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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18:04:58

장쑤성

강소 성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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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의 성
장쑤성
[ruby(江苏, ruby=Jiāngsū)][ruby(省, ruby=Shěng)] | Jiangsu Province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20px-China_Jiangsu.svg.png
지역 화둥
면적 102,658km²
성도 난징시
청사소재지 장쑤성 난징시 구러우구 베이징시루68호
江苏省南京市鼓楼区北京西路68号
하위 행정구역 13지급시(1부성급시) 55시할구 21현급시 20현
시간대 UTC+8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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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8,505만 명 (2021)
인구밀도 828명/km²
민족 구성 한족 99.6% | 회족 0.18%
묘족 0.03% | 토가족 0.02%
HDI 0.795 (2017)
서기 신창싱(信长星)
성장 쉬쿤린(许昆林)
GRDP 전체 $1조 8293억 (2021)[1]
1인당 $21,467 (2022)[2]
행정구역 약칭
행정구역코드 320000
지역전화번호 025, 0510 ~ 0519
0523, 0527
우편번호 210000 ~ 226000
ISO 3166-2 CN-JS }}}}}}}}}
홈페이지
파일:장쑤성 전경 1.jpg
장쑤성 전경
파일:skylinenanjing.jpg
성도 난징시의 전경


1. 개요2. 지리3. 산업과 교통4. 역사5. 산하 행정구역6. 역대 영도인7. 요리8. 출신인물
8.1. 고대, 중세8.2. 근대, 현대
9. 여담

[clearfix]

1. 개요

장쑤성중국의 성급 행정구역으로, 성도는 난징시[3]다. 북쪽으로 산둥성, 서쪽으로 안후이성, 남쪽으로 저장성상하이시와 접한다. 한국 한자음으론 강소성이다.

장쑤성의 약칭은 ([ruby(苏, ruby=sū)]) 혹은 ([ruby(吴, ruby=wú)])로, 춘추시대 춘추오패의 한 사람인 부차의 나라 또는 삼국지에서 손권의 나라인 오나라에서 유래했다. 성의 인구는 약 8,500만 명[4]이다. 성의 명칭은 지역의 역사적 도시 명칭으로서 난징의 옛 이름 중 하나인 장닝(江宁)과 쑤저우(苏州)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저장성, 상하이시와 함께 중국 장난(강남)(江南)지역의 대표격으로 중국 내 GDP 최상위권인 지역이며, 5A급 관광지를 중국에서 제일 많이(25개) 보유한 성이다. 유명한 중화권 민요인 '모리화(자스민)'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2. 지리

중국 영토의 1.06%인 약 10만㎢[5]를 차지하고 있어 전체 중국에서 보면 면적이 아주 작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이 작은 땅의 대부분이 비옥한 퇴적층이기 때문에 실로 넓은 평야를 지니고 있어서 잠재력이 아주 높은 땅이다. 장쑤 성에서는 이라 할만한 것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통 평야만 가득하다. 그래서 인구밀도도 상당히 높고[6], 사실 중국의 어느 성보다도 높은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다. '성'이 아닌 직할시 중에서는 더 높은 곳이 3개 있지만(상하이시, 베이징시, 톈진시) 이미 일개 성이 직할시와 인구밀도가 비견되며, 심지어 충칭시보다는 더 높다는 점만 봐도 대륙의 기상을 볼 수 있다.

회하가 성의 중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면서 젖줄이 된다. 회하는 황하장강포스에 밀려 존재감은 다소 떨어지지만 아주 많고 자잘한 지류를 만들면서 엄청난 양의 퇴적토를 쌓아 왔다. 때문에 장쑤성의 지도를 보면 물줄기와 호수, 늪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수양제가 쌓은 대운하에 힘입어 수운 교통이 발달했다. 남쪽에는 장강이 흘러 상하이 직할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장강의 삼각주인 충밍섬(崇明岛)은 상하이 소속이지만 지도를 보면 어째 장쑤에 소속되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장강 너머에도 작지만 장쑤 성 관할 구역이 있는데 이 곳에도 난징 등 굵직한 도시들이 많다.

