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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08:18:01

고양(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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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문선제 폐제 효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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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제 후주 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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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348d9><colcolor=#ece5b6>
북제 초대 황제
고양 | 高洋
파일:무녕릉.jpg
무녕릉 전경.
출생 529년
북위 병주 태원군 진양현
(現 산시성 타이위안시)
즉위 550년 6월 9일
동위 기주 위군 업현 황궁
(現 허베이성 한단시 업남성)
사망 559년 11월 25일 (향년 30세)
북제 기주 위군 업현 황궁 태극전전
(現 허베이성 한단시 업남성)
능묘 무녕릉(武寧陵)
재위기간 동위의 태원군개귀공
535년 ~ 550년 2월 19일
동위의 제왕
550년 2월 19일 ~ 550년 6월 9일
초대 황제
550년 6월 9일 ~ 559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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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348d9><colcolor=#ece5b6> 본관 발해 고씨
양(洋)
부모 부황 고조 신무제
모후 신무명황후
형제자매 15남 9녀 중 차남
배우자 문선황후
자녀 5남 1녀
아명 후니우(侯尼于)
자진(子進)
작호 태원군개국공(太原郡開國公)
→ 제왕(齊王) → 황제(皇帝)
묘호 위종(威宗) → 현조(顯祖)
시호 문선황제(文宣皇帝)
→ 경열황제(景烈皇帝)
연호 천보(天保, 550년 ~ 5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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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초기2.2. 북제 건국2.3. 정벌에 나서다2.4. 폭군이 되다2.5. 붕어
3. 일화
3.1. 앞일을 내다본 일화3.2. 원씨 몰살에 대한 일화
4. 가계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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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남북조시대 북제(北齊)의 초대 황제.

2. 생애

2.1. 초기

동위의 대승상 고환과 누씨(婁氏)[1]차남으로 529년 고환이 이주영 밑에 있을 때 태어났다.

535년, 고양은 태원공에 봉해졌으나, 대인관계가 무척 서툴렀고 특히 발달장애가 있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유능했던 것으로 보이긴 하는데 한 번은 고환이 그의 아들들을 불러 시험을 쳤다. 고환은 아들들에게 얽킨 실타래를 주어 풀어보라고 했는데 모두가 끙끙거리는 사이 고양이 칼을 들어 실타래를 잘라 버렸다. 이 일화는 고사성어쾌도난마(快刀亂麻)와 난자수참(亂者須斬)의 고사가 되었다. 고환은 아이들이 커가자 팽락(彭樂)에게 모의전투 훈련을 시킨 적도 있었는데 이때 장남 고징을 비록해 모두 두려워했지만 고양만이 침착하게 무리를 거느리고 팽락과 싸우니 팽락이 투구를 벗고 사정을 이야기했으나 고양은 그를 사로잡아서 바쳤다.[2]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어눌하고 우둔했으므로 형 고징이 그를 깔봤다.

547년, 고환이 죽었을 때 고징은 이미 동위 조정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효정제(孝靜帝)가 고징을 죽이려 하자 이를 알아차리고 효정제를 함장당에 연금했다. 549년, 고징은 황제가 되기 위해 심복들을 데리고 회의를 열었는데 회의 도중에 음식을 나르던 시종 난경(蘭京)에게 살해당했다. 고양은 이때 업성에 있었는데 곧바로 군사를 모아 난경과 그 공모자들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할 때까지 고징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처음에 효정제는 고징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이 권력을 되찾으리라 생각했으나, 고양이 호위병 200명을 데리고 왔을 때 그를 다루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는 동안 고양은 고씨 집안의 근거지인 진양(晉陽)으로 가 군대를 재정비했는데 이전에 그를 깔보던 병사들은 그의 조심스럽지만 과감한 결정들을 보고 그를 다시보게 되었다. 그렇게 고양은 고징 사후 혼란을 잠재우고 자연스럽게 동위의 대권을 손에 넣었다.

