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영화 1987에 대한 탐구적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2. 실화와의 차이점
자세한 내용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영화상 스토리와 실제 사례를 비교해 보면서 보다 입체적으로 이 사건과 민주화투쟁 과정에 대해 파악할 수 있으므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본 문서를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또한 세세한 차이는 다음과 같다.
- 유해진이 연기한 한병용 교도관은, 실존 인물인 한재동 교도관과 전병용 교도관 2명의 이야기를 조합하여 나온 캐릭터이다. 당사자들이 정년퇴직 이후에 민주화 운동을 도왔다는 사실을 직접 밝히기 전까지, 이부영 등은 이 사람들에 대해 끝까지 함구하였다. 이런 이유로 이 2명의 교도관의 정체는 숨겨졌고, 한병용과는 달리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 다만 전병용 교도관은 당시 수사당국에 의해 지명수배를 당했고 이후 체포되었다. 또한 이에 대해 알고 있던 동료들에게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아 왔다. #
- 조한경 반장과 함께 초기 꼬리자르기를 당한 강진규가 남영동 대공분실 신참자에, 물고문 도중 직접 박종철을 물속에 밀어넣은 것이 아니고 다리만 잡은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강진규는 고참 공안형사였으며 사후 체포된 반금곤은 "강진규가 박종철의 머리를 직접 물 속에 집어넣었다"고 주장했다. 극중의 강진규에 해당하는 역할은 본래 이정호에 해당[1]하는 사항이다. 이정호는 황정웅, 반금곤과 함께 차후 체포되었다. #
- 실제 사건에서는 휴지에 편지를 써서 전달하였으나, 영화에서는 잡지(선데이 서울) 사이에 편지를 써서 전달한 것으로 나온다. 이 잡지라는 소품은 3S 정책을 상징하는 것으로, 정권이 국민들을 홀리기 위해 3S 정책을 자행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고 역으로 정권의 목을 조르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는 은유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군부정권이 체제선전 및 국민들의 눈을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한 1988 서울 올림픽이 1987년 민주화 항쟁 국면에서는 외신의 주목을 끌게 하고 정부로 하여금 강경진압을 망설이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 이부영이 쓴 편지는 안유 계장의 묵인 하에 한재동 교도관을 통해 전병용 교도관에게 전달되었고, 이후 김정남에게 전달되었다. 영화에서는 한재동의 역할은 연희가 나눠 가졌다. 또한 영화에서와 같이 한병용 캐릭터가 떠먹여준(?) 것까지는 아니고, 실제로는 이부영 기자가 옥중에서 취재를 하여 전체 그림을 완성해 낸 것이라고 한다. 전병용 교도관의 증언에 의하면 "이부영에게 귀띔해준 사람은 안유 계장 같다"고 하지만 확인해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박처원이 수감된 경찰을 회유하려 면회한 사실을 안유 계장이 이부영에게 알려주면서 "나도 공무원이지만 고문하며 사람을 죽이고 돈 가지고 회유를 하고 안 되니까 협박을 한다."라며 꽤나 분노하였다고 한다. 이 영화 속에서 안유 계장과 이부영의 관계가 다소 사무적인 간수와 수감자의 사이로 묘사되나 실제로는 형님, 동생하는 친밀한 사이였다고 한다. 당시 교도관들의 증언 한편 최환 검사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남과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 사이에 김덕룡이 있었다고도 한다.
- 극중 최환 검사는 영화 중반부터 검사직을 사임하고 변호사로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 최환 검사는 1990년대 말까지 검사로 활동하였고 은퇴 이후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최환 검사 커리어상 최대의 업적은 본작에서 나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뿐만 아니라, 1995년 서울지검장 재직 당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을 성사시켰다는 점도 있다. 이후 대전고검장을 거쳐 최종적으로 1999년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하였다. 그 후 정치에 입문하여 2000년 자유민주연합의 공천을 받아 대전 대덕구에 출마하나 17.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3위로 낙선하였고, 2012년 새누리당 후보로 충북 옥천 지역에 출마를 시도하고#, 2014년 충북도지사로 출마를 시도하나# 모두 불발에 그친다. 2016년 총선에도 세종시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시도했지만 무위로 그쳤다.#
- 또한 최환 변호사는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2]의 진상규명을 위해 발벗고 나서며 정부조사단 자문위원을 맡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공식사과와 함께 보상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발포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전두환을 강력히 비난하기도 하였으며#, 통합진보당 해산 국민운동본부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뉴스나 강연 등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의 당위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 작중에서 최환 검사는 밀수한 양주를 몰래 마시고, 화염병을 보고는 "신성한 소주병으로 화염병 만드냐"라는 말을 할 정도로 애주가로 묘사되며 사무실에 전화가 계속 걸려오자 코드를 뽑아버리는것도 모자라 전화기를 아예 부숴버리는 패기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실제 최환 검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그건 영화적 과장이다. 나는 술도 못 마시고, 그렇게 흥분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집에 미친 듯이 전화 온 것은 정말로 사실이라고 한다. 박처원 치안감이 실제로 '재미없을 겁니다. 밤길 조심하세요'라고 했다고.
