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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정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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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계 입문 이전
2.1.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2.2. 정치 보복 논란2.3. 재산 사회 환원2.4.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 독려
3. 제18대 대통령 선거
3.1. 출마 선언 상세 사항3.2.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4. 제19대 국회 국회의원5. 제20대 국회, 제19대 대통령 선거6. 국민의당에서 바른미래당으로7. 루머8. 외교적 성향9. 위기: 연이은 낙선10. 정계 복귀11. 제20대 대통령 선거2022년 6월 보궐선거12.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13. 2023년14.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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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철수의 정치적 행보를 서술한 문서. 안철수 문서의 방대한 분량과 이로 인한 가독성 저해로 문서가 분리되었다.

중도좌파에서 시작해 중도좌파~중도보수를 거쳐 중도보수~보수에 정착한 인물. 정당으로 따지면 민주당계 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제3지대를 거쳐 최종적으로 보수정당에 자리를 잡았다.

다만 안철수는 현재 정책적으로는 중도보수 성향이며,[1] 사실 과거부터 안철수는 정책 성향이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부는 그를 진보에서 시작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안철수의 행동 혹은 정치적 구호에서 진보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의문이기에, 진보에서 시작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는 단 한 번도 정의당과 유사한 정치적 스탠스를 취한 적이 없었으며, 민주당에 있었을 당시에도 당내 인사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경향을 표했다. 또한 20대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에 비해 오히려 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여러 언론들에게 윤석열 후보보다 더 보수적이라고 평가받기까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단은 보수주의를 근본으로 하되 진보적인 정책도 가미하는 반면 안철수는 정통 보수에 가까운 편으로 사회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정통 우파에 가까운 정책들을 자주 내세우는 편이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새정치 전략을 내세우며 제3당 정책을 폈고 초창기에는 정치혐오 정서로 큰 인기를 끌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결국 본인 성향에 걸맞은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에 입당하였고, 재기를 노리고 있다.

실제로 안철수가 정계에 입문하기 전,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킬 당시 많은 2, 30대의 정치 성향은 '보수는 지지하기 싫고, 진보는 형편없고'라는 생각이 자리잡아 있었다.[3] 그런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치로 떠오른 게 안철수다. 진보적 성향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젊은 정치인, IT 기업인, 기업 경영 당시 모범적인 모습 등. 따라서 안철수를 강력하게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은 기존 정치에 환멸을 느낀 진보적 성향을 가진 젊은 20대, 30대였다. 따라서 지지 기반은 중도 진보였다고 볼 수 있었다. 이 당시 보수진영은 기성 보수정당이자 보수 빅텐트 정당이라고 해도 다름 없는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세가 높았었다. 하지만 이후에 점점 보수 정당(새누리당)이나 민주당 내부 보수파와 영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진보 유권자들이 안철수에 대한 지지 철회가 많았다.

물론 정치에 처음 입문했을 때에는 거대한 신드롬을 일으키며 유력 대선 후보로 수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으나 위에 나온 사유들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의 신임을 잃어가고 있다. 분명 처음 돌풍을 일으킨 이후, 무소속이였던 박원순 후보에 대한 서울시장 양보와 이후 대선 출마 선언 후 문재인과의 단일화 과정까지만 하더라도 중도진보 진영은 물론 중도보수 진영까지 지지하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었다. 그러나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의 참패가 안철수-김한길 지도부의 실책임이 밝혀진 이후엔 중도진보 층의 지지세를 잃었다가, 다시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돌풍을 일으켜서 다시 살아났다. 문제는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의 여러 논란 때문에 홍준표에게도 밀려 최종 3위를 기록하여, 본인 입장으로서는 참패를 당했고 많은 호남 지지층을 잃게 되면서 본격적인 위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바른미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또 3위로 참패함으로써 안철수의 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국민의당 창당 후 일부 고소득층[4]과 2030대 남성[5]을 중심으로 지지세를 모은 것이 21대 총선에서 확인 됨으로써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오세훈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하였다. 이후 단일후보가 된 오세훈을 응원하면서 중도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 결국 오세훈의 승리에 일조하여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잠룡의 타이틀이 윤석열에게 상당부분 넘어가고 안철수 본인의 지지율은 3% 밑을 맴돌게 되어, 향후의 운신에 있어 대권 도전이 그리 용이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이렇듯 정권교체의 아이콘 이미지가 상당부분 윤석열에 넘어간 것은, 안철수로 하여금 국민의힘에 들어가는 정면돌파보다는 계속 제3의 길을 고수하며 기회를 엿보는 전략을 고수하게끔 한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와 달리 국민의힘에 입당한 윤석열은 후보 선출 이후 당 대표와 갈등하며 위기를 맞았고, 이로 인해 안철수의 주가가 올라감으로써 이러한 중간자적인 애매한 행보가 옳았던 것으로 보이기까지 했으나, 이내 윤석열이 갈등을 수습하면서 다시 안철수의 지분은 원상태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야권 단일화가 물 건너간 현재, 안철수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하는 상황.

결국 2022년 3월 3일에 윤석열과 단일화를 결정하였고, 이는 20대 대선의 향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윤석열이 이재명에 대하여 20만여 표의 신승을 거두면서, 안철수가 막판에 윤석열로의 지지 결집 호소를 한 덕을 본 것. 이에 따라 차기 정부에 있어 안철수의 지분이 어떻게 주어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6]

2. 정계 입문 이전

별도의 문서 또는 문단이 있는 정치권 대망론
충청 대망론 강원 대망론 호남 대망론 영남후보론 안철수 대망론 반기문 대망론 윤석열 대망론

안철수연구소 CEO 시절부터 안철수에 대한 정계의 러브콜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참여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직을 제의받았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으로부터 서울시장 후보직을 제의받는 등 여야 모두로부터 정계 입문 권유를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

2009년 6월 MBC 예능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것이 안철수 인기 급상승의 굉장한 기폭제가 되었다. 무릎팍도사에서 안철수는 일반 서민들과는 다른 먼치킨 중에 먼치킨이라는 의식이 남아있던 시절. 무릎팍도사에서 보여준 따뜻하면서도 순수한, 하지만 이 시대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고 지적하는 그의 모습이 방영되자, 그를 잘 몰랐던 20대, 30대 젊은 층에서 폭발적인 환호를 받으며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다. 관심도 없고 맨날 지들끼리 싸움만 하는 정치판 사람들의 말은 안 믿어도 꾸밈없이 소신을 얘기한 먼치킨의 예능방송이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11년 MBC에서는 안철수를 메인으로 한 다큐멘터리까지 제작이 되었고, "안철수를 국회로!"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게 되며 정치계 입문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뛰어난 실적과 도덕성(?) 등으로 시골 의사 박경철 씨와 함께 "젊은이들이 가장 존경하며 닮고 싶은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알려졌기에 정치권에서 그의 이미지를 사기 위해 국회의원이나 장관직 제의가 끊임없이 들어오지만 그때마다 끊임없이 고사한다고 한다. 개인의 가치관과 판단의 문제이겠지만, 정치란 것은 개인의 실력과 청렴함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 모양. "정치가 아니어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들은 많다"

벤처기업을 비롯한 기술 혁신 기업 위주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긴 하지만, 특정 정책에 대해 정치적인 발언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국가 정보화 전략위원회 위원, 미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실무 정치에 참가했고 이후 꾸준히 정치 행보를 걸을지 모른다는 예상이 나와, 단박에 화제의 인물이 된다. 안랩의 주식이 정치 테마주로 분류된 시점도 이쯤이라고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김태호 당시 전 경남지사 등과 함께 국무총리 후보로 하마평에 올랐던 적이 있었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대중들의 판단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묻힌 바 있다. #

2.1.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1년 9월 1일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가 뜨면서 정치권, 언론, 대중 모두에게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기사가 뜨기 전부터 선거 테마주로 분류되어 있던 안철수연구소의 주식은 포텐이 터져 주 내내 상한가를 기록했고, 안철수 본인에게 있는 주식 가치도 1000억 이상 올랐다. 9월 4일 34650원, 2012년 1월 3일 167,000원이며 약 5배 뛰었다.

안철수 출마설에 여야 모두 우려 반, 기대 반이었다. 자기들 쪽으로 오기만 한다면 굉장한 아군이 될 것이기 때문. 그래서 특정 정당의 기관지처럼 되어버린 작금의 언론들은 조심스럽지만 호의적으로 접근했으나 "한나라당도 바뀌어야 하지만 민주당도 '역사의 물결'의 대표가 아니다"라는 비판적인 발언을 하고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건전한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고 많은 사람의 어려움을 풀어주면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발언 이후 '우리 편 아니구나 그럼 까야지'라는 식으로 적대적으로 변한 언론도 있다.