2.2. 북제 건국

고양은 후경의 대란으로 인해 양나라 내부가 시끄러운 틈을 타서 공격하기 위해 이때 팽락을 국경에 보냈다. 이 전투에서 동위는 회수와 장강 사이의 영토를 얻었다. 550년 고양은 효정제에게 압력을 가했고 2개월 후 그는 제왕(濟王)에 봉해졌다. 여름, 관료들인 고덕정(高德政), 서지재(徐之才), 송경업(宋景業) 등의 제안으로 제위를 얻으려했는데 어머니 누씨가 조금 주저했다. 고양은 업성으로 향했는데 업성과 진양의 중간에 있는 평도(平都)에 도달했을 때였다. 관료들은 고양이 황위에 오르려 예비 교섭을 마쳤다는 것을 모른 체했다. 그래서 고양은 다시 진양으로 돌아갔고, 효정제를 다그쳐 구석을 받은 다음 다시 업성으로 갔다. 이에 효정제는 고양에게 선양함으로써 동위가 멸망하고 북제가 개국되었다. 고양은 치세 초기 제국의 일을 주의 깊게 처리했는데 법전을 교정하고, 국경의 방어진으로부터 선비족이나 한족 가릴 것 없이 정예 병사들을 골랐다. 또 세금을 공평히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고, 부의 정도에 따라 가문들을 9개 등급으로 나누었다. 부자들에게는 세금을 더 거두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덜 거둬들인 것이다. 아버지 고환과 형 고징처럼 수도를 업성과 진양 둘로 나누고, 진양을 효율적인 제2의 수도로 사용했다.

2.3. 정벌에 나서다

아버지 고환처럼 스스로 선비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족 문화와 전통을 낮게 보았고 그것을 따르지 않았다. 고덕정(高德政)과 고융지(高隆之) 등의 관료들은 문선제 고양의 이종사촌이자 강력한 장군이었던 단소(段韶)[3]의 환심을 사고, 단소의 누이었던 단씨(段氏)를 황후로 삼으라고 황제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문선제 고양은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규정에 의거하여 이씨(李氏)[4]를 황후로, 이씨의 아들인 장남 고은(高殷)을 황태자로 삼았다. 대신 단씨는 놓치지 않고 소의로 삼았다. 고양이 북제를 개국하자 서위의 권신 우문태가 대대적인 공격을 실시했고 고양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방어했다. 우문태는 북제군이 잘 정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고환이 죽은 게 아니로구나!"
우문태는 방어를 뚫지 못하며 돌아갔고 오히려 국경의 여러 지역을 북제에게 잃었다. 552년 문선제 고양은 누이의 집을 방문해서 잔치를 벌였는데 누이는 폐위된 효정제의 아내로 효정제는 선양 이후 중산왕으로 강등되어 있었다. 고양은 잔치를 벌이다가 누이가 자리를 뜨자 짐새을 타서 중산왕을 죽여버렸다. 고양은 황제의 예로 수도 업성 북쪽에 중산왕의 장례를 치러주었지만 이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무덤을 파헤쳐 관째로 장수에 던져버렸다.

문선제 고양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요하(遼河) 유역의 동호계 고막해(庫莫奚, 즉 해족) 부족을 공격해 큰 성과를 올렸다. 이때 양나라는 후경이 양원제 소역에게 격파당하고 내적으로 혼란한 상태였다. 북제는 군사를 보내 국경 지방을 침공했는데 후경이 패배한 뒤에도 계속해서 소규모 원정은 이어졌지만 고양이 직접 큰 원정을 실시하지는 않았다. 겨울에 원정이 끝나자 양나라 장군인 왕승변과 진패선에게 광릉(廣陵)과 역양(歷陽)을 돌려주었다.

552년, 겨울 문선제 고양은 대군을 이끌고 진양(晉陽)을 떠나 이석(離石)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장성 건설를 명령했는데 이석 근처 황로령(黃櫨嶺)에서 사평수(社平戍)까지 건설했다. 이 장성은 서위와 돌궐(쾩튀르크)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553년 거란족이 북제의 북방 국경을 공격해오자 고양은 친정을 실시해서 거란족을 물리쳤다. 겨울에 고양은 양나라를 자기의 봉신국으로 만들기를 바라고 548년 북제에 귀순한 양원제 소역의 사촌 소퇴(蕭退)를 황제로 앉히려고 했다. 고양은 곽원건(郭元建)에게 군사를 주어 소퇴를 호위하여 양나라로 가게 했으나, 북제의 군대는 후옥(侯瑱)에게 패배하고 소퇴는 다시 업성으로 돌아왔다.

