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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5:01:52

나훈아

가황에서 넘어옴


파일:나훈아 로고.png

[ 정규 앨범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
파일:인생(人生).jpg
||
파일:공(空).jpg
||||||
인생(人生)
정규 3집

1999. 04. 12.
공(空)
정규 4집

2003. 03. 30.

정규 5집

2005. 09. 14.

정규 6집

2006. 11. 24.
파일:일곱 빛 향기.jpg
DREAM AGAIN
정규 7집

2017. 07. 17.
벗2
정규 8집

2019. 05. 03.
아홉 이야기
정규 9집

2020. 08. 20.
일곱 빛 향기
정규 10집

2022. 02. 22.
파일:새벽 (SIX STORIES).jpg
새벽
정규 11집

2023. 07. 10.
[ 대표곡 ]
[ 관련 문서 ]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fff,#1f2023><width=1000> 활동 ||<width=33.3%> 음반 ||<width=33.3%>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
나훈아의 주요 수상 및 선정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동양방송 로고_White.svg 방송가요대상 대상[1]
남진
김상희
마음이 고와야지
참사랑

(1971년)
나훈아
하춘화
고향역
물새 한 마리
(1972년)
남진
하춘화
그대여 변치마오
영암 아리랑

(1973년)

파일:한국갤럽 CI_White.svg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수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2004년
※ 200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수'를 선정.
1위 공동 2위 4위 5위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 현철
6위 7위 8위 9위 10위
태진아 신승훈 송대관 김건모 설운도
2009년
※ 200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장윤정 BIGBANG 태진아 이미자 소녀시대
{{{#!wiki style="margin: -16px -11px" 6위 7위 공동 8위 공동 10위
나훈아 조용필 현철 손담비 이승철 송대관 }}}
2014년
※ 201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조용필 이선희 장윤정 아이유 태진아
6위 공동 7위 9위 10위
EXO 이승철 이미자 나훈아 소녀시대
2019년
※ 201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방탄소년단 장윤정 나훈아 아이유 조용필
6위 공동 7위 9위 공동 10위
이선희 태진아 이미자 이승철 김연자
공동 10위 15위
이문세 홍진영 TWICE 박효신 남진
16위 17위 공동 18위
임창정 송가인 김건모 설운도 진성
21위 공동 22위
성시경 거미 BLACKPINK 잔나비
2024년
※ 202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임영웅 아이유 방탄소년단 나훈아 NewJeans
6위 7위 8위 9위 10위
장윤정 진성 영탁 송가인 BLACKPINK
11위 12위 13위 공동 14위
이찬원 성시경 김연자 김호중 조용필
16위 17위 공동 18위 공동 20위
이효리 전유진 IVE 이문세
공동 20위
이미자 이승철 장민호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좋아하는 유튜버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매년 스포츠한국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선정한다.
본 틀에는 5위까지만 기록하며 그보다 낮은 순위는 데일리 스포츠한국 선정 한국인이 좋아하는 연예인 문서에만 기재한다.
2018 2020
1위 유재석 (5.9%)
2위 아이유 (4.2%)
3위 방탄소년단 (2.6%)
4위 박보검 (2.0%)
5위 소지섭 (1.3%)
1위 유재석 (7.6%)
2위 아이유 (4.3%)
3위 공유 (2.7%)
4위 박보검 (1.9%)
5위 수지 (1.7%)
1위 유재석 (8.6%)
2위 방탄소년단 (3.9%)
3위 아이유 (3.5%)
4위 나훈아 (2.5%)
5위 공유 (2.2%)
2021 2023
1위 유재석 (8.8%)
2위 아이유 (5.1%)
3위 방탄소년단 (3.3%)
4위 전지현 (2.1%)
5위 공유 (2.0%)
1위 유재석 (7.6%)
2위 아이유 (5.0%)
3위 방탄소년단 (2.3%)
3위 김혜수 (2.3%)
5위 최불암 (2.2%)
1위 유재석 (8.8%)
2위 아이유 (2.9%)
3위 방탄소년단 (1.9%)
4위 남궁민 (1.5%)
5위 임영웅 (1.3%)
}}}}}}}}}