ㄷㄷㄷ# -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질 때 이를 본 친구가 '한열아!'라고 외치며 다가와 이한열을 부축하는데, 실제로 이한열을 부축했던 이종창은 이한열과 면식이 없었다.
- 이한열과 연희의 부분은 허구다. 연희는 영화에서 창작된 인물로, "당시 보통 사람들, 서민 사람의 마음으로 저항하고 싶지만 저항할 수 없었던,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 필요"해서 만들어졌다고.
- 극중 설경구가 묘사한 김정남은 사찰과 교회에 은신한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는 고영구 변호사의 집에 숨어 있었다. # 이 증언을 보면 연희가 순수한 허구의 인물은 아니라는 추측도 가능한데, 고영구 변호사의 딸 고은영이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언급이 나온다. 연령대도 연희와 비슷하기 때문에 연희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로 볼 수도 있다.
-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가 사건을 최초 보도하게 된 것은 이홍규 검사가 지나가듯이 던진 말로부터 힌트를 얻고 나서 그 힌트를 들고 검찰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들쑤셔서 알아낸 것이지만, 영화에서는 최환의 부탁을 받은 이홍규가 작정하고 신성호에게 술술 말을 하며 특종을 떠먹여 준다.[3]
- 몇몇 캐릭터는 실존인물에서 모티브를 땄음에도 불구하고, 1987년 이후의 행적 때문인지,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 특히
보온상수로 흔히 알려진안상수 검사가 그러한데, 안상수 문서에도 있지만, 안상수는 스스로 자서전을 내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공로를 모두 스스로에게 돌렸으며, 이를 통해 여야 모두의 러브콜을 받으면서 정치계에 화려하게 입문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안상수의 역할이 왜곡, 혹은 적어도 터무니 없이 과장되었다는 것이 관련 인물들에게 의해서 밝혀지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안상수는 나오지 않고, 최환은 영화에서 최 검사라고만 불려서[4] 부장검사라는 부분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최환은 공안2부장검사, 이홍규는 최환보다 하위직인 공안4과장이었고, 안상수는 그보다 아래인 수석검사였다. 영화상에서 실무를 맡은 표 검사는 최환에 비해 다소 미적대는 것으로 그려진다. - 박종철 추모 미사 당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한 "카인의 대답입니다."라는 발언은 이 영화에서는 묘사하지 않고 있다. 다만 영화상에서 이 말이 생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 메타포는 영화 내내 노골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하단 문단 참조. 사실 안나오는게 당연하다, 영화에서 묘사된 미사는 5.18 7주기 추모미사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카인의 대답입니다."라고 이야기한 강론은 1987년 1월 26일에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박종철군 추모 및 고문추방을 위한 위한 인권미사>에서였다.
- 향린교회도 '향림교회'라고 이름이 살짝 바뀌어 등장하였으며, 실제 명동성당 근처 골목에 있는 것과 달리 달동네 언덕 위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향린교회 문서에서 보듯 민주화 이후의 항린교회는 상당히 친북화된 일부 NLPDR 인사들과 접점도 있고 김기종 같은 양반들하고도 연관이 있는지라 각본에서 수정한 듯하다. 실제 향린교회가 소속된 한국기독교장로회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 재야운동, 노동운동 등 진보적 사회 참여에 상당히 적극적인 개신교 교단이다.
-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찰청장과 최 부장검사가 검찰청장실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청장 이름이 정규영(鄭圭永)으로 되어있지만 실제는 정구영이다.
3. 시대적 탐구
- 극중 대공 부장검사실에 걸려 있는 1987년 1월 달력에 1월 1일과 설날인 1월 29일이 빨간 날로 표시되어 있는데, 당시 신정 연휴는 1월 1일부터 3일까지였지만 달력에서 1월 1일만 빨간 날로 표시되는 경우가 많았고, 설날은 1985년에 민속의 날로 지정되어 1988년까지 하루만 쉬었다.
- 포스터에서부터 교도관이 정모가 아닌 근무모를 썼다. 실제로 교도관이 근무모를 쓴 건 1994년경부터이다. 단 보안계장으로 나오는 안유는 제대로 정모를 쓰고 있다. 하급 교도관인 한병용과 간부급인 안유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연출로 보인다.
