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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퍼거슨

퍼기경에서 넘어옴
알렉스 퍼거슨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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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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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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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스털링셔

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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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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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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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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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퍼거슨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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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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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 1999 · 2007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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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94 · 1995-96 · 1996-97 · 1998-99 · 1999-00 · 2002-03 · 2006-07 · 2007-08 · 2008-09 · 2010-11 · 2012-13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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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 2008

2011 FIFA 올해의 감독
수상
펩 과르디올라
2위
알렉스 퍼거슨
3위
주제 무리뉴
2013 FIFA 올해의 감독
수상
유프 하인케스
2위
위르겐 클롭
3위
알렉스 퍼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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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퍼거슨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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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기사 서임자 (남성)
British Kn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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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기사 서임자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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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콧 셰링턴

(1922)
에드워드
빅터 애플턴

(1946)
리들리
스콧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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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벤팅
(1934)
에드먼드 힐러리
(1953)
게오르그 솔티
(1971)
시드니 푸아티에이
(1974)
찰리 채플린
(1975)
앨프리드 히치콕
(1980)
밥 호프
(1998)
앤드루 와일스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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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팀 버너스리
(2004)
조너선 아이브
(2012)
Knight Bachelor 파일:knightbachelor.jpg
아이작 뉴턴
(1705)
찰스 라이엘
(1848)
찰스 휘트스톤
(1868)
조지프 리스터
(1883)
아서 코난 도일
(1902)
W. S. 길버트
(1907)
프랜시스 골턴
(1909)
핼퍼드 매킨더
(1920)
프레더릭
G. 홉킨스

(1925)
무하마드
자파룰라 칸

(1935)
오언 리처드슨
(1939)
알렉산더 플레밍
(1944)
랠프 리처드슨
(1947)
로런스 올리비에
(1947)
존 길구드
(1953)
칼 포퍼
(1965)
알프 램지
(1967)
쉬리다스 람팔
(1970)
제임스 블랙
(1981)
마이클 아티야
(1983)
클라이브
싱클레어

(1983)
렉스 해리슨
(1989)
V. S. 나이폴
(1990)
더크 보가드
(1992)
로저 펜로즈
(1994)
팀 라이스
(1994)
캐머런 매킨토시
(1996)
마이클 스타우트
(1998)
폴 너스
(1999)
리처드 브랜슨
(2000)
숀 코너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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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 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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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킹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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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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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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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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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
(1953)
마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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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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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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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
맷 버스비
(1968)
알렉 이시고니스
(1969)
에른스트
곰브리치

(1972)
리처드 애튼버러
(1976)
존 밀스
(1976)
월터 윈터보텀
(1978)
데이비드
애튼버러

(1985)
윌리엄 골딩
(1988)
피터 유스티노프
(1990)
이안 맥켈런
(1991)
안소니 홉킨스
(1993)
데릭 제이코비
(1994)
바비 찰튼
(1994)
사이먼 래틀
(1994)
조지 마틴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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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아서 C. 클라크
(1998)
엘튼 존
(1998)
이안 홈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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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너

(1998)
톰 피니
(1998)
나이젤 호손
(1999)
알렉스 퍼거슨
(1999)
프랭크 윌리엄스
(1999)
마이클 케인
(2000)
폴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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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롭슨
(2002)
앨런 파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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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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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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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로드 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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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빌리 코놀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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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마이클 페일린
(2019)
데이비드 수셰이
(2020)
샘 멘데스
(2020)
스티브 맥퀸
(2020)
로저 디킨스
(2021)
조너선 프라이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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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섀클턴
(1909)
윌리엄 브래그
(1941)
리처드 돌
(1971)
잭 브라밤
(1978)
지미 새빌
(1990)
클리프 리처드
(1995)
트레버 맥도날드
(1999)
스털링 모스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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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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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테리 프래쳇
(2009)
패트릭 스튜어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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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앤디 머리
(2017)
가즈오 이시구로
(2018)
마이클 모퍼고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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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
(1997)
제프 허스트
(1998)
나이젤 쇼트
(1999)
니콜라스 윈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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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팔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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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케니 달글리시
(2018)
루이스 해밀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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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a08d6f> 순서 연도 이름 포지션 구단 비고
<colbgcolor=#fff,#191919> 1 <colbgcolor=#fff,#191919> 2021 <colbgcolor=#fff,#191919> 앨런 시어러
(Alan Shearer)
<colbgcolor=#fff,#191919> 공격수 <colbgcolor=#fff,#191919> 블랙번 로버스
뉴캐슬 유나이티드
<colbgcolor=#fff,#191919> PL 통산 최다 득점(260골)
PFA 올해의 선수 최다 수상(2회)
2 티에리 앙리
(Thierry Henry)
공격수 아스날 PL 통산 최다 득점왕(4회)
PFA, FWA, PL 올해의 선수 최다 수상[1]
3 에릭 칸토나
(Eric Cantona)
공격수 리즈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 로이 킨
(Roy Keane)
미드필더 노팅엄 포레스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5 프랭크 램파드
(Frank Lampard)
미드필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첼시
맨체스터 시티
PL 미드필더 통산 최다 득점(177골)
6 데니스 베르캄프
(Dennis Bergkamp)
공격수 아스날
7 스티븐 제라드
(Steven Gerrard)
미드필더 리버풀 PL 통산 PFA 올해의 팀 최다 선정(8회)
8 데이비드 베컴
(David Beckham)
미드필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9 2022 웨인 루니
(Wayne Rooney)
공격수 에버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0 파트리크 비에라
(Patrick Vieira)
미드필더 아스날
맨체스터 시티
11 세르히오 아구에로
(Sergio Agüero)
공격수 맨체스터 시티 PL 외국인 통산 최다 득점(183골)
PL 최다 해트트릭(12회)
PL 이달의 선수 최다 수상(7회)
12 디디에 드록바
(Didier Drogba)
공격수 첼시
13 뱅상 콤파니
(Vincent Kompany)
수비수 맨체스터 시티 수비수 최초 헌액
14 페테르 슈마이켈
(Peter Schmeichel)
골키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톤 빌라
맨체스터 시티
골키퍼 최초 헌액
15 폴 스콜스
(Paul Scholes)
미드필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6 이안 라이트
(Ian Wright)
공격수 아스날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7 2023 알렉스 퍼거슨
(Alex Ferguson)
감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최초 헌액
18 아르센 벵거
(Arsene Wenger)
감독 아스날
19 리오 퍼디난드
(Rio Ferdinand)
수비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리즈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
20 페트르 체흐
(Petr Čech)
골키퍼 첼시
아스날
PL 통산 최다 클린시트(202경기)
21 토니 아담스
(Tony Adams)
수비수 아스날
22 2024 애슐리 콜
(Ashley Cole)
수비수 아스날
첼시
23 존 테리
(John Terry)
수비수 첼시
23 앤디 콜
(Andy Cole)
공격수 아스날
뉴캐슬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풀럼
맨체스터 시티
노팅엄 포레스트