파일:kbs를 빛낸 50인 세로.png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BTS 강하늘 강형욱 강호동 고두심
공효진 김강섭[A] 김동건 김병만 김수현
김숙 김신영 김영철 김은숙 김종민
김혜수 김혜자 나문희 나영석 나훈아
노희경 문세윤 박명수 배용준 소녀시대
손범수 송은이 송중기 송해 송혜교
신구 신동엽 아이유 안국정[B] 유동근
유재석 윤석호 이경규 이금희 이병헌
이순재 이영자 임성훈 전현무 조용필
최경영 최불암 최수종 허참 황수경
한국방송공사가 공영방송 50주년을 맞이하여 선정한 50인의 인물로, 순서는 가나다순으로 정렬하였다.

선정을 위해 KBS와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이 공동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다. 사내외 전문가그룹 100명과 인구 통계학적 분포에 따라 성별, 연령별로 구성된 KBS 국민 패널 1,800여 명이 참여한 1차 설문 조사로 100명의 후보군을 우선 선정하였다. 이어 3주간 KBS 공영방송 50주년 홈페이지(kbs50.kbs.co.kr)를 통해 일반 시청자 7만여 명을 대상으로 최종 투표를 실시하였다. 시청자 투표로 선정된 최종 50인은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의 추천을 받아 미디어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KBS를 빛낸 50인 선정자문위원회’에서 적격성 검토를 거쳐 확정되었다.

[A]: 가요무대 음악 감독을 맡은 KBS 악단장으로, 2022년 사망하였다.
[B]: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을 기획, 연출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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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엠넷 로고.svg
레전드 100 아티스트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이난영 남인수 현인 신중현 이미자
최희준 하춘화 패티킴 배호 남진
나훈아 윤복희 송창식 윤형주 펄 시스터즈
김추자 조영남 김민기 양희은 이장희
나미 한대수 이정선 해바라기 한영애
산울림 윤수일 사랑과 평화 인순이 정태춘
심수봉 조동진 조용필 김수철 송골매
김현식 전영록 시인과 촌장 이문세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이선희 안치환 김광석 주현미 다섯손가락
들국화 시나위 김완선 백두산 부활
어떤날 이승철 임재범 유재하 소방차
변진섭 동물원 이상은 이승환 박남정
봄여름가을겨울 신촌블루스 푸른하늘 장필순 김현철
현진영 015B 빛과 소금 윤종신 듀스
윤상 신승훈 강산에 김건모 N.EX.T
서태지와 아이들 이소라 김동률 박진영 솔리드
유앤미블루 토이 DJ DOC YB 패닉
H.O.T. 델리스파이스 윤미래 자우림 S.E.S.
이효리 크라잉넛 노브레인 드렁큰 타이거 god
보아 싸이 브라운 아이즈 다이나믹 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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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DFC77F> 나훈아
羅勳兒 ㅣ Na Hoon-A
파일:나훈아 일곱 빛 향기.jpg
본명 최홍기 (崔弘基, Choi Hongki)
출생 1947년 2월 11일 ([age(1947-02-11)]세)[프로필상]
경상남도 부산부 초량정
(現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중로[3])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경주 최씨 (慶州 崔氏)[4][5]
신체 175cm[6], 71kg
가족 아버지 최영석, 어머니 홍성염[7]
사촌 동생 나진기[8]
아들, 딸
학력 초량초등학교 (졸업)
대동중학교 (졸업)
서라벌예술고등학교 (졸업)
병역 대한민국 공군 병장 만기전역 (231기)[9]
데뷔 1968년 노래 《내 사랑[10]
서명

1. 개요2. 위상 및 평가3. 나이를 둘러싼 논란4. 특징5. 대표곡6. 활동7. 라이벌 남진과의 비교8. 개인사
8.1. 2008년 기자회견
9.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가수.

트로트 보컬과 수많은 히트곡을 직접 작곡해서 히트시킨 싱어송라이터이며,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노래방 반주기에 수록된 곡이 가장 많은 가수다.