온갖 강이 흐르다보니 장쑤 성의 해안은 온통 갯벌로 가득하다. 바위 해안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300km가 넘는 해안선이 거의 굴곡도 섬도 없는 간석지로만 차 있다. 또한 위성사진으로 보면 거대한 염전들이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주요 도시로는 성도인 난징을 비롯해 우시, 쑤저우, 롄윈강, 옌청, 쉬저우, 창저우, 화이안, 난퉁 등이 있다.

3. 산업과 교통

파일:난징 중국.jpg
파일:난징 중국 11.jpg
난징시 전경

농업은 농사가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온통 평야뿐인 지자체다 보니 엄청난 생산력을 자랑한다. 반대로 지하자원은 상당히 빈약하다. 광업도 거의 불모지에 가깝다.

해안에 접해 있다는 이점으로 인해 롄윈강 등의 대도시는 상당히 산업이 발달해 있다. 하지만 워낙 굴곡 없고 갯벌뿐인 해안이 많아서 대부분의 해안가는 그저 평범한 농어촌만 드문드문 있는 정도이다. 사실 롄윈강 이외에는 딱히 해안 도시라 할 만한 곳도 없다. 대신 난징시쑤저우시같은 내륙의 대도시들이 상당히 발전한 편이다.

베이징시상하이시를 잇는 인프라(징후고속공로, 징후고속철도 등)가 이 곳을 지나가므로 교통 면에서도 상당히 중요하다. 장쑤성은 해안보다 내륙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한 것처럼 착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근대부터 장쑤성의 대외교류 거점이자 무역항이었던 상하이시가 엄청나게 커진 나머지 별개의 행정구역으로 떨어져 나가고, 장쑤성의 다른 도시들을 압도하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황푸강 하구의 상하이항은 수심이 얕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으나, 이 문제도 상하이시가 외해의 섬들 사이를 메워 양산심수항(洋山深水港)을 만들고 길이 32.5km의 둥하이 대교(東海大橋)를 건설해 본토와 연결하여 해결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양쯔강 델타에서 상하이항의 지위는 굳건할 것으로 보인다. 고대부터 이 지역을 교통요지로 자리매김하게 했던 내륙 수운 교통은 중국에서 가장 잘 정비되어 있지만, 철도와 고속도로, 해운이 대세가 된 현대에는 중요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해운 교통은 위에서 말했듯이 롄윈강 말고는 진짜 별 볼 일 없다. 그저 중국 어민의 전진기지일 뿐. 참고로 인천항에는 롄윈강으로 가는 배편이 있다. 보통은 한국 한자음으로 '연운항'이라고 써져 있다.

장쑤 요리는 상하이 요리, 난징 요리라고도 불리며, 중국 내에서 가장 비싼 편이지만, 또 그만큼 인기도 높다. 담담하고 약간 단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옌청기아 중국공장이 자리하고 있다.(동풍열달 기아차) 거기에 따라 현대모비스 등의 협력업체들도 대거 입주해 있는 상태. 한국 한자음인 염성()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듯 과거 염전지대였던 옌청시는 천지개벽급의 변화를 해서 2016년 현재 인구 820만 명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옌청시에서는 관용차를 기아차로만 쓰고 있고, 도로표지판을 한글병기로 바꾸는 등 기아자동차에 대한 극진한 예우를 보이고 있다. 옌청시 외곽에 있는 공군기지 역시 기아자동차 및 협력사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서 국제공항[7]으로 개조되었다.

장가항시에 포스코와 중국 장쑤성 사강그룹이 합작하여 만든 스레인레스 일관제철소 장가항포항불수강 (ZPSS) 이 있다.

쑤저우시에는 버스 제조업체인 하이거의 본사가 있으며, 전기버스하이퍼스가 생산된다.

2020년 광둥성에 이어 2021년에는 장쑤성도 한국의 GDP를 추월하였다. *

4. 역사

파일:남경성 중국 3.jpg
남경성 전경

지금이야 생산력 좋은 비옥한 땅이지만, 배수와 치수작업이 완벽하지 않던 아주 오래 전에는 그저 습기찬 늪지대에 가까운 곳인데다 날씨도 덥고[8] 온갖 벌레가 들끓고 위생적으로도 좋지 않았다. 질병 발생률도 너무 높아서 사람이 살기에는 영 좋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에도 비교적 일찍부터 개발되었던지 춘추전국시대까지는 황하일대와는 별개의 정체성을 지녔지만 오나라합려는 이곳에서 힘을 키워 남방의 강국 초나라의 수도를 점령했고 그 아들 부차대에 춘추오패에 등극했다.

