무 강해서 모렐리가 도저히 공산혁명을 일으킬 가능성이 없다고 볼 정도. 물론 여기에다가 전쟁 직후라 적국이던 프랑스인을 상대도 안 해주려는 도이치인들의 풍토에 프리드리히 대왕부터가 하층민들까지 모두 포용하는 고려식 정책을 하고 있던 것도 영향이 컸다.[91] 대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피해가 심했던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서, 개혁의 방해물이자 잠재적 암덩어리였던 융커들을 숙청할 수 있었다. 전후에도 프리드리히 2세는 대전쟁의 승전과 대독일의 달성이라는 업적을 내세워 내부 반발을 찍어누를 수 있었고, 테레지아는 상민에게 집착하면서 그가 설계했던 제국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닮으려고 애를 썼다.[92] 소련군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과 달리 도이치와 프랑스 군인들의 보급품이나 식량도 훌륭했기에, 소련 내부에서는 고려 이전에 도이치와 프랑스에게도 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93] 유럽연합을 창설하기 전부터 양측은 거대 경제동맹체의 필요성을 느껴서 유럽연합을 함께 구상하면서도 유럽의 패자 자리를 두고 경쟁에 들어갔다.[94] 알렉산데르 6세와 체사레 보르자가 원 역사대로 말라리아에 걸리긴 했지만, 상인으로 위장한 고려 첩보원이 곧바로 치료약을 넘겨준 덕분에 죽지 않았다.[95] 피렌체가 통일 이탈리아에 흡수합병당하는 과정에서, 메디치 가문 중 일부가 고려로 망명해 고려 최초의 민간 은행인 메디치 은행을 설립한다.전화위복도시국가 지배자 자리에서 쫒겨나서 극초강대국의 은행-금융업계 최강자로 진화 그 과정에서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던 예술가들까지 뒤따라 온 건 덤.[96] 아센재웅이 고려에서 좋아하던 음식이 아이작 겹빵 배달이었다. 그래서 고려와 불가리아를 비교하면서 드는 예시에는 거의 반드시 겹빵 배달 얘기가 들어가고, 이게 나중에 대외적으로도 알려진 듯하다.[97] 자신들의 군주로 적임인 이가 (로마의 피를 이은) 고려 황제밖에 없다고 주장하여 추대하는가 하면, 이를 거절당하자 다음에는 주 그리스 고려 대사를 '고등판무관'으로 명칭을 변경해줄 것을 거듭 요구해 관철시켰다.[98]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열강들은 핵무장을 하지 않는 대신 안보를 고려가 책임져줄 것을 요구한 후 그 돈을 죄다 자국의 경제발전에 써버린 듯 하다. 현실의 유럽의 군축과 무임승차를 업그레이드한 버전이다.[99]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서로의 영역권으로 인정하는 조약. 남미에 있던 고려가 해류를 타고 유럽보다도 먼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곶을 발견해서 깃발을 꽂은 상태였다. 아메리카에 대한 유럽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희망곶과 아프리카 항로를 넘겨준 것.[100] 조약이 깨질 경우 고려가 아프리카 이권을 건드릴까봐 고려를 상대로 서방 해상십자군이 벌어졌을 때도 중립을 지켰다[101] 네드 러드와 추종자들은 무슨 야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단 굶주리는 잉글랜드 인민들이 굶주림이 없이 모두 문제없이 살 정도만을 원했던 소박한 이들이었고, 네드 러드부터 권력에 타락하지 않은 작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소박하게 살고 싶어하는 소시민 마인드를 유지했다보니 발전이 가로막혀 한계에 다다라버렸다. 그러나 북한처럼 빈민은 아니고, 구매력 PPP가 지구를 기준으로 1인당 18000달러 수준을 할 정도로 중진국 이상은 된다. 땅이 워낙 생산력이 좋은데다가 기본적인 설비 등도 갖춰졌으며, 무엇보다도 공산주의의 모순성 때문에 성장의 한계는 있어도 일단 부패하지 않은 덕분인듯.[102] 사실 아일랜드의 공식 국명이 에이레(Éire)이다.