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13:14:17

잔 다르크/기타 창작물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잔 다르크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0c27, #0036b6 20%, #0036b6 80%, #000c27)"
{{{#!wiki style="margin: -10px"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36b6><tablebgcolor=#0036b6> 파일:잔 다르크 서명.svg잔 다르크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0036b6><colcolor=#FFFFFF> 소속 <colbgcolor=#fff,#1f2023>발루아 왕조 · 프랑스군
가족 다르크 가문
관련 인물 미카엘 · 성녀 마르가리타 · 성녀 카타리나
프랑스 원정군 동료 (질 드 레 · 라 이르 · 리슈몽)
적대적 인물 (헨리 6세 · 선량공 필리프 · 이자보 드 바비에르 · 피에르 코숑)
주군 (샤를 7세)
관련 장소 잔의 생가 동레미라퓌셀
오를레앙 공방전이 벌어진 곳 오를레앙 · 파테 전투가 벌어진 곳 파테
루아르 원정이 벌어진 곳 루아르 · 랭스 행진을 통해 주군 샤를이 즉위한 곳 랭스
파리 공방전이 벌어진 곳 파리 · 잔이 마지막으로 승리한 전투가 벌어진 곳 생피에르르무티에
잔이 생포된 곳 콩피에뉴 · 잔이 화형당한 곳 루앙 · 잔의 묘소 윈체스터
관련 사건 백년전쟁
관련 물건 잔 다르크의 깃발 · 생트 카트린의 검
기록에서의
모습 및 행적
유명 어록 및 편지 · 특징 · 생애 · 창작물
평가 및 여담 평가 · 의문점
창작물 잔 다르크 별도 문서 (그랑블루 판타지 · 드리프터즈 · 데스티니 차일드 · 벽람항로 · 신격의 바하무트 GENESIS · 영웅 · 오버히트 · 이나즈마 일레븐 GO · 인피니티 · 전함소녀 · 크루세이더 퀘스트 · Fate 시리즈 · 컴파스)
그 외 동음이의어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background: #FFF; border-radius: 4px"
파일:잔 다르크 서명.svg}}}
}}}}}}}}} ||


1. 개요2. 근현대 이전3. 근현대 이후4. 영국에서의 잔 다르크
4.1. 셰익스피어와 잔 다르크
5. 영화와 드라마6. 현대 서브컬처의 잔 다르크7. 이름이나 모티브를 차용한 캐릭터
7.1. 골판지 전기 W에 등장하는 LBX7.2. 시티 오브 템페스트의 캐릭터 잔다르크
7.2.1. 개요7.2.2. 스킬

[clearfix]

1. 개요

프랑스구국영웅 잔 다르크를 다룬 창작물들이 나열된 문서이다. 잔 다르크의 드라마틱한 생애는 수많은 창작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여러 작품들이 나왔다.

2. 근현대 이전

잔 다르크의 생전 유럽 최초의 여성 문학가로 여겨지는 크리스틴 드 피잔은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잔 다르크를 찬양하는 시를 썼고, 잔 다르크가 죽은 해에 파리에서 태어난 시인 프랑수아 비용은 <왕년의 미녀가>라는 시에서 그녀를 "영국인이 루앙에서 불태워 죽인 로렌의 착한 처녀"라고 언급한다.

비용이 어린 시절에 잔 다르크에 맞서 싸우거나 욕한 파리 시민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자랐을 텐데도 이런 시를 쓴 것으로 보아, 잔 다르크의 죽음 이후나 부르고뉴파가 샤를 7세에 협력한 이후로는 파리 시민들도 잔 다르크를 조국의 영웅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파리 시민들이 계속 반감을 갖고 있었다면 잔 다르크의 죽음 25년 뒤의 명예회복재판이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3. 근현대 이후

프랑스의 문호인 아나톨 프랑스는 잔 다르크의 성녀로서의 활약을 일종의 간질병의 일환으로 보고 책을 썼다.

독일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프리드리히 실러는 잔 다르크를 다룬 희곡인 《오를레앙의 처녀》라는 작품을 썼는데, 성녀 이미지로 나오긴 하지만 전장에서 만난 영국군 청년 장교인 라이오넬과 사랑에 빠지는, 로미오와 줄리엣식의 비극의 주인공으로 다루었다. 독일에서 나온 이 작품에 프랑스가 자극을 받아 뒤늦게 잔 다르크를 찬양하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다. 후대의 주세페 베르디표트르 차이콥스키가 이 작품을 각색하여 오페라를 만들었다.

프랑스 사람 잔 다르크와 별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1]은 본명을 밝히지 않고 가명을 쓴 채, 화자로서 잔 다르크의 생애에 대해 읊어주는 작품인 《잔 다르크의 생애》란 작품을 썼다. 이유는 빚 갚으려고. 식자기 개발에 투자했다가 30만 달러 날려먹고, 별도로 하던 출판사업도 망해서 빈털털이가 된 후 빚을 갚기위해 온 정력을 기울여 썼다. 제3자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이 작품에는 잔 다르크의 소녀로서의 삶과 고뇌가 잘 표현되어 있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932년 희곡인 《도살장의 성 요한나》를 발표했는데, 대공황 시기의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 구세군 요한나 다크는 영락없는 잔 다르크를 모티브로 해서 쓰여진 캐릭터다. 주인공 요한나는 노동자들을 돌봐주고 파업에 나선 그들의 편이 되면서도 파업 과정에서 생기는 폭력으로 인해 사회 질서가 혼란을 우려하여 상황이 커지지 않게 안정시키려다가 뜻하지 않게 파업이 실패하는 파국을 보며 노동자들의 질타를 받고 충격을 받아 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나는 비극으로 마무리되는데, 죽음을 맞는 부분에선 실러의 오를레앙의 처녀를 오마주했다. 작품이 쓰여진 당시의 사회상에 잔 다르크라는 인물을 넣어 풍자한 작품. 한국에서도 연극이 공연된 바 있는데 그 때 공연한 배우 중 한 사람이 악역 전문으로 유명한 영화배우 안길강.

