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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4:26:37

참군인


1. 개요2. 참군인의 속성3. 참군인 사례
3.1. 대한민국3.2. 그 외 국가

1. 개요

'진짜, 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 군인이 합쳐진 단어. 어떤 군인이 실로 군인다울 때 쓰는 용어. 장교병사를 가리지 않고 참군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명장, 덕장, 용장, 맹장 등 뛰어난 지휘관, 장군들에게만 붙이는 명칭들과 차이점이 있다.[1] 반대로 어느 장군이 참군인이긴 하지만 명장이나 용장까지는 아닐 수도 있다.

'군인답다'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본래 참군인이란 능력과 업적보다는[2] 마음가짐이나 용기, 자세 등에 좀 더 방점이 찍힌 단어다. 즉 소신과 원칙에 대한 중시, 정치적 중립,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대한 용기 있는 항거, 군사적 업적보다는 인명을 우선시, 사리사욕보다는 군인의 명예 중시 등이 본래 참군인의 조건으로 평가된다. 가령 개인적으로는 친일행적 등의 오점이 있고 6.25 전쟁에서도 그보다 전공이 큰 장군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이익을 무릅쓰고 이승만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군의 정치적 중립을 끝끝내 지키려 했다는 이유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참군인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은 이종찬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가령 어떤 지휘관이 뛰어난 작전으로 연전연승한다면 명장이라 불리겠지만 참군인이라기엔 애매하다. 반면 불의한 명령(민간인 학살 등)을 거부하고 좌천된다든가, 큰 보상을 미끼로 쿠데타 동참을 제안 받았지만 거절한다든가, 자신을 희생해 전우들을 구한다든가 하면 참군인이라 불릴 만하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런 의미로만 한정적으로 쓰이지는 않고 군인으로서의 포스나 위엄, 능력이 넘쳐흐른다면 반쯤 경탄을 담아 참군인이라 부르기도 하는 편이다.

누군가를 혼쭐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래 의미의 참교육과도 비슷한 단어 쓰임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참군인이란 단어는 일반 민간과 언론뿐만 아니라 아래 사례에 나와 있듯 대한민국 육군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단어다.

물론 이런 단어가 늘 그렇듯, 반어법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 주로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융통성이 전혀 없이 매사에 꽉 막혀있는 꼴통 FM을 비꼬는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2. 참군인의 속성

참군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충실히 다하는 군인이 참군인일 뿐 유별나게 다른 점은 없다. 단지 그 군인 본분이 어려워서 참군인 소리 듣는 군인이 적을 뿐이다.

3. 참군인 사례

물론 이 목록에 없다고 해서 참군인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며, 알려지지 않았을 뿐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훌륭한 군인들이 각자의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 기준: 특별히 해당되는 부분과 기호를 함께 게시.
* 올바른 충성, 정치 중립, 부당한 명령 거부 - △
* 자기희생 - ◈
* 애국심 - ♡
* 청렴 - ♧
* 군기 유지 - ◇
* 기량 유지 - ◆
* 전공 업적 - ★
* 대민지원 - ◉
* 전우애 - ♥

3.1. 대한민국

3.2. 그 외 국가


[1] 물론 명장, 덕장, 용장, 맹장들도 참군인에 포함될 수 있다. 그 장수의 인격 평가가 바닥이 아니라면 말이다.[2] 이 요소들이 안 중요하다는 건 물론 아니다.[3] 둘 중에 하나라도 해당이 된다면 안 된다. 적법한 권력자가 내린 명령이어도 그 명령이 위법하다면 따라선 안되고, 적법한 절차를 거친 정당한 명령이어도 권력자의 자리가 위법한 자리라면 따라선 안된다.[4] 굳이 그 나라 법에 위법하지 않아도 군주국가의 군대, 중국처럼 국가차원에서 당의 군대를 유지하거나, 나치당 같이 일개 정당의 군대도 역사상 있긴 하다.[5] 물론, 현실적으로 봤을 때 경계근무 도중 잡담만 하는 정도라면 그 초병은 참군인까지는 아니라 치더라도 꽤 성실한 자세로 근무했다고 볼 수 있다.[6] 그 유명한 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서울의 봄(영화)의 주인공.[7] 사망자 권 모 일병이 아님. 사건 당시 이등병.[8] 좌천 되었으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다고한다.그리고 고발의 목적이 진급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소문도 돌았다고한다.[9] 다만 이쪽은 애초에 하나회를 단순 곱창 회식모임인 줄 알고 가입했던 거라 타 하나회 인사들과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긴 하다.[10] 사실 이건 하기 싫은데 그래도 사적으로 친했던 김재규의 권유와 정치권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다. 본인 자신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중요시했다. 거기다가 유신정우회 활동도 첫번째 때에는 참고 했다가 두번째 때에는 자신의 동의도 없이 멋대로 이름이 올라오자 뚜껑이 열려서 김재규에게 항의를 했다. 물론 이 때의 '정치권'이 뭘 의미하는지 감안하면 뭘 해도 거절할 수 없어서 결국 해야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신조를 지키기 위해서 국회에서 딱 한번만 발언한게 있고 뱃지도 주요 공식 석상에서만 찼다.[11] 정식 지휘계통을 통해 지시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당시는 하나회 일당들이 법과 절차들이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게 현실이었다.[12] 이후 인분 사건으로 매우 어수선했던 육군훈련소를 환골탈태시킨다.[13] 프랑스군 최고의 엘리트 부대로 꼽히는 5개의 특공대 중 하나로, 주 임무는 대테러·인질구출·수중폭파 작전이다.[14] 구출된 인질 중에 한국인이 있어서 영결식에는 주 프랑스 한국 대사도 참석했다.[15] 참고로 이 쿠데타를 주도한 사람은 무려 일등병이었다고 한다.(...)[16] 사실 이는 명령을 내린 상등병이 제트 전투기를 조종한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17] 동부전선과 아무 상관 없는 체육관 관리 장교(...)였으나 나치독일의 정신나간짓을 독소전에서 열심히 경험한 소련은 일개 후방 체육관 장교라도 살려두지 않으려 했다.[18] 변호사가 없었다고 한다. 교수대에 매달리게 된 나치 전범들도 뉘른베르크 군사재판에서 변호인은 있었다. 북한이나 그에 준하는 급의 국가가 아닌 이상 흉악범도 형식적으로나마 정상적인 재판을 위해선 국선변호사라도 주는것을 생각한다면... 소련의 재판은 북한 급의 막장이라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