윤여준한나라당 의원이 자신이 안철수 씨와 밀접한 관계라고 주장했으나 안철수는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9월 4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 인터뷰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본인은 현 집권 세력이 역사를 거스르고 있으며,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리진 않을 것이라고 하며, 이를 위하여 자신이 출마할 경우 야권 단일화에 참여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마를 머뭇거리게 하는 이유로는
전체적인 인터뷰의 내용 상당수가 윤여준 전 의원의 인터뷰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출마 의지가 상당히 커서 출마하겠다고 발표를 했지만 나흘 만에 다시 못하겠다고 했다더라. 이유는 아버지가 결사 반대를 하신다고. 어쩔 수 없이 사퇴를 해야 하는데 그냥 하면 장난하냐는 소리와 시민의 비난이 오니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하고 빠지는 모양새와 명분을 만들라고 조언을 했다고 한다.

결국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기로 발표하면서, 사실상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변호사에게 양보(?)했다. 이를 단일화라 부르는 언론이 있는데, 일반적인 단일화는 선거에 출마한 후보 둘 이상이 경선 등의 방법으로 나머지 후보가 모두 사퇴하고 어느 한 후보에 대한 지지를 하기로 한 경우인데, 안철수 전 원장은 애초에 출마를 하지도 않았다가(고민은 했다지만) 나중에 박원순 전 변호사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것일 뿐이므로, 엄밀하게 말해서 단일화한 건 아니다.

그러나 안철수 전 원장이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한 9월 6일 오후 뉴시스가 긴급하게 실시한 대선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전 원장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누르는(42.4% vs 40.5%) 대 이변이 일어났다. 비록 오차범위 내에서의 근소한 우세지만 그간 박근혜 대세론이라는 독주체제에 제동을 걸 만한 야권 인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에서 놀라운 결과로 봐야하며 차기 총선과 대선에 좋든 싫든 영향을 줄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안풍(安風).

이후엔 박원순 후보의 선거에 크게 지원을 하진 않았고 선거 나흘 전인 22일까진 학교 일에 전념한다며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기사가 났지만, 하루 뒤인 23일엔 박원순 후보의 선거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사에 따르면 이미 21일에 단독 회동을 하고 30여 분간 선거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그리고 23일 저녁, 안 원장은 박 후보 측에 전화를 하여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내일까지 생각해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박 후보 측의 측근이 밝혔다. 그야말로 초박빙이던 상황이기 때문에 안철수 전 원장의 구원 등판이 서울시장 선거의 판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상황. 그리고 24일 오후 1시 박원순 선거사무소를 방문하고 선거참여를 독려하는 편지를 전달하면서 또 한번 선거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결국 결과는 박원순 후보의 압승. 안 원장의 영향력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는 평가다.

2.2. 정치 보복 논란

시장 선거 이후인 2011년 10월 25일, 서울대 융합과학기술 대학원장은 유지하고 차세대 융합기술 연구원장직을 사퇴했다. 사임의 이유를 놓고 설왕설래가 나오고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자신으로 인해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사실 서울대는 경기도와 함께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었는데 안 교수의 정치행보에 경기도 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은 교수직을 내놓고 정치하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안 교수가 원장직을 사임하자 경기도 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이 계속되는 문제의 발언을 내놓아 더더욱 문제가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소속인 경기도지사와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이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 대한 예산지원삭감 압박을 가했고, 안철수 전 교수의 원장직 사퇴후 내놓은 논평에서 "상식적으로 당연한 사임이다"라고 한게 문제가 되었다. 거기에 안 교수의 정치행보를 놓고 서울대 총장이 안 교수를 호출해 지적을 했다는 정황 등도 흘러나와서 안 교수에 대해 무자비한 정치보복이 가해지고 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되고 있다. 안 교수도 선거가 끝난뒤 27일에 "자신이 가진 생각과 다른 세상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발언한 뒤 서울대 총장과 면담하고 다음날 원장직을 내놓아서 이런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성추행 발언으로 한나라당에서 쫓겨나고 무소속으로 활동하던 18대 국회의원 강용석은 카이스트에 안철수 전 교수와 그의 아내에 대한 카이스트 임용 과정과 세부 내용이 포함된 자료 요청을 7차례나 했다고 한다. 그러나 카이스트에서는 목적이 맞지 않는다고 거절. 이외에도 안철수 전 교수가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준 것에 대해 '겨우 1.5% 나눠주고 생색낸다', '출근도 안 하는 주제에 배당금만 챙긴다', '주식을 팔아 미국에 주택 구입을 했다'라는 식의 발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 공격의 선봉장은 강용석.

안철수 전 원장에 대한 압박뿐만 아니라 안철수 연구소에 가해지는 압박도 상당하다. 정부 측에서도 정부 산하기관과 금융기관들에 최근 5년간의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 사용기간, 구입 경로, 계약방식을 조사하고 결과제출을 요구하고 이에 프로그램 공급을 담당하던 중간 판매상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제품 구매를 꺼리게 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안 연구소 측에서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 지식경제부 산하 산업기술평가관리원(산기평)으로부터 정부 지원과제 연구 성과에 대한 특별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안연구소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은 2010년부터 3년간 지식경제부의 지원을 받는 '모바일 악성코드 탐지 및 방어 기술 솔루션 개발' 프로젝트를 맡았다. 통상 이런 지원사업은 연 1회 '연차 평가'를 하는데,1년차 사업에 대한 지난 9월 연차평가에서 합격점인 '계속 수행'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과 2달만에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재평가를 요구한 것도 강용석이 주도했고 평가위원 7명중 강용석 의원 추천 인사 2명이 포함됐다고 알려져 있고 안 연구소에 대한 현장 실사 때도 강용석의 보좌관들이 동행했다. 그러면서 예산도 깎아주는 건 보너스.

2011년 11월 10일 정영모에게 공금횡령으로 고발당했다. 아름다운 재단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포함한 주요 이사진들에 대한 고발인데 안철수 전 교수 역시 이사로 참여중이므로 함께 고발당한 것이다.

또한 2012년 자유청년연합 대표 장기정에게 국보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안철수연구소(안랩)가 2000년 4월 정부의 승인 없이 무단으로 북한에 백신 프로그램을 제공했다는 것. 해명

2.3. 재산 사회 환원

2011년 11월 14일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 연구소 보유 주식 절반 (약 1500억 가치)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고 안철수 연구소 임직원들에게 전자우편을 통해서 밝혔다. 전문 확인은 여기서. 이 재산 환원을 놓고 설왕설래가 일고 있는데 안철수 본인이 부인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 환원하여 설립된 청계재단과 비교[9]될 수밖에 없어보인다. 참고로 청계재단은 이 대통령이 자신의 사재 395억 원을 출연하여 설립된 재단으로, 안철수 교수가 환원하겠다는 재산은 청계재단 출연금의 약 5배가 더 많은 수치이다. 물론 안철수 교수의 경우는 지금도 왕성한 IT회사의 대주주이니 당연히 더 많긴 하겠지만.

청계재단은 이사진 구성부터 재단에서 내놓은 장학금 규모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 만큼 안철수 교수가 어떤 방법으로 환원하는가에 따라 청계재단과 더더욱 비교가 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청계재단을 만들면서 자신의 사위를 이사장으로, 자신의 인맥들은 이사로, 그리고 장학금으로 내놓는 금액이 재단을 안만들었을때에 발생하는 소득세 부과액과 정확히 일치. 기부가 아니라 절세일 뿐이며 또한 이 방법은 빌딩을 여러 채 소유한 부자들이 잘 써먹는 그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져 있는 절세기법이라고 한다.

이를 놓고 현 정권에서 가해지는 정치 보복에 대한 대응이라는 관측이 있는가 하면 정치 참여를 위한 사전 준비과정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아직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그리고 11월 15일 박원순 시장과 조우하기로 하여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편 기자들은 역시나 집에 가 깽판 놓는 중.

이후 2011년 12월 1일 기자회견에서 출마 안 한다고 이것들아 포 발사. 관련 일문일답도 일관되어 있다. 당연히 기자들과 많은 이들은 대선으로 고고할 거라는 얘기. 2015년부터는 동그라미 재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2.4.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 독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다시 정치 관련 행보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 도봉 갑의 인재근 민주통합당 후보, 경기 과천ㆍ의왕의 송호창 민주통합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상태이다.