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5년 프랑스와 불편한 관계였던 독일에서도 잔 다르크를 다룬 작품이 만들어졌는데, 보불전쟁[2]으로 알자스-로렌 지방을 차지한 독일에서는 잔 다르크를 독일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3]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질 드 레와의 로맨스도 전해진다. 물론 실제로 증명된 일은 아니고 창작에 그치고 있다.

4. 영국에서의 잔 다르크

영국에서는 처음엔 잔 다르크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가 만연했으며,[4]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헨리 6세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이에 대해 자세한 것은 아래 '셰익스피어와 잔 다르크'를 참조.

그러나 계몽시기 이후에는 잔 다르크가 아니었다면 강력한 왕정국가가 이룩되어 영국민주주의가 도입이 안 되었을 거라며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늘었고,[5] 프랑스에 의해 성역화까지 되자 부정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꺼내지 못했다. 18세기 이후에 나온 영국의 역사책에서는 잔 다르크를 적어도 마녀라고 못박아 묘사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특히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반 활동한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시인 로버트 사우디는 잔 다르크를 찬양하는 서사시를 쓰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잔 다르크에 대한 무언극을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헨리 6세 1부처럼 악역으로 나오고 화형당하면서 악마에 의해 지옥으로 끌려가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걸 본 영국인 관객들이 분노하며 썩은 채소 등을 집어던지며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극단 쪽에서는 황급히 천사에 의해 천국으로 가는 것으로 내용을 바꾸었다고 한다.(…) 물론 조지 고든 바이런처럼 잔 다르크를 광신적인 프랑스 창녀라고 비난한 영국인들도 없지는 않았다.[6]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 그러니깐 영국 왕족빅토리아 멜리타 공주는 잔 다르크로 분장을 해서 자매들과 연기를 하기까지 했다. 당시 사진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를 만나 계시를 받는 장면이나, 화형 장면에서 십자가를 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잔 다르크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지 버나드 쇼는 잔 다르크의 시성을 보고 영감을 얻어 《세인트 조운》이라는 희곡을 집필했다. 여기에서 그녀는 신교도의 유형으로 묘사되었으며, 쇼는 이 작품에 힘입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쇼는 가장 치우침 없는 시선으로 인간 잔 다르크를 조명한 작가라고 할 수 있는데 실러처럼 잔 다르크를 낭만적으로 미화한 작가와 트웨인처럼 19세기 관점에서 잔 다르크를 찬양하는 작가를 냉소적으로 비판했다. 쇼는 근대 계몽주의적 관점으로 중세를 암흑기로 치부하며 내려다보는 시선이 잔 다르크를 찬양하는 정서의 기저에 깔려 있다고 지적하며 잔 다르크의 재판이 결코 일방적이었다고 할 수 없으며 중세사람들을 비웃는 19세기 사람들도 그 시대로 갔으면 기꺼이 사형시켰을 거라고 지적했다.
희곡의 잔 다르크는 로망스에 등장하는 낭만적인 성녀로, 단순하고 용감한 소녀 기사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대한 고집이 무척 강하고 당돌한 성격으로 나오며 죽음 이후 나오는 에필로그에서는 자신을 둘러싼 인물들과 현실, 그리고 미래(20세기 초반)에 자신의 시성 모습에 대해 빈정대고 냉소한다.

또한 쇼는 신의 계시 같은 것을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잔의 능력과 인품을 고증해보려 노력했다. 희곡 앞에 붙은 방대한 양의 서문에서 쇼가 역사적 인물 잔 다르크를 고증하려는 쇼의 노력과 통찰력이 물씬 드러난다. 장군으로서 전과는 본인도 미처 몰랐던 탁월한 재능의 결과물이고 그것을 스스로는 신의 계시로 착각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몰아칠 때와 부드럽게 감싸줄때를 확실히 구분하는 용인술까지 갖춘 뛰어난 리더로 평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어리고 무식해서 교회나 복잡한 사회조직의 작동원리, 이해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이들을 대할 때는 막연히 고집을 부리는데 그쳤다는 한계도 지적한다. 게다가 너무 어려서 자신의 능력을 적당히 낮출 줄 모르고, 세상의 대다수인 갑남을녀들의 단점을 마구 질타하고 성녀라는 위상을 가진 자신이 어떤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는지, 교회와 세속정치 사이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 전혀 고려치 않았으며 심지어 왕을 가르치려 들어 스스로 죽는 길로 갔다고 평했다.

