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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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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가 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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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 혜시 공손룡 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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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순자
荀子 | Xunzi
본명 순황
荀況
출생 기원전 298년?
조나라
사망 기원전 238년?
초나라
직업 유학자
종교 유교

1. 개요2. 사상
2.1. 사람2.2. 예(禮)2.3. 성악론2.4. 법후왕론2.5. 왕도론2.6. 천론2.7. 계급론
3. 관련 인용구4. 서적 순자(荀子)5. 기타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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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국시대(戰國時代) 후기의 철학자. 이름은 황(況). 경칭으로는 순경(荀卿) 또는 손경자(孫卿子)로도 불린다.[2] 15세부터 직하학궁(稷下學宮)[3]에서 공부하였고 훗날 그 좨주(祭酒)[4]를 세 차례 역임하였다.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의 부름을 받아 난릉령(蘭陵令)에 임명되기도 하였으나, 춘신군이 살해당하면서 파직된 이후로는 제자 양성과 저술에 전념하며 여생을 마쳤다.

순자는 유가 중에서도 특히 경전주의(經典主義), 예(禮), 정명론(正名論), 인위[僞] 등 현실 규범적, 정치적 요소를 중시했고, <열두 선생을 비판함[非十二子]>으로 대표되는 그 전방위적 비판론은 도가, 묵가, 명가 등은 물론이요, 자사맹자의 관념적 유가 계통을 비롯해 자하학파, 자유학파, 자장학파 등에도 미쳐 유가 내부의 자성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논변 탐구가 치밀해져 묵가, 명가와 함께 순자학파는 춘추전국 3대 논리학파를 형성했다.

내외부 비판을 가하며 스스로를 공자의 적통으로 인식했으나, 사실 순자의 예(禮)는 공자보다 법적인 부분이 강하고 인식론상으로는 도가의 영향이 농후하다. 하지만 동일한 이유로 제자백가의 여러 학설들을 비판적으로 계승했다고 평가를 받아서 선진(先秦)사상의 집대성자라 칭하기도 한다. 이후 한-당나라 시대 때 정통 유학자로 인정받으며 일정한 영향을 미쳐 왔으나, 당나라 말 대유학자 한유가 순자의 학설에 결함이 있다고 말한 이후, 남송 이래의 성리학(주자학) 계통으로부터 결정적으로 이단시되었으며, 청나라에 이르러 다시 재조명 받기도 했다.

그의 사상은 공자(孔子)의 사상을 뼈대로 하였기에 인(仁)으로 백성을 감화시키면서도, '예(禮)'에 따라 사회적 직분을 구분하여 다스릴 것을 강조하였다.[5] 그가 주장한 예치(禮治)에 따르면, 왕(군자)은 어진 마음(仁)으로써 백성들을 살피고 '예(禮)라는 사회질서' 를 통해 귀천을 나누어 능력있는 자를 등용한다면 천자의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순자의 왕도정치)[6]

하지만, 그의 제자인 한비자[7]이사(전국시대) 등은 왕이 굳이 어진(仁) 행동을 하지 않아도, 능력있는 신하를 등용해 엄격히 법을 집행하면 백성들이 따라와 부국강병해진다는 패도정치를 주장하였으며, 왕도정치는 가식적이며 여유있는 시대에서나 사용가능한 방법이라고 비판하고 따로 법가를 만들게 된다.

그의 제자는 위 이사로 대표되는 법가, 정치가 계열이 유명하지만, 부구백 등 유가, 학자 계열로 남아 문헌 정리와 보전, 후학 양성에 힘쓴 이들도 있었다.[8] <<예기>> 등 보전된 고대 유가 문헌에는 순자학파의 공과 학색이 적지 않다는 견해가 있다.

사마천의 <<사기>><맹자순경열전>에서는 순자는 수 만 자에 달하는 글을 지어 남겼다 전한다. 전한 시대 유향은 322편에 달하는 순자학파 문서를 32편으로 정리하여 <<손경신서(孫卿新書)>>라 하였다. 당나라 양경이 다시 32편을 20권으로 정리해 현행 <<순자>>가 되었다. 청 말에는 왕선겸이 <<순자집해>>를 지어 순자를 재평가하고 주석을 모았다. 현행 <<순자>>는 과연 어디까지가 순자 본인의 글인지, 그의 학파의 글인지, 아니면 가탁된 글인지가 의문시되기도 한다.

오늘날 순자는 공자, 맹자 등으로 대표되는 이상주의 유가 계열에 비해 현실주의 계열로 알려지고 있고, 송대 주자학파에 의해 지나치게 이단시되었다는 점이 감안되어, 학계와 민간에서는 유교의 현대화를 이끌 새 지주로까지 드문드문 재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현실주의라는 것은 개방성과 유연성보다는 결국 배타성과 획일성으로 귀결되는 규범주의의 일종이었으며, 유가의 독존과 지나친 경전주의, 허례허식을 양산한 한대 유교에서부터 이미 그 영향력의 단점을 드러낸 것이었다.

혹자는 주자학이야말로 순자를 비판하였다지만 순자의 단점을 그대로 답습하였다며 양자를 나란히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때문에 반주자학 경향이 강했던 청 말이나 일본 근세의 유학자들조차 오히려 일반적으로는 맹자를 주자학적 해석을 배격하고 재평가하거나, 혹은 맹자와 순자를 나란히 비판했고, 순자를 맹자 위로 올리려는 시도는 드물었으므로, 오늘날까지도 순자는 미묘하고 복잡한 위상에 처해 있다.

