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리 앙리의 역임 직책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둘러보기 틀 모음 | |||
대표팀 | ||||
클럽 | ||||
37대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
릴리앙 튀랑 (2008) | ▶ | 티에리 앙리 (2008~2010) | ▶ | 파트리스 에브라 (2010) |
아스날 FC 주장 | ||||
파트리크 비에라 (2002~2005) | ▶ | 티에리 앙리 (2005~2007) | ▶ | 윌리엄 갈라스 (2007~2008) |
티에리 앙리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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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 2003 · 2006 | |||
| 2003-04 · 2004-05 | |||
| 2001-02 · 2003-04 · 2004-05 · 2005-06 | |||
| 2002-03 · 2003-04 | |||
| 2003-04 · 2005-06 | |||
| 2002-03 · 2003-04 · 2005-06 | |||
[[틀:프리미어 리그 도움왕(2000년대)| 2002-03 PL 도움왕 ]] | | |||
베스트팀 | ||||
| 2001 · 2002 · 2003 · 2004 · 2006 | |||
| 2000-01 · 2001-02 · 2002-03 · 2003-04 · 2004-05 · 2005-06 | |||
| | | | |
[1] |
2003 Ballond'or | ||
수상 파벨 네드베드 | 2위 티에리 앙리 | 3위 파올로 말디니 |
2006 Ballond'or | ||
수상 파비오 칸나바로 | 2위 잔루이지 부폰 | 3위 티에리 앙리 |
2003 FIFA 올해의 선수 | ||
수상 지네딘 지단 | 2위 티에리 앙리 | 3위 호나우두 |
2004 FIFA 올해의 선수 | ||
수상 호나우지뉴 | 2위 티에리 앙리 | 3위 안드리 셰브첸코 |
2000 Onze d'Or | ||
Onze d'Or | Onze d'Argent | Onze de Bronze |
지네딘 지단 | 루이스 피구 | 티에리 앙리 |
2004 Onze d'Or | ||
Onze d'Or | Onze d'Argent | Onze de Bronze |
디디에 드록바 | 티에리 앙리 | 호나우지뉴 |
2005 Onze d'Or | ||
Onze d'Or | Onze d'Argent | Onze de Bronze |
호나우지뉴 | 스티븐 제라드 | 티에리 앙리 |
Player of the Year 2004 | ||
수상 호나우지뉴 | 2위 티에리 앙리 | 3위 안드리 셰브첸코 |
Player of the Year 2006 | ||
수상 파비오 칸나바로 | 2위 사무엘 에투 | 3위 티에리 앙리 |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
2000 |
티에리 앙리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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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축구 감독 | ||||
<colbgcolor=#eeeeee> 이름 | 티에리 앙리 Thierry Henry | |||
본명 | 티에리 다니엘 앙리[2] Thierry Daniel Henry | |||
출생 | 1977년 8월 17일 ([age(1977-08-17)]세) | |||
일드프랑스 에손주 레쥘리스 |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틀:국기| ]][[틀:국기| ]][[과들루프| ]])[3] | |||
신체 | 키 188cm / 체중 83kg | |||
주발 | 오른발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해설가 | |||
소속 | <colbgcolor=#eee> 유스 | CO 레줄리 (1983~1989) US 팔레조 (1989~1990) ES 비리 샤티용 (1990~1992) 클레르퐁텐 (1992) AS 모나코 FC (1992~1994) | ||
선수 | AS 모나코 FC (1994~1999) 유벤투스 FC (1999) 아스날 FC (1999~2007) FC 바르셀로나 (2007~2010) 뉴욕 레드불스 (2010~2014) → 아스날 FC (2012 / 임대) | |||
감독 | 벨기에 대표팀 (2016~2018 / 수석 코치) AS 모나코 FC (2018~2019) 앵팍트 드 몽레알 (2019~2021) 벨기에 대표팀 (2021~2023 / 수석 코치) 프랑스 U21 대표팀 (2023~2024) 프랑스 U23 대표팀 (2024) | |||
국가대표 | 123경기 51골[4] (프랑스 / 1997~20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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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득점 | 411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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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방송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
아스날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프랑스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2위[6]인 선수로 아스날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2003-04 시즌 PL 무패 우승을 이끌었고 프랑스의 1998 월드컵 · 유로 2000 우승 및 바르셀로나의 2008-09 시즌 트레블에 공헌했다.
2. 유년기
1977년 8월 17일[7] 파리 근교 에손주(L'Essonne)의 도시 레쥘리스(Les Ulis)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모두 프랑스 해외 레지옹 출신으로 아버지는 과들루프 출신에 어머니는 마르티니크 출신이다. 출생지가 빈민가 지역이라 성장 환경이 좋지 않았다고 하며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리면서 악명을 떨쳤다고 전해진다. 이에 아버지는 앙리가 엇나갈까 두려워 축구를 가르쳤으며, 아버지와 함께 축구를 하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우게 된다.[8]3. 선수 경력
3.1. 클럽 경력
자세한 내용은 티에리 앙리/클럽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2. 국가대표 경력
자세한 내용은 티에리 앙리/국가대표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4. 플레이 스타일
어마어마한 스피드[9]와 공간 침투, 폭발적인 드리블 돌파, 골 결정력을 겸비한 2000년대 초중반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특히나 왼쪽 측면에서부터 찢고 들어가는 화려한 드리블과 정교한 볼 컨트롤 능력, 부드러운 퍼스트 터치, 동료와의 연계 플레이가 일품이었으며 주발인 오른발은 물론이고 왼발로도 날카로운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 수 있었던 앙리의 능력은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역대급 스트라이커라는 명성에 걸맞게 전성기 시절 많은 솔로 골[10]들을 선보였고, 경기가 잘 안 풀릴땐 대포알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갖추고 있었다. 이에 따라 역대 최다 기록인 네 번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그에 못지 않은 어시스트 능력도 있어서 메시가 합류하기 전에는 유럽 4대 리그에서 유일무이했던 20-20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특히 '앙리 존'이라고 불리는 골포스트 왼쪽 측면에서의 오른발 감아차기는 당대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으로 수많은 득점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처럼 부드럽고 정확한 킥으로 유명했으며 호나우두 부럽지 않은 폭발력과 침투력으로 1대1 상황을 만들고 골키퍼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구석에 꽂아버리는 슈팅이 일품이였다. 거의 양발 잡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왼발 킥도 정교했다. 직접 프리킥도 매우 잘 찼다.[11]
그리고 베르캄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원래부터 테크닉이 뛰어나서 자연스럽게 된 것인지 몰라도 플레이메이킹에도 상당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아스날이 베르캄프 & 앙리 시절부터 반 페르시 & 아데바요르 시절까지 4-4-2를 구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재다능한 공격수의 존재가 컸는데 그 시발점이 된 선수이기도 하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좌우 윙어들과 콤비네이션이다. 피레스나 융베리가 어그로를 끌면 그 공간에 앙리가 침투해서 득점을 한다거나, 그 역의 상황이 나오던가 하는 방식으로 득점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현재 4-3-3과 4-2-3-1에서 주로 보여주는 2선 윙어의 원형이라고 봐도 될 플레이를 한게 바로 과거의 아스날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앙리와 베르캄프가 있었다.[12] 앙리의 2002-03 시즌 20-20 기록은 심지어 프리미어 리그 어시스트 룰이 개정된 이후로도[13] 그대로 20어시스트로 기록되어있는 것으로, 전부 오픈 플레이에서 나온 어시스트라는 점에서 한 층 더 대단한 기록이다. 측면에서 축구를 시작한 만큼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는 사고방식이 생겼으며, 득점을 할 때 보다 어시스트를 기록할 때가 더 짜릿하다고 할 정도. 다만 이 때문에 스트라이커임에도 불구하고 득점 찬스에서도 동료를 더 찾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단점이라면 기껏 화려한 개인기로 상대 수비를 벗겨 놓고도 골문 앞에서 소녀슛으로 날려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14][15] 그는 '앙리 존' 위치에서 먼쪽 포스트로 정교하게 감아차는 슛을 선호했는데 이러한 기술적인 슛은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조금만 킥의 임팩트가 안좋아도 슛이 이상하게 나가기 쉽다.[16] 이처럼 기술적인 슈팅을 선호하는 선수 개인의 성향으로 인해 큰 경기[17]에서 화려한 테크닉으로 멋있게 상대 수비를 벗겨놓고도 키퍼한테 데굴데굴 굴러가거나 정면에 가서 안기는 마무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직까지도 아스날 팬들에게 통한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2005-06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도 에부에의 빠른 크로스를 순두부 터치 하나로 방향을 틀어 마르케스를 녹이며 1대1 찬스를 만들어놓고도 애매한 강도의 슈팅을 날려 발데스의 선방에 막혔고, 후반에도 결정적인 1대1 찬스에서 소녀슛으로 찬스를 놓쳤다. 가끔 경기에서 이런 비슷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국내 아스날 팬덤에서는 그냥 냅다 후리지 왜 만날 까리하게 차려다 기껏 만든 기회를 날리냐는 볼멘 소리까지 나왔을 정도... 한 마디로 아트 사커의 주포답게 아티스트적 기질이 있는 스트라이커였다.