- 영등포교도소에 붙여진 표어에 '교도본부'라고 쓰여 있는데, 실제 명칭은 법무부 교정국이다.
- 백골단 헬멧은 재현 오류로 볼 수 있다. 87년 당시 사복중대는 주로 바이저가 없는 챙이 달린 형태의 싸이카 헬멧을 썼다. 전의경 방석모의 경우 6월 항쟁 기간 동안 영화 상에 나오는 철망 바이저도 쓰이긴 했지만 투명 플라스틱 바이저나 형상이 다른 구형 철망 바이저가 주로 쓰였다. 영화에 나오는 철망 바이저는 6월 즈음부터 일부 부대들이 보급받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극중에서 사복중대원들이 소형방패를 들고있는 모습이 나오는데 실제로는 그 당시에 소형방패가 없어서 일반 전의경들과 같이 큰 방패를 사용했다.
- 영화에서 작중 시기는 1987년 초부터 6월 항쟁 시기이지만 도중에 나오는 유재하 노래의 음반은 실제로 재판은 1987년 8월, 초판은 녹음일이 3월이므로 일러도 4월에 발매되었다. 감독은 "워낙 유재하를 좋아해서 그 노래를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또한, 연희의 방에 붙어 있는 김승진, 김희애 사진은 1988년 이후에 촬영된 것도 많았다.
- 남영동 담벼락에서 들리는 수도권 전철 1호선 전동차 소리가 한국철도공사 31x000호대 전동차 초기형 VVVF-GTO 구동음이다. 31x000호대 초기형 전동차는 1996년이 되어야 등장하므로 실제 당시였다면 초저항 또는 중저항 차량의 구동음[5]이 들려야 했지만, 영화 제작 시점에서 이들은 이미 모두 퇴역했거나 휴차 처리되어 구로기지에 유치된 경우가 많았다.[6][7]
- 남영동 대공분실 옆 남영역 천정에 청색바탕과 흰색폰트의 현대식 "남영역" 명판이 이상한 방향으로 설치되어있다. 관객에게 남영역임을 알리기 위한 장치이나, 80년대 당시 역 명판의 대부분은 백색바탕의 흑색폰트를 쓰고있었으며, 무엇보다 역 명판은 열차가 오가는 방향[8]이 아닌, 이용객들이 보는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역 플랫폼 천장이 아닌, 주로 역사 건물에 설치되어 있었다. 즉, 플랫폼 천장에 설치되어 있어도 기관사 입장에선 명판의 옆부분만 보이도록 설치되어 있어야 정상. 다만 남영역이 현재 영업 중이므로, 당시에 맞게 역명판 등을 교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CG로 충분히 가능한데??
- 작중에 경찰측 차량 등 당시의 차량이 많이 보이는데, 1993년식 뉴 콩코드, 1989년식 베스타와 그랜저가 나온다. 그랜저의 경우 86년 초기형과는 리어라이트가 다른데, 초기형은 일자형이고 후기형은 윗부분이 파여 있다.[9]또한 극 중 박처원의 차량으로 7세대 토요타 크라운이 나온다.
- 작중 연세대학교/신촌캠퍼스 정문 앞 시위장면에서는 현재 쓰이는 객차와 현재 쓰이는 도색 비슷하게 VFX로 구현한 구형 무궁화호 객차와 기관차가 지나가는 것도 보인다. 작중에 보이는 것을 포함하여 무궁화호 객차는 적어도 90년대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작중에는 존재할 수 없는 객차이며, 또한 현재 쓰이는 도색은 2003년경 도입된 도색으로, 객차와 마찬가지로 작중 시대인 8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도색이다. 실제로는 기관차는 하얀색과 파란색이 조합된 도색[10]이나 검은색 도색에 주황색 선이 칠해진 일명 '호랑이 도색'[11]을, 객차는 하얀색 바탕에 빨간색 또는 녹색 줄이 도색되어 있어야 옳다. 당시의 경의선에서는 서울~문산 간을 1시간에 1대씩 비둘기호가 운행하던 것이 전부였으나, 수색 차량기지에서 입출고하는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가 많이 지나다닌지라 이 열차가 더 흔했다. 다만 설령 무궁화가 수색기지 입고 중이라도 그 당시 신촌 선구치고는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한다.