2. 사상

사람의 본성에 이기심이 있기 때문에 환경에 의해서 점점 악해지게 되며, 사람은 교육을 받아야만 이 본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순자가 주장한 성악설이다. 교육에서는 특히 예(禮)를 강조하였는데, 무릇 왕이라면 '예(禮)로써 나라를 다스려야 된다'고 하였다. 순자에 따르면, 예(禮)란 사람들의 귀천과 직업을 나누는 성인의 방식이다. 예(禮)를 통해 구분된 계급과 직업들이, 각각 자기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할 때, 나라는 평온해지고 강력해진다는 것. 왕의 역할은 그러한 구분을 하여, 능력있고 현명한 자를 뽑아 신하로 삼는 것이다.[9]

2.1. 사람

法不能獨立 類[10]不能自行
법은 홀로 세워질 수 없으며, 대부분 스스로 행해질 수 없다.

得其人則存 失其人則亡
그 사람을 얻어야 살아남고 그 사람을 잃으면 잊혀지는 것이니,

法者 治之端也 君子者 法之原也
법은 다스림의 발단이고, 군자는 법의 근원인 것이다.

故有君子 則法雖省 足以遍矣
그러므로 군자가 있으면 법이 비록 생략될지라도 두루 미치게 될 것이고,

無君子 則法雖具 失先後之施 不能應事之變 足以亂矣
군자가 없으면 법이 비록 갖추어졌다고 할지라도 시행의 선후를 잃어버려서, 일이 변하는 것에 대응할 수 없어 어지럽게 될 것이다.

不知法之義 正法之數者 雖博 臨事必亂
법의 의로움을 알지 못하면서 법의 규칙을 바로잡는 자는 비록 식견이 넓어도 일에 임해서는 반드시 어지러워지니,

故明主急得其人 而闇主急得其埶
그러므로 밝은 군주는 급하게 그 사람을 손에 넣으려고 하지만, 어두운 군주는 급하게 그 권세를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순자》 군도편
법이라는 시스템보다, 그 시스템을 굴리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란 법의 의로움과 그 의도를 아는 현명하고도 도덕적인 군자를 말한다. 순자는 사람의 중요성에 대해 매우 강조하였는데, 법가 역시 시스템 보다는 그 시스템을 굴리는 사람이 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보통은 순자나 법가가 사람보다 시스템을 더 중시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 유의할 것.[11]

2.2. 예(禮)

이러한 순자의 예(禮)는 형식(법적인 부분)과 태도(심적인 부분)로 나뉘어 지는데,
禮者 法之大分 群類之綱紀也
예(禮)라는 것은 법의 큰 부분이며, 공동체의 규범이다.
《순자》, <권학편>
이라고 예(禮)의 법적이고 형식적인 부분을 말하면서도,
問楛者勿告也 告楛者勿問也
질 나쁜 질문을 하는 자에게는 알려주지 말고, 저질스럽게 알려주는 자에게는 질문하지 말며,

說楛者勿聽也 有爭氣者勿與辨也
설명이 저질스러운 자에게는 듣지 말고, 다투려는 기색이 있는 자와는 더불어 변론하지 않는다.

故必由其道至 然後接之 非其道則避之
그러므로 반드시 그 도(道)에 말미암은 연후에야 상대를 하고, 그 도가 아니면 피하는 것이다.

故禮恭而後可與言道之方 辭順而後可與言道之理
예를 공손히 한 뒤에야 더불어 도의 방법을 말하고, 언사가 순한 뒤에야 더불어 도의 이치를 말하며,

色從而後可與言道之致
얼굴빛에 따르는 기색이 있는 뒤에야 더불어 도의 이뤄짐을 말할 수 있다.
《순자》, <권학편>
라고 말하여, 예식을 갖추더라도 '태도'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도(道)라고 보지 않았다. 이는 나머지 다른 편에서도 반복해서 나오는데, '군자는 능력이 있으면 가르치고 능력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에게 배우나, 소인은 능력이 있으면 거만해지고 능력이 부족하면 질투한다'고 하였으므로, 여기서도 태도는 군자의 중요한 덕목임을 알 수 있다. 남들과 변론을 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군자는 따질 것은 따지나, 싸우거나 이기려 들지 않는다'고 말하여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순자는 진실됨(誠)을 강조하여, 진실됨(誠)이 정치의 근본이라 말하였다.
聖人爲知矣 不誠則不能化萬民
성인(聖人)은 지혜롭지만, 진실되지 않으면 능히 천하의 백성을 변화시키지 못하며,

父子爲親矣 不誠則疏
아버지와 자식은 친하지만, 진실되지 않으면 틈이 있게 되고,

君上爲尊矣 不誠則卑
군주(君主)는 사람들이 우러러보지만, 진실되지 않으면 비천하게 보인다.

夫誠者 君子之所守也 而政事之本也
무릇 성(誠)이라고 하는 것은, 군자가 지켜야 하는 것이며, 정치의 근본인 것이다.
《순자》, <불구편>
따라서 순자는 정치인의 진실된 태도 역시 중요하게 여겼다.

종합하자면, '정치인들이 예(禮)를 행할 때는, 그 형식을 잘 지키면서도, 진실된 태도[12]를 보여줘야 한다' 는 것.

