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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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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사극
방송 시간 토 · 일 오후 8:45 ~ 오후 11:05
방송 기간 2013년 3월 23일 ~ 2013년 9월 8일
방송 횟수 50부작
제작 드라마하우스 스튜디오
채널 파일:JTBC 로고.svg


<colbgcolor=#231411,#010101><colcolor=#F7F5E6,#DDDDDD> 연출 노종찬
극본 정하연
출연 김현주, 이덕화, 송선미, 정성모, 정성운, 김주영, 고원희, 전태수
시청 등급 파일:JTBC_15세.png 15세 이상 시청가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시청률3. 등장인물
3.1. 주요 인물3.2. 왕실
3.2.1. 내관 및 상궁
3.3. 조정3.4. 청나라3.5. 그 외 인물
3.5.1. 아역
4. 특징
4.1. 선정성 논란4.2. 실제 역사와 다른 점4.3. 특이점
5. 스태프 인명사고6. 기타

[clearfix]

1. 개요

JTBC에서 방영된 전 대하사극. 인수대비정하연 작가와 노종찬 PD가 참여하며, 총 50부작으로 예정되어있다. 2013년 3월 16일 첫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WBC 중계로 인해서인지는 몰라도 3월 23일에야 첫 방송이 이루어졌고, 9월 8일에 50회를 기점으로 종영되었다. 해설 나레이션은 이완호.

JTBC에서는 '자신의 야욕을 이루기 위해 인조를 움직여 소현세자를 독살시키고 세자빈 민회빈 강씨를 음해한 조선 최고의 팜므파탈 소용 조씨와 사랑과 권력을 쟁취하기위해 스스로 악마가 되어간 왕의 여인들의 처절한 암투를 다룬 이야기'로 소개하고 있다. 관련기사 1 2

재미있는 점은 이 드라마가 JTBC의 2013년 기획에서 소현세자 탄생 400주년 기념작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위키백과에서도 소현세자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다룬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1]

소현세자에 동정적인 만큼 인조에 대해서도 평가가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공식 홈페이지에서 인조는 시대가 만든 비운의 군주이자 군주라기보다는 오직 자신의 애락만을 위해서 산 인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애시당초 본작에서 주인공인 소용 조씨도 소개를 보면 그리 긍정적인 인물상이 아니다.

드라마의 성격 자체는 작가의 작품 중 <왕과 비>나 <명성황후>보다는 복합적인 성격의 팜므 파탈을 그려낸 <장녹수>에 더 가까워 보인다. <장녹수>도 양반의 서녀로 태어나 설움을 겪은 장녹수가 신분상승의 욕망을 채우려 질주하다가 파멸한다는 전개를 보인다는 데서 서로 비슷한 점이 있다. 혹은 여자들끼리 우르르 기싸움을 벌였던 <욕망의 불꽃>의 시대적 배경만 조선시대로 바꾼 것처럼 유사하다.

2. 시청률

일단 첫 방송 시청률은 3.058%로 괜찮은 출발을 보였다. 이후 2화에서는 시청률이 하락했지만, 이후 계속 상승하여 10화에서는 수도권 기준으로 4%를 돌파했다. 방송사에서도 무자식 상팔자와 거의 비슷한 시청률 곡선이라면서 전작 못지 않은 흥행을 기대하는 듯 하다. 이후로도 시청률이 4% 안팎에서 놀면서 무자식 상팔자급의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시청률 곡선을 그렸다.[2] 사실 이 시기 JTBC는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4%는 잘 나온 셈이다.