진시황의 통일 이후에도 그다지 좋은 대접은 받지 못했다. 물론 지금의 난징이 위치한 곳은 산업 중심지로 차츰차츰 커 갔지만 양쯔강 이북 지역은 아직도 불모지에 불과했다. 한나라 때는 강 이북은 도겸이 다스리던 그 서주, 강 남쪽은 손책이 자리잡은 양주였다. 강 이북 지역인 서주는 원래는 꽤 번성한 곳이었지만 조조의 서주 침공과 213년 회남소개령으로 황폐화 되어, 사실상 회수 남쪽은 무인지대가 되었으며 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장강을 건너 강남으로 이주하였다. 어쨌거나 이런 과정을 거쳐 특히 장강 남부 지역은 손권오나라의 수도를 이곳 난징에 두고부터 육조시대를 거치면서 꾸준히 개발되어 간다.

그러다가 수나라의 재통일과 수양제대운하 사업으로 이 곳의 수운 교통이 급격히 개선되고 생산량도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 후 장쑤 지역은 곡창지대로 떠올랐고 난징은 점차 경제적 부를 쌓아 남송 시대에 이르러서는 화북의 경제력을 추월한다.[9]

명나라주원장도 처음 나라를 세울 때 금릉(난징)[10]을 수도로 삼았다. 영락제 대에 수도를 북쪽의 베이징으로 옮겼으나 이미 명대에 이르러서는 생산력에 있어선 화북을 한참 추월한 상태였다.[11] 명과 청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베이징을 수도로 삼았으나[12]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긴 후에도 난징을 당시 제2의 수도 격으로 중요시 여겼고 다른 들과 달리 장쑤성 일대는 남직예(南直隸)라는 이름의 직할지를 두었다.[13] 청나라의 중원 정복 이후 청나라는 직예를 오로지 수도 베이징 일대로만 한정하여 난징을 수도 지위에서 격하하고 남직예를 폐지, 강남성(江南省)으로 바꾸었으며 순치제 대에 강남성에서 안휘성과 강동성(江東省)을 분할했으며 이어 강동성을 강녕(현 남경)과 소주의 이름을 각각 따서 강소성으로 고쳤다. 태평천국홍수전도 처음 거병한 곳은 광시성이었으나 강남 일대를 점령한 후에는 난징을 기반으로 삼았다.

중화민국이 건국된 곳으로 한때 북양군벌 펑궈장의 기반이었으나 이후 리춘에게 자리가 넘어갔고 1920년 10월 리춘이 자살한 이후 치셰위안이 강소독군에 임명되어 강소성을 지배했다. 1924년 2차 직봉전쟁 이후 일시적으로 봉천군벌양위팅의 지배를 받았으나 1925년 손봉전쟁 이후 다시 직예군벌쑨촨팡이 지배했다. 1926년 국민당의 1차 북벌 이후 중국국민당의 손에 들어갔으며 이후 국민정부의 정치적 중심지였다. 1949년 국공내전중화인민공화국에게 점령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 중에 하나는, 기나긴 중국의 과거 제도의 역사 속에서 70% 이상의 장원급제가 이 지역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14] 현재까지도 중국 유명대학의 교수들 중 장쑤성 출신이 많은데, 이러한 전통이 이어진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5. 산하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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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역대 영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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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쑤성 영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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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쑤성 인민정부 주석
초대
탄전린
장쑤성 인민위원회 성장
초대
후이위위
장쑤성 혁명위원회 주임
초대 제2대 제3대
쉬스유 우다성 펑충
제4대
쉬자툰
장쑤성 인민정부 성장
초대 대리 제2대
후이위위] 한페이신 구슈롄
제3대 제4대 제5대
천환유 정쓰린 지윈스
제6대 제7대 제8대
량바오화 뤄즈쥔 뤼쉐융
제9대 제11대 제11대
스타이펑 우정룽 쉬쿤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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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00 {{{#!folding [ 중국공산당 지방위원회 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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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커칭스 장웨이칭 쉬스유
제4대 제5대 제6대
펑충 쉬자툰 한페이신
제7대 제8대 제9대
선다런 천환유 후이량위
제10대 제11대 제12대
리위안차오 량바오화 뤄즈쥔
제13대 제14대 제15대
리창 러우친젠 우정룽 }}}}}}}}}}}}}}}