윈스턴 처칠제2차 세계 대전 때 샤를 드 골에게서 잔 다르크에 대한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었는지 자신의 저서 《영국의 탄생》에서 "잔 다르크는 범상한 사람들에 비해 너무나 뛰어났기에 한 세기가 지나도 그녀에게 필적한 인물은 없다."며 칭송했으며 작가로서 잔 다르크 위인전을 쓰기도 했다. 또한 공리주의로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은 그녀를 엘리자베스 1세와 더불어 여성도 능력이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예시에 해당하는 인물로 들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출시한 잔 다르크 위인전의 집필도 영국인이 했고, 영국 출신 변호사가 쓴 인저스티스라는 저서에서는 잔 다르크의 재판에 대해서 부당한 재판에 의한 사법살인이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현대 영국에서는 적일지라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잔 다르크 성상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 성당과 잔 다르크의 이름을 붙인 학교까지 영국에 있을 정도. 그리고 잔 다르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윈체스터 추기경과 베드포드 공이 묻힌 윈체스터 대성당에는 잔 다르크의 성상을 설치하여 사죄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도 평가가 좋으며, 특히 반잉글랜드 성향 분리주의자들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잉글랜드의 적이었던 것 때문에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로 좋게 평가하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 실제로 스코틀랜드가 백년전쟁 당시에 프랑스의 편에서 싸웠던 역사가 있어서 잔 다르크에 대한 평가가 더더욱 좋을 수밖에 없다.

영국의 뮤지션 엘튼 존과 작사 파트너 버니 토핀은 잔 다르크에 대한 곡 Did Anybody Sleep with Joan of Arc을 2001년에 썼다.

4.1. 셰익스피어와 잔 다르크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초창기에 쓴 희곡 헨리 6세 1부에도 등장하는데, 세익스피어는 적장인 잔 다르크에 대해 처음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성녀 이미지로 나가다가 몰락할 즈음에 악마와 결탁한 마녀악녀로 묘사했다. 물론 직접적으로 대놓고 잔 다르크라고 하진 않고 돌려서 잔 라퓌셀이라고 하지만, 당시 잔 다르크에 대한 17세기까지의 당시 영국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이 어땠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극중 타락한 잔 라퓌셀은 악마와 결탁[7]은 기본에, 자기가 샤를 7세, 나폴리 왕, 백년전쟁 이후의 인물인 마키아벨리[8] 등 유명인들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하질 않나, 심지어 양치기 아버지에게 천하다고 패드립까지(…) 시전한다.

또, 영국의 기사 워릭이라는 등장인물은 잔 다르크의 화형을 지시할 때, 잔이 어린 소녀라도 상관하지 말고 기름을 더 붓고 장작을 쌓아 불을 강하게 해서 빨리 죽여 고통받는 시간을 줄이라는 드립을 친다. 상대방의 내세를 위해 사람들을 죽인다는 깨달음을 얻어 그걸 행한 누군가 같다. 앞뒤가 맞지 않는 유머성 대사로 볼 수도 있지만, 프랑스의 성녀를 깎아내리는 한편 관대하고 신사적인 영국 기사를 부각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후 2부와 3부에는 영국의 기사들도 선역이라고 하기 힘들지만, 잔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가혹하게 묘사한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연극을 프랑스에서도 공연했다.(…) 프랑스 관객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셰익스피어에게는 흑역사인 작품인지 4대 비극, 5대 희극과 달리 일반인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되었는데,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 4대 비극, 5대 희극 등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들에 비해서 셰익스피어의 사극들은 리처드 3세헨리 5세를 제외하면 영미권을 제외한 곳에서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다. 2011년에는 한국에서도 공연했는데, 원작과 달리 다소 순화해서 표현했으며[9]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으로 유명한 민지영이 잔 다르크 역을 맡았다. 원작 작품 속 잔 다르크의 모습과 해당 배우가 주로 출연한 작품과 주로 연기한 캐릭터를 생각하면 의도가 의심 받을 수도 있는 캐스팅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지만 오디션을 봤다고 하고 내용과 묘사도 잔 다르크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이 많이 지워지는 등 원작과 달라졌다. 참고로 배우 본인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맡은 잔 다르크 캐릭터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을 주로 했으며, 연출자(인터뷰에서 잔 다르크도 피해자라고 말하긴 했다.)와는 원작 표현에 대해서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역사와 달리 작품 후반부에서 악하게 묘사된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고민이 있었거나 복잡한 심경이었던 듯 보인다.

