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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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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각 왕조의 추존3. 추존 군주 목록
3.1. 아시아
3.1.1. 한국3.1.2. 중국3.1.3. 일본3.1.4. 베트남3.1.5. 이란
3.2. 유럽
3.2.1. 프랑스3.2.2. 스페인
3.3. 아프리카
3.3.1. 이집트
3.4. 번외 1: 추존 신(神)3.5. 번외 2: 추존 공작
3.5.1. 한국3.5.2. 스페인
3.6. 번외 3: 추증 대통령

1. 개요

/ posthumous honours

일반적으로는 동양에서 사용된 개념으로 어떤 인물이 죽은 뒤에 생전의 직위보다 높은 직위를 올려주는 것이다. 반대 개념은 추탈(追奪).[1]

생전에 군주가 아니었던 사람을 군주로 높이는 것은 추존(追尊) 또는 추숭(追崇), 관료가 사후 관직이 높아지는 것은 추증(追贈), 계급을 주는 것은 추서(追敍), 작위를 주는 것은 추봉(追封)이라 하여 구체적으로 다르다.

신라 때 인물인 설총이나 최치원고려 현종 때 각각 홍유후와 문창후, 즉 후작으로 추증한 것처럼 후대에 재평가가 된다면 추증은 시대를 막론하고 가능했다. 그러나 왕과 왕족을 대상으로 하는 추존은 왕조국가였던 전근대에는 주로 그 왕조 안에서만 이루어졌다.

방계 혈통에서 왕위를 계승한 임금이 자신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해 생전에는 임금이 아니었던 아버지를 임금으로 추존하기도 한다. 고구려고대양, 신라김용춘 등이 아들 덕에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경우다. 그리고 한 나라를 건국할 때는 건국군주의 4대, 즉 고조부까지 군주로 추존하는게 당나라 이후의 관습이다. 한국사에서는 고려, 조선, 대한제국이 건국군주의 4대조를 추존했다.[2] 이 경우 당연히 임금의 어머니도 자동으로 황후로 추존되지만 간혹 어머니만 별도로 추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사람이 후궁 소생인 경우이다.

또한 창업군주가 아니라도 먼 방계로서 보위에 올랐다면 역시 4대조를 추존해 자신의 정통성을 다지기도 한다. 신라의 원성왕,[3] 아직 조선왕조의 국왕일 때의 고종이 이렇게 했다. 고려의 공양왕도 방계였기 때문에 4대조를 추존했으나 왕이 아닌 공(公)으로 한단계 낮춰서 추존했다.

중국 전한후한에선 추존 군주에게는 '제(帝)'를 빼고 '황(皇)'이라고만 해(예: 효덕황, 효인황) 차등을 두었으나[4], 한나라 이후부터는 추존 군주에게도 실제 재위한 군주와 동일하게 황제라 칭했다.

조선의경세자를 추존할 때 '의경대왕'이 아니라 '의경왕'이라 해서 한나라처럼 글자를 달리 해 차등을 두고자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추존 군주에게도 실재 재위한 군주와 동일하게 대왕이라 칭했다. 추존 문제와 관련해서 벌어진 사달은 가정제인조 문서를 참조.

추존은 보통 추숭되는 해당 인물의 후손이 하지만, 특이하게도 부모자식을 추존한 사례도 간혹 있다. 당고종측천무후황태자 이홍을 추숭한 예라든가.

예외적인 사례로 국성이 아닌 사람을 후대에 군주의 격으로 추존한 사례도 있다. 이 경우는 사후 몇백 년이 지나도 이만큼 해줘도 당시 사람들이 이의가 없었을만큼 명성이 엄청나게 높았던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례는 한국사에서는 김유신[5], 중국사에서는 공자관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유럽에서 군주로 추존하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위 여부에 논란이 있던 이를 정식 군주로 간주하는 추존 비슷한 사례들이 있지만 정확히는 추존이 아니다.

2. 각 왕조의 추존

사마진을 건국한 사마염은 조부 사마의와 삼촌, 부친인 사마사, 사마소만을 황제로 추존했고 사마의의 부친인 사마방 이상의 조상들은 종묘에 배향하기 위해 존령으로만 추존하였다.

이는 사마염이 사마진을 건국하고 황제로 즉위한 동시에 자신이 황제로 추존한 부친인 태조 사마소의 봉국인 '진'을 그대로 제국호로 사용하여 사마진을 건국하였음을 나타낸 것이며 사마의와 사마사를 황제로 추존한 것은 군주의 칭호가 왕에서 황제로 변경됨에 따라 그에 맞춘 것에 불과한 것이다.

사마의와 사마사는 실제 진의 군주(진왕)으로 군림하지 않았으나 사마소가 진왕으로 추존하였기에 진의 군주가 되었고, 사마염이 사마진을 건국하고 황제로 즉위해 군주의 칭호가 왕에서 황제로 바뀌자 그에 맞추어 황제로 격상시킨 것이다.