3. 등장인물

3.1. 주요 인물

3.2. 왕실

3.2.1. 내관 및 상궁

3.3. 조정

3.4. 청나라

3.5. 그 외 인물

3.5.1. 아역

4. 특징

4.1. 선정성 논란

1회부터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1회에서는 도성을 약탈한 청나라 군사가 젊은 여자의 옷을 벗긴 채 겁탈하는 장면이 나왔고 김자점이 홀딱 벗은 기생과 동침하는 장면이 나왔으며 강빈이 아들인 석철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에서 가슴을 불필요하게 클로즈업하는 장면도 나왔다.[27][28] 그 다음회에서는 인조가 자신의 후궁인 승은 상궁 이씨를 껴안고 애무하는 모습도 나왔다. 인조 역을 맡은 배우 이덕화가 이후 김현주와의 정사씬도 여러개 있다면서 기대해달라고 할 정도.

결국 잔혹성, 선정성, 폭력성의 사유로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경고처분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이후로는 선정적인 장면은 아예 나오지 않는 수준에 가깝지만 다른 면에선 그리 달라진 게 없다. 얌전모와 이형익이 바람을 피는 장면에서 이형익은 팬티차림으로 자주 등장하고 소용 조씨가 이상궁의 나인을 고문해 때려죽이거나 대전내관이 하급내관을 때려죽일때는 몽둥이로 수차례 내려치고 피튀기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여지없이 모두 보여준다.

4.2. 실제 역사와 다른 점

1회 처음에 나오는 것처럼 삼전도에서 항복할 때 인조가 곤룡포를 입고 나온 것은 창작물의 반영 오류이다. 실제로는 영화 남한산성에 묘사된 것처럼 일반 선비가 쓰는 갓에 사대관계에 있어 신하의 예를 갖춘 남색 융복을 입은 평복 복장으로 삼전도에 갔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삼전도의 굴욕 장면에는 자잘한 오류가 있는데 가령 김상헌은 실제 역사에선 인조의 항복 자리에는 참석하지도 않았으며, 삼학사 중 윤집과 오달제는 하루 먼저 남한산성을 나와서 이미 청군에 붙잡혀 있었다. 김상헌이 '필생즉사 필사즉생'을 인용하면서 '충무공'이라고 이순신을 지칭하는 것도 오류. 충무공이라는 시호는 삼전도의 굴욕 후인 1643년에 붙여진 시호이다. 물론 삼전도의 굴욕이 주된 테마라기보다는 오프닝에 더 가까운 장면이라서 당시 조선의 비참함을 강조하기 위한 연출로 볼 수도 있다. 또 인조가 삼궤구고두의 예[29]를 할때 이마가 깨져 피가 나오는데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30] 그 후에도 인조가 익선관을 거의 쓰지 않고 상투관만 쓰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제작진이 인조가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인간'임을 보여주기 위한 극적 장치라고 해명했다.

궁중여인들의 가체가 간략화된 것은 영조 시대 이후인데, 이 드라마는 인조 시기를 다루고 있는데도 가체가 없다. 이것은 비단 이 드라마만의 현상은 아니며 영화 <광해>를 비롯해 최근 사극의 트렌드가 되어 가는듯, 가체라는게 사실 무겁기도 해서 여성 연기자들에게 부담이 되는것은 사실이고 가체를 오래 쓴 배우들이 목의 통증은 물론 심하게는 목디스크에 걸린 사례도 있을 정도고 사극 제작자들도 틀린 건 알고 있지만 연기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지라 사실과 위배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쓰지 않는 경우가 있을 정도라 1,2, 3, 4,5라 마냥 재현 미비성만을 문제 삼긴 힘들다. 물론 유치한 스토리 구조 등 최근 사극의 전반적인 질 저하와 맞물려 있다는 의견도 있다.[31]. 다만 다른 사극들은 더 암전 수준으로 재현이 개판이라 오히려 이쪽은 양반 수준이다.