554년, 유연은 돌궐의 공격을 받아 힘들어하다가, 결국 북제에 도움을 요청했다. 고양은 친정을 나서 돌궐을 공격해서 승리하고 유연의 가한을 욱구려암나진(郁久閭菴羅辰)으로 바꿨다. 그리고 유연의 주민들을 북제의 영토인 마읍(馬邑)으로 이주시켰다. 원로 장수인 곡률금(斛律金)과 동생 고연(高演)을 시켜 산호(山胡) 부족을 공격해 승리한 후 11살 이상의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여자들과 어린이들은 군사들에게 전리품으로 나눠주었다. 노휘예(路暉禮)라는 하위 장교가 자신의 상관인 사령관을 구하지 못해 죽는 일이 발생했는데 문선제 고양은 노휘예의 배를 갈라 장기를 꺼내어 죽였다. 이연사의 《북사》,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는 이 전투 이후로부터 고양이 폭력적이고, 변덕쟁이가 되어버렸다고 평가했다.

유연이 반란을 일으키자 고양은 친정을 나서 욱구려암나진을 쳤다. 이때 장수 하발인은 을 공수했지만 고양이 볼 때 말의 질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벌로 하발인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관직을 박탈했다. 그것도 모자라 그를 탄광으로 보내 일하게 했다. 가을 북위 황족 출신 관료인 원욱(元旭)을 죽인 후 고양은 그가 섭정을 맡기 전에 고융지(高隆之)가 자기를 놀린 것을 기억해냈다. 문선제 고양은 고융지를 팼고, 고융지는 며칠 안 가 죽고 말았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 고융지의 아들들 20명을 체포하고 20명의 사람을 뽑아 그들의 목을 치게 했다. 그리고는 고융지와 그 아들들의 시체를 장수에 던져 버렸다.

위수(魏收)가 문선제 고양의 명을 받아 북위의 역사서인 《위서》(魏書)를 완성했다. 하지만 《위서》는 북위-동위-북제의 정통성에 기반해서 기록한 역사서였기 때문에 북제의 적들을 아주 나쁘게 평가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책을 '예서'(穢書, 더러운 책)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몇몇 관료들은 위수를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선제는 위수를 비난하는 관료들을 오히려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 후 서위가 양나라의 수도 강릉(江陵)을 공격하자 문선제는 아버지 고환의 사촌인 고악(高岳)을 보내 서위의 안주(安州)를 공격하게 하면서 강릉을 포위한 서위군을 압박하게 했다. 하지만 고악이 도착했을 때 이미 강릉은 함락되었고, 서위가 양원제 소역을 죽인 후였다. 555년, 서위에서는 소역의 조카소찰을 새로운 황제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양나라의 정권을 잡고 있었던 왕승변과 진패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소역의 아들인 소방지를 새로운 황제로 삼으려고 건강으로 불렀다. 하지만 문선제는 죽은 원제 소역의 사촌이었던 소연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는 547년, 후경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도와주러 파견되었다가 포로가 되어 살고 있었다.

문선제는 동생 고환(高渙)에게 소연명을 호위하게 하고 양나라로 가게 했다. 더불어 왕승변에게 편지를 보내 소방지는 너무 어리니 소연명을 황제로 삼자고 했다. 왕승변은 처음에 거절했지만 결국 받아들이기로 하고, 대신 소방지를 황태자로 삼아달라고 했다. 문선제는 이를 받아들이고 소연명을 황제로 삼았는데 이를 보증하기 위해 왕승변은 그의 아들 왕현(王顯), 조카 왕세진(王世珍), 왕현의 어머니를 수도 업성으로 보냈다. 소연명은 북제와 평화협정을 맺고 양나라는 북제의 봉신이 되었다. 하지만 4개월 만에 상황이 바뀌었는데 경구(京口)를 지키고 있었던 진패선은 소연명이 황제가 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진패선은 건강을 급습해서 왕승변을 죽이고, 소연명을 몰아낸 다음 소방지를 황제로 삼았다. 진패선은 처음에 북제의 봉신임을 분명히 했는데 문선제는 사마공(司馬恭)을 파견하여 경제 소방지와 양나라 관료들에게 충성 맹세를 시켰다. 하지만 얼마 후 죽은 왕승변의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문선제의 마음이 바뀌었는데 특히 서사휘(徐嗣徽)와 임약(任約) 등이 북제로 귀순해오자 문선제는 이들을 시켜 건강 가까이에 있는 요새인 석두성(石頭城)을 함락시키게 하고 소궤(蕭軌)를 보내 이들을 도와주도록 했다. 하지만 진패선은 서사휘와 임약의 군대를 패배시켰으며 진패선군이 석두성을 포위하자 소궤의 부하였던 유달마(柳達摩)가 진패선에게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진패선은 이 협정에 합의하고 자신의 조카인 진담랑(陳曇朗), 소방지의 조카인 소장(蕭莊), 최고 관료중 한 명인 왕충(王沖)의 아들 왕민(王珉)을 인질로 보냈다. 북제는 물러났지만 유달마는 북제로 돌아간 후 처형당했다.

