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인 가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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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가문 Kennedy family | |
1960년 11월에 촬영한 케네디 가문의 사진.[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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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정치인 가문.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를 비롯한 여러 유력 정치인을 배출해낸 명문가로 유명세를 떨쳤다.케네디가의 저주로도 유명하다.
2. 상세
대통령 재직 중 암살된 존 F. 케네디(일명 JFK)가 제일 유명하며, 상원의원 및 법무장관을 역임하고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유력 대권 경선주자였다가 암살된 JFK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일명 RFK), 총 47년간 상원의원을 역임하며 민주당 내 진보파의 정치적 발전을 주도한 JFK, RFK의 동생 테드 케네디 역시 미국 정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유명했다. JFK 이후 케네디 가문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대표 가문으로 발돋움했으며, 선당후사를 중시한다.시어도어 루스벨트 이후 가장 젊은 나이로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는 동생 로버트 등 젊은 동부 엘리트들을 자신의 행정부에 적극적으로 기용하였으며, 냉전을 헤쳐나가고 민권 운동과 우주 경쟁에 공헌하며 젊고 도전적인 대통령의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젊은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 또한 특유의 패션과 사회 및 문화 공헌 활동, 백악관 정비 사업, 단란한 가족의 이미지 등으로 인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케네디 정부는 미국의 카멜롯이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로 대중들에 의해 낭만화되었고, 이러한 상징성은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과 로버트 F. 케네디 암살 사건 등 연이은 비극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케네디 가문은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지해왔으며, 케네디 가 정치인들 중 가장 장수한 테드 케네디를 중심으로 대선 및 중간선거 때마다 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지원을 해왔다. 대표적으로 학창시절에 JFK를 만난 적도 있었던 빌 클린턴과 케네디가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던 버락 오바마 등이 있다. 조 바이든 역시 테드 케네디와의 친분으로 오랜 시간동안 케네디가와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도 케네디가는 똘똘 뭉쳐 바이든을 지지했다.
다만 케네디 가에도 공화당 소속이 없진 않은데, 바로 JFK의 여동생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의 사위인 아놀드 슈워제네거이다. 아놀드는 유니스의 딸인 마리아 슈라이버와 결혼해 2003년 공화당 소속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민주당의 텃밭인 캘리포니아 주에서 공화당 소속인 아놀드가 당선될 수 있었던 건 케네디 가의 영향력이 컸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놀드는 2007년 재선에 성공해 8년동안 주지사직을 역임하다가, 퇴임 이후 다시 영화배우로 돌아가 현재는 정치현안에 언급을 하는 정도로만 활동을 하고 있다.[2] 아놀드가 출마했을 당시 케네디 가는 무척 당혹스러워했다고 하는데, 아놀드의 출마를 만류하지 않았지만 가문 차원에서의 지원은 일절 하지 않았다. 훗날 아놀드는 마리아와 정식으로 이혼절차를 밟았으며 현재는 케네디 가에서 이탈한 상태.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로버트 F.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아들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원래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고자 민주당 전당대회에 나갔지만, 조 바이든을 상대로 지지율 격차로 크게 밀리자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단행했다. 당연히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던 케네디 가문에서는 노발대발하며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는 충고를 했지만, 주류 민주당 세력들과 이미 이견 차이가 크게 벌어진[3] RFK 주니어는 독자출마를 밀어붙혔으며 완주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로 인해 케네디 가문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으며 케네디 가문의 가족들은 바이든에 대한 지지 의사를 다시 한번 밝히며 바이든 대선캠프에 지원을 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여러 비판 속에 후보직을 사퇴하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후보로 지목하자, RFK 주니어는 지지율이 한 자리 수로 떨어지며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지율을 올리는데 공을 들이고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RFK 주니어에게 내각을 조건으로 단일화 카드를 내밀자 RFK 주니어는 이를 승낙, 2024년 8월 23일 단일화를 선언하고 대선에 큰 영향을 줄 10곳의 경합주에서 후보 등록을 취소했다. 사실상 대선 후보 자리에서 사퇴한 셈. 애리조나의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지지연설도 했으며 트럼프는 RFK 주니어의 지지선언이 민주당 이탈표를 끌어오기를 내심 바란다는 인터뷰를 했다.
RFK 주니어가 끝내 트럼프 캠프로 넘어가자 케네디가에서는 비판성명을 내고 '가문의 수치' 라는 표현까지 쓰며 RFK 주니어를 비판했다. 사실상 이번 대선 국면을 기점으로 RFK 주니어와 케네디 일가는 절연한 것이나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케네디 가는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며 해리스 캠프에 엄청난 지원을 해주고 있다.
3. 목록
케네디/가족 관계 문서 참조. 여기에 없는 사람들은 영어 위키백과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1~3세대
- 패트릭 케네디: 1823년~1858년.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정착, 장티푸스로 사망.
- 브리짓 머피: 1824년~1888년. 패트릭 케네디의 아내.
- 패트릭 조셉 케네디: 1858년~1929년. 상인 출신의 은행가. 매사추세츠 지역의원.
- 메리 어거스타 히키: 1857년~1923년. 패트릭 조셉 케네디의 아내.