2.3. 성악론

무릇 사람이 선善하게 되고자 하는 것은 그 성(性)이 악(惡)하기 때문이다.
대저 천박하면 중후하기를 원하고, 추하면 아름답기를 원하며, 협소하면 광대하기를 원하고, 가난하면 부유하기를 원하며, 미천하면 고귀하기를 원하니, 진실로 그 안에 없는 것은 반드시 밖에서 구하려 들기 마련이다.
순자, <성악편>
순자는 맹자의 성선론에 비판을 가하며 인간의 성(性)이 추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을 말하고, 본성으로부터의 선이 아닌, 후천적인 교육과 학문으로부터의 선이 유학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13][14] 반면, 맹자는 성(性)을 선(善)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학문이나 교육을 성(性)의 연장선으로 보았다. 《순자》를 보면 "맹자는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그 성(性)이 선(善)하기 때문이다' 했으나, 나는 '그렇지가 않다' 하겠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그의 이론은 인간의 본성은 배고프면 먹으려고 하고, 힘들면 쉬려고 하고, 추우면 따뜻해지려고 하는 것이므로 배고파도 가족과 나누어 먹고, 힘들어도 꾹 참고 일하는 등의 행위는 인위적인 결과이지 자연적인 본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상관없지만, 문명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본성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데, 낙후된 환경 속에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인위적 윤리를 얻지 못하고 혐오스러운 본성에 따라 사는 바람에 춘추 전국 시대와 같은 난세가 왔다는 것이다.

순자는 성(性)을 악/오(惡)로 규정했기 때문에 선(善)을 만드는 인위(僞)[15]의 기능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위(僞)' 는 성(性)과는 엄격히 구분되어 지며, 성(性)보다 그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순자는 위(僞)의 대표적 작용인 '학문', '교육'[16] 등을 자기 학설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이것의 실용성, 필요성을 치밀하게 논증하였던 것이다.[17]

맹자는 '인의(仁義)란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良能)'이라 보았지만, 순자는 배워야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는 데서 차이가 있다.[18] 맹자는 선한 행위란 단순히 그 '선함'을 배운다고 행하는 것은 아니며, 사람의 선한 행위는 사람의 '감정'[19]에서 출발해야 보다 더 자발적이게 되고 그 동기는 더욱 강해진다고 보았다. 하지만 순자가 볼 때에는 '젖먹이 아이가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다만 동물적 가족애일 뿐 인(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으며, '장성하여 형을 존경하는 것'은 분명 의(義)이지만 그것은 자연적인 순종성의 발로가 아니라, 장성하는 과정 중에 이미 가정교육을 거쳤으므로 도출된 인위의 결과이다.[20] 즉, 순자가 주장하는 것은 선(善)이란 배우지 않으면 할 수 없고, 배워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맹자의 성선설은 배울 수 없는 환경에 처한 무지랭이 백성이라도 자신의 타고난 선한 본성을 갈고 닦으면 선함을 이룰 수 있다는데서 희망을 주며, 순자의 성악설은 그 본성이 나쁜 군주나 정치인이라도 교육을 통해 인위적으로 배운다면 선함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데서 그 의의가 있다.

2.4. 법후왕론

순자는 법후왕(法後王)을 주장했다. 한자 그대로 '최근의 왕들을 본받자'는 뜻이다. 옛날 옛적의 성왕들의 행적이라고 남아있는 기록이 얼마 되지도 않고, 있어도 얘기가 두루뭉술하기 짝이 없으므로, 실제적으로 본받을 것이 별로 없으므로, 기록이 비교적 선명해 본받을 것을 잘 남긴 지도자들을 주로 본받자는 것. 그런 지도자는 대략 주나라 때부터 나타났다. 때문에 순자는 '왕자들 중에서도 비교적 후대의 왕자들, 문왕, 무왕(+ 주공) 등을 주로 본받자'고 한다. 순자는 선대의 왕들을 본받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왕 중에서도 행적이 뚜렷한 자를 본받자는 것이다.

2.5. 왕도론

無德不貴 無能不官 無功不賞 無罪不罰
덕이 없으면 귀하게 삼지 않고, 능력이 없으면 관리로 등용하지 않으며, 공적(功)이 없으면 상을 주지 않으며, 죄가 없으면 벌을 주지 않는다.

朝無幸位 民無幸生 尙賢使能而等位不遺
조정에는 요행으로 지위를 차지한 신하가 없고, 백성 중에는 요행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없게 하며, 어진 이를 숭상하고 능력있는 이를 부려 등급에 따라 일을 시킨다.

析愿 禁悍而刑罰不過 百姓曉然皆知
성실한 사람을 밝혀내고, 포악한 사람을 금지시키되 형벌이 지나치지 않게 하여서, 백성들이 밝게 다 알게 하며

夫爲善於家而取賞於朝也 爲不善於幽 而蒙刑於顯也
대저 좋은 일을 한 집안이 있으면, 조정에서 이를 취합하여 상을 내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쁜 일을 하면, 밝혀내어 공개적으로 형벌을 내린다.

夫是之謂定論
이러한 것을 ‘정론(定論)’이라 이른다.
《순자》 왕제편
왕도의 제일 가는 조건은 군주 스스로가 어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어질고 능력있는 사람을 신하로 등용하는 것이다. 그런 후에 공을 세웠으면 상을 주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주는 신상필벌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 패도도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하자는 것'은 마찬가지 인데, 차이점은 왕도는 왕 스스로가 다른 사람의 모범을 보여야, 능력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몰려들어 천하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고, 패도는 왕은 제멋대로 하더라도 능력있는 신하를 뽑아 믿고 맡겨서 백성들에게도 일정한 믿음을 주게되어 나라는 부국강병해지나 마음 속으로 감복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이로써는 천하를 다스리지 못하고 제후로 만족해야 된다는 것.