2.4. 폭군이 되다

양나라 원정 도중에 문선제 고양은 더 난폭해졌다. 그는 후궁 설씨가 사촌인 고악(高岳)과 사통했음을 알고는 질투해 고악에게 자살을 명령했다. 그 후 설씨를 죽이고 목을 벤 후 머리를 숨기고 연회를 열어 다들 술을 마시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그것을 쟁반에 올려놓았고, 설씨의 몸을 조각내어 넓적다리를 가지고 비파를 탔다. 연회에 참석한 이들은 당연히 모두 기겁했는데, 연회가 끝난 후 고양은 조각난 몸을 한데 모아놓고 울면서 아름다운 사람을 다시 얻기 어려워라며 노래를 불렀고, 시신을 실은 수레를 머리를 풀어 헤치고 따라가며 통곡했다. 555년 문선제는 불교도교를 통합해야겠다고 생각해 불교 승려들과 도교 도사를 불러놓고 자기 앞에서 논쟁하도록 했다. 그는 불교가 승리했다고 선언하고 도교를 불교에 통합시켜 버렸으며 도사들은 모두 승려가 되도록 했다. 도사들은 처음에 반발했지만 문선제가 도사 4명을 죽여버리자 나머지는 이에 따랐다. 이후 북제에서 도교는 금지되었다.

556년 문선제는 대규모 원정을 준비해 양나라의 수도 건강 부근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진패선 부대에 막혀 교착 상태에 빠졌고 급기야 식량도 다 떨어졌다. 결국 이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북제군의 많은 장수가 사로잡혔으며 처형당했다. 문선제는 이에 대한 복수로 인질로 잡혀있었던 진담랑을 처형했다. 말년에 그는 술만 마시면 부도덕하고 잔인하며 기이한 행동들을 했는데 이는 알코올 의존증의 영향도 있었다.
이렇게 해괴하고 괴악한 일을 저지르자 신하들은 도저히 그의 비위를 맞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변복하고 길거리에서 노부인에게 물었다.
문선제 고양: 천자는 어떠한가?
노부인: 미치고 어리석은데 어찌 천자 노릇을 하겠습니까?
직후 문선제는 노부인의 목을 베어버렸다.

문선제가 술에 취하는 날이 많자 황태후 누씨가 회초리를 들고 그를 때리면서 나무랐다.
"이와 같은 아비가 이와 같은 아이를 낳는다오!"
그러자 문선제가 말했다.
"즉시 이 늙은 어머니를 오랑캐에게 시집보내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이 충격적인 말을 듣고 누씨가 크게 화가 나 얼굴이 굳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문선제는 웃으면서 땅을 기어 누씨가 앉은 의자까지 기어가서 누태후를 웃게 하기 위해 의자를 뒤엎어 누씨가 다치게 하였다. 문선제는 술이 깬 후 자신이 한 짓을 알게 되자 불을 지르고 거기에 뛰어들어 자살하려고 했다. 이에 누씨가 겨우 그를 잡아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조금 전에 너는 술에 취해있었을 뿐이다."
문선제는 마침내 땅에 무릎을 꿇고 평진왕 고귀언에게 몽둥이를 잡으라고 명령하고 자기의 죄를 말하며 웃옷을 벗고 벌을 받겠다고 한 뒤 고귀언에게 말했다.
"몽둥이질을 해서 피가 나지 않으면 너의 목을 벨 것이다."
누태후가 그를 끌어안자, 문선제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였기에 태후는 종아리 50대를 쳤고, 그는 의관을 바르게 하고 절하면서 큰소리로 울었다. 문선제는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이는 겨우 10일만 유효했고, 다시 술에 빠지게 되었다.
그 뒤에는 문선황후 이씨의 어머니 즉 장모에게 화살을 쏘고 때렸으며, 발해 고씨 황족의 여자들과 강제로 관계를 맺었다. 아버지 고환의 첩인 이주씨(爾朱氏)[5]강간하려고 했으나 이를 거부하자 살해했다. 문선제는 술에 취하면 언제나 사람을 살해했는데 재상으로 있었던 양음(楊愔)은 문선제가 사람을 살해하려고 할 때마다 사형수들을 데리고 왔다. 이때 사형수가 3개월을 죽지 않고 버티면 풀어주었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에도 불구하고, 문선제는 북제 제국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세심히 관리했고, 관료들의 부패도 확 줄였다. 특히 양음은 유능한 재상이었기 때문에 문선제는 그에게 사법적인 모든 권한을 일임했다. 그래서 황제는 미쳐 날뛰었음에도 제국은 효율적으로 돌아갔다.