- 조셉 패트릭 "조" 케네디: 1888년~1969년. 미국 최고의 정치 명문 가문으로 유명한 케네디 가문의 기반을 다진 인물. 미국의 초대 증권거래위원회 회장이라는 점에서 보듯 증권투자에서 20대 때부터 크게 두각을 나타냈는데 이 사람의 투자를 단적으로 요약하면 1920년대 아메리카니즘 호황기 내내 주식투자로 현금을 쓸어담고 1929년 대공황 직전에 죄다 숏을 쳐서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주가 폭락 후 다시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다른 투자자들처럼 망하기는커녕 케네디 집안의 자금력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후일 주 영국 대사로도 일했으며 4남 5녀의 자식을 두었으나 살아생전 장남이 전사하고 차남이 암살당하고 3남마저 암살당한 데다 장녀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4] 차녀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는 비운을 맛보았다.
- 로즈 엘리자베스 피츠제럴드 케네디: 1890년~1995년[5]. 조셉 패트릭 "조" 케네디의 아내.
- 조셉 패트릭 "조" 케네디 주니어: 1915년~1944년. 조셉 P. 케네디 부부의 장남이자 첫째.
- 존 피츠제럴드 "잭" 케네디: 1917년~1963년. 조셉 P. 케네디 부부의 차남이자 둘째. 매사추세츠 주 연방 상원의원, 제35대 미국 대통령.
- 재클린 리 부비에 케네디 오나시스: 존 F. 케네디의 아내.
- 로즈 마리 "로즈마리" 케네디: 1918년~2005년. 조셉 P. 케네디 부부의 장녀이자 셋째.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명문가를 만들려는 아버지의 욕심으로 전두엽 절제술을 받았고 그 결과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이던 지능 수준이 2살 아기 수준으로 퇴화되고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거동할 수 없을 정도로 다리까지 절게 되는 등 폐인이 돼 묻힌 비운의 인물이다. 전두엽 절제술이 실패한 뒤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다 2005년 8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 캐슬린 애그니스 케네디 캐번디시 하팅턴 후작부인[6] : 1920년~1948년. 조셉 P. 케네디 부부의 차녀이자 넷째.
-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1921년~2009년. 조셉 P. 케네디 부부의 3녀이자 다섯째.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전 장모. 스페셜 올림픽의 창시자.
- 퍼트리샤 헬렌 "팻" 케네디 로퍼드: 1924년~2006년. 조셉 P. 케네디 부부의 4녀이자 여섯째. 영화배우 피터 로퍼드와 결혼했다가 이혼했으며 2006년에 사망했다.
- 로버트 프랜시스 "바비" 케네디: 1925년~1968년. 조셉 P. 케네디 부부의 3남이자 일곱째. 뉴욕 주 연방상원의원, 제64대 미국 법무장관,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경선 예비후보.
- 진 앤 케네디 스미스: 1928년~2020년. 조셉 P. 케네디 부부의 5녀이자 여덟째. 아일랜드 주재 미국 대사를 지냈다.
- 에드워드 무어 "테드" 케네디: 1932년~2009년. 조셉 P. 케네디 부부의 4남이자 아홉째. 매사추세츠 주 연방상원의원, 민주당 원내총무, 상원 사법/보건위원장,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경선 후보.[7]
- 애러벨라 케네디: 1956년~1956년. 존 F. 케네디 부부의 장녀이자 첫째로 사산되었다. 국립묘지의 케네디 부부의 무덤에 그냥 딸이라고 적힌 묘비만으로 안장되었지만 조사에 의하면 케네디 부부는 이 딸에게 애러벨라라는 이름을 붙여주려고 했기 때문에 이 이름으로 서술했다.
- 캐롤라인 부비에 케네디: 1957년~생존. 존 F. 케네디 부부의 차녀이자 둘째.[8] 2013년 1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일본 주재 미국 대사를 맡았다.
- 존 F. 케네디 주니어: 1960년~1999년. 존 F. 케네디 부부의 장남이자 셋째.
- 패트릭 부비에 케네디: 1963년~1963년. 존 F. 케네디 부부의 차남이자 넷째. 조산으로 태어났으며 이틀만에 사망했다.
- 케이틀린 하팅턴 케네디: 1951년~생존. 로버트 케네디 부부의 장녀이자 첫째.
- 조셉 패트릭 케네디 2세: 1952년~생존. 로버트 케네디 부부의 장남이자 둘째. 매사추세츠주 제8구에서 6선 연방하원의원을 역임했다.
- 로버트 프랜시스 케네디 주니어: 1954년~생존. 로버트 케네디 부부의 차남이자 셋째.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무소속[9] 후보. 일부 의제에서 보수파가 공감할 만한 정치 성향을 보여왔고, 결국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10]하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지 선언하며 사실상 트럼프와 후보 단일화를 하면서 형제자매들로부터 "우리 가문의 가치에 대한 배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실상 일가친척과 정치적으로 결별한 셈.
- 데이비드 앤서니 케네디: 1955년~1984년. 로버트 케네디 부부의 3남이자 넷째.
