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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3 15:31:27

필립 트루시에

필립 트루시에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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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감독
파일: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5대
파일: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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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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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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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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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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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
클럽 감독
파일: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로고.svg

79대
}}} ||
프랑스의 축구 감독
파일:AFC_Philippe Troussier.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필립 트루시에
Philippe Troussier
본명 필리프 오마르 트루시에
Philippe Omar Troussier
출생 1955년 3월 21일 ([age(1955-03-21)]세)
일드프랑스지방 파리시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1]
신체 183cm
직업 축구 선수 (중앙 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AS 앙굴렘 (1976~1977)
레드 스타 93 (1977~1978)
FC 루앙 (1978~1981)
스타드 드 랭스 (1981~1983)
감독 INF 비시 (1983~1984)
CS 알랑송 (1984~1987)
레드 스타 93 (1987~1989)
US 크레테유-뤼시타노 (1989)
ASEC 미모사 (1989~1992)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1993)
카이저 치프스 FC (1994)
CS 라바트 (1994~1995)
FUS 라바트 (1995~1997)
나이지리아 대표팀 (1997)
부르키나파소 대표팀 (1997~1998)
남아공 대표팀 (1998)
일본 대표팀 (1998~2002)
일본 U-20 대표팀 (1999)
일본 U-23 대표팀 (2000)
카타르 대표팀 (2003~2004)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04~2005)
모로코 대표팀 (2005)
FC 류큐 (2008~2010)
선전 FC (2011~2013)
CS 스팍시앙 (2014)
항저우 뤼청 (2014~2015)
베트남 U-19 대표팀 (2019~2021)
베트남 대표팀 (2023~2024)
베트남 U-23 대표팀 (2023~2024)
행정 PVF 아카데미 (2018~2019 / 기술위원장)
국가대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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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무종교이슬람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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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감독 경력
3.1. 초창기3.2. 아프리카3.3. 일본 대표팀3.4. 카타르 대표팀3.5. 거듭되는 실패3.6. 다시 아시아로3.7. 베트남 대표팀
4. 행정가 경력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프랑스축구 선수 출신 감독, 행정가.

주요 경럭으로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첫 번째 황금기를 이끈 감독으로 '백인 주술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 외의 감독직에선 경력을 길게 채우지 못한 채 아시아 등지를 전전하던 저니맨 감독.

2. 선수 경력

1976년 AS 앙굴렘에 입단, 프로무대에 데뷔하여 1976-1977 시즌을 뛰었다. 이후 레드스타 93 이라는 팀에 이적해 짧은 시간 동안 있었다. 그러고 난 뒤 1981년까지 FC 루앙에서 활동했고, 선수 커리어의 마지막은 스타드 드 랭스에서 마무리했다. 이렇게 선수 시절은 여느 명감독이 그랬듯이 별로였다.

3. 감독 경력

3.1. 초창기

다소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하고 지도자로 전향해 INF 비시에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당시 4부 리그였던 CS 알랑송으로 옮겨서 아마추어 구단을 이끌며 지도자로서의 감각을 다지기 시작했다. 이후 선수 시절에 뛰었던 레드 스타 93으로 가서 1989년까지 감독을 이어 나갔다.

3.2. 아프리카

1989년,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클럽인 ASEC 미모사에서 아프리카팀을 처음 지도하게 되었다. 1992년까지 3년간 재직하는 동안 ASEC 미모사를 3년 연속 코트디부아르 리그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1993년 코트디부아르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94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남아공 축구 클럽인 카이저 치프스 FC로 옮겼다.

카이저 치프스 FC에서의 짧은 재임 기간을 뒤로한 채 모로코의 축구 클럽인 CS 라바트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후 FUS 라바트도 지도하면서 모로코 컵 우승을 일구냈고, 모로코에서 1997년까지 보내게 된다.

1997년, 나이지리아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여 4경기를 이끌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연맹은 그가 '월드 클래스 감독'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를 경질했다. 사실 트루시에는 재임 내내 나이지리아 축구 연맹과 여러모로 잡음이 많았다. 다음으로 그가 간 곳은 부르키나파소였다. 199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결승에서 이집트에 0:2로 지고 3위 결정전에서 콩고민주공화국에도 지며 4위를 했다. 그래도 이 업적에 힘입어 당시 랭킹이 106위에 불과했던 부르키나파소는 대회 이후 75위로 대폭 올랐다. 대회 후 그는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해 있었던 처녀 출전국 남아공 대표팀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본선에서는 개최국 프랑스에 0:3으로 깨지고, 덴마크와는 1:1, 그리고 사우디와는 페널티킥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2:2로 무재배를 기록하였고, 최종 결과는 2무 1패로 광탈. 이후 사임했다.