플레이 스타일상 큰 키를 가진 드리블러라는 매우 희소성이 있는 스트라이커인 반면 박스 안에서 몸으로 버텨주는 능력이나 공중전 능력은 좋은 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앙리의 신장이 188cm에 80kg대 중후반의 체중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외인 부분이다. 앙리는 프리미어리그 통산 174골을 기록했는데, 이 중 헤더 골은 고작 6골 뿐이다. 실제로 앙리는 중앙에서 버텨주기보다는 측면에서 스리슬쩍 서 있다가 엄청난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을 이용해 중앙으로 밀고 들어오는 패턴이 많았다.[18] 다만 헤더 골이 적은 부분은 그가 속했던 아스날과 바르셀로나가 극단적으로 공중볼이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제로 국가대표팀에서는 적지 않은 수의 헤더 골을 넣었으며 이 골들도 좋은 헤더 기술과 긴 체공시간을 보여주는 골들도 제법 있었다. 그렇다고 프랑스도 아스날 정도가 아닐 뿐이지 잉글랜드처럼 공중전 능력이 필요한 팀도 아니었고 설사 필요하다고 해도 앙리는 트레제게라는 당대 최고 수준의 공중전 능력자를 파트너로 두고 있었다.
프랑스 대표팀에서는 클럽에서의 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적었다. 지단과 동선이 겹치는 측면이 있기도 했고,[19] 프랑스는 그가 아닌 지단을 위주의 전술로 짜여졌기 때문.[20] 물론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적었다는 것이지 국가대표팀에서 부진했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1998 월드컵[21], 유로 2000, 2006 월드컵에서 각각 3골씩을 기록하며 대회 베스트팀[22]에 선정되고, 2003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아예 골든볼과 골든슈를 동시 석권하기도 했다. 레 블뢰라는 거함의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앙리는 해줘야 될 몫은 충분히 해준 선수였다고 할 수 있다.
현존하는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들 중에서는 국가대표팀 후배 음바페와 레반도프스키가 이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을 비롯한 전체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국가대표팀 후배 음바페가 닮았다고 한다면, 페널티박스 안에서의 공간 침투나 동료와의 연계 플레이 그리고 다양한 지점에서 득점을 할 수 있는 능력은 레반도프스키가 많이 닮고 있다.[23]
5. 은퇴 이후
친정 팀 아스날에서 아르센 벵거 감독의 지도 아래 코치 연수를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일단 영국 스카이스포츠에서 게리 네빌과 제이미 캐러거와 함께 축구 방송 중계를 한다고 밝혔다.스카이스포츠와 코치직 겸직을 가능한 계약을 맺었기에 웨일즈 축구협회에서 지도자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한 연수를 받기 시작했고, 2015년 2월 20일부로 아스날의 U-16 팀 코치에 부임했다.
월드컵 기간에 BBC에 분석가로 출연했지만, 스카이 스포츠가 워낙 거액을 베팅해서 스카이스포츠로 가게 되었다. 기존 스타 분석가인 게리 네빌이나 제이미 캐러거보다 두 배가 넘는 연봉을 받는다.
해설가를 맡은 이후 문제가 될 만한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몇 번 있다. 치차리토가 극적인 골을 넣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세리머니를 하자 도움을 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챙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는데, 별 문제 없지 않느냐는 의견이 우세했다.
첼시가 최근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팀들 중 최고 수준이 아니었다고 비꼬았다. 이건 첼시 팬들도 동의하는 바였다. 당시 첼시의 챔스 우승은 기적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친정팀인 아스날의 스트라이커인 올리비에 지루에 대해서는 영입으로 대체가 필요하다고 해 구너들의 갑론을박을 불러일으켰다. 지루는 경기력이 좋을 때에도 팬들 사이에서 평가가 엇갈렸다. 한계가 명확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이었다. 2015년 후반기에 들어서 거의 맞는 말로 판명이 되었다. 첫 사건인 치차리토와 호날두 사이는 여전히 그냥 상관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나 첼시가 진짜 몰락했고 지루도 탄식형 스트라이커로 돌아오면서 뒤의 두 사건은 어느 정도 맞는 말임이 증명됐다.
2017년 여름에는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의 리버풀 이적을 두고 리버풀이 뭣하러 저딴 무장점 선수한테 거액을 쓰냐고 깠는데, 이에 체임벌린은 시행착오 끝에 리버풀에서 부활한 후 앙리를 까기도 했다. 비난이라기보다는 대충 "형이랑 같이 뛴 동생한테 어쩜 그런 소리까지 할 수가 있냐"는 어투에 가깝다. 인터뷰를 보면 게리 네빌한테도 똑같이 까였지만 그에게는 별말 없었다.