명칭이나 호칭에 오류가 꽤 있는 편. 청으로 끌려간 세자를 소현세자라고 부른다든가, 파발병이 청 황제를 청태종이라고 부른다든가, 세자의 장남인 원손을 '원손 저하'라고 부른다든가, 세자의 아들들을 대군으로 부른다던가[32].. 소현세자나 태종은 시호나 묘호로 저 사람들이 죽은 뒤에 붙은 명칭이다. 저 둘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당대의 사람들이 사용했을 리가 없는 명칭이다. 그리고 '저하'는 원칙적으로 세자에게만 사용하는 존칭이라 아직 세손이 되지 못한 원손에게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

세자에게는 3명의 딸이 있었는데[33] 이들은 아예 출연 하지 않는다.

2013년 8월에는 전주이씨 숭선군파 종친회에서 드라마 내용에 대해 역사왜곡이라며 소송을 걸었고 결국은 왜곡은 아니나 방송을 통해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이는 드라마에서 숭선군이 소용 조씨인조의 친아들이 아니라 평민의 아들과 바꿔치기한 것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소용 조씨의 딸 효명옹주에 대해서도 인조의 딸이 아닌, 조소용이 입궁 전에 정을 통한 가공의 인물 남혁의 딸로 설정되어 있다.

위의 내용 외에도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묘사한 사건이 몇 개 된다. 실록에 의하면 소현세자가 죽고 나서 1달 정도 뒤에 봉림대군이 심양에서의 볼모 생활을 청산하고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영구귀국을 한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소현세자가 귀국한지 얼마 안 되어 봉림대군이 귀국하고, 봉림대군은 본의든 아니든 소현세자의 죽음을 방관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민회빈 강씨가 죽는 시기와 강빈과 소현세자의 세 아들들이 제주도로 유배로 간 시기를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기록에선 전복구이 사건 이후 강빈이 역모죄로 사약을 받고, 그 뒤에 세 아들들이 유배를 갔지만 이 드라마에선 전복에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혐의가 제시되고서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세 아들들이 유배를 가고, 원손이 사망한 뒤에, 강빈이 청나라에게 보내려던 서찰이 발견되어 역모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사약을 받는다.

소용 조씨나 그녀의 주변 인물에 대한 묘사에서 역사와 다른 점은, 드라마에선 한옥과 이형익이 조기 대감에게 살해당했는데, 기록에 따르면 한옥은 조소용이 사망할 때 연이어서 사사되었으며, 이형익은 현종 때 백성들에 의해 맞아 죽었다. 그리고 기록에 따르면 효종 2년에 김자점은 아들 김식이 꾸민 역모죄에 연관되어 거열형에 처해졌고, 소용 조씨는 자의대비와 대비의 조카[34]를 저주했다는 이유로 자결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드라마상에선 김자점의 역모가 인조가 죽기 전에 발각되어 거열형에 처해지고, 소용 조씨는 후에 대비를 저주한 죄로 폐서인되어 궁 밖으로 쫓겨난 뒤에 백성들에게 돌 맞아 죽었다. 소용 조씨의 차남 낙선군은 아예 극중에서 태어났다는 언급도 없다[35].

소용 조씨와 대립하던 상궁 이씨의 나인인 애향이 추국을 받던 중에 갑툭튀한 소용 조씨에게 맞아죽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왕명으로 시행된 추국 장소에는 관계자 이외에는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만큼 소용 조씨가 추국 장소에 들어갈수도 없을 뿐더러 추국 받는 죄인을 멋대로 때려죽이는건 그야말로 사사감이다. 본시 애향은 1643년 소용 조씨를 저주한 죄로 군기시에서 정식으로 거열형이 집행되어 죽었다.

김자점이 죽을 때 심기원이 죽었을 때처럼 저주를 받아 똑같이 사지절단을 당해 죽는다. 애초에 심기원이든 김자점이든 사지절단으로 죽었다는 것 자체가 야사인 청성잡기에 나오는 에피소드니 그것을 반영했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인데, 문제는 김자점이 죽을 때 효종심기원의 한을 풀어주라고 했다는 것. 이게 왜 문제냐면 심기원은 조선 멸망까지 복권되지 못한 역적으로 남았고, 당연히 효종 때도 역적놈이라고 신나게 까인 인물이다. 국왕이 대놓고 역적놈의 한을 풀어주라고 하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마지막회에서 대신들이 효종에게 왕위에 오르라는 의지를 내리고 대비전으로 옮겨가라고 장렬왕후를 회유할때 부원군 조창원도 등장하는데, 실제 역사에서 조창원은 인조 생전인 1646년에 사망했다.
그러므로 효종이 왕이 되고 장렬왕후가 왕대비가 되는 1649년에는 이미 고인이었다.