[1] PFA 올해의 선수 2회, FWA, PL 올해의 선수 3회.
<colbgcolor=#EEEEEE><colcolor=#000>
스코틀랜드의 前 축구 감독
파일:1000008100.jpg
이름 알렉스 퍼거슨
Sir Alex Ferguson
본명 알렉산더 채프먼 퍼거슨
Alexander Chapman Ferguson CBE[1]
출생 1941년 12월 31일 ([age(1941-12-31)]세)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스코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102kg[2]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3]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축구 행정가
소속 <colcolor=#000><colbgcolor=#EEEEEE> 선수 퀸즈 파크 FC (1957~1960)
세인트 존스톤 FC (1960~1964)
던펌린 애슬레틱 FC (1964~1967)
레인저스 FC (1967~1969)
폴커크 FC (1969~1973)
에어 유나이티드 FC (1973~1974)
감독 이스트 스털링셔 FC (1974)
세인트 미렌 FC (1974~1978)
애버딘 FC (1978~1986)
스코틀랜드 대표팀 (1985~198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86~2013)
기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3~2024 / 기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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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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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colcolor=#000> 가족 배우자 캐시 퍼거슨[4] (1938~2023 / 사별)[5]
장남 마크 퍼거슨 (1968년생)
차남 대런 퍼거슨 (1972년생)
삼남 제이슨 퍼거슨 (1972년생)
}}}}}}}}} ||

1. 개요2. 생애
2.1. 유년 시절과 축구 선수 경력2.2. 지도자 경력2.3. 은퇴 후 행보
2.3.1. 영향력 행사 관련 비판 및 반론
3. 위상 및 평가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4.1.2. 개인 수상4.1.3. 클럽 기록
4.2. 감독
4.2.1. 대회 기록4.2.2. 개인 수상4.2.3. 통산 기록
4.3. 수훈
5. 어록6. 알렉스 퍼거슨에 대한 언사7. 여담8. 같이보기

[clearfix]

1. 개요

영국 스코틀랜드축구 선수 출신 감독, 행정가.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헤이젤 참사로 침몰해 가던 잉글랜드 프로 축구의 부활을 이끈 감독으로, 34세의 나이에 감독으로 데뷔해 에버딘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1986년부터 27년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지휘하며 모두 39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특히 1999년에는 잉글랜드 구단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하며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수훈받았다.[6] 또한 감독 시절 총 2,155경기를 치르고 49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려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를 지휘하고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감독이기도 하다.

2. 생애

2.1. 유년 시절과 축구 선수 경력

퍼거슨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고반이라는 곳에서 알렉산더 비튼 퍼거슨(Alexander Beaton Ferguson)과 엘리자베스 하디(Elizabeth Hardie)의 아들로 태어났다. 둘은 퍼거슨의 고모 알렉산더 비튼 퍼거슨의 동생의 소개로 만났다고 하는데, 속도위반 결혼을 했기에 어린 퍼거슨에겐 어떻게 결혼하게 된 건지 자세한 사정은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항구 노동자로 집안은 부유하지 못했고 주변 환경이나 치안도 딱히 좋은 건 아니었지만, 노동자촌 특유의 끈끈한 의리는 마음껏 만끽하며 지낼 수 있었고 그것이 자기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퍼거슨은 자서전에서 이야기했다. 실제로 4살, 5살 때 사귄 친구들과 노년이 될 때까지도 친하게 지낼 정도로 그때의 인간관계가 퍼거슨에게 미친 영향은 컸으며 고집스런 성격도 그때부터 변함없었다고 한다.

퍼거슨은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보통 그러하듯 축구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유소년 축구 클럽에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다니곤 했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축구부로 활동했으며, 그렇게 축구에 미친 결과 학업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아 교장에게 학업보다는 기술을 배우는 게 좋겠다는 충고를 받기도 했다.

고교 졸업 후 퍼거슨은 조선소의 연습공으로 취직했으며, 동시에 파트타임으로 당시 유명한 아마추어 클럽이었던 퀸즈 파크, 세인트 존스톤 등에서 활약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 그는 평생의 반려자이자 세 아들의 엄마가 되는 캐시 홀딩을 만나기도 했다.[7]
파일:젊었을때퍼거슨1.jpg
알렉스 퍼거슨과 캐시 홀딩
이후 퍼거슨은 던펌린 애슬레틱로 이적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좋은 성적을 내었다. 비록 감독과 마찰이 있어 컵 대회 결승전에 나가지 못하는 등의 일이 있긴 했지만, 퍼거슨은 그때 열심히 뛰었고 1965-66 시즌엔 51경기 45골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으며 스코틀랜드 리그 공동 득점왕도 차지했다. 월드클래스 선수는 아니었어도 충분히 훌륭한 선수였다. 그리고 던펌린에서 뛰던 1966년 5월 12일 캐시 홀딩과 결혼식을 올렸다.

퍼거슨은 던펌린에서의 활약으로 당시, 그리고 지금도 셀틱과 더불어 스코틀랜드 최고의 클럽인 레인저스로 이적했는데, 레인저스에서 그는 의외의 암초를 만나게 되는데 그건 다름아닌 종교 갈등이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가톨릭개신교 간의 종교 갈등이 매우 극심했고, 셀틱은 가톨릭을, 레인저스는 개신교를 대표하는 클럽이었다. 퍼거슨의 경우 본인도, 아버지도, 동생도 모두 개신교도였으나 퍼거슨의 아내인 캐시가 가톨릭 교도였고 레인저스의 몇몇 사람은 그것 때문에 노골적으로 퍼거슨을 적대했다. 1968년 9월 18일 퍼거슨은 첫 아이 마크[8]를 얻었는데, 그 일마저 퍼거슨이 자기 아들에게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게 했느니 어쩌니 하는 중상모략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구단 보드진의 어이없는 감독 경질과 그로 인한 마찰 등으로 퍼거슨은 어린 시절 꿈의 클럽이었던 레인저스에 환멸을 느끼고 결국 폴커크로 떠나게 된다.[9]

