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이 가즈오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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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쓰이 가즈오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 ||||||||
2013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3fb1e5> | 퍼시픽 리그 역대 MVP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벳토 카오루 마이니치 / 외야수 | 야마모토 카즈토 난카이 / 내야수 | 유키 스스무 난카이 / 투수 | 오카모토 이사미 난카이 / 내야수 | 오오시타 히로시 니시테츠 / 외야수 | |
<rowcolor=#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이이다 토쿠지 난카이 / 외야수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내야수 | 이나오 카즈히사 니시테츠 / 투수 | 스기우라 타다시 난카이 / 외야수 | ||
<rowcolor=#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야마우치 카즈히로 마이니치 / 투수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포수 | 장훈 토에이 / 외야수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포수 | 조 스탠카 난카이 / 투수 | |
<rowcolor=#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포수 | 아다치 미츠히로 한큐 / 투수 | 요네다 테츠야 한큐 / 투수 | 나가이케 아츠시 한큐 / 외야수 | ||
<rowcolor=#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키타루 마사아키 롯데 / 투수 | 나가이케 아츠시 한큐 / 외야수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외야수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포수 | 카네다 토메히로 롯데 / 외야수 | |
<rowcolor=#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카토 히데지 한큐 / 내야수 | 야마다 히사시 한큐 / 투수 | 찰리 매뉴얼 킨테츠 / 외야수 | |||
<rowcolor=#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키다 이사무 닛폰햄 / 투수 | 에나츠 유타카 닛폰햄 / 투수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내야수 | 히가시오 오사무 세이부 / 투수 | 부머 웰즈 한큐 / 내야수 | |
<rowcolor=#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내야수 | 이시게 히로미치 세이부 / 내야수 | 히가시오 오사무 세이부 / 투수 | 카도타 히로미츠 난카이 / 외야수 | 랄프 브라이언트 킨테츠 / 외야수 | |
<rowcolor=#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노모 히데오 킨테츠 / 투수 | 궈타이위안 세이부 / 투수 | 이시이 타케히로 세이부 / 투수 | 쿠도 키미야스 세이부 / 투수 | 이치로 오릭스 / 외야수 | |
<rowcolor=#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이치로 오릭스 / 외야수 | 니시구치 후미야 세이부 / 투수 | 마츠이 카즈오 세이부 / 내야수 | 쿠도 키미야스 다이에 / 투수 | ||
<rowcolor=#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마츠나카 노부히코 다이에 / 외야수 | 터피 로즈 킨테츠 / 외야수 | 알렉스 카브레라 세이부 / 내야수 | 조지마 켄지 다이에 / 포수 | 마츠나카 노부히코 다이에 / 외야수 | |
<rowcolor=#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스기우치 토시야 소프트뱅크 / 투수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내야수 | 다르빗슈 유 닛폰햄 / 투수 | 이와쿠마 히사시 라쿠텐 / 투수 | 다르빗슈 유 소프닛폰햄 / 투수 | |
<rowcolor=#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와다 츠요시 소프트뱅크 / 투수 | 우치카와 세이이치 소프트뱅크 / 외야수 | 요시카와 미츠오 닛폰햄 / 투수 | 다나카 마사히로 라쿠텐 / 투수 | 카네코 치히로 오릭스 / 투수 | |
<rowcolor=#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 외야수 | 오타니 쇼헤이 닛폰햄 / 투수, 외야수 | 데니스 사파테 소프트뱅크 / 투수 | 야마카와 호타카 세이부 / 내야수 | 모리 토모야 세이부 / 포수 | |
<rowcolor=#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 외야수 | 야마모토 요시노부 오릭스 / 투수 | / | }}}}}}}}} |
1997~2003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유격수 부문 베스트 나인 | ||||
타나카 유키오 (닛폰햄 파이터즈) | → | 마쓰이 가즈오 (세이부 라이온즈) | → | 가와사키 무네노리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1997, 1998, 2002, 2003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 ||||
타나카 유키오 (닛폰햄 파이터즈) | → | 마쓰이 가즈오 (세이부 라이온즈) | → | 코사카 마코토 (치바 롯데 마린즈) |
코사카 마코토 (치바 롯데 마린즈) | → | 마쓰이 가즈오 (세이부 라이온즈) | → | 가와사키 무네노리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91db><tablebgcolor=#0091db> |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다도루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단일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tablewidth=100%> 1936년 ~ 1949년 | ||||
<rowcolor=#ffffff> 1936秋 | 1937春 | 1937秋 | 1938春 | 1938秋 | ||
카리타 히사노리 도쿄 세네터스 / 16개 | 야마구치 마사노부 오사카 / 29개 | 시마 히데노스케 나고야킨코군 / 22개 키토 카즈오 라이온군 / 22개 | 에구치 유키오 나고야킨코군 / 14개 | 사사키 츠네스케 나고야킨코군 / 20개 | ||
<rowcolor=#ffffff>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
야마다 덴 한큐군 / 30개 고미 요시오 나고야킨코군 / 30개 | 이시다 마사요시 나고야군 / 32개 | 츠보우치 미치노리 아사히군 / 26개 | 츠보우치 미치노리 아사히군 / 44개 | 야마다 덴 한큐군 / 56개 | ||
<rowcolor=#ffffff> 1944 | 1946 | 1947 | 1948 | 1949 | ||
이시이 마사유키 한신군 / 19개 하기하라 히로시 도쿄쿄진군 / 19개 | 카와니시 토시오 킨키그레이트링 / 39개 | 카와니시 토시오 난카이 / 53개 | 카와니시 토시오 난카이 / 66개 | 키즈카 타다스케 난카이 / 59개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센트럴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카나야마 지로 쇼치쿠 / 74개 | 츠치야 마사타카 코쿠테츠 / 52개 | 카나야마 지로 쇼치쿠 / 63개 | 카나야마 지로 히로시마 / 58개 | 요시다 요시오 오사카 / 51개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혼다 이츠로 주니치 / 42개 | 요시다 요시오 오사카 / 50개 | 이이다 토쿠지 코쿠테츠 / 40개 | 오카지마 히로지 주니치 / 47개 | 오카지마 히로지 주니치 / 41개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나카 토시오 주니치 / 50개 | 콘도 카즈히코 타이요 / 35개 | 코노 아키테루 주니치 / 26개 | 타카기 모리미치 주니치 / 50개 | 코바 타케시 히로시마 / 57개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타카기 모리미치 주니치 / 44개 | 시바타 이사오 요미우리 / 46개 | 시바타 이사오 요미우리 / 70개 | 코바 타케시 히로시마 / 39개 | 시바타 이사오 요미우리 / 35개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토죠 후미히로 야쿠르트 / 28개 | 타카다 시게루 요미우리 / 38개 | 시바타 이사오 요미우리 / 45개 | 타카기 모리미치 주니치 / 28개 | 나카츠카 마사유키 타이요 / 28개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오오시타 츠요시 히로시마 / 44개 | 키누가사 사치오 히로시마 / 31개 | 시바타 이사오 요미우리 / 34개 | 시바타 이사오 요미우리 / 34개 | 타카하시 요시히코 히로시마 / 55개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타카하시 요시히코 히로시마 / 38개 | 아오키 미노루 야쿠르트 / 34개 | 마츠모토 타다시 요미우리 / 61개 | 마츠모토 타다시 요미우리 / 76개 | 타카기 유타카 타이요 / 56개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타카하시 요시히코 히로시마 / 73개 | 야시키 카나메 타이요 / 48개 히라노 켄 주니치 / 48개 | 야시키 카나메 타이요 / 48개 | 야시키 카나메 타이요 / 33개 | 쇼다 코우조 히로시마 / 34개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오가타 코이치 요미우리 / 33개 노무라 켄지로 히로시마 / 33개 | 노무라 켄지로 히로시마 / 31개 | 이이다 테츠야 야쿠르트 / 33개 | 오가타 코이치 요미우리 / 24개 이시이 타쿠로 요코하마 / 24개 | 노무라 켄지로 히로시마 / 37개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오가타 코이치 히로시마 / 47개 | 오가타 코이치 히로시마 / 50개 | 오가타 코이치 히로시마 / 49개 | 이시이 타쿠로 요코하마 / 39개 | 이시이 타쿠로 요코하마 / 39개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이시이 타쿠로 요코하마 / 35개 | 아카호시 노리히로 한신 / 39개 | 아카호시 노리히로 한신 / 26개 | 아카호시 노리히로 한신 / 61개 | 아카호시 노리히로 한신 / 64개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아카호시 노리히로 한신 / 60개 | 아오키 노리치카 야쿠르트 / 41개 | 아라키 마사히로 주니치 / 31개 | 후쿠치 카즈키 야쿠르트 / 42개 | 후쿠치 카즈키 야쿠르트 / 42개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소요기 에이신 히로시마 / 43개 | 후지무라 다이스케 요미우리 / 28개 | 오오시마 요헤이 주니치 / 32개 | 마루 요시히로 히로시마 / 29개 | 카지타니 타카유키 DeNA / 39개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야마다 테츠토 야쿠르트 / 34개 | 야마다 테츠토 야쿠르트 / 30개 | 타나카 코스케 히로시마 / 35개 | 야마다 테츠토 야쿠르트 / 33개 | 치카모토 코지 한신 / 36개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치카모토 코지 한신 / 31개 | 나카노 타쿠무 한신 / 30개 | 치카모토 코지 한신 / 30개 | 치카모토 코지 한신 / 28개 | 치카모토 코지 한신 / 19개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퍼시픽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키즈카 