대신 앙리는 나중에 리버풀에서 옥스의 활약은 훌륭하다며 극찬했고 "사람들이 내가 한 말을 오해하는데 나는 옥스가 아스날에서 그냥 맞지 않았던 선수라고 얘기했던 것 뿐이다. 리버풀에서는 그가 최고로 활약할 수 있는 롤을 알아냈고 그는 훌륭한 활약을 하고 있다"며 옥스를 비난했던게 아니라고 했다.#
2016년 3월에는 'UEFA A 라이선스'를 취득하였다. UEFA A 라이선스는 국가대표팀을 맡을 수 있는 최고 레벨의 축구 코치 라이선스 중에 하나다. 최고 라이선스인 만큼 기존의 Level 1, 2, 3와는 달리 코스도 Part 1(12일), Part 2(8일)로 나누어져 있으며, 보통 2년 동안 진행된다. 앙리와 함께 교육을 수강했던 스완지 시티 레전드 윌 폴리가 현지 언론을 통해 "A급 자격증은 1년 동안 180시간의 강의를 수료해야 취득할 수 있다. TV 해설과 외부 활동으로 바빴던 앙리가 이렇게 빨리 자격증을 획득할 리 없다”라고 문제를 제기했었다. 폴리는 "앙리가 B급 라이선스를 취득하면서 동시에 A급에 필요한 자격을 충족시킨 것은 어려운 일이다”라며 “교육을 주관했던 웨일스축구협회(FAW)는 앙리가 유명인사라는 점을 고려해 특혜를 주었을 것이다"라고 밝히기도 해서 논란이 있기도 하였다.이후 아스날의 U-18 팀 코치 제의를 받았으나 방송 활동에 제한을 건다는 이유로 거절한 후, 2016년 8월 26일 로베르토 마르티네스가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한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한편 스카이스포츠의 해설위원도 겸직하고 있는 앙리는, 9월 19일 프리미어 리그 5라운드 토트넘과 선덜랜드의 경기를 보고 토트넘에서 활약할 만한 선수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손흥민이#
다른 해설가들과 달리 감독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축구팬들에게 게리 네빌이나 캐러거보다 아쉽다는 평을 들었었지만, 네빌의 발렌시아 감독 시절 이후, 앙리처럼 감독의 분야는 쉽게 비판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24] 하지만 그 점때문에 해외팬들에게는 게리 네빌이나 캐러거급의 해설가로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마침내 감독직을 위하여 해설 위원직을 관두기로 결심했다.
6. 지도자 경력
6.1. 벨기에 대표팀 수석 코치
수석 코치로 처음으로 맞는 2016년 9월 2일 3시 45분(한국시간)에 보두앵 국왕 경기장(King Baudouin Stadium)에서 열린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A매치 평가전에서 벨기에 대표팀은 다비드 실바에게 멀티골을 내주며 0:2로 패했다.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벨기에의 4강 진출을 도왔다. 4강 맞대결 상대가 프랑스. 조국과의 경기에서 앙리가 카메라에 잡힐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벨기에는 프랑스에게 1:0으로 패했다.
그리고 이때 느낀 바가 있는지 몰라도, 겸직으로 있었던 방송국 해설자 자리를 벗게 되었다. 기존 국대 코치직만이라면 굳이 옷을 벗을 필요가 없었는데, 굳이 벗은 것으로 봐서는 본격적으로 감독직을 맡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현재 백수인 아르센 벵거와 함께 본격적으로 클럽에서 감독 연수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때 보르도 감독 부임이 유력시 되었으나 최종적으로 거절함으로서 무산되었다.
6.2. AS 모나코 FC 감독
2018년 10월 13일, AS 모나코 감독으로 부임했다.# 계약기간은 2021년까지 3년간이다. 레오나르두 자르딤을 경질한 AS 모나코와 아스톤 빌라가 앙리에게 접근했으나, 앙리는 AV를 거절하고 모나코와 합의한 것이다.#감독 데뷔전이었던 리그 1 10라운드 스트라스부르전에서 1-2 패배를 거두었다.
이어진 디종와의 리그 경기와 클뤼프 브뤼허와의 챔스 조별 예선 3차전에서 각각 2-2와 1-1로 연달아 비겼다. 이후 스타드 드 랭스와의 리그 경기에서 0-1로 패하더니 챔스 조별 예선 4차전에서는 조에서 최약체라고 평가받은 클뤼프 브뤼허에게 4골을 내주며 0-4로 대패했다. 감독 부임 이후 5경기에서 2무 3패 4득점 10실점을 기록하며 처참한 첫 한 달을 보내고 있다. 더군다나 11월 A매치 휴식기 전에 갖는 마지막 리그 경기에서 PSG를 만나 0-4로 대패했다.
바로 다음 경기 캉 원정에서 1-0으로 이기며 첫 승을 신고하였다. 이후 몽펠리에에게 1-2 패배 후 강등권에 턱걸이하고 있던 아미앵 원정에서 2-0으로 승리하며 격차를 조금씩 좁히고 있다.
17라운드가 끝난 현재 모나코는 승점 13점으로 19위에 위치해 있으며, 17위 아미앵과는 3점차다.
모나코에 부임할 당시 모나코의 부상자 수는 무려 13명이나 되었다. 주전, 비주전 할 것 없이 스쿼드가 초토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경기력이 너무 안 좋다. 더구나 18라운드에 주전을 여럿 가동한 스쿼드를 썼는데도 리그 최하위인 갱강한테 홈에서 0-2로 완패당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결국 1월 24일, 부임 후 4개월 만에 감독직에서 직무 정지되면서 사실상 경질되었다. 후임으로는 또 레오나르두 자르딤이 임명되었다.
앙리가 첫 감독직을 처참한 실패로 마무리 짓게된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자신의 선수 시절 역량과 현 선수단의 역량 차이를 생각하지 못하고 동일시한 점이 가장 크다. 스타 출신 감독이 실패하는 이유로 위와 같은 이유가 많이 꼽히고 있는데 앙리도 이와 비슷한 테크를 타면서 물러났다.
실제로 앙리는 선수들이 부족한 플레이를 펼칠 때 마다 공개석상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투로 선수들을 비판했는데 이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감독이 됐을때 범하는 실수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대외적으로 선수 플레이에 대한 비판을 일삼다 보니 선수들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은 당연지사고 성적도 악화일로를 걸어 결국 초라하게 경질되며 AS 모나코 감독 생활을 끝내야만 했다.
다만, 당시 같은 선수 시절 동료이자 호흡을 맞췄던 지단은 같은 환경에서도 다른 성적을 내며 레알 마드리드의 명장이 되었기에, 비교가 되며 까였다. 거기에 대표팀 선배인 데샹도 선수들을 잘 조합하면서 프랑스 국대의 명장이 되었기에 더욱 까였다.
더 자세한 것은 한준희와 장지현이 분석한 ''104일 천하' 앙리 감독의 리더십의 문제는?'을 보면 앙리 감독의 실패 이유를 분석했으니 참고.
여담으로 프랑스 풋볼에서 4월 1일 발표된 2018-19 시즌 축구 감독 연봉 순위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디에고 시메오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前 감독이었던 주제 무리뉴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6.3. 앵팍트 드 몽레알 감독
모나코에서의 치명적인 실패로 당분간 감독직 복귀가 어려우리라 예상되었지만, 2019년 11월 14일(현지시각), MLS의 앵팍트 드 몽레알(몬트리올 임팩트)에서 앙리가 신임 감독으로 부임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임기는 2020년부터 2년동안이며 2022년에 계약 연장을 할지 선택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되었다고 한다.2021년 2월 잉글랜드 챔피언십의 본머스에서 감독 제의를 받았다. 2021년 2월 26일, 앞으로는 런던에 사는 자녀들에게 충실하고 싶다며 사임 의사를 밝히고 앵팍트 드 몽레알과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그래서 잉글랜드 내 리그 감독 복귀설이 더더욱 신빙성을 얻고 있다.