폴커크에 머무를 때부터 퍼거슨은 본격적으로 감독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코치 자격증을 취득한 후 사실상의 플레잉 코치(선수 겸 코치)로 재직하기 시작했다. 던펌린 시절의 감독을 다시 만난 그는 던펌린에서 뛸 때처럼 서로 존중하고, 때로는 싸우고 하면서 첫 번째 코치직을 경험했고, 이후 에어 유나이티드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낸 후 선수로서 은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편 감독 일을 하면서 부업으로 술집도 했고 꽤 장사가 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술집 손님 등을 대상으로 사채놀이도 했으나 이러한 부업이 시간과 정신력 소모가 크다고 느끼게 되었고 또 술집 장사도 조금씩 기울자 모두 그만두고 감독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2.2. 지도자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알렉스 퍼거슨/지도자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3. 은퇴 후 행보

파일:인자퍼거슨.gif
이상: 은퇴 후, 경기를 즐기고 싶었던 퍼거슨.
파일:은퇴후경기4.gif
파일:은퇴후경기3.gif
현실: 은퇴 후 경기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10]
파일:퍼거슨전화.gif
파일:퍼거슨전화2.jpg
BBC 한 맨유팬, 후임 감독이 선덜랜드에 패한뒤 긴급전화에 전화해 퍼거슨 바꿔달라 요청. 물론 허락될리 없었다.
그러나 2013-14 시즌에서 맨유의 상태가 영 메롱이라 선수단 정리를 암시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예스의 경우에는 자신의 맨유 감독 초창기를 언급하며 감독 자리를 계속 맡길 것이라고 한다.#[12]

하지만 모예스는 결국 부진한 기록을 남기고 짤렸고, 후임으로 반 할 감독이 맨유를 이끌게 되었다.[13] 하지만 수천억을 들이고도 4위로 끝내는 아쉬움과, 무언가 확립되지 않은 전술 등 아쉬움이 많아 진터라 맨유팬들은 이 돈 영감님께 드렸으면 트레블이라며 아쉬워 하는 중. 사실 이건 비단 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맨유의 전설적인 수비수인 리오 퍼디난드네마냐 비디치도 둘이서 우리가 있을 때 저 돈을 썼으면 얼마나 많은 트로피를 더 들었을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사실 돈은 많이 썼지만 제대로 된 스쿼드 구축은 실패했다. 그나마 건져낸 선수가 안토니 마샬 정도지만 과거 맨유 공격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무리뉴의 맨유 커리어에서 FA 커뮤니티 실드, EFL컵, 그리고 UEFA 유로파 리그[14]에서 우승을 하게 되자 퍼거슨이 3년 만에 함박웃음을 보여주며 박수를 치고 있다. 주제 무리뉴에 대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줄 것이라는 그와 맨유의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UCL 복귀에 기뻐했고 주제 무리뉴 체제의 맨유가 바젤과 경합하여 3-0 대승을 거두자 경기 종료 직전에 알렉스 퍼거슨이 모예스가 말아먹어 경직한 표정을 지은 지 3년 만에 온화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파일:퍼거슨NBA관람.jpg

2.3.1. 영향력 행사 관련 비판 및 반론

퍼거슨이 원체 맨유에 상징적인 인물이다 보니, 은퇴 후에도 그에게 쏟아지는 관심이나 영향력은 상당한 편이다. 그래서 상기된 행보 등 은퇴 후에도 퍼거슨이 맨유에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불만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구단 입장에서도 동상까지 세워 줄 정도니 그의 눈치를 안보기는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일부 맨유 팬 중에선 현역도 아닌 사람의 의견이 이렇게까지 반영되는 게 과연 옳은 것이냐 노욕이라는 식의 말도 나온다.[21] 아스날을 떠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는커녕 직관조차 오지 않으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아르센 벵거 전 감독과 꽤나 대조되는 부분이라는 것.[22]

허나 이에 대해선 반론도 있는데,
"내가 맨유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슈퍼 리그는 유럽 70년 축구 역사를 저버리는 일이다."
슈퍼 리그 창설 논란 관련 퍼거슨의 인터뷰
먼저 "퍼거슨이 현직도 아닌데 노욕 운운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해 비판 받는다"라는 주장은 냉정히 말해서 축구단의 가쉽에 훨씬 민감한 현지를 포함해 다수 팬 사이에서 전혀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비판으로 개인의 사견 이상의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일단 "퍼거슨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주장의 '영향력'라는 범주부터가 너무 두루뭉술하며, 구단 전반의 의사 결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상술한 슈퍼 리그 관련 인터뷰, 라커룸 출입을 하지 않거나 선수단과 따로 움직였다는 일화들이나 모예스의 부진 이후 나오던 감독 복귀설을 딱 잘라 부인하거나, 다큐멘터리인 ALL OR NOTHING에서 주제 무리뉴의 "감독 임기 2년 반 동안 '델리 알리 영입해라.'는 조언 하나만 하였다"라는 회고 등 오히려 본인의 영향력이 감독 권한을 침범하거나, 구단 운영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경계했다는 평가를 받을지언정, 영향력을 휘둘렀다고 비판 받을 상황이 전혀 아니다.

그리고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볼 만한 사례가 기껏해야 호날두의 맨유 리턴 정도인데, 이때는 구단의 마지막 발롱도르 수상자이자 최전성기의 상징이 지역 라이벌팀에 스스로 역제안해서 입단한다는 초대형 사태로 현재 맨유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파트리스 에브라, 리오 퍼디난드, 폴 스콜스, 개리 네빌, 웨인 루니 등 맨유 레전드들이 달라 붙어 호날두를 설득한 초대형 사태였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오히려 이런 초대형 사태가 아닌 이상 영향력을 절제한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받았지 본인의 영향력을 오용한다고 비판 받을 상황이 아니며 오히려 호날두가 맨시티로 이적했다면 방관으로 비난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상술된 벵거와의 비교도 어려운 상황인 게 구단 내 업적과 위상, 상징성과는 별개로 감독 은퇴 후 2013-14 시즌부터 앰버서더에 취임하면서 현장에서 물러났지만 구단에 여전히 소속되어 있으며 감독 은퇴조차 우승 감독이 가족사로 은퇴를 결정하면서 팬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은퇴한 퍼거슨과 말년에는 Stay, Out으로 팬덤의 평가가 갈리면서 고별하였고 아스날 구단에 소속되지 않은 벵거는 상황이 다르다.

그리고 간과되는 것이 퍼거슨이 영향력을 행사할 의사가 있었다면 굳이 명예직 성격이 강한 앰버서더나 컨설턴트가 아니라 모예스 경질 후 거론되던 감독 복귀, 감독 복귀가 어렵다면 풋볼 디렉터나 사장 같은 실권이 충만한 직책으로 부임해 비교도 안 되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까놓고 구단과 팬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역대 최고의 명장이 성적 부진이라는 명분이 있는 상황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의사가 있었다면 명예직으로 부임하겠는가? 삼성 라이온즈김응용-선동열, 마이애미 히트팻 라일리- 에릭 스폴스트라 체제처럼 자신의 제자나 사단을 감독으로 현장에 보내고 본인이 상왕처럼 군림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퍼거슨이 맨유에서 압도적인 위상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상술하였듯이 퍼거슨 본인은 오히려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지양하는 행보를 보였으나 경기장 관람 한 번, 인터뷰 한 번이 너무 큰 파급력을 가졌기에 나오는 해프닝인 것이다.