타다스케 난카이 / 78개 | 키즈카 타다스케 난카이 / 55개 | 키즈카 타다스케 난카이 / 55개 | 래리 레인즈 한큐 / 61개 | 스즈키 타케시 킨테츠 / 71개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모리시타 노부야스 난카이 / 59개 | 코노 아키테루 한큐 / 85개 | 코노 아키테루 한큐 / 56개 | 로베르토 바르본 한큐 / 38개 | 로베르토 바르본 한큐 / 38개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로베르토 바르본 한큐 / 32개 | 히로세 요시노리 난카이 / 42개 | 히로세 요시노리 난카이 / 50개 | 히로세 요시노리 난카이 / 45개 | 히로세 요시노리 난카이 / 72개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히로세 요시노리 난카이 / 39개 | 야마모토 코시 한큐 / 32개 | 니시다 타카유키 도쿄 오리온즈 / 32개 | 야스이 토시노리 킨테츠 / 54개 | 사카모토 토시조 한큐 / 47개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75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67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106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95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94개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63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62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61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70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60개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54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54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54개 | 오오이시 다이지로 킨테츠 / 60개 | 오오이시 다이지로 킨테츠 / 46개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마츠나가 히로미 한큐 / 38개 | 니시무라 노리후미 롯데 / 36개 | 니시무라 노리후미 롯데 / 41개 오오이시 다이지로 킨테츠 / 41개 | 니시무라 노리후미 롯데 / 55개 | 니시무라 노리후미 롯데 / 42개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아키야마 코지 세이부 / 51개 | 오노 히사시 다이에 / 42개 | 사사키 마코토 다이에 / 40개 | 오오이시 다이지로 킨테츠 / 31개 | 사사키 마코토 세이부 / 37개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이치로 오릭스 / 49개 | 무라마츠 아리히토 다이에 / 58개 | 마츠이 카즈오 세이부 / 62개 | 마츠이 카즈오 세이부 / 43개 코사카 마코토 롯데 / 43개 | 마츠이 카즈오 세이부 / 32개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코사카 마코토 롯데 / 33개 | 이구치 타다히토 다이에 / 44개 | 타니 요시토모 오릭스 / 41개 | 이구치 타다히토 다이에 / 42개 | 카와사키 무네노리 다이에 / 42개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니시오카 츠요시 롯데 / 41개 | 니시오카 츠요시 롯데 / 33개 | 카타오카 야스유키 세이부 / 38개 | 카타오카 야스유키 세이부 / 50개 | 카타오카 야스유키 세이부 / 51개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카타오카 야스유키 세이부 / 59개 혼다 유이치 소프트뱅크 / 59개 | 혼다 유이치 소프트뱅크 / 60개 | 히지리사와 료 라쿠텐 / 54개 | 양다이강 닛폰햄 / 47개 | 니시카와 하루키 닛폰햄 / 43개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나카시마 타쿠야 닛폰햄 / 34개 | 이토이 요시오 오릭스 / 53개 카네코 유지 세이부 / 53개 | 니시카와 하루키 닛폰햄 / 39개 | 니시카와 하루키 닛폰햄 / 44개 | 카네코 유지 세이부 / 41개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슈토 우쿄 소프트뱅크 / 50개 | 니시카와 하루키 닛폰햄 / 24개 겐다 소스케 세이부 / 24개 오기노 타카시 롯데 / 24개 와다 코시로 롯데 / 24개 | 타카베 아키토 롯데 / 44개 | 슈토 우쿄 소프트뱅크 / 36개 코부카타 히로토 라쿠텐 / 36개 | 슈토 우쿄 소프트뱅크 / 41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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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91db><tablebgcolor=#0091db> |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다안타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단일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tablewidth=100%> 1936년 ~ 1949년 | ||||
<rowcolor=#ffffff> 1936秋 | 1937春 | 1937秋 | 1938春 | 1938秋 | ||
후지이 이사오 오사카 / 40개 | 마츠키 켄지로 오사카 / 70개 | 버키 해리스 고라쿠엔 / 62개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50개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56개 | ||
<rowcolor=#ffffff>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
카와카미 테츠하루 도쿄쿄진군 / 116개 | 키토 카즈오 라이온군 / 124개 | 카와카미 테츠하루 도쿄쿄진군 / 105개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111개 | 이시이 마사유키 도쿄쿄진군 / 89개 | ||
<rowcolor=#ffffff> 1944 | 1946 | 1947 | 1948 | 1949 | ||
오쿠무라 토시아키 킨키닛폰 / 48개 | 카네다 마사야스 오사카 / 152개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137개 오시타 히로시 토큐 / 137개 | 아오타 노보루 요미우리 / 174개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187개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센트럴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191개 | 고토 츠구오 오사카 / 155개 |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163개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162개 |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172개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147개 요시다 요시오 오사카 / 147개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160개 |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160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53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50개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51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58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51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63개 | 쿠와타 타케시 타이요 / 161개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콘도 카즈히코 타이요 / 152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63개 | 후지타 타이라 한신 / 154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57개 | 나가시마 시게오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56개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38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55개 | 키누가사 사치오 히로시마 / 138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52개 | 마츠바라 마코토 타이요 / 157개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이노우에 히로아키 주니치 / 149개 | 하리모토 이사오 요미우리 / 182개 | 와카마츠 츠토무 야쿠르트 / 158개 | 마츠바라 마코토 타이요 / 164개 | 오시마 야스노리 주니치 / 159개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타카하시 요시히코 히로시마 / 169개 | 짐 라이틀 히로시마 / 157개 | 타오 야스시 주니치 / 174개 | 타오 야스시 주니치 / 161개 | 타오 야스시 야자와 켄이치 주니치 / 166개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랜디 바스 한신 / 174개 | 랜디 바스 한신 / 176개 | 카를로스 폰세 타이요 / 159개 | 짐 파치오렉 타이요 / 165개 | 워렌 크로마티 요미우리 / 166개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짐 파치오렉 타이요 / 172개 | 노무라 켄지로 히로시마 / 170개 | 짐 파치오렉 한신 / 159개 | 후루타 아츠야 야쿠르트 / 161개 와다 유타카 한신 / 161개 | 노무라 켄지로 히로시마 / 169개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노무라 켄지로 히로시마 / 173개 | 알론조 파웰 주니치 / 176개 | 루이스 로페스 히로시마 / 170개 | 이시이 타쿠로 요코하마 / 174개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 192개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 168개 | 이시이 타쿠로 요코하마 / 171개 | 시미즈 타카유키 요미우리 / 191개 | 알렉스 라미레스 야쿠르트 / 189개 | 시마 시게노부 히로시마 / 189개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아오키 노리치카 야쿠르트 / 202개 | 아오키 노리치카 야쿠르트 / 192개 | 알렉스 라미레스 야쿠르트 / 204개 | 우치카와 세이이치 요코하마 / 189개 |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 186개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맷 머튼 한신 / 214개 | 맷 머튼 한신 / 180개 | 사카모토 하야토 초노 히사요시 요미우리 / 173개 | 맷 머튼 한신 / 178개 | 야마다 테츠토 야쿠르트 / 193개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카와바타 신고 야쿠르트 / 195개 | 키쿠치 료스케 히로시마 / 181개 | 마루 요시히로 히로시마 / 171개 호세 로페스 DeNA / 171개 | 다얀 비시에도 주니치 / 178개 | 오오시마 요헤이 주니치 / 