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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6 10:48:01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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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방 제5대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Дми́трий Медве́дев | Dmitry Medvedev
파일:Dmitry_Medvedev_official_portrait_(05).jpg
본명 드미트리 아나톨리예비치 메드베데프[1]
Дми́трий Анато́льевич Медве́дев
Dmitry Anatolyevich Medvedev
출생 1965년 9월 14일 ([age(1965-09-14)]세)
소련 러시아 SFSR 레닌그라드
(現 러시아 북서 연방관구 상트페테르부르크 연방시)
재임기간 제5대 대통령
2008년 5월 7일 ~ 2012년 5월 7일
제11대 총리
2012년 5월 8일 ~ 2020년 1월 15일
서명
파일: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서명.svg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텔레그램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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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A1942><colcolor=#fff> 부모 아버지 아나톨리 아파나셰비치 메드베데프
어머니 멜라냐 바실리예브나 코발레바
배우자 스베틀라나 블라디미로브나 메드베데바[2]
자녀 장남 일리야 드미트리예비치 메드베데프
학력 레닌그라드 대학교 (법학 / 석사)
종교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신체 168cm, 79kg[3]
소속 정당
}}}}}}}}}

1. 개요2. 약력3. 생애4. 정치적 입지5. 여론6. 앞날
6.1. 푸틴에게 반기를 든다면?6.2. 푸틴의 은퇴 또는 사망 이후
7. 선거 이력8. 소속 정당9. 여담
9.1. 애호 기질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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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5대 러시아 대통령 취임 선서
러시아 연방의 제5대 대통령.[4]

푸틴 정권의 2인자로 현재는 통합 러시아의 당수이자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직을 맡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최측근으로, 푸틴의 보좌관, 선대위원장, 대통령비서실장, 부총리 등을 거쳐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제5대 러시아 연방 대통령을 지냈다. 2012년 푸틴이 다시 대통령에 취임한 후부터 2020년까지 총리를 역임했다. 2020년 1월 15일에 푸틴의 국정 동력을 새롭게 확보하자는 명분 하에 내각총사퇴를 결의한 뒤 신설된 국가안보회의의 부의장이 되었다. 영상

2. 약력

3. 생애

1965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아나톨리 메드베데프와 멜라냐 코발레바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82년 레닌그라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법학언어학을 공부했다. 1987년 법학부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 입학했고, 지도교수로 아나톨리 소브차크[5] 교수 밑에서 공부하게 되면서 같은 교수 밑에서 수학했던 블라디미르 푸틴과 선후배로 친분을 쌓게 되었다.[6] 1990년 민법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공직 및 기업 활동과 병행하면서 1999년까지 동 대학에서 강사로 민법 등을 강의했다.

1991년 러시아 8월 쿠데타 이후 푸틴은 KGB를 나와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 공무원으로 옮겼는데, 메드베데프는 1992년 푸틴과 같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 공무원으로 입직하여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3년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대학 시절 지도교수의 중재의형제 관계를 맺고 같은 한 배를 타게 된다. 1993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목재 기업 Ilim Pulp Enterprise (ILP)의 법률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ILP는 러시아에서 급성장했고, 메드베데프는 본격적으로 공직활동에 투신하던 1999년 ILP 보유 주식을 비공개 매각했다. 1996년에는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을 도와 보리스 옐친 대선 캠프에서 일했다.

1999년 보리스 옐친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푸틴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면서 푸틴의 발탁으로 대통령비서실 제1차장이 되었다. 이후 2000년 대선에는 푸틴의 대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푸틴의 대통령 당선의 공신이 되었다.

푸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러시아의 국영 천연 가스 개발 기업인 가즈프롬 이사장이 되어 대통령이 되는 2008년까지 재직하였다. 2003년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고, 2005년제1부총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내각실세로 등극했다.

3.1. 2008년 러시아 대통령 취임

3.1.1.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행정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행정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2. 2012년 재선 불출마 후 러시아 총리 취임

재임기 기간 동안에도 재선에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사실 메드베데프가 러시아 대통령이 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3선 금지 조항에 걸려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니 푸틴의 충실한 부하라면 재선에 도전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결국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2011년 9월 25일 열린 러시아 집권당인 통합 러시아의 연례 전당대회에서, 2012년 3월에 있을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에 자신이 출마하지 않고 푸틴을 추대할 것임을 공식 발표했다. 대통령을 중임 제한에서 3선 가능으로 개헌한 것도, 푸틴의 장기집권(5선, 20년) 기반을 마련한 것뿐이다. 푸틴도 이에 화답하여 메드베데프를 러시아 총리로 재기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사