3. 위상 및 평가

퍼거슨은 전 세계 모든 감독의 보스입니다.
주제 무리뉴 #
파일:0e3cce01a8352e2e5f2ed3edd82ca2aceec.jpg
프리미어 리그를 대표하는 감독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힌다.[23] 보통 역대 최고의 축구 감독을 꼽을 때 퍼거슨과 함께 거론되는 엘레니오 에레라, 리누스 미헬스, 아리고 사키, 요한 크루이프, 펩 과르디올라 등이 역대 최고 반열의 고평가를 받는 주요한 이유에는 이들이 후대 축구에 끼친 전술사적 영향력이 있다. 반면 퍼거슨은 딱히 전술적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도 역대 감독 평가에서 최상위권을 다투므로, 축구 감독으로서 팀의 성공을 이끄는 능력만 따지면 퍼거슨이 역사상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퍼거슨의 감독 커리어에 있어 가장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경이로운 수준의 롱런을 하는 와중에도 이렇다 할 실패가 없다는 점이다. 1974년 스코틀랜드 3부 리그 이스트 스털링셔의 임시 감독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하여 2013년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은퇴하기까지, 퍼거슨은 축구계에서 무려 40년간 명장으로 군림했다.[24]

이스트 스털링셔에서 술집 사장 겸 임시감독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퍼거슨은 파산 위기[25]의 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4개월 만에 세인트 미렌의 정식 감독이 되어 3부 리그 중위권을 멤돌던 팀에서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유소년 선수들을 뒤져가며 평균 연령 19세의 팀을 구축, 고작 3년 만에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26] 에버딘에서는 90년간 이어지던 셀틱레인저스라는 소위 올드 펌의 독주를 그들의 10분의 1 예산으로 붕괴시켰다.[27] 유럽 클럽 랭킹 116위였던 애버딘이 바이에른 뮌헨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UEFA 컵위너스컵UEFA 슈퍼컵을 우승하고 유럽 클럽 랭킹 6위에 오르는 등 한때나마 유럽의 강호가 됐다. [28] 맨유에서는 25년 간 리그 우승이 없던 팀이 프리미어 리그 출범 후 20년간 리그 13회 우승을 비롯해 총 38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리도록 이끌었다. 맨유를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구단이자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문 축구 클럽 위치에 올려놓은 장본인이며, 헤이젤 참사 이후 추락했던 잉글랜드 프로 축구 리그를 다시 일으킨 최대 공로자로 이 업적을 인정받아 기사작위를 수여받았다.

부임했던 클럽마다 모두 여건이 좋지 않거나, 다소 몰락한 팀이었다는 불리함을 지녔음에도[29] 퍼거슨은 40년의 커리어 동안 이를 극복하지 못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축구 감독으로서 전술사에 끼친 영향이 크지 않음에도 역사상 최고로 거론되는 건 이처럼 축구 감독의 존재 이유인 '팀의 성공'이라는 목표를 가장 완벽에 가깝게 이행해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30] 상징성 측면에서도 퍼거슨은 전체 감독 커리어에서 총 49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려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우승을 기록한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른 감독이기도 하다.[31] 단순히 맡았던 팀들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리그 지위를 두고 다투는 프리미어 리그를 현재 위치로 올려놓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점도 퍼거슨을 평가할 때 항상 언급되는 부분이다.
(2008년경) 잉글랜드 전체 92클럽 중에 12%의 감독 자리를 퍼거슨의 제자들이 지휘했다.
Premiership: Birmingham - Steve Bruce / Reading - Steve Coppell / Sunderland - Roy Keane / Blackburn Rovers - Paul Ince
League One: Huddersfield Town - Andy Ritchie / Rotherham United - Mark Robins / Sheffield United - Bryan Robson
League Two: Bury - Chris Casper / Morecambe - Sammy McIlroy / Peterborough - Darren Ferguson / Wrexham - Brian Carey
"요즘 나의 예전 선수들은 나에 대항하기 위해(타 클럽 감독을 의미) 단체로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이 클럽에 있었던 것이 그들의 향후 커리어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것은 전염과 같다. 그들은 경기장을 떠나기를 원하지 않을 것. 그들은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경기를 계속하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
파일:퍼거슨제자감독2.jpg
퍼거슨이 키운 제자들
(알렉스 퍼거슨 경이 감독이던 시절 함께 했던 맨유의 선수 중 감독이 된 사람 명단 - 31명)
Viv Anderson, Michael Appleton, Henning Berg, Clayton Blackmore, Laurent Blanc, Steve Bruce, Chris Casper, Peter Davenport, Simon Davies, Darren Ferguson, Ryan Giggs[32], David Healy, Gabriel Heinze, Mark Hughes, Paul Ince, Andrei Kanchelskis, Roy Keane, Henrik Larsson, Pat McGibbon, Gary Neville, Paul Parker, Mike Phelan, Bryan Robson, Mark Robins, Teddy Sheringham, Ole Gunnar Solskjaer[33] , Jaap Stam, Frank Stapleton, Gordon Strachan, Chris Turner, Neil Webb. 본 명단은 퍼스트 팀의 감독들만 포함한 것이며 코치나 부감독은 제외되었다.

1985년, 헤이젤 참사로 UEFA 주관 유럽 대항전 5년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잉글랜드 프로 축구는 참사 이전 1~3위을 유지하던 리그 랭킹이 27위까지 떨어지고 전성기가 지난 선수들이 향하는 리그 취급까지 받았다. 이는 리그가 PL로 재출범한 1990년대에 들어 회복되기 시작했고 당시 리그를 이끈 건 PL 출범 후 첫 10년간 리그를 7번 우승한 퍼거슨의 맨유였다.[34] 맨유에게 26년 만에 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긴 퍼거슨은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일개 팀이 아니라 리그를 다시 정상에 올려놓겠다."라고 선언했고 그의 말대로 잉글랜드 프로 축구는 1999년 맨유가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면서 마침내 리그 랭킹이 5위권으로 복귀했다.[35] 헤이젤 참사 이후 15년 간의 암흑기 탈출을 주도했고 직접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에 퍼거슨은 영국 왕실로부터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위상을 되찾은 사람으로 공인되는 기사 작위을 수여받으면서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후에도 퍼거슨은 15년을 더 맨유 감독으로 있으며 강자의 자리를 지켰고, 프리미어 리그는 세계 최고의 프로 축구 리그를 다투는 위치에 올랐다. 이처럼 감독으로서 굉장한 업적들을 연속해서 이뤄냈으며, 단순히 팀뿐만 아니라 리그를 일으켜 세워 기사 작위까지 수여받았기에 현역 시절 퍼거슨의 축구계 입지는 대단히 컸다.