6.4. 벨기에 대표팀 수석 코치 2기
유로 2020을 앞두고 다시 벨기에 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복귀했다.1월달부터 그가 지롱댕 드 보르도의 후임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2022년 월드컵 종료 이후 수석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6.5. 프랑스 U21, U23 대표팀 감독
2023년 3월, 프랑스 축구 협회가 프랑스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제의했으나 앙리가 거절했다는 보도가 있었다.6월에는 PSG와 연결되던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의 사단에 수석 코치로 합류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으나, 결국 나겔스만 감독이 PSG와 협상이 틀어지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2023년 8월 21일, 프랑스 축구협회가 티에리 앙리를 U-21 남자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계약 기간은 2년으로 2025년 여름까지.#
그러나, 오스트리아에게 평가전에서 0-2로 패한 다음에 가진 한국과의 홈경기 평가전에서 0-3으로 참패하며 평판이 날이 갈수록 추락 중이다. 풋 메르카토'는 "앙리 감독이 이미 첫 번째 폭풍을 경험하고 있다. 앙리 감독이 이끄는 프랑스 U-21 대표팀은 이번 A매치 기간 동안 2연패를 당했다. 오스트리아전 이후 앙리 감독은 이미 선수들의 태도에 놀란 상태였다. 한국을 상대로는 수많은 기회를 만들었지만, 결국 총 5골을 허용한 채 A매치 기간을 마무리하게 됐다"라고 했다. # 아이러니하게도 상대 감독이었던 황선홍 역시도 연령별 대표팀 감독 임기 초반에는 졸전에 졸전을 거듭하며 비판을 받았던 바 있다. 하지만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반전의 여지를 마련한 만큼, 앙리도 비슷한 길을 걸을지 주목된다. 사실상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경기력마저 좋지 않다면 앞으로 앙리의 감독 커리어는 끝장 날 가능성도 크다.[25]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우승을 위해, 와일드카드로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장필리프 마테타, 로익 바데를 선발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5연승을 달렸으나 결승전에서 스페인에게 패해 은메달에 그쳤다.
2024년 8월 20일, 사임을 발표했다.#
평가전에서 올림픽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한 황선홍의 대한민국에게 패할 정도로 감독으로서 굴욕을 맛봤는데 메달을 따내며 어느 정도 체면치레는 성공했다. 다만 결승에서 대량 실점을 하는 등 아쉬운 운영을 하면서 감독으로서의 앙리는 좀 더 분발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올림픽이 되었다.
7. 기록
7.1. 선수
7.1.1. 통산 기록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컵 | 대륙대회 | 총 | ||||||||
경기 | 득점 | 어시 | 경기 | 득점 | 어시 | 경기 | 득점 | 어시 | 경기 | 득점 | 어시 | |||
1994-95 | AS 모나코 | 리그 1 | 8 | 3 | 1 | 0 | 0 | 0 | 0 | 0 | 0 | 8 | 3 | 1 |
1995-96 | AS 모나코 | 리그 1 | 18 | 3 | 5 | 3 | 0 | 1 | 1 | 0 | 0 | 22 | 3 | 6 |
1996-97 | AS 모나코 | 리그 1 | 36 | 9 | 8 | 3 | 0 | 1 | 9 | 1 | 4 | 48 | 10 | 13 |
1997-98 | AS 모나코 | 리그 1 | 30 | 4 | 9 | 5 | 0 | 2 | 9 | 7 | 1 | 44 | 11 | 12 |
1998-99 | AS 모나코 | 리그 1 | 13 | 1 | 3 | 1 | 0 | 0 | 5 | 0 | 2 | 19 | 1 | 5 |
합계 | AS 모나코 | 리그 1 | 105 | 20 | 26 | 12 | 0 | 4 | 24 | 8 | 7 | 141 | 28 | 37 |
1998-99 | 유벤투스 FC | 세리에 A | 16 | 3 | 2 | 3 | 0 | 0 | 1 | 0 | 0 | 19 | 3 | 2 |
합계 | 유벤투스 | 세리에 A | 16 | 3 | 2 | 3 | 0 | 0 | 1 | 0 | 0 | 19 | 3 | 2 |
1999-00 | 아스날 FC | 프리미어 리그 | 31 | 17 | 9 | 5 | 1 | 0 | 11 | 8 | 2 | 47 | 26 | 11 |
2000-01 | 아스날 FC | 프리미어 리그 | 35 | 17 | 3 | 4 | 1 | 0 | 14 | 4 | 0 | 53 | 22 | 3 |
2001-02 | 아스날 FC | 프리미어 리그 | 33 | 24 | 5 | 5 | 1 | 2 | 11 | 7 | 0 | 49 | 32 | 7 |
2002-03 | 아스날 FC | 프리미어 리그 | 37 | 24 | 20 | 6 | 1 | 1 | 12 | 7 | 2 | 55 | 32 | 23 |
2003-04 | 아스날 FC | 프리미어 리그 | 37 | 30 | 9 | 4 | 4 | 2 | 10 | 5 | 3 | 51 | 39 | 14 |
2004-05 | 아스날 FC | 프리미어 리그 | 32 | 25 | 15 | 2 | 0 | 1 | 8 | 5 | 1 | 42 | 30 | 17 |
2005-06 | 아스날 FC | 프리미어 리그 | 32 | 27 | 7 | 2 | 1 | 0 | 11 | 5 | 2 | 45 | 33 | 9 |
2006-07 | 아스날 FC | 프리미어 리그 | 17 | 10 | 6 | 3 | 1 | 1 | 7 | 1 | 0 | 27 | 12 | 7 |
합계 | 아스날 FC | 프리미어 리그 | 254 | 174 | 74 | 31 | 10 | 7 | 84 | 42 | 10 | 369 | 226 | 92 |
2007-08 | FC 바르셀로나 | 라리가 | 30 | 12 | 9 | 7 | 4 | 0 | 10 | 3 | 2 | 47 | 19 | 11 |
2008-09 | FC 바르셀로나 | 라리가 | 29 | 19 | 8 | 1 | 1 | 0 | 12 | 6 | 4 | 42 | 26 | 12 |
2009-10 | FC 바르셀로나 | 라리가 | 21 | 4 | 3 | 3 | 0 | 0 | 8 | 0 | 1 | 32 | 4 | 3 |
통산 | FC 바르셀로나 | 라리가 | 80 | 35 | 19 | 11 | 5 | 0 | 30 | 9 | 7 | 121 | 49 | 26 |
2010 | 뉴욕 레드 불스 | 메이저리그 사커 | 11 | 2 | 3 | 1 | 0 | 0 | 0 | 0 | 0 | 12 | 2 | 3 |
2011 | 뉴욕 레드 불스 | 메이저리그 사커 | 26 | 14 | 4 | 3 | 1 | 1 | 0 | 0 | 0 | 29 | 15 | 5 |
2012 | 뉴욕 레드 불스 | 메이저리그 사커 | 25 | 15 | 12 | 2 | 0 | 0 | 0 | 0 | 0 | 27 | 15 | 12 |
2013 | 뉴욕 레드 불스 | 메이저리그 사커 | 30 | 10 | 9 | 2 | 0 | 1 | 0 | 0 | 0 | 32 | 10 | 10 |
2014 | 뉴욕 레드 불스 | 메이저리그 사커 | 30 | 10 | 11 | 5 | 0 | 0 | 0 | 0 | 0 | 21 | 7 | 11 |
합계 | 뉴욕 레드 불스 | 메이저리그 사커 | 122 | 51 | 39 | 13 | 1 | 2 | 0 | 0 | 0 | 135 | 52 | 41 |
2011-12 | 아스날 FC (임대) | 프리미어 리그 | 4 | 1 | 0 | 2 | 1 | 0 | 1 | 0 | 0 | 7 | 2 | 0 |
합계 | 아스날 FC | 프리미어 리그 | 258 | 175 | 74 | 33 | 11 | 7 | 85 | 42 | 10 | 376 | 228 | 92 |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컵 | 대륙대회 | 총 | ||||||||
경기 | 득점 | 어시 | 경기 | 득점 | 어시 | 경기 | 득점 | 어시 | 경기 | 득점 | 어시 | |||
합산 | 581 | 284 | 160 | 72 | 17 | 13 | 139 | 59 | 24 | 792 | 360 | 197 |
7.1.2. 대회 기록
- 아스날 FC (1999~2007, 2011~2012)
- 프리미어 리그: 2001-02, 2003-04
- FA컵: 2001-02, 2002-03, 2004-05
- FA 커뮤니티 실드: 2002, 2004
- FC 바르셀로나 (2007~2010)
- 라리가: 2008-09, 2009-10
- 코파 델 레이: 2008-09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09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8-09