일본에서 했던 해당 작품의 공연의 경우 재일교포 소닌이 잔 다르크 역을 맡은 적도 있는데, 일본에서의 재일교포에 대한 대우나 인식을 생각하면 이 또한 여러모로 묘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이 작품을 두고 셰익스피어가 아닌 다른 작가가 썼다는 주장도 나왔었는데, 이건 그 무렵 잔 다르크의 시성이 추진되고 영국에서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늘어났기 때문에 책임회피로 느껴질 여지도 있긴 하다.[10]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가 굉장히 잔혹하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필력과 묘사 때문에 다른 작가가 썼다고 주장한 것과도 비슷했던 양상. 어쨌거나 크리스토퍼 말로가 셰익스피어를 대신해서 잔 다르크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을 썼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사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그가 전부 혼자 쓴 것은 아니고, 이 작품 또한 여러 작가들이 공동집필 했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마냥 변명으로만 여길 건 아니다. 거기다가 지배층과 여론이 좋아할만한 연극을 공연하여 잘 보여야 하는 당시 극단의 특성상 신인 작가였던 셰익스피어에게 그런 프로파간다적인 내용을 쓰도록 권유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부 셰익스피어의 추종자들은 두 작품 모두 셰익스피어의 초창기 작품이라며 내용의 문제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냥 대필설만 부정한다면 그리 문제될 건 없지만, 셰익스피어를 대표하는 극장인 셰익스피어 글로브의 트위터에는 잔 다르크의 기일에 '오늘은 잔 다르크가 파문되고 이단자로 선언되어 화형된 날'이라는 고인드립까지 친다는 게 문제다. 한 개인이 아닌 공식 트위터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했으니 문제가 될 만하다. 반대로 잔 다르크가 명예회복된 날과 시성된 날은 관련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이 극장이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을 상영하기도 한 것으로 볼 때 딱히 잔 다르크에 대한 비하의 의도라고 하기 힘들긴 하다. 일종의 영국식 유머 혹은 기행이었을지도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극중에서의 잔 다르크 캐릭터는 막판 마녀로 돌변하는 모습 이전에는 셰익스피어가 잉글랜드 입장에서 썼을지언정 오히려 그녀를 적이지만 괜찮은 캐릭터로 만든 편이다. 샤를 7세[11]의 대사를 통해서 생드니한테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말고, 잔이 프랑스 성인이 될 거라는 대사를 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물론 프랑스까진 몰라도 전세계의 성인이 될 것까지는 예상을 못했겠지만 후반부 문제의 장면들도 해석에 따라선 참작의 여지가 있다. 먼저 잔 다르크가 악마를 불러 도와달라고 하다가 거절 당하는 부분은 멘탈붕괴 상태에 빠져 일시적으로 하지 않은 짓까지 하면서까지 영국군을 물리치려는 무리수를 두다가 혼자서 환상을 보고 헛소리를 읊은 것일 수도 있고, 부친을 향해 패드립을 치는 장면[12]과 잔 다르크가 스스로 외치는 임신 드립[13]도 잔 다르크를 화형시키기 위해 잉글랜드 측이 변명을 하거나 어설프게 정당화시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실 애초에 캐릭터가 후다닥 악역으로 돌변하는 것부터가 뜬금없다. 셰익스피어가 잉글랜드인 입장에서 썼다는 걸 가정하면 당시 셰익스피어를 포함한 잉글랜드인의 일반적인 인식이나 시대적 한계로 충분히 여길 수 있다. 애초에 이 작품을 쓰던 때가 셰익스피어가 작가 생활 초창기라서 이후에 쓴 작품들에 비해서 부족한 게 당연하다. 문제는 이 작품을 가지고 그 당시도 아닌 현대에서 잔 다르크에 대해 고인드립을 치거나 마녀나 악녀로 여기는 걸 당연히 여기는 걸 정당화할 여지가 있다는 것.

근현대에 들어서는 잔 다르크에 대해 원작처럼 직접 마녀나 악녀로 묘사하는 게 부담되는 일인지 이미 20세기 때부터 해당 작품의 무대화에서 잔 다르크의 부정적인 묘사를 지우기도 했으며, 위에도 언급된 2011년 한국에서의 공연도 그랬고, 2016년 셰익스피어의 사극을 드라마화 한 할로우 크라운 시리즈에서도 잔 다르크의 묘사에 대해 원작과 달리 부정적인 묘사를 지우고 각색해서 연출했다.

한편 경악스러운 분석도 있다. 셰익스피어가 엘리자베스 1세를 잔 다르크로 빗대서 풍자 혹은 조롱했다는 주장.(...) # 다만 이 주장을 하는 글쓴이가 전문 연구가라기 보다는 셰익스피어 덕후나 역덕후로 추정되므로 독자연구에 의한 추측이므로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공교롭게도 블로그 본문 사진에 엘리자베스 1세 역할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이 제일 존경하는 역사인물이 잔 다르크다.

5. 영화와 드라마

잔 다르크를 다룬 영화 및 드라마도 많이 제작되었는데, 자크 리베트, 로베르 브레송 등도 전기 영화를 만드는 등 프랑스 영화계에서 꾸준히 인기 있는 소재다. 여성 배우들한테도 인기 있는 배역.

1900년 간략하게 일생을 다룬 10분 짜리 프랑스 영화가 있다.

1916년 제1차 세계 대전 프로파간다로 미국에서 만든 〈그 여자 잔〉이 있다.[14]

1927년 SF영화 〈메트로폴리스〉에 나오는 여성형 로봇의 모델이 잔 다르크이다.

1928년 걸작 무성영화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15]이 잔 다르크 소재 영화들 중 가장 유명하다. 실제 잔 다르크의 재판 기록을 그대로 옮겼으며 고문 장면과 삭발 장면이 표정 연기가 극단적이고 촬영 기법에서도 당시 영화에서 굉장히 혁신적이다. 영화 역사상 명작들을 꼽을 때 거의 높은 확률로 들어가는 작품. 그러나 로베르 브레송은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 영화를 '그로테스크 풍자극'이라고 싫어했다.

잉그리드 버그먼은 연극 두 편과 영화 두 편, 총 네 번 잔 다르크를 연기했다. 잔 다르크 전문배우라고 할 만하다. 버그먼은 어릴 때부터 잔 다르크를 사랑했고 잔 다르크를 연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잔 다르크의 고향 동레미도 굉장히 사랑했다고 한다.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가 잔 다르크 역할을 맡았다고 화제가 되었으며 관련 지역인 동레미, 오를레앙, 랭스, 루앙을 방문했고, 동레미의 명예시민이 되기도 했다. 버그먼은 당시 프랑스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잔 다르크의 환생인 마냥 대우해 당황하기도 했다.[16]

1946년 버그먼이 잔 다르크로 나왔던 연극 "Joan of Lorraine"[17]을 원작으로 하는 <잔 다르크(Joan of Arc)>(1948)는 빅터 플레밍이 연출했다. 아카데미 촬영상의상상을 받았고 버그먼은 여우주연상에 후보 지명되었으나 흥행에는 실패해 적자를 봤다. 영화 내용은 흔히 알려진 위인전 내용 그대로다. 버그먼이 이미 30대를 넘어서 10대 소녀인 잔 다르크를 연기한 게 어색하다는 평도 있다. 지미 라이든이 남동생 역으로 나왔다. 이 영화를 바탕으로 한 만화책도 존재한다.