2012년 4월 9일 유튜브를 통해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독려 동영상을 게시했다. 안철수 교수는 투표율이 70%가 넘으면 율동과 함께 노래를 하겠노라고 공약을 걸었다. 또한 4월 9일부터 공개되는 민주통합당의 선거광고에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서울시장 지지선언 동영상 장면이 포함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별 다른 태클을 걸지 않아 암묵적 동의를 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리고 70%가 안 넘어 이런 공약은 실현되지 않았다.하지만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민주통합당이 예상에 못미치는 의석수를 얻으면서 안철수 대안론이 급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3. 제18대 대통령 선거

안철수 대안론이 힘을 얻어가자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한다. 저서에서 그는 자신의 지지율이 자신을 향한 지지율이 아니라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감에 막연하게 거는 기대라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밝히고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서겠다고. 하지만 직접적으로 '나서겠다'고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위에 적힌 것이 전부. 그러니까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말이 전부다. "시민들의 열망을 무시할 수도 없지만 이를 온전히 정치하라는 뜻으로 착각하는 것도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저를 지지하시는 분들의 뜻을 정확히 파악해야 진로를 결정할 수 있다, 제가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라고 했으니, 대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고 볼수 있지만...

홍사덕이 비웃은 안철수의 생각은 일단 50만권 이상 판매된 것으로 집계된다. 52쇄까지 인쇄됐다고...
파일:724979_216062_3240.jpg 파일:680311_264382_44.jpg
안철수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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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회견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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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출마 기자회견 동영상. 연합뉴스.

2012년 9월 19일 오후 3시 기자회견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슬로건은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기자회견 전문.
파일:/image/031/2012/09/19/1348035104567_1_151222_59_20120919152104.jpg 파일:/image/001/2012/09/19/PYH2012091906940001300_P2_59_20120919152320.jpg
민간도 국회도 초미의 관심으로 지켜보았다. 참고로 국회는 본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이 5분 자유발언이 진행되는 동안 선언이 되었다.

기자들과의 질답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안랩 이사회 의장,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직 출마 선언 직후로 전격 사임, 대통령 취임 시 안랩 나머지 주식 모두 사회환원, 불법사찰 발본색원 등등. 말 그대로 대파란을 일으켰다.

3.1. 출마 선언 상세 사항

구세군 아트홀에서 "국민보고대회"라는 형식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전까지의 모호한 태도와는 달리 여러 국민들과 다양한 인사들을 만난 결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결심했다고 선언했으며 대선에서 낙선하더라도 정치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혀 권력 의지를 확실히 드러냈다는 평이다. 다만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서는 기성 정치권이 변화와 혁신을 수행하고 국민이 그것을 인정한다면 단일화에 응하겠다는 다소 추상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3.2.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파일:PYH2012112309950001300_P2_59_20121124095311.jpg 파일:B20121123204428527.jpg
▲ 후보 사퇴 기자회견 기자회견 후 질문받는 안철수

▲ 대선 후보 사퇴 기자회견 동영상. 안철수 의원실.

단일화 협상을 이어가 토론회를 2012년 11월 21일 오후 11시 개최하는 등 단일화를 위한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단일화 방식이 계속 합의되지 않아 1987년 대선 정국이 재현되는거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 당시에 일부 시각에서 안철수가 너무 간본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정치 출마때부터 하는지 마는지 애매한 입장표현을 지속했는데, 단일화에서도 그 것이 마찬가지로 진행되어 결론을 내지 못했기 때문.

이에 문, 안 양측에 단일화를 하라는 압력이 거세지고 11월 23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지지자들에게 문재인을 지지할 것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너무나 늦은 후보사퇴였지만 문재인 후보는 물론 민주당은 큰 빚을 지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내부 여론조사에서 안철수가 문재인에 뒤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이후 문재인 후보와 당시 '광화문대첩'이라고 불렸던 선거유세 등을 같이 하다 2012년 12월 19일 미국으로 출국한다.[10]

4. 제19대 국회 국회의원

4.1. 2013년 노원 병 국회의원 재보선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한 후 2012년 12월 19일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2013년 3월 10일 귀국했다.

귀국 전부터 선거에 출마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걸을 것이란 소문이 돌았으며, 귀국 후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출마 의사를 밝혔다.

출마한 선거구는 서울특별시 노원구 병(丙). 이곳은 원래 당시 진보정의당의 공동대표였던 노회찬 전 의원이 출마해 당선된 지역구로, 노회찬 전 의원이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잃자 재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다.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 의원은 안철수에게 부산 영도에 출마하라고 했으나 안철수는 노원 병에 출마하고, 진보정의당은 노회찬 후보의 부인 김지선 씨를 공천해 맞붙는다. 이 때문에 안철수는 야권 대권 후보까지 했던 사람이 왜 야권 성향이 강한 노원 병에 출마하느냐는 일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노회찬에게도 바로 전 18대 대선 야권의 대선 후보이자 당시 차기 대선 후보 1위를 달렸던 안철수에게 리스크가 큰 결정[11]을 하라고 부추긴다 혹은 (억울하게) 의원직을 상실했더라도 지역구 세습이 말이 되냐는[12] 등의 비판이 있었고 안철수 당시 후보 역시 선거 기간 내내 대권을 넘보는 사람이 쉬운 곳에 출마한다고 많은 비아냥을 들었다. 정치적 도의가 없다는 평도 있었다.

노회찬에 따르면 안철수가 노회찬과의 통화 내용을 왜곡하여 언론플레이를 했다. #

선거는 민주통합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채 새누리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무소속 2명의 다자 구도로 치러졌고 안철수 후보는 총 득표수 42,581표(60.46%)로 당선되었다. 새누리당의 허준영 후보는 23,090표(32.78%)를 차지하는 데 그쳤고, 노회찬 전 의원의 아내인 진보정의당의 김지선 후보는 4,036표(5.73%)를 차지하였다.

4.2. 정치 세력화 노력

국회에 입성하고 나서는 새정치를 표방한 중도적 성향의 신당 창당에 공을 들였으나, 그의 기대와 달리 현역 정치 세력의 반응은 미지근하였고 스스로도 힘에 부쳤는지 민주당과의 합당을 통해 제3지대에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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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민주당김한길 전 대표와 '전격적으로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선언하여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고 공동 대표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 김한길 전 대표와 철야 회담을 하는 동안 같은 시간 측근이었던 김성식 전 의원은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나가 "민주당과의 합당은 절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말했는데 안철수 의원이 덜컥 민주당과 함께 신당을 만들겠다는 발표를 해버려 난감해졌다. 이 때문에 안철수 의원과 함께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떠나가 버렸다는 에피소드가 최측근이었던 금태섭 전 변호사를 통해 공개되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쪽과 민주당 쪽의 의사결정 과정이 얼마나 비밀주의에 빠져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

창당한 지 3개월도 안 되어서, 6회 지방선거2014년 7.30 재보궐선거을 당대표로서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2014년 7월 재보궐선거에서 참패(새누리당 11석 : 새정치민주연합 4석)했으며, 이후 7월 31일 대표직을 자진 사퇴하였다. 이 재보선의 패배로 인하여 안철수의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동력이 많이 떨어지게 되었다.[13]

안철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문제(세월호 특별법 등)를 매듭짓지 못한게 가장 아쉽고, 큰 선거(6회 지방선거)를 앞둬 자신이 생각한 정치, 당 개혁행보를 뒤로 미룬 것을 후회한다고 하였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안철수의 '공정성장론[14]'등의 정책개발에 몰두한다.

4.3.1. 6.4 지방선거

세월호 참사 정국에서 치러졌던 6.4 지방선거에서 김한길 & 안철수 전 공동 대표는 광주시장 자리에 안철수의 사람이었던 윤장현 후보를 전략공천했다. 안철수 공동대표의 최측근이었다가 사실상 결별한 금태섭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회고한 바에 따르면, 광주시장 전략 공천에 대해 말이 돌긴 돌았지만 지도부에서 끝까지 별 말이 없어 후보들은 경선으로 최종 선출할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막바지에 갑작스럽게 윤장현 후보를 전략공천한다고 발표해 일찍부터 준비 중이었던 강운태 후보와 이용섭 후보가 이 결정에 크게 반발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버린 것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광주 민심도 극도로 악화돼 명색이 호남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제1야당 대표들이 민주화 세력의 심장인 광주를 방문하는데 경찰의 신변 보호를 요청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윤장현 후보는 이런 반발 속에서도 당선은 되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안철수 공동대표가 전략공천한 윤장현 후보가 광주에서 낙선한다면 안철수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은 치명상을 입게 되므로 안철수를 버리면 안된다는 광주 민심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있다.[15] 게다가 도의원 등 기초의원을 뽑는 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근거지인 호남에서 무소속 후보가 대거 당선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며 총 226명의 기초단체장을 뽑는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117명,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80명(나머지는 무소속 당선)이 당선되었다. 기초 단체장 선거에서 12석을 잃었으나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두 군데를 가져왔고,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진영 후보들을 대거 당선시키는 등 전반적으로 무승부였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살아남은 김한길 & 안철수 전 공동 대표 체제는 다음 달에 치러질 7.30 재보선에서 재기의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됐다.