[103] 18세기부터는 소비에트 연방[104] 해방제는 고려의 산업력을 보고 실제 러시아와 격차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고려가 공러증을 이용한다는 사실에 맞춰줄 뿐, 실제로 고려와 싸울 생각은 없었지만 현실파악을 못하는 아들 블라디미르 2세가 러시아가 진짜로 강한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서 현실을 알려주는 아버지를 쿠데타로 몰아내고 차르 자리를 찬탈한 후 전쟁을 일으켜 러시아의 거품만 드러나며 나라를 말아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버지에게 의존하고자 애걸복걸하다가 차남이 옥저군에게 살해된 줄 모르는 해방제는 자신이 키운 제국을 말아먹은 멍청한 아들을 끌어안고 러시아를 위해 동반자살했다.[105] 고려 정부는 외젠의 프랑스 정부를 쿠테타 세력으로 판단, 정권의 정통성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프랑스인들은 자신들 멋대로 생각하다 일을 크게 만들었다.[106] 학자들은 아예 외젠을 또 다른 군주제에 불과하다고 크게 비판했다. 철학자 존 로크는 가면시중들의 치세가 끝나서야 고려는 제대로 된 국민국가에 들어섰다고 여겼다. 이때는 민선시중이 되기 이전에 간선시중으로 중서성(의회)에서 선출하는 구도지만 현대의 의원내각제(의회정부제)와 흡사한 방식이기에, 일단 민주주의에 속하는 방식이라 거부감이 없던 듯. 물론 이후 상민의 뜻에 따라 아예 시중들을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형태로 굳혀졌다.[107] 북왜가 도쿠가와가 정권을 잡고 나서 백제의 성장을 어느 정도 견제해주길 바라는 고려의 뜻을 읽어내 이를 이용해 강화로 이름 바꾸고 열강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프랑스 역시 도이치와 관계개선을 하면서도 고려의 뜻을 읽어 도이치를 내부에서 견제해주는 유럽 강국으로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108] 쑥쑥 자라서 열여섯 나이로 174cm나 되는 거구의 사내가 되었다고 한다.[109] 상민이 아무리 업적을 많이 해도 집정을 될 수 있을지언정 무슬림이 아니기에 왕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무슬림인 아들을 술탄으로 해놓고, 부족들이 모두 만족하면서도 후대에도 좋은 제도를 제안하여 정리한 것.[110] 콘스타티니예를 자유시로 지정해 모든 종교활동을 중지하고 부르사로 수도를 옮겼다.[111] 가장 가까운 게 에이레 소속의 누아 에린(호주 동부)과 잉글랜드 소속의 뉴펀들랜드(호주 서부), 네덜란드령 파푸아인데 전부 고려와 우호적인 국가다. 그나마 잉글랜드가 작품 후반부에 고려를 적대하긴 하지만, 뉴펀들랜드는 대동주의(공산주의)와 관련이 없어 왕가가 피신해 온 곳이니 논외다.[112] 이주민들을 흡수 통합하며 인구를 늘리려 했던 고려로서는 배타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지닌 유대인을 받을 이유가 없다.[113] 유럽에서는 친고려 국가들도 유대인들을 싫어하는지라 사실상 유대인들 입장에선 이곳에 가는 숫자가 상당할 것이다.[114] 시중 자리도 사실 엄청난 혹사가 동반되는 자리라고 한다. 그 탓에 처음 시중이 된 이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느끼지만, 나라가 워낙 크다보니 시중의 과도한 업무량에 힘겨워하는 묘사도 있다.[115] 아시아 쪽 친 고려 국가들에겐 일부러 팔지도 않고 다 너희들을 위해서 안 파는 거라고 언질까지 줬었지만 각국 수뇌부는 이를 상국의 견제로 오해하는 바람에 기어이 건함경쟁에 뛰어들고 만다.[116] 유인작전을 벌이느라 주요 혁신점 중 두 가지, 사거리와 속도를 사실상 봉인하고 싸웠는데도 4대 1의 싸움에서 적을 압도했다.[117] 중간에 평정급이라는 함급도 있었지만 설계부터 불량이었다고 한다.[118] 만재배수량이 무려 8만 5천톤으로, 원역사의 야마토급 전함의 그것보다 1만3천톤이나 더 나가는 괴물이다.[119] 그 당시 물품 그 자체이므로 탄소검사를 하건 뭘 하건 고려 삼별초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