1953년 버그먼이 오라토리오 "Jeanne d'Arc au bûcher"를 바탕으로 올렸던 공연을 촬영한 <Giovanna d'Arco Al Rogo>(1954)는[18] 두 번째 남편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연출했다.
파일:Joan_of_Arc_bergman.jpg
파일:Joan_of_Arc_comics.jpg
파일:Giovanna _d'Arco_al_rogo.jpg
<잔 다르크>(1948) 만화책(1949) <Giovanna d'Arco Al Rogo>(1954)

1957년 조지 버너드 쇼가 1923년에 발표한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성 잔 다르크(Saint Joan)>(1957)가 나왔다.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한 원작 연극과 달리 영화에 대한 평은 좋지 못했다. 그레이엄 그린이 각색했는데, 영화평은 공통적으로 쇼의 원작을 지나치게 압축한 각색에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오토 프레밍어가 연출했고, 리처드 위드마크샤를 7세 역을 맡았다. 잔 다르크 역 오디션엔 참가자가 무려 1만 8천명에 달했는데, 이를 통해 진 시버그가 뽑혀 영화계에 데뷔했다. 참가자 중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있었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19] 제인 폰다도 있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1962년 로베르 브레송잔 다르크의 재판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소재로 자기만의 잔 다르크 영화를 만들었다. 진짜 재판 과정에만 집중하는 영화다. 플로랑스 델라이가 잔 다르크를 맡았다.

1985년 제인 버킨아녜스 바르다의 다큐멘터리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B Jane B. par Agnès V)>에서 짧게 잔 다르크를 연기한 적이 있다. 진지한 연기까지는 아니고, 인터뷰 도중 본인은 영국인이고 잔 다르크랑 잘 안 어울릴것 같지만 해보고 싶다고 해서 아녜스가 깜짝 연기할 기회를 준 것이다.

1989년 키아누 리브스가 무명 시절에 나온 코믹 영화 <엑설런트 어드벤쳐>에서 주인공 둘은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의 위인들을 현대 미 합중국으로 데려오는데, 잔 다르크도 그 덕에 미국으로 왔다. 그리곤 백화점에서 에어로빅 강사가 된다.

1994년 자크 리베트가 만든 Jeanne la pucelle는 1부 <잔다르크 Ⅰ: 전투(Les Batailles)>, 2부 <잔다르크 Ⅱ : 감금(Les Prisons)>으로 나눠져있다. 상드린 보네르가 잔 다르크를 맡았다.

1999년 뤽 베송 감독과 밀라 요보비치 주연의 작품은 광신도의 의미로서 파악했는데 꽤 유명하다. 특히 잔이 영국군에게 사로잡힌 후 검은 두건을 쓴 신비로운 노인[20]이 나타나 잔에게 그간의 일이 정말로 하느님의 뜻을 따른 것인지, 아니 애초에 하느님의 계시라는 것 자체가 있었는지 힐난하는 장면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21][22]

같은 해 캐나다에서 2부작 TV 시리즈로 나온 릴리 소비에스키[23] 주연 작품은 이와 반대로 순수한 소녀의 모습으로 그렸다. 조연 출연진이 더 화려한데 잔 다르크의 어머니로 나오는 재클린 비셋(얄궂게도 재클린 비셋은 잉글랜드 출신이다), 붙잡혀 있는 잔 다르크를 친손녀처럼 잘 대우해주는 부르고뉴 집안의 부인 역할의 셜리 맥클레인, 피에르 코숑[24] 역할의 피터 오툴, 잔 다르크를 심문하는 이단심문관 역할의 막시밀리안 셸 등이 포함돼있다. EBS 세계명작드라마에서 자막 방영되기도 했다.[25]

2017년 잔 다르크의 어린시절을 소재로 한 뮤지컬 영화가 개봉했다. 제목은 <자네트: 잔 다르크의 어린 시절(Jeannette, l'enfance de Jeanne d'Arc)>로 감독은 <휴머니티>로 악명을 떨쳤던 브루노 뒤몽이고 잔 다르크 역은 리스 르플라프뤼돔(Lise Leplat-Prudhomme). 헤비 메탈힙합 등을 섞었으며 헤드뱅잉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뒤몽은 2019년 잔 다르크의 재판을 다룬 영화 <잔 다르크(Jeanne)>를 재차 찍기도 했다.

6. 현대 서브컬처의 잔 다르크

갑옷을 입고 싸우는 여전사, 소녀 콘셉트 등 여러가지 배경으로 보아 오덕계에서 환장할 만하다.[26] 실제로 모티브가 차용되는 경우는 많은데 비해서 본인을 직접 모에화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역시나 모에선의 마수를 피해 갈 수는 없어서 Fate 시리즈에 나오는가 하면, 위인전이나 학습만화를 중심으로 종종 나온다. #1#2#3

그리고 일본 매체에서는 긴 금발을 가진 가냘픈 미소녀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동정으로 죽은 성녀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백인 미소녀의 이미지를 더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잔 다르크는 흑발이었고, 무장을 위해 머리를 짧게 잘라서 단발이었으며, 키가 크고[27] 체격이 좋아 소위 건강미가 넘치는 타입이었다. 애초에 노동으로 잔뼈가 굵은 시골 농민의 딸이 가녀린 체격의 소유자였을 리가.