따라서 왕의 도덕성을 강조했는데, 그 도덕성이란 '예의를 잘 지켜야 된다'는 것이다.
왕도
국가를 예의로써 선도함. 하나의 불의를 행하여 하나의 무죄한 이를 죽이면 천하를 얻는다 하더라도 그리 하지 않음. [21]
이상을 견지함. 정치 성원은 모두 도의적인 인사. 형법 또한 모두 도의적. 군주는 기민하게 뭇 신하를 부리되 이 또한 도의적인 마음으로써 함. 옛날의 왕자들은 이같이 하였으므로 작은 데에서 시작하여 큰 데에 이르렀고, 천하에 그 밝음이 감추어지지 않아 후세까지 이름이 전해짐. 이른바 '의(義)가 우뚝 서면 왕자가 됨'은 이를 가리킴.
패도
덕이 온전치 못하고 의가 완전치 못하나 대체로 천하의 도리가 모여있음.
형벌과 포상이 매우 분명하여 천하와 뭇 신하들의 신임을 삼. 한번 선포한 정령을 바꾸지 않으니 백성을 속이는 일이 없음.
한번 협약을 맺는다면 동맹국을 속임이 없음. 옛날의 패자들은 이같이 하였으므로 변방의 나라이면서도 천하를 호령했고, 강대하여 중원을 위태로이 하였음. 이른바 '신(信)이 우뚝 서면 패자가 됨'은 이를 가리킴.
망도(亡道)
공리를 일으키는 의와 신에 힘쓰지 않고 오직 사익을 추구함.
작은 이익을 취하는 데 백성을 속이기를 꺼리지 않음. 큰 이익을 취하는 데 동맹국을 속이기를 꺼리지 않음.
본래의 소유를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의 소유를 항상 탐냄. 이같이 하므로 그 신하와 백성 또한 그 군주를 속일 마음을 가지니, 때문에 위, 아래가 분열됨. 자연 적국도 그를 경시하고, 동맹국도 그를 의심하므로, 권모술수만 난무하여 마침내 군주 본인은 죽고, 나라는 망하게 되니, 이로써 천하의 큰 치욕거리가 되어 차후 악례(惡例)를 들 때 반드시 꼽히게 됨.

요약하자면,
순자는 왕도를 최고로 보고 왕도를 행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그의 제자 한비자, 이사 등은 패도를 주장하고 왕도를 비판하여 법가를 만들었다. 이것이 순자와 법가의 차이점이다.

2.6. 천론

하늘[22]의 운행에는 항상된 법칙이 있다.
(堯)[23]로 인하여 존속되는 것이 아니요, (桀)[24]로 인하여 스러지는 것이 아니다.
대응하기를 다스림으로써 하면 길하고, 대응하기를 어지럽힘으로써 하면 흉한 것이다.
근본[25]을 튼튼히 하고, 씀씀이를 절제하면, 하늘일지라도 빈궁케 할 수 없다.
양성하고, 대비하며, 시의적절히 움직이면, 하늘일지라도 병들게 할 수 없다
도(道)에 진력하되, 우왕좌왕하지 않으면, 하늘일지라도 화(禍)를 입힐 수 없다.
《순자》, <천론편>
그의 자연관은 독특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유교의 전통적인 천명(天命)[26]을 부정하고 기계론적 자연관을 제시했다. 이는 다른 유학의 세계관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었으며 몇천년 뒤 유럽에서 나타난 사상인 기계론적 세계관[27]과도 일부 통하는 구석이 있다.[다른의견]이 때문에 순자는 묵자와 장자의 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2.7. 계급론

人之生 不能無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무리지어 살지 않을 수 없고,

群而無分則爭
무리를 지어 사는 데는 분별이 없으면 다투게 되고,

爭則亂 亂則窮矣
다투면 어지러워 지고, 어지러워 지면 곤궁하게 된다.

故無分者 人之大害也
그러므로 분별이 없는 것은, 사람들에게 큰 해로움이고,

有分者 天下之本利也
분별이 있는 것은, 천하의 근본이자 이로움이다.

而人君者 所以管分之樞要也
그리하여 사람의 군주되는 자는, 분별을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순자》 부국편
순자가 말하길, 옛 성인은 예(禮)로써 부자와 빈자, 귀한자와 천한자를 구별하였다. 천하에 사람은 많고 재물은 한정되어 있는데, 사람의 본성은 이기심으로 악하기 때문에 성인이 나서서 그 부(富)를 계급에 따라 나눈 것이 예(禮)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이 정해놓은 법도대로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섬겨야만 한다. 따라서 순자는 계급 사회를 긍정하여 각각의 위치에서 자신의 맡은 역할을 하는 것이 예(禮)라고 하였다. 또한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섬겨야되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비판해서는 안 됐다. 비판하는 것은 윗사람의 권한이어서 예(禮)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보면 철저히 엘리트주의적 사고방식. 맹자에서는 윗사람이 잘못하면 미워하고 부끄러워해서 지적하고 고쳐주는 것이 '의로움'이었지만, 순자에게는 윗사람이 잘못했을 때 아랫사람이 지적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므로 '의로움'이 아니다. 당시대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매우 권위주의적 생각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을 물려받은 순자의 제자들이, 후에 철권통치의 주요인물이 되어 버린 것은 당연한 수순 이었는지도 모른다.