2. 위상 및 평가

트로트의 전설적인 카리스마
'엠넷 레전드 100 아티스트'에서의 소개문구
자타공인 1970년대 한국 가요계의 아이콘이자 라이벌인 남진과 함께 한 시대를 양분했던 슈퍼스타로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상 최고의 가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다.[11]

히트곡만 무려 120곡이 넘어 나훈아는 히트곡의 숫자에서도 국내 최다는 물론이고, 앨범 발표수만 해도 무려 200장 이상, 1,200곡 이상의 자작곡을 포함해서 3,000곡 정도의 취입곡을 자랑한다. 이처럼 나훈아는 트롯의 황제, 가황(歌皇)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가수다.

3. 나이를 둘러싼 논란

1947년생으로 익히 알려져 있으나 어린 시절에 데뷔한 것으로 인해 험한 연예계에서 얕잡아 보일까봐 나이를 올린 것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1947년생이 아니라고 한다. 45년생인 남진도 조용필을 통해 나훈아의 나이를 전해들은 바를 이야기 한 적이 있으며 자신보다 5~6살 어리다고 했다. 1960~1970년대 LP들에서 나이를 소개할 때 1950년, 1951년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4. 특징

묵직하고 중후함이 느껴지는 저음과 특유의 절묘한 고음, 이를 활용하면서 나오는 전매특허인 꺾기로 대표되는 나훈아 특유의 창법은 가요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으며, 수많은 가짜 나훈아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유달리 나훈아의 노래는 가수가 자기만의 색을 입혀서 노래하는 것이 엄청나게 부담되는 노래로 유명한데, 나훈아의 노래를 소화하다 보면 자칫하면 어설픈 모창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이나 나훈아의 창법은 엄청나게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13]

대부분의 히트곡이 본인이 작사하고 작곡한 곡이다. 물론 다른 사람에 의해 작곡된 히트곡도 꽤 많다. 일례로 2005년에 발표한 "고장난 벽시계(윤중민 작사, 박성훈 작곡)" 같은 곡은 의외로 나훈아가 작사 작곡을 하지 않았다. "행운", "남자라 울지 못했다" 등. 자작곡 중 다른 가수에게 준 곡도 있는데 이중에서 유명한 노래로는 <땡벌>(강진이 부름)이 있다. 사실 "땡벌"은 나훈아가 1987년에 이미 직접 불러서 발표했었다. (당시 땡벌을 부르는 나훈아 방송 영상). 또한 1991년에 원로가수 정원이 "인생은 본전"이라는 이름으로 가사만 바꿔서 불렀다. 나훈아는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잘 주는 편은 아니다. 땡벌 외에는 이자연이 부른 "당신의 의미", 심수봉의 "여자이니까" 등이 대표적인 곡이다. 자작곡 전반을 보면 평생에 걸쳐 블루스와 민요를 트로트에 접목한 형태의 음악적 시도를 해온 것을 알 수 있다.

가창력 만큼이나 자타가 공인하는 장점은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무대 장악력과 무대 연출능력을 꼽을 수 있다.

콘서트에서 한 팔만 들면 자기가 작사 또는 작곡한 노래이고 작사와 작곡을 다 한 노래를 부를 때는 양 팔을 위로 올리는 퍼포먼스를 취한다.

5. 대표곡

6. 활동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나훈아/활동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 라이벌 남진과의 비교

파일:나훈아 남진.jpg

남진과 나훈아는 1970년대부터 서로 경쟁했던 사이로, 대한민국 모든 가요계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수 없는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둘도 없는 양대산맥 라이벌 관계 이다.

마침 언론 및 대중들이 두 사람을 라이벌 구도로 만들기 딱 좋은 차이점들이 여럿 있었다. 남진은 수려한 외모에 호방한 목소리로 대중성이 강했고, 나훈아는 상대적으로 외모가 투박했으나 싱어송라이터로 음악성을 어필하는 느낌이 강했다.

노래의 성격 역시 남진은 도시의 세련된 이미지를 담은 가사를 주로 사용한 반면[23], 나훈아는 고향에 대한 향수나 시골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담은 가사를 주로 사용했다.

두 사람의 집안 배경조차 대조적이어서 나훈아는 부산 출신의 서민 집안이지만, 남진은 전남 목포 출신의 매우 부유한 집안이었다. 출신 지역도 각각 영남과 호남으로 나뉜 것은 덤.