1980년대에 슈에이샤에서 출판된 《세계의 역사 '카를 대제와 잔 다르크 중세유럽'편》은 대략 150쪽 짜리인데, 잔 다르크는 카를 대제와 더불어 주인공을 맡은 것처럼 보인다. 표지에서 카를 대제는 왼쪽 구석 뒤에 있고 잔 다르크는 중심에 서서 제일 크게 나왔다. 그러나 카를 대제는 40쪽 가까이 등장하는데 비해 잔 다르크는 미소녀로 묘사되기는 했으나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5쪽 정도만 나온다. 물론 카를 대제는 70살 넘게 살았고 잔 다르크는 겨우 19살까지 밖에 못살았기 때문에 비중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표지 모습 그대로 잔 다르크가 미소녀로 나오는데, 일본웹에선 잔 다르크의 외모를 미화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유명출판사인 금성출판사를 비롯한 한국의 몇몇 출판사들은 이 만화를 해적판으로 들여오거나 베껴서 그렸다. 아무튼 카를 대제와 더불어 중세의 대표인물로 선정될 정도의 위상이라 여겨진다. 2011년 9월에는 대놓고 모에화를 노린 《미소녀 전사 잔 다르크 이야기》도 출간되었다.

한국에서도 학습만화를 중심으로 모에화가 시도되고 있다.[28]

잔 다르크 자체가 주인공이 아닌 이상, 주로 용감한 모습이나 미형 단역의 위치로 등장한다. 세계사에서 대표적인 여성 캐릭터인만큼, 용감한 소녀라는 이미지에 더해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하고 싶어하는 작가들이 많은 듯.

스페인의 헤비메탈밴드 Dark Moor의 2번째앨범의 수록곡인 'Maid of Orleans'가 잔다르크를 주제로한 노래이다. 가사

다음은 기타 많은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잔 다르크의 수많은 모습들이다. 가나다순.

7. 이름이나 모티브를 차용한 캐릭터

7.1. 골판지 전기 W에 등장하는 LBX

제시카 카이오스의 LBX로 이름은 잔 다르크를 줄여서 잔느 D. 전체적으로 여성형에 카우보이 이미지를 하고 있으며, 무기는 쌍권총이다.

골판지 전기 W 주인공들의 LBX들중에서 유일하게 프라모델로 상품화되지 않았다. 작중에서 필살 펑션도 한두 번 쓸까말까 할 정도로 푸대접이다.

사용 필살 펑크션은 손목 부분에서 8개의 미사일을 발사해 공격하는 '사이드 와인더'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828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828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7.2. 시티 오브 템페스트의 캐릭터 잔다르크

7.2.1. 개요


메딕의 외형을 한 서포터, 누커, 뚜벅이형 원거리 캐릭터. 평타의 사거리가 11.5로 사업이나 스킬 등을 제외한 캐릭터들의 평타들 중에선 제일 길지만 그 대신 평타에 스플이 없고 몸도 완전 유리몸이다.