557년, 동생 고환이 황제가 되리라고 의심하여 고환을 체포하려 하자 고환은 저항했지만 끝내 사로잡혀 수도 업성으로 압송되었다. 이에 동생 고준(高浚)이 문선제의 행동을 비판하자 고준 역시 체포했고, 두 명의 형제는 나란히 지하 감옥에 갇혔다. 558년 겨울 진패선은 소방지를 몰아내고 진나라를 세운 후 소방지를 암살했다. 양나라 장군 왕림은 진패선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양나라의 황족을 찾았는데 북제에 억류되어 있었던 소방지의 조카 소장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558년 봄 북제군은 소장을 왕림에게 보냈는데 왕림은 소장을 황제로 옹립하고, 북제의 봉신이 되어 강하(江夏)를 수도로 삼았다. 559년 문선제는 잦은 원정과 낭비벽으로 국고를 바닥냈다.

아울러 황태자 고은과도 관계가 틀어졌는데 고은이 너무 한족의 풍습에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고은을 폐위할까 생각했는데 한번은 고은에게 사형을 직접 시행하라고 명령했다. 즉, 고은에게 금봉대에서 죄수의 목을 직접 치라고 명령내렸지만 고은은 이를 하지 못했다. 화가 난 문선제가 채찍을 들고 그를 때렸으며 이때부터 태자 고은은 정신 상태가 불안정해졌다. 그 후 문선제는 술만 마시면 황제의 자리를 동생 고연(高演)에게 물려주겠다고 말했는데 이런 말이 황위 계승의 분란을 일으킨다고 생각한 양음과 위수가 말렸다.

문선제는 동생인 고준과 고환이 갇혀있는 감옥에 방문했는데 처음에는 이들을 동정해 풀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동생 고담(高湛)이 그럴 겨를도 없이 창을 들어 그들을 찔러버린 다음 감옥에 불을 질렀으며, 이들의 아내와 첩들을 군사들에게 나눠주었다. 여름, 문선제는 북위의 황족인 원씨들이 반란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의심해서 효정제의 세 아들을 포함해 원씨 일족들 700여 명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학살한 다음 그 시신들을 장수에 버렸다. 이후 장수에서 잡히는 물고기에서 사람의 손톱과 손가락이 나와 주민들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2.5. 붕어

가을,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문선제는 병이 들었고, 문선황후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이니 난 두렵지 않소만 아들 고은이 너무 어려서 그것이 걱정이오.
그래서 고연에게 이렇게 말했다.
황제가 되고 싶다면 네가 황제가 되거라. 하지만 고은을 죽이지는 말라.
직후 문선제가 세상을 떠난 뒤 고은이 황제가 되었으며, 관료들 모두 그의 죽음을 슬퍼했지만 가장 슬퍼하고 진정으로 슬퍼하는 사람은 고은 뿐이었다. 사후 무녕릉(武寧陵)에 안장되었다.