- UEFA 슈퍼컵: 2009
- FIFA 클럽 월드컵: 2009
- 뉴욕 레드 불스 (2010~2014)
- 서포터즈 실드: 2013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1998
- UEFA 유로: 2000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003
7.1.3. 개인 수상
- 발롱도르 2위: 2003 / 3위: 2006
- 발롱도르 드림팀 3군[26]: 2020
- FIFA 올해의 선수 2위: 2003, 2004
- FIFA 100: 2004
- FIFPro 월드 XI: 2006
- UEFA 올해의 팀: 2001, 2002, 2003, 2004, 2006
- UEFA 올해의 궁극적인 팀: 2015, 2017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98 (리저브), 2006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2000
- UEFA 유로 올타임 XI: 2016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골든볼: 2003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골든슈: 2003
- 유러피언 골든슈: 2003-04, 2004-05
- 디비지옹 1 올해의 영플레이어: 1996-97
-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 2003-04, 2005-06
-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2001-02, 2003-04, 2004-05, 2005-06
- 프리미어 리그 도움왕: 2002-03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00년 4월, 2002년 10월, 2004년 1월 · 4월
- 프리미어 리그 10시즌 어워즈 (1992-93~2001-02)
- 외국인팀: 2002
- 프리미어 리그 20시즌 어워즈 (2001-02~2011-12)
- 팬 선정 팀: 2012
- 패널 선정 팀: 2012
-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 2021
- PFA 올해의 선수: 2002-03, 2003-04
- PFA 팬 선정 올해의 선수: 2002-03, 2003-04
- PFA 올해의 팀: 2000-01, 2001-02, 2002-03, 2003-04, 2004-05, 2005-06
- PFA 세기의 팀[27]: 2007
- FWA 올해의 선수: 2002-03, 2003-04, 2005-06
- 코파 델 레이 득점왕: 2007-08
- 베스트 MLS 플레이어 ESPY 어워드: 2013
- MLS 베스트 XI: 2011, 2012, 2014
- MLS 올스타: 2011, 2012, 2013, 2014
- 베스트 MLS 플레이어 ESPY 어워드: 2013
- MLS 이달의 선수: 2012년 3월
- ESM 올해의 팀: 2003-04
- BBC 올해의 골: 2002-03
- 옹즈도르: 2003, 2006
- 옹즈 드 옹즈: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 프랑스 올해의 선수: 2000, 2003, 2004, 2005, 2006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8
- lFFHS 올해의 골: 2003
- lFFHS 세계 최고 득점자: 2003
- IFFHS 올타임 프랑스 드림팀: 2021
- 타임 100: 2007
7.2. 감독
7.2.1. 대회 기록
- 프랑스 U-23 축구 국가대표팀 (2024)
- 하계 올림픽 은메달: 2024
7.3. 수훈
-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 1998
8. 앙리에 대한 헌사
자세한 내용은 티에리 앙리/관련 언사 문서 참고하십시오.9. 여담
- 축덕으로 유명한 샤이니의 민호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이다. 2008년 6월,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바르셀로나의 티에리 앙리라고 답했다. 그리고 2022년 11월에도 여전히 민호 본인은 앙리의 팬이라고 밝혔다.
- 황희찬이 생각하는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이다. 틱톡을 통해 축구선수 이상형 월드컵을 진행했는데 현시대 최고의 아이콘들인 메시와 호날두를 제치고 티에리 앙리를 자신의 우상으로 꼽았다.
- ESPN이 선정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뽑혔다.
- 00-01 시즌부터 05-06 시즌에 이르기까지 6시즌 연속으로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전성기 시절 아스날에서 획득한 트로피 같은 것을 빼고 순수하게 앙리가 개인으로서 행사한 리그 지배력만 놓고 보더라도 프리미어리그 뿐만 아니라 유럽 축구사 전체를 통틀어도 손꼽힐 수준이다.
- 현재 PL에는 시즌 MVP가 4개 있다. 선수단이 뽑는 PFA 올해의 선수, 기자단이 뽑는 FWA 올해의 선수,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 팬들이 뽑는 PFA 팬 선정 올해의 선수. 이 네 개의 상을 한 시즌 동안 독식한 것은 2003-04 시즌 앙리와 2006-07, 07-08 시즌 호날두 둘뿐이었으며, 2013-14 시즌 수아레스가 MVP 4개를 석권하면서 겨우 3명으로 늘어났다.
- 면도기로 유명한 질레트의 광고 모델이었다. 앙리의 전성기 시절, 타 메이저 종목의 고트급 선수들인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와 함께 광고를 찍었는데 셋 중 가장 미남이라 그런지 앙리의 얼굴이 항상 메인으로 쓰였다.
- 아스날 시절 페널티 킥 키커 1순위였으나 본인이 얻어낸 PK를 본인이 차지 않는 징크스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PK를 얻어내면 2순위 키커였던 로렌이 차거나 3순위였던 로베르 피레스가 PK를 찼다. 만약 그런 징크스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기록보다 더 많은 골을 넣었을 것이다. 그 징크스 덕분에 많은 도움을 기록한 것도 있다.[28]
-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수염을 길러서 등장했는데, 2007년도 무한도전에 나왔던 그 앙리 맞나 싶을 정도다.
- 2003년에 영국의 모델인 니콜 메리와 결혼해서 딸을 낳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2007년에 이혼했다. 자녀는 딸 1명이었는데 딸의 이름은 테아 앙리이며 2005년생이다. 여담으로 앙리는 엄청난 딸바보라고 전해진다.
- 축빠가 많은 축구선수들 중에서도 최고의 축덕력을 자랑한다. 큰 경기는 물론 2~3부리그 경기까지 시청하는데, 심지어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후 처음으로 가진 심층 인터뷰에서는 영국 2부리그 축구경기를 틀어놓고 인터뷰를 할 정도.[29][30]
- 2016년 아스날과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리그 2차전을 앞두고 두 팀사이에 앙리를 둔 신경전이 펼쳐졌다. 서로 자신의 팀에 있을 때의 앙리의 활약상을 경쟁적으로 올린 것이다.
- 상복이 지지리도 없는 선수로 유명하다. 발롱도르에서 2위, 3위를 잇달아 기록하며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또한 FIFA 올해의 선수도 2년 연속으로 2위를 차지하면서 수상하지 못했다. 20-20을 기록했던 2002/03 시즌은 2003년 컨페드컵 우승과 득점왕, 골든볼을 석권하며 수상이 유력해 보였지만 아스날의 챔피언스 리그 부진으로 인해 네드베드에 밀려 발롱도르 2위에 그쳤으며(피올에서도 지단에게 밀려 2위), 아스날의 무패 우승을 이끌며 유러피언 골든슈, 프리미어 리그 골든부츠를 독식한 2003/04 시즌에는 수상이 유력했지만 안드리 셰브첸코, 데쿠, 호나우지뉴에 밀려 발롱도르 4위에 머문다(피올에서는 지뉴에게 밀려 2위). 마지막으로 상을 탈 기회였던 2006년에는 프랑스의 월드컵 결승을 이끌며 수상이 점쳐졌지만, 승부차기 끝에 준우승에 그치면서 다시금 실패한다. 발롱도르나 FIFA 올해의 선수상이 없다는 점이 아스날 역사상 최다득점자, 바르셀로나 드림팀의 주역, 프랑스에서 월드컵, 유로컵,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국대 탑 스코어러로 등극한 앙리의 무시무시한 커리어에서의 유일한 흠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요한 크루이프 등의 레전드들이 앙리를 위로할 정도.
