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b200><colcolor=#670000> 고려 공양왕의 1대조 인효대공 | 仁孝大公 | |||
출생 | 연대 미상 | ||
사망 | 1358년 이후 1390년 이전 (향년 미상) | ||
묘소 | 미상 | ||
재위기간 | 고려 정원군 | ||
1355년 이전 ~ 1356년 이후 | |||
고려 정원백 | |||
1356년 이후 ~ 1358년 이후 | |||
고려 정원부원군 | |||
1358년 이후 ~ 연대 미상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fb200><colcolor=#670000> 본관 | 개성 왕씨 양양공파 | |
휘 | 균(鈞) | ||
부모 | 부친 마한국인혜공 왕유 (馬韓國仁惠公 王瑈, ? ~ 1360) 모친 마한국명예비 신씨 (馬韓國明睿妃 申氏, ? ~ ?) | ||
형제자매 |
| ||
배우자 | 삼한국대비 | ||
자녀 | |||
종교 | 불교 | ||
사당 | 적경원(積慶園) 효신전(孝愼殿) | ||
작호 | 정원군(定原君) → 정원백(定原伯) → 정원부원군(定原府院君) → 삼한국대공(三韓國大公) | ||
시호 | 인효대공(仁孝大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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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의 마지막 국왕 공양왕의 아버지. 왕유(王瑈)와 신씨(申氏)[1]의 아들이며 신종의 6대손이다.2. 생애
최초로 봉해진 작위는 정원군(定原君)으로, 1355년 김진(金眞)[2]과 함께 원나라에 방물[3]을 바쳤으며, 1356년 황제 원혜종의 어주를 받고 귀국하여 정원백(定原伯)에 봉해졌다. 이후 정원부원군(定原府院君)으로 개봉되었다.왕균은 사(使)의 역할을 수행하다 길에서 죽었기에 무덤에 묻히지 못했다.[4] 그의 장남 왕요가 이성계를 비롯한 흥국사 구공신에 의해 즉위한 후 1390년, 왕의 4대조를 추존하는 예법에 따라 왕균은 삼한국 인효대공(三韓國仁孝大公)으로 추봉되었으며, 그 신위가 적경원에 봉안됐다. 그러나 2년만에 새 왕조가 들어서는 바람에 왕균의 신위가 있던 적경원은 곧 허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