- 메리 카우트니 케네디: 1956년~생존. 로버트 케네디 부부의 차녀이자 다섯째.
- 마이클 러모인 케네디: 1958년~1997년. 로버트 케네디 부부의 4남이자 여섯째.
- 메리 케리 케네디: 1959년~생존. 로버트 케네디 부부의 3녀이자 일곱째.
- 크리스토퍼 조지 케네디: 1963년~생존. 로버트 케네디 부부의 5남이자 여덟째.
- 매슈 맥스웰 테일러 케네디: 1965년~생존. 로버트 케네디 부부의 6남이자 아홉째.
- 더글러스 해리먼 케네디: 1967년~생존. 로버트 케네디 부부의 7남이자 열째.
- 로리 엘리자베스 캐서린 케네디: 1968년~생존. 로버트 케네디 부부의 4녀이자 열한번째. 유복녀였다.
- 카라 앤 케네디: 1960년~2011년. 테드 케네디 부부의 장녀이자 첫째.
- 에드워드 무어 케네디 주니어: 1962년~생존. 테드 케네디 부부의 장남이자 둘째.
- 패트릭 조셉 케네디 주니어: 1967년~생존. 테드 케네디 부부의 차남이자 셋째.
- 조셉 패트릭 케네디 3세: 1980년~ 조셉 패트릭 케네디 2세의 장남. 아버지의 지역구가 있는 매사추세츠주의 제4구에서 4선 연방하원의원을 역임했다. 네 번째 임기 수행 중이던 2020년 매사추세츠주 선거구의 연방상원의원에 도전했으나 민주당 내 예비선거에서 당시 74세의 지역구 현역인 에드 마키 후보에게 10%p차로 패하며 낙천했고, 이로 인해 가문의 정치적 기원인 매사추세츠의 선거에서 처음으로 패배를 맛본 인물이 되었다. 2021년 연방하원의원 임기를 마무리한 뒤 매사추세츠 주지사 후보군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렸으나 출마하지는 않았고, 2022년 미국 중간선거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북아일랜드 특사로 파견되었다.
- 코너 케네디: 1994년 ~ 로버트 프랜시스 케네디 주니어의 차남.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와의 연애로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곧 결별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 국제군단의 일원으로 현지 전투에 참전하였다.
4. 문장
1961년 아일랜드 문장원 총재(Chief Herald of Ireland)가 존 F. 케네디에게 수여한 문장. 존 F. 케네디뿐이 아닌 패트릭 케네디의 모든 후손들에게 사용이 허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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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아버지 조지프 P. 케네디 · 배우자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 아들 존 F. 케네디 주니어 · 딸 캐롤라인 케네디 · 형 조지프 P. 케네디 주니어 · 남동생 로버트 F. 케네디 · 테드 케네디 | |||
역대 선거 |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 | |||
관련 정치인 | 린든 B. 존슨 · 리처드 닉슨 · 로버트 맥나마라 · 피델 카스트로 | |||
어록 |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 |||
사건사고 |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 |||
평가 | 평가 | |||
기타 | JFK(영화) ·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 링컨과 케네디의 공통점 | |||
케네디 행정부 | ||||
냉전 | 베트남 전쟁 · 쿠바 미사일 위기 · 피그만 침공 | |||
우주 계획 | 머큐리 계획 · 아폴로 계획 · 제미니 계획 | |||
사건사고 | 골즈버로 B-52 추락사고 · 알카트라즈 탈옥 성공 사건 · 앨라배마 대학교 흑인 등록 거부 사건 | |||
자유주의 · 케네디 가문 · 로버트 F. 케네디 · 테드 케네디 | }}}}}}}}} |
6. 관련 문서
[1]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다음 날,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두 자택에 모여 찍은 사진이다.[2] 단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서는 대선 출마 당시부터 비판적이었다.[3] 대선 출마 이전부터 RFK 주니어와 민주당/케네디 가문의 사이는 많이 벌어진 상태였다. 이유는 RFK 주니어가 코로나-19 국면에서 백신 음모론을 주장했기 때문이다.[4] 다만 이것은 본인이 직접 정신병원에 집어넣은 것이다.[5] 케네디 가문 인물들 중 무려 104세까지 장수했다.[6] 하팅턴 후작은 데본셔 공작의 추정상속인이 받는 작위로 그녀의 남편 윌리엄 캐번디시는 10대 데본셔 공작의 장남이었다.[7] 지미 카터에게 패배해 최종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8] 아라벨라가 사산되었기 때문에 첫째로 보기도 한다.[9] 케네디가 사람들이 그렇듯 당연히(?) 민주당 소속이었으나, 2024년 대통령 선거 경선 과정에서 재선 도전을 선언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고령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직 프리미엄 덕에 후보로 일찌감치 확정되는 당내 분위기가 조성되자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10] 초반에는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의 리턴매치로 굳어지는 흐름에 염증을 느끼고 대안을 찾는 유권자들 덕에 10~20%의 지지율을 보이는 등 상당히 선전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야외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아 부상당하고 바이든이 재선 도전 포기를 선언한 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대체후보로 급부상하면서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자 지지세가 팍 사그라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