3. 관련 인용구

선왕(先王)[29]의 도는 (仁)의 융성함이며, 중정(中正)을 헤아려 행해진 것이다. 무엇을 가리켜 중정이라 하는가?'''
이르기를; "예의(禮義)가 바로 그것이다!" 하리라.
《순자》, 〈유효(儒效)[30]
길바닥의 사람도 우임금이 될 수 있다.
《순자》, 〈성악(性惡)〉
군자(君子)는 이르기를 "학문이란 그칠 수 없는 것이다" 한다.
푸른 물감은 쪽풀에서 취한 것이되 쪽풀보다 더욱 푸르고, 얼음은 물이 변한 것이되 물보다 더욱 차갑다.
나무의 곧음이 먹줄에 들어맞더라도, 휘어서 수레바퀴를 만들면 그 굽음이 그림쇠에 들어맞으며, 비록 말라붙고 쬐이더라도 되돌아가지 않는 것은 휘어 놓은 바의 그러함 때문이다.
《순자》, <권학(勸學)>
학문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가?
이르노니
그 방법으로 따진다면, 경전을 암송하기에서 시작하여 (禮)를 독파하기에서 끝나고,
그 지향(志向)으로 따진다면, 선비가 되기에서 시작하여 성인(聖人)이 되기에서 끝난다.
진실하게 힘들이기를 오래하여야 성인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이니,
학문이란 죽음에 이른 뒤에나 그칠 수 있는 것이다.
하여, 학문의 방법에는 끝남이 있을지라도, 그 지향은 잠시라도 버려둘 수 없다.
이를 견지하면 사람이요, 이를 버리면 금수(禽獸)이다.
《순자》, <권학(勸學)>
군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것이 아니다.
외부의 것을 잘 배우는 사람일 뿐이다.
《순자》, <권학(勸學)>
옥이 산에 있으면 풀과 나무가 윤택해진다.
연못에 진주가 있으면 언덕이 마르지 않는다.
그러니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명성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순자》, <권학(勸學)>
학문은 죽어서야 끝이 나는 것이다.
《순자》, <권학(勸學)>
나를 비난하면서도 올바른 사람은 나의 스승이고
나를 옳게 여기면서도 올바른 사람은 나의 벗이며
나에게 아첨하는 자는 나를 해치는 자일 뿐이다.
《순자》, <수신(修身)>
길이 아무리 가까워도 가지 않으면 이르지 못한다.
일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행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활에 절실함이 없는 사람은 남보다 뛰어날 수 없다.
《순자》, <수신(修身)>
준마(駿馬)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지만, 노마(駑馬)도 열흘을 계속 달리면 따라갈 수가 있다.
《순자》, <수신(修身)>
어지러운 군주가 있으되, 어지러운 나라는 없다. 다스리는 사람이 있으되, 다스리는 법은 없다.
(羿)[31]의 사법(射法)이 사라지지 않았으나, 예와 같은 이는 금세(今世)에 있지 않다.
(禹)[32]의 국법(國法)이 아직 남아 있으나, 하(夏)나라는 금세에 왕천하(王天下)하지 않는다.
하여, 법은 홀로 설 수 없고, 사회(혹은 관습법)[33]는 스스로 걸어나갈 수 없다.
그 인재를 얻으면 곧 존속되고, 그 인재를 잃으면 곧 스러진다.
《순자》, <군도(君道)>
강물과 연못이 깊으면 물고기와 자라가 모여들고
산림이 무성하면 새와 짐승이 모여든다.
올바른 정치가 행해지면 절로 백성이 모여든다.
《순자》, <치사(致士)>
길거리의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다.
《순자》, <성악(性惡)>
날이 추워지지 않으면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를 알 수 없고
시련이 없으면 군자의 진가를 알 수 없다.
《순자》, <대략(大略)>
하늘이 백성들을 낳은 것은 임금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위한 것이다.
《순자》, <대략(大略)>
인성(人性)은 오(惡)[34] 하며, 그 선(善)이란 것은 위(僞)[35]이다.
지금, 인성이란,
날 때부터 이익을 좋아함이 있음이니,
이를 곧대로 따른 결과, 쟁탈이 생겨나고 사양(辭讓)은 스러지는 것이다.
날 때부터 질투하고 미워함이 있음이니,
이를 곧대로 따른 결과, 잔적(殘賊)이 생겨나고 충신(忠信)은 스러지는 것이다.
날 때부터 귀, 눈의 욕망이 있어, 흥겨운 소리와 아름다운 빛깔을 좋아함이 있음이니,
이를 곧대로 따른 결과, 음란이 생겨나고 예의문리(禮義文理)는 스러지는 것이다.
《순자》, <성악편>
예(禮)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이르노니,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욕망이 있으므로 욕망하면서도 얻지 못하면 구함이 없을 수 없게 된다.
구함에 정도, 정량, 분수, 한계가 없다면 다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투면 어지러워지고, 어지러워지면 궁해진다.
선왕(先王)이 그 어지러움을 싫어한 까닭에 예의(禮義)를 제정해 그것을 분별케 하고,
이로써 사람의 욕망을 보살피고, 사람의 구하는 바를 공급했던 것이다.
욕망은 반드시 물자로 곤궁하지 않게 하고, 물자는 반드시 욕망에 굴절하지 않게 하여
양자가 서로에게 기대며 성장케 하였다.
이것이 예의 기원 되는 바이다.
《순자》, <예론편>
그런대로 선왕(先王)을 본받기는 하나 그 정통은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기질은 열렬하고, 뜻은 웅대하며, 견문은 가지가지로 넓다.
옛날 옛적의 일을 참고하여 학설을 날조하고는 「오행(五行)」[36]이라 일컫는데, 지극히 편벽되고 어긋나 유례가 없고, 그윽히 가려져 있는데 설명이 없으며, 닫히고 맺혀 있는데 해명이 없다.
참고해 꾸며낸 그 말을 삼가 공경하며 이르기를 "이는 진실로 선군자(先君子)의 말이다" 한다.
자사(子思)가 이를 제창하고, 맹가(孟軻)가 이에 화합[37]하였다.
세속의 미련하고 우유부단하며 우매한 유자(儒者)은 왁자지껄하면서도 그 그릇된 바는 알지 못하여, 끝내는 그것을 수용하고 전승하며 중니(仲尼)와 자유(子遊)[38]가 이로써 후세에 후한 평가를 얻는 줄로 여긴다.
이는 곧 자사와 맹가의 죄이다.
《순자》, <비십이자편>

