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 | 노바야 가제타 Новая Газета | }}} | ||
국가 |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 ||||
설립 | 1993년 4월 1일 | ||||
폐간 | 2022년 9월 5일 (러시아)[1] | ||||
본사 소재지 | 러시아 모스크바 | ||||
홈페이지 |
[clearfix]
1. 개요
러시아의 일간지. 이름은 '새로운 신문'이란 뜻이다.1993년 4월 1일 드미트리 무라토프 등 진보성향 언론인들에 의해 창간되었으며, 창설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자금 지원을 받아 설립되었다. 당시 러시아의 열악한 재정 상황 때문에 한동안 발행이 불규칙했으며, 1995년부터는 정상적으로 발행되기 시작했다.
소유구조는 현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소유주인 러시아 기업인 알렉산드르 레베데프가 39%,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0%, 나머지 51%는 사원지분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성향은 영국 가디언 지와 독일 슈피겔지, 프랑스 르몽드와 비슷하며, RT(러시안 투데이), 스푸트니크같은 국영매체와 비교했을 때 진보적인 편에 속한다.
2. 탄압
- 이고르 돔니코프 (1959 ~ 2000): 거리에서 망치로 살해당함
- 빅토르 포프코프 (1946 ~ 2001): 거리에서 저격당하여 사망함
- 유리 셰코치힌 (1950 ~ 2003): 부편집장. 독극물 중독 후 사망함
- 안나 폴릿콥스카야 (1958 ~ 2006): 자택에서 저격당하여 사망함
- 아나스타샤 바부로바(Anastasia Baburova) (1983 ~ 2009): 거리에서 저격당하여 사망함
- 나탈리야 에스테미로바(Natalia Estemirova) (1958 ~ 2009): 납치 후 살해된 채로 발견됨
원래부터 정부와 그렇게 친한 언론은 아니었지만, 2000년 푸틴이 집권한 이후 본격적으로 언론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러시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정부로부터 심각한 탄압을 당하고 있다. 특히 2014년에 러시아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경고를 받기도 했다.#
특히 연방보안국의 1999년 모스크바 아파트 테러 개입 의혹과 체첸전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인종청소(Зачистка), 유리 부다노프 사건[2] 같은 전쟁범죄를 집중적으로 폭로했고, 이 때문에 체첸전 및 정부 내 비리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들이 위와 같이 의문사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그래서 아예 언론사에서 자체적으로 기자들에게 호신용 권총을 지급했다.#
그럼에도 세 고래 사건,[3] 데도프시나(Дедовщина) 등 굵직한 주제를 다루었고, 푸틴 시절보다 조금 완화되었던 메드베데프 시기에는 처음으로 메드베데프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크림 사태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군 개입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파나마 페이퍼스를 러시아 내에서 처음으로 보도한 러시아에서 몇 안되는 진보계열 언론이다.
해당 신문을 다룬 영국 가디언 기사
2021년 3월 15일에 화학물질 공격을 받았다고 신문사 측이 밝혔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 러시아 정부의 탄압이 심각해지자 견딜 수가 없어 발행을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독일로 본거지를 옮겨 인터넷 기사는 지금도 올리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2022년 9월 5일 노바야 가제타를 폐간시켰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사망하고, 서방과의 관계도 사실상 단절된 상황에서 이젠 최소한으로도 눈치볼 게 없어졌기 때문이다.
2023년 7월, 옐레나 밀라시나 기자와 변호사 알렉산더 네모프가 인권 침해 의심 사건 심리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체첸에서 괴한들에게 폭행 당한 사건이 있었다.#
2023년 9월 1일. 러시아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드미트리 무라토프를 이른바 '외국 스파이'로 지목했다.#
3. 노벨평화상 수상
{{{#cd9f51 {{{#!wiki style="padding: 5px 0 0; margin:-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582d2d, #663334, #663334, #582d2d)"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folding [ 20세기 ] {{{#!wiki style="margin:-5px -1px -5px; word-break:normal" {{{#555,#aaa | <rowcolor=#cd9f51> 1901 | 1902 | ||
앙리 뒤낭 | 프레데리크 파시 | 엘리 뒤코묑 | 샤를 알베르 고바 | |
<rowcolor=#cd9f51> 1903 | 1904 | 1905 | 1906 | |
- | ||||
윌리엄 랜들 크리머 | 국제법학회 | 베르타 폰 주트너 | 시어도어 루스벨트 | |
<rowcolor=#cd9f51> 1907 | 1908 | |||
에르네스토 모네타 | 루이 르노 | 클라스 아르놀드손 | 프레드리크 바예르 | |
<rowcolor=#cd9f51> 1909 | 1910 | 1911 | ||
- | ||||
데스투르넬 드 콩스탕 | 오귀스트 베르나르트 | 국제평화국 | 알프레트 프리트 | |
<rowcolor=#cd9f51> 1911 | 1912 | 1913 | 1917 | |
토비아스 아서르 | 엘리후 루트 | 앙리 라퐁텐 | 국제적십자위원회 | |
<rowcolor=#cd9f51> 1919 | 1920 | 1921 | ||
우드로 윌슨 | 레옹 부르주아 | 얄마르 브란팅 | 크리스티안 랑에 | |