그리고 총선에서 푸틴이 60%의 지지율을 확보하면서 어렵지 않게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2012년 5월 7일, 푸틴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고 푸틴에게 총리로 지명되었다가 하루 뒤인 8일에 총리 임명이 승인되어, 안방마님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통령 임기 마지막에 푸틴이 잡아넣은 범죄자 석방 요구하여 반항하는 것처럼도 해석됐지만, 이 역시 푸틴에게 반항하는게 아니라 푸틴 반대파 달래기용 립서비스 혹은 푸틴에게 씌어진 독재자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탈피시켜려는 서로 합의된 약속 대련이라는 분석이 많다.

2016년 8월, 러시아 교사들의 월급과 관련한 실언을 해 여론이 악화되었다. 간담회에 참석해 '선생과 대학 초임 교수들이 경찰관의 5분의 1 수준인 1만 루블(약 17만 ) 정도의 월급밖에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을 더 벌기 위해선 부업을 하라"'는 답변과 함께 선생은 천직이라며 만일 돈을 벌길 원하면 사업가로 전업하는 게 나을 것이란 말을 덧붙인 것이다. 교사의 고충을 무시하는 발언에 비난을 받게 되었고 총리직 사퇴를 요구하는 청원이 빗발치고 있다. 청원서에는 게재 첫날에만 16만 명이 서명했고 그 후 26만 명 이상으로 늘어나 총리 사퇴 압박이 높아졌으나 결국 유야무야 됐다.

2017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폭로에 의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前 대통령이 어마어마한 부정축재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내용인 즉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저택, 부모 고향의 거대 농원, 소치의 초호화 별장 흑해 연안과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와이너리, 호화 요트등을 대학 동창, 친인척 명의의 재단을 통해 소유하고 있는데 이 재단의 부동산 매입 자금이 러시아 거대 재벌들인 올리가르히들로부터 나왔다는 것. 이 폭로 때문에 2017년 3월 러시아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대저택 연못 한가운데에 오리집이 있다는 보도 때문에 시위 현장에 러버덕이 등장하기도 했다.
2019년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에서 니콜라스 마두로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일본과의 영토 분쟁 지역인 쿠릴 열도의 4개 중에 이투루프 섬을 방문했다.

2020년 1월 15일에 총리직 사퇴 및 내각총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는 개헌을 돕기 위함으로, 푸틴 대통령은 곧바로 사표를 수리했다. # 정책이나 스캔들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아니므로 통합 러시아 당수 직은 계속 유지한다. # 다음 날인 1월 16일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으로 임명되었다.

3.3.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2년 11월 1일, 텔레그램을 통해 서방 국가의 입장은 러시아의 승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고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영원한 분리, 러시아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밝히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 서방에서 핵 카드를 사용할 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2022년 말에는 조롱조로 23년에는 유럽연합이 해체되고 미국에는 내전이 발발하며 일론 머스크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23년 2월 7일 뉴스위크의 보도에 따르면 자신의 텔레그램에 # 우크라이나가 한반도와 같은 분단 상태로 휴전하는 시나리오를 고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의 올렉시 다닐로우 NSC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가짜 뉴스라고 반박했다.

2023년 4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의사에 대해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최신 무기 지원이 이루어지면 어떻겠느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

2023년 5월 12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크렘린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죽음을 기원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있는 것은 크렘린이 아니라 히틀러와 같이 자살 뿐이라고 말했다.#

2023년 6월 23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러시아를 미친 짐승처럼 쏴 죽이겠다는 발언에 대해 쓰레기라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강하게 비난하며 이들과는 협상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2023년 7월 30일 나토의 지원으로 반데라주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를 점령할 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2024년 2월 18일, 아브데옙카 점령일에 우크라이나를 러시와 영원히 분리시킴으로써 러시아의 붕괴를 가져오면 핵을 동원해서라도 폐허가 된 아브데옙카와 같이 서방을 파괴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4년 3월 4일,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지방 소치에서 열린 세계청년축제 교육 마라톤 지식, 최초 행사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분리될 수 없으며, 러시아의 영토 보전에 대한 침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연설했다.#

2024년 3월 1일, 독일 연방군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타우러스 미사일 배치를 논의한 것이 유출된 것에 대해 "우리의 영원한 적수인 독일이 다시 한 번 원수로 변했다"며 독소전쟁을 언급했다. 그의 글은 "독일 파시스트들에게 죽음을!"으로 마쳐졌다. #