- 인종차별 반대로도 유명해서, 인종차별반대 홍보대사도 하고는 했다. 그런 앙리가 오히려 인종차별을 했다고 한국내에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2005년 1월 설기현이 소속된 울버햄튼와의 FA컵 경기에서 닭 날개짓 흉내를 낸 것이 인종차별이란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제스처는 'poule mouillee'[31]로 당시 2부 리그 소속이던 울버햄튼이 10백, 속칭 버스축구를 구사하는 것에 대해서 겁쟁이라고 가볍게 놀린 표현으로 밝혀졌다.[32] 앙리 본인의 해명도 있어서 빨리 마감이 된 사건이었다.
- 과거에 국내에서는 의외로 해외에서의 위상보다 앙리를 저평가하는 기조[33]가 있었는데 최근에 골닷컴 선정 2000년대 최고의 공격수 1위에 뽑히기도 했고, UEFA 유로 2016을 앞두고는 선수들과 팬들이 함께 뽑은 역대 유로 베스트에서 앙리는 스트라이커 포지션뿐만 아니라 전 포지션을 보더라도 가장 높은 빈도로 뽑히기도 하였다. 괜히 앙리가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게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 손흥민을 대상으로한 다큐멘터리인 손세이셔널 - 그를 만든 시간에 게스트로 참여한다. 손흥민과 꽤 친분을 쌓아 온 듯하다.
- 대표팀 선배이기도 한 에릭 칸토나처럼 셀러브레이션이 과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한창 전성기 시절이던 아스날 시절에는 골을 넣어놓고 마치 당연히 넣을 것을 넣은 것마냥 무심한 제스쳐를 자주 취하곤 했다. 무한도전에 출연해서는 무도 멤버들에게 골 세리머니 시범을 요청하기도 했다. 진짜 쓸만한 걸 보여주면 실제 경기에서 골을 넣고 재연하겠다고 약속까지 했으나 하나같이 다 웃음끼가 다분한 막춤 및 저질댄스 향연이 이어지자 컬쳐쇼크를 받게 된 앙리는 결국 그 후 소감으로 'NO'라고 외치며 못하겠다고 선언...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선수와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2000년대 최고의 선수 2위, 공격수들 중 1위에 이름을 올렸다.
* 올 풋볼 팬 투표에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올타임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 2021년 신설된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에 앨런 시어러와 함께 최초로 헌액되었다.
- 한국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함께 한식당에 갔을 때 젓가락질도 능숙하고 김치 등의 한국 음식도 잘 먹었다는 박주영의 증언이 있었는데,[35] 이를 보면 상기한 손흥민의 다큐멘터리에서 보인 한국에 관심을 보이는 부분이, 아무리 못해도 앙리와 박주영이 함께 아스널에서 뛰던 시절 이전, 어쩌면 무한도전에 출연했던 시절 전후로 보인다.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정말로 무한도전 출연을 기점으로 한국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 선수 시절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대신 축구장에서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 2023년 현재는 코모의 지분 일부를 매입해서 축구단의 주주로도 활동하고 있다.
- 현역 시절 자신에게 가장 적대적이었던 원정 경기장은 바스티아의 홈구장이라고 한다.
- 현역 시절이나 지금이나 가까운 동료들에게 '티티'라는 귀여운 별명 혹은 애칭으로 자주 불리는 거 같다. 많이 귀여운 어감 때문에 앙리 본인은 약간 그렇게 불리기 싫어하는 느낌도 있지만 어차피 애칭이기 때문에 친한 사이끼리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느낌이다.
9.1. 무한도전 출연
아스날에서의 마지막 시즌이던 06-07시즌이 끝나고 리복 전속 모델로서 광고 행사 겸 내한하게 되었는데, 2007년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국민예능 무한도전에 출연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그 전에 무한도전에 먼저 출연했던 표도르 예멜리야넨코, 마리아 샤라포바 이상의 위상과 세계적 인지도를 가진 초특급 게스트의 출연이 성사되자 녹화 전부터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떠들썩한 관심을 받았는데, 당시 슈퍼 스타답지 않은 소탈한 모습과 엄청난 유머감각을 선보이면서 한국 내에서 언론의 큰 주목도와 무한도전을 즐겨보는 젊은 시청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며 주가가 올라갔다.[36]
앙리로서는 낯선 문화와 환경 내에서 그것도 대부분 통역과 바디랭귀지에 의존해야 했음에도 정말 프로 예능인 수준의 예능감을 뽐냈다고 평할 수 있는데, 앙리는 방송 내내 모든 멤버들의 성향에 맞는 상황극과 적절한 리액션을 구사하며 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무한도전에 출연한 지 6년이 지난 2013년에는 인터뷰를 통해 무한도전에 출연한 것을 매우 즐거운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무한도전 멤버들과 했던 약속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라고 밝혔다.[37] 여담으로 무도 출연 당시 했던 물공 헤딩을 앙리 측 에이전트에서 부상을 이유로 절대 하지 말라며 한사코 막았는데, 본인이 직접 재미삼아 경험해보고 싶다고 나서며 쿨하게 수행했다고 한다. 물론 제작진 측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앙리가 절대 다치지 않도록 공을 높이 안 띄우고 강도 조절을 했다고 한다.[38]
무려 그 유명한 티에리 앙리가 출연했다는 주목도를 거르고 봐도 일반 시청자들에게까지 레전드 특집 중 하나로 평가받을 정도로 방송 자체도 굉장히 재미있었고, 앙리의 적극적이고 친절한 태도 덕분에 해외 스포츠 스타 내한 및 국내 예능 출연의 모범적인 예시로 남아 있다. 덤으로 박지성의 친구인 파트리스 에브라도 앙리의 출연분을 보고 박지성에게 자기도 이 방송에 나가고 싶다고 어필을 했다고 한다.[39][40]
무한도전에 출연한지 17년이 지난 2024년 넥슨 아이콘 매치의 감독으로 섭외되어 방한 인터뷰를 마친 자리에서도 "무한~'"을 외치고 무한도전의 시그니처 포즈까지 보여주었는데, 티에리 앙리 본인 역시 무한도전 출연의 기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지금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고 언급했다. 인터뷰 영상 2분 41초에서 확인 가능.[41]그 외에도 방한 전 넥슨 아이콘 매치에 섭외차 슛 포 러브에서 런던 현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 때도 무한도전을 언급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인과 만날 때마다 무한도전 잘 봤다고 말해서 이젠 "예 무한도전 잘 알죠...."라고 넘어가려 할 지경이란다. 진지하게 싫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왜 나만 보면 아스날, 바르셀로나 이야기말고 무한도전 이야기부터 하냐, 다들 지겹지도 않니?' 정도의 농담이다. 8분 48초부터. 2007년에 한국에 오기 전엔 한식을 접한 적이 없었는데[42] 무한도전 촬영을 위해 방한했을 때 함께 있던 본인 스태프가 한식을 추천해 처음 먹어본 뒤로 열렬한 한식예찬론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냥 김치도 좋지만 겉절이도 좋아하고, 돌솥비빔밥과 누룽지, 갈비 등도 잘 알고 있었고, 뉴욕에서 5년동안 거주할 때도 코리아타운에 있는 모 한식당에[43] 주 2~3회씩은 꼭 갔다고 한다.