상대팀 감독들도 퍼거슨이 감독 모임 자리에 가거나, 만찬장에 들어서면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보고 인사한다고 한다. 주제 무리뉴는 전술했듯이 퍼거슨을 존경하며 실제로 자기도 그를 맨유의 구단원들이 하듯이 BOSS 라는 표현으로 부른다고 밝힌 바 있다.
파일:퍼거슨902.png
UEFA 앰버서더 및 엘리트 감독 포럼 회장을 맡게된 퍼거슨
맨유 감독 은퇴 후, 퍼거슨은 유럽 축구 연맹 엘리트 감독 포럼의 회장을 맡고 있다. UEFA에게 유럽의 각국 축구협회가 감독들을 가르칠 사람이 필요하다고 요청했기 때문. 매해 9월 개최되는 UEFA 엘리트 감독 포럼은 유럽 구단 감독 중 초청받은 감독들만 참석해 전략을 연구하는 모임이다. 이 포럼에서 퍼거슨은 젊은 감독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으며, 축구 스포츠의 변화를 논하고 있다. 축구 발전에 있어 좋은 여러 아이디어가 감독들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아르센 벵거, 무리뉴, 카를로 안첼로티 등 여러 경험 많은 감독들과 젊은 새로운 감독들로 구성되어 있다. #1 #2 #3 #4 #5

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

4.1.2. 개인 수상

4.1.3. 클럽 기록

<rowcolor=#fff> 연도 클럽 출장 수 (득점 수)
1957~1960 퀸즈 파크 FC[36] 32 (15)
1960~1964 세인트 존스턴 FC 37 (19)
1964~1967 던펌린 애슬레틱 FC 89 (66)
1967~1969 레인저스 FC 41 (25)
1969~1973 폴커크 FC 95 (37)
1973~1974 에어 유나이티드 FC 24 (9)
17시즌 통산 317 (171)

4.2. 감독

4.2.1. 대회 기록

4.2.2. 개인 수상

4.2.3. 통산 기록

<rowcolor=#fff> 구단 기간 경기 승률
이스트 스털링셔 FC 1974.06 ~ 1974.10 17 9 2 6 52.9%
세인트 미렌 FC 1974.10 ~ 1978.05 169 74 41 54 43.8%
애버딘 FC 1978.06 ~ 1986.11.06 459 272 105 82 59.3%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1985.10.01 ~ 1986.06.30 10 3 4 3 30.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86.11.06 ~ 2013.05.19 1,500 895 338 267 59.7%
통산 2,155 1,253 490 412 58.1%