174개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오오시마 요헤이 주니치 / 146개 | 치카모토 코지 한신 / 178개 | 사노 케이타 DeNA / 161개 오카바야시 유키 주니치 / 161개 | 나카노 타쿠무 한신 / 164개 마키 슈고 DeNA / 164개 | 나가오카 히데키 야쿠르트 / 163개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퍼시픽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벳토 카오루 마이니치 / 160개 | 키즈카 타다스케 난카이 / 130개 | 이이다 토쿠지 난카이 / 153개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146개 | 래리 레인즈 한큐 / 184개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이이다 토쿠지 난카이 / 163개 로베르토 바르본 한큐 / 163개 | 사사키 신야 타카하시 / 180개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154개 | 카츠라기 타카오 다이마이 / 147개 | 카츠라기 타카오 다이마이 / 163개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에노모토 키하치 다이마이 / 170개 | 에노모토 키하치 다이마이 / 180개 | 에노모토 키하치 다이마이 / 160개 | 히로세 요시노리 난카이 / 187개 | 도이 마사히로 킨테츠 / 168개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156개 | 에노모토 키하치 도쿄 오리온즈 / 167개 | 도이 마사히로 킨테츠 / 147개 | 조지 알트만 도쿄 오리온즈 / 170개 | 나가부치 요조 킨테츠 / 162개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176개 | 오오스기 카츠오 토에이 / 154개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169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152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156개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히로타 스미오 롯데 / 148개 | 후지와라 미츠루 난카이 / 159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165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171개 | 카토 히데지 한큐 / 163개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레론 리 롯데 / 175개 | 후지와라 미츠루 난카이 / 157개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150개 | 스티브 온티베로스 세이부 / 153개 | 부머 웰즈 한큐 / 171개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부머 웰즈 한큐 / 173개 | 부머 웰즈 한큐 / 173개 | 아라이 히로마사 킨테츠 / 184개 | 타카자와 히데아키 롯데 / 158개 | 부머 웰즈 오릭스 / 165개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짐 트라버 킨테츠 / 150개 | 사사키 마코토 다이에 / 158개 | 사사키 마코토 다이에 / 164개 | 이시이 히로오 킨테츠 / 147개 | 이치로 오릭스 / 210개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이치로 오릭스 / 179개 | 이치로 오릭스 / 193개 | 이치로 오릭스 / 185개 | 이치로 오릭스 / 181개 | 마츠이 카즈오 세이부 / 178개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182개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195개 | 마츠이 카즈오 세이부 / 193개 | 타니 요시토모 오릭스 / 189개 | 마츠나카 노부히코 카와사키 무네노리 다이에 / 171개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와다 카즈히로 세이부 / 153개 | 오오무라 나오유키 소프트뱅크 / 165개 | 이나바 아츠노리 닛폰햄 / 176개 | 쿠리야마 타쿠미 카타오카 야스유키 세이부 / 167개 | 나카지마 히로유키 세이부 / 173개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니시오카 츠요시 롯데 / 206개 | 사카구치 토모타카 오릭스 / 175개 | 우치카와 세이이치 소프트뱅크 / 157개 | 하세가와 유야 소프트뱅크 / 198개 | 나카무라 아키라 소프트뱅크 / 176개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아키야마 쇼고 세이부 / 216개 | 카쿠나카 카츠야 롯데 / 178개 | 아키야마 쇼고 세이부 / 185개 | 아키야마 쇼고 세이부 / 195개 | 아키야마 쇼고 세이부 / 179개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 146개 | 오기노 타카시 롯데 / 169개 | 시마우치 히로아키 라쿠텐 / 161개 |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 163개 | 타츠미 료스케 라쿠텐 / 158개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50><tablebordercolor=#143d69><tablebgcolor=#143d69>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감독 |
{{{#!wiki style="margin: 0 -10px" {{{#000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555555,#aaaaaa | <rowcolor=#fff> 초대 | 2대 | 3대 | 4대 | 5대 |
미야자키 (1950) | 미하라 (1951~1959) ★★★★ | 카와사키 (1960~1961) | 나카니시 (1962~1969) ★ | 이나오 (1970~1974) | |
<rowcolor=#fff> 6대 | 7대 | 8대 | 9대 | 10대 | |
에토 (1975) | 듀로셔 (1976) | 키토 (1976~1977) | 네모토 (1978~1981) | 히로오카 (1982~1985) ★★★ | |
<rowcolor=#fff> 11대 | 12대 | 13대 | 14대 | 15대 | |
모리 (1986~1994) ★★★★★★★★ | 히가시오 (1995~2001) ★★ | 이하라 (2002~2003) ★ | 이토 (2004~2007) ★ | 와타나베 (2008~2013) ★ | |
<rowcolor=#fff> 16대 | 17대 | 18대 | 19대 | ||
이하라 (2014) | 타나베 (2014~2016) | 츠지 (2017~2022) ★★ | 마츠이 (2023~2024) | 감독 대행 와타나베 (2024) | |
<rowcolor=#fff> 20대 | 21대 | 22대 | 23대 | 24대 | |
니시구치 (2025~) | |||||
★: 일본시리즈 우승 / ★: 퍼시픽리그 우승 |
}}} ||
마쓰이 가즈오의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보유 기록(NPB) | |
연속 경기 끝내기 홈런 | 2경기 | |
한 경기 최다 도루자 | 3개 | |
연속 시즌 150안타 이상 | 1997~2003 | |
연속 시즌 170안타 이상 | 1997~2003 | |
한시즌 1번타자 최다 홈런 | 36홈런 | |
올스타전 한 경기 최다 도루 | 4개 |
보유 기록(MLB) | |
데뷔 첫타석 초구 홈런 | 2004년 |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32번 | ||||
하라구치 테츠야 (1989~1993) | → | 마쓰이 가즈오 (1994~1996) | → | 이누부시 토시아키 (1997~2000) |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7번 | ||||
다린 잭슨 (1995~1996) | → | 마쓰이 가즈오 (1997~2003) | → | 카타오카 야스유키 (2005~2013) |
{{{#Fff [[뉴욕 메츠|뉴욕 메츠]] 등번호 25번}}} | ||||
게리 매튜스 주니어 (2002) | → | 마쓰이 가즈오 (2004~2006) | → | 페드로 펠리치아노 (2006~2010) |
{{{#c4ced4 [[콜로라도 로키스|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16번}}} | ||||
엘리 마레로 (2004~2005) | → | 마쓰이 가즈오 (2006) | → | 제로니모 길 (2007) |
{{{#c4ced4 [[콜로라도 로키스|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7번}}} | ||||
JD 클로서 (2005~2006) | → | 마쓰이 가즈오 (2007) | → | 세스 스미스 (2009~2011) |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번호 3번 | ||||
필 가너 (2004~2007) | → | 마쓰이 가즈오 (2008~2010) | → | 루이스 두랑고 (2011) |
{{{#ffffff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번호 32번}}} | ||||
코사카 마코토 (2009~2010) | → | 마쓰이 가즈오 (2011) | → | 마스다 신타로 (2012~2018) |
{{{#ffffff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번호 7번}}} | ||||
야마사키 타케시 (2005~2011) | → | 마쓰이 가즈오 (2012~2017) | → | 타츠미 료스케 (2019) |
{{{#fff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7번}}} | ||||
와키야 료타 (2014~2015) | → | 마쓰이 가즈오 (2018) | → | 가네코 유지 (2020~2024) |
{{{#fff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77번}}} | ||||
아카다 쇼고 (2015~2018) | → | 마쓰이 가즈오 (2019~2024) | → | 츠지 류타로 (2025~) |
}}} ||
마쓰이 가즈오 松井稼頭央[1] | Kazuo Matsui | |
<colbgcolor=#fff><colcolor=#000> 생년월일 | 1975년 10월 23일 ([age(1975-10-23)]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 |
학력 | PL학원고등학교 (오사카) |
신체 | 177cm, 85kg |
포지션 | 유격수, 2루수, 외야수, 3루수 |
투타 | 우투양타 |
프로입단 | 1993년 드래프트 3라운드 (전체 35번, 세이부) |
소속팀 | 세이부 라이온즈 (1994~2003) 뉴욕 메츠 (2004~2006) 콜로라도 로키스 (2006~2007)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8~2010)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1~2017)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18) |
지도자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군 플레잉코치 (2018)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군 감독 (2019~202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군 수석코치 (2022)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감독 (2023~2024)[2]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前 야구 선수. 또한 前 메이저리거이다.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활동하다가 200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진출해 2010년까지 활동했고, 그 후 다시 일본으로 복귀하여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활동하다가 2018년 친정팀 세이부로 복귀해 한 해 동안 활동한 후 현역 생활을 마쳤다.
