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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b0e64><colcolor=#ffd400> 조선 소현세자의 세자빈 민회빈 강씨 | 愍懷嬪 姜氏 | |||
| |||
영회원 전경 | |||
출생 | 1611년 4월 18일(음력 3월 6일) | ||
조선 한성부 강석기 사저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대) | |||
사망 | 1646년 4월 30일(음력 3월 15일) (향년 35세) | ||
조선 한성부 강씨 사저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대) | |||
능묘 | 민회묘(愍懷墓) → 영회원(永懷園)[1] | ||
재위기간 | 조선 왕세자빈 | ||
1627년 12월 31일 ~ 1645년 5월 11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1b0e64><colcolor=#ffd400> 본관 | 금천 강씨 | |
부모 | 부친 - 강석기(姜碩期, 1580 ~ 1643) 모친 - 신예옥(申禮玉, ? ~ 1647) | ||
형제자매 | 5남 3녀 중 차녀 | ||
배우자 | 소현세자 | ||
자녀 | 슬하 4남 5녀 | ||
시호 | 민회빈(愍懷嬪) | ||
별호 | 강빈(姜嬪) |
1. 개요
조선 소현세자의 부인이다. 묘소는 '영회원(永懷園)'이라는 이름으로 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해 있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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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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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민회빈 강씨/생애#|]][[민회빈 강씨/생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3. 평가
강빈이 여러 모로 차기 국모로서 위엄과 강단을 갖춘 인물이었음은 분명하다. 병자호란 때는 검찰사 김경징이 왕실을 제대로 호위하지 못하자 몸소 꾸짖었고, 심양에서의 볼모 생활로 스트레스에 치여사는 세자를 잘 내조하고 심양관의 안살림을 꾸려간 점은 차기 국모로서 부끄럼 없이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이다.다만 왕실 여성의 몸으로 경제 활동에 참여했다는 점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아들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내 노비 관리법, 제초하고 퇴비 주는 법 등 농사에 관한 각종 조언을 늘어놓은 이황이나 이황이 남겨둔 막대한 재산 관리하느라 과거를 못 본 이황 맏아들의 사례에서 엿보이듯 조선 사대부들은 재산 증식에 열성적이었고 이는 여인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부부유별이 주를 이루던 조선 시대에서도 남편과 아내의 재산은 철저하게 나누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사족 여인들 역시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임노동자 고용, 품삯지급, 생산품 판매, 돈놀이, 이 모든 걸 꾸려가기 위한 회계업무까지 폭넓은 경제적 능력을 갖춰야 했다.
무엇보다 어디까지가 강빈의 역할이고, 어디까지가 소현세자의 역할이었는지 구분이 모호하다. 위에서 언급한 사족 여인들의 경제 활동은 주로 길쌈이나 염색 같이 집안에서 여인들이 하는 일이었고 농장처럼 밖에서 하는 농업 경영은 일반적으로 남편의 일이었다. 그리고 강빈이 직접 농장 운영을 주도했다는 특별한 기록은 없다. 강빈이 경영을 주도했다면 꽤나 파격적인 일이라 오히려 기록에 남았을 텐데 세자의 근신들은 농사 짓고 자급자족이 가능해지면 아예 조선으로 돌려보내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했지 드라마 등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세자빈의 파격적 행보에 기함하진 않았다. 조선시대 일반적인 경제 활동 양상을 고려하면 세자가 직접 관여했을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강빈에 대해 고찰한 논문에서도 지적하는 사안인데 강빈이 심양관의 대청 무역 활동에 개입했다는 기록도 딱히 없다. 강화도에서 포로로 잡혀 청의 중신 피파이(皮牌)의 첩이 된 회은군 이덕인의 딸이 심양관을 드나들었다는 기록과 강빈 사사 이후 역관 서상현과 이신검이 강빈의 심부름으로 해초를 사오고, 금부처 등 재물을 실어 봉황성에 갔던 일로 심문받고 처형당한 사례를 바탕으로 간접적으로 청 황실, 청 귀족 여인들과 교류하고 무역을 했을 가능성을 상상했던 게 어느 순간 정설이 되고 있다.[2]
이석철이 왕이 되었으면 강빈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했을 거란 일각의 주장 역시 근거가 없다. 종법상 수렴청정은 대비의 몫이지 왕비가 된 적도 없는 며느리의 몫이 아니다. 그 인수대비조차 드라마와 달리 실제론 정치에 크게 관여한 적이 없는데 하물며 강빈이? 인조가 이석철에에 보위를 물려줬으면 나이 어린 장렬왕후가 수렴하게 되고 조선 내정은 훨씬 혼란스러워졌을 가능성이 높다.