4.3.2. 7.30 재보선

7.30 재보선 당시 세월호 특별법 정국 때문에 온 사회가 시끌시끌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잇다른 국무총리 후보 낙마와 세월호 참사의 주범 중의 한 명인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 검거 실패 등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게 불리한 이슈가 워낙 많아 새누리당 또한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김한길 & 안철수 전 공동 대표의 처참한 공천 실패와 전략 부재로 인해 7.30 재보선 항목에 쓰여있듯,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재보궐선거에서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맛보게 된다. 총 15명의 국회의원을 뽑기로 되어 있었던 이 선거에서 '11:4'로 완패한 것이다. 이 4명 중 3명은 호남에서 당선된 후보들이었고, 박광온 후보를 제외하면 비호남 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이 다 떨어졌다. 이 후보들 중에는 '김두관, 손학규'라는 대선 후보급 거물들도 있었는데 모두 수도권 지역에 출마했지만 새누리당의 정치 신인들에게 패하는 굴욕을 맛봤고, 이 때문에 손학규 전 고문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근데 가장 뼈아픈 패배는 정작 호남에서 일어났다. 민주당계 정당 최강세 지역인 호남의 전라남도 순천-곡성 지역구에서 역사상 최초로 새누리당 후보인 이정현청와대 홍보수석이 당선되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사실 이건 비리 전력이 있었던 친노 계열 서갑원 후보에 대한 지역 여론의 반감이 큰 탓도 있었지만 새누리당이 경선에서 뽑혔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리 전력 때문에 공천 취소한 것을 감안하면 지도부의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이정현 전 의원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내기도 했던 친박계 핵심 인물이라 더욱 충격이 컸다.[16]

광주 광산 을에 전략 공천을 받아 출마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6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되긴 했다. 하지만 광산 을 지역 투표율이 고작 20%대(...)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마음에 안 든다만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라니까 어쩔 수 없이 뽑아줬다'는 여론이 고스란히 드러나 당선되었어도 기뻐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정확하게는 새정연 후보라서가 아니라 새누리당 후보가 아니라서 투표했다고 보는 게 옳을 듯. 그리고 원래 이 지역구는 4선 국회의원이자 전 법무부장관인 천정배가 출마를 준비하던 곳이었다. 천정배 전 의원은 이듬해인 4.29 재보선에 광주 서구 을 후보로 출마하려고 했다가 '경선을 거쳐 후보로 나서라'는 문재인 대표의 방침에 반발하고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해 문재인 당시 대표가 전폭적으로 지원한 새정치민주연합 조영택 후보를 20%가 넘는 격차로 누르고 당선되며 원내로 복귀하는데 성공, 국민회의를 창당해 2016년 2월, 김한길 & 안철수 두 공동대표가 당을 떠나 새로이 창당한 국민의당과 합당하였다.

최대 격전지로 꼽혔던 서울 동작구 을에서는 원래 광주 출마를 결심하고 광주로 이사까지 갔던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급작스럽게 동작구 을로 전략공천했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결정된 전략공천 때문에 10년 넘게 동작을 지역에서 살면서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해왔던 허동준 새정치민주연합 동작을 지역위원장이 극렬히 반발하였는데, 더욱이 이 두 사람은 김근태 열린우리당 고문을 보좌해왔던 23년 막역지우이기도 했다. 허동준 위원장은 기동민 후보가 서울 동작을 전략공천을 받아들이자 기자회견장에 난입해 난동을 부리는 등 극도의 분노와 억울함을 감추지 않았다. 결국 허동준 위원장이 지도부 결정에 승복해 기동민 후보를 도왔지만 기동민 후보도 정의당 노회찬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 단일화를 해버렸다. 결과는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가 49.9%의 득표율을 얻어 새정련 - 정의당 야권단일 후보였던 노회찬 후보(48.7%)와 노동당 김종철 후보를 꺾고 당선돼 정치적 부활을 이루게 됐다.

사실 재보궐선거는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낮아, 보수 정당이 이기기 쉬운 선거로 불린다. 게다가 이 7.30 재보궐선거는 여름 휴가 시즌에 치러졌기 때문에 청년층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를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이 선거는 사회적 관심이 뜨거운 편이었고, 유병언 검거 실패와 국무총리 낙마 등등 정부 여당의 잇다른 병크가 있었으며 4.29 재보선 때처럼 야권이 심하게 분열된 곳도 없었다. 김한길 & 안철수 공동대표는 자기들 스스로도 마지노선을 5석으로 잡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헛발질과 무능함 때문에 이 마지노선 5석도 얻지 못하고 말았다. 특히 새정련 후보는 무혈 입성할 수 있는 호남 지역 선거구가 4곳이나 있었고, 후보들 중에는 대권 주자급들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호남에 '친박계 핵심 인사'가 당선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때문에 김한길 & 안철수 공동대표는 결국 '사퇴'를 표명할 수밖에 없었으며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던 주승용 사무총장도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원래 김한길 의원은 자신만 물러나고 안철수 의원은 대표직에 남겨두려고 했었지만 안철수 의원이 동반 사퇴를 하면서 무산됐다. 김한길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대표직 사퇴를 밝혔고, 안철수 의원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문자메시지로 공동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4.4.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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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20대 국회, 제19대 대통령 선거

5.1.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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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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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국민의당에서 바른미래당으로

6.1.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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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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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루머

8. 외교적 성향

IT업계에서 강세를 보이는 국가라는 이유로 묘하게 이스라엘 색채를 뚜렷하게 보인다. 보통 한국 정치인들은 팔레스타인이나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를 생각하여, 이스라엘에서 방한한 정치/경제인들과 회담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스라엘을 “찾아가서” 회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 안철수는 국민의당 대표인 2017년 10월 이스라엘 수상의 요청을 받고 바로 이스라엘, 특히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수상과 회담하고 텔아비브로 이동하여 텔아비브에서 시행되는 제4차 산업 혁명 관련 포럼 참석, 이스라엘 경제인과의 면담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정치 연설을 할 때에도 경제 정책 관련하여 이스라엘 사례를 상당히 비중 있게 언급하며, 정책 연구에서도 이스라엘 사례를 적극 연구하는 등 한국 제도권 정치인 중에서는 가장 친이스라엘적인 행보가 많다고 볼 수 있다. 기사1 기사2 기사3 기사4 이스라엘 대사와 회견

9. 위기: 연이은 낙선

안철수는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이 큰 격차로 당선된 가운데 홍준표에 선거 막판에 역전당해 3위로 끝났고, 2018년 서울시장을 노려 재기를 시도했으나 박원순이 가볍게 3선에 성공한 가운데, 도지삽니다 사건과 극단적인 친박 극우 행보로 인하여 박근혜 옹호층을 제외한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반감을 사고 있는 김문수에게도 밀려 3위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다.

혹자는 안철수가 20%에 육박하는 나름 콘크리트 지지율이 있고, 3위도 거두지 못하는 수많은 정치인들과 비교해서 그가 앞으로 더 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는 주장, 이른바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대상이 한창 인지도를 키워나가는 신입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계에 발을 담근 초기부터 모두에게 기대를 받았던 먼치킨 안철수 박사라는 것. 게다가 1위만 당선되는 선거의 세계에서 3위는 당선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다.

사실 안철수는 인지도적인 면에서 홍준표, 김문수는 두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 박원순보다도 우위였던 정치인이었고,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는 유리한 상황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초기에 안철수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었을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출발이 좋았던 안철수에게 있어 대선 3위, 지선 3위라는 성적은 매우 초라한 결과이다. 게다가 과거를 보더라도 한때 이름 꽤나 날린 노련한 정치인들인 김종필, 이회창, 정동영, 이낙연 등도 만년 2인자에 머무르며 대통령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조용히 떠났는데, 안철수는 그보다도 못한 3위만 연속적으로 거두고 있으니 앞으로 그의 정치적 입지를 다져나가는 데에도 크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2018년의 안철수는 콩라인보다도 아래인 셈. 이건 심각한것이 인지도가 있어도 3위라는건 인지도조차 없었으면 어느정도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 분석해보면 어느 세대, 어느 지역에서도 최대 2위만 거둘 뿐 1위를 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19대 대선에서도 21.41%라는 절대적인 수치로만 보면 상당한 득표율을 올렸는데도 광역자치단체 단위는 물론이고 시군구 단위에서도 단 한 곳에서도 1위를 하지 못했고 연령별 출구조사에서도 전 세대에 걸쳐 20% 내외의 고른 득표율을 보여주긴 했으나 어느 세대에서도 1위를 하지 못했다.