통산 안타는 2,090개로 2021년 기준 35위에 랭크되어 있다.
2. 선수 시절
2.1. 세이부 시절
야구계를 대표하는 리드오프맨 | |
마쓰이 가즈오 |
1년차인 1994년엔 2군에서만 뛰며 담금질을 거듭했고, 그 이듬해인 1995년에 1군에 데뷔하여 곧바로 1군 붙박이로 정착했다. 3년차인 1996년부터 타나베 노리오를 밀어내고 본격적으로 유격수로 정착했고, 이 해에 퍼시픽리그 2위인 시즌 50도루[3]를 기록하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데 이어 시즌 종료 후엔 등번호를 32번에서 과거 같은 내야수였던 세이부를 대표하던 프랜차이즈 스타 이시게 히로미치의 등번호였던 7번으로 바꾸며 향후 본인을 상징하는 등번호로 만들게 된다.[4]
1997년에 처음으로 3할 타율을 기록했고 62도루를 기록하며 개인 첫 도루왕 타이틀을 수상, 팀의 3년만의 퍼시픽리그 우승에 큰 몫을 하였다. 특히 이 해 올스타전에서 1경기 4도루를 기록하여 올스타전 MVP를 기록할 정도로 스타로써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도 2년 연속 도루왕 타이틀[5]과 함께 팀의 2년 연속 퍼시픽리그 우승에 공헌하여 그해 5년 연속 수위타자를 수상한 스즈키 이치로, 최다승을 수상한 팀 선배 니시구치 후미야를 제치고 퍼시픽리그 MVP를 수상했다.[6] 1997년부터 1999년까지 3년 연속 최다 도루를 기록했고, 나아가 퍼시픽 리그, 1990년대는 물론 일본프로야구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일본의 간판 유격수로 성장했다. 마침 이 때가 마쓰이 히데키가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거포로 명성을 얻던 시기인지라 그는 자연스럽게 리틀 마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1996~2003년까지 세이부의 유격수로 활약하면서 이전까진 대부분 수비 위주로 평가받던 유격수의 고정관념을 깨며 일본프로야구 유격수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갔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8시즌 동안 통산 1143경기 연속출장,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시즌 연속 3할 이상 타율과 시즌 170개 이상의 안타를 기록할 정도로 꾸준했다(1999년, 2002년 리그 최다안타 포함. 특히 2002년에는 193안타 기록). 거기에 장타력까지 더하여 1999년에 15홈런을 시작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까지인 2003년까지 131개의 홈런(연평균 26.2홈런)을 때려냈다. 20-20을 세 번(2000~2002) 기록했고, 특히 2002년에 일본프로야구 역대 8번째이자 스위치 히터로서는 사상 최초의 트리플 쓰리(3할-30홈런-30도루)을 기록했다. 거기에 통산 1000안타를 역대 4위의 속도로 달성하는 등 일본프로야구의 역사를 써나갔다.
베스트 나인 7회(1997~2003), 골든 글러브 4회(1997, 1998, 2002, 2003) 수상에, 2001년에는 일본프로야구 20세기 센츄리 베스트 나인에도 선정되기도 했다.[7]
하지만 우승하고는 인연이 없어서 퍼시픽 리그 우승을 3번(1997, 1998, 2002) 경험했지만 일본시리즈에서는 각각 야쿠르트 스왈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고 여기에 후술될 콜로라도 로키스 락토버 시절까지 포함하면 5번의 준우승을 경험한 일본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콩라인이었다.[8] 하지만 2013년 라쿠텐 소속으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면서 콩라인 탈출에 성공한다.
2.2. 뉴욕 메츠 시절
마쓰이 가즈오의 화려했던 전성기 시절,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스카우터들은 그의 좋은 수비와 다재다능한 공격능력을 높히 샀다. 게다가 스즈키 이치로의 메이저리그 적응 성공과 마쓰이 히데키의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실제로 2002년 미일 올스타전에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두 마쓰이의 활약에 집중했다.
결국 마쓰이 가즈오도 2003년 시즌이 끝난 뒤 FA로 풀렸고 오프 시즌에 뉴욕 메츠로 전격 입단하게 된다.[9] 연봉은 연평균 $6M.
많은 관심을 받으며 어메이징 메츠에 입단했지만 처음부터 주전 유격수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었다. 5툴 플레이어로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립서비스. 당시 메츠에서 애지중지 키우고 있던 호세 레예스를 메이저로 콜업시킨 상황에서 이 둘의 유격수 자리를 둔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일단은 시즌 초에 마쓰이가 유격수, 레예스가 2루수로 수비진이 운영이 됐다.
처음에는 마쓰이 가즈오가 2004년 개막전에서 메이저리그 신인으로서는 첫 타석 초구를 홈런으로 쳐낸 최초의 선수로 기록되며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지만 이후 침착하게 성장한 호세 레예스가 주춤한 마쓰이의 슬럼프를 틈타 다시 유격수로 돌아왔고 결국 마쓰이는 2루수로 수비 위치가 변경됐다. 그러나 타격 부진은 그 이후에도 계속 되면서 결국 시즌 후반부에 주전 자리도 빼앗기며 메이저리그 첫 시즌을 마감했다.
첫해 최종 성적은 509타석 .272/.331/.396 7홈런, 14도루 .727OPS를 기록했다. 사실 후반기때 부진해서 그렇지 최종성적만 놓고 본다면 내야수로서 꽤 준수한 타격 성적이고 규정타석역시 채웠다.[10]
이후 2005년 개막전에 첫 타석에서 또 한번 홈런을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드디어 기량을 만개하나 했더니 부상과 부진에 빠지며 .255 /.300/.352 .652OPS라는 성적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2006년 자신의 시즌 첫 경기 첫 타석에서 동양인 최초의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기록하는 등 3년 연속으로 첫 경기, 첫 타석, 첫 홈런을 기록했지만 .267/.310/.379 .689OPS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진귀한 기록만 내는 선수로 전락했다.
결국 2006 시즌 포스트시즌을 노리고 있던 메츠는 6월 9일 마쓰이 가즈오+현금에 콜로라도 로키스로부터 백업 야수 일라이 머레로를 교환하는 트레이드 딜을 성사시킨다.
2.3.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
마쓰이는 메츠에서는 기대보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부활하며 로키스 사상 최고의 시즌의 일원으로 활약하게 된다. 로키스로 이적했을 때 가장 반겼던 사람은 바로 토드 헬튼. 마쓰이와 헬튼은 1995년 하와이 겨울 훈련에서 처음 만났는데, 당시 헬튼은 마쓰이의 수비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로키스로 이적한 이후 2루수로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32경기동안 타율 .345, 출루율 .392, 장타율 .504, 19타점, 8도루에 OPS는 무려 .896을 찍으면서 기적적인 반등에 성공했다. 따라서 시즌이 끝나고 FA로 풀렸지만 로키스와 바로 단년계약($1.5M)을 맺을 수 있었다.