2024년 3월 20일 프랑스의 우크라이나 파병에 대해 "파병 시 에마뉘엘 마크롱과 프랑스 수뇌부의 거시기단두대절단시켜야 한다"고 반발했다.#

2024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사건에 대해 깊이 애도하면서 테러리스트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고, 이들이 우크라이나 테러리스트라는 것이 확인되면 키예프 정권에 죽음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4. 정치적 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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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바지사장이자 허수아비인 그의 정치적 위치를 잘 보여주는 합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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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드베데프와 푸틴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어차피 메드베데프 본인이 푸틴의 심복이므로 전혀 이상할게 없어보이지만, 문제는 이 사진이 촬영된 당시 메드베데프는 대통령이었고 푸틴은 총리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총리가 김종필급이 아닌 이상 경질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 당시에도 푸틴이 실권자였고 동시에 메드베데프 본인이 푸틴의 심복격 되는 인물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과는 상반되는 부드럽고 엘리트한 이미지로 한국 웹상에서는 바지사장 등으로 불리고 있다. 외국 웹에서는 '로빈'으로 통일.[7]

심지어 재무장관 '알렉세이 레오니도비치 쿠드린'이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비판하자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그럼 사표 쓰든가 라고 했는데 쿠드린은 푸틴 총리하고 상의해보고 결정한다고 해서 메드베데프가 제대로 화를 내고, 경질시킨 일도 있었다.기사 동영상 아무리 메드베데프가 바지사장 이미지라 해도, 당시 메드베데프는 엄연히 러시아 연방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통령 입장인 메드베데프로서는 당연히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본인의 핵심 인사들끼리의 싸움에 침묵하던 푸틴은 결국 내각 회의에서 "지금은 온 나라가 아주 긴 선거운동과 논쟁의 시기에 들어섰다"면서 "모두가 새로운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기강과 책임감을 높이길 바란다"고 하면서 수습에 들어가며 이같은 결정은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조율된 것이며 공통의 결정#이라고 하며 메르베데프의 결정에 공개지지를 표명하며 갈등을 수습했다. 그렇다고 푸틴이 쿠드린을 내친 것도 절대 아니다. 단지 이번 갈등에서는 메르베데프의 손을 들어주면서 갈등을 더 일으키지 말라고 교통정리를 한 것이다. 실제로 쿠드린 본인도 이후 차기 정권 잔류 의사를 밝히면서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고# 경질된 이후에는 푸틴에 의해 2018년 감사원장으로 발탁되고 # 2022년 현재도 계속 일하고 있다.

5. 여론

러시아 내에서도 푸틴의 카리스마에 눌려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다. 아직도 그의 사진보다는 푸틴의 사진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사실.

그래도 진보진영 젊은 층들과 푸틴까들에게 매니악한 인기를 얻었다. 다만 이는 그저 "푸틴이 아니라서"라는 이유 하나에서일 뿐이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의 야당 중 하나인 공정 러시아는 푸틴에는 표면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메드베데프에게는 호감을 표하며 그의 정책을 지지했다. 물론, 메드베데프가 푸틴의 후계자이고 당시 취했던 리버럴 정책들도 대부분 푸틴계의 중도 확장성을 위해 전략적인 행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지금은 러시아 리버럴계는 메드베데프를 극혐한다.

친푸틴 진영 내에서도 압도적 정통성 때문에 푸틴의 후계자로 가장 각광받던 인물이었으나, 푸틴도 최근에는 메드베데프와 서서히 거리를 두고 있고 대중적 인식 역시 알렉세이 나발니가 메드베데프가 저지른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바람에 이미지가 크게 하락했다. 정황상 푸틴이 늙어서 대통령을 그만두면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이 될 확률이 높은데, 벌써부터 푸틴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고 사실상 여당인 통합 러시아 당수 자리에 앉아서는 극단적인 발언만 주구장창 쏟아낸 끝에 미래가 밝지 못하다고 할 수 있고 결국 통합 러시아 당수 자리만 지킬뿐 세계적으로도, 러시아 내에서도 본인의 입지를 거의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아직 나이가 심하게 많은 것도 아니고, 푸틴과 가장 탄탄한 개인적 친분이 있는 명실상부한 오른팔이니만큼 그의 후광을 업고 다시 주류에 오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8]

서방에서는 원래 이미지가 썩 나쁘지는 않았으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스꽝스러운 망언들[9]을 쏟아내며 이미지가 극도로 나쁘게 바뀌었다.

