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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21:34:58

윤흥기

제2대 9공수특전여단장
윤흥기
Yoon Heung-ki
학력 불명
복무 대한민국 육군
? ~ 1983년
임관 갑종간부후보생 (35기)
최종 계급 소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
주요 보직 제9공수특전여단

1. 개요2. 생애3. 주요 경력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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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예비역 장성으로 최종 계급은 소장이다.

형은 윤흥정 예비역 중장이다.

2. 생애

1933년 평안북도 초산군에서 태어났다. 1945년 남북 분단 이후 형 윤흥정과 함께 월남했으며, 형을 따라 군인의 길을 걸었다.

박정희 정부 말기 육군사관학교 11기 출신 노태우 장군으로부터 제9공수특전여단장 보직을 물려받았다. 여단장 보직을 수행하던 중 12.12 사태5.18 민주화운동을 맞이하였다. 윤흥기 장군은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 장태완 당시 수도방위사령관,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1](이상 소장)과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 신수종 특전사 참모장(이상 준장)과 함께 반란군에 저항하던 입장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반란군을 이기지 못했다. 이 중에서 정승화, 정병주와 김진기는 육사 출신이고 장태완, 하소곤과 신수종은 갑종 출신이었다. 여담으로 육군본부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소재해 있었으나 1989년 이후 충청남도 계룡시로 이전하였으며, 옛 육군본부 부지에는 전쟁기념관이 들어섰다.

결국 정승화, 장태완, 정병주, 하소곤, 김진기, 신수종 모두 신군부에 의해 강제예편되었다. 형 윤흥정 역시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지 못하였는데 이 때문에 신군부에 의해 대장 진급을 하지 못하고 강제예편되었다[2]. 그나마 윤흥기 본인은 운좋게도 살아남아 소장 진급을 했지만, 신군부에 저항하던 사람이라 사단장 보직은 해 보지도 못하고 전역했다.

1993년 갑종장교 선배인 장태완, 하소곤과 함께 전두환과 신군부 부역자를 대검찰청에 고소한 적이 있다. 여담이지만 육사 출신인 형 윤흥정과 정승화, 김진기도 신군부 부역자를 고소한 바 있다. 출처

2013년 8월 별세하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3. 주요 경력

4. 여담



[1] 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2] 윤흥정 뿐 아니라 이건영 당시 제3야전군사령부 사령관도 대장 진급을 하지 못하고 강제예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