<rowcolor=#cd9f51> 1922 | 1925 | 1926 | ||
프리드쇼프 난센 | 오스틴 체임벌린 | 찰스 G. 도스 | 아리스티드 브리앙 | |
<rowcolor=#cd9f51> 1926 | 1927 | 1929 | ||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 페르디낭 뷔송 | 루트비히 크비데 | 프랭크 켈로그 | |
<rowcolor=#cd9f51> 1930 | 1931 | 1933 | ||
나탄 셰데르블롬 | 제인 애덤스 | 니컬러스 버틀러 | 노먼 에인절 | |
<rowcolor=#cd9f51> 1934 | 1935 | 1936 | 1937 | |
아서 헨더슨 | 카를 폰 오시에츠키 | 카를로스 라마스 | 로버트 세실 | |
<rowcolor=#cd9f51> 1938 | 1944 | 1945 | 1946 | |
난센 국제난민 사무국 | 국제적십자위원회 | 코델 헐 | 에밀리 그린 볼치 | |
<rowcolor=#cd9f51> 1946 | 1947 | 1949 | 1950 | |
존 모트 | 퀘이커 봉사협회 | 존 보이드 오어 | 랠프 번치 | |
<rowcolor=#cd9f51> 1951 | 1952 | 1953 | 1954 | |
레옹 주오 | 알베르트 슈바이처 | 조지 마셜 | 유엔난민기구 | |
<rowcolor=#cd9f51> 1957 | 1958 | 1959 | 1960 | |
레스터 피어슨 | 도미니크 피르 | 필립 노엘베이커 | 앨버트 루툴리 | |
<rowcolor=#cd9f51> 1961 | 1962 | 1963 | 1964 | |
다그 함마르셸드 | 라이너스 폴링 | 국제적십자위원회 | 마틴 루터 킹 | |
<rowcolor=#cd9f51> 1965 | 1968 | 1969 | 1970 | |
유니세프 | 르네 카생 | 국제노동기구 | 노먼 볼로그 | |
<rowcolor=#cd9f51> 1971 | 1973 | 1974 | ||
빌리 브란트 | 헨리 키신저 | 레득토 (수상 거부) | 사토 에이사쿠 | |
<rowcolor=#cd9f51> 1974 | 1975 | 1976 | ||
숀 맥브라이드 | 안드레이 사하로프 | 베티 윌리엄스 | 메어리드 코리건 | |
<rowcolor=#cd9f51> 1977 | 1978 | 1979 | ||
국제앰네스티 | 안와르 사다트 | 메나헴 베긴 | 마더 테레사 | |
<rowcolor=#cd9f51> 1980 | 1981 | 1982 | ||
아돌포 에스키벨 | 유엔난민기구 | 알바 뮈르달 | 알폰소 가르시아 | |
<rowcolor=#cd9f51> 1983 | 1984 | 1985 | 1986 | |
- | ||||
레흐 바웬사 | 데즈먼드 투투 |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 | 엘리 비젤 | |
<rowcolor=#cd9f51> 1987 | 1988 | 1989 | 1990 | |
오스카르 아리아스 | 유엔 평화유지군 | 달라이 라마 14세 | 미하일 고르바초프 | |
<rowcolor=#cd9f51> 1991 | 1992 | 1993 | ||
아웅 산 수 치 | 리고베르타 멘추 | 넬슨 만델라 | 프레데리크 빌럼 데 클레르크 | |
<rowcolor=#cd9f51> 1994 | 1995 | |||
이츠하크 라빈 | 시몬 페레스 | 야세르 아라파트 | 조지프 로트블랫 | |
<rowcolor=#cd9f51> 1995 | 1996 | 1997 | ||
퍼그워시 회의 | 카를로스 벨로 | 조제 하무스오르타 | 조디 윌리엄스 | |
<rowcolor=#cd9f51> 1997 | 1998 | 1999 | ||
- | ||||
지뢰금지국제운동 | 존 흄 | 데이비드 트림블 | 국경없는의사회 | |
<rowcolor=#cd9f51> 2000 | ||||
김대중 | ||||
}}}}}}}}}
- [ 21세기 ]
- ##
||<rowbgcolor=#663334><rowcolor=#cd9f51><-2> 2001 || 2002 || 2003 ||
}}}}}} ||
창간인이자 편집장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202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4]했다. 러시아 통신사 TASS에 따르면 "노바야 가제타에게, 그리고 표현의 자유라는 시민의 권리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분들에게 공을 돌린다. 그 분들이 우리와 더이상 함께 있지 않으니 (노벨 위원회는) 내가 대신 모두에게 이렇게 전해야한다고 정한 듯 하다. 이번 수상은 이고르 돔니코프, 유리 셰코치힌, 안나 폴릿콥스카야, 나스탸 바부로바, 나타샤 에스테미로바, 스타스 마르켈로프를 위한 것이다."라고 수상소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설적이지만 크레믈린도 대변인을 통해 수상을 축하했다.
4. 기타
- 워낙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다보니 러시아의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인 얀덱스 같은 사이트에서 메인으로 뜨는 일은 일절 없기 때문에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검색한다면 찾을 수야 있기는 하다만. 다른 러시아 신문과 비교하면(TASS 통신, 이즈베스티아, 로씨스카야 가제타 등) 비교적 르포 기사가 많다.
- 러시아어가 좀 되고 러시아 현대사에 관심있다면 역사적인 주제에 대한 기사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굴라그나 조지아의 스탈린 동상 이전 등.
[1] 현재 러시아에서는 대법원 판결로 종이 신문의 발행 정지 및 웹사이트 면허가 취소된 상황이나, 러시아 내 언론 환경이나 현재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신문 편집부에서는 노바야 가제타 에브로파 (유럽판 노바야 가제타)를 별도로 발행하면서 인터넷 언론 형식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2] 러시아군 대령으로 체첸전 참전 당시 체첸 소녀를 강간 뒤 살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2008년 조기 석방되었다. 이후 2011년 체첸인에 의해 암살당했다.[3] Дело трёх китов, 2000년 러시아 국세청에서 "새 고래들" 쇼핑몰의 탈세를 수사하던 중 연방보안국 전직 관료가 연루되었던 사건.[4]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공동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