그러나 나훈아 집안도 이미지만큼 가난한 집안은 아니었고, 아버지가 무역선 선원이어서 외국에서 사온 축음기도 가지고 있는 등 제법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안이었으나,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던 남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남진의 아버지인 김문옥 전 의원은 곡물 정미회사, 언론사 등을 경영한 기업인이자 제5대 국회의원도 지냈던 인사였다. 남진의 회고에 따르면 한 때 전라남도 전체에 승용차가 두 대 있었는데 하나는 전라남도청에서 쓰는 전라남도지사관용차, 하나는 아버지 김문옥 의원의 것이었다고.

두 사람의 상반된 외모 차이와 분위기 탓에 양쪽 팬덤에서도 라이벌 대립각이 조성되어서, 당시 공연장에 가면 남진 팬들은 나훈아에게 '소도둑놈 저리가라'고 외치고, 나훈아 팬들은 남진에게 '돼지 멱따는 소리 치워라'라고 외치며 공방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1980년대 칼럼

두 사람은 '어머님 생전에(1973년)'같은 영화에 나란히 출연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남진이 인기가 좀 더 많았지만, 나훈아가 후에 부각되며 라이벌로 불리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예술적인 곡을 많이 작곡•작사한 나훈아는 가수, 예술가로서 확실한 자리를 잡는다.

남진 콘서트도 매번 매진되지만, 나훈아 콘서트는 티켓은 발매를 개시하자마자 10초도 안되어 동나기 때문에 콘서트 예매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24] 방탄소년단, 이승환, 한국시리즈 7차전, 빅뱅, 명절 전 일반 열차, LCK 결승전 급으로 티켓을 예매하기 어려우며, 아들 딸 전부 동원해서 예매해도 성공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이것은 활동노선의 차이도 있다. 나훈아는 극도의 신비주의로 신곡을 발표하는 텀도 길게 두고,[25] 신곡도 오직 콘서트에서만 들을 수 있다. 방송 출연도 거의 하지 않는다.

반면 남진은 가요 프로그램이나 예능 출연도 잦고 후배들과 자주 협업하는 등 트로트 가수치고는 다작하는 편이다. 남진의 팬 입장에서는 '반드시 콘서트에 가야 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이는 가수로서의 각자의 철학에 따른 것이기도 한데, 나훈아는 '저 하늘 위의 별'로서 본인을 포지셔닝한 반면 남진은 어디까지나 '대중의 친구'를 지향했다. 외모와 같은 외적 이미지조차도 이를 따라갔는데, 남진은 친근하고 편안한 아저씨의 이미지로 바뀐 반면 나훈아는 카리스마 있는 미중년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아이돌 가요계에 비유하면 코어팬덤형 아이돌과 대중형 아이돌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맞고 틀린 게 아니라 두 사람이 가진 가수로서의 가치관이 다른 것이다.

8. 개인사

8.1. 2008년 기자회견

2008년에는 일본 야쿠자와 여배우 K[28]를 놓고 시비가 붙어 음경을 절단당했다는 헛소문이 돌았다. 헛소문이 너무 돌자 나훈아는 이런저런 의혹에 답변하고자 1시간짜리 기자회견을 열었다.
파일:external/spnimage.edaily.co.kr/PP08012500023.jpg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훈아는 정말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기자 회견을 어느 정도 진행하다가 "제가 지금부터 이 위에 올라가서, 여러분이 원하는대로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하더니 입고 있던 정장 재킷을 벗고 단상 위로 올라갔고, 그 자리에서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서는 "자, 지금 여러분들 중에서 대표로 얘기해 주십시오. 제가 내려서 5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며 원한다면 아예 바지를 벗어 증명하겠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한 것. 당연히 기자회견장은 그가 단상에 올라갈 때부터 술렁이고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 때 나훈아의 팬들이 나훈아를 굳게 믿는다고 외쳐서 진짜 바지를 내리지는 않고 일단락됐다.