4.3. 수훈

5. 어록

영상
It's about responsibility.
이건 책임에 관한 문제입니다.
I think they(players) are responsible for their actions, responsible for what they said on Twitter.
전 그들(선수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트위터에 올린 내용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I don't understand it, to be honest with you. I don't know why anybody can be bothered with that kind of stuff.
솔직히 말해서, 이해가 안 됩니다. 사람들이 굳이 그런 일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How do you find the time to do that? There are a million things you can do in your life without that.
그런 것을 할 시간을 어떻게 내죠? 인생에서 그것 없이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백만 가지는 되는데요.
Get yourself down to the library and read a book.
차라리 도서관에 가서 책 한 권 읽으세요.
(기자들의 웃음소리)
Seriously. It is a waste of time.
진지하게, 그건 시간 낭비예요.
트위터의 한 유저가 웨인 루니를 자극한 적이 있는데, 이때 루니는 '10초 안에 널 때려 눕혀주마, 이 계집애 같은 놈아. 지킬 수 없는 말은 하는 거 아니다. 기다리고 있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FA에게 경고를 받았다. 이에 퍼거슨은 루니에게 트위터를 할 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인생 조언을 남겼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 발언은 그저 평범한 인터뷰에 불과했지만, 이후 SNS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이들이 계속 나오자 꾸준히 인용되며 영향력을 발휘했다. 자세한 내용은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 문서 참조.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일개 클럽이 아니라 리그를 세계 정상에 다시 올려 놓는 것이다.[43]
1999년 맨유의 트레블은 맨유 우승만이 아니라 잉글랜드 리그를 침몰에서 다시 구해놓은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하다.[44]
나는 항상 클럽과 팬들 사이의 다리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는 팬들이 행복한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즐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팀보다 큰 선수는 필요가 없다.
상대 진영으로의 침투가 되지 않은 채 점유율만 높은 것은 시간 낭비다.
(2002년 당시 한국 국대에 대해) 월드컵에서 한국의 경기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면서 열정적이고 힘이 넘치는 경기를 펼쳤죠. 그러나 이것이 K리그를 희생하면서 얻은 결과라는 측면을 결코 잊어선 안 됩니다.
(루니에게) 난 감독이고 넌 선수야
2010년에 루니가 나한테 외질 사달라고 했는데 루니한테 "선수의 역할은 경기를 뛰는 것이고 감독의 역할은 적절하게 팀을 짜는 것이다. 넌 니 할일이나 해라"라고 했다.#
진정한 챔피언이란 패배했을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 우리들 또한 그러고 싶다.
나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빈곤했던 것은 아니다. TV나 자동차, 전화는 없었을지 몰라도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 생각했고 실제로 나에게는 축구가 있었다.
리그 우승 없는 챔피언스 리그, 아무런 의미없다.
전술은 중요한 것이지만 전술이 시합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시합에서 이기는 것은 인간이다.
천 번, 아니, 백만 번을 다시 해보라고 해도 그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아직 현역이다. (걷어찬 운동화가 베컴의 얼굴을 직격한 일이 고의가 아니었음을 언급하며)
우리들은 언제나 이 클럽을 '버스'에 빗댄다. 버스를 놓쳐 버린 사람이 나온다 해도 '미안!'이라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타지 못한 사람을 주우러 되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6. 알렉스 퍼거슨에 대한 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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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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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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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진
<rowcolor=#d00027> 직책 국적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비고
구단주 파일:미국 국기.svg & 파일:영국 국기.svg 글레이저 가문 & 이네오스[1] Glazer Family & INEOS
회장 파일:미국 국기.svg &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조엘 글레이저 & 에이브럼 글레이저[2] & 제임스 래트클리프 Joel & Avram Glazer & Jim Ratcliffe
명예 회장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마틴 에드워즈 Martin Edwards
CEO 파일:프랑스 국기.svg 오마르 베라다 Omar Berrada
CFO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로저 벨 Roger Bell
COO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콜레트 로체 Collette Roche
CCO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토비 크레이그 Toby Craig
이사 파일:프랑스 국기.svg 장클로드 블랑 Jean-Claude Blanc
이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데이브 브레일스포드 Sir Dave Brailsford
이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존 리스 John Reece
이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롭 네빈 Rob Nevin
이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데이비드 길 David Gill
이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마이클 에델슨 Michael Edelson
이사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알렉스 퍼거슨 Sir Alex Ferguson
사외이사 파일:미국 국기.svg 브라이언 글레이저 Bryan Glazer
사외이사 파일:미국 국기.svg 케빈 글레이저 Kevin Glazer
사외이사 파일:미국 국기.svg 에드워드 글레이저 Edward Glazer
사외이사 파일:미국 국기.svg 다시 글레이저 Darcie Glazer
사외이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로버트 레이탕 Robert Leitão
사외이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존 훅스 John Hooks
사외이사 파일:인도 국기.svg 마누 사누이 Manu Sawhney
실무진
<rowcolor=#d00027> 직책 국적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비고
스포츠 디렉터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댄 애쉬워스 Dan Ashworth
부 스포츠 디렉터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 앤디 오보일 Andy O’Boyle
테크니컬 디렉터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제이슨 윌콕스 Jason Wilcox
인재 개발 디렉터 파일:독일 국기.svg 크리스토퍼 비벨 Christopher Vivell
임시 퍼포먼스 디렉터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샘 에리스 Sam Erith
축구 운영 책임자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데이비드 해리슨 David Harrison
아카데미 책임자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닉 콕스 Nick Cox
수익 총 책임자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마크 암스트롱 Marc Armstrong
코칭 스태프
<rowcolor=#d00027> 직책 국적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비고
감독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후벵 아모링 Rúben Amorim
수석 코치
1군 코치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대런 플레처 Darren Fletcher
파일:스웨덴 국기.svg 안드레아스 게오르그손 Andreas Georgson
골키퍼 코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크레이그 모슨 Craig Mawson
피트니스 코치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파울로 가우디노 Paulo Gaudino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찰리 오언 Charlie Owen
파워 코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마이클 클레그 Michael Clegg
운동 코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리차드 호킨스 Richard Hawkins
U-21 감독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트래비스 비니온 Travis Binnion
U-21 골키퍼 코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토미 리 Tommy Lee
U-18 감독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아담 로렌스 Adam Lawrence
U-18 수석 코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콜린 리틀 Colin Little
U-18 골키퍼 코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케빈 울프 Kevin Wolfe
시니어 아카데미 코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마크 뎀프시 Mark Dempsey
개발 코치 파일:웨일스 국기.svg 데이비드 휴즈 David Hughes
유스 코치 파일:웨일스 국기.svg 클레이튼 블랙모어 Clayton Blackmore
스카우트
<rowcolor=#d00027> 직책 국적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비고
스카우트 책임자 파일:독일 국기.svg 크리스토퍼 비벨 Christopher Vivell
수석 스카우트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스티브 브라운 Steve Brown
스카우트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마르코 데 시스티 Marco De Sisti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믹 코트 Mick Court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더글라스 조지 Douglas George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토니 쿨터 Tony Coulter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사이먼 웰스 Simon Wells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존 소번 John Thorburn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마틴 파레데스 Martín Paredes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아르망 베네커 Armand Benneker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로이 뷰켄캄프 Roy Beukenkamp
파일:헝가리 국기.svg 피터 쇼케 Péter Szőke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주세페 안토나치오 Giuseppe Antonaccio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파블로 부드나 Pablo Budna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벤 맥팔란 Ben McFarlan
파일:벨기에 국기.svg 롤랜드 얀센 Roland Janssen
파일:일본 국기.svg 케이 타무라 Kei Tamura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호세 마요르가 José Mayorga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존 램버트 John Lambert
파일:독일 국기.svg 노베르트 뒤웰 Norbert Düwel
파일:폴란드 국기.svg 표트르 사도프스키 Piotr Sadowski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크르스트 킬리바르다 Krsto Kilibarda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크리스티안 에르콜라니 Cristian Ercolani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스티브 헤드 Steve Head
파일:브라질 국기.svg 가브리엘 코레아 Gabriel Correa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 존 맥나이트 John McKnight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니콜라스 치날리 Nicolás Cinalli
유스 스카우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레네 무넨 Rene Moonen
파일:독일 국기.svg 안드레아스 헤르만 Andreas Herrmann
파일:스페인 국기.svg 게라도 구즈만 Gerardo Guzmán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토니 테일러 Tony Taylor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스테픈 티어니 Stephen Tierney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제임스 하커 James Harker
파일:브라질 국기.svg 세르지우 데 소우자 Sergio De Souza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자말 자렛 Jamahl Jarrett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스테픈 아제웰 Stephen Ajewole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글린 케니 Glynn Kenny
파일:프랑스 국기.svg 제롬 클라인 Jerome Klein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코너 헌터 Connor Hunter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마이클 클리토우 Michael Klitou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칼럼 텅 Callum Tongue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카메론 호크스 Cameron Hawkes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루크 페도렌코 Luke Fedorenko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샘 윌리엄스 Sam Williams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벤 클락크 Ben Clarke
골키퍼 스카우트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토니 코튼 Tony Coton
지원 스태프
<rowcolor=#d00027> 직책 국적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비고
협상 책임자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맷 하그리브스 Matt Hargreaves
임대 선수 매니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레스 패리 Les Parry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마이클 애플턴 Michael Appleton
아카데미 스탭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대니 키오 Danny Keough
수석 분석관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폴 브랜드 Paul Brand
비디오 분석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스튜어트 헵인스톨 Stewart Heppinstall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앤서니 베이츠 Anthony Bates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알렉스 트레플턴 Alex Threapleton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게리 스위니 Gary Sweeney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벤 맥팔란 Ben McFarlan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잭 패쳇 Jack Patch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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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마크 플랫 Mark Pl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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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분석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톰 그린 Tom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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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수석 요리사 파일:모로코 국기.svg 오마르 메지안 Omar Mezi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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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1 물리치료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톰 휴즈 Tom Hug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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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8 물리치료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닐 허프 Neil 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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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정보
출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
마지막 수정 일자: 2024년 9월 17일