2007 시즌에 종종 부상에 시달리면서 규정타석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클러치 히팅, 빈틈없는 주루 플레이와 수비를 보여주며 시즌 중반부터 주전 2루수로 활약했다. 특히 시즌 32도루, 4도루실패를 기록하면서 뛰어난 주루 능력을 보여주었다.[11]
최종성적은 .288/.342/.405 .746OPS bWAR 3.4으로 처음 메이저리그에서 마쓰이에 기대하였던 그모습 이상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수비WAR만 1.6을 기록했고 2루수 중 수비범위(레인지팩터) 1위를 기록하며 리그 최상급의 2루 수비를 보여줬다.
그리고 마쓰이의 활약은 포스트 시즌에 두드러졌는데 2007 NLCS, 2007 월드 시리즈 등 포스트시즌 합계 타율 .340, OPS .847를 기록하며 앞으로도 전설로 남을 락토버의 첨병으로 활약하며 화려하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2.4. 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절
로키스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마쓰이는 크레이그 비지오와 제프 켄트 이후 공석이 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2루수로서 32세의 나이에 3년의 좋은 계약을 받고 2008 시즌부터 활약하게 된다.하지만 애스트로스의 기대와는 달리 2008 시즌 개막부터 DL에 올라간 것을 시작으로 이후에도 각종 잔부상에 시달리며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293, OPS는 .781 커리어하이를 찍는듯 했으나 부상으로 96경기 밖에 나오지 못했다.
이듬해인 2009 시즌 8월 15일에 미일통산 2000안타(일본 1433안타, 미국 567안타)를 기록하여 명구회에 가입되기도 했지만 부상과 노쇠화로 예전의 명성을 이을 수가 없었다. 결국 타율은 2할5푼으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다만 리그 2루수 중 수비율 2위, 수비범위와 토탈존 1위를 기록하며 수비만큼은 좋은 2루수였다.
결국 잦은 부상이 문제가 되어 2010 시즌 중반에 애스트로스에서 방출되고 이후 콜로라도 로키스 산하 AAA팀에 머물었다.
2.5. 일본 복귀
결국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고 2011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하면서 7년 만에 일본프로야구로 되돌아왔다. 등번호도 자신이 처음 프로에서 썼던 32번[12]을 달며 처음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시즌에 임했다. 시즌 결과는 타율 .260, 9홈런[13] 48타점[14], 15도루 등 전성기보다는 한참 먼 성적을 냈다. 하지만 시즌 34개 2루타(파리그 1위), 8할대의 도루성공률 등 아직까지는 리드오프로서 준수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2012년 기존에 7번을 달던 야마사키 타케시의 퇴단으로 7번을 닮과 동시에 팀의 주장이 되었고, 고참 선수로써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도 수행하게 되었다.
2013년에는 개인 성적은 하락세를 겪었지만 소속팀 라쿠텐 이글스가 선풍을 일으키는 가운데 주전 유격수이자 주장으로서 야수진을 이끌면서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 프로 데뷔 18년만에 생애 첫 우승반지를 끼게 됐다.
2014년부터는 나이 탓인지 외야수로 자주 나오는 편이었다.
2017년 3년만에 유격수로서 출전하기도 했다. 수비능력은 여전한듯.[15]
2017년 시즌 후 라쿠텐 측에선 코치직을 제안했지만 본인은 현역 연장을 원해 상호 합의 하에 방출되어 팀을 떠났다. 그리고 친정팀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플레잉코치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줄줄이 FA로 팀을 떠나는 것만 보던 세이부 팬들은 늦게나마 귀향한 왕년의 판타지스타의 귀환에 크게 환영하는 중. 덤으로 2018 시즌 일본프로야구 최고령 야수가 되었다. 이후 타율 0.129 2타점의 기록을 남긴뒤 사실상 플레잉코치 역할을 하다가 시즌 막판 은퇴를 선언했고, 세이부 구단은 2군 감독 자리를 마쓰이에게 제안했다.여담으로 2018년 10월 4일 치바 롯데 마린즈 전은 ZOZO 마린 스타디움에서의 현역 마지막 경기였는데, 이 날 롯데에서는 경기 전에 전광판에 수고 메시지를 띄우고 동갑내기인 후쿠우라 카즈야가 꽃다발을 전해 주는 등 조촐하게 은퇴 행사를 치러 주었다.[16] 하나 덧붙이자면, 이날 경기 후에 롯데에서도 은퇴식을 하는 타자가 있었다. 그래서 1경기에서 2명의 타자가 은퇴 기념으로 꽃다발과 축하 메시지를 받는 감동적인 결과가 연출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5툴 플레이어이자 스위치 히터로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유격수 계보를 잇는 선수로 꼽혔다.3.1. 타격
세이부 시절 첫 해만 빼고 그의 리즈 시절이라 할 수 있는 1996년~2003년 동안 평균 .313 타율, 도루 35.6개, 홈런 18.5개의 뛰어난 성적을 냈다. 적어도 저 시절만큼은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공격형 유격수로 봐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일본 복귀 이후에는 메이저에서 당한 여러 부상과 노쇠화로 모든 공격 능력이 감소하면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는 스즈키 이치로처럼 일본 시절 장타력을 크게 포기하고 교타자로 스타일을 바꿨다.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은 .267 홈런 년평균 5개 정도에 불과했으나 2루타를 어느정도 때려내면서 통산 OPS는 7할대를 사수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경우 메이저리그 통산 공격WAR은 6.0[17]을 쌓았고 통산 OPS+는 83을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평균 2루수[18]의 공격 생산력에 조금 못미치는 정도였다.[19]
3.2. 주루
일본 시절 주루는 1996년~2003년 동안 평균 도루 35.6개를 기록할 정도로 좋았으나 메이저리그에 와서는 첫 3시즌 동안 평균 도루 갯수가 10개에 불과할 정도로 많이 하락하였다.하지만 락토버의 일원이었던 2007년에 32도루,4도루사로 일본 시절과 변함없는 도루 능력을 보여줬고 그 다음해는 20개, 19개를 기록하였다.
사실 도루 갯수가 많이 하락한 것은 리그차보다 마쓰이가 메이저리그에서 부상을 많이 당했기에 자제했던게 컸다. 그예로 메이저리그 통산 도루 102개에 도루 실패는 18개로 성공률이 약 85%에 달하며 이는 메이저리그 역대 1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3.3. 수비
일본 기준으로는 정상급 유격수 수비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빠른 타구등에 고전하며 본 포지션인 유격수에서 밀려나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동양인 유격수 메이저리그 적응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거론되는 선수.[20]전성기 때는 탈아시아급 운동능력으로 평가를 받았는데, 일본의 유격수 치고는 다소 큰 체격(178cm)으로 강견에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했다. 어느 정도였다하면, 통상적으로 2루수가 커버하는 우중간 얕은 외야를 커버하기도 했고,[21] 3-유간의 깊은 땅볼을 노스텝으로 던져 1루에 송구해 아웃 시키는 MLB 급의 플레이를 보여줬다. 골든 글러브를 4회 수상(1997, 1998, 2002, 2003)했다.하지만 화려한 퍼포먼스 때문에 실책이 적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수비쪽에서 까가 은근 있었다. 한 예로, 평론가로 활동하던 오이시 다이지로(大石第二郞)[22]는 "수비면에서는 마쓰이 가즈오보다 더 견실하고 범위도 더 넓은 코사카 마코토가 골든글러브를 받아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23] 다만, 마쓰이가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해를 보면 코사카의 출장 경기수가 적거나 부진했던 점을 감안해도, 어쨌든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공수에서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했던 유격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정작 미국에 가서는 자신의 포지션인 유격수를 지킬 수가 없어 뉴욕 메츠에서는 호세 레예스와의 경쟁에서 밀려 2루수로 전향했다. 특히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에서도 땅볼타구는 기본적으로 정면에서 처리하는 수비를 요구하는데, 뉴욕 메츠 입단 초기 유격수로 출전하던 시절 미국에서는 보통 백핸드로 처리하는 타구도 정면으로 처리하려다가 에러를 저지르거나 내야안타를 내주는 상황이 상당히 많았다.[24] 레예스가 훗날 거물급 유격수로 성장 한 것과 별개로 미국무대에서 유격수 마쓰이 가즈오의 수비는 실패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만 이때문에 마쓰이 가즈오의 수비가 메이저리그에서 안좋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는 유격수로 한정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2루수로 전향한 후에는 매우 좋은 평을 들었으며 세이버메트릭스로 봐도 2루수중 탑급의 수비범위(레인지팩터)를 기록했으며 2007년에는 무려 14 DRS를 기록하였다.