반대로 진왕으로 군림하지 않은 사마방, 사마준, 사마량, 사마균은 황제가 아닌 부군(존령)으로만 추시되어 종묘에만 배향되었다. 다만 이들 역시 제호만 헌상받지 못했을 뿐 황제가 제사를 지내고 주기적으로 기리는 등 그 대우는 제호를 헌상받은 추존 황제들과 똑같았다.

이에 따르면 아무리 직계 조상이라도 추존은 일부 명위가 있는 조상에만 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6] 다만 먼 조상도 아닌 다름아닌 바로 위의 부친일 경우, 별다른 지위가 없는 일반인으로 사망한 자여도 황제로 추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호십육국 일부 왕조의 경우처럼 부친이라도 추존을 하였음이 확인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

북조의 초대 왕조인 북위의 경우 선비족 추장을 지낸 시조인 탁발모부터 부친인 탁발식까지 총 30명의 조상을 추존한 경우가 있는데 사마진의 사례처럼 탁발모를 초대 군주로 간주한 것이다.

북제의 경우 발해왕, 제왕을 지낸 고환고징, 발해왕으로 추존된 고수생문선제가 황제로 추존하였는데 사마진의 사례처럼 고환을 초대 군주, 고징을 2대 군주로 간주하여 추존한 것이다. 고수생은 실제 군주로 군림한 적은 없으나 초대 군주인 고환이 추존한 대상이고 군주의 칭호가 왕에서 황제로 변경되었기에 그에 따라 황제로 격상시킨 사례이다.

남조의 송, 제, 양의 건국 황제들은 자신의 부친까지만 황제로 추존했고 조부 ~ 열조까지의 조상들은 황제가 아닌 존령으로만 추존하여 종묘에 배향하기만 하였다. 후경은 자신의 부친은 황제로 추존했고 조부는 특이하게 관직인 대승상으로 추존[7]했으며 진패선은 부친 진문찬을 묘호와 시호를 제호로 바르게 추존했으나 조부 진도거는 묘를 수릉으로만 개칭하고 공작으로만 추증하였다. 다만 전한 도황의 사례처럼 제사만 천자의 예로 지내고 시호를 제후의 예로 내린다 하더라도 황제로 간주하기 때문에 진패선은 부친과 조부를 황제로 추존한 사례가 된다.

남북조를 통일한 수나라의 경우 특이하게 부친인 양충만을 황제로 추존하고 조부 양정, 증조부 양렬은 왕으로 추존했으며 고조부인 양혜하는 황제나 왕도 아닌 존령으로만 추존하였다. 일단 양충의 봉국인 '수'를 그대로 제국호로 사용하였기에 양충을 초대 군주로 간주하여 국체를 이었으나 굳이 조부와 증조부를 격이 낮은 왕으로 추존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양충의 경우 진왕과 제왕처럼 왕이 아닌 그보다 한단계 격이 낮은 공작이였기 때문에 양충 본인이 공작으로 봉해질 당시 양정과 양렬도 공작으로만 추존되었다. 이후 양견이 북주의 수국공에서 수왕으로 승진하자 부친인 양충만이 환왕(桓王)으로 격상되었고, 양견이 황제로 즉위하자 한 등급만을 격상하는 과정에서 기존부터 공작이였던 양정과 양렬은 왕까지만, 중간에 왕으로 격상된 양충은 황제로 추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공작이였던 양정과 양렬도 황제로 추존할 수 있었겠지만 환현의 사례처럼 명위를 따져 추존을 엄격히 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당나라의 경우 농국-당국공을 역임한 조부 이호, 부친 이병만 황제로 추존하였다. 상술한 사례처럼 당국공을 역임한 이호를 초대 군주로 간주한 것이다. 다만 증조부 이천석과 고조부 이희는 군주로 군림하지 않았으나 예우 차원으로 황제보다는 격이 낮은 의왕, 선간공에 추존하였다. 이연의 현조부인 이중이는 이연 대에 추존되지 않았다가 당태종 대에 존령으로 추존되어 종묘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당고종은 위의 추존에 대한 원칙과 선례들을 어기고 의왕을 의조 광황제로, 선간공을 헌조 선황제로 추존하였다. 또한 당현종은 본인 기준으로 11대조인 이고를 흥성제로 추존했으며 고요, 노자이경을 선조로 삼고 그들도 황제로 추존하는 등 특이한 추존을 시행하였다.

송나라는 본래 유교의 종손이 모시는 범위의 조상만을[8] 황제로 추존하였다.

명나라는 송나라처럼 4대조만을 황제로 추존했고 5대조인 주중팔은 존령으로도 추존하지 않았고 종묘에 배향하지도 않았다. 청나라의 경우 건국 황제의 부친, 조부, 증조부, 열조부만을 추존했고 고조부, 현조부는 존령으로도 추존하지 않았다. 예외로 황실 시조인 아이신기오로 부쿠리용숀을 기리기 위해 시조묘(始祖廟)를 건립하였다.