안철수는 고른 득표율로 일부 지역 및 세대에서는 2위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지역이나 세대에서도 1위를 할 만한 확고한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영남 농촌 및 부촌 지역, 60대 이상 세대에서라도 확고한 지지를 받으며 1위를 기록한 홍준표, 김문수 등에게 밀리며 3위를 기록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안철수가 양당 정치를 불신하는 20% 정도의 정치 불신층의 지지는 확보하고 있지만 그들 이외의 지지까지 끌어내는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역별로 보자면 부산 출신임에도 대학 입학 이후에는 줄곧 서울에서 활동해 온 데다가 정치 입문 이후 호남계와 손잡으며 부울경, 영남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너무 약하고 거기다 호남계와도 갈등을 빚고 갈라서면서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던 호남에서도 이제는 이전과 같은 지지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노원구를 지역구로 하기도 했고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하는 등 정치적 활동 무대인 수도권의 경우 19대 대선에서 22~23% 정도의 득표율에 그치고 7회 지선에서는 그나마 19.6%로 떨어져 3위로 떨어지는 등 이곳에서조차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세대별로는 대선과 지선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높은 지지를 보낸게 50대 세대인데 중도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안철수에게 기대를 걸었다고 볼 수 있으나 이 세대에서도 홍준표와 김문수에게 근소하게 밀린 3위에 그쳤다. 한편 자유한국당을 불신하면서도 30~40대만큼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강하지 않아 무당층이 많은 20대의 경우도 가능성이 있었지만 대선 기준으로 전 세대 중 가장 낮은 득표율에 그쳤다. 이는 토론회에서 비친 안철수의 여러 모습들이 후보의 개인적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이들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머지 30~40대와 60대 이상의 경우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지지 세대들이기 때문에 일부 정치불신층을 제외하면 안철수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더욱 낮다. 결국 안철수는 현재로서는 어느 지역, 세대에서도 1위를 할 만한 여건이 못 되는 셈이다.

2019년에는 총선을 앞두고 바른미래당의 내홍이 심해지면서, 한동안 조용했던 안철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10. 정계 복귀

2020년을 맞이하면서, SNS를 통해 정계 복귀를 선언하였다. #1 #2 1월 29일 바른미래당탈당하였다.

10.1.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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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국민의당 대표

2020년 2월 25일 자신이 창당한 국민의당의 대표 자리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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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일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대유행 중인 대구광역시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을 찾아가 선별진료소에서 의심 환자를 진료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기사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학교 교수도 같이 참가하였다. 기사 안철수는 당분간 자원봉사 형식으로 대구광역시에서 의료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안철수의 개인 정치 일정은 모두 취소하였다. 링크

안철수에 대해 일부 인사들이 의사 면허를 제대로 보유하고 있는 것이 맞냐, 의사 면허 갱신은 제대로 했느냐 하면서 의혹을 제기하였다. 기사 그러나 대한의사협회에서 안철수, 김미경 부부는 대한의사협회의사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매년 30평점 이상 이수하는 모범 의사라며, 의사 면허에 문제가 없다고 발표하였다. 기사

의료봉사를 마치고 돌아간 후에는 규정에 따라 아내와 2주간 자가격리를 실시했고 바이러스 검사 역시 음성으로 나왔다.

4월 27일 아내와 다시 무기한 의료봉사를 위해 대구로 내려갔다.

7월 9일 박원순서울시장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벌어질 2021년 재보궐선거에 서울시장 야권 주자로 유력하게 꼽히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 입장에서도 지난 지선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했었고 서울시장이라는 자리가 대한민국 선출직 No.2인만큼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 대신에 이번 재보궐선거를 선택할 수도 있다.

7월 23일, 내년 4월 열리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설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 생각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기사 다만 친안계 최측근인 권은희 의원이 “안철수 서울시장 출마, 진지하게 생각 중“이라고 밝히며 여전히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출범 이후 주호영원내대표의 러브콜을 받고 있지만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탈당 이후 국민의당에 합류한 바 있는데, 당시 안철수가 보여준 정치적 역량을 보고 부정적인 입장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2020년 9월 24일 한 포럼에선 "국민의힘이 국민의당과 통합을 한다고 해서 무엇을 달성할 수 있겠느냐. 별로 큰 효과가 없을 것" 이라고 선을 그었다. #

10.3.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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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0일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였다. 범야권 단일경선을 치르며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사실상 범야권 통합플랫폼 형태로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마침내 국민의힘의 재보궐선거 초압승과 부활의 특등공신이 되면서 킹메이커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11. 제20대 대통령 선거2022년 6월 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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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통령 선거 및 보궐선거 당시.

2021년 11월 1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천명했다. 2021년 12월 중순까지는 지지율이 높지 않았으나 12월 말부터 지지율이 점점 상승하고 있는 추세이다.[17] 이로 인해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제18대 대통령 선거, 2021년 재보궐선거의 전례로 보아 주요 후보와 단일화를 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섞인 말도 나왔으나 일단은 단일화 없이 대선을 완주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다만 2022년 1월 말부터 지지율이 빠지기 시작하며 다시 10% 아래로 집계되고 있다. 그리고 대망의 2022년 3월 3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를 하며 4번째로(...) 사퇴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신승한 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재기를 노릴 수 있게 됐다. 2021년 재보궐선거 이후로 국민의힘의 연속적인 선거 승리에 큰 역할을 하며[18] 유력한 중도보수 정치인으로 다시금 재기를 노리고 있다.

대선 이후 국민의힘과 공식적으로 합당 절차를 밟았으며 4월 18일에 완료되었다. 이로써는 안철수는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이후 7년여의 제3지대 정치 생활을 끝내고 완전히 보수진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김은혜가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사퇴해 열린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서 김은혜의 지역구인 성남시 분당구 갑에 출마,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다.

11.1.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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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

13. 2023년

■ 국회 기자회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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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 패배를 통해 얻은 혁신과제 1호는 당을 망치는 나쁜 사람을 뽑아내고 좋은 분들을 모셔와 확장 정치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년 총선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당이 민심을 회복하고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람에 달려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우리 당을 비난하고 비아냥거리며 내부 분란을 조장하면서, 우리 당이 선거에서 몇 퍼센트 질 거라고 잘난 체하고 다니는 나쁜 사람들은 내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2030 청년층과 중도층, 세대와 지역을 확장하는 좋은 분들을 대거 영입하는 확장정치를 통해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 이번 선거패배를 통해 얻은 우리당의 혁신과제 1호입니다.

그중 대표적으로 이준석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을 자기의 힘으로 만들었다는 독선에 빠져 갈등을 빚다 징계를 당하고도, 방송 출연을 통해 당을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며 내부 총질만 일삼는 오만의 극치를 달리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은덕을 입고 어린 나이에 정치에 입문해 당 쇄신을 위해 치켜세우고 대접해주었더니 오만방자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언제까지 이 응석받이가 당에 분탕질 하는 것을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지켜보고 계실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겠습니까?

저는 오늘 이준석을 내보내기 위해 자발적인 서명운동에 동참해주신 16,036분의 국민들과 함께 당 윤리위원회에 이준석 제명 징계를 요청하겠습니다. 토요일 밤부터 시작해 월요일 아침10시까지 하루 반만에, 무효표를 제외하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준석 제명에 서명하신 분들의 명단은 오늘 제출하겠으며, 이 운동은 앞으로도 일주일간 계속 진행해서 그 명단은 당에 추가로 제출하겠습니다. 국민들의 참여가 국민의힘을 변화시키고 대한민국을 변화시킵니다.