9.2. 헨리 드립
사건의 발단이 된 성지글내용인 즉슨 앙리의 친구 헨리가 어렸을 적에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여, 앙리가 헨리의 몫까지 뛰기 위해 유니폼 마킹에 'Henry'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이란 이야기다.
2006년 11월 19일, 네이버 지식iN에 "티에리 앙리는 왜 헨리(Henry) 유니폼을 입고 뛰느냐"는 내용의 질문에 문제의 답변이 달린 것이 그 시초였다. 상당수가 이에 낚이기도 했거니와 싸이월드와 여타 블로그에 뻘글감으로 올리기 좋았기에 퍼가는 사람 또한 많았다. 물론 현재는 Henry가 프랑스어 발음상 앙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44] 당시에는 영어 이외의 외국어 표기에 관심이 없었기에 발생한 하나의 해프닝이라 볼 수 있다.[45]
헨리 드립 설명 영상
이후 헨리 드립이 히트를 치며 한동안 다비드 비야는 데이비드 빌라[46], 뱅상 콤파니는 빈센트 컴패니, 솔샤르는 솔스크재어 등의 변형이 유행했다.
시간이 많이 지남에 따라 일찍 유명을 달리한 친구 드립은 유행이 지났지만 발음이 여러가지인 이름(단어)을 바꾸어 놀리는 드립은 살아남아 지금도 절찬리에 쓰이고 있다. 예시로 첼시에서 슈퍼 크렉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기량과 득점력을 자랑했던 윙어 에덴 아자르가 이적팀에서 부진하자 마드리드행 비행기에서 실종되고[47] '이든 하자드'라는 사기꾼이 아자르 행세를 한다는 드립이 유명하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노쇼 논란 이후 '날강두'라고 개명당하기도 했다.[48] 영어권 국적 선수라고 예외는 없어서, 가령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은 삽질할 때마다 '하리 카네'로 개명 당한다.
10. 같이 보기
1 라마 · 2 캉델라 · 3 리사라수 · 4 비에라 · 5 L. 블랑 · 6 조르카에프 · 7 데샹 ⓒ · 8 드사이 · 9 기바르쉬 10 지단 · 11 피레스 · 12 앙리 · 13 디오메드 · 14 보고시앙 · 15 튀랑 · 16 바르테즈 · 17 프티 18 르뵈프 · 19 카랑뵈 · 20 트레제게 · 21 뒤가리 · 22 샤르보니에 |
에메 자케 |
1 라마 · 2 캉델라 · 3 리사라수 · 4 비에라 · 5 블랑 · 6 조르카에프 · 7 데샹 ⓒ · 8 드사이 · 9 아넬카 10 지단 · 11 피레스 · 12 앙리 · 13 윌토르 · 14 미쿠 · 15 튀랑 · 16 바르테즈 · 17 프티 18 르뵈프 · 19 카랑뵈 · 20 트레제게 · 21 뒤가리 · 22 라메 |
로저 르메르 |
1 랑드로 · 2 붐송 · 3 리사라수 · 4 비에라 · 5 갈라스 · 6 마켈렐레 · 7 피레스 · 8 드사이 · 9 사하 10 지단 ⓒ · 11 윌토르 · 12 앙리 · 13 실베스트르 · 14 로탕 · 15 튀랑 · 16 바르테즈 · 17 다쿠르 18 페드레티 · 19 사뇰 · 20 트레제게 · 21 말레 · 22 고부 · 23 쿠페 |
자크 상티니 |
1 랑드로 · 2 붐송 · 3 아비달 · 4 비에라 · 5 갈라스 · 6 마켈렐레 · 7 말루다 · 8 도라수 · 9 고부 10 지단 ⓒ · 11 윌토르 · 12 앙리 · 13 실베스트르 · 14 사하 · 15 튀랑 · 16 바르테즈 · 17 지베 18 디아라 · 19 사뇰 · 20 트레제게 · 21 심봉다 · 22 리베리 · 23 쿠페 |
레몽 도메네크 |
[1] UEFA에서 진행한 팬 투표[2] 외래어 표기법상의 표기법이며 실제 발음은 프랑스어의 발음 특성상 '티에리 앙리'보다 '띠에히 엉히'에 더 가깝게 들린다.[3] 해당 영상에서 앙리 본인이 카리브해 출신이라 카리브해 음식이 고향 음식이라고 간접적으로 언급한다.[4]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출전 4위, 득점 2위[5] 앙리는 마르코 반 바스텐을 존경해 국가대표와 클럽에서 반 바스텐의 12번을 달고 뛰었다. 앙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14번은 요한 크루이프의 번호로 유명하기 때문에 연결 짓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아스날 이적 당시 12번을 크리스토퍼 레라는 예전 동료가 달고 있는 바람에 그냥 고른 번호라고 본인 트위터에서 인증했다. ## 이보다 앞서 방한 당시 가진 서형욱과의 인터뷰에서도 크루이프와는 무관하다고 밝힌 바 있다. #[6] 1위는 올리비에 지루.[7] 프랑스의 축구 선수 윌리엄 갈라스와 생일이 같다. 1992년에는 클레르퐁텐 유소년 구단에서 잠시 같이 있었고 나중에 아스날에서 재회한다.[8] 하지만 앙리의 아버지는 아들이 특별한 선수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가끔 "그렇게 잘하지는 못하네"라고 혼잣말을 했었다고 한다. 의도치 않았지만 앙리는 이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렸다.[9] 1998년에 기록했던 최고 속도가 39.2km/h라고 한다. 이게 얼마나 빠른거냐면 30m 기록이 3초 후반인 그 빠르다던 호베르투 카를루스와의 속도 경합에서 어렵지 않게 압도하는 장면이 많았으며, 역대 최고의 스프린터인 우사인 볼트의 최고 속력이 44.7km/h이며 또한 앙리 이후 프랑스의 빠른 공격수 계보를 이은 킬리안 음바페의 최고 속력인 38km/h도 상회한다. 다만 순간 스피드는 음바페가 더 빠른 편.[10] 그 중 백미는 2005-06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산티이고 베르나베우에서 득점한 단독 돌파 골이라고 할 수 있다. 호나우두, 구티, 라모스 등의 수비를 차례로 무력화 시킨 후 낮게 깔아차는 왼발 슈팅을 꽂아 넣으며 갈락티코 군단을 무너뜨렸다.[11] 아스날에서는 프리킥, 코너킥 가릴 것 없이 세트피스 전담 키커였고, 프랑스 대표팀에서는 지단과 번갈아가며 찼다.[12] 참고로, 과거에는 이 롤을 베르캄프가 홀로 담당하였다. 이안 라이트나 니콜라 아넬카도 프리미어 리그 탑클래스의 선수이지만, 앙리처럼 경기 자체를 조율한다기 보다는 적극적인 침투로 득점에 강한 선수들이였다. 실제로 베르캄프는 자신의 최고의 공격 파트너는 앙리이지만, 앙리보다는 아넬카의 움직임이 더 직선적이어서 자신과 잘 맞았다고 말한 적도 있다.[13] 이전까지는 PK를 얻어서 다른 키커가 차서 넣거나, 키퍼나 골대에 맞고 튕겨나온 공을 다른 팀원이 차서 넣는 등 간접적인 경우에도 어시스트로 기록해주었다. 이를 2013-14 시즌에 바꾸면서 이전의 기록에도 소급 적용되었고, 호날두의 경우 2006-07 시즌 18어시로 도움왕이었으나 8개로 정정되기도 했다.[14] 챔피언스 리그, 월드컵, 유로 토너먼트 등에서도 좋은 경기력 대비 스탯 생산은 부족한 편이었던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15]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기록이 32경기 11골인데 4강과 결승전에서는 단 1골에 그쳤고, 토너먼트 대회 결승전 기록도 10경기 1골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국내 해축 팬덤에서 만들어진 밈이 바로 '앙리는 새가슴, 호두가 짱인디염'(...). 재미있는 사실은 그런 호나우두도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통산 40경기 14골에 그쳤을 만큼 부진해서 챔피언스리그로 많이 까인다는 것이다.[16] 이러한 슈팅이 성공하면 축알못도 짜릿하게 만드는 그림같은 골 장면이 만들어 지지만, 슈팅 임팩트가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어이없이 골키퍼에 품에 안기는 소녀슛이 될 수 있다.[17] 유로 2000 결승전이나 2006 월드컵 결승전, 두 번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등.