- 다른 곳에서 촬영한 뒤 CG처리해서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연세대학교/신촌캠퍼스 시위 장면에서 정문 주변은 사진이 많이 남아있어서인지 나름 재현이 훌륭한 편이나, 백양로가 영 어색하게 나왔다. 특히 백양로가 언덕진 모습을 띠고 있는데, 대격변 이후 현재의 백양로는 굴곡이 있지만, 당시의 백양로는 측량해야 언덕이라는 것을 알지 눈으로 보면 그냥 평평한 곳이었다. 더구나 백양로에서 학교 안을 볼 때 백양로 뒤로 언더우드관이 보이는 게 연대의 상징적인 모습인데 이게 없다. 또한, 정문 안쪽 장면에서 양측이 모두 잔디밭으로 표현되어 있으나, 정문을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좌측에는 바로 테니스장(현 공학원 자리)이 있었고, 우측으로는 안쪽에 87년 당시 이미 백주년기념관이 완공단계에 있었다. 맞은편 기차가 다니는 굴다리 부분도 차가 다니는 부분 양쪽으로 보행통로용 작은 터널이 나오는데, 이 보행용 터널은 당시에 없고 한참 뒤에 생겼다.
- 극중 김태리를 경찰이 내다 버려서 강동원이 데리러 오는 '화정이용원'과 "화정"정류장은 "화전"의 오류인 듯 하다. 서울-일산으로 표지판에 나와 있었는데, 당시 서울-일산(신도시 개발전) 구간의 시외버스는 신촌역에서 출발해 화전(항공대), 능곡을 거쳐 삼성당건널목을 건너 지금의 일산신도시로 개발된 지역을 지나 일산으로 가는 것과 신촌역-불광동-원당-일산 구간이 있었다.[12] 즉 능곡과 원당 사이인 화정을 지나 일산으로 가는 버스 노선은 없었다. 당시에도 해당 동네가 있었으나 역이 나중에 생긴 것이다. 현재 3호선의 화정역은 1990년대 후반 고양 행신지구가 개발되며 생겼다. 영화상 배경은 버스정류장으로 분명 노선표에 "서울-일산"이라고 쓰여 있기에, 재현 오류이다.
더구나 정작 두 사람이 타고 간 버스는 문산교통의 문산-청량리였다. 물론 그때 이런 노선은 없었다.실제 화전읍을[13] 생각한 것이라면 당시 운행 중이던 경의선 비둘기호를 타고 올 수도 있었으나,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던 데다 연희가 큰 충격을 받았고, 설정상 낯선 동네에 덩그러니 떨어진 상황이니 차마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한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비둘기호 자체도 1시간에 1대 오던 상황이라 시간이 안 맞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애초에 해당 부분은 허구의 내용을 담은 부분이고 기차를 타고 가기엔 흐름상 어울리지 않다.[14]
- 극중 향린교회를 모티브로 한 '향림교회'가 배경으로 나오는 장면에서 교회 간판 옆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의 로고는 2008년 9월에 변경된 로고이다. 그리고 현재 향린교회의 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이 아니라 한국기독교장로회이다. 향린교회는 현재도 계속 종교시설로 쓰이고 있지만, 이미 빌딩 숲에 둘러싸인지라 당시 배경과는 영 안 어울리는 상황이어서 실제 촬영은 경남 통영시에 있는 충무교회에서 이뤄졌다.
- 영화상에 등장하는 박종철 관련 문건들은 당시의 디테일을 형식적으로 잘 살렸으나, 재현 오류인 부분도 있다. 이는 영화 미술팀이 참고한 문서들이 도지사나 장관급 결재문서라서인 것으로 보인다. 한자를 섞어 쓰거나 표지 귀퉁이에 종이를 덧대는 등의 디테일은 철저하지만, 문서 제목의 경우 당시의 공무원이나 경찰 등 공직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부분이 있다. 그 시절 공문서는 'ㅇㅇㅇ건에 대한 보고' 등으로 매우 두루뭉술하게 쓰며, 특히 '사망'이나 '박종철' 등, 자연인의 이름이나 직접적 사안은 표제에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러한 관행은 2003년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노무현 대통령 비서관실이 보고문건 양식을 간단명료하게 고치면서 점차 사라졌으며, 이때 개선된 문서양식은 현재도 정부 보고문서 표준양식으로 사용하고 있고 이 당시 각 정부부처에 뿌려진 가이드라인은 내용 수정을 거쳐 '대통령 보고서'라는 단행본으로도 간행되었다.
- 후반부 조한경의 구속영장에서 일부분이 맑은 고딕으로 프린트되었고, 장세동이 박처원에게 보여주는 신문기사 헤드라인에는 나눔고딕이 쓰였다.[15] 또한 연세대학교 시위 장면에서 배달의민족 한나체[16]가 스쳐 지나간다.