4.3. 특이점

보통 장희빈 드라마에서 조연격으로 '희빈 장씨의 뒤를 밀어주는 대왕대비'로서만 등장한 인물이었던 장렬왕후 조씨가 여기서는 일국의 중전으로서 소용 조씨에 맞서는 '주연' 중 하나라는 점도 특이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과거 장희빈 역을 맡았던 정선경이, 그 장렬왕후를 괴롭히는 조씨의 어머니로 나와 악행에 일조하는 것도 나름의 배우개그.

또 청나라의 인물들이 죄다 만주어를 쓰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36]

김자점이 복수를 위해서 조기 대감의 서출인 얌전을 자신의 양녀로 입적한 다음 인조의 후궁으로 들이는데, 이미 얌전이 남혁의 아이를 배고 있었다는 설정은 왠지 모르게 사마천사기에 나온 여불위조희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여불위=김자점, 얌전=조희, 인조-영자초로 대입해보면 어느 정도 아귀가 맞아떨어지기는 한데, 얌전이 낳은 남혁의 아이는 딸이라 좀 다르다.

작가가 중국드라마 후궁견환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 인터뷰로 보아, 후궁견환전의 영향도 크다. 후궁견환전에서 주인공 견환이 17황자 윤례의 쌍둥이를 임신한 채 황궁으로 재입궁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아이들을 황제의 아이라 속여 입궁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 이전에는 사향이 "남자를 끌어들이는", "임신에 좋은" 용도로 묘사되었지 누군가를 해하는 용도로 묘사된 적이 없다. 독에 대한 묘사도 그렇다.

전개상 시간을 꽤 건너뛰어야 할 때,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 거의 언급하지 않아 시청자로선 시간 흐름을 잘 알기 어려운 편이다. 소용으로 불린 얌전이 갑자기 귀인으로 불린다든가, 45회 즈음에선 7~10세 정도였던 숭선군이 50회에선 12~15세 정도로 성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든가 등.

작중에서 인조는 익선관을 쓰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많다. 실제 배경적 사실과는 다르긴 한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작진이 인조가 왕의 자격이 없는 인간임을 상징, 부각하기 위한 장치라고 밝힌 바 있다. 비슷한 장치로는 인조가 편전(선정전)에 나가서 정사를 보는 일이 거의 없고 전부 왕의 사적 공간인 대전(희정당)에서 정무를 처리하는 모습도 있다.[37] 이 역시 왕이 왕으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생히 나타내주고 있다.[38] 다만 왕이 평소에 붉은 버선을 신고다니는 부분은 의외로 고증이 잘 되어 있다.

5. 스태프 인명사고

첫 방송 전인 2013년 3월 7일 오전 스태프 2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5월 20일에는 조연출인 신동기 PD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6. 기타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김응용 전 감독이 인터뷰에서 자주 보는 드라마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사극에서 주로 악역 맡기로 유명한 김규철과 김하균이 선역을 맡은 몇 안되는 작품이며 특히 김규철에게는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선역이다.