3.3. 일본 대표팀

1998년 하반기, 오카다 다케시의 후임으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다. 사실 처음에 일본은 나고야 그램퍼스의 감독 경력이 있는 아르센 벵거를 영입하려고 했으나, 벵거는 제안을 거절하는 대신 본인과 같은 나라 출신의 트루시에를 추천해준 것. # 계약 기간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까지이며, A대표팀과 연령별 대표팀을 모두 지도하게 되었다.

파일:트루시에.jpg

U-20에서는 199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2000 시드니 올림픽남자축구에 나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슬로바키아를 연속으로 이기고 마지막에 브라질한테 패하면서 2승 1패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였으나, 8강에서는 미국승부차기 끝에 4:5로 패하면서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전체 성적과 순위는 8강 6위.

물론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그도 위기에 봉착했던 적이 있었는데, 2000년 봄, 운명의 한일전에서 패배한 이유로 경질 여론이 돌기 시작한 것. 사실 일본 특유의 색깔에 유럽의 철학을 입히는 과정에서 일본축구협회와의 갈등도 있었는데, 한일전 패배를 기점으로 이것이 폭발한 것이다. # 일본은 아르센 벵거 선임으로 리턴하며 물밑작업까지 진행하는 등 분위기는 험악해졌으나, 기술위의 재신임 결정으로 가까스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후 이런 불신에 반응하기라도 한 듯 성인 대표팀에서는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우승,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3]에서 브라질과 0:0 무승부로 승점 1점 획득한 것을 포함하여 브라질을 제치고 조 1위로 준결승에 진출한 뒤 토너먼트에서도 승승장구하여 마침내는 준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는다. 8강 B조에 속해 캐나다를 3:0으로, 카메룬을 2:0으로 연속으로 깨며 일찌감치 4강을 확정지었고, 최종전 상대 브라질에게[4] 무승부 승점 1점을 얻어 조 1위로 가볍게 4강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 호주나카타 히데토시의 결승골로 깨고 결승에 갔으나, 프랑스에 0:1로 패해서 준우승했다. 그러나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를 상대로 졌지만 잘 싸웠다는 호평을 들으며 기분 좋게 대회를 마쳤다. 참고로, 일본의 이 준우승 기록은 현재까지도 FIFA 대회 A대표 대회 아시아 최고 기록이다. 반면 한국의 히딩크는 오대영 감독이라는 불명예스런 칭호를 달고 있었으며 경질까지 논의되는 상황이였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32개국 본선에서는 자동으로 H조 첫번째 자리에 속해 벨기에, 러시아, 튀니지와 한 조를 이루었다. 러시아와 튀니지는 말할 것도 없는 약체들이고, 그나마 벨기에가 좀 경계 대상이긴 했지만, 벨기에도 당시 세대교체 실패 탓에 전력이 강한 축엔 못 들었다. 동구의 강호 폴란드와 우승후보 포르투갈이라는 유럽의 두 강호들에 미국이라는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다크호스까지 있는 조가 구성되어버린 한국과는 대조되었던 부분이었다. 첫 경기였던 벨기에전에서는 마르크 빌모츠에게 오버헤드킥으로 선취골을 얻어맞고 2:2로 간신히 무승부 승점 1점을 획득하며 일본에게 FIFA 월드컵승점을 선사해 주었다. 2차전인 러시아전에서는 이나모토 준이치의 결승골[5][6]로 1:0으로 이겨 일본 역사상 본선 첫 승리를 따냈다. 마지막 튀니지전에서는 모리시마 히로아키의 선제골과 나카타 히데토시의 결승골로 2:0 승리를 해서 무패에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 상대는 C조 2위를 차지한 튀르키예였는데[7], 미야기에서 열린 16강전에서 전반 12분 위미트 다발라의 헤딩골을 허용하며 터키에 0:1로 패했고, 그렇게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최종 순위 월드컵 9위로 마감했다. 경기 후 트루시에는 대표팀 자리에서 사임하면서 트루시에 재팬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당시 대한민국에 히딩크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트루시에가 있었던 셈인데, 일본의 2번째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불구하고 16강 진출(9위)을 달성한 점은 한국과 같은 입장이다.