강서구청장 선거 이틀 전날 밤 유세 때, 타당(他黨) 지지자로 보이는 시민이 저에게 한 욕설을 유머로 승화해 웃어넘긴 일이 있었습니다. 유튜브 영상으로도 남아있습니다. 언론에서도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한 후 기사화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준석은 시민이 저에게 욕설한 부분은 쏙 빼고, 제가 진교훈에게 막말을 해서 선거패배에 큰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아침 방송에서 가짜뉴스를 퍼트렸습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즉시 대변인 명의의 비판 성명이 나오고 소수의 언론이 보도하기 시작하는 환상의 팀플레이를 보여줬습니다. 저희 의원실에서 즉시 전체 동영상을 공개해서 오해를 벗을 수 있었지만, 강서구청장 선거때 이준석이 우리 당에 저지른 가짜뉴스 사건은 정말 나쁜 선거방해 공작입니다. 이준석을 내버려 두면 내년 총선에서도 당에 또 내부총질을 할 것이고, 가짜뉴스를 생산하며 방송에 출연해 당을 비아냥거리고 조롱할 것입니다. 이런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선거는 몇 퍼센트로 질 거라고 예언하는 이준석보다, 한 표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주는 사람이 우리 편입니다. 지역구 자기 선거도 예측 못하는 마이너스 3선인 이준석이 강서구청장 선거패배에서 갑자기 도사급으로 취급받는 모습은 참으로 기묘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어렵고 불리한 선거임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당의 요청을 받고 돕기로 결심하고 제 일처럼 열심히 뛰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준석은 이제 2030세대의 대표성을 상실해서 지지 세력도 없다보니 세치 혀로 세상을 현혹하며 당을 난도질 하고 있을 뿐인데, 마치 아직도 청년의 대표인 듯 과대 포장되어 있습니다. 이제 이준석은 당에서 내보내고, 국민께서 좋아하실 만한 유능하고 도덕적인 새로운 2030 청년들과 실력 있고 명망 있는 신진 정치인들을 대거 영입하는 확장정치를 해야 합니다. 이준석보다 더 똑똑하고 도덕적인 대한민국 청년들이 많습니다.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신진 정치인, 각 산업과 세대를 대표하는 전문가 지성인들을 대거 영입해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가 우리에게 준 엄중한 교훈입니다.

당에 있는 나쁜 사람들은 뽑아내고 좋은 분들을 모셔와 확장정치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준석 제명을 위한 서명운동 참여 방법은 제 페이스북에 설명되어 있으며, 구글이나 네이버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14. 2024년

2월 7일
의대 정원 확대 (윤석열 정부 의과대학 정원 대폭 확대 지침) 에 관련해서 의견을 피력하였다. "우선 의사가 더 늘어야 한다는 것에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렇게 증원만 하고 필수 의료 기피 문제에 대해 해결하지 않으면 10년 후에는 매년 서울에서 2000개의 피부과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거기에 따라 정확하게 의사 숫자를 계산해서 늘리자는 입장"이라며 "무조건 숫자만 늘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기피 현상을 해결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의료 인력이 확보돼야 하고, 병의 원인을 발견하고 치료 방법을 개발하는 '의사 과학자'가 필요하며 '지방 의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의지나 재정을 투입할 계획을 세우고 난 후 의대 정원 확대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기피과 인력난 해결 방안에 관해서는 "현재 인력이 부족한 이유 중 하나는 수가가 굉장히 낮다는 것"이라며 "수가를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

2월 14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공천신청자 면접심사에 참석했다. 면접심사가 끝난 후 진행된 간단한 인터뷰에서 수도권 위기론에 대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풀어야 할 숙제"이며, "분당을 포함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굉장히 낮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앞으로 극복이나 대처할 방안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개혁신당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는데 "개혁신당은 지금 현재로서 부족해 보인다" 며 "사람도 충분하지 않고, 리더십들도 강하지 않아보인다. 가장 중요한 점이 차별화인데 단순히 반윤,반명한다고 해서 차별화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2월 15일
성남시 분당구 갑 단수공천이 확정되었다. #

2월 20일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우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들"이라며 현장 복귀를 호소했다. 안 의원은 "의사이자 정치인으로서 두고만 볼 수 없다"며 "어떤 경우에도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집단 행동을 멈추고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하여 고려할 것이다'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돌아가자"고 당부했다. 안 의원은 정부를 향해서도 "의료계의 심각한 문제인 필수 의료인과 의사 과학자 양성 및 지방 의료 강화 방안을 내놓음과 동시에, 이를 위해 필요한 의료 인력의 확대 규모를 정교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그러나 지금은 의료대란으로 인한 국민의 불행과 희생을 막아야 하는 엄중한 상황이다. 대화를 통해 의료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만큼 의대 정원을 단게적으로 늘리는 것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대 정원을 2000명 갑자기 늘리는 것은 의과대학들의 인프라, 교육과 수련의 질 담보 가능성, 유.청소년 교육 및 입시제도에 미치는 영향, 이공계 인재들의 반수와 재수 등을 고려할 때 간단치 않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의료인들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대승적 결단으로 집단행동을 멈추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국민이 피해자가 되면 그 목소리는 국민들께 닿을 수 없게된다"며, 강대강의 충돌로 국민을 피해자로 만드는 의료대란만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 #

4월 10일
오후 11시 기준으로 경쟁자인 이광재 후보와 약 1% 차로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총선에서 또다시 대참패를 당하면서 당을 장악하던 친윤계의 힘이 줄어든다는 예측이 우세한 가운데 만약 안철수가 신승을 거둬 의원직을 유지한다면 비윤계의 중심으로서 당 내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는 안철수 의원이 47.2%, 이광재 전 의원이 52.7%로 이 후보가 앞선다는 결과가 나와 이광재 캠프에서는 당선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환호를 하며 한껏 들뜬 모습을 보이고 안철수 캠프에서는 낙선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탄식이 흘러나와 희비가 교차되는 모습을 보였다. #

하지만 이후 개표가 진행될수록 결과가 뒤집혔고 6.55% 차이로 역전에 성공해 오전 2시 경 당선이 확실시되었다. 이렇게 거물급 경쟁자를 꺾고[19] 대역전극을 이뤄내 지역구 수성에 성공하면서 4선 중진의원 고지에 올라 앞으로 국민의힘 내 몇 안되는 수도권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도 높아지게 되었다. # 초토화된 국민의힘의 차기 전당대회 당권 도전 가능성이 가장 거론되었는데, 국민의힘 당헌당규상 대선 경선에 출마하려면 18개월 전 선출직 당대표에서 물러나야 하기 때문에 대권을 생각한다면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20]

4월 12일
당선 후 국민의힘 내에서 가장 먼저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 특검법에 찬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4월 21일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하는 1인 25만원 씩의 민생회복지원금을 두고는 "현금살포식 포퓰리즘 공약을 맥없이 뒤따라가는 것도 여당으로서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하며, "부유층에까지 같은 액수를 나눠주기보다 어려운 계층을 집중적으로 도와드려야 한다고 국민께 소상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국민은 내 삶이 개선되기를 바라는데 정치권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으면, 결국 유일하게 정책 집행력을 가진 여당에 원망의 화살이 돌아간다"면서, "야당과의 소통은 필요하지만, 정부가 총선 참패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국정운영의 변화 의지를 보여주려면 최우선적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정부가 물가, 민생, 경제 분야를 챙기고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들과 적절한 소통을 했는지 돌아봐야 하고, 민생현안 개선에 관한 이슈 하나하나를 점검해야 한다" 며 "꼬일대로 꼬인 의료대란 문제도 해결해 의사들을 하루속히 환자들 곁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부연하였다. #

4월 24일
안철수 의원은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1년 5개월 만에 공식석상에서 직접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데 대해 "이제야말로 정식 기자회견을 해야 될 때가 아닌가"라고 밝혔다. 또한 "정말 오랜만에 기자 분들의 질문에 진솔하게 답을 하는 그런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며 "지금까지의 나름대로의 소회나 잘못했던 점들에 대한 그런 자기 반성의 말씀을 하시고 앞으로는 국정을 어떤 방향으로 운영하겠다 그렇게 청사진을 내놓으셔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사실 여당이 하는 일이 그거 아니겠나"라고 강조하였다. 정진석 의원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데 대해선 "만약 지금 현재 대통령과도 사이가 안 좋고 야당과도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중재를 하겠나"라며 "그래도 어느 한 쪽과는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지 야당과 어느 정도 타협을 할 때 자율권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홍철호 전 의원이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데 대해선 "지금까지 스타일을 보면 대부분 대통령께서 그 전까지 알던 사람, 친밀한 사람들을 많이 쓰셨다"며 "사실 이번 정무수석 같은 경우에는 그런 사람은 아니어서 저도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이게 또 변화의 조짐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영수회담에서 민생회복지원금 의제를 제시할 가능성에 대해선 "재벌총수도 25만원 받고 아주 어려운 곳에서 사시는 분도 25만 원 받고 그건 맞지 않는 것 같다. 지원 범위 퍼센티지를 조정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회동 성사시 안의원은 "당과 정부는 유일하게 집행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첫번 째 대화상대는 야당이 되면 안 된다.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 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지금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이게 팩트"라며 "나중에 고민해 보겠다"고 답했다. #