- 또한 나이 좀 드신 퇴직공무원 할배들 일각에서는, '저 정도의 건이면 대통령 보고는 하지 않는다. 보고사항으로 퉁치지 특히 개인의 처결사항은 본부장 전결사항이지 무슨 장관 라인을 타느냐'라고 하지만, 작중에서 장세동(문성근 분)이 '각하의 관심사안입니다'라는 언급이 있어서 영화상의 부각으로 보인다. 이 경우 비선실세[17]와 실무부처의 협의 조율 후 차관급이나 장관급 정도가 대통령 보고를 들어간다. 그래서 영화상에서는 장세동의 사인이 기재되는 식으로 나오는 것. 다만 영화에 나온 문서 중 결재라인 날인 칸 모양은 당시의 대통령 보고문서가 맞다. 이런 결재라인에 대한 오류는 대공수사관들의 고문치사에 대한 책임도 있지만 고문을 통해 확보한 진술로 공안사건을 조작해 권력을 유지하던 제5공화국 최고위층이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 이 씬의 마지막 컷은 문서를 훑던 카메라 시선이 장세동의 결재사인과 전두환의 근영을 클로즈업하고 있다. 또한 이 부분은 시나리오상으로도 '각하' 등의 표현으로 계속 간접적으로만 언급되던 전두환의 존재가 처음으로 시각적 구도로 뚜렷하게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 중앙일보 기자에게 사실을 알려준
쥐약을 놓은검사가 대검 공안4과장으로 되어 있는 반면, 기자는 소식을 듣고 서울지방검찰청에서 뛰어나와 공중전화로 향한다.
- 안유가 이부영에게 베껴 적으라고 건네주는 접견기록부에 '없습니다', '보였습니다' 등으로 적혀있다. 이 당시는 읍니다가 맞춤법에 맞는 표기였고 '습니다'로 개정된 것은 1989년이다. 영화 미술팀이 이 점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습'자를 '읍'자로 고친 흔적이 있는 부분도 보인다.
- 벽제화장장의 한자가 辟際火葬場으로 잘못되어 있다 실제 한자는 碧蹄火葬場이다.
4. 당시 시대상
- 잘생긴 운동권 선배(스포일러)의 신발은 실제 인물이 신었던 (주)삼화의 브랜드인 TIGER(타이거) 운동화이며, 2015년 복원되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이 운동화는 남겨진 신발이라는 일종의 상징이 되어 김숨의 장편소설 "L의 운동화"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해당 캐릭터가 주축이 되어 활동하는 것으로 나오는 동아리 '만화사랑'은 실제 연세대에 존재하는 동아리로 실존 인물이 창설한 동아리이다.[18] 연세대의 역사나 6월 항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이 잘생긴 운동권 학생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고 한다.
- 연세대학교 앞 굴다리는 민주화운동사에서 꽤 역사성을 지니는 장소 중 하나이다. 다만, 2017년 당시에는 정문에서부터 연세대학교/신촌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백양로를 전부 갈아엎는 등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 영화는 로케 촬영을 못 하고 아예 오픈 세트장을 지어 CG로 처리하였다. 이 굴다리와 경의선 철로 철둑은 연세대학교에서 벌어지는 가두시위를 촬영하기에 최적의 장소였으며 이 때문에 많은 국내 언론과 외신기자들이 시위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일명 '뻗치기'를 하고 있었다. 외신기자들은 꼭 해변에 머무는 것 같다며 농담섞어 이곳을 'Yonsei Beach'라고 불렀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1975년 관악캠으로 이전시킨 후 정문은 전투경찰대대로 막혀 있고 나머지는 관악산으로 막혀 있으며, 물리적 거리가 길어 시위대들이 도심으로 진입하기 마땅찮았다. 그러나 연세대는 바로 앞이 부도심 중 하나인 신촌로터리였기 때문에 가두시위를 시민들에게 알리기도 쉬웠고, 버스노선과 지하철 2호선이 연결되어 있는 데다 정 안 되면 1~2시간 정도 걸으면 도심지인 종로, 명동으로 갈 수 있는 요충지였다. 이 정도 요충지는 서울 한복판에서 정문에는 장충단공원과 장충체육관을, 후문에는 충무로 및 명동을 끼고 있는 동국대학교 정도밖에 없을 정도였고 특히 이런 요충지 대학들에서 시위가 자주 일어났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6월 항쟁 문서 및 이 문서 참고.