3. 일화

3.1. 앞일을 내다본 일화

청나라의 사학자 조익이 찬술한 《이십이사차기》에는 문선제가 술에 취해 황음무도한 짓을 많이 저질렀으나 그 와중에도 간혹 앞날을 내다보곤 했다면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하루는 자신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해진 문선제가 점쟁이를 불러 점을 쳤다. 점을 친 결과 30이라는 숫자가 나와서
앞으로 30년은 더 사실 것입니다.
라는 점쟁이의 말에
10을 세 번 더하면 30이 아니냐. 나는 그것이 두렵다.
고 말했는데 문선제가 세상을 떠난 날짜가 천보 10년 10월 10일이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신하들이 이름을 '은'(殷)으로 지어 올리자
은나라는 아우가 형의 자리를 이었던 일이 잦았으니 이 아이가 장차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겠구나.
라고 말했고, 기겁한 신하들이 이름을 바꾸자고 주청했지만
이미 정해졌으니 어쩔 수 없다.
며 거부했다. 임종하면서 동생 고연에게
"자리는 빼앗더라도 다만 목숨은 보전시켜 주어라."
라고 말했지만 고연은 형 문선제의 부탁을 저버리고 조카 고은을 폐위시킨 후 살해했다.

제2의 수도인 진양성에는 오랫동안 닫혀 있어 열리지 않는 성문이 있었는데 이걸 본 문선제는
뒷날 성인이 와서 이 문을 열 것이다.
라고 말했다. 나중에 문선제가 말한대로 이 문을 연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위진남북조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중국을 통일한 수문제 양견이었다.

3.2. 원씨 몰살에 대한 일화

문선제 고양은 선양을 받고 나서 북위의 종실 출신인 원소의 수염을 깎고 얼굴에 분칠을 했으며 아녀자의 옷을 입혀 동행하게 하고는
나는 원소를 비빈으로 삼았다.
고 말했다. 사실상 아녀자와 다름없는 취급을 한 것이었다.

문선제 고양은 원씨를 몰살하기 전에 바로 앞의 그 원소에게(...) 광무제한나라를 중흥시킬 수 있었던 경위를 물었는데, 원소는 왕망이 유씨를 모두 주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즉 구 왕조의 오랜 지배기간에 따른 권위는 그 자체로 무형의 힘을 발휘하고, 그런만큼 신 왕조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구 왕족의 방계 중에서[6] 유형의 힘, 특히 군사력을 가졌거나 용병술이 좋은 실력자가 갑툭튀하여 이 무형의 힘을 업고 신 왕조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후한의 복벽이 이루어졌고, 신 왕조 초기인 당시에도 이런 패턴이 반복될 수 있으므로 구 왕족을 물리적으로 발본색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양측이 모두 잘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문선제는 원소가 한 말을 듣고는 결국 상술한 대로 원씨 종실을 몰살시켰다. 의아한 것은 제거 대상인 원씨 구 왕족에 원소 본인 또한 포함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왜 자승자박을 했는지이다.(...) 답정너인 걸 알아서였는지, 어차피 북제 정권의 마수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자포자기했는지, '설마 나까지 죽이겠어? 나만은 그래도 살려주겠지'(...)같은 헛된 기대였는지는 몰라도...

