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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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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特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수이며 는 자산(子産)으로 유주 탁군[1] 사람.

2. 정사 삼국지

조예 시절(226년 ~ 239년)부터 관직에 출사했으며, 제갈탄 휘하에서 아문장을 지내고 있었는데 제갈탄은 장특이 군무를 잘 못 한다고 여겼는지 호군으로 벼슬을 깎으려 했다. 그러다 252년에 제갈탄이 사마사의 명령으로 손오를 공략했지만 제갈각의 반격으로 실패해 관구검과 자리를 맞바꾸게 되자 장특은 좌천되는 대신 합비신성의 수비를 맡게 되었다.

253년 봄, 제갈각합비를 공격해오면서 제일 먼저 합비신성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당시 오나라의 대군은 20만, 반면 장특의 병력은 3천이었다. 그나마 애초에 공성전은 방어하는 쪽이 훨씬 유리하고 합비신성의 방어력도 뛰어나 장특은 부장 악방과 함께 90여일 간 결사적으로 저항할 수 있었다. 물론 이미 수비군 절반 가량이 사상자가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오군이 토산을 쌓아 공격해 성벽 일부가 무너져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

이렇게 되자 장특은 제갈각에게 사신을 보내, "위나라 법도에 따르면 장수가 100일간 구원받지 못한 채 싸우다가 항복해도 그 가족들은 죄를 받지 않습니다. 이제 며칠만 기다리면 100일이 되니 조금만 말미를 주면 준비(내부 정리)하고 성을 나가 항복하겠습니다."[2]라고 하면서 증표로 자기 인수를 주어 보냈다.[3]

제갈각은 그 말을 곧이듣고 인수를 돌려보낸 뒤 공세를 잠시 중단했는데, 장특은 그날 밤 내내 성의 무너진 방벽을 이중으로 다시 쌓게 하고 집을 헐어 목책을 쌓아 방어 태세를 회복했다. 이걸 보고 속은 걸 깨달은 제갈각은 격노해 맹공을 퍼부었지만 함락이 되지 않았다. 이윽고 무더위와 역병이 오군을 덮친 데다가 사마부의 원군이 온다는 소식까지 들려오자 제갈각은 별 수 없이 철군했다. 이 과정에서도 피해는 막심, 결국 제갈각은 제대로 대패하며 민심을 잃게 되었다.

장특은 이 공적을 평가받아 잡호장군에 제수되고, 열후에 봉해져 안풍태수로 영전했다. 이후 이렇다할 활약은 보이지 않는다.

3. 삼국지연의

활약은 정사와 동일하게 서술되었고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제갈각에게 "성안에 반년 먹을 식량이 쌓였거늘 너희 오나라 놈들에게 항복할까 보냐?"라며 욕설을 퍼붓는 장면까지 추가되었다. 덤으로 펄펄 뛰는 제갈각 이마에 헤드샷 한 방까지 선물했다.

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장특.jpg 파일:external/kongming.net/124-Zhang-Te.jpg
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8~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604.jpg
삼국지 13, 14

제갈각을 속여 합비를 굳게 지켜낸 전적이 있지만 삼국시대 후반기 인재에게 정말 짠 능력치 배분으로 악명높은 코에이 삼국지에서는 통솔, 지력이 70대 초중반인 잡장으로 등장한다. 적어도 통솔, 지력 80대는 받을만한 활약을 했건만 안타깝게도 재평가는 없는듯하다. 이런 능력치여도 장특이 활약할 무렵에는 통솔 80대 장수 자체가 정말 얼마 없어서 특급무장으로 활약할수는 있지만 아무도 장특이 나오는 시대까지 삼국지를 돌리지 않고 장특이 나오는 후반기 시나리오도 몇개 없기도 하거니와 인기도 없어서 장특을 제대로 보려면 영웅집결같은 가상시나리오로 가야 하지만 그쪽에서는 결국 잡장일뿐이라 버려지게 될 운명이다.

삼국지 8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그야말로 리즈 시절이다. 능력치는 무력 66/지력 78/정치력 71/매력 68이지만 교란 4를 가지고 있어서 이거 하나로 제갈각이든 육항이든 이길 수가 있다. 위관과 함께 신캐 보정을 받은 케이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0/무력 58/지력 77/정치력 72로 제사, 조영, 혼란, 덫을 가지고 있어서 책사로 쓰면 좋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1/무력 53/지력 74/정치력 67/매력 69인데 특기는 보수, 유인 2개 밖에 없다. 가장 떨어지는 능력치가 무력인데 내정쪽 유일한 특기가 보수라니... 물론 이 사람 행적을 보면 보수가 없는 게 역사왜곡이긴 하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3/무력 54/지력 75/정치력 66/매력 68에 병과적성이 극, 병기가 A. 언독 특기[4]를 갖고 있다.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선 계의 재야무장으로 등장하는데, 유우공손찬 세력에게 지장형 장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5] 해당 세력들에게 영입 우선순위가 상당히 높아진다.