[18] 과거 아스날의 4-4-2는 말이 4-4-2이지, 사실상 4-2-3-1에 가까운 컨셉이었다. 베르캄프가 공격형 미드필더의 플레이메이커와 센터포워드를 오가는 롤을 맡았다.[19] 지단도 왼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왼쪽 미드필더로 자주 나오기까지 했을 정도.[20] 그러나 지단 위주의 전술로 월드컵 우승과 준우승, 유로 우승을 달성한 반면에 지단이 부상 당했거나 없을 때의 프랑스는 2002 월드컵, 유로 2008, 2010 월드컵에서 모두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기에 지단을 위주로 전술을 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21] 다만 이 대회에서 프랑스의 주전 스트라이커는 앙리가 아닌 기바르쉬였다.[22] 1998 월드컵은 리저브팀에 선정.[23] 실제로 레반도프스키가 꼽은 자신의 우상이 바로 티에리 앙리다.[24] 게다가 현실적으로 앙리가 감독 비판을 한다는건 아르센 벵거까지도 비판을 하게 된다는 점까지도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감독 비판을 안 할 수밖에 없다.[25] 정작 한국에서는 황선홍 감독이 엉망진창의 경기 운영으로 40년 만에 대한민국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에 기여하면서, 이런 황선홍에게 대패한 앙리의 역량도 심각하다는 평이 지배적인 상황이다(...).[26] LW 3위[27] 1907~2007, 1997~2007[28] 앙리가 뛰던 시절 프리미어리그에서는 PK를 얻어낸 것만으로도 도움으로 인정됐다. 현재는 어시스트 규정이 바뀌어서 도움에 포함되지 않는다.[29] 그렇지만 이건 선수들 취향에 따른 문제로, 축구 별로 안 보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앙리처럼 지독하게 보는 선수도 많다. 예를 들면 에투는 경기의 흐름을 관찰하기 위해 시간 나면 그냥 축구 나오는 아무 채널이나 틀어서 세계 어떤 리그나 시청한다고 한다.[30] 반면 직업으로 축구선수를 하지만 여가시간에는 축구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선수도 있다. 베누아 아수에코토나 우치다 아쓰토 등이 그 예시이다.[31] 직역하자면 물에 젖은 닭[32] 애초에 서양권에서 동양인을 비하하려면 (상대적으로 작은 눈을 묘사하는) 손가락으로 눈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원숭이에 빗대 비하한다.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딱히 닭과 큰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닭에 비유해 놀릴 이유가 없다. 반면 겁쟁이를 닭에 비유하는 것은 영어에서도 겁쟁이를 chicken이라고 놀릴 정도로 서양권에서 널리 쓰이는 조롱이다.[33] 제한맨 시절 유입된 대다수의 국내 해축팬들이 안티 아스날 성향이 많았던 탓으로 보인다. 프리미어리그를 씹어먹다 못해 고트 취급을 받는 선수에게 너무 짠 평가가 많았다. 심지어 동시대에는 안드레이 셰브첸코나 루드 판 니스텔로이에 비해 챔스 활약상이 딸린다며 아래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었을 정도. 물론 05-06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과 바르셀로나 시절 6관왕 업적으로 이 소리는 쏙 들어가긴 했다.[34] 이 날 득점을 올린 아스날의 주장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이 과거 앙리가 북런던 더비에서 했던 무릎 셀리브레이션을 따라하기도 했다. 오바메양뿐만 아니라 부카요 사카와 에밀 스미스 로우도 득점을 올린 후 무릎 셀리브레이션을 선보였다.[35] 3분 16초 경.[36] 동갑인 정형돈이 앙리에게 “쥬뗌므, 베이비.”라고 인사하자 앙리는 “감사합니다, 베이비”라고 화답했다. 박명수가 자신의 가슴팍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지단 박치기를 재연하자 당황하며 웃어 넘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박명수의 정수리를 보더니 (당시 기준)풍성한 머리카락을 확인하고는 "이 사람은 지주(Zizou)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하하의 애드립에 빵빵 터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둘이 웃음 코드가 잘 맞았던 듯. 하하의 얼굴을 가리키며 안정환과 닮은 것 같다고 띄워주기도 했다.[37] 실제로 FC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시절 앙리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직접 스페인으로 무한도전 팀을 초청해 촬영하자고 제의해와서 기획 단계까지 갔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 당시 앙리의 갑작스런 부상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로 앙리 특집 2탄은 결국 불발됐다고 한다.[38] 강도 조절을 했다 해도 물공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무거워서 헤딩을 하면 상당히 아플 수 밖에 없는데 눈 하나 깜짝 않고 헤딩을 하는 인내심 또한 보여주었다.[39] 아쉽게도 에브라의 무한도전 출연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비슷한 포맷의 다른 예능에 친구 박지성과 같이 출연이 성사되면서, 뒤늦게마나 소원 성취하게 되었다.[40] 참고로 앙리의 무도 출연 당시에 앙리를 환영하기 위해 공항까지 마중나간 아스날 팬 중 한명이 바로 이 사람이다.[41] 넥슨 아이콘 매치에서 본인 팀 선수로 뛸 안정환, 이천수, 김병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안정환은 과거 FC 메스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 김병지와 이천수는 A매치에서 격돌했었다는 것까지도.[42] 2002 월드컵 때 프랑스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 때문에 한국에 반감이 있었으면 있었지,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한식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었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43] 상호명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44] 사실 프랑스 본토 발음은 정확히는 '띠에히 엉히'에 더 가깝지만, 국립국어원 인증 공식 표기는 앙리다.[45] 지상파 방송사에서도 영어식 표기를 그냥 써 버렸는데, 가령 호날두나 토니 크로스, 아르연 로번도 유명해지기 전에는 월드컵 주관방송사에서도 호나우두, 토니 크루스, 아르옌 로벤 등으로 표기하다가 국립국어원의 정정으로 바뀐 바 있다.[46] 마찬가지로 다비드 실바는 데이비드 실바로 변형이 되기도 한다.[47] 비행기에서 실종된다는게 이 드립에서 흔히 쓰이는 래퍼토리이다. 예를 들자면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부진한 곤살로 이과인을 두고 '이과인은 비행기에서 실종되고 이구아인이라는 선수가 결승전에서 뛰었다'는 식이었다.[48] 이 밖에도 2022 월드컵 최악의 부진 이후 '한반두', '박힘 뒤예흐' 등의 별명이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