7.2.2. 스킬



[1] 마크 트웨인은 가톨릭프랑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잔 다르크는 무척 좋아했다. 어린 시절 밖에 나가다가 바람에 날리는 종이 한 장을 잡았는데 잔 다르크의 위인전의 한 부분이었다는 말이 있다. 드레퓌스 사건 당시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옹호하던 에밀 졸라를 향해서 "나는 졸라를 향한 깊은 존경과 끝없는 찬사를 보낸다. 군인과 성직자 같은 겁쟁이 위선자 아첨꾼들은 한 해에도 백만 명씩 태어난다. 그러나 잔 다르크나 졸라 같은 인물이 태어나는 데는 5세기가 걸린다."라고 극찬했다.[2] 이 전쟁으로 오를레앙도 함락당하고 알자스-로렌을 빼앗긴 프랑스에서는 백년전쟁 당시 로렌 출신이고 오를레앙을 지켜냈었던 그녀를 더욱 국가적인 영웅으로 숭배했다.[3] 물론 잔 다르크의 고향이 21세기 시점에서 독일어를 접할 기회가 많고 독일계 주민들이 적지 않게 거주하는 지역인 것과 별개로, 백년전쟁 당시에는 프랑스든 독일이든 근현대와 같은 민족주의가 아예 없었다. 잔 다르크가 잉글랜드에 맞서 싸운 것도 자기 고향이 잉글랜드의 침공에 따른 영향으로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었으며, 잔 다르크 본인이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기 때문도 아니었고 잉글랜드가 프랑스에 이어 독일어권까지 침공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잔 다르크가 생물학적으로 독일계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매우 무의미하다. 애초에 프랑스 왕국 자체가 프랑크 왕국에서 이어져온 게르만족(정확히는 프랑크족) 정체성을 가진 나라이기도 했으니 백년전쟁은 관점에 따라 게르만계 국가들끼리의 싸움(앵글로색슨족+노르만족 VS 프랑크족)이라고 볼 수도 있다.[4] 다만 1896년에 나온 이 책에 따르면 잉글랜드요하네스 구텐베르크라고 불리운 윌리엄 캑스턴이 백년전쟁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480년에 잉글랜드 연대기를 냈는데, 캑스턴은 잔 다르크의 용기를 찬양했다고 언급되어 있다.[5] 백년전쟁이 잉글랜드의 승리로 돌아가 영불제국이 성립되었다면, 그때까지 유럽의 변방취급이었던 잉글랜드는 찬밥신세가 되고 프랑스가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고 여겨진다.[6] 보물섬지킬 박사와 하이드로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자신의 편지에서 이 발언에 대해 바이런이 위대한 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귀족으로서도 부끄러운 일이라며 깠다. #[7] 그런데 이 부분의 대사를 미루어 볼 때 원래부터 마녀였는데 프랑스인들 앞에서는 성녀로 둔갑했다가 본색을 드러냈음을 알 수 있다.[8] 알랑송을 빗대어 작중에서 마키아벨리라고 표현한 것이다.[9] 적개심 섞인 원본 대사의 강도가 낮혀졌을 뿐 기본적인 내용과 흐름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물론 이 평에 따르면 부정적인 모습을 상당 부분 뜯어내서 고쳐내기는 했다. 극에 쓰여지고 공연되던 과거의 당시와 달리 현대에서는 긍정적인 인식이 대부분인 잔을 원작에 충실해서 부정적인 인물로의 표현에 극단이 꺼렸거나, 또는 관객들로부터 오히려 혹평을 받을 수 있고, 원작가인 셰익스피어에게도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끼칠 수 있기에 그렇게 의도한 것일 수도 있다.[10] 20세기 초에 활동한 영국의 작가 아더 퀼러쿠치(Arthur Quiller-Couch)는 1910년 어린이들을 위해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을 바탕으로 역사를 정리한 '셰익스피어의 역사 이야기(Historical tales from Shakespeare)'라는 책을 썼는데, 헨리 6세 1부에서의 잔 다르크의 묘사는 동심파괴가 우려 되었는지 원작과 달리 성녀처럼 묘사해서 뜯어 고쳤다.[11] 이 작품에서 샤를 7세는 잔 다르크를 은근히 의심하고 이용만 해먹고 버릴 궁리를 하는 듯한 기색을 보인다. 잔 다르크도 붙잡히고 나서 샤를을 저주하는 대사를 퍼붓는다. 물론 실제 잔 다르크는 붙잡히고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재판관들에게 샤를에 대해 원망의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옹호하는 말을 했다.[12] 작중에서 잉글랜드 측이 대동하고 나타난 그 부친이 진짜 잔 다르크의 부친인지 입증이 된 건 아닌 투로 표현된다. 패드립을 들었다고 부친이 그녀에게 맞패드립을 치는데, 진짜 친부라면 친딸이 죽게 생겼는데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즉, 군중들 앞에서 망신을 주려고 가짜를 데리고 왔을 수도 있다는 말. 그리고 어떻게 해석하면 친부가 자신을 친딸로 인정하면 불이익을 당할 것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친부를 부정하는 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13] 이것 역시 작품을 볼 때 어떤 면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있다.[14] 잔 다르크가 자기 마을을 약탈하러 온 영국군 기사를 보고 반해서 그가 위험할 때 숨겨준다.(...) 나중에 잔 다르크가 전투에 참여하면서 그를 사로잡았는데 풀어주고 자신을 잊으라고 한다. 근데 그 기사는 결국에 잔을 붙잡고 만다.(...) 물론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괴로워하지만. 결국 잔은 화형에 처해지고 그 기사는 나중에 1차 세계대전 때의 영국군 장교로 환생한다. 그 장교는 자신이 전생에 잔에게 빚을 진 영국 기사라는 걸 깨닫고 잔 다르크의 영혼의 부탁을 받아 목숨을 바쳐서 독일군을 물리치고 전사하며 잔 다르크의 곁으로 간다는 내용.[15] passion을 열정으로 해석하기도 해서 <잔 다르크의 열정>이라고 옮긴 경우도 있다.(...) 물론 잔 다르크의 신앙에 대한 열정을 생각하면 아주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영화 내용을 볼 때 수난이 더 정확한 번역일 듯.[16] 묘하게도 버그먼은 영국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17] 로렌의 잔 다르크.[18] 둘 다 "화형대에 오른 잔 다르크"란 뜻이다.