7.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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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출신인물

8.1. 고대, 중세

8.2. 근대, 현대

9. 여담


[1] 중국 행정구역 중 2위로, 2021년 10월 기준 한국보다 근소하게 높은 수치로 세계 10위권의 규모이다.[2] 증권시보[3] 중화민국 시대에는 전장(镇江). 이 시절의 난징은 직할시였다.(수도였으니까)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손권의 오나라 수도였으며 당시의 이름은 건업(建業).[4] 8,505만 4,000명. #[5] 남한과 거의 비슷하다.[6] 828명/㎢, 중국 평균 148명의 5.59배며 한국(515명/㎢)과 비슷한 면적에 한반도 전체보다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셈.[7] 말이 국제공항이지 변변한 면세점도 없고 시설도 시외버스터미널 수준이며 하루에 인천국제공항으로 오가는 항공편 1편밖에 없다.[8] 위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장쑤성은 최북단부터가 한반도의 해남, 부산과 위도가 비슷할 정도이다.[9] 난징은 계속 이름이 바뀌었는데, 삼국지로 유명한 건업이 바로 지금의 난징이다. 이후에도 건강, 금릉 등으로 이름이 계속 바뀐다.[10] 남경의 옛 지명은 원래 금릉(金陵)이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가 전국을 순행하던 중 금릉을 둘러보고 왕기가 서린 곳이라고 하여 금릉이라는 이름을 고쳐 말릉(末陵)이라 하였는데 진대 한대를 거쳐 말릉이라는 이름이 유지되다가 삼국지로 유명한 손권이 다스리던 손오의 도읍이 되면서 건업(建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동진대에 이르러 건업의 업이 서진의 마지막 황제인 민제의 이름 사마업과 비슷했기 때문에 피휘하여 건강(建康)으로 물리었고, 당송대에 다시 금릉으로 불리다가, 원대에 이르러 집경(集慶)이라 불리었고, 명대 이후 남경으로 바뀌었다.[11] 금나라원나라를 거치면서 화북 지역이 상대적으로 매우 피폐해진 것과 무관치 않다.[12] 정난의 변의 주역인 명나라 영락제 주체의 본거지였기도 했고, 사실상 농경민의 영역과 유목민의 영역의 경계 지역이라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기도 했다. 북경을 수도로 한 것은 변방의 군권을 중앙 조정이 장악하기 용이하게 하기위한 측면이 크다. 사족으로 중국 역사적으로 베이징 쪽에 기반한 세력과 난징에 기반한 세력이 다투면 원명교체기를 제외하면 항상 베이징 세력이 승리했다.[13] 남직예가 있으면 북직예(北直隸)도 있는데 북직예는 수도 베이징을 비롯한 오늘날의 허베이성 일대였다.[14] 명청대의 급제자 수가 이전 시대에 비해 급격히 증가한 측면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명초에는 과거를 실시했더니 금대 원대 이후 피폐하고 거리가 먼(홍무제 시대 명의 수도는 남경 응천부) 북방 출신이 죄다 낙방하고 남방 출신이 과거를 석권하다시피 해서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는 존버장수생과거낭인들이 길게는 십년 이상, 붙을 때까지 묵묵히 공맹의 가르침에 집중하며 현실의 밥벌이를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막강한 재력가들이 화북보다는 강남 지방에 많았기 때문이다. 부유한 동네이니만큼 인구도 많고 조기교육 및 사교육 열기도 뜨거워서 한낱 훈장을 해도 화북에서보다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수재, 거자 레벨만 되어도 넘쳐나는 물자와 인구로 인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지방관의 막우로 취직하여 주경야독할 수 있는 여건도 충분했는데, 이런 점은 오늘날 한국에서 서울 명문대 합격자를 소수의 명문 학군지에서 대부분 배출하고 그 동네 집값이 폭등하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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