[1] 2024년부터 공동 구단주[2] 2005년부터 공동 회장을 역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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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57
비야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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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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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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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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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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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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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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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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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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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90
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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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91
페트로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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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92
크루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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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93
후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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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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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95
반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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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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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97
히츠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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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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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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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 보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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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60
오스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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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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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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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63
리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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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64
무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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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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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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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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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68
글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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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69
미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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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70
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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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71
푸스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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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72
인베르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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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73
비츠팔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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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74
로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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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75
암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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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76
허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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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77
라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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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78
하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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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79
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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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80
제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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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81
보슈코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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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82
체르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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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83
트라파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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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84
리드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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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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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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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88
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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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더네스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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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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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91
후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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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92
보슈코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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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93
카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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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94
크루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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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95
카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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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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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98
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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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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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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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영제국 훈장 3등급 "Command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 수훈.[2] 선수 시절에는 80kg[3] 스트라이커[4] 결혼 전 이름은 캐시 홀딩이였다.[5] 현지 시간 2023년 10월 6일 별세. 향년 84세. #[6] 물론 영국에서 불러주는 호칭으로 굳이 외국인이 '경'이나 'Sir' 할 필요는 없다. 또 엄밀히 따지면 세습 작위가 아니기 때문에 이름 없이 성에만 경칭을 붙인 퍼거슨 경(Sir Ferguson)은 잘못된 표현이다. '알렉스 퍼거슨 경' 또는 '알렉스 경'이 맞는 표현이다. 참고로 Knight Bachelor는 '최하위 훈작사'로 번역되고는 하지만, 3등급 CBE나 4등급 OBE 등 기사작위급보다 아래인 훈장'만' 받은 사람을 '훈작사'로 칭하는 경우도 또 많기 때문에 이는 혼란을 부르는 번역이다. OBE가 훈작사인데 Knight Bachelor가 최하위 훈작사라는 그 말대로라면 CBE > OBE >>> Knight Bachelor라는 말도 안 되는 꼴이 만들어진다. '훈작사'로 구글링을 해서 조금만 살펴보면 그때그때 다른 개족보를 확인할 수 있다. 훈작사라는 단어 자체도 영국 정부로부터 공인된 것인지 출처가 불분명한 단어이고, 훈장의 훈(勳)과 작위의 작(爵), 기사의 사(士) 세 단어를 짬뽕시켜 만들어진 한자어다. 제도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이 훈장과 작위를 아예 뭉뚱그려서 하나로 퉁쳐버리게 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기사작위는 아무나 받는 게 아니냐는 잘못된 인식에 이런 혼란스런 번역이 상당한 공헌을 했다. 따라서 여기서는 원어 'Knight Bachelor'를 그대로 밝혀 적는다.[7] 부부간의 사이는 대단히 좋은 듯 하다. 천하의 퍼거슨도 집안에서는 아내에게 수그린다고. 한 번은 먼 거리로 친선 경기를 가야 했는데 아내가 집안 청소하고 가라는 한 마디에 대청소를 거드느라 정작 감독인 본인이 그 경기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에 퍼거슨이 은퇴를 고려할 때도 낮잠을 자다가 아내 캐시에게 발로 걷어차이고 "당신 은퇴는 내가 결정하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 은퇴를 포기했다.[8] 당시 퍼거슨은 퍼거슨 집안의 장남은 모두 알렉스(Alex)란 이름이라며 첫 아이의 이름을 알렉스로 하자고 주장했으나, 퍼거슨의 할아버지의 이름이 존이라는 걸 아내 캐시에게 들키는 바람에 거짓말이 들통나 마크가 되었다고 한다.[9] 이때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인지 퍼거슨은 감독이 되어서도 레인저스에게 굉장한 적대감을 지니고 있었다.[10] 모예스 시절인 13-14 시즌 맨유가 홈에서 리버풀한테 지는 상황에서의 퍼거슨의 표정이다. 16-17 시즌 이후로 맨유는 리그에서 리버풀을 이기질 못하였고, 17-18 시즌 리버풀 원정 부터 20-21 시즌 까지 4년을 리버풀에게 맨유는 리그에서 항상 지거나 비길뿐 승리를 따지 못했다. 그때마다 퍼거슨의 표정이 압권. 21-22 시즌 텐하흐 체재에서 홈에서 드디어 리그에서 리버풀에게 승리를 거두었다.[11] 하지만 이후 퍼거슨의 자서전에서 모예스 감독에 대해 갑자기 큰 클럽을 맡다 보니 어떻게 팀을 꾸려나가야 하는건지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며, 특히 맨유 선수들은 빠른 템포에 능숙한데 의도적으로 경기 템포를 늦췄다고 했다.[12] 일부 축구 팬 사이에서도 알렉스 퍼거슨이 마지막 임기까지 선수단의 세대교체를 실패한 것을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기는 하다.[13] 모예스가 경질될 시점에는 시즌 도중이어서 공백을 메꾸고자 라이언 긱스가 임시로 맡았다.[14] 우승하면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권을 준다.[15] 사실 운이 되게 좋았다. 그날 병원엔 다섯 건의 뇌 수술이 있었고 그 중 세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이 생존했는데 그 두 명 중 한 명이 바로 퍼거슨이다.[16] 공교롭게도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첼시에서 그리고 맨유에서 경질되기 그 직전의 상대가 하필 위르겐 클롭이었다.[17] 축구 관련 뉴스에서의 공신력을 다루는 웹페이지가 있다.[18] 이후 해외축구 갤러리를 비롯한 많은 축구 커뮤니티에서 맨유가 판정 이득을 볼 때마다 롤렉스 드립이 나오고 있다.[19] 사실 이때 호날두는 이미 나이가 많았음에도 여전히 폼은 웬만한 공격수보다 골을 잘 넣었길래 먹튀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팀을 거의 떠먹여 살리는 수준이었다. 단지 본인의 욕심이 워낙 큰 나머지 챔스 진출 실패가 확실시되자 프리시즌에 연습도 내팽개치고 맨유에서 다른 유럽 빅클럽으로 가기 위해 온갖 짓을 벌이다 결국 맨유에서 쫓겨나고 실력까지 저하해 사실상 본인의 유럽 커리어를 스스로 박살내 버리게 된 것이다.[20] 앰버서더로 활동하면서 받는 연봉은 39억으로 알려져있다.[21] 여담으로 맨유의 또 한명의 전설적인 감독 맷 버스비도 은퇴 후 맨유 이사진에 합류해 활동했는데, 선수들이 뭔가 맘에 안드는게 있으면 후임 감독 대신 버스비에게 달려가서 감독들이 엄청 난감해했다고 한다.[22] 다만 벵거는 아스날 보드진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는 얘기도 있어서 이것을 감안하긴 해야 한다. 말년엔 두 시즌 연속 챔스 진출 실패로 팬들의 지지도 거의 다 잃어서 마무리도 좋지 않았다. 게다가 벵거는 어찌됐든 프랑스 사람이라 기반도 좀 다르다. 참고로 벵거는 2022-23 시즌에 드디어 아스날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직관을 왔다.[23] 언론 매체들이 선정하는 역대 감독 랭킹에서 리누스 미헬스와 1,2위를 다툰다. 최근에는 펩 과르디올라가 두 번째 트레블을 달성한 이후 새로운 경쟁자로 떠오르는 추세다.[24] 감독 데뷔가 32세, 애버딘 부임이 36세, 맨유 부임 당시 45세였다. 은퇴 당시 72세로, 한 마디로 남들이 선수로 뛸 때 감독 생활을 시작했고 남들이 다 은퇴하고도 남았을 나이가 넘도록 저물지 않아 마지막 시즌조차 승점 11점 차의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은퇴했다.[25] 선수 은퇴 후 술집 사장으로 살고 있던 퍼거슨을 선수 시절 리더십 있었고 전술 잘짰다고 감독으로 데려온 것도 사실 돈이 없어서였다. 퍼거슨의 감독 커리어는 그렇게 시작됐다.[26] 심지어 첫 시즌은 10월에 중도 부임했다. 중도 부임 시즌 곧장 승격 -> 2부 리그 6위 -> 2부 리그 우승으로 3년 만에 1부 리그까지 승격했다. 그리고 1부 리그 승격 당시 주장 피츠패트릭이 20세, 선수단 평균 19세, 감독 퍼거슨이 35세였다.[27]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은 유럽 전체에서 독주가 가장 심한 리그 중 하나로 꼽히며, 이 리그에서 퍼거슨은 8년 간 세 번의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퍼거슨의 애버딘이 1984-85 시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한 이후 현재까지 셀틱과 레인저스 이외의 팀이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을 우승한 사례는 없다.[28] 퍼거슨이 부임한 1978년에 애버딘은 UEFA 클럽 랭킹 106위, 1979년 116위였으나 퍼거슨이 떠나던 1986년에는 6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2023년 기준 UEFA 클럽 랭킹 106위는 세리에 A의 토리노, 116위는 헝가리의 페헤르바르이며 6위는 파리 생제르맹이다. 당시 애버딘의 강세가 얼마나 충격적인 것이었는지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참고로 애버딘은 퍼거슨 체제 이후 지금까지 리그 우승도, 유럽 클럽 대항전 우승도 하지 못했다.[29] 이스트 스털링셔는 팀에 골키퍼조차 없었고, 세인트 미렌은 3부 리그에서도 중하위권에 머물던 팀이었다. 애버딘은 퍼거슨 시절 이전까지 리그 우승 1회(1955), 유럽 대항전 우승 0회의 팀이었고 리그 전체에는 셀틱과 레인저스의 독주 체제가 매우 공고했다. 맨유는 맷 버스비 시절의 영광을 뒤로하고 침체되어 있었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웠으며, 아예 맨유가 속한 잉글랜드 리그 자체는 헤이젤 참사로 몰락해 있었다.[30] 감독은 팀이 성공하기 위해 존재하고, 팀이 성공하기 위해선 이겨야 하며, 경기를 이기기 위해 전술이 존재한다. 퍼거슨은 축구 전술에 혁명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축구 전술의 변화들을 적절히 조화해내 경기에서 이겼고 팀을 성공시켰다. 무려 40년간의 축구판의 변화와 전술 발전을 모조리 쫓아가 매번 불리한 환경의 팀에 부임하면서도 도태되기는 커녕 맡은 팀을 모두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퍼거슨의 축구 감독으로서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아직 커리어가 종결되지 않은 현역 감독들과 비교해도 퍼거슨만큼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고, 시간이 흘러도 쇠퇴하지 않으면서, 맡았던 팀마다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감독은 찾기 어렵다.[31] 통산 2,155경기를 소화했다.[32] 13-14 시즌 데이비드 모예스 경질 이후 선수 겸 감독 대행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을 경험하였다.[33] 2018-19 시즌 감독 대행 부임 이후 2019년 정식 감독으로 전환되어 2021년 10월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을 역임했다.[34]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92년 프리미어 리그 출범과 동시에 1차 전성기를 맞이하며 소위 퇴물 리그로 전락했던 잉글랜드 리그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후 1996년 아르센 벵거의 아스날이 가세하며 경쟁 체제가 구축, 잉글랜드 프로축구는 부흥기를 맞이한다.[35] 단순히 유럽 대항전 출장 정지가 풀려서 그런 거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데, 참사 이전까지 1~2위를 다투던 잉글랜드 프로축구 리그는 참사 5년 후 유럽 대항전 출전이 허락되고도 27위까지 추락했던 리그 랭킹을 간신히 10위 안으로 끌어올렸을 뿐이었다. 사실 그것도 퍼거슨의 맨유가 유럽 대항전 출장 정지가 끝난 해에 바로 UEFA 컵위너스컵을 들어올린 덕이 컸다. 그렇게 유럽 대항전에 나가고도 10년 간 5위와 10위 사이에서 헤매던 잉글랜드 리그가 완전히 5위권으로 들어온 건 참사가 15년이 지난 2000년대에 와서였고, 헤이젤 참사 당시 위치였던 1위 탈환은 2008년으로 20년이 넘게 걸렸다.[36]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는 전혀 다른 스코틀랜드 팀이다.[37] 순위 없이 단순 10명 지정.[38] 11회, 초대 및 최다 수상.[39] 27회, 초대 및 최대 수상.[40] 4회로 최다 수상.[41] 5회, 초대 및 최다 수상.[42] 알프 램지 어워드[43] 퍼거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의 축구 위상 자체를 세계 최고로 끌어올렸다. 더 나아가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프리미어 리그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퍼거슨이 끌어올린 프리미어 리그의 전 세계적인 인기와 그로 인해 얻게 된 엄청난 TV 중계권료는 결론적으로 리그의 중위권 팀에게도 기회를 주게 되었다. 중계권료(재정적 윤택)를 바탕으로 리그 중위권 클럽들이 더욱 두터워진 것. 실제로 프리미어 리그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리그이며, 세리에 A가 몰락한 것도 돈 때문이었다. 선수 영입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었지만 세리에 A의 재정 상태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으며 파르마, 피오렌티나는 파산하기까지 했다. 라리가도 마찬가지인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거듭되며 전체적인 수준이 하락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프리미어 리그의 20위 팀이 라리가의 양대 산맥인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의 중계권료를 넘기는 건 시간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44] 이 트레블로 인해 프리미어 리그는 그 해에 다시 UEFA 리그 랭킹 3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33년 만에 잉글랜드 리그는 퍼거슨이 말한 대로 UEFA 리그 포인트 1위를 차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