이에 마쓰이 가즈오가 MLB에서도 수준급의 2루수비를 보여준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습관을 고친 덕이라고 봐야할지 아니면 유격수급 송구를 2루수 쪽에서 1루로 꽂는 것으로[25] 좋지 않은 일본식 포구습관의 단점을 가렸다고 봐야 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이후 일본 라쿠텐으로 복귀해서는 자신의 원 포지션인 유격수로 돌아왔지만 이전 기량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4. 지도자 시절
4.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군 감독 (2019~2021)
현역 마지막 시즌인 2018년부터 플레잉코치를 맡으며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시즌 후 공식적으로 은퇴함과 동시에 2019년부터 곧바로 2군 감독으로 선임, 본격적으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이후 2021년까지 3년간 세이부의 2군 감독을 맡았는데, 세이부가 2020~2021년 2시즌 연속 주축 선수들이 계속해서 부상과 부진으로 전력에서 이탈할 동안 온갖 신인 선수들을 동원하여 구멍난 전력을 간신히 메꿨는데, 이는 카즈오가 2군 감독으로서 신진 선수 육성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
구체적으로 서술하자면 2020년 신인 드래프트로 지명한 12명의 선수 중 5명이 1년차인 2021년부터 1군 데뷔를 한 데 이어 4위로 지명한 외야수 와카바야시 가쿠토, 육성 5위로 지명한 투수 미즈카미 요시노부는 1군 레귤러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특히 미즈카미는 2년차인 2022년에 리그 신인왕까지 수상하며 초대박을 쳤다.[26]
2군에서도 1순위로 지명된 신인 거포 와타나베 켄토를 꾸준히 기용하여 2021년 2군 홈런, 타점 2관왕 수상으로 이끄는 수완을 발휘했다.
4.2.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군 수석코치 (2022)
2021년, 츠지 하츠히코 감독이 계약이 만료되고 시즌 성적도 부진해 사임의사를 밝히면서[27] 2군 감독이던 마쓰이가 후임 감독 0순위로 급부상했다. 사임 소식이 뜬 이후부터는 사실상 마쓰이의 1군 감독 승격이 확정적인 분위기나 다름없었지만 10월 14일 기사에선 구단이 츠지 감독의 사임을 만류하고 1군 감독이 아닌 1군 수석 코치를 맡길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놔 아직까지는 거취가 불분명하다.#결국 10월 26일, 츠지 감독의 유임이 확정되자 1군 수석코치로 영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대신 니시구치 후미야 1군 투수코치가 2군감독을 맡게 되었다.
2022년 8월 13일 현재 1위 자리를 놓고 팀은 소프트뱅크와 경쟁중이며 2022년 시즌 후 1군 감독으로 임명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스테이지 경기 하루전 10월 7일 새벽 예상대로 츠지 후임으로 세이부 감독으로 내정됐다.
4.3.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군 감독 (2023~2024)
10월 19일 취임 기자회견을 열었다. 수석코치로 전 시즌까지 팀 내 타격 코치를 맡았던 히라이시 요스케[28]를 내정했다.감독 취임 이후 FA를 선언한 닛폰햄 외야수 콘도 켄스케 영입 협상에 직접 나섰으나, 7년 50억엔이란 초대형 계약을 제시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밀려 영입에 실패했고 모리 토모야까지 FA로 오릭스 버팔로즈로 이적해 버리면서 스토브리그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지난 해보다 약화된 전력으로 감독 데뷔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2020년 이후로 컨택이 나빠져 버린 토노사키 슈타 등 기존 전력들의 성적 회복과 신예 스타들의 발굴이 절실해진 상황.
4월엔 높은 위닝시리즈 비율로 많은 승수를 쌓으면서 출발했지만 서서히 약화된 전력과 겐다의 부상으로 인한 한계가 드러나고 있고, 결국 5월 중순 5할 승률마저 깨졌으며, 야마카와 호타카마저 성범죄로 고발당하는 대형사고를 치고 사실상 시즌아웃이 확정되면서 골치가 아프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나카무라 타케야마저 5월 하순에 부상을 입고 2군으로 가면서 결국 6월에 최하위까지 떨어졌다.
7월에는 갑자기 5연승을 달리며 소프트뱅크(8연패)와 닛폰햄(최하위)을 각각 궁지로 몰아넣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다시 부진하면서 9월 시점에서는 닛폰햄과 탈꼴찌 경쟁을 펼치고 있다. 결국 시즌 5위로 마감. 야마카와의 논란과 산적타선 시절 멤버들의 이적, 부진과 노쇠화 등으로 타선의 중심으로 세울만한 파워히터가 없는[29] 상황에서 경험이 일천한 젊은 선수들을 데리고 점수를 짜내는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를 강조했는데, 이 과정에서 주루사나 무뇌플레이가 속출하며 까이기는 했다. 다만 상술했듯 1년차 감독의 역량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차원의 전력상 악재가 너무 많았던 탓에 까임 지분이 아주 많지는 않다. 이미 투수진에 타카하시 코나, 타이라 카이마, 이마이 타츠야, 요자 카이토, 스미다 치히로 등 충분한 전력이 갖춰진 만큼 앞으로 야수진 리빌딩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여지가 있다.
그러나 2024시즌, 양대리그 최악의 타격과 불펜의 붕괴로 4월부터 7연패를 하는 등 5월 기준 1위랑 12게임차까지 벌어지면서 시즌 시작부터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다. 전년도에는 갓 부임한 초보 감독이란 점과 갖은 악재들이 겹쳤다는 이유로 저조한 팀 성적에도 참작의 여지가 있어 비판적인 여론보단 좀 더 지켜보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올 시즌은 초보 딱지도 떼고 이렇다 할 돌발변수조차도 마땅히 없었음에도 실망스러운 성적을 보이면서 그를 비호하는 팬들 조차도 등을 돌린 채 감독직에서 물러나라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5월 22일, 시즌 2번째 7연패를 기록하면서 너무나도 이른 시기에 자력 우승 불가능이 확정되었다. 롯데전 0승 8패, 소프트뱅크전 2승 10패를 기록해 특정팀들을 상대로 승점자판기를 노릇을 자처하는가 하면 구단 역사에 남을 최악의 시즌 페이스가 전망된다는 점까지 겹치며 험난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계속된 성적 부진 끝에 5월 26일 오릭스전을 끝으로[30] 끝내 휴양을 통보 받으면서[31] 데뷔팀에서의 감독 생활은 매우 씁쓸한 엔딩으로 끝마치게 되었고 구단 GM인 와타나베 히사노부가 11년만에 현장으로 돌아와 감독대행을 겸직한다.
이후 8월 카즈오 아내 인스타내용에 따르면 일본에 거주하지 않고 해외에서 휴양중이라고 한다.
5. 여담
- 본명 한자 표기는 松井和夫다. 프로 1년차 때는 자신의 본명을 등록해서 썼지만 워낙 흔한 한자 표기이다 보니 이후 이름만 '稼頭央'으로 바꿔 등록해 지금까지 쓰고 있다. 稼頭央으로 지은 이유는 일본프로야구계에서 최고의 선수가 돼 중심에 오르겠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이름에 들어있는 한자만 봐도 '머리 두'에 '가운데 앙' 자다.