장렬왕후는 너무 어려서 한낱 후궁에 불과한 소용 조씨도 맘대로 못하는 처지였고 당시 조선은 인조 말기에 내정 수습이 마무리 되지 못한 상태로 청의 재침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조 말기부터 일본 핑계로 군사력 재건을 시도하며 청과 협상을 시도하는데 청은 이걸 곱게 보지 않아 3번째 침공 가능성을 재단했다. 효종은 친청파 김자점을 처단하고 이경석 등 외교전문가들을 파견해 위기를 진화한 뒤 대동법 등 인조대 미완된 제도 개혁을 이어가는데 이게 12살짜리 어린 왕과 26세 왕대비 데리고 가능한 일이었을지는 알 수 없다.
"강씨의 친정이 고려 구국 영웅 강감찬의 직계 후손이었기 때문에 강감찬의 묘가 1960년대에 이를 때까지 위치가 묘연해졌다"는 주장이 있는데, 진주 강씨 인헌공파 문중에서 날조한 이야기다. 조선은 고려를 그대로 인수한 왕조로서, 강감찬이 실제 역사상의 활약을 하지 못하여 고려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거나 아예 멸망했다면 훗날의 조선이 있을지는 지극히 불확실하다는 것을 조선 당시의 지배층 또한 잘 알고 있었음이 분명한데, '고려의 충신이니까, 고려를 무너뜨린 우리 조선에게는 역적이다'라는 억지 논리는, 내부 정치 문제도 아니고, 외적을 막은 구국영웅에게는 절대로 성립할 수가 없다.
대한제국 멸망 직전인 순종대 승정원일기에 "강감찬의 묘를 보수하고 제사를 지내게 하라"는 기록이 멀쩡히 등장한다.순종 3년 1월 6일 승정원일기 묘의 위치를 아니까 정비하고 제사 지낼 것 아닌가? 국역만 보면 찾아 보수하라는 부분을 '실전된 무덤을 수소문해 정비하라'는 의미로 착각할 수 있는데, 원문을 보면 방문(訪問)으로, 지방관이 묘를 찾아보고 주변을 정비하고 제사를 지내주라는 지시다.
4. 여담
- 보통 '민회빈'보다 당대 호칭인 '강빈(姜嬪)'으로 불리는데, 이는 그녀가 폐위된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신원되어 시호를 받았기 때문이며 시호를 받은 뒤에도 이게 통칭으로 굳어졌다. 폐세자빈 중에서 '성+빈'으로 된 명칭이 쓰인 사람들 중에서 이 명칭이 대한민국에서도 통칭으로 쓰이는 건 민회빈 뿐으로 과부가 된 세자빈이었는데 봉호를 받기 전에 폐위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남편은 폐세자가 아닌데 폐세자빈이 된 세자빈은 민회빈 외에 3명(현빈 유씨, 휘빈 김씨, 순빈 봉씨)이 더 있지만, 이들은 모두 세종 때 이전으로 세자빈이 되자마자 봉호를 받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봉호(封號)'로 불린다. 다만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될 때 광해군의 아들 폐세자 이지와 세자빈 박씨도 같이 폐위당했다. 안타깝게도 박씨는 유일하게 세자빈 시절에 봉호도 못 받아서 폐빈 박씨라고만 불린다.
- 동생인 강문두가 신익성의 딸과 결혼하는데, 강문두의 장모가 다름 아닌 선조와 인빈 김씨의 딸 정숙옹주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정숙옹주의 동복오빠가 정원군(인조의 아버지)이다. 즉, 인조와 신익성의 딸은 고종(외)사촌이며 이미 며느리 이전에 민회빈 강씨와는 사돈간이었던 것. 소현세자에게 강문두는 당고모부(종고모부)인 동시에 처남인 셈.
5. 대중매체에서
- 2007년 역사 다큐멘터리 <한국사 전>에서는 이선영 아나운서가 연기했다.