4.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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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373a3c> 1·2권 「신무제기(神武帝紀)」 3권 「문양제기(文襄帝紀)」 4권 「문선제기(文宣帝紀)」
고환 고징 고양
<rowcolor=#373a3c> 5권 「폐제기(廢帝紀)」 6권 「효소제기(孝昭帝紀)」
고은 고연
<rowcolor=#373a3c> 7권 「무성제기(武成帝紀)」 8권 「후주유주기(後主幼主紀)」
고담 고위 · 고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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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9348d9><width=100%><color=#373a3c> 9권 「후궁전(後宮傳)」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10권 「고조11왕전(高祖十一王傳)」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渙) · 고육 · 고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 고흡
11권 「문양6왕전(文襄六王傳)」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12권 「문선4왕·효소6왕·무성12왕·후주5남전(文宣四王孝昭六王武成十二王後主五男傳)」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 고매덕 · 고질전
<rowcolor=#373a3c> 13권 「고침등전(高琛等傳)」 14권 「광평공성등전(廣平公盛等傳)」
고침 · 고악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령산
<rowcolor=#373a3c> 15권 「두태등전(竇泰等傳)」 16권 「단영전(段榮傳)」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반락 단영 ,단소,
<rowcolor=#373a3c> 17권 「곡률금전(斛律金傳)」 18권 「손등등전(孫騰等傳)」
곡률금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19권 「하발윤등전(賀拔允等傳)」
하발윤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유귀 · 임연경 · 막다루대문 · 고시귀 · 사적회랑 · 사적성 · 설고연 · 장보락 · 후막진상
20권 「장경등전(張瓊等傳)」
장경 · 곡률강거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설유의 · 질열평 · 보대한살 · 모용엄
<rowcolor=#373a3c> 21권 「고건등전(高乾等傳)」 22권 「이원충(李元忠等傳)」
고건 · 봉융지 이원충 · 노문위 · 이의심
<rowcolor=#373a3c> 23권 「위난근등전(魏蘭根等傳)」 24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위난근 · 최전 손건 · 진원강 · 두필
<rowcolor=#373a3c> 25권 「장찬등전(張纂等傳)」 26권 「설숙등전(薛琡等傳)」
장찬 · 장량 · 장요 · 조기 · 서원 · 왕준 · 왕굉 설숙 · 경현준 · 최전
<rowcolor=#373a3c> 27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28권 「원탄등전(元坦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위자찬 원탄 · 원빈 · 원효우 · 원휘업 · 원필 · 원소
<rowcolor=#373a3c> 29권 「이혼등전(李渾等傳)」 30권 「최섬등전(崔暹傳)」 31권 「왕흔전(王昕傳)」
이혼 · 이여 · 정술조 최섬 · 고덕정 · 최앙 왕흔
<rowcolor=#373a3c> 32권 「육법화등전(陸法和等傳)」 33권 「소명등전(蕭明等傳)」
육법화 · 왕림 소명 · 소지 · 소퇴 · 소방 · 서지재
<rowcolor=#373a3c> 34권 「양음전(楊愔傳)」 35권 「배양지등전(裴讓之等傳)」
양음 배양지 · 이구 · 장연지 · 육앙 · 왕송년 · 유의
<rowcolor=#373a3c> 36권 「형소전(邢卲傳)」 37권 「위수전(魏收傳)」 38권 「신술등전(辛術等傳)」
형소 위수 신술 · 원문요 · 조언심
<rowcolor=#373a3c> 39권 「최계서등전(崔季舒等傳)」 40권 「울근등전(尉瑾等傳)」
최계서 · 조정 울근 · 풍자종 · 혁련자열 · 당옹 · 백건
41권 「포현등전(暴顯等傳)」
포현 · 피경화 · 선우세영 ·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부복 · 고보녕
<rowcolor=#373a3c> 42권 「양비등전(陽斐等傳)」 43권 「이치렴등전(李稚廉等傳)」
양비 · 노잠 · 최갈 · 노숙무 · 양휴지 · 원율수 이치렴 · 봉술 · 허돈 · 양열 · 원표
44권 「유림전(儒林傳)」
이현 · 조유 · 풍위 · 유화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 · 손영휘 · 마자결 · 석요
45권 「문원전(文苑傳)」
조홍훈 · 이광 · 번손 · 유적 · 순사손 · 안지추 · 애석 · 위도손 · 강간 · 규예 · 주재 · 순중거 · 소각 · 고도자
<rowcolor=#373a3c> 46권 「순리전(循吏傳)」 47권 「혹리전(酷吏傳)」
장화원 · 송세량 · 낭기 · 맹업 · 최백겸 · 소경 · 방약 · 노거병 저진 · 송유도 · 노민 · 필의운
48권 「외척전(外戚傳)」
누예 · 이주문창 · 정중례 · 이조승 · 이조훈 · 원만 · 호장인 · 호장찬
49권 「방기전(房妓傳)」
유오도영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오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마사명
50권 「은행전(恩倖傳)」
곽수 · 화사개 · 목제파 · 고아나굉 · 한봉 · 한보업 · 노륵차 · 제소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9348d9><tablebgcolor=#9348d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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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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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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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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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소군(婁昭君), 신무명황후(神武明皇后)로 추존[2] 자치통감을 완역한 권중달 교수는 고양이 당시 겨우 7살이었음을 근거로 팽락과 격투를 하였다는 것과 지휘하였다는 말은 과장이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3] 단소의 모친 누씨가 고양의 모친 누씨의 언니였다.[4] 이조아(李祖娥), 문선황후(文宣皇后)[5] 이주영아(爾朱英娥), 권신 이주영의 딸[6] 실력자가 직계에 있었다면 애초에 왕조교체를 못 했거나(...), 아니면 이미 제거했거나 둘 중 하나뿐이다.[7] 7대조 고은은 한국 역사학계의 미스터리인 현도군태수를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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