추존된 시조들의 경우 묘호들이 대게 엄청나게 좋은 것들만 모여있는걸 알 수 있고 또 대부분 조를 받는다.

3. 추존 군주 목록

3.1. 아시아

3.1.1. 한국

3.1.2.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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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가 자주 개창됐던 중국에는 추존된 인물도 엄청나게 많다.

3.1.3.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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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베트남

3.1.5. 이란

3.2. 유럽

3.2.1. 프랑스

3.2.2. 스페인

3.3. 아프리카

3.3.1. 이집트

3.4. 번외 1: 추존 신(神)

3.5. 번외 2: 추존 공작

3.5.1. 한국


고려 공양왕은 방계로서 왕위에 올랐기에 성리학적 명분론에 따라 자신의 4대조를 추존해 정통성을 가지고자 했다. 하지만 그를 옹립한 이성계, 정도전, 조준 등 세력은 당연히 허수아비 왕이 정통성을 가지게 할 수 없었다. 결국 공양왕은 자신의 4대조를 군주가 아닌 봉국(변한, 진한, 마한, 삼한국)의 공작[19]으로 추존했다. 이는 한 세조 광무제의 사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3.5.2. 스페인

3.6. 번외 3: 추증 대통령

3.6.1. 브라질


두 사람은 공식적으로 취임하지 못했다. 페드로 알레이시우는 브라질 군사정권 시절인 1969년 아르투르 다 코스타 이 시우바 대통령이 뇌혈전증으로 인해 직무 수행이 불가능해지자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직을 승계해야 했다. 하지만 군인이 아닌 민간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3명의 군부 장관에게 밀려 취임하지 못했다. 탄크레두 네베스는 1985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브라질 군사정권을 종식시켰다. 하지만 취임 전날 중병으로 쓰러져 약 40일 동안 투병하다가 사망했다.

이후 네베스는 1986년, 알레이시우는 2011년에 제정된 법률에 의해 전직 대통령으로 인정되었다. 그리하여 취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궁에 다른 대통령들과 함께 사진이 걸려 있다.

물론 동양문화권의 추존은 아니지만 취임하지 못했음에도 사후에 법적 대통령으로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추존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1] 생전의 지위나 추서된 지위를 없었던 걸로 함.[2] 고려 역시 4대조를 추존했는데 광종이 황제국을 지향함에 따라 4대조에게 국조(고조부), 의조(증조부), 세조(조부), 태조(부)라는 묘호를 추가하였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의 경우는 4대조 추존과는 별도로 4대조 이후에 재위한 두 왕과 왕조의 시조인 태조를 추가로 황제로 추존했다.[3] 사실 원성왕과 후대 왕들은 유럽 같았으면 이전 신라와는 별개 왕조로 쳐야 할 만큼 수십촌이나 차이나는 방계였다.[4] 태상황이란 용어에도 나타나듯, 황제 두 글자 중 황(皇) 자보단 제(帝) 글자 쪽에 실권을 가지고 통치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5] 김유신은 금관가야김해 김씨로 신라 왕족 경주 김씨와 성이 다르다. 김유신의 외가가 진흥왕계라고하는 하지만 모계이며, 게다가 김유신을 추숭한 흥덕왕은 진흥왕 직계도 아닌 내물왕계라 다른 흔한 직계 추존과는 상당히 다른 케이스기는 하다.[6] 참고: 동진 환현전.[7] 사서에서도 추증이 아닌 추존이라고 기술되어 있다.[8] 본인 기준 부친, 조부, 증조부, 고조부까지를 제사지낸다.[9] 한국사에서 유일하게 왕가 출신이 아닌 추존왕. 가야 왕손이기는 하나, 엄연히 신라의 왕으로 추존된 것이므로 가야 왕손의 지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10] 정조의 생부인 사도세자는 조선왕조에서는 추존받지 못 하고, 대한제국 개창 후인 1899년 고종에 의해 장종(莊宗)으로 추존되었다가 다시 장조 의황제로 추존되었다.[11] 고종은 잘 알려진 대로 흥선대원군의 친아들이고 헌종, 철종을 비롯한 영조의 후손이 아니라 먼 친척이다. 고종은 인조의 먼 후손으로 전 국왕인 철종과 실제로는 17촌이나 차이가 난다. 아래 추존 황제들의 추존 사유는 실제 혈통상 고종의 조상이라서가 아니라 공식 족보상으로 고종의 조상이기 때문이다.[12] 원 묘호 : 장종[13] 원 묘호 : 정종[14] 원 묘호 : 익종[15] 추존된 황제까지 포함해 유일한 환관 출신이다.[16] 영락제 이후 추탈되었다가 명 멸망 이후 남명에서 다시 추존.[17] 도강언을 만든 부자.[18] 서나라를 세운 장헌충이 태조로 추존했다.[19] 아버지는 대공으로 추존했다. 여담으로 동아시아에서 작위가 대공인 인물은 공양왕의 아버지인 인효대공, 왕균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