이게 당시 시대상을 모르는 사람이 글로만 보면 우스운 해프닝처럼 보일 법 하지만, 실제로 그 당시에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초강수였다. TV에 많이 나와야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지도를 많이 쌓고 돈을 많이 버는 연예인들은 이때만 해도 진짜 누구 뒷배가 있지 않는 이상, 기자들 앞에선 그냥 일개 광대 취급을 받았다. 기자들이 기사 한 줄만 작심하고 써도 힘이 없는 연예인은 잘못하면 연예계에서 강제 은퇴당할 수도 있을 정도로 권력의 추가 언론으로 기울어진 그런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전 언론사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할 말 다 하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고 기자들에게 일갈한 나훈아의 이 퍼포먼스 덕에 여배우 K나 고자 스캔들은 한 방에 묻혀 버렸다. 반면에 기자들은 이전에 루머 유포에 앞장선 것도 있고, 이 때 나훈아가 저렇게까지 하는데도 사진이나 찍느라 바빴다는 것 등도 포함해 기레기 소리를 들으면서 욕만 실컷 먹었다. 나훈아는 추가로 인터뷰에서 "여러분(기자)들이 펜으로 사람(연예인들)을 죽이는 겁니다." 라고 다시 한 번 강하게 비판하기까지 했다.
대중문화 기자 백은하는 이 퍼포먼스를 "땅으로 내려왔던 셀러브리티가 그렇게 다시 하늘에서 빛나는 별로 올라갔다."라고 평했고, 음악평론가 차우진은 "이런 카리스마는 어떤 지도자에게서도,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과연 교주님이라 외칠 만하다." 라며극찬했다. #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 네티즌이나 기자들의 명예훼손, 허위사실유포, 모욕 등에 대해서 연예인들이 무대응하는 것이 관례였으나[29] 나훈아의 이 기자회견 이후로 서서히 법적 대응을 하는 기조로 바뀌었다. #

이 퍼포먼스는 나중에 방송가에서 개그 프로그램을 비롯해서 여러 번 패러디되기도 했다. 2013년 1월, SNL 코리아 최민수 편에서 최민수가 패러디하기도 했다. 다만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뭘 패러디 한 건지도 알 수 없게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녹아들어갔다.