4. 서적 순자(荀子)

순자의 책을 읽어보면 왕도가 얼마나 실천하기 쉬운 것인지를 말하고 있고, 세상이 이를 받아들여 쓰지 않는 것을 염려하고 있으니, 그 말이 너무나 처참하고 비통하다.
― 유향, 《서록》

순자의 사상을 기록한 책이다. 위 항목에서 언급했듯이 제자백가 철학 전체를 망라하여 선진 사상계의 대단원을 장식한 명저지만, 오늘날 한국에 번역된 《순자》 중 양질의 것은 고사하고 완역본조차 찾기 힘들다.

김학주 교수 역 을유문화사 《순자》, 신동준 역 인간사랑 《순자론》이 완역본이긴 하나, 전자는 김학주 교수의 여타 번역서와 비교하면 의아할 만큼 질이 떨어진다. 오역은 기본[39]이고 번역된 한글의 철자도 틀리기 일쑤.[40][41] 후자는 그런대로 원문의 본의와 맞기는 하나, 한자어를 그냥 음역한 부분이 많아 일반인이 보기엔 어렵다. 또한 오탈자와 해석문 누락도 종종 있는 편. 그리고 해설(해석이 아니라 뒤따르는 평가식 해설)이 상당히 주관적이고, 해설하는 데 -신경 거슬리게시리-" ~이/가 아닐 수 없다" 이중부정 어투를 지나치게 반복해 쓰는 경향이 있다.

이외에 16편씩 1,2권으로 분권하여 한길사에서 출판한 이운구 역 완역본도 있다. 이쪽도 오역과 의역들은 피할 수 없으나 위의 두 종에 비하면 양호해 보인다.