전태수는 이 작품으로 브라운관 복귀를 했지만 성균관 스캔들 때보다 떨어진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라이징 스타였던 자신의 구설수 이전보다도 인기가 더욱 하락한 것도 있다. 그리고 이 작품 이후로 차기작인 제왕의 딸 수백향 이후 오래전에 앓았던 우울증이 커지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1]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소현세자의 친어머니인 인열왕후와 아내인 민회빈 강씨는 그닥 긍정적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물론 작중 인열왕후에 대한 평가는 그녀에게 잡혀 살았던 남편 인조, 간신 김자점, 성격이 그닥 좋지 못한 내외명부 여인들의 대사로만 언급이 되긴했다. 나중에 그러한 여론을 의식한 며느리인 민회빈 강씨는 정 많고 관대한 인열왕후가 괜히 그랬겠냐고 반박하며 내외명부까지 어린 장렬왕후를 대신하여 휘어잡으려했는데 청주 한씨 집안을 뒷배로 둔 인열왕후 정도의 명문가도 아니면서 나이가 어리다지만 멀쩡한 중전을 대신하여 내외명부를 휘어잡으려는 그녀를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아니꼽게 보았다. 민회빈 강씨의 경우에는 실제 기록에서도 지고지순한 면모만 있지 않다는게 나름 언급되어있는데다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서 부풀려진 측면도 있다.[2] 정하연 작가의 전작 인수대비도 종편 드라마들 중 대박이었지만 시청률은 4%를 한 번도 찍지 못했다. 무자식 상팔자가 괴물이었던 것이지 꽃들의 전쟁이 특별히 떨어진다고 하기는 어려운 셈.[3]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으로 야사에선 '쿵'소리 날때까지 치라고 해서 이마에 피까지 났다는 소문이 있는데, 지금도 역사를 배우면 "인조가 청태종에게 항복하여 이마빡깨졌다"는 소리를 간간히 알 수 있다.[4] 실제 역사에서 인조는 소현세자가 병사한 후 강빈이 어린 왕을 등에 업고 수렴청정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둘째 봉림대군에게 왕위를 승계하고 소현세자 일가는 철저히 정리했다.[5] 고집도 어마무시하게 황소고집으로 나왔다. 한 예로 만주땅의 심양에서 한양으로 환궁할 때 말을 타고 갔는데, 이를 들은 인조가 대노하며 당장 가마를 타고 오라고 전했지만 '원손의 얼굴이 아른거리는데 어찌 지체할 수 있냐'며 시아버지의 말을 거절했다. 궁 앞까지 와서 인조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사가로 가자는 부친의 말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냐며 버틴다. 후에 궁인들이 가마를 가지고 나와 오르라고 청하자 자기는 걸어서 가겠다며 궁으로 들어가버린다. 거기다 소현세자가 감금되자 사람을 모아서 궁으로 쳐들어갈 계획을 기획하는 등 무모한 행동을 일삼는다.[6] 하지만 이런 면모와는 달리 자식 앞에서는 강한듯하지만 약한 모습과 진한 모성애를 보이며 경선군 석철과 감동적인 장면을 많이 연출하고 백성들에겐 한없이 자비롭고 따뜻한 면모를 보여준다.[7] 여담이지만, 해당 배우는 이로부터 2년 뒤에 방영한 MBC의 <화정>에서는 청태종 역으로 등장하였다.[8] 남혁이 얌전의 시신을 보고 오열하는 장면이 이 드라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면이다.[9] 이는 귀국 직후 계모인 장렬왕후와의 대화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나는데 친모 인열왕후가 너무 엄격하게 교육시켜서 오히려 자애로운 계모 장렬왕후가 반갑다고 했다. 언뜻 보면 장렬왕후의 인품을 칭찬하는 의도 정도로만 들리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친모 인열왕후 생전부터 권력욕이 있어서 이를 눈치챈 인열왕후가 친아들임에도 대군인 본인에게 더욱 엄격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10] 출처[11] 훗날 인조[12] 소현세자의 부인인 강빈과 그의 아들인 원손 경선군 등.