- 미국에서는 Kaz Matsui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32][33] 아무래도 먼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마쓰이 히데키와의 구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마쓰이 히데키와의 구분을 위해 흔히 큰 마쓰이, 작은 마쓰이라고 나눠서 부른다. 물론 마쓰이 히데키 쪽이 큰 마쓰이. MLB에 진출한 시기도 마쓰이 히데키 쪽이 더 빠르고 활약상, 그리고 실제 나이도 마쓰이 히데키가 한 살 더 많고 덩치도 마쓰이 히데키가 더 크다.
- (미일 올스타전이나 한일 슈퍼게임을 제외하고) 정식 국가대표 경력은 2003년 삿포로돔에서 열렸던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36] 한번 뿐이다.
- 1999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 두 대회 모두 당시 퍼시픽리그 팀당 1명 차출 제한에 묶여 참가하지 못했다.[37]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 그 해 막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신분으로써,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올림픽 출전 불허 방침에 따라 참가하지 못했다.
- 2006년 WBC : 전년도의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올림픽 출전 불허 방침에 따라 참가하지 못했다.
- 2009년 WBC : 당시 휴스턴 애스트로스 소속으로써 한때 참가에 긍정적인 반응도 보였으나, 결국은 시즌 준비를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다.
- 2013년 WBC : 당시 일본 리그에 복귀한 신분으로써 그의 오랜 경험을 높이 사 대표팀 발탁 이야기도 나왔지만, 끝내 부름을 받지는 못했다.[38]
-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의 석세스 오리지널 캐릭터인 토모자와 료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포구를 제외한 모든 기본 능력치가 70을 상회하고 특수능력인 에버리지 히터와 파워히터를 같이 들고 있는 파워프로 시리즈 전통의 강캐. 실제 마쓰이처럼 스위치 히터에다 견력이 90을 넘고 메인 포지션이 유격수이다. 아예 일부 시리즈에서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소속 선수로 출현한다.
- 가족 관계로는 딸 1명이 있는데 모델인 마쓰이 미오다.
- 원래 이전부터 한국계 루머가 있었던 일본의 유명 스포츠 선수 중 한 명이지만,[39] 특히 2008년 그의 조부인 마쓰이 지로가 화재로 사망했을 때 마이니치 계열 방송에서 '박재윤'으로 보도를 했다는 사실이 한국에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는 마쓰이 가즈오가 한국계라는 게 거의 정설처럼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다만 당시 마이니치 보도에서 곧 '마쓰이 지로'로 정정 보도되었고, # 마쓰이 가즈오 본인이 보도 내용에 대해서 언급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진위 여부는 불분명하다.[40]
6. 응원가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쓰던 응원가 중 팀의 원조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이시게 히로미치의 응원가를 물려받은 곡이 유명하다. 가사는 이시게(石毛) 부분을 카즈오(稼頭央)로 바꾼 걸 빼면 두 선수 버전 모두 동일하다.狙い球は豪速球 打てば飛ぶ飛ぶ 銀河の果てに 노리는 공은 강속구 치면은 난다 난다 은하의 끝으로 ミスターレオ稼頭央 미스터 레오 카즈오 |
7. 연도별 기록
역대 기록 (NPB)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AR |
1995 | 세이부 | 69 | 219 | 45 | 9 | 1 | 2 | 25 | 15 | 21 | 7 | 26 | .221 | .245 | .304 | .549 | 0.6 |
1996 | 130 | 518 | 134 | 22 | 5 | 1 | 51 | 29 | 50 | 14 | 93 | .283 | .307 | .357 | .664 | 3.6 | |
1997 | 135 | 645 | 178 | 23 | 13 | 7 | 91 | 63 | 62 | 44 | 89 | .309 | .362 | .431 | .793 | 5.8 | |
1998 | 135 | 641 | 179 | 38 | 5 | 9 | 92 | 58 | 43 | 55 | 89 | .311 | .370 | .442 | .812 | 4.9 | |
1999 | 135 | 609 | 178 | 29 | 4 | 15 | 87 | 67 | 32 | 56 | 75 | .330 | .389 | .482 | .872 | 7.4 | |
2000 | 135 | 611 | 177 | 40 | 11 | 23 | 99 | 90 | 26 | 46 | 60 | .322 | .372 | .560 | .932 | 7.3 | |
2001 | 140 | 613 | 170 | 28 | 2 | 24 | 94 | 76 | 26 | 46 | 83 | .308 | .365 | .496 | .861 | 5.6 | |
2002 | 140 | 651 | 193 | 46 | 6 | 36 | 119 | 87 | 33 | 53 | 112 | .332 | .389 | .617 | 1.006 | 10.7 | |
2003 | 140 | 655 | 179 | 36 | 4 | 33 | 104 | 84 | 13 | 55 | 124 | .305 | .365 | .549 | .913 | 6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AR |
2011 | 라쿠텐 | 139 | 572 | 140 | 34 | 2 | 9 | 51 | 48 | 15 | 26 | 94 | .260 | .294 | .381 | .675 | 3.2 |
2012 | 106 | 433 | 107 | 22 | 4 | 9 | 55 | 43 | 14 | 26 | 55 | .266 | .312 | .408 | .720 | 4 | |
2013 | 125 | 497 | 111 | 26 | 2 | 11 | 55 | 58 | 1 | 40 | 85 | .248 | .311 | .388 | .700 | 1.7 | |
2014 | 128 | 488 | 129 | 32 | 3 | 8 | 57 | 46 | 9 | 36 | 78 | .291 | .342 | .430 | .752 | 0.7 | |
2015 | 126 | 501 | 114 | 17 | 1 | 10 | 52 | 48 | 14 | 43 | 82 | .256 | .324 | .366 | .690 | 0.7 | |
2016 | 56 | 179 | 34 | 6 | 1 | 2 | 19 | 13 | 3 | 17 | 42 | .213 | .291 | .300 | .591 | -1 | |
2017 | 44 | 83 | 16 | 2 | 1 | 2 | 6 | 10 | 0 | 6 | 23 | .211 | .277 | .342 | .619 | -0.2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AR |
2018 | 세이부 | 30 | 41 | 6 | 1 | 0 | 0 | 8 | 2 | 0 | 2 | 10 | .154 | .195 | .179 | .375 | -0.5 |
NPB 통산 (17시즌) | 1913 | 7956 | 2090 | 411 | 65 | 201 | 1065 | 837 | 363 | 572 | 1220 | .291 | .344 | .450 | .793 | 60.5 |
역대 기록(MLB)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2004 | NYM | 114 | 509 | 125 | 32 | 2 | 7 | 65 | 44 | 14 | 40 | 97 | .272 | .331 | .396 | .727 | 0.4 |
2005 | 87 | 295 | 68 | 9 | 4 | 3 | 31 | 24 | 6 | 14 | 43 | .255 | .300 | .352 | .652 | 0.1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2006 | NYM/COL | 104 | 453 | 65 | 12 | 3 | 3 | 32 | 26 | 10 | 16 | 46 | .267 | .310 | .379 | .688 | 0.4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2007 | COL | 104 | 453 | 118 | 24 | 6 | 4 | 84 | 37 | 32 | 34 | 69 | .288 | .342 | .405 | .747 | 2.7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2008 | HOU | 96 | 422 | 110 | 26 | 3 | 6 | 58 | 33 | 20 | 37 | 53 | .293 | .354 | .427 | .781 | 1.8 |
2009 | 132 | 533 | 118 | 20 | 2 | 9 | 56 | 46 | 9 | 34 | 85 | .250 | .302 | .357 | .659 | 0.7 | |
2010 | 27 | 78 | 10 | 1 | 0 | 0 | 4 | 1 | 1 | 4 | 10 | .141 | .197 | .155 | .352 | -0.8 | |