5월 2일
22대 총선 이후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말해온 것과 달리, 이날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이 올라오자 여야 합의 없이 본회의 당일 야당 단독으로 기습 상정했다는 이유로 김웅 의원을 제외한 국힘 의원들과 퇴장하여 표결에 불참하였다. 국회영상의 1:20:56 참조#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어디까지나 민주당이 기존에 합의된 의사 일정을 독단적으로 당일날 폐기한 다음 날치기로 채상병특검법을 올린 것에 대한 반발이었지, 특검 찬반 유무와는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민주당 의원들만으로도 충분히 통과가 가능했던지라 빠진 측면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발동 이후 치러진 재표결에서는 찬성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5월 12일
안철수 의원은 '황우여 비대위'의 비상대책위원회 인선안이 총선 참패로 드러난 민심에 부합하지 못한다며 '수도권 낙선자 비대위원 추가 인선'을 촉구했다. 안 의원은 "총선참패를 성찰하고, 다시 민심을 얻어야 한다. (내정자)다수는 의원 또는 당선자로 수도권, 충청, 강원 각 1명씩, 수도권 낙선자 1명"이라며 "이 정도의 비대위 구성으로 '중도층-수도권-청년층'의 눈높이에 부합하고 당원과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또한 "인구 절반이 모여사는 지역인 수도권 패배는 곧 총선참패로 이어졌다"며 "국민의 눈높이에서 민심을 담아낼 수 있도록 수도권 낙선자들의 추고 인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6월 2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상임위원장 후보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서 김석기 의원을 상대로 70표 대 25표로 패배해 4선 의원임에도 상임위원장이 되지 못했다. 경선 후일담 원래 관례대로라면 별도의 투표 없이 안철수가 되어야 했는데 채상병 특검 찬성건으로 국방위원장을 배제당하고, 외통위원장마저 친윤 의원들의 몰표로 김석기가 차지했다는 것이 중론. 안철수 본인도 안될 선거임을 알면서도 경기도 등 수도권 인사의 모든 상임위원장 배제를 항의하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7월 4일
채상병 특검법 표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는 김재섭 의원과 함께 유이하게 표결에 참여했고, 반대한 김재섭과 달리 찬성표를 던졌다. 이로 인해 사이가 좋지 않은 이준석과 야당 의원들 몇몇이 "안철수 의원 파이팅" 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

7월 5일
채상병 특검법 표결에서 찬성을 던진 안철수에게 당내 비판이 쏟아졌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강민국 의원은 "국민의힘이 더는 비굴하고, 비겁해서는 안 된다"며 당 지도부에게 안철수를 제명하라고 썼다. 전날 여당 의원 단체 대화방에서도 안철수가 찬성하겠다고 밝혔다는 내용의 보도문을 올린 뒤 "사실이라면 당 지도부에서 안 의원을 제명하거나 스스로 탈당해야 한다"고 썼다. 이어 "개인 소신만 가지고 정치한다면 무소속이나 이준석의 개혁신당에 가야한다"며 "밤새워 투쟁하고 우원식국회의장과 민주당 독재에 분노하는 우리는 뭔가"라고 따졌다. 또한 김대식 의원도 전날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본회의장 밖에서 "당론을 어긴 사람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지도부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핵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당론이라는 건 의원총회에서 의결해야 하는데, 특검법에 대한 표결 불참이나 반대가 공식 당론으로 채택되지 않았다"며 "안 의원을 당론 위배로 보고 징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상 안철수가 지지율은 미미하지만 대권주자 체급인데다 4선 수도권 중진임과 동시에 중도층의 지지도 어느정도 받고 있기에, 징계를 해버리면 오히려 중도층 지지율만 이탈되고, 역풍이 불 위험이 크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는걸로 보인다. #

9월 12일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의료대란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안철수는 "의대 증원을 전제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 과학적으로 증원 규모를 정할 것을 제안한다"며,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위해 전공의, 의대생과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선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하고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2025년도 의대 증원을 그대로 두면 의료 붕괴를 막을 수 없고, 1년 간 유예하면 수험생 피해가 막대하다"면서도 "안타깝지만 '의료붕괴'와 '수험생 피해'를 따져보고 커다란 두가지 손해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둘 중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죽고 사는 문제인 '의료 시스템 붕괴'부터 막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돌아오기는 커녕 더 멀어질 뿐이다"라고 했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로 인한 피해를 보게 될 수험생들에겐 향후 의대 증원 확정시 우선 지원권 부여 등 특헤 구제를 지원하자고 했다. 참고로 안철수는 지난 2월부터 의정 갈등 해결 방안으로 '의대 증원 유예 안'을 밝혀왔었다. #

9월 19일
본회의에서 상정한 채상병 특검법에 또 다시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적 의사일정 강행 및 법안상정에 반발, 본회의에 불참한 채 같은 시각 규탄대회 및 의원총회를 열었다. 이 시간에 안철수는 국민의힘 측 좌석에 혼자 앉아 채상병특검법 표결에 찬성을 던지고 나왔다. 다만, 뒤이어서 상정된 김건희 특검법과 지역화폐법엔 투표하지 않았다. 안철수는 이후 인터뷰에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 생명에 대해서 진상을 밝히고 공헌도에 따라서 대한민국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우를 하는 것이 국가의 도리고 존재의 의미"라며 "특히 안보라는 것은 보수의 핵심적인 가치다. 그런 뜻에서 계속 찬성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에서 일방적으로 추천권을 가지고 특검을 하자는 것은 차악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악은 특검을 하지 않는 건데 국민들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데도 깜깜히 묻히는 건 국민들이 바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차선은 한동훈 대표가 공약했듯 제3자 특검 추천을 하는 방법"이라며 "예전에 민주당안 보다 좀 더 한 대표의 안을 받는 그런 의지가 보이는가, 굉장히 중요하게 바라봤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진상을 규명하는 쪽으로 어느정도 진전됐다"면서 "한 대표 안에 좀 더 접근한 건 맞다"고 평가했다. 본회의를 보이콧한 당 차원 결정과 반대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진 않았다"며 "당 윤리 위원회도 구성이 안됐다. 뭘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참고로 안철수는 21대에 이어 지난 7월 4일 본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의원 중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졌다. #

10월 21일
자신의 지역구 소속 성남시 이영경 시의원의 딸이 '모래학폭'에 연루가 된 사건이 일어났는데, 안철수는 분당갑 당협위원장으로서 이영경 시의원에게 '책임지고 당을 떠나라'며 출당 명령을 내렸다. 안철수는 "수개월간 동급생을 상대로 한 잔인한 폭력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학교폭력은 엄연한 범죄이며,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가 평생 지속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육 현장에서 학교폭력을 추방하는 것은 국민의 요구이자, 당협위원장의 소신이기도 하다"며 "이번 사건에서 가해 학생 부모 중 한 명이 우리 당 소속 시의원이라는 사실에 책임을 통감하며 실망을 끼쳐 드린 데 대해 국민과 시민께 머리 숙여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또 "당내에서 가해자 측을 두둔하거나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위가 있을 경우, 당의 위신을 헤치는 일로 간주, 당윤리위원회 제소 등 엄정한 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

10월 30일
안철수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관련, "특검의 목적 자체가 탄핵이라면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여야가 합의 하는게 국회 정신이다"라고 밝혔다. 안 의원은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독소조항이 있다면 서로 타협해서 제거, 진상을 규명하고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지 찾는 것에 집중하는게 올바르다"고 말했다. 또한 "보통 법안을 발의하면 본회의에 그대로 올라가 부결되는 게 아니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러가지 수정 사항을 거치게 된다. 여야 합의가 된 내용들이 마련돼서 본회의에 올라가는 게 정상"이라고 답했다. 국민의 힘이 김 여사 특검법과 관련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한다"며 "많은 국민이 현재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국민의 그런 여러가지 의혹을 풀어주는 것도 집권여당이 해야 할 일 아니겠나"라고 짚었다. 한편, 최근 당내에서 김 여사 등 대통령 친인척을 감찰하기 위핸 특별감찰관 추진을 놓고 이견이 발생한 것에 대해선 "계파 갈등이 공멸의 길로 갈까봐 우려가 크다. 정책보다는 정치 이슈가 돼 되버렸다"고 비판했다. 특별감찰관 추진을 두고는 "좀 더 빨리 말씀이 나올 떄 했다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을 텐데, 시기를 놓쳤다. 이제 이것만 하면 된다는 해법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잘 설득하면 국민께서 변화의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할 수 있다"며 "한동훈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가 물밑 대화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당부했다. 전날 오세훈 서울시장 등 중진들이 모여 대통령실과 당의 변화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낸 것에는 "이제는 중진들이 역할해야 하지 않나 싶다. 당 대표의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묵살되는 게 국민에게 생중게되는 모습이 아쉽다. 대표 입장에서도 회담 후에 계파 소집을 하는 모습이 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