[19] 인권운동에 대해 얘기하면서 잔 다르크를 언급한 적이 있다. # 동생 린 레드그레이브는 "언니는 항상 스스로 잔 다르크라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린 레드그레이브는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공연(1977-8)에서 잔 다르크를 맡은 적이 있다.[20] 더스틴 호프먼이 연기했다. 영적인 존재로 묘사된다.[21] 더빙에서 잔 다르크를 맡은 성우는 정미숙이다. 본인이 연기한 역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로, 전쟁도 하고 감옥에서 절규도 하고, 화형도 당한 인물이라 정말 원없이 몰입하고 연기했다고 술회했다. 정미숙은 신풍괴도 잔느에서 잔 다르크의 환생인 주인공 쿠사카베 마론을 연기하기도 했다.[22] 공교롭게도 이 영화는 100년 전쟁의 프랑스 측의 주요 인물을 구 유고권 국가 계열 출신 배우들이 맡았는데 작중 잔 다르크 역의 밀라 요보비치는 세르비아계, 샤를 7세를 맡았던 존 말코비치크로아티아계라고 한다.이쯤 되면 이건 100년 전쟁이 아니라 유고슬라비아 내전, 우스타샤의 세르비아인 대학살인데. 다만 두 배우들 모두 민족 계통만 그럴 뿐이지 밀라 요보비치는 소련에서 세르비아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존 말코비치는 미국에서 태어난 크로아티아계 미국인이라 실제 구 유고권 국가 출신은 아니다.[23] 영화 딥 임팩트에서 일라이저 우드의 여자친구로 나왔다.[24] 익히 알려졌듯 원역자에서는 잔 다르크에게 화형을 선고해 죽인 인물이라 무조건 악역으로 등장하는 다른 잔 다르크 소재 창작물들과 달리 본작에서는 본인은 잔 다르크에게 동정적이지만 부하 이단심문관들+신부들+수도자들로 인해 결국 잔에게 화형 선고를 내리게 되고 잔이 화형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슬퍼하는 모습으로 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를 보여주며 미화되었다.[25] 잔 다르크가 활약한 오를레앙 전투와 마지막 모습인 화형식은 모두 봄에 있었는데 겨울에 촬영한 탓에 눈이 내리고 있다.(...)[26] 2007년 3월 30일 닛폰 테레비에서 방송된 '일본인이 좋아하는 위인 베스트 100 - 영웅편'에서 잔 다르크는 6위를 차지했다. 잔 다르크보다 높은 표를 얻은 인물들은 2위에 선정된 같은 프랑스인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빼면 전부 일본 인물들이었다.(1위는 사카모토 료마, 3위는 오다 노부나가, 4위는 사이고 다카모리, 5위는 미나모토노 요시츠네)[27] 현대의 전기작가가 추리한 바에 의하면, 왕족이자 시인이던 오를레앙 공작 샤를 도를레앙이 잔에게 선물로 보낸 남성용 의복의 사이즈가 정확하게 남아 있는데 그 남성복에서 추리한 잔의 신장은 약 158cm라고 한다. 현대 기준으로는 한국 여성의 평균 신장에도 조금 못 미치는 작은 키지만, 중세 여성임을 감안하면 큰 키가 맞았을 것이다.[28] 댓글에도 언급되지만 저 시대에 삼색기유니언 잭을 들고 나오는 엄청난 고증오류를 냈다. 중세시대에 현대의 문물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 시대에 쓴 것이 맞는 것마냥 그려놓고 있어 상당히 어색함이 느껴진다.[29] 2편은 루이 14세와 같이 나왔고 3편은 시대 변화에 따라 옷이 바뀌는데 잔다르크는 고대 시대에 뿔투구, 중세는 체인메일, 근대는 단발+근대 프랑스군 군복, 현대는 대머리에 AREME라고 적힌 셔츠를 입는다.[30] 문명 시리즈는 시대에 따라 위인과 유닛의 외형이 바뀌는데 4,5는 시대에 맞지 않는 위인이 나올 때가 있어서 이런 일이 생긴다. 6에서는 시대에 따라 고용할 수 있는 위인이 달라서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 베토벤은 산업 시대에만 목록에 나온다. 안중근은 문명 4에서 위대한 스파이 위인의 이름에 포함됐고, 위대한 스파이는 근현대에 나오면 양복, 고대와 중세는 닌자복을 입는데 산업시대 이후에 출현하면 문제가 없지만 산업시대 이전이 문제다...[31] 물론 이는 왕권 강화에 악영향을 끼칠 잔 다르크파를 외부의 힘을 빌려 없애려는 정치적 계산 때문이었다. 실제 샤를은 소설에서 십자군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32] 당연히 오래전 망한 그 로마제국과는 직접적 관련성이 없지만 신성로마제국처럼 교황의 승인을 얻어 자칭하다가 나중에는 혼인동맹으로 동로마와 동군연합하며 명실상부한 로마 제국이 된다.[33] 여담이지만 이 후손들도 좀 심각하게 후덜덜한데 첫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여식과 결혼해 서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둘째 아들은 동로마 제국과 동맹할 당시 황녀와 결혼해 데릴사위로 들어갔다가 아내의 죽음으로 흑화, 시민들의 인기를 바탕으로 팔레올로고스 왕조를 엎어버리고 제위를 찬탈해버린 뒤 이미 망한 오스만의 잔재를 정리하고 이집트까지 진격해 맘루크 왕조를 멸망시키는 등 대외, 대내적으로 무수한 업적을 남겨 대제 칭호를 받았다. 장녀는 아라곤 왕국에 시집가서 남편을 내조하며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시키는 데 공헌했으며 차녀는 폴란드 왕국에 시집간 뒤 국왕인 남편이 사망하자 어린 아들 대신 섭정을 하며 폴란드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대숙청을 벌여 비정상적으로 약했던 폴란드의 왕권을 확립하고 선거군주제를 폐지함에 따라 당대에 '마녀'라 불렸지만 후대에는 가장 위대한 폴란드의 군주 중 하나로 꼽힌다.[34] 이것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만약 실제 역사에서도 샤를 7세와 잔 다르크의 결혼이 가능할지 묻는 사람도 있다. 잔 다르크의 위상이 방해가 된다면, 둘이 결혼하면 안되느냐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잔 다르크의 성녀로서의 위상이 심하게 손상받게 된다. 그리고 성녀가 아닌 일개 평민으로서의 잔 다르크에게는 샤를 7세와 결혼할 그런 위상이 없다. 무엇보다도 샤를 7세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고, 중세 가톨릭에서 이혼은 금지되어 있었다.[35] 정확히는 실제 잔 다르크가 생을 마친 19세의 두 배인 38세로 설정되었다.[36] 더빙판 신의 괴도 잔느[37] 작중에서 아예 쟌느의 환생으로 나온다.[38] 마계왕자에서의 잔느는 이미 신의 말이 되버렸고 미카엘의 명 으로 마계로 침공한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842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842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