그렇지만 히딩크가 지금도 한국을 간간히 방문하면서 변함없이 한국을 향한 애정을 멈추지 않고 있고, 또한 한국인들도 그에 대한 보답으로 여전히 히딩크를 떠받들고 찬양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트루시에에 대하여 이렇게 하지 않고 있고, 트루시에 본인도 일본에 대하여 훈훈한 감정은 딱히 없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트루시에 역시 일본의 첫 16강이자 월드컵 9위를 기록한 만큼 처음엔 나름 명장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라이벌이자 공동 개최국인 대한민국이 같은 날 저녁에 16강에서 이탈리아를 깨고 준준결승전(8강)에 오르더니 나흘 뒤에는 스페인까지 격파하며 준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자, 그 때부터 갑자기 일본 내 여론이 180도 돌변한 것이었다. 어제까지 명장이었던 트루시에는 히딩크로 인해 갑자기 희대의 졸장으로 전락해버렸고, 일본인들은 "한국은 우리보다 늦게 감독을 선임했고 대진도 우리보다 더 어려웠는데도 4강까지 올라갔는데 트루시에 넌 16강에서 떨어지니?"라면서 트루시에를 향해 온갖 질타를 보냈다.[8]

즉, 히딩크는 4강 신화를 계기로 본인의 커리어 반전을 이뤄낸 것은 물론 세계적인 명장으로 인정받고 있고 현재도 변함없이 한국에 애정을 보이고 있는 것에 한국인들도 히딩크를 존경하고 있지만, 트루시에는 일본의 첫 승점, 첫 승, 첫 토너먼트 진출에 16강전 탈락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인 16강 9위임에도 불구하고[9] 일본인들의 대접이 저러니 일본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3.4. 카타르 대표팀

2003년 7월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2004 중국 아시안컵에서 16개국 본선 A조에 속해 약체 중에서도 최약체인 인도네시아에 1:2로 패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 경기 결과 하나로 인하여 바로 해임되었다. 이후 팀은 바레인을 상대로 1:1 무재배, 홈팀 중국에 0:1로 져서 대회 14위로 8강 실패가 확정되었다. 사실 카타르에서는 그동안 영 좋지 않은 모습만 많이 보였었다.

3.5. 거듭되는 실패

카타르에서의 대실패 이후 그는 2004년 11월 프랑스로 돌아가 당시 1부리그에 있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감독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적 부진에 비셴테 리사라수와의 불화로 인해 이듬해 6월에 해임되어 야인으로 보내는 동안 각종 대표팀과의 링크를 한 몸에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았음에도 개인적인 부상 치료를 사유로 거절하였으나, 사실상 다른 팀을 맡기 위한 핑계거리에 불과했다.[10] 그 팀은 반갑게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인데,[11] 전성기를 보냈던 아시아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는지 트루시에 본인도 강한 관심을 표했으나, 한국측에서는 최근까지 일본 감독이었던 커리어에 히딩크보다 한두수 아래인 트루시에를 데려오는 것에 어려움을 표시하였고, 대신 히딩크 이후 이어온 더치 커넥션을 이어가기로 결정한다. 그 결과 네덜란드 출신의 딕 아드보카트의 선임으로 한국행은 무산되었다. #

그 대신 머지 않아 2005년 10월,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직장을 새로히 구했으나, 마찬가지로 악명 높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고질병인 해당국 축협과의 불화로 인해 불과 2개월만에 경질되었다.[12]

3.6. 다시 아시아로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가 2008년 FC 류큐의 감독으로 부임해 6년만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2010년까지 팀을 지휘하다가 2013년까지 선전 FC의 감독을 하게 되었다. 2014년 튀니지 리그인 스팍시엔에 잠깐 있었으나 그해 12월 2일에 항저우 뤼청의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다시 동아시아로 돌아왔다. 그러나 2015년 7월 1일에 사퇴했다.

2012년 신태용 감독이 사임한 성남 FC 감독으로도 하마평에 오른적도 있었다.# 그리고 2010년 모처럼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던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접촉했던 사실도 보도되었으나, 본인이 고사했던 모양.#

2019년 9월, 베트남 U-18 대표팀의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베트남 성인 대표팀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태국전을 앞두고는 일본 축구에 대한 이해가 밝다는 점을 활용해 태국 니시노 아키라의 전술을 분석해 박항서 감독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2023년 1월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계약 종료 이후, 수많은 후보들 중 차기 감독에 선임될 확률이 가장 높을 것으로 점쳐졌다. 베트남에서 유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장기간 활동한 덕에 현지 축구 사정에 이미 익숙하다는 점이 확실한 강점이다. 이미 내정까지 완료했지만, 박항서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오피셜을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3.7. 베트남 대표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트루시에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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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행정가 경력