9. 여담


[1] 1981년부터 KBS 가요대상으로 승계[프로필상] 데뷔용 나이이다. 자세한 내용은 나이 논란 문단 참고. 데뷔 당시에 그는 미성년자(만 17~18세)였던 점이 데뷔에 지장을 주었기 때문에 나이를 올린 것으로 추측된다. 후술하다시피 51년생이라는 게 정설이며, 그러니 실제로는 [age(1951-02-11)]세.[3] KBS부산방송총국의 별도채널인 "부캐부캐"에서의 취재에서 밝혀졌으며 현재 국민삼겹이 있는 건물이다. #[4] 충렬공파 33세손, 시조 42세손 ○기(○基) 항렬이다.[5] 밤으로 가는 쇼 에서 밝힌 바 있다. https://youtu.be/UiTjbTo5uos 영상 16분 13초쯤에서 언급.[6] 1982년 동아일보 신상명세서. 어떤 데서는 178cm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7] #[8] 가수이다. 본명은 최진기다.[9] 공군본부 직할 군악대에서 복무했다.[10] 나이와 마찬가지로 1966년 '천리길' 데뷔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역시 아니다. 역시 후술.[11] 20세기말에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훈아는 이미자, 조용필, 서태지와 더불어 최상위권에 위치해있다.[12] 2011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 이후에는 자신의 고향인 경남 함양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13] 그리고 이 창법은 가수 본인의 동작도 한몫 하는데, 특정 동작에서 꺾기가 가장 잘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14] 손석우 작사, 유현석 작곡.[15] 손석우 작사, 유현석 작곡.[16] 지금은 남국인 작사·김영광 작곡으로 돼있지만 발표당시는 손석 작사·작곡이었다.[17] 나훈아의 모친은 2021년 현재 100세에 가까운 연세로 정정하시다고 밝혔다.[18] UDT/SEAL65기의 기수가로 사용되었다.[19] 최근 자신이 부른 노래 중 테스형의 후렴구 부분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테스형의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이 부분은 가라지의 후렴구인 "너 괴롭고 나 괴로운 것을! 넌 넌 왜 모르니" 이라 하는 부분과 유사하다.[20] 유튜브 채널 허세스코에서 전직 조폭 출신 출연자가 말하길 이 노래가 건달들 노래방 18번이라고 한다(...)[21] 이 노래 역시 가라지처럼 신곡 테스형과 비슷한 면이 있는데 테스형의 "어쩌다가 한번쯤 턱빠지게 웃었다" 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고향으로 가는 배의 도입부인 "고향으로 가는 배 꿈을 실은 작은 배" 와 비슷하다.[22] '진기'와 '오서방'을 보디가드로 불렀는데, 진기는 사촌동생 나진기, 오서방은 오재미이다.[23] 이는 남진의 대표곡인 님과 함께가 도시보다 님과 함께하는 농촌이 더 좋다는 내용이라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다.[24] 남진이 콘서트 동원력이 딸린다는 것이 아니다. 비교적 콘서트 등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나훈아가 압도적으로 적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뿐[25] 물론 나훈아가 2020년 KBS 공연에서도 밝혔지만, 무작정 고의적으로 그렇게 가기보다는 신곡 하나 만드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26] 당시에는 LP판을 취입하는 데에 당시 돈으로 6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야 했다. 국민주택이 20만원 정도 하던 시절이니 지금으로 치면 수천만원에 달하는 거액인 셈이다.[27] KBS 아나운서 출신 프리랜서 방송인 이지연의 부친이자 원로 방송인인 그 이상벽 맞다. 원래 직업은 기자였지만, 나중에 방송인으로 전업했다.[28] 일부 기레기들은 소문의 진위도 정확히 확인하지도 않고 김혜수 혹은 김선아라는 식으로 언질을 줬다. 이 때문에 나훈아는 후술할 기자 회견에서 이 둘의 성명을 직접 언급하며 자살을 안 한 게 천만다행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일갈로써 기자들의 보도 작태를 강하게 질타했다.[29] 백은하, 차우진의 발언이 인용된 기사에서 나오듯 아이비도 이런 식으로 무대응하는 바람에 장기 활동 중단이 되기도 했다.[30] 조용필은 1991년 13집의 '꿈'을 끝으로 방송 출연을 하지 않아 신비주의 이미지가 있었지만, # 2018년 50주년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는 여러 이벤트를 열었다. 세대통합 조용필 VS 신비주의 나훈아 이런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나마 서태지는 나머지 둘에 비하면 아직 젊은 사람이어서 예능 출연도 종종 하는데다 SNS로 근황도 종종 알리는 편이다.[31] "삼성을 생각한다"에 따르면 보통 가수들은 이건희의 생일 때 초청되어 노래를 2~3곡 정도 부르고 3,000만 원 정도 받아간다고 한다. 액수를 떠나서 이건희의 위상을 봤을 때 오히려 불러준 연예인이 영광이라고 생각할 법도 한 점을 감안하면 나훈아는 엄청나게 대단한 거다.[32]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온나'는 '나와라'의 동남 방언이다.[33] 첫 번째는 내 방까지 융단을 깔아 달라, 두 번째는 방은 100평 이상이 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전용 헬기를 준비해 달라, 네 번째는 스텝 50명의 리무진을 대절해 달라, 다섯 번째는 식사는 한 상 가득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은 보디가드 40명을 붙여라.[34] 의외로 후배 강진의 열정과 선배 나훈아의 따뜻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땡벌은 몇년 동안은 히트곡이 아니었다. 그런데 비열한 거리에 출연한 조인성이 차에서 따라부르고, 당시 시청률이 40퍼를 상회하던 소문난 칠공주에서도 노주현이승기가 부르면서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서 당시 아이돌들이 지배하던 음원차트를 강타했고, 따라부르기 쉬운 멜로디로 인해 노래방차트까지 휩쓸었다. 뿐만 아니라 트롯 가수들의 로망인 단독 디너쇼까지 성공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강진의 꿈을 이뤄낸 메가 히트곡에 등극한다.[35] 공동 출연자 장홍제장태지, 임준혁조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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