- 작품 초반의 주요 무대가 되는 부분은 실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촬영하였으며, 해당 문서를 참고하면 영화상에 묘사된 것 이상으로 많은 고문과 인권유린 사례들이 이곳에서 자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공분실 문서에도 있지만 이 건물은 고문에 매우 효율적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김수근의 가장 큰 오점으로 남아있다. 본작 외에도 김근태 전 의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남영동1985 영화도 이곳을 상세히 다루고 있으며, 이 건물은 2018년까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보존되어 당시의 행각들을 반성하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됐다. 그런데 2018년 1월 5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 의하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시민의 품으로 돌려달라'는 국민청원을 재청했다고 한다. 박종철 관련 외에는 이렇다 할 설명이나 안내도 없고, 전문 학예사도 없으며, 무엇보다도 "아직도 박종철이 경찰의 손아귀를 못 벗어났느냐"라는 게 시민단체 측의 주장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2018년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넘겨져 '민주인권기념관'으로 개조하여 2022년까지 완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 남영동 대공분실 근처 테니스장에서 박처원과 대공분실 경찰들이 테니스를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테니스장도 실제로 존재했던 장소이다. 민간에 공개된 이후 당연히 이 곳에서 테니스를 칠 사람은 없었기에 한동안 풀이 무성한 채로 방치되다가 현재는 이 테니스코트 자리에 민주인권기념관 건물이 따로 공사중이다. 실존인물인 박처원도 이 테니스장에 큰 애착을 갖고 있었으며 대공분실 경찰들에게 테니스를 적극 장려했다. 조달청이 테니스 코트 관리에 필요한 소금을 내어주지 않자 우리 애들 운동 좀 한다는데 왜 안주냐며 직접 조달청을 압박하기도 했다고.
-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항의하던 연희와 박종철의 유족들 등 시위대는 경찰들에 의해 연행된 후 서울 외곽지역에 버려진다. 당시는 대학가 및 일반 집회를 막론하고 집회 사전에 집회의 규모를 꺾기 위해 지나가는 일반시민들의 신분증을 불시에 검사하여 20~30대 시민일 경우 버스에 탑승시켜 무작위로 서울과 교통편이 많이 이어져있지 않고 교통편이 불편했던 당시의 파주, 일산 등의 외곽지역에 방기조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배차간격이 긴 버스나 택시 등을 이용해 다시 서울로 들어와야 했는데 간혹 버려진 곳에 지나다니는 버스 등을 세워 기사에게 사정을 설명하면 인심좋은 기사들이 마침 차고지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태워주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학생데모대의 경우는 대개 시국사범으로 분류되어 외곽방기가 아니라 유치장에 수감되고, 박종철처럼 대공분실에 끌려가는 경우도 많았다.
- 영화 초반부에 최환 검사가 먹는 짜장면 그릇은 응답하라 1988/탐구 문서에서 언급된 녹색 플라스틱(베이클라이트)이다. 또한 택시운전사/탐구 문서에 기아 브리사의 휠에 대한 내용[19]이 있는데, 1987 제작진이 이를 의식한 듯 포니2의 구형 휠이 클로즈업되는 구도가 보인다.
- 집회장면에서 애국가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당시에 워낙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함께 했기에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5.18 민주화운동 때도 마찬가지여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만한 애국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을 집회에서 함께 불렀고, 훌라쏭처럼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도 많이 불렀다고 한다. 이후 2010년대 들어 다시 만난 세계가 민중가요가 된 것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
- 연희가 등교하는 연세대학교 장면에서는 당시 학내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장치들이 곳곳에 보인다. 친구와 이야기하는 씬 뒤에서는 학생들이 음악에 맞춰 문예를 추고 있다거나, <늙은 군인의 노래>를 개사한 <투사의 노래>가 써 있다거나, 학내 자보판에는 가투(가두투쟁)을 알리고 참여인원을 모집하는 자보들이 빼곡이 붙어 있기도 하다.