2018년 8월부터 2019년까지 베트남 대표팀의 유소년 트레이닝센터인 'PVF 아카데미'의 기술위원장을 맡았다. 아시아에서 잔뼈가 굵은 장본인으로서 중국 대표팀의 현실에 쓴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1#2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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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탈리아계 프랑스인[2] 기사.[3] 월드컵 우승국, 각 대륙컵 우승국, 개최국이 진출해서 출전하는 8개국 대회로, 일본은 2000 아시안컵 우승국 자격과 2002 FIFA 월드컵 개최국 자격으로 진출. 대한민국도 개최국이므로 마찬가지로 진출했으나, 한국은 당시 거스 히딩크가 갓 부임한 시점이라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첫 상대였던 프랑스에 0:5로 깨진 것이 화근이 되어서 승점 6점 2승 1패를 기록하고도 골득실에서 밀리는 바람에 조 3위 대회 5위로 아쉽게 4강 진출 실패라는 성적으로 조기에 대회를 마쳤다.[4] 어차피 일본은 4강 확정 상태였고, 브라질도 일본한테 패하지만 않는 이상 4강은 확정이었으나, 브라질은 FIFA A매치 대회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팀에 무승부로 승점을 헌납하였다. 근데 이 때의 브라질 대표팀은 말이 브라질이지 2002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서부터 부진했는데, 이게 컨페드컵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약체 캐나다와도 비기고 3위 결정전에서는 호주에게도 패하는 등 동네북 노릇을 제대로 했었다. 만일 일본이 이름값에 쫄아서 조심스런 경기만 하지 않았다면 도리어 이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브라질은 2002 월드컵에서 전력이 부활하여 7전 전승 우승을 달성했다.[5] 다만 이 골은 오프사이드 논란이 있었기에 빛이 바랜 부분도 없지 않다. 지금처럼 공격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관여 시에만 오프사이드를 선언하도록 한 것은 2005년에 개정된 룰이 적용되면서부터이다. 파일:Screenshot_20221216-043554_Gallery.jpg 당시에만 해도 32강 H조 일본 대 러시아 경기에서 이나모토 준이치의 결승골은 논란이 되었다. 다른 일본 선수가 명백히 오프사이드에 있었으나 오프사이드 선언을 안 했다. 2002 월드컵 당시에는 오프사이드 위치에 선수가 있다면 공을 받지 않더라도 짤없이 오프사이드였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폭동이 일어났고, 더불어서 안 그래도 반일감정이 극심한 나라인 러시아는 이 사태 이후로 더 일본증오하게 되었다.[6] 파일:Screenshot_20221216-044418_Gallery.jpg 특히 한국은 3위 결정전이었던 터키전에서 안정환이 득점을 하였으나, 이천수가 하필 오프사이드라인에 있어서 득점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아버린 통에 득점 인정을 못 받았다.[7] 이는 일본으로써는 대단한 행운이나 마찬가지였다. C조 1위가 브라질이었는데, 만약 브라질과 맞붙었더라면 일본은 대패를 당하고도 남았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실제로 조별리그에서 브라질과 한 조가 되었는데, 선제골을 넣고 4골을 내리 먹혀 1:4로 역전패했다. 그래서 일본은 브라질을 피하고 터키와 싸우게 된 것을 호재로 생각했지만, 터키가 무려 대회 3위를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이는 일본만의 대단한 착각이었다.[8] 트루시에 역시 AFC 아시안컵 우승과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을 거둘 만큼 일본 축구의 기틀을 다질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한 위상을 가진 FIFA 월드컵에서의 성적은 분명 감독 선임 기간이 늦었던 한국과 비교하면 아쉬운 성적을 낸 것은 사실.[9]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일본은 8년 뒤, 또 12년 뒤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하지만, 모두 패해 같은 기록 9위를 기록한다.[10] 또한 나이지리아와는 옛날에 팀을 맡아서 그들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축협과의 불화 때문에 억울하게 해고당해서 그 악감정이 남아있었을 수밖에 없었기에 나이지리아로는 죽어도 두번 다시는 안 가고 싶었을 것이다.[11] 당시 조 본프레레 경질 직후 공석 상태.[12] 중둥,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은 유럽과의 근접성 등으로 인한 잦은 교류 등으로 선수의 수준, 전술의 수준은 꽤 높다고 평가 받으며, 유럽과 비행거리도 길지 않고, 중동 국가 출신들이 유럽에 하도 많아 네트워크도 잘 되는 편이라 유럽권 감독들에게는 제법 선호된다. 하지만 정말 사우디, UAE 등 부국들이 아니면 후진국 국가들의 열악한 재정 등으로 인해 훈련 환경 등이 매우 열악하며, 감독에게 전술의 자유를 주지 않고 선수 선발 등에도 과하게 관여하는 등 후진국의 단점이 극심한 것으로 악명높다. 특히 후진국의 낮은 행정 능력으로 1류 선수들도 비자 등의 문제로 출전을 못 하게 되거나, 급여 체불 등은 덤. 반면 동아시아의 경우 거리와 문화 차이 등이 크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행정 수준, 양호한 훈련 환경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