6. 앞날

현재 메드베데프는 총리직은 내려놓았으나 통합 러시아당 당수직을 유지하는 등, 푸틴계열 정치인 중 가장 권한이 강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히며 러시아 정계의 2인자로 자주 여겨진다. 그러나 그의 앞날은 썩 밝지 않다고 전망된다.

6.1. 푸틴에게 반기를 든다면?

사실 어지간해서는 반기를 들 이유가 없다. 총리,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도 다 푸틴 덕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지냈다 한들 그건 연속 3선을 금지하는 러시아 헌법 때문에 잠시 대통령 자리를 지키는 역할로 앉혀두었던 것이지 당시에도 러시아의 실질적 권력자는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본인의 권력욕이 2인자 자리에 머무르는 데에 만족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면 모를까[10] 최고 권력자의 옆에 있으면서, 최고 권력자에 준하는 권력명예를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 이 정도로 만족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으로도 큰 책임을 질 필요도 없으니 오히려 제일 속 편한 입장일지도 모른다.

일단 진심으로 반기를 든다면 바로 버려질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쫓겨나진 않겠지만, 자신의 수족들이 대거 숙청당하는 모습을 꼼짝도 못하고 지켜봐야만 할 것이고 망명이라는 선택지 밖에 남지 않는다. 러시아는 민주주의 체제의 탈을 쓴 독재국가이며 최고 권력자는 바로 독재자 그 자신인데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이란 직위만 믿고 푸틴의 지위에 도전을 하려 든다면 러시아판 윤필용 사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메드베데프는 대통령 임기 동안 일부 정책에 있어서 푸틴과는 어느 정도 다른 정책을 쓴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푸틴에게 크게 각을 세우지 않았다. 아무리 푸틴이 자기와 평생을 함께한 동료라고 해도 일단은 독재자이기 때문에 메드베데프가 제대로 각을 세우고 덤비면 당연히 숙청할 가능성이 높다.

조급할 이유도 없는 게, 2020년대에 푸틴은 고령층에 접어들었으므로[11] 1인자를 노린다면 푸틴 사후를 노리는 게 낫다. 어차피 푸틴에게 개기지 않는 이상 2인자로서의 위치 정도는 충분히 보장될 테고 푸틴 사후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까 굳이 푸틴과 척을 질 필요가 없다. 당장 죽진 않더라도 본인의 기력이 정계에 있기 어렵게 되는 시점이 온다면 언젠가는 2인자를 지정할 것이다.

푸틴과의 개인적인 친분도 깊다.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같은 고향의 의형제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법학과 선후배 관계로, 매우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학연 지연 반혈연 트리플크라운 전쟁으로 인해 형을 잃어서 형제가 없는[12] 푸틴 입장에서는 조용한 성격의 메드베데프가 살벌한 러시아 정계에서 조금이라도 친동생처럼 보였을 가능성도 높고, 푸틴이 후계자를 고를 때 실로비키 측근보다도 오히려 온화한 엘리트 이미지의 메드베데프를 선호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메드베데프 입장에서도 정책 부분에서 가끔씩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푸틴의 정책을 충실히 따른다면 본인도 자신의 발언력과 푸틴의 후광을 동시에 입기 때문에 손해 볼 일은 없다. 물론 독재 국가의 측근 대다수가 이런 지연, 학연으로 얽힌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메드베데프 쪽에서 특별히 각을 세우지 않는다면 어지간해서는 이 친분이 깨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반기를 든다는 시나리오는 메드베데프가 대통령 직에 있을 때 제기된 희박한 가능성 수준이었고, 푸틴이 9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5선에 성공함에 따라 최소 대통령직만 30년 집권하는 것이 확정되어 종신집권을 바라보는 2024년 현재 기준으로 그냥 꿈에 불과한 수준이 되었다. 푸틴이 중간에 늙거나 해서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고 은퇴해서 상왕 자리에 남아있을 수도 있으나 아직까지는 그럴 생각이 없어보인다. 압도적인 지지율은 물론 알렉세이 나발니같은 그의 정치적 라이벌들이 의문사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 푸틴을 부정부패 의혹으로 총리 자리에서도 물러난 메드베데프가 거꾸러뜨릴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반 푸틴 세력이 푸틴의 심복이었고 대중적 이미지가 딱히 좋지도 않은 메드베데프를 중심으로 뭉칠리도 없고, 정치적 입지가 많이 사라진 메드베데프는 푸틴을 대신해 강경발언을 하는 저격수 역할을 하는 신세가 된 상태이다.