- 장세동이 등장하는 곳은 '올림피아 호텔'로, 당시 이 호텔이 평창동에 있었기 때문에 BH 관련 이런저런 일이 종종 벌어지던 장소이다. 이 호텔은 2005년 말에 문을 닫았으며, 현재 그 자리에는 롯데캐슬로잔이 세워져있다. 이 장면에서 장세동은 내무부 장관에게 시위 진압과 최루탄 생산을 다그치고 내무장관은 깍듯이 대답하는데, 이 시점의 내무부 장관은 전두환, 노태우의 육사 11기 동기인 정호용이다. 안기부장이 부총리급이고 장세동이 정권 실세였다고 해도, 아랫사람처럼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실제로 강민창 치안본부장과 박처원의 기자회견 시기와 맞물려 정호용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기자회견장에서조차 시종일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면서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때리느냐는 망언을 날리기도 했다. 광주학살 당시 행적을 생각해보면 까무러칠 지경. 다만 작중에선 내무부 장관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았으니 장세동의 성격을 보이기 위한 의도적 재현 무시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6월 항쟁의 배경에는 노태우-정호용 라인과 장세동 라인의 대립구도가 있었지만, 본 영화에서는 시민들의 저항을 중점적으로 그리기 위해 삭제한 듯하다. 여담으로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정호용은 생각보다 5공 내에서 걷돌았던 편이다. 전두환과 동기생이며 12.12 사태의 주약이지만 전두환의 동기생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오히려 5공 초부터 전두환의 심복인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등으로부터 집중적인 견재를 당했고 여러 허화평과 허삼수가 축출된 이후에는 시국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강경책을 주장하던 장세동, 박희도를 비롯한 강경파들과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후 장관직에서 물러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걸었으나 이번에는 5.18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책임자로 몰려 임기를 반도 채우지 못한 상태로 자진사퇴해야 했으며 이후에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 당시 5.18과 12.12사태의 주동자로 사법처리되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재판 참고.
5. 기독교적 메타포
- 실제로 성경의 구조를 시나리오상에 차용하는 예는 생각보다 흔한데, 기독교 문화권인 미국도 은유적 비유로 성경구도를 차용한 바 있다. 1987은 이 점이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아무래도 기독교가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에서 끼쳤던 영향력이 커서 그랬을 수도 있다. 특히 향림교회 시퀀스에서 외벽에 매달린 김정남을 박처원이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후광과 함께 목도하게 되는 씬은, 성경관련 지식이 전혀 없는 관객이라도 감독이 성경구도를 비유했음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이다. 다만 스테인드 글라스의 후광 컷은 명백한 기독교 메타포라 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해석에 의한 것이다.
- 이에 의하면 김정남 캐릭터는 신약성경에 있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20], 박처원과 그 일당들 등 경찰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법살인으로 내몬 바리사이파 및 이에 동조한 로마 제국 군인, 한병용 캐릭터는 목숨의 위험을 받자 결국 예수를 부정하게 되는 베드로, 연희는 일곱 거짓 귀신에게 시야가 가려 냉담자 역할을 하다가 예수의 고난과 기적(이한열)을 목도하고 예수의 부활을 민중에게 가장 먼저 알리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역할을 갖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설에 따르자면 향림교회가 실제 향린교회와 달리 달동네 언덕 위에 서 있는 것도 골고다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예수는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서 십자가형을 당하고 무덤 속에서 부활했기 때문이다.
6. 실존인물과 배우들의 인연
배우들 중에는 이 영화 속 인물 및 사건들과 직접 연관된 인물들이 출연하였고, 그것도 당시 입장과 정반대의 배역을 연기하게 되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윤석(박처원 역)은 실제 당사자인 박종철과는 부산 혜광고등학교 동문으로 김윤석이 2년 후배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도 1987년 당시 데모 현장에 있던 학생 중 하나였는데,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란 대사를 내가 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고 하였다. 김윤석은 "<1987> 출연이 올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 역시 같은 혜광고등학교 동문으로 3년 후배인 오달수(중앙일보 편집국장 역)는 "자랑스러운 선배님의 후배로서, 이 영화에 참여하는 게 도리이자 뜻 깊은 일이 될 것 같았다. 감독님께 '잠깐이라도 출연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 배우 우현은 당시 치안본부장이었던 강민창 역으로 출연하는데, 실제 우현은 1987년 당시 연세대학교 학생회 전선에서 투쟁했던 운동권 출신이다. 우현(배우) 문서의 본문을 보면 알겠지만, 그냥 단순히 참가한 게 아니라 6월 항쟁 당시 이한열 장례식 때 행렬의 가장 앞에 섰던 사람 중 하나로, 타임의 메인 사진에 났을 정도로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투쟁한 인물 중 하나였다. 감독이 밝히길, 우현을 캐스팅하고 싶었는데 이미 좋은 역할들이 캐스팅이 되어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이 역할을 제안했는데, 우현이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우현이 영화에 참여하면서 "감회가 남다르다"고 고백했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현은 박종철보다