삼국지 12에서는 짤렸다가 삼국지 13에서 다시 복귀했는데 능력치는 매력만 빠진 상태에서 삼국지 11 때와 같으며 특기는 연전 1 단 하나. 전수특기도 당연히 연전이고 전법은 기방강화. 일러스트는 오른손을 올리면서 제갈각에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방어계 특기인 견수가 저레벨도 아니고 아예 무특기란 점에서 삼국지 13편을 대충 만들었구나 라는 인상을 준다. PK를 한다면 견수 특기를 추가해주자.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1, 무력 53, 지력 74, 정치력 67, 매력 69로 전작에 비해 정치력이 1 상승한 대신 통솔력이 2, 무력과 지력이 각각 1 하락했다. 개성은 봉살, 개수, PK에서는 교사 개성이 추가되었고 주의는 왕도, 정책은 공법개혁 Lv 3, 진형은 어린, 충차, 전법은 격려, 철벽, 저지,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100만인의 삼국지 일러스트는 삼국지 14에서 손환의 일러스트로 재활용되었다.

4.2. 삼국전투기

초신성 플래시맨레드 플래시로 패러디되었다. 레드 플래시의 매너방위대 명대사(?)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를 시전했기 때문. 원 히트 원더라는 평을 내리고 있는데 실제로 장특은 제갈각의 공격을 막아낸 이후에도 이전에도 변변찮은 기록이 없었다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합비신성 전투 (3)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합비신성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아문장군으로서 합비신성을 지키고 있었으며, 쳐들어온 오군을 보고 후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병사 1명이 관구검의 서신을 가져오자 서신을 펼쳐 보지만... 서신의 내용은 "굿럭(...)''. 결국 장특은 어떠한 지원도 없이 3천의 병력으로 20만의 오군을 막아야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나마 합비신성은 군사성으로 강력한 방어체계가 갖춰져 있었기에 그런대로 버텼지만 상대도 정예병력인데다 숫자 차이까지 너무 심해서 3개월이 지났을 무렵에는 합비신성의 병력이 완전히 반토막이 나버렸다고 묘사된다. 이쯤되니 상황이 열악한 것이 정도를 넘어서 성의 한쪽 귀퉁이가 대놓고 무너지는 걸 보고서도 수리할 인력이 없어서 수리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고, 이에 장특은 더 이상은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제갈각에게 공격을 받고 100일 동안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투항을 해도 가속이 처벌받지 않는 법이 위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며 이제 공격받은지 98일이 됐으니 이틀만 기다리면 조용히 투항을 할 것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본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각오로 싸울 수밖에 없다며 잠시 기다려 줄 것을 제의, 신표로 인수를 제갈각에게 넘겼다.

그리고 장특은 그렇게 얻은 이틀을 알뜰하게 성벽 수리에 쏟아부었고, 약속의 날 제갈각에게 제대로 엿을 먹였다.[6]

오군의 공격이 감정적이 되면서 오히려 효율이 떨어져 장특이 침착하게 막아낼 수 있었으며, 이후 오군이 더위와 전염병으로 만신창이가 되자 승리에 대한 확신이 든 관구검이 드디어 신성에 구원군을 보내면서 장특은 구원받게 되었다.

4.3. 삼국지 유지경성

조창의 후의를 입었다가 조창 사후에는 유정의 부장으로 합비에 부임했으며, 오나라에 있던 장합을 합비로 끌어들여 죽이려 했지만 도리어 장합의 창에 죽는다.


[1] 유비, 장비의 출신지인 그 유주 탁군이 맞다.[2] 이 법은 실재했던 것으로, 후에 271년오나라도황이 서진의 양직을 공격해서 100일이 지나자 오군에게 항복했지만 그 가솔들에게 죄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3] 혹은 성 밖으로 던졌다고도 한다.[4] 실제 활약상을 보면 이 특기에 가장 잘 맞는 장수라고 볼 수 있다. 웃긴 건 정작 자신이 계략으로 물러나게 한 제갈각은 지력이 훨씬 높아서 위보를 성공시키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5] 공손찬에겐 그나마 전예가 있지만 유우는 그야말로 암울하다.[6] 이 때 성문을 열라는 제갈각에게 상술한 명대사인 훼이크다 이 병X들아를 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