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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6:46:32

왕균(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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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공양왕의 1대조
인효대공 | 仁孝大公
출생 연대 미상
사망 1358년 이후 1390년 이전 (향년 미상)
묘소 미상
재위기간 고려 정원군
1355년 이전 ~ 1356년 이후
고려 정원백
1356년 이후 ~ 1358년 이후
고려 정원부원군
1358년 이후 ~ 연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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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b200><colcolor=#670000> 본관 개성 왕씨 양양공파
균(鈞)
부모 부친 마한국인혜공 왕유
(馬韓國仁惠公 王瑈, ? ~ 1360)
모친 마한국명예비 신씨
(馬韓國明睿妃 申氏, ? ~ ?)
형제자매
4남 중 장남 [ 펼치기 · 접기 ]
본인 - 인효대공 왕균(三韓國大公 王鈞, ? ~ )
동생 - 학성부원군 왕향(鶴城府院君 王珦, ? ~ 1394)
동생 - 익원부원군 왕소(益原府院君 王玿, ? ~ ?)
동생 - 평안부원군 왕정(平安府院君 王鉦, ? ~ ?)
배우자 삼한국대비
자녀
2남 [ 펼치기 · 접기 ]
장남 - 공양왕(恭讓王, 1345 ~ 1394)
차남 - 정양군(定陽君, ? ~ 1397)
종교 불교
사당 적경원(積慶園)
효신전(孝愼殿)
작호 정원군(定原君)
→ 정원백(定原伯)
→ 정원부원군(定原府院君)
→ 삼한국대공(三韓國大公)
시호 인효대공(仁孝大公)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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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의 마지막 국왕 공양왕의 아버지. 왕유(王瑈)와 신씨(申氏)[1]의 아들이며 신종의 6대손이다.

2. 생애

최초로 봉해진 작위는 정원군(定原君)으로, 1355년 김진(金眞)[2]과 함께 원나라에 방물[3]을 바쳤으며, 1356년 황제 원혜종의 어주를 받고 귀국하여 정원백(定原伯)에 봉해졌다. 이후 정원부원군(定原府院君)으로 개봉되었다.

왕균은 사(使)의 역할을 수행하다 길에서 죽었기에 무덤에 묻히지 못했다.[4] 그의 장남 왕요가 이성계를 비롯한 흥국사 구공신에 의해 즉위한 후 1390년, 왕의 4대조를 추존하는 예법에 따라 왕균은 삼한국 인효대공(三韓國仁孝大公)으로 추봉되었으며, 그 신위가 적경원에 봉안됐다. 그러나 2년만에 새 왕조가 들어서는 바람에 왕균의 신위가 있던 적경원은 곧 허물어졌다.


[1] 마한국명예비(馬韓國明睿妃)로 추존됨.[2] 대호군(大護軍).[3] 方物, 일종의 조공이다.[4] 三韓國大公, 奉使道卒, 無兆域.(고려사 권61, 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