4.1. 관련 고사성어

5. 기타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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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측 상단에 '전국시초난릉령순황(戰國時楚蘭陵令荀況)'이 써져 있는데, 이는 '전국시대 초나라 난릉 지방의 수령, 순황'이라는 뜻이다.[2] 현대 중국어로는 쉰쯔(荀子, Xún zǐ).[3]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나라의 수도 임치에 있던 학술원(學術院)으로, 직하(稷下)는 임치의 서문 앞에 있던 직산 밑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순우곤(淳于髠), 맹자(孟子), 추연(鄒衍), 전병(田騈), 신도(愼到) 등 굴지(屈指)의 학자들이 모두 이곳에 머무른 예가 있다.[4] 직하학궁의 총대표를 말함. 요즘으로 치면 서울대 총장급. 한자 사전을 보면, "祭酒(좨주): 벼슬 이름. 祭酒는 좨주로 읽는다."로 되어 있다.[5] 예(禮)의(義)를 둘 다 강조하였지만, 여기서 순자의 '의(義)'는 '예(禮)를 지키는 의로움(義)'인 것이므로, 사실상 예(禮)를 가장 중요시 여겼다고 보는 것이다.[6] 맹자의 왕도정치는 군주가 어질게 하면 저절로 백성이 감화되어 다스려지는데 비해, 순자의 왕도정치는 군주가 어질게 행동해야할 뿐만아니라, 예절을 통해 사람들의 사회적 직분을 구분하고 '신상필벌'을 바르게하게 하여 도덕적 질서를 엄격하게 세워야 다스려 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7] 정말 순자의 제자였는가는 최근 의문시되고 있다.[8] 부구백의 제자로는 한 고조를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고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설득하여 유가 정신을 따르도록 계도한 육가가 꼽힌다.[9] 물론 인의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다만 예를 더 중요하게 보았던 것.[10] 類: 대부분. '그러한 종류들은~'이라는 뜻에서 대개, 대부분이라는 뜻이 나왔다.[11] 물론 여기서의 '사람'은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며, 일반 백성들을 뜻하는 사람은 아니다.[12] 진실된 태도란 성실함에 있다.[13] 원래 동아시아에는 서양처럼 실체로서 악(Evil)이나 악마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惡)의 반대는 노자대학에 나오듯 미(美). 사실 善도 惡의 반대로 쓰이긴 했는데, 善은 착하다는 의미보다 좋다는 의미가 훨씬 강했다. 다다익선이란 말의 뉘앙스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한자 (魔)라는 글자도 불교마라(mara, 악마)를 음역하기 위해 후대에 만들어낸 글자다.[14] 사실 '조악(粗惡)하다'의 뜻으로 해석하면 그만이므로, 성악설이라는 명칭이 자체부터 틀린 말은 아니다. 괜히 잘난 척 한다고 주변에 "이봐, 순자는 '성악'을 말하지 않았어. 그의 주장은 정확히는 '성오설'이다!" 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학계에서 도올 외에는 그냥 다 성악이라 지칭하는 편이다. 그리고 도올도 선진(先秦) 문헌에 있는 '(惡)'자를 죄다 '오'로 해석하지는 않는다. 다만 '오'든, ''악'이든 선진 문헌의 '(惡)'자에 '(善)'과 이원적으로 대립하는 구도의 강력한 윤리형이상학성이 없는 건 맞다.[15] 인위(人爲). '거짓'의 의미가 아니다.[16] 옛날에는 사실상 가정교육이며 독학이며 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위대한 스승을 찾아 그를 모시고 가르침을 받는 것이 결국 '교육 받음'이며 '학문함'이었다. 여기서 이제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을 떠올려 보자. "가르침과 배움은 서로를 키운다!" 순자의 눈에는 이만큼 휘황찬란한 위(僞)의 작용은 없었을 것이다. 무려 제곱의 위(僞)![17] 순자가 보는 성(性)의 범주는 맹자와 달랐다. 맹자는 오늘날 관점으로 본다면 '습성', '품성'으로 분류될 만한 몇몇 특질 또한 '하늘의 의지로 그렇게 설계된 것'으로 간주하여 뭉뚱그려 성(性)으로 명명하였는데, 순자는 이에 반대하여 엄격한 구분을 요청하였다. 본연적인 성(性)은 본연적인 성이고, 인위(人爲)는 인위(人爲)인 것이다.[18] 맹자가 말했다.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은 타고난 능력(良能)이고,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타고난 지능(良知)이다. 두세 살 난 어린 아이는 누구나 어버이를 사랑할 줄 알고, 커서는 윗사람을 공경할 줄 안다. 어버이를 친애하는 것은 인이고,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은 의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인과 의를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진심상15)[19] 사단을 말한다. 감정에는 사단과 칠정이 있어서 이성과 대비된다. 이 분류에는 논란이 있었는데 사단을 이로 볼것인가 기로 볼 것인가에 따른 논쟁으로 조선시대 때 사단칠정론이 생겼으며, 사단은 감정이라는 합의에 이르렀다.[20] 인의왕도론(仁義王道論) 항목에서 언급했듯이, 맹자는 의(義)를 인(仁)과 짝지어 그에 준하는 주덕(主德)으로 격상하고 줄기차게 인의(仁義)라 병칭하였는데, 사실 맹자만 특별히 그런 게 아니고 순자 또한 《순자》에서 이를 즐겨 사용했다. 그러나 순자의 인의(仁義)는 일체의 선험성이 없는, 사회적 차원에서 실현되는 위(僞)의 덕(德)이다.[21] 行一不義殺一無罪而得天下仁者不爲也: 하나의 불의를 행하여 하나의 무죄한 이를 죽이면 천하를 얻는다 하더라도 인자(仁者)는 그리 하지 않는다ㅡ이 대목은 맹자가 '성인聖人들이란 어떤 이들인가?'를 논할 때 했던 말인 「行一不義殺一不辜而得天下皆不爲也: 하나의 불의를 행하여 하나의 무고한 이를 죽이면 천하를 얻는다 하더라도 그들 모두 그리 하지 않는다」와 매우 유사하다. 순자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맹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22] 天. 天에는 크게 1.자연물의 하나로서의 '하늘', 2.인격적 절대적 세계 주재主宰의 신인 '상제', '하느님', 3.그 하느님의 주재물로서의 '자연', '자연물', '자연 원리', 그리고 4.하느님의 주재물이라는 인식이 거세된 오늘날 보통 말하는 것과 같은 순수 '자연', '자연물', '자연 원리의 의미가 있다. 天을 논할 때 고대 중국인이 보통 123에서 머무는 것과 대조되게 순자는 4의 경계도 오락가락(...)한다. 