보기와는 다르게고작 1살만 많다.[21]
-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1987년 당시의 실제 장례식 영상에서 군사정권에 의해 희생된 열사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던 인물은 문익환 목사이며, 그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이 극중 문익환 목사를 비롯한 여러 민주화 운동가들을 간첩으로 몰아갈 음모를 꾸미는 국가안전기획부장을 맡았다. 사실 문성근은 자타가 공인하는 친노-친문 성향 인물이지만[22] 정작 자신의 성향과 정반대의 악역(?)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 인터뷰에서 짤막하게 그 이유를 밝힌 적이 있다.[23] 심지어 "참여정부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이 나온다면 조선일보 회장 역할을 맡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문익환 목사의 영상은 일종의 수미상관으로, 도입 부분 땡전뉴스와 맞물려 실제 영상이 주는 힘을 얹었다고 감독이 밝혔다. 문익환 목사가 외친 “열사여”에 맞닿아 그 날이 오면이 울려퍼진다. 감독은 그 외침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1] 대공분실에 출근하기 시작한 지 3일 된 신참. 다른 반 소속인데 "거들러" 와서 다리만 잡음.[2] 노근리 사건은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벌어졌는데, 최환의 출신지가 영동군이다.[3] 실제로 사건 당시 신 기자는 7년차 기자로 제법 경험이 쌓인 기자였지만 (그렇기에 흘린 말을 듣고 티도 내지 않고 아는 척하며 정보를 뽑아낼 수 있었던 것) 영화에서는 이 검사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눈의 초점이 풀리고 손까지 덜덜 떠는, 초짜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배우의 외모도 이에 걸맞게 젊어보이는 편. 또한 새벽부터 법조계 검사들을 찾아가 정보가 없나 들쑤시는 속칭 "마와리"를 도는데, 이런 궂은 일은 1,2년차 신참 기자들이 하지 저 정도 경력 쌓은 기자들은 잘 하지 않는다. 이부분은 신성호기자가 직접 마와리를 돌다 얻은 정보라고 증언했다. 또한 보통 신참 기자들의 마와리는 문밖이나 복도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사무실에서 새어나오는 얘기들을 엿듣는 수준이고, 신성호 기자쯤의 경력이면 직접 검사 사무실에 방문하여 커피 한잔 얻어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다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4] 검사 사무실에 최환이라고 적혀 있긴 하다.[5] 현재의 VVVF 전동차 구동음보다 많이 심심하고 특징이 없는 구동음을 갖고 있었다. 견인전동기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와 대차가 덜컹거리는 소리 정도가 끝.[6] 물론 2017년 영화 제작 당시 코레일에는 신저항이 남아있었지만, 신저항은 용산-동인천 구간 급행에만 투입되어 용산 북쪽 구간은 운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저항 외의 1호선의 저항제어 전동차는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가 남아 있지만 1호선 차량 중 단 6편성으로 극소수이다. 이쪽은 1989년 이전에 제작된 차량은 전량 퇴역, 폐차되어 1989년 이후 제작차량만 운행되고 있다.[7] 이후 VOD 판에서는 해당 지적이 수용됐는지 음향이 저항차 구동음으로 바뀌었다.[8] 기관사가 볼 수 있는 방향.[9] 다만 이건 상위 문서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영화 소품용 차량대여 환경상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10] 70년대 관광호 도색으로, 주로 7000~7400호대 특대가 이 도색을 했다.[11] 주로 6000호대 기관차.[12] 단, 이건 시외 버스 얘기고 일산-원당-삼송리-구파발-불광동-서울역 간을 왕래하던 서울 시내버스 158-2번도 있었다.[13] 당시엔 고양군이었으므로 화전동이 아니라 화전읍이 맞다.[14] 남자 주인공이 빗속에 우산을 쓰고 찾아와 여자 주인공과 함께 버스를 타고 떠나는 전개는 전형적인 편.[15] 해당 장면의 신문에서 인명 부분만 폰트가 다른 것으로 보아 합성인 듯하다.[16] 80년대 특유의 딱딱한 느낌을 의도적으로 살리기 위해 만든 폰트이다. 때문에 이런 쓰임새에 좋다.[17] 여기서는 장세동 안기부장[18] 다만 운동권 최악의 흑역사로 꼽히는 모 사건 이후로 해당 동아리는 운동권 색채를 지운 상태.[19] 구형 통짜휠은 전국 공업사에 널린 게 그건데 어째 2000년대식 쉐보레 스파크 휠캡을 갖다박아 놨느냐?라는 차덕후의 서술이 있다.[20] 이 구도는 희생이라는 점에서는 이한열 캐릭터가 일부 가져간다.[21] 사실 박종철이 요절한 편도 있지만 우현이 당시 53세였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22] 심지어 2012년 19대 총선에서 과거 노무현이 새천년민주당 당적으로 도전했다 허태열에게 진, 부산 북-강서 을 지역구에 도전했다 낙선한 전적도 있다.[23] 요약하면 그들의 반대편에서 그들의 행동을 오래 지켜본 덕택에 연기가 오히려 쉽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