11월 3일
자신의 SNS를 통해 "대한민국 민심은 엄중하다. 최근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10%대로 추락했다. 임기 반환점을 돌기도 전의 10%대 추락은 매우 엄중한 위기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민심의 심판은 지난 총선에서 쓰나미처럼 분출한 바 있다"고 촉구했다. 이어 "정쟁과 이념전쟁보다는 연금개혁, 교육개혁 등 3개 개혁과 민생 경제에 올인했어야 했다. 명품백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사건 등에 대해 진정어린 사과가 선행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부는 민심에 맞서는 방향으로 역진했다. 정부실패 책임자들인 내각과 용산 비서진을 감싸기에 급급했다"라고 부연했다. 또, "의료개혁이 아닌 의료시스템 붕괴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정책실패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국정기조 대전환과 야당과의 협치와 관계 개선은 외면하고 말았다. 지지율 폭락의 대위기를 탈출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께서 진솔하게 성찰, 국민께 상과하는 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김 여사 문제에 대한 특단의 선제적 조치를 결단해야 한다"면서 '김건희 특검법'을 우회적으로 거론하였다. "특별 감찰관과 제2부속실 설치만으로 사태를 수습하기엔 이미 늦었다. 김 여사 리스크를 매듭 짓지 않고 국정을 정상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힘들어졌다"고 적었다. 다만 "민주당식 특검법이 그대로 통과 할 수는 없다. 독소조항들을 삭제한 여야합의로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대통령 당선인 시기의 공천개입 논란에 대해서도 진정어린 사과가 불가피하다.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 '당원이 의사 개진한 것'이라는 변명은 궁색하다"고 지적했다. 또, "국정기조를 대전환하고 인적쇄신을 단행해야 한다"면서도 "윤석열 정부의 정책실패에 책임 있는 정부 부처와 용산 참모진의 대대적인 쇄신을 통해 국정기조 변화를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적었다. 끝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지율 폭락이 위기의 시작이었다"면서도 "위기의 본질을 직시하고 검사 윤석열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국민의 눈높이에서 민심에 따르시기를 바란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국민은 항상 옳다"고 당부했다. #

11월 5일
안철수 의원은 5일 YTN라디오 뉴스파이팅에 나와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4대 개혁 성과를 강조한 것을 두고 "교육 연금 노동 이런 3대 개혁은 힘이 있는 임기 초에 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10% 지지율로는 개혁의 동력을 얻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의료개혁과 관련해서는 "몇 조에 대한 해당하는 국고를 낭비하고 의료 붕괴 상황으로 가고 있다"며"이걸 연착륙을 시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개혁에 나서려면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국정회복에 힘 써야 한다고 봤다. "우선 정부에서 해야할 3개 과제는 첫 번째 진정성 있는 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하고 두 번째로는 민생경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국정기조를 대전환하고 세 번째로는 인사혁신의 모습을 보여서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지만 개혁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통령이 정국을 인정하고 야당에 협조를 구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을 개정하려면 지금 다수당인 야당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설득과 타협과 합의 이런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



[1] 친민주당 계열에서 극우라는 비판을 받곤 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오히려 안철수 의원보다 훨씬 진보적이거나 중도적인 성향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극우 계층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을 뿐이지 정책적으로는 극우라고 보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었다.[2] 이로 인하여 안철수 본인이 정통 우파 정책을 많이 편 이명박에 빗대어 본인이 MB 아바타냐는 발언을 한 전적도 있기도 하다. 역대 보수 정당 대선 후보 중 제일 진보적인 편인 윤석열 대통령과는 정반대.[3]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수정당은 부패로 망하고, 민주당계 정당은 분열로 망한다.'라는 말도 있었다.[4] 미래통합당은 당시 극우와 손절하지 못한 행보로 실망감이 있었고,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은 종합부동산세 문제 때문에 지지하길 꺼렸다.[5] 정확히는 1980년대 후반~1990년생이다. 이들은 알다시피 정치혐오 무당층이 가장 많은 세대다.[6] 열세 지역이었던 대전을 올킬지역으로 뒤집어 엎은건 단일화 핵폭풍이 가장 크게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이 여파로 허태정은 이장우에게 여론조사에서 계속 뒤지고 있었고 결국 허태정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낙선했다.[7] 2003년 박원순 변호사 주도의 시민단체 '아름다운 가게' 참여로 처음 만난 뒤 지금까지 8년 동안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가하고 있다.[8] '이 때문에 이후 박원순 변호사가 단일 후보가 된다고 하더라도 공무원 신분이라 지원 유세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정당법 22조에서는 대학총장과 교수에 대해서는 정치 활동 금지의 예외 대상으로 정해놨다. 따라서 정당 가입과 선거 운동은 할 수 있다.[9] 물론 395억 원도 만만치 않게 큰 돈이다.[10] 이 때문에 안철수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안철수는 스스로 문재인 후보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고 밝혔고 문재인 후보도 이를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하였다. 사실 당시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가 낙선할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 기사참조[11] 2010년대 이후 부산에서 민주당계 정당의 약진이 돋보인다고는 하지만, 부산광역시는 3당 합당 이후 여전히 보수정당 지지가 강한 편이다. 특히 영도구는 단독 선거구가 된 1988년 이래 단 한 차례도 민주당계 정당들에게 의석을 내준 적이 없을 정도로 부산 내에서도 보수 성향이 가장 강한 곳 중 하나다. 더군다나 당시 상대 후보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였다.[12] 심지어 진보정의당 내에서도 이런 비판이 있었다.[13] 그래도 지방선거의 경우 안 전 대표 덕분에 선방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당 내부에 많다. 다만 일각에서는 야권에 유리한 세월호 정국에서 좋게봐도 무승부 정도의 성과밖에 못 냈다고 비판한다.[14] 야권에서 거론되는 3대 성장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머지 2가지는 문재인의 소득주도성장론, 박원순의 복지성장론.[15] 이후 문재인 지도부 때 치러진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광주 서구 을 선거구에서 반친노, 반문 정서로 인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30% 득표에도 미달하며 참패했다.[16] 다만, 이정현 전 의원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정현 전 의원이 해당 지역의 지역 일꾼으로서 여론이 좋았던 건 감안해야 한다. 해당 지역에선 오히려 예상보다 적은 득표수 때문에 화제가 됐다고.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다고 여론이 안 좋은 서갑원 후보를 공천한 어리석음이 정당화되는 건 절대 아니다. 최소한의 관심만 보였어도 분명히 이길 수 있는 지역이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호남권'이었으니까.[17] 심지어 한국갤럽이 직접 2022년 1월 2주에 조사한 4자 구도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17%를 기록했다. 해당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37%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31%를,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3%를 기록했다. 해당 여론조사에 대한 기타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18] 단, 단일화 자체가 당과의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진행한 일이고 안철수 지지자 전체에게 통수를 치는 행위라서 안철수 지지층 중 안철수의 단일화에 분노하여 안철수의 적대 세력으로 돌아서 기권을 하거나, 이재명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안철수 지지층 약 80%가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것이 확인되어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고, 인수위원장이 되었으며 여권의 지지를 얻게 되었고 21대 대선 여권 가장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니 안철수 개인 입장에서는 성공한 선거가 맞다. 실망하여 돌아선 유권자 중에서도 일부는 단일화의 결과에 납득하여 추후 안철수에게 표를 다시 줄 수 있다. 만약 단일화를 하지 않았다면, 이재명이 승리했을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19] 물론 본인이 거물급이기는 하지만 분당의 화이트칼라들이 집권여당에 대해 부정적이기도 하고 이광재도 분명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리고 25%차로 압승한 2년 전 재보궐선거와 달리 10% 이내로 좁혀져 경합우세로 변모하였다. 이광재는 본인 고향인 강원도에서만 출마하다가 이번이 첫출마인데도 불구하고 47% 가까이 득표하였다.[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이낙연이 이런 케이스.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로 당대표 선출 7개월 만에 사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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