굳이 오락가락이라 표현한 이유는, 현행 <<순자>>에서 보여지는 天을 대하는 태도가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때에는 천인지분 운운 유물론 무신론스럽다가도 어떤 때에는 아아 착한 일을 많이 합시다 하느님이 느그들을 잊지 않으실 거야(...) 하는 등. 이 때문에 <<순자>> 텍스트 곳곳에 대한 후대 가필설, 위작설 등이 심심찮게 대두되며, 학계의 주요한 연구거리이다.[23] 중국 전설상 제1의 성왕(聖王). 유가의 지론에 따르면, 순(舜)에게 제위를 선양하여 성인의 도통을 일으켰다. 단, 전국시대 이래 유가에서는 제1성왕을 황제헌원씨까지 올려 보는 경우가 생기고 훗날 주자학적 도통론에서 이것이 확정되는데, 즉, 공자의 유가가 주나라를 들먹이니 묵자가 하나라 때 우 임금을 끄집어내고 맹자가 그 위의 요순을 얹어다가 다시 반격하고 도가에서 황제로 끝판왕을 보여주고 순자가 고만해 미친놈들아!를 시전했으나 묻히고(...) 아예 나중엔 제대로 득세한 유가에서 끝판왕 황제를 지쪽으로 포섭하고 가끔 히든 끝판왕 염제신농씨 태호복희씨까지 끌어다 쓰고 하면서 무슨 역대 프리큐어 설정놀음하듯 성리학 도통론이 성립된 것이다.(...)[24]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으로, 유가의 지론에 따르면,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폭군에 해당한다.[25] 본(本). 고대 중국은 농본주의 사회였기에 이는 본업, 즉 '농사일'을 의미하기도 했다.[26] 맹자-주자로 이어지는 유학에서 천(天)은 그냥 물리적 의미로서 하늘의 의미가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절대적 존재, 절대신(神이라는 한자와는 의미 차이가 있으나, 현대 국어의 어감을 고려해 신(神)이라고 표현함)의 의미이다. 하느님과도 의미가 통한다. 물론 기독교에서 의미하는 하느님과는 개념이 다르다.[27] 관련 서적으로 아이작 뉴턴의 물리학 서적, 프린키피아가 대표적이다.[다른의견] 물론 유럽사상과는 번역어등의 문제로 느껴지는게 유사하더라도 사고 체계와 시대적 맥락등이 엄밀히 다르므로 정말 유사한 면이 있는지는 철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당장 유럽 기계론적 세계관은 이성(Reason)에 기초한 탐구의 영역이기에, 순자가 파악한 천(天)과는 차이가 있으며 연관짓기 어렵다.[29] 여기서 선왕(先王)이란 단순히 선대의 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선대의 문화 영웅(Cultural Hero)들, 즉 성왕(聖王)들을 지칭하는 것이다.[30] 유자(儒者)의 효험(效驗).[31] 고대 중국 전설상의 명궁.[32] 하(夏) 왕조의 시조.[33] 類.[34] 惡은 악하다는 뜻도 있지만 미워하다, 혐오하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이를 어떻게 풀이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견이 있다.[35] 인위(人僞). 또는 인위의 결과. 《순자》〈정명(正名)〉을 보면 , 위(僞)는 상기의 두 의미를 갖는다 명시되어 있다.[36] 음양오행의 그 오행이 아니라, 자사의 저서 《오행》에서 이르는 다섯 가지의 실천철학적 덕목,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성(聖)을 가리킨다. 훗날 동중서가 제시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행과는 다르나, 자사의 《오행》이 전국시대 이후 망실되었다가 최근에야 재발견된 터라, 현재까지 동중서의 짝퉁 오행(...)이 더 유명하고, 널리 일컬어지는 실정.[37] 자사의 오행설은 그 사상적 후계인 맹자에 의해 적극 활용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덕의 단초가 인간 심성에 내재해 있다는 사단설(四端說). 참고로, 여기에 성聖이 끼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자사의 오행설 내에서도 성의 취급이 인의예지와 달랐기 때문이다. 인의예지에 대해서는 "○形於內, 謂之德之行. 不形於內, 謂之行: ○이(가) 내면에 형성되어 그 의지로써 행동이 그것에서 비롯되었다면, 그것은 내재된 ○으로(로)부터의 도덕적 행동, 덕행이다. 그러나 내면의 ○의 의지에서 비롯되지 않은 행동이라면, 그것이 ○에 의한 덕행의 효과를 지닌다 하더라도 실상 아무런 도덕적 의미가 없는 단순 물리적 행동일 뿐이다." 하였으나, 성에 대해서 만큼은 "聖形於內, 謂之德之行. 不形於內, 謂之德之行: 성이 내면에서 형성되어 그 의지로써 행동이 그것에서 비롯되었다면, 그것은 성으로부터의 도덕적 행동, 덕행이다. 내적 의지에서 비롯되지 않은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것 역시 성에 의한 덕행이다." 하였다.이것은 성의 덕행이란 의식적 덕행을 넘어선 덕아일체(德我一體)의 경지에서의 덕행임을 설명하는 것으로, 《논어》에 기술된 바, '공자는 70세가 되자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가 바로 그 예이다. 이처럼, 성의 경지는 성인이 되지 않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위상이므로, 맹자 또한 이에 이르기까지의 강력한 인위성과 후천성을 의식하여 성만은 단초라도 있는 인의예지와는 달리, 오로지 부단한 노력에 달린 것이라 여긴 것이다. 맹자는 성에 다다름을 활쏘기에 비유하여 "화살이 과녁에 닿음은 너의 힘이다" 하였다.[38] 자궁(子弓)으로 표기된 판본도 있다. 자궁은 곧 염옹(冉雍)으로, 공자가 평하기를 "옹(雍)은 남면(南面)할 만하다."라 하였다. 남면은 군주가 남쪽을 바라보고 앉는 것ㅡ이는 여러 별들이 절기에 따라 자리를 바꾸어 회전하는 와중에 그 원심점이 되어 홀로 제자리를 지키며 남쪽을 비추는 북극성의 특성에서 착안해, 지존자(至尊者)의 상징성을 취한 것이다.ㅡ을 의미한다. 순자는 "성인(聖人)이나 권세는 얻지 못한 이들이 공자와 자궁이다" 하여 그에 대한 대단한 존경을 나타낸 바 있다.[39] 일례로, "人之性惡, 其善者僞也。" 대목을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 그것이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다"라고 번역해 놓았다. 고교 윤리와 사상 수업만 제대로 들었어도 여기서 '위(僞)'가 인(人)과 爲(위)의 합체자임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올바른 번역은 "사람의 성性은 악하다. 그것이 선하게 됨은 인위人爲의 결과이다." 정도가 된다.[40] 일례로, 仁(인)을 곳곳에 '어짐(!)'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올바른 철자는 '어짊'이다. 몹시 당황스러운 게, 몇몇 부분에는 어짊이라고 제대로 써 놨다(...)[41] 이 점은 김학주 교수 본인도 인정하고 있는 듯.[42] 후한서에 그의 조부 순숙이 순자의 11세손이라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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