[13] 장렬왕후 조씨만 해도 원래는 강빈쪽에 붙었으나 소현세자가 죽고난 후 봉림대군쪽에 붙는다. 정확히 말해 소현세자와 강빈을 뒷배로 하여 소용 조씨와 대적 하려고 했으나 소현세자의 훙서(薨曙) 이후에 이용 가치가 없어지자 세력 유지를 위해 갈아탄 것.[14]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이유는, 인조가 조소용을 아끼기도 하거니와 조소용의 악행이 알려지면 조선왕실과 인조 얼굴에 먹칠이 되니 발톱 숨긴 호랑이마냥 잠자코 있던 것.[15] 인조의 임종을 지킬 때 그의 죽음을 정말 슬퍼하면서 처절하게 눈물을 흘리는데, 인조를 진심으로 자신의 주군(主君)으로 모시고 충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6] 이때, 드라마에선 인조를 꼬부랑 할아버지에 다 늙은 노인네 양반으로 묘사하곤 했다.[17] 장렬왕후든 조 소용이든[18] 고급진 경단에 소량의 독을 발라 꾸준히 먹게 하였으며 의심 안 받게 소량의 독이 함유된 경단을 소용 조씨 본인도 먹었다.[19]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전각에서 목을 메고 자결한 걸로 위장[20] 소현세자봉림대군의 어머니.[21] 실제 역사에서도 똑같은 제안을 했는데 인조는 당시 제주도로 유배는 갔지만 멀쩡히 살아있던 소현세자의 자식들이 전부 죽었다고 둘러대어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청나라가 소현세자의 자식들을 가지고 자신을 위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22] 바깥에서 아들을 구해 오라거나 남혁과의 소통창구로 이용한다.[23] 더군다나 외손녀까지 버리는데 동조했다.[24] 실제로 송준길은 소현세자가 사망하자 인조에게 상소를 올려 이형익을 처형하고 원손을 보살필 것을 주장했다가 인조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25] 인조실록 기록상 유배 당시 장남 이석철은 12세, 차남 이석린은 8세, 삼남 이석견은 4세였으며, 경선군에 이어 둘째 이석린이 풍토병으로 사망하자 타살을 의심한 인조가 아이들을 돌보던 나인 3명을 궁으로 압송하여 국문하였고 사망 원인을 풍토병이라고 밝힌 나인 옥진만 죽었으며 애영과 이생은 석방되었다. - 인조실록 49권, 인조 26년 12월 23일 계축 1번째 기사[26]아이리스〉에서는 어린 김현준 역을 맡았다.[27] 극중에서는 소현세자강빈이 장남인 석철을 조선에 내버려둔 채로 청나라로 떠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젖먹이였던 석철도 청나라로 같이 떠났다.[28] 이후 2014년 8월에 송선미가 방송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가슴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실제 아기 엄마가 대역을 맡았다고 한다. #[29]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 엎드리고 조아리는 오랑캐방식의 항복의식[30] 이 부분은 특히 군 정훈교육자료에서 지겹게 우려먹히고 있어서 문제가 심각하다.[31] 사실 역사상으로도 가체가 사치의 대상이 되어 문제가 된것도 있지만 무거운 가체 때문에 혼례를 올리던 처녀가 혼절하는 등 여성들에게 부담이 많이 되어 금한 측면도 있었다.[32] 세자의 적자는 정1품 이다.세자의 적녀는 정1품 군주.[33] 이 외에도 어려서 죽은 2명의 딸이 있다.[34] 숭선군의 부인이기도 하다.[35] 후반부에 얌전이 유산했다는 말이 있는데, 후에 다시 임신했다는 언급은 없다.[36] 영화 최종병기 활의 크나큰 영향 때문.[37] 이 부분은 아예 대신들 입으로 언급되기까지 한다.[38] 그런데 이는 사실 반은 고증에 맞다. 창덕궁의 편전인 선정전은 경복궁의 사정전과는 다르게 영역도 좁고 전각도 협소한데다가 창덕궁 특성상 거동이 까다로워 실상 대조전과 이어진 희정당이 주로 편전의 역할을 도맡았다. 선정전은 주로 재실 역할을 겸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