MLB 통산 (7시즌) | 630 | 2555 | 615 | 124 | 20 | 32 | 330 | 211 | 102 | 179 | 403 | .267 | .321 | .380 | .701 | 5.3 |
8.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전적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무 | 승률 | 정규시즌 | 포스트시즌 |
2023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143 | 65 | 77 | 1 | .458 | 리그 5위 | - |
2024[A] | 45 | 15 | 30 | 0 | .333 | 리그 6위 | ||
통산 | 188 | 80 | 107 | 1 | .428 | - |
9. 관련 문서
[1] 본명은 松井和夫. 등록명과 발음은 똑같다.[2] 시즌 도중 사임. 공식 발표는 휴양인데, 사실상 경질을 애둘러 말한 것에 가깝다.[3] 이 해 도루왕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무라마츠 아리히토가 58도루로 수상했다.[4] 이시게가 1994년 FA로 팀을 떠난 직후엔 외국인 타자 다린 잭슨이 1995~1996년까지 2년간 7번을 달고 있었다. 이후 잭슨의 퇴단에 맞춰 딱 7번이 비게 되면서 마쓰이 가즈오가 이 번호를 달게 된 것.[5] 코사카 마코토와 공동 수상이며, 이 도루왕 경쟁 과정에서 세이부 벤치가 코사카를 상대로 고의 보크를 시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코사카 항목에 자세한 상황이 서술되어있다.[6] 투표에서는 앞의 두 선수들보다 1위표를 적게 받았으나, 그 대신 2위표를 배로 받으면서 총 점수에서 19점 차이로 1위를 차지하여 MVP 수상에 성공했다.[7] 일본프로야구 20세기 센츄리 베스트 나인 선정자 : 투수 에나츠 유타카, 포수 후루타 아츠야, 1루수 오 사다하루, 2루수 오치아이 히로미츠, 3루수 나가시마 시게오, 유격수 마쓰이 가즈오, 외야수 장훈, 스즈키 이치로, 마쓰이 히데키[8] 심지어 그의 대표적 소속팀이었던 세이부는 그가 입단하기 직전인 1992년을 마지막으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마쓰이가 메이저로 떠난 직후인 2004년에 바로 일본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9] 같은 시기 이승엽도 FA로 풀려 해외진출을 타진하고 있어 여러모로 비교대상이었는데, 2003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전 국내 모 방송과 인터뷰를 갖기도 했다.[10] 사실 메이저리그에서 규정타석을 채우기도 힘든데 그만큼 실력이 있어야하고 부상을 당하지 않아야한다.(KBO 출신중에선 메이저리그에서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가 아무도 없었다가 2022년에 비로소 김하성이 최초로 규정타석에 도달했다.)[11] 이에 시즌 후반에는 1번 타자로 주로 나섰다.[12] 이유는 따로 없고, 마쓰이가 돌아올 당시 거포 타자로 활약하던 야마사키 타케시가 7번을 등번호로 쓰고 있었다. 그리고 2011 시즌 종료 후 방출된 야마사키가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하면서 마쓰이가 7번으로 바꿔 달았다.[13] 진짜 적은 홈런 수인데 이게 팀 2위 기록이다. 아무리 2011년 NPB가 반발력이 적은 공인구를 새롭게 도입하면서 최악의 투고타저 시즌이 되었다곤 하지만 심한 편이였다. 참고로 팀 1위는 위에 나온 야마사키 타케시인데 홈런이 11개였다. 야마사키가 당시 43세의 고령인 걸 감안해야 한다.[14] 이건 팀내 공동 1위.[15] https://youtu.be/GoIMsHk7s9g[16] 한국으로 치면 이종범이 다른 팀 구장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작게 은퇴기념 행사를 했던 것과 비슷하다.[17] 강정호와 똑같다.[18] 마쓰이는 메이저리그에서 유격수보다 2루수로 출전한 경기가 많기에 주로 2루수로 비교하는편이다.[19] 2020년 기준으로 평균적인 2루수는 약 90정도를 기록한다.[20] 특히 강정호의 진출때 많이 언급된 사항이다.[21] 마쓰이 가즈오가 데뷔할 당시 세이부의 2루수는 츠지 하츠히코였다. 츠지는 전성기 시절 되려 유격수의 수비범위를 야금야금 뺏어먹는 아크로바틱한 수비를 펼쳤지만 세월 앞에서는 장사 없었고, 결국 마쓰이 가즈오는 츠지가 커버하지 못하는 수비범위를 보완했고, 이러한 플레이는 츠지가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하고 타나베 노리오나 다카기 히로유키등이 2루를 맡았을 때도 계속되었다.[22] 킨테츠 버팔로즈 출신의 2루수, 후쿠모토 유타카의 연속 도루왕 타이틀을 저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2008~2009년 오릭스 버팔로즈 감독을 맡기도 했다.[23] 코사카 마코토는 억울하게도 소속팀의 성적과 저조한 타격 때문에 저평가 받아왔다. 참고로 일본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골든 글러브는 수비위주로 주는 상이다. 각 포지션에서 가장 뛰어난 공격력을 보인 선수에게는 미국의 실버 슬러거처럼 베스트 나인 상이 수여된다. 그래서 비록 타격이 부실하지만 코사카에게 수상자격이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24] 이때문에 톰 글래빈이 '왜 일본인들은 땅볼 타구를 정면으로만 처리하는지 모르겠다.'고 언론에 대놓고 디스를 할 정도였다.[25] 일반적으로 2루수는 유격수보다 어깨가 약하지만 다른 능력은 좋은 선수들이 가는 포지션이라 마쓰이 가즈오의 어깨는 MLB에서도 2루수중 매우 좋았다.[26] 다만 와카바야시는 데뷔 시즌 초반부터 20도루를 기록하며 순조롭게 주축 리드오프로 정착하나 싶었지만 시즌 도중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며 잔여시즌을 날려버렸고, 부상 여파 탓인지 2년차인 2022년엔 성적 부진으로 인해 백업으로 밀려났다.[27] 후에 밝혀지기로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28] 마츠이 본인에겐 PL학원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며, 라쿠텐에선 입단 첫 해인 2011년엔 팀메이트, 이후엔 마츠이 본인이 퇴단할 때까지 선수-코치로써 함께 뛰었다.[29] 외국인 타자 데이비드 맥키넌이 파리그 외국인타자 WAR 1등이긴 하지만 극한의 투고타저인 리그 환경에서 그나마 평균을 조금 상회하는 정도의 타격과 괜찮은 수비능력을 보여준다는 정도이지 중심타자로 아주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다.[30] 정작 이날 시합은 0:1로 뒤지던 상황에서 8회말 5득점 빅이닝에 힘입어 5:2 역전승을 거두고 위닝시리즈를 확정했다.[31]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닌 경질을 에둘러서 표현한 단어. 우리나라로 따지면 명예퇴직에 가까운 개념이다. 주니치에서 감독을 맡던 타니시게 모토노부가 같은 이유로 2016 시즌 도중 경질되었다.[32] Kaz Matsui는 주로 언론에서 많이 쓰던 이름이었고, 실제는 자신의 이름 영어 표기 그대로 등록됐다.[33] 미국 언론에서는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발음과 표기가 쉽지 않은 동양계 선수들의 이름을 저런 식으로 짧게 쓰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보스턴 레드삭스 등에서 활동했던 오카 토모카즈와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에서 활동했던 스즈키 마코토로, 오카는 'Tomo Ohka'로 불렸었고, 스즈키 마코토는 'Mac Suzuki'로 불렸었다. 이쪽은 일본프로야구에 복귀한 후 아예 '맥 스즈키'를 등록명으로 사용했을 정도. 봉중근도 한동안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론에서 Jung Bong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34] 2011년 4월 15일 고시엔 구장.[35] 그리고 마쓰이 가즈오는 박찬호를 상대로 1회 선두타자 홈런을 쳤다.[36]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겸한 대회였다.[37] 두 대회 모두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세이부 라이온즈를 대표해서 참가했다.[38] 대신 그해에는 본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일본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39] 2009년 박동희 기자가 재일동포 고교생 야구단 한재우 前 감독을 취재한 기사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출처[40] 여담으로 일본에는 마쓰이 가즈오가 2000년에 귀화했다며 관보에 그 기록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블로거들이 일부 있지만, 가즈오 본인이 귀화했다고 말한 적이 없고 제도권 언론에서 팩트 체크가 이뤄진 적도 없기 때문에 진위 여부는 불분명하다.[A] 휴양 통보 당일인 5월 26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