애초에 정치 생활 시작도 푸틴의 오른팔로 시작했고 지금도 더 성장하지 못하며 딱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통합 러시아당 당수와 같은 2인자 자리도 명목상 2인자일 뿐 실질적으로는 애매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메드베데프는 앞으로도 푸틴의 오른팔로써 역할을 충실히 하며 푸틴의 은퇴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받는 것을 노리고 있으나, 이마저도 메드베데프의 이미지가 워낙에 나빠서 불투명하다.

6.2. 푸틴의 은퇴 또는 사망 이후

푸틴이 나이가 들어 은퇴하거나 또는 죽을 때까지 종신집권[13]하다가 사망한 이후에는 '실로비키'라고 불리는 KGB 출신 푸틴의 이너 서클 멤버들과 피터지게 싸울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은 푸틴이 살아있어서 본격적으로 권력 투쟁을 하지는 않고[14] 일단 공식적으로는 메드베데프가 2인자이지만, KGB 출신 에게 푸틴이 엄청난 권력을 몰아준 것도 사실이다. 추가로 KGB 출신의 권력 견제를 위해 세르게이 쇼이구, 발레리 게라시모프같은 군부 출신 멤버들이 있다. 푸틴이 퇴진 또는 사망한다고 이들이 메드베데프가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가만히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로비키는 결집이 잘 되는 편인데 반해 메드베데프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제대로 결집이 안 된다. 정보기관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실로비키와 다르게 법조인, 경제관료, 기업인 등 출신이 제각각이라 의견이 안 맞는 듯하다. 대표적으로 알렉세이 쿠드린[15]이 메드베데프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상황이다. 결국 푸틴 사후 혹은 퇴진 후에 메드베데프에게는 험난한 권력투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만 2016년 현재, 러시아 국방장관세르게이 쇼이구를 임명한 장본인이 메드베데프이고 실제로 쇼이구 자체가 중도파라서 실로비키들에 대항할 나름대로의 견제력은 가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메드베데프는 기본적으로 푸틴의 오른팔로 정치를 시작한 인물이며 러시아 정계의 2인자급 인물이기에 정치적으로 푸틴의 이름값과 위상을 이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세계 어디를 가나, 절대적인 존재감이 있는 인물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이름에 의존하는, 이른바 '이름정치'가 존재하기 마련이다.[16]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8 러시아 연방 대통령 선거 러시아 연방
52,530,712 (71.25%) 당선 (1위) 초선

8.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소련 공산당|]]
? - 1991 입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1991 - 2008 정계 입문

2008 - 현재 입당

9. 여담

GQ 재팬에서 베스트 드레서 20에 선정되기도 했다. 실제로 특히 정장을 매우 세련되게 입는 편이다.*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시기에 일부러 대령 계급을 수여받았다.* 대통령 시절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햄버거 가게를 방문하여 가게의 미국인들과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으며 오바마 대통령과 식사를 하기도 했다.#

9.1. 애호 기질

덕력잉여력은 남달라서 트위터는 이틀에 한번 꼴로 업데이트되며, 엘튼 존의 공연에 다녀왔다고 인증한 적까지 있다.[18] G20 건으로 대한민국에 방문했을 때 삼성전자갤럭시 탭을 선물받아서 후기를 올렸으나 썩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덕분에 한국에선 잠깐 난리가 났다.
파일:external/static-ssl.businessinsider.com/dmitry-medvedev-photographed-with-steve-jobs-in-2010.jpg
거기다가 엘튼 존 공연 인증을 올릴 때 iPhone으로 한 걸 보면...

사진 덕후로 유명하며, 특히 라이카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다. 라이카는 풀프레임 DRF M9과 라이카 중형카메라를 쓴다. 캐논 플래그십 바디인 1DX나 캐논 5D, 니콘 제품도 쓰는 모습이 찍혔다. 이 중 라이카 중형 카메라는, 렌즈를 조금만 구성해도 억 단위까지 찍히며 1DX와 같은 바디도 수백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카메라다. 이 정도면 돈이 많아서 그냥 찍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찍어서 인스타에 올린 사진들을 보면 실력이 꽤 뛰어나다. 거의 사진 작가라 할 정도다.유튜브 링크 옆의 유튜브 링크는 2010년, 그러니까 대통령 재임 중에 개최한 사진전이지만, 2014년2015년에도 일정을 소화하면서 찍은 사진들로 사진전을 추가로 열었다. 2015년부터는 매년 개최(외국에서도 추진)를 목표로 한단다.