- 2013년 JTBC 드라마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에서는 배우 송선미가 연기했다. 온화하면서 따뜻하고[3] 매우 진취적이고 강인한 여성상[4]을 보여주는데 작중에서 보여준 행각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역적 소리 들으며 사약 정도가 아닌 거열형 받는게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막 나가는 등 실제 역사와는 다른 행동도 보여주었다. 주인공 소용 조씨와 첫 만남부터 시아버지가 총애하는 후궁인 조소용을 천출이라고 경멸하거나 조씨 소생 숭선군을 "천기는 면하게 해주겠다"고 조롱하는 등[5] 숭선군을 왕족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무개념 발언에다 중간부터는 세자빈의 외당숙인 송준길이 염려할 정도로 편집증적인 정신병 환자로 보일 정도로 상당히 과격하다. 남편 소현세자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한밤 중에 사람들을 떼로 끌어모아 궁궐로 달려가는 장면이라든가, 세자빈의 엄마라는 작자는 세자로 임명된 봉림대군에게 대놓고 "세자 자리를 도둑질했다"고 모욕을 주는 등 역모로 능지처참당해도 할 말 없는 행동을 보인다.[6] 하지만 역사적 왜곡과는 별개로 송선미의 열연으로 인해 인물이 크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의 소현세자를 다른 작품들에서 존재감 있는 역할로 등장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 유시연의 역사 소설 <공녀, 난아>에서는 주요한 조연으로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몸종인 주인공 난아와 친하게 지냈으나 얄궂은 운명으로 주인공은 공녀가 되어 고생하다가 강씨와 다시 만나는가 했지만 결국 역사대로 강씨와 두 아들은 죽고 살아남은 강씨의 3남인 석견을 주인공이 돌보는 결말을 맺는다.
6. 참고 문서
[1] 순회묘로 명명된 순회세자 무덤의 전례에 따라 소현묘로 명명되었다가 1870년(고종 7년)에 순회묘, 의소세손의 의소묘와 함께 원(園)으로 개칭되었다. 무조건 세자무덤=원(園)이 아니고 원이 아닌 묘로 명명했으니 격을 낮췄다고 하면 안 된다. 세자의 무덤을 원으로 일괄 명명하기 시작한건 조선 망하기 직전인 고종 때의 일이다. 그전까진 정조가 비명에 죽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은묘에서 영우원(永祐園), 현륭원(顯隆園)으로 개칭한 사례가 전부로 그 외엔 묘라고 부르다 의경세자, 효장세자, 효명세자처럼 추존되면 '릉'으로 올리는 식이었다. 사도세자의 경우도 그가 조선사에 유일무이한 부왕에게 처분당한 세자라서 큰아버지 진종(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된 정조가 선왕과의 의리를 내세우는 신하들을 무시하고 추존하는게 불가능해 궁여지책으로 '원'으로라도 개칭한 것이지 단순한 병사(病死)였다면 바로 왕릉으로 격상되었을 것이다.[2] 김남윤, 2013, 소현세자빈 강씨의 심양관 생활, 역사연구No.24, 역사학연구소.[3] 소용 조씨의 계략으로 궁에서 쫓겨나 가마를 타고 귀양을 가던 중 거리로 나온 신하들과 백성들의 대성통곡을 듣자 가마에서 직접 내려 그들의 손을 어루만져주었다.[4] 해산한지 얼마 안 되어 궁녀들과 함께 밭일을 하다가도 "홍승주의 투항으로 임경업이 명나라와 내통했음이 알려져 청나라에서 다짜고짜 소현세자를 잡아가 하옥시켰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밭일하던 작업복 차림으로 말을 타고 가서 따져묻는 패기를 보여준다. 도르곤조차 질려서 어영부영 변명으로 일관할 정도.[5] 조선에 귀환하면서 소현세자와 같이 "신분에 따른 차별을 없애겠다"고 약속한 것과 모순된 행위로, 아마 조소용을 단순한 악녀가 아닌 입체성을 가진 인물로 만들고자 한 복선으로 보인다.[6] 하지만 세 아들에 관해서는 진한 모성애와 더불어, 평소의 당찬 성격과 달리 한없이 약한 모습도 보인다.[7] 2012년 MBC 드라마 <마의>에서는 소용 조씨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