거기다가, 소련 시절에 금지되었던 록 음악 덕후인지라 몰래몰래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등을 즐겨들었고 그의 딥 퍼플 사랑은 유명하다. 심지어, 2008년 선거날에 러시아의 유명 밴드 류베붉은 광장에서 공연하는데, 푸틴과 함께 무대에서 같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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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국가연합 국가원수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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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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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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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세를 적용한 러시아어 발음은 '[ˈdmʲitrʲɪj ɐnɐˈtolʲjɪvʲɪtɕ mʲɪdˈvʲedʲɪf\](드미트리이 아나톨리이비치 미드볘디프)'에 가깝다.[2] 혼전성은 '린니크(Линник)'.[3] 구글 프로필 상의 키는 163cm으로 나오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사진을 보면 163cm보다는 큰 것으로 보인다. 다만 거의 모든 사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보다 작으므로, 약 160대 중후반일 가능성이 높다. 동나이대 러시아인에 비해 상당한 단신이다.[4] 다만 당시 실권은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있었다.[5] 훗날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이 되어 푸틴의 상사가 됐다.[6] 특유의 걸음걸이나 각종 깜짝 쇼맨십을 통해 KGB 출신이라는 티가 나는 푸틴과는 달리 메드베데프는 그런 경향이 전혀 없다.[7] 2010년 위키릭스에서 공개된 한 외교 문건에서 푸틴을 러시아의 1인자, 메드베데프를 2인자로 표현하는데 쓴 표현이 푸틴은 배트맨, 메드베데프는 로빈이었던 데에서 유래한다.[8] 메드베데프는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최근 전세계적으로 정치인들의 연령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메드베데프도 아주 늙은 것은 아니다.[9] 러시아 공식 논평문에서도 이 정도로 극단적인 발언은 당연히 없고 이 정도면 북한 혹은 아소 다로 수준의 발언 수위이다.[10] 사실 권력이란 게 높은 자리에 오르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게 되는 법이니 더 큰 욕심을 부려 파멸하는 인물이 많다. 특히나 2인자는 권력자와 물리적으로도 가까이 있다 보니 권력 탈취의 성공률이 다른 인물보다 높아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 일국의 2인자는 더 바랄 것도 없어보이는데도 배신을 하고 파멸하는 일이 많다.[11] 2023년 10월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썰까지 돌 정도였다. 결국에 근거 없는 썰이었지만 2020년대에 들어서서 종종 그런 건강이상 썰이 돌곤 한다.[12] 한 명은 너무 어린 시절 원인미상으로 죽고, 또 다른 한 명은 굉장히 어린 나이에 레닌그라드 포위전 당시 병에 걸려 죽었다. 푸틴은 이들이 죽고 전쟁이 끝난 후에 태어났다.[13] 공식적으로는 정계를 은퇴했지만 막후실세로서 사실상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 포함.[14] 그랬다간 실로비키고 메드베데프고 할 것 없이 사이좋게 숙청당하기 때문.[15] 현재 러시아 연방 회계감사원장[16] 북한의 경우 김일성의 이름에 의존해서 김정일, 김정은이 정권을 장악한 형국이다. 미국 역시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존 F. 케네디등의 이름에 의존하는 정치인들이 꽤나 있으며, 대표적인 예로 주일 미국대사를 역임했던 존 F. 케네디의 친딸 캐롤라인 케네디가 있다. 대한민국 역시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이름에 의존하는 정치인들이 꽤나 존재한다. 대통령까지 지낸 박근혜, 문재인 모두 정치인으로서의 출발점이 박정희의 딸과 노무현의 친구이자 대통령비서실장이라는 타이틀이었다. 이밖에도 윤석열 현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 심판을 출발점으로 정권을 잡았으며 조국 현 조국혁신당 대표는 그러한 윤석열 정부에 대항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국민의당 이후 가장 거대한 제3당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17] 일각에서는 숙청될까봐 두려워서 막말을 쏟는 것이라고 하는 여론이 있으나 실제로는 집권 초기에 리버럴 발언을 한 것은 단순히 진보 성향 러시아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는 평가가 있고 그러한 진보 성향 러시아 계층이 박살난 현재는 본인의 성향을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18] 여담으로 그의 상관인 블라디미르 푸틴2007년 붉은 광장에서 열린 폴 매카트니의 러시아 공연에